노선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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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선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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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을 알지 못하고 쉬웠다면 공휴일이지 주일은 아닙니다.
주일을 알고 주일을 지켜도 주일에 담아 주신 은혜를 받기 어려워 많은 투쟁이 필요합니다.

2천년 교리사는 그 당시 당시에는 그 시대에 필요한 말씀의 투쟁에 모든 것을 바치면 되었지만 오늘 우리에게는 2천년 교리사의 전개 그 자체가 우리 눈에 보입니다. 보여 주실 때는 필요가 있어 보여 주셨습니다. 보여 주는 것은 계시라 하고 계시로 보여 주는 것은 계시록 1장에 속히 될 일이 있어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은 지난 6천 년 이 땅 위에 나온 모든 귀신과 죄악의 종류들이 다 쏟아 지고 있습니다. 교리나 신앙의 행위 하나하나를 두고도 정밀하게 현미경을 들이 대야 하지만, 시대 전체를 통해 인도하신 이 면을 보여 줄 때는 이 면을 봐야만 넘어 갈 수 있는 또 다른 신앙의 투쟁이 있습니다.

솔로몬이 죽은 뒤 이스라엘 12 지파 사이에는 논쟁이 생깁니다. 르호보암은 분명히 오판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계통을 통해 메시야가 오는 구원론의 길이 있음과 그 길목이 르호보암 때 두 길로 나타 났습니다. 이스라엘의 10 지파가 전부 어그러 진 길로 달려 갔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억울했고 그들의 요구는 정당했고 그들은 모두 다 옳게 보였습니다. 문제는 그들은 시대 전체를 통해 역사하는 길에서 떠났습니다. 나라를 다 말아 먹은 르호보암은 분열의 1차 책임자며 천하의 큰 원수입니다. 그러나 그는 시대를 이어 가는 구원의 노선에 섰습니다. 마태복음 1장에는 예수님의 족보가 나옵니다. 예수님의 혈통을 설명하며 별별 죄인들과 악인들을 다 담고 있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구원의 노선에 있다는 점입니다. 그 구원의 노선 안에서만 각자의 현실 충성과 신앙의 투쟁은 의미가 있습니다.

질문2에 적어 주신 말씀에 동의합니다.


>> 신학생 님이 쓰신 내용 <<
:
: 아래글은 이영인목사님의 글입니다.
: 하나님께서 2000년동안 교리사를 순차적으로 이치적으로 논리적으로 인도하셨습니다.
: 이러한 방향이 우리의 신앙발전과 원리가 같다고 하셨습니다.
:
: 질문1. 이러한 방향이(7순서로 교리를 체계화 시키심) 우리신앙에 도움이 되는 이유를
: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 질문2. 하나님이 교리를 확립 정리시켜주실때,
:
: 삼위일체전에 먼저 이신칭의교리를 확립을 절대 안시켜주셨을것 같습니다.
: 기본구원교리확립전에 건설구원교리확립을 안해주셨을것 같습니다.
: 건설구원교리확립전에 기독론(신인양성일위)교리를 절대 확립시켜주셨을 것 같습니다.
:
: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7시기 순서대로 교리를 확립시켜주셨을것 같습니다.
: 저의 생각이 맞을까요?
:
:
:
:
: (개인적인 간증)
: 정통기독교 교리사책을 몇권을 보았습니다.
: 정통기독교에서는 공통적으로 교리사의 과정을
:
: 1. 신구약66권 정립 2. 삼위일체정립 3. 기독론정립(신인양성일위) 4. 종교개혁의이신칭의정립 으로보고 있습니다.
:
:
:
: 일반교단의 교리사정립 내용을 보면서, 마지막에 건설구원교리가 와야
: 된다는 것을 알수가 있었습니다. 백영희목사님이 안태어나셨더라도, 하나님이 누군가를
: 통하여서 `건설구원(기능구원)`교리를 정립하게 하셨을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
: 그리고 하나님이 진정 살아계시구나. 기독교가 진정 참 진리이구나. 확신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영인목사님이 기독교외에 모든 다른종교는 진화종교라고 하셨습니다. 기독교외에
: 다른 모든종교는 처음 이야기했던 내용과는 달라집니다.
:
: 하지만 기독교의 교리사과정을 보면, 완결된 신구약66권 성경에서, 원래 가지고 있던 교리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치적으로 밝혀지고 정리되고 체계화가 되고 있습니다.
:
: 백영희목사님의 건설구원교리가 밝혀지지 않았다면, 저는 기독교가 참진리라고 확신을 못했을것 같습니다. 하지만 종교개혁이후에(기본구원) 건설구원교리가 세워지면서
: 2000년 기독교의 교리사의 과정을 보면서, 기독교가 참 진리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 (이영인목사님 덕분에 알게되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
:
: 20대초반에 하나님의 음성을 귀로 듣는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교리사 전개과정을 보면서
: 하나님의 음성을 귀로 직접듣는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지금 저의 손끝에 계신것 같습니다.
: 이영인목사님께 많이 감사드립니다.모두가 목사님 덕분입니다.
:
:
:
:
: - 이영인목사님의 글-
:
: 통신 기술의 발전이 유선 전화를 뛰어 넘고 스마트 폰으로 바로 간다는 것은 생각해 볼 수 없습니다. 자전거와 자동차를 거치지 않고 비행기를 바로 발명해서 공중에 띄운다는 것과 같습니다. 나무 배를 만들어 노를 젓는 단계를 거치지 않고 잠수함을 먼저 개발한다는 논리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
: 예를 드신 것은 세상의 자연 현상입니다. 이 자연 현상도 하나님이 만드셨고 그 자연을 만들 때 자연도 이치를 따라 만들고 존재하고 이치를 따라 돌아 가도록 해 놓았습니다. 물론 창조의 능력으로 종종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여 이치를 중단 시키거나 이치에 없는 일들을 하시만 일반적으로는 하지 않으십니다. 자연과 물리를 만든 이유는 그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필요해서 만들었으니 당연히 자연을 물리에 따라 운영하고 계십니다.
:
:
: 교회의 교리 발전은 우리의 신앙 발전과 그 원리가 같습니다. 범위를 좁히면 개인의 신앙 발전이고 범위를 넓히면 교회의 교리 발전입니다. 교리의 발전은 교회 발전의 중심입니다.
:
:
: 세상의 통신과 교통의 기술 발달은 그 겉 모습이 하나님과 무관한 것 같으나 속으로는 역시 하나님의 주권 섭리에 달려 있습니다. 그렇게 발달이 되도록 세상을 만들 때부터 그렇게 만들었고 또 그렇게 발달의 과정을 밟도록 이치도 그렇게 만들었으며 또한 하나님께서 그런 단계를 실제 밟고 발달을 시켰습니다. 달리 해도 되는데 하나님께서 필요해서 그렇게 하고 계십니다. 이유는? '이치'를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왜 이치를 가르치는가? 우리 믿는 사람에게 진리를 가르치고 그 진리를 배우는데 이용하고 참고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
: 하나님은 전능자시니 우리를 오늘의 이 모습이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만들 수 있고, 우리의 신앙과 구원의 방법과 우리의 교회 역사와 각 시대의 모든 상황 전부를 하나님은 지난 6천 년과 다르게 전개 시킬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인류의 지난 6천 년도, 각 시대의 교회와 그 내용도, 그리고 각 시대의 연결 모습도 오늘까지 흘러 내려 온 것처럼 이렇게 예정하고 이렇게 실제 섭리해 오셨습니다.
:
: 이치를 내신 하나님은 이치의 하나님이시며 그 이치를 낸 이유는 그 이치를 통해 하나님을 알고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것은 세상 이치나 진리의 이치나 마찬 가지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교리 발전의 단계도 이렇게 논리적으로 필연적으로 마치 통신과 교통의 수단들이 발달 해 나가듯이 그런 모습으로 발전해 나가게 하신 이유는 그런 모습을 가진 역사라야 우리를 가르치고 기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
:
: 왜 도움이 되느냐? 이 문제는 7 단계들을 살펴 보면 바로 답이 나올 듯합니다.
:
:
: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의 논쟁은 교리사에서 어떤위치에 들어가는지?
* 이영인목사님께서 답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성경론(계시론) - 삼위일체론(신론) - 신인양성일위론(기독론) - 이신칭의론(기본구원)
- 건설구원론(기능구원론)

총론질문)
2000년 교리사의 과정을 보면 위의 내용과 같습니다.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의 논쟁은 교리사과정 가운데서, 어떠한 `위치-가치`가 있을까요?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는 인죄론논쟁면이 많은 것 같습니다.

어거스틴은 원죄론과 타락가운데 태어나는 모든 인간은 죄를 지을 자유밖에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총과 예정에 의해서만 죄와 사망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인간의 참된 자유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새로운 삶에로 이끄실때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주실때(구원받았을때) 인간의 참된 자유가 성취될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반면에 펠라기우스는 원죄를 부정했으며, 태어날때 부터 죄에 저항할 수 있고
의를 행할수 있는 참자유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는 인간이란 어떤존재인가? 에 대해서 논쟁을 했는것 같습니다.


각론질문1)
그렇다면 어거스틴의 인간이란 어떤존재인가? 어거스틴의 인죄론(원죄- 자유의지 - 하나님의 은총과 예정에 의한 구원)도 기독론과 종교개혁의 기본구원(종교개혁) 사이에
위치할 수 있지 않을까요?


각론질문2)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을 어거스틴으로 돌아간 종교개혁이라고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어거스틴은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을 준비 예비케 하기 위한 하나님이 세우셨을까요?
실제 어거스틴의 깨달음들이 없었다면, 종교개혁시대의 깨달음들을 가질수 있었을지?
의문이기도 하고, 루터목사님은 성경만으로도 이신칭의를 혼자서 깨달었는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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