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집중은 필기를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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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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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6 08:26
* 마음은 육체로, 육체는 마음으로
설교 시간에 필기를 해 보면 눈과 귀를 붙들어 맬 수 있고, 육체의 눈과 귀를 붙들어 매면 육체의 눈과 귀가 몸 속에 있는 마음까지 도망 가거나 분산되지 않도록 합니다. 몸이 마음을 붙들어 바른 길에 세울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정상적인 경우는 마음이 먼저 옳은 것을 생각하고 그 생각이 몸을 붙들고 바르게 살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부족하기 때문에 마음이 몸을 붙들고, 몸이 마음을 붙들어 주며 한 길을 가게 해 주셨습니다.
마음과 몸의 관계를 좀더 안내해 보겠습니다.
1. 사람의 마음과 몸
- 영
사람이 특별함은 마음이 아니라 마음 속에 영입니다. 만물 중에 영을 가진 존재는 사람뿐입니다. 따라서 사람은 사람됨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님이 만드신 영계와 우주 전체의 최고 존재이며 유일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대신 할 수 있는 위치를 받았습니다.
- 마음
사람에게 주신 특별한 이 위치는 그냥 자리만 마련해 주신 것이 아니라 그 자리를 실제 유지할 수 있도록 탁월한 수단을 주셨으니 그 첫째가 바로 마음입니다. 세상에 인간의 마음보다 더 우수하고 탁월한 존재는 없습니다. 영이 하나님께 붙들려 하나님을 모시고 우리 마음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면, 우리의 마음은 그 뜻을 마음에 기억하고 그 뜻을 주신 이유를 살피고 그 뜻 속에 담긴 세세한 것을 연구할 수 있으며 그 뜻을 잘 알수록 그 뜻을 수행할 때 기쁨으로 감사로 넘치는 의욕으로 실행할 수 있고 그렇게 하는 상황에 따라 하나님은 도우시는 은혜로 함께 하며, 그 도우시는 은혜가 있는 만큼 인간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 서고 초인간 초역사 초자연 초과학적 걸음을 걷게 됩니다.
- 몸
하나님은 우리의 영을 붙들고 대화하며 지시를 하듯이, 영은 우리 마음 속에서 마음에게 신앙의 길을 알리며 달래며 지도합니다. 그리고 마음은 우리 몸에게 마음이 알고 확정한 것을 따라 움직이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만든 것은 온 우주 만물 위에 탁월한 지도자로 만들기 위함입니다. 몸은 아무리 우수하다 해도 보고 듣고 접하는 것만 상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몸은 마음의 도구가 되어 몸 밖에 있는 현실만 상대하는 줄 알지만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몸도 함께 주신 또 다른 이유는 마음을 붙들 수 있는 아주 간편하고 쉬운 족쇄의 기능, 재갈의 기능이 있습니다.
잠4:23에서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했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영은 하나님께만 붙들려 있지만 마음이 제 멋대로 살아 버리면 눈을 뜨고 쳐다만 볼 수 있을 뿐입니다. 마음이 영에게 기계적으로만 움직이고 멋대로 움직일 수 없다면 죄를 짓지는 않지만 그 대신 인간은 컴퓨터에 지나지 않습니다. 영에게 순종하되 자원함으로 순종함으로 더 효율적이고 창조적이 되어 유기적인 수행을 하도록 마음에게는 마음의 자유성을 따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타락 후 이 자유성을 가지고 영을 순종할 때 사용하지 않고 영을 거부하는 자유로만 살아 왔습니다. 중생 된 성도는 중생 이후부터는 영에게 자원함으로 순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 졌지만 여전히 믿기 전처럼 죄의 자유를 누려도 자유입니다. 따라서 마음이 우리의 신앙과 영생에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몸이라는 것도 제 멋대로 하기는 하지만 마음이 꼭 마음 먹으면 몸은 결국은 따로 오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만 그 속에서 스며 나오는 영의 호소를 듣게 되면, 듣되 잘 듣고 강하게 듣고 강하게 결심하면 몸이라는 것은 조금 차이는 있지만 마음 가는 대로 갑니다. 그런데 영을 수종하여 만물을 다스릴 우리 속에 중심부가 되는 마음은 그에게 주어 진 탁월한 기능만큼 그 마음이 죄를 짓고 엉뚱한 생각을 할 때도 우주선보다 더 빠르고 더 민첩합니다.
2. 질문은 예배 시간의 집중입니다.
마음과 몸의 관계를 알았다면 이제 예배 시간에 마음을 예배에 집중 시키는 실제 방법을 살피겠습니다. 공회 예배는 말씀이 중심에 있습니다. 기도와 찬송은 말씀을 받기 위해 마음을 집중하는 정도입니다. 우선 예배 시간의 '기도'는 예배 시간의 중요성을 알고 예배에 은혜를 주시라고 부탁합니다. 찬송은 세상에 흩어 져 엉망이 된 마음을 '감사의 가사'와 '감격의 곡'으로 달랩니다. 찬송은 과거 은혜 받은 분들이 그 은혜를 말씀으로 요약하고, 그 감사를 곡조로 표현한 것입니다. 찬송은 우리 마음 속에도 감정에 호소를 하기 때문에 말씀보다는 쉽게 우리 마음을 붙들 수 있습니다.
또한 기도와 찬송은 모든 교인이 함께 입으로 움직이는 시간이기 때문에 예배 시간 중에 비교적 마음을 붙들기에 유리합니다. 그런데 찬송과 기도보다 더 중요한 말씀 시간은 전체 예배를 인도하는 설교자가 전체 교인을 대표하여 성경을 읽고 그 말씀을 소개하는데 그 설교 시간의 설교자는 전체 예배자 중에 1인일 뿐이고 그 1인을 앞 세워 놓고 온 교인이 다 함께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그 말씀을 통해 각자에게 주는 은혜를 찾고 마음이 그 말씀에 붙들려 여러 면으로 살펴야 하는데, 대개 설교 시간의 말씀은 학교의 강의처럼 생각하는 수가 많습니다. 설교를 학교 강의처럼 생각하게 되면 그 순간에 갑자기 우리 마음은 마음 속에 깔려 있는 무의식에 영향을 받습니다. 강의처럼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어렵다' '지겹다' '뻔한 소리다' '반복한다'는 무의식의 선입견에 영향을 받게 되면서 마음이 흥미를 잃어 버립니다. 흥미가 없어 지면 잠을 자든지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게 됩니다.
설교를 듣는 교인들의 생각이 이렇게 되면 아무리 설교를 해도 소용이 없게 되니까 미국의 설교자들은 멋지고 지성적인 우스운 말을 하나 던져서 흩어 진 또는 흩어 질 교인들의 마음을 강단에 집중을 시킵니다. 이 것은 초콜릿이나 사탕처럼 효력은 즉시 나타나지만 교인들에게 '하나님 앞에 예배'를 인간의 강의장으로 바꾸고 이런 현상이 반복 되면서 요즘은 예배다운 예배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오늘 기독교의 별별 부정과 부패를 두고 별별 원인 분석이 나오지만 가장 근본적으로 살피면 예배와 설교를 하나님 앞이라는 그본 생각을 없애 버린 것이 그 원인입니다. 인간끼리 모이고 운영한다고 생각을 하고, 하나님 앞이라는 생각은 구호에 그친 정도니, 이런 상황에서 벌어 질 일은 인간이 인간적으로 행동하고 인간이 인간적이 되면 그 때부터는 인간에게 생길 일이 하나도 빼지 않고 다 나오는 것이 필연적인 일입니다. 애당초 교회도 예배도 말씀도 없던 집단에게 그 것들을 기대한 것이 잘못입니다.
예배 시간의 핵심이며 가장 많은 비중을 가진 것이 설교 시간입니다. 필기를 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집중하고 듣는 사람은 설교를 마음으로 따라 가기도 벅찬데 필기를 하게 되면 불편하게 됩니다만, 필기라는 것은 최소한 흩어 지는 마음에 재갈을 먹여 설교에 붙들어 매는 효력이 있습니다. 공회 예배는 15,000명이 함께 모였던 대집회의 1회 3시간 설교, 하루 3회의 예배 내내 모두가 숨소리를 죽여 가며 필기를 했습니다. 백영희 목사님의 설교로 대표가 되는 공회 설교는 일단 들어야 할 정도의 내용이 있으므로 저절로 필기를 하게 되어 있고, 또 필기를 통해 마음을 설교에 붙들어 매었습니다.
>> 키큰남자 님이 쓰신 내용 <<
:
: 친구를 통해 총공회 예배를 알게되고 온라인으로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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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약시대 이후 성소는 하나님과 함께해야함이란 말씀에서 마음상태의 중요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삶에서 그리고 예배드릴 때 하나님께 온전히 마음을 집중하기가 참 힘듭니다.
:
: 너무나 많은 생각들이 나고 산만하며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하며 남을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고 그럽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설교 시간에 필기를 해 보면 눈과 귀를 붙들어 맬 수 있고, 육체의 눈과 귀를 붙들어 매면 육체의 눈과 귀가 몸 속에 있는 마음까지 도망 가거나 분산되지 않도록 합니다. 몸이 마음을 붙들어 바른 길에 세울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정상적인 경우는 마음이 먼저 옳은 것을 생각하고 그 생각이 몸을 붙들고 바르게 살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부족하기 때문에 마음이 몸을 붙들고, 몸이 마음을 붙들어 주며 한 길을 가게 해 주셨습니다.
마음과 몸의 관계를 좀더 안내해 보겠습니다.
1. 사람의 마음과 몸
- 영
사람이 특별함은 마음이 아니라 마음 속에 영입니다. 만물 중에 영을 가진 존재는 사람뿐입니다. 따라서 사람은 사람됨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님이 만드신 영계와 우주 전체의 최고 존재이며 유일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대신 할 수 있는 위치를 받았습니다.
- 마음
사람에게 주신 특별한 이 위치는 그냥 자리만 마련해 주신 것이 아니라 그 자리를 실제 유지할 수 있도록 탁월한 수단을 주셨으니 그 첫째가 바로 마음입니다. 세상에 인간의 마음보다 더 우수하고 탁월한 존재는 없습니다. 영이 하나님께 붙들려 하나님을 모시고 우리 마음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면, 우리의 마음은 그 뜻을 마음에 기억하고 그 뜻을 주신 이유를 살피고 그 뜻 속에 담긴 세세한 것을 연구할 수 있으며 그 뜻을 잘 알수록 그 뜻을 수행할 때 기쁨으로 감사로 넘치는 의욕으로 실행할 수 있고 그렇게 하는 상황에 따라 하나님은 도우시는 은혜로 함께 하며, 그 도우시는 은혜가 있는 만큼 인간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 서고 초인간 초역사 초자연 초과학적 걸음을 걷게 됩니다.
- 몸
하나님은 우리의 영을 붙들고 대화하며 지시를 하듯이, 영은 우리 마음 속에서 마음에게 신앙의 길을 알리며 달래며 지도합니다. 그리고 마음은 우리 몸에게 마음이 알고 확정한 것을 따라 움직이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만든 것은 온 우주 만물 위에 탁월한 지도자로 만들기 위함입니다. 몸은 아무리 우수하다 해도 보고 듣고 접하는 것만 상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몸은 마음의 도구가 되어 몸 밖에 있는 현실만 상대하는 줄 알지만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몸도 함께 주신 또 다른 이유는 마음을 붙들 수 있는 아주 간편하고 쉬운 족쇄의 기능, 재갈의 기능이 있습니다.
잠4:23에서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했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영은 하나님께만 붙들려 있지만 마음이 제 멋대로 살아 버리면 눈을 뜨고 쳐다만 볼 수 있을 뿐입니다. 마음이 영에게 기계적으로만 움직이고 멋대로 움직일 수 없다면 죄를 짓지는 않지만 그 대신 인간은 컴퓨터에 지나지 않습니다. 영에게 순종하되 자원함으로 순종함으로 더 효율적이고 창조적이 되어 유기적인 수행을 하도록 마음에게는 마음의 자유성을 따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타락 후 이 자유성을 가지고 영을 순종할 때 사용하지 않고 영을 거부하는 자유로만 살아 왔습니다. 중생 된 성도는 중생 이후부터는 영에게 자원함으로 순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 졌지만 여전히 믿기 전처럼 죄의 자유를 누려도 자유입니다. 따라서 마음이 우리의 신앙과 영생에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몸이라는 것도 제 멋대로 하기는 하지만 마음이 꼭 마음 먹으면 몸은 결국은 따로 오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만 그 속에서 스며 나오는 영의 호소를 듣게 되면, 듣되 잘 듣고 강하게 듣고 강하게 결심하면 몸이라는 것은 조금 차이는 있지만 마음 가는 대로 갑니다. 그런데 영을 수종하여 만물을 다스릴 우리 속에 중심부가 되는 마음은 그에게 주어 진 탁월한 기능만큼 그 마음이 죄를 짓고 엉뚱한 생각을 할 때도 우주선보다 더 빠르고 더 민첩합니다.
2. 질문은 예배 시간의 집중입니다.
마음과 몸의 관계를 알았다면 이제 예배 시간에 마음을 예배에 집중 시키는 실제 방법을 살피겠습니다. 공회 예배는 말씀이 중심에 있습니다. 기도와 찬송은 말씀을 받기 위해 마음을 집중하는 정도입니다. 우선 예배 시간의 '기도'는 예배 시간의 중요성을 알고 예배에 은혜를 주시라고 부탁합니다. 찬송은 세상에 흩어 져 엉망이 된 마음을 '감사의 가사'와 '감격의 곡'으로 달랩니다. 찬송은 과거 은혜 받은 분들이 그 은혜를 말씀으로 요약하고, 그 감사를 곡조로 표현한 것입니다. 찬송은 우리 마음 속에도 감정에 호소를 하기 때문에 말씀보다는 쉽게 우리 마음을 붙들 수 있습니다.
또한 기도와 찬송은 모든 교인이 함께 입으로 움직이는 시간이기 때문에 예배 시간 중에 비교적 마음을 붙들기에 유리합니다. 그런데 찬송과 기도보다 더 중요한 말씀 시간은 전체 예배를 인도하는 설교자가 전체 교인을 대표하여 성경을 읽고 그 말씀을 소개하는데 그 설교 시간의 설교자는 전체 예배자 중에 1인일 뿐이고 그 1인을 앞 세워 놓고 온 교인이 다 함께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그 말씀을 통해 각자에게 주는 은혜를 찾고 마음이 그 말씀에 붙들려 여러 면으로 살펴야 하는데, 대개 설교 시간의 말씀은 학교의 강의처럼 생각하는 수가 많습니다. 설교를 학교 강의처럼 생각하게 되면 그 순간에 갑자기 우리 마음은 마음 속에 깔려 있는 무의식에 영향을 받습니다. 강의처럼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어렵다' '지겹다' '뻔한 소리다' '반복한다'는 무의식의 선입견에 영향을 받게 되면서 마음이 흥미를 잃어 버립니다. 흥미가 없어 지면 잠을 자든지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게 됩니다.
설교를 듣는 교인들의 생각이 이렇게 되면 아무리 설교를 해도 소용이 없게 되니까 미국의 설교자들은 멋지고 지성적인 우스운 말을 하나 던져서 흩어 진 또는 흩어 질 교인들의 마음을 강단에 집중을 시킵니다. 이 것은 초콜릿이나 사탕처럼 효력은 즉시 나타나지만 교인들에게 '하나님 앞에 예배'를 인간의 강의장으로 바꾸고 이런 현상이 반복 되면서 요즘은 예배다운 예배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오늘 기독교의 별별 부정과 부패를 두고 별별 원인 분석이 나오지만 가장 근본적으로 살피면 예배와 설교를 하나님 앞이라는 그본 생각을 없애 버린 것이 그 원인입니다. 인간끼리 모이고 운영한다고 생각을 하고, 하나님 앞이라는 생각은 구호에 그친 정도니, 이런 상황에서 벌어 질 일은 인간이 인간적으로 행동하고 인간이 인간적이 되면 그 때부터는 인간에게 생길 일이 하나도 빼지 않고 다 나오는 것이 필연적인 일입니다. 애당초 교회도 예배도 말씀도 없던 집단에게 그 것들을 기대한 것이 잘못입니다.
예배 시간의 핵심이며 가장 많은 비중을 가진 것이 설교 시간입니다. 필기를 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집중하고 듣는 사람은 설교를 마음으로 따라 가기도 벅찬데 필기를 하게 되면 불편하게 됩니다만, 필기라는 것은 최소한 흩어 지는 마음에 재갈을 먹여 설교에 붙들어 매는 효력이 있습니다. 공회 예배는 15,000명이 함께 모였던 대집회의 1회 3시간 설교, 하루 3회의 예배 내내 모두가 숨소리를 죽여 가며 필기를 했습니다. 백영희 목사님의 설교로 대표가 되는 공회 설교는 일단 들어야 할 정도의 내용이 있으므로 저절로 필기를 하게 되어 있고, 또 필기를 통해 마음을 설교에 붙들어 매었습니다.
>> 키큰남자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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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를 통해 총공회 예배를 알게되고 온라인으로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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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약시대 이후 성소는 하나님과 함께해야함이란 말씀에서 마음상태의 중요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삶에서 그리고 예배드릴 때 하나님께 온전히 마음을 집중하기가 참 힘듭니다.
:
: 너무나 많은 생각들이 나고 산만하며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하며 남을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고 그럽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마음에 대해서 여쭤봅니다.
친구를 통해 총공회 예배를 알게되고 온라인으로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신약시대 이후 성소는 하나님과 함께해야함이란 말씀에서 마음상태의 중요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삶에서 그리고 예배드릴 때 하나님께 온전히 마음을 집중하기가 참 힘듭니다.
너무나 많은 생각들이 나고 산만하며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하며 남을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고 그럽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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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통해 총공회 예배를 알게되고 온라인으로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신약시대 이후 성소는 하나님과 함께해야함이란 말씀에서 마음상태의 중요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삶에서 그리고 예배드릴 때 하나님께 온전히 마음을 집중하기가 참 힘듭니다.
너무나 많은 생각들이 나고 산만하며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하며 남을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고 그럽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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