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포교회 박영선 목사님의 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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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포교회 박영선 목사님의 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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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도 7 2
1980년대 박영선 목사님은 공회의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교계에 널리 전파해서 유명했습니다. 과거 구원, 현재 구원, 미래 구원으로 표현은 살짝 바꿨지만 모두가 그 출처를 알고 있었습니다. 하여튼 유명했습니다. 특히 성경 해석과 설교로 유명했고 이로 인해 공회는 소리 없이 유명해졌습니다. 방금 네이버에 '박영선' '건설구원'을 넣고 검색하자 다음과 같이 나왔습니다. 글 뒤에 첨부하겠습니다.

남포교회를 은퇴하고도 설교를 계속했고, 후임에게 설교 방향을 요구했고 이를 거절하자 개척을 하겠다고 하여 한국교회의 그 많은 논란에 또 논란을 더했습니다. 공회가 남다르게 지켜본 분이고 비록 공회는 아니지만 그래도 성경 강해설교를 강조하면서도 공회의 건설구원을 가지고 교계 중심에서 가장 유명했다는 점이 특별하여 이곳에 질문을 드립니다.






네이버 검색창에 '박영선 건설구원'으로 나온 글입니다.





박영선 목사는 ‘건설구원’이라는 구원론을 통해, 구원을 ‘신분의 구원’(칭의, 천국 소유 등)과 ‘수준의 구원’(성화, 구원의 확신 등)으로 구분하며, 구원의 완성은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긍정적 메시지를 강조하는 신학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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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신학은 기본구원-건설구원 교리를 통해 성경적 구원관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는 점에서 한국 교회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박영선 목사의 건설구원 신학 특징
구원의 이중 구조: ‘신분의 구원’(이미 받은 구원, 하나님의 자녀됨 등)과 ‘수준의 구원’(구원의 확신, 성화 등)을 구분하여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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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 예정과 완성: 구원의 완성은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점을 강조하며, 신앙의 두려움보다는 신뢰와 긍정의 태도를 중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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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구원관: 기본구원-건설구원 교리는 성경의 구원 논쟁(장로교·감리교 등)을 해결하는 데 기여하며, 일반 성도들도 쉽게 수긍할 수 있는 개념으로 제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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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 및 영향
한국 개혁주의 구원관의 발전: 박영선 목사의 구원론은 한국 교회에서 개혁주의 구원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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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깊이와 성숙: 최근에는 신앙의 내적 깊이와 성숙, 고난을 통한 성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설교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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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선 목사의 건설구원 신학은 구원의 확신과 성화의 과정을 균형 있게 제시하며, 신앙의 두려움을 줄이고 신뢰를 강조하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담당 4- 01.12 14:34  
2021년에 이 홈에서 박영선 목사님에 대한 문답이 있었습니다. 아래 내용은 그 답변입니다.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1. 이 노선 주요 교리들과 교계의 발표

백 목사님의 기본 구원과 건설 구원을 한국 교계가 처음에는 이단이라고 일제히 정죄 했고
이 후에 수도권을 중심으로 정말 성경으로 노력하는 분들을 중심으로 굉장한 도전이 되었고 그리고 여기 저기에서 간헐적으로 이 노선 교훈을 여러 형태로 발표한 분들이 있었습니다.

이 노선을 빼 놓고는 목회자나 신학자에게는 의견 발표를 할 때 논문이란 형식이 아주 절대적이라 할 수 있는데, 신학의 논문이란 그 주제의 역사와 관련인들을 소개하지 않고 진행되는 법는 법이 없는데 유독 기본 구원과 건설 구원을 내용으로 하는 구원론과 영과 그 중생론을 두고 발표할 때는 아무 설명도 없이 그 주제만 몰입하거나 아니면 백 목사님만 빼놓고 먼 학설만 소개하는데 이 교훈을 아는 사람이 볼 때는 표절이나 논문 배끼기 문제가 제기될 상황입니다.

위에서 소개한 박 목사님의 경우는 따로 평하지 않겠습니다. 전부가 그렇다는 뜻입니다. 1979년 이후에는 백 목사님의 이름을 한국 교계에서 책을 적는 사람치고 모를 수 없었고 그 이 전에도 이 교리 면에서는 교계에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이름은 다 소개를 해도 백영희 이름은 빼 버립니다. 심지어 여기서만 배운 사람이 여러 사람을 넣고 희석한 다음 백영희 한 자 넣는 식입니다. 모르겠습니다. 왜 그렇게 저자 표시를 하지 않는지. 이 노선이 옳은데 백영희 이름이 붙으면 엉뚱하게 논란이 빗나가기 때문에 그러한 것인지 자기가 최초라는 이름을 남기려고 그렇게 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 몰라서 그랬는지.


2. 박 목사님의 경우

구원을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눈 것은 5백 년 된 종교 개혁 신앙가들의 일반론입니다. 그런데 그 틀 안에 담기고 설명 되어지는 부분의 특이한 부분들은 이 노선 것입니다. 배꼈는지 스스로 깨달아 창작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설명하면 밥과 죽을 섞은 것처럼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닌 형편이 됩니다.

설명이 쉬운 것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가 발표된 1장짜리 논문보다 오늘 후학의 설명이 쉽습니다. 그런데 파악을 바로 하고 쉽게 이해를 시킨 강의라면 강의의 가치는 있다고 할 수 있으나 어떤 강의는 내용의 핵심을 잡지 못하고 듣는 이들의 감동을 쫓거나 일부만 전할 수 있으니 세상 강의란 이랬거나 저랬거나 강의만으로도 인기만 있으면 그만이지만 신앙 세계의 진리 연구란, 본질이 문제입니다.


3. 답변 보충

박 목사님에 대한 입장을 좀 덧붙인다면, 물리학계를 잘 모르지만 대충 알기로 뉴튼에서 아인슈타인으로 오늘에 이른다고 들었는데 뉴튼에서 아인슈타인으로 이어지는 과정에 아인슈타인의 학설을 잘 설명하는 분이 아인슈타인의 이론이나 그의 상대성 이론을 언급하지 않고 그 이론의 일부를 잘 설명했다면, 그리고 그 설명이 어느 학도에게 알기 쉽게 와 닿았다고 한다면 그 학생의 학문의 계통이

- 뉴튼 - 그 학자 - 아인슈타인 .... 이렇게 나간다고 보기 어렵고

- 뉴튼 - 아인슈타인 - 그 학자 .... 이렇게 나간다고 보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그 학생에게 이해가 되도록 한 계통은 두 번째 계통이겠지만 물리학의 발전 계통으로 본다면 - 뉴튼 - 아인슈타인으로 이어진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박 목사님의 글은 백 목사님의 교리의 일부를 인용한 다음 자기대로 따로 설명을 했습니다. 박 목사님이 원하는 분야를 원하는 내용으로 원하는 대로 아주 설명을 잘 하셨을 것 같은데, 설명을 잘하고 은혜를 끼치고 많은 분들이 그 설명을 따르게 되었다는 것과 그분이 이 교리를 어떤 차원에서 얼마나 바로 잘 파악했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박 목사님은 일반 교계 입장에서 보면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처럼 보이나 이 교리 체계에서 보면 이 노선의 일부 아이디어를 가지고 기존 교리에 더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알고 가르치는 수많은 분 중에 책으로 가장 많이 출간해서 설명한 분이며 자기의 설명이 대중들에게 가장 많이 전해지고 있다는 정도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 교리를 멋모르고 반대하고 비판하는 분에 비해서야 너무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지만 이 교리의 내부는 거의 보지 못하고 이 교리의 제일 외부 무늬만 인용한 것은 아쉽습니다.

내심을 말씀 드린다면, 아예 이 노선을 모르는 분들을 대할 때는 이 노선의 이름이라도 알면 감사하고 환영하지만, 이 노선을 알 만한 분이 세월이 지나가는데도 이 노선의 외곽에서 일부만 인용하고 있다면 이 홈은 이 노선 출신자들에게는 배신이나 탈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그렇게 알고 있으며 이 홈은 그런 수준의 이 노선 외부인에 대하여서는 '모르는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한국 교계에 유명한 분이 많은 출간으로 이 노선의 외곽을 둘러 준 효과가 있어 이 노선 비판이 누그러지고 이 노선에 대한 외부 모습이 좋아진 점은 고맙게 생각합니다.
담당 01.12 18:38  
공회 교리와 겹치는 부분은 앞에서 설명했으니 생략하고, 질문 중 '남포교회의 은퇴'와 '이후 처신'에 대한 입장입니다.



박 목사님은 소속 교단의 목회자이며 교단의 법에 따라 퇴직했다 합니다. 그 법은 교단의 법이기 전에 자신의 법입니다. 그렇다면 남의 눈치를 볼 것 없이 자신이 아끼고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70세 퇴직을 하고 나니 퇴직에 대한 문제점을 발견한 듯합니다. 후임을 모셨으니 후임이 바른 길을 걷지 않는다고 봤다 합니다. 그렇다 해도 교단법은 간여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단체에 소속을 할 때는 그 단체의 법을 알고 끝까지 순종할지 고민을 했어야 합니다. 70세까지는 교단에 속하여 혜택을 받고, 70세 이후 교단법의 문제를 발견했다면 너무 모르고 살았다는 것인데 교회를 인도하는 목회자로서는 치명적 실수를 한 것입니다. 일단 교단법이 이렇게 잘못된 것을 이제 알았다고 발표한다면 회개는 되는 것이고, 교회는 회개한 사람의 이후 걸음을 보장합니다. 회개를 먼저 하고 갈 길을 간다면,


있던 교회에 남겠다는 것이 아니고 떠난다면 아무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퇴직 후 새로운 개척을 금지했다면 또 다른 불법이 되지만 그런 조항은 없습니다. 있었다면 그 조항을 들고 비판이 나왔을 것입니다. 퇴직하는 조건으로 개척비를 요구했다면 그 것은 목회자의 자유이며 퇴직 목회자의 자유도 포함 됩니다. 공회에도 불신임을 당하면 목회하던 교회가 원래 자기 소유였다거나 시무투표는 참고만 한다며 소송까지 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강단을 고수하며 돈을 요구하는 경우도 곳곳에 들립니다. 공회는 이런 경우를 막기 위해 '불신임 즉시 사직' 처리를 합니다. 이 약속을 한 목회자가 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은 자기 부정입니다. 자기 부정이라는 말은 목사도 아니며 공회원도 아니며 기독교 교인도 아니라는 뜻이 됩니다. 그런 사람은 교회가 경찰이나 법원을 통해 강제로 끌어 내도 되지만, 공회의 지적 수준이 너무 낮아서 소송 반대 교리 때문에 그렇게 하면 안 되는 줄 알고 있고 그래서 강제로 끌어 내도 되지만 교인들에게 미칠 오해 때문에 어떻게 할지는 각 공회와 교회가 알아서 할 일입니다.
 

박영선 목사님은 한국 교회가 잘 아는 대표적 강해 설교자입니다. 또 모두가 알듯이 성공한 목회자입니다. 이 분은 그 강해력, 그 설교 감화력, 그 지도력이라는 신령한 면이 그 분의 소유입니다. 그래서 그 실력과 경력을 가지고 교회에 좋은 말로 부탁을 했다고 보입니다. 교회로서 손해 볼 듯하면 그냥 거절하면 됩니다. 그런데 박 목사님의 개척 때문에 교회가 그 청구 금액 이상으로 손해를 볼 상황이면 그 돈을 지출하는 것이 수지 계산에 맞다고 보입니다. 교계는 수지 계산을 따라 설교하고 교단을 만들고 탈퇴와 소속을 하고 개척과 퇴직과 퇴임 후 행동하는 것은 아주 오래 되었고 법 아닌 법이 되어 있습니다. 화 낼 일도 아니고 언론에서 비판할 일도 아니라고 봅니다. 박 목사님이 남포교회에 끼친 영향이 1명이면 1명이 따라 나갈 것이고, 남포교회에 끼친 영향이 90%라면 90% 교인이 따라 나가서 개척을 할 터인데 그 것을 비판한다는 것은 교회 자유와 신앙 자유의 근본조차 모르는 행동으로 보입니다.


박 목사님께는 70세 퇴직제가 있는 교단에 소속을 했던 것이 실수라고 보입니다.
남포교회로서는 퇴임한 목회자의 발언은 그 분의 신앙 자유이고 개척을 한다면 그 것은 교회 자유이며, 그 것이 잘못 되었다면 남포교회가 속한 교단에 헌법을 개정하면 간단한 일입니다.
선교사 장정석 목사 01.12 20:19  
1, 그 분이 요구한 금액이 40억, 80억, 100억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교회 재산 가치가 얼마 되니 자신이 기여한 부분으로 보면 무리한 요구가 아니라고 한다고 합니다. 삯(월급)을 받고 일한 자들의 논리입니다.
2, 그 분의 다른 말거리도 있는데, 위의 글 내용만 가지고 말하려고 합니다.
3, 서울 경기 지역 밖에서 교회를 하시면 개척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것은 기존 교회를 강제로 분립하는 것입니다. 아들이니까 준다는 식의 말을 하시는 것을 보면 그 분의 인격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인 01.12 21:59  
담당님 말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보는 시각을 바꾸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목회자 01.13 04:13  
공회의 서부교회 건과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아무리 초대형교회라 해도 개척이든 분립이든 분쟁으로 이탈이든 교인들이 나뉘면 남은 교회는 대개 파탄이 납니다. 나가는 것이야 나간다 해도 건재하던 본교회를 헤치는 것은 신앙도의적으로 잘못된 것이 아닐까요. 지난날들은 어떤 식으로 분열이 되어도 다시 채워지고 재건이 되지만 지금은 전도가 어려워서 다시 채워지기도 어렵습니다. 공회 교회에 이런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지도하실런지요?
교인 01.13 06:19  
교회가 나뉘어서 나누어준 교회와 나뉜 교회 둘 다 잘된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서부교회와는 비교하는 것이 안맞는것 같승니다.
담당 01.13 07:42  
* 교회 분열
교회는 생명체이니 가정으로 비교하면 쉽습니다. 아이가 자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다시 낳아 기르는 것이 정상입니다. 한 교인이 시작하고 여러 교인이 모이며 교회로 자라 가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도중에 부부가 이혼을 해버리면 많은 문제가 생깁니다. 부부가 잘 살면 그 가족은 늘 밥상에 함께 앉을까? 아이가 자라면 가정을 새로 만들어 나갑니다. 한 마을을 이루고 살아도 되고 또 이웃이나 먼 곳으로 보내며 주고 받아도 좋습니다. 이혼은 파탄이지만 성장한 자녀가 결혼을 하고 또 하나의 가족이 출발한다면 이는 복이 됩니다.

한 사람이 시작을 하고 교회가 자라 가면서 다시 개척을 내보내는 것은 좋은 현상입니다. 그런데 중간에 목회자를 내보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교인이 나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는 교회가 둘로 나뉘는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선교 차원에서 또는 새로운 사명 차원에서 그렇게 된다면 그림이지만 부족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보니 분쟁 후 분열로 그리 되기도 하고 여력이 되지 않아서 좋게 나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을 전혀 다른 눈으로 보면 바울과 바나바를 나누어 놓고 주님은 더 크게 다른 일을 하십니다.


* 남포교회의 경우
퇴직 목사님이 개척을 하겠다는 것은 이 나라 헌법에서는 종교 자유이며 개인의 영업 자유입니다. 교계 상식으로 보면 교회법에서 금하지 않고 있습니다. 퇴직한 교회에게 개척금을 1조를 원하든 10억을 원하든 청구하는 것도 자유입니다. 그런데 줄지 말지는 남포교회가 결정합니다. 달라는 분이 죄를 지었으면 주님이 손을 댈 것이고, 드려야 할 돈을 쥐고 있으면 그 돈이 그 교회에 결국은 화가 될 것입니다. 사정을 모르는 우리는 이웃 가정의 가정사니 원칙과 현황을 지켜 보는 정도가 전부입니다.


* 서부교회의 경우
1992년 11월에 80%의 2층과 20%의 4층이 대치를 시작했습니다. 몇 달이면 해결이 되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미련하면 깨져서 한 쪽이 죽든 둘이 함께 죽든 결말을 보고야 알아 차립니다. 몇 달의 대치 과정에 다시 해결할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이 곳은 이 정도에서 사람이 할 일은 다 해 봤으니 협의하고 나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세계 10대 교회였으니 원래 예배당을 갖는 쪽이 탁월하게 우수해 보였습니다. 세상이면 그렇고 또 교회를 세상식으로 운영한다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서부교회의 형성 과정과 교회가 교회답게 되려면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단계에서는 상대방에게 창세기 13장의 아브라함처럼 가나안과 소돔 둘 중에 하나를 택하도록 먼저 권하는 쪽이 오늘의 아브라함이 됩니다. 둘은 2026년 지금까지 한 지붕 2개 교회로 버티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곳은 옥상에서 떨어 진 도자기처럼 되어 파편만 남았습니다. 35년째 파탄이 났지만 여전히 시내의 중간 교회 규모는 됩니다. 깨진 조각만 모아도 여전히 괜찮다는 정도니 이 정도라면 그 소속 공회에서 흔히 하는 말로 '악독'한 것입니다. 이미 그 결과 때문에 단 하나도 남기지 않고 소돔처럼 되어 있습니다. 남은 이들은 모압과 암몬으로 생존하지만 그 것은 생존 자체가 더 큰 불행입니다.

모압에서도 훗날 룻기의 룻이 나와서 예수님의 족보에 이름을 올립니다. 암몬도 가끔 칭찬할 만한 일이 있습니다. 그 것은 소돔으로 간 행위에도 불구하고 소망은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고, 어떤 흑암에도 구원의 길은 있다는 주님의 다른 역사를 가르칩니다.

서부교회의 경우, 서로 상대방이 돈을 원하면 가능한 다 털어서 줬을 것입니다. 그런데 두 미련은 동대신1가 381번지라는 좌표와 본당이라는 건축물에 구원이 있다는 천주교식 믿음을 가진 분들이니 2층과 4층으로 나뉘어 오늘까지 버티며 그 외 타협이 없습니다. 제가 구청장이면 그 곳에 '사찰'이나 '성당'이라고 표시판을 붙이면 좋을 듯합니다. 서부교회는 세계 최대 교회를 산산조각 낸다 해도 그 마지막 파편 하나가 목회자로서 혼자 가질 수 있는 교회보다 낫다면 현재를 사수하는 분이고, 4층의 경우는 처음부터 규모에는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해결 자체가 없는 곳입니다. 이에 비해 남포교회는 처음부터 교회 헌법을 가진 교단에 소속을 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법대로 하겠다고 전임과 후임과 전 교인이 서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죄 되지 않으면 하겠다는 곳이고 죄 되지 않으면 옳다는 교회니 지켜 보기에도 안쓰럽습니다. 그런데 교계의 교회가 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공회는 법을 만들지 않았는데 법을 만들지 않으니 교계보다 더 끝장을 내는 미련과 강퍅의 충돌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법은 있어도 탈이고 없어도 탈입니다. 그런데 법이 없으면 은혜가 교회를 주도할 수 있습니다. 물론 미련과 무지막지를 이기는 길은 없습니다. 교회 법이 있으면 법이 은혜를 구조적으로 막아서 필패로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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