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한국 교회사
ss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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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8 21:00
제3장 한국 교회사
1. 초기선교시대(1885~1938:신사참배환난시작)
1800년대 초기부터 꾸준히 시도되어 온 한국선교는 1885년 선교사 언더우더의 입국으로 본격화되었고, 특히 한국교회는 장로교가 중심이 되어 평양신학교를 통하여 건전한 신앙으로 발전하였다.
2. 신사참배환란시대(1938~1945:해방)
장로교 27회 총회는 일본의 박해를 이기지 못하고 신사참배는 죄가 아니라는 다수결을 하였고,끝까지 싸운 주의 종들은 순교로, 감옥으로 혹은 갖은 환란을 이기고 감옥 밖에서도 끝까지 투쟁을 하여 마침내 8.15해방을 맞아 승리의 종들이 되었지만 한국교회로 볼 때에는 초기 신앙시련기였다.
3. 신앙노선확립시대(1945:해방~1966:총공회발족)
⑴총회와 고신의 장로교 1차 분립
(1951년 5월 : 제 36회 장로교총회)
해방후 한국교회는 신사참배 한 죄를 어떻게 회개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고 자숙할 것을 요구하는 출옥성도들과 자숙을 거부하는 교역자들 사이에 대립이 되어졌다.
결국 이것이 교회의 주도권 다툼이 되어져서 많은 마찰을 겪은 다음,숫적으로 절대 다수가 되는 자숙거부 교역자들이 출옥성도 중심의 경남노회와 고려신학교를 부정하고 고신은 장로교총회에서 분리하였다.
⑵총회와 가장의 장로교 2차 분립
(1945년 5월 : 제 39회 장로회총회)
원애 장로교는 평양신학교를 중심한 보수 신앙을 계대하여 왔는데 신사참배문제로 평양신학교가 1938년 폐교되자, 신신학을 가르치는 김재준교수의 조선신학교가 1940년부터 문을 열었고 해방후에는 총회직영 신학교로 내려 왔다.
그러나 보수 신앙의 총회 내에서 신신학을 가르치던 것을 반대하던 학생들은 진정서가 발단이 되어 신학싸움이 되고, 결국 신신학을 가르치던 김재준 교수측은 한국신학대학 세워 “대한기독교장로회”(기장)로 이름을 지어 분리되었다.
⑶총회와 통합의 장로교 3차 분립
(1959년 9월:제 44회 장로교총회)
2번이나 분리되던 장로교 총회는 당시 세계적인 기독교 단체인 W.C.C(세계기독교의 통일을 주장하는 에큐메니칼운동)에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의로 나뉘어졌다. 결국 용공단체인 W.C.C의 가입을 찬성하던 측이 총회에서 분리되어 통합(칼측)이 되었다.
⑷고신과 총공회의 장로교 4차 분립
(1959년 9월 8일)
“한국총공회 약사”편 참고
⑸총회와 고신의 합동및 환원
(1960년:합동,1963년:환원)
원래 총회와 고신은 신사참배문제로 갈라졌지만 총회측도 신사참배는 죄라는 것을 인정했었기 때문에 감정문제 혹은 주도권문제 외에는 특별히 갈라질 이유가 없었다.
또한 고신은 총회에서 나온 후 신신학문제나 용공시비 문제에 대하여는 총회측과 동일한 입장이었음으로 총회측과 재결합하게 되었다.
(총회측 + 고신측 = 합동측)
그러나 이러한 재결합도 역시 깊은 속 신앙노선은 달리한 채 외형만의 합동이 되었고, 결국 총회측 출신의 다수에 고신측이 계속 이용당하다 고신은 “합동파”(총회=총신=합동)에서 환원하여 “환원파”(고려=고신=환원)가 되었다.
참 고
1.총공회
①직영신학교
목회자양성원
②다른 명칭
“백 파” :백영희목사 일파라고 욕하는 말
“독립신교”:총공회의 “개교회주의”교회 행정을 독립교회로 오해
2.고려파
①직영신학교
고려신학교(대)
②다른 명칭
“고신파”:고려신학교파
“환원파”:합동파에서 환원
3.합동파
①직영신학교(대)
②다른 명칭
“총신파”:총회신학교파
“총회파”:장로교총회의 본류라는 말
4.통합파
①직영신학교
장로신학교(대)
②다른 명칭
“칼측파”: “통합운동=에큐매니칼”의 “칼”에서 따온 말
5. 기장파
①직영신학교
한국신학교(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