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무투표에 대한 단상
| 설명 |
|---|
무명인
0
6
2007.01.04 00:00
시무투표에 대한 단상
시무투표의 시행 취지, 목적과 의미는
한 마디로 백 목사님의 독자적인 ‘행정’의 일면이며
교리 신조의 하위 실천개념인 행정의 하나로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도 봅니다.
총공회가 정상적으로 존재했을 때
다시 말하면, 백 목사님이 생존해 계실 때
또 다시 말하면, 교리 신조가 바로 서고 앞서 나갈 때
백 목사님이 공회 교역자 인사 행정의 필요에 의해서
운영되었던 제도일 뿐 입니다.
이제는
교리 신조도 ‘체계’가 서로 완전히 다르고
운영주체도 다르고 목적도 용도도 형태도 의미도
이미 변질되어 적용되는 이 시점에서
필연적으로 파생되는 여러 가지 문제점은
과유불급의 폐단 내지 해악으로 생각됩니다.
굳이 말하자면
소수 과거의 교리와 신조를 가진 분들이
그것도 목사님 순교 직전의 제한적인 목적 정도로
이 행정 제도를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목사님의 본 시무투표 제도 도입 운영의 목적은
각 지교회에 파송된 교역자에 대한 신임을
교인들로 하여금 표시하게 하여
교회와 교역자의 형편을 파악하는 하나의 자료와
이동의 ‘참고’사항으로 삼으셨습니다.
순교하시기 전 몇 해를 제외하고
시무(이동)여부 및 이동지에 대한 결정, 기타 관련된 모든 것을
전적 목사님의 독자적인 판단으로 결정하신 것으로 압니다.
그 명령에는
예외들도 있었고
의문들도 있었고
불복하는 소리들도 들렸습니다.
그러나
사랑과 은혜가 있었고 능력이 있었고
바른 지도의 결과가 있었으므로 무조건 따랐고
그 순종과 불순종의 노선과 결과를 지금까지 목도하고 있습니다.
교리 신조 행정이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거 지교회에서 시행되었던 시무투표의 과정은
예나 지금이나 일반세상의 투표보다도 허술하고
상식이하의 수준으로 시행되는 것이 평균적인 소식들이었고
또한 투표를 주관하는 분들의 인격과 취향에 따라
대부분의 투표 행사 진행, 결과 처리에 있어
많은 부끄러운 장면들을 보았습니다.
각 교회에서 교인들간에도 특히 구역식구들간에
분파적인 행동이 어렵지 않게 목격되기도 하고
이것이 투표 후에 불미스런 행동들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의 이 제도 운영의 근본 의도가 있었고
또한 이런 저런 외부로 나타나는 문제점의 실체를
이미 목사님은 간파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었으므로
그런대로 큰 부작용 없이 믿고 순종하여 시행되어 나왔습니다.
제도 자체가 좋고 나빠서가 아니고
모든 것에 우선하고 모든 것을 다 뒤엎을만한
목사님의 탁월한 능력의 교훈과 지도가 있었으므로
그 지도가 그대로 곧 공회 행정이었고
사실 좋은 줄도 나쁜 줄도 모르고
하나님의 명령으로 알고 순종하기에 바빴습니다.
이런저런 잡음과 내재된 마찰들이 항상 있었으나
목사님의 지도와 조정 아래서
결과적으로 전체 해당 교회와 교역자 모두에게
구원 이루는데 선용되는 제도로서 사용되어 왔습니다.
과거 총공회에서는 시무투표는
궁극적으로 교역자의 시무 정지나 신임 여부를 묻는 제도가 아닙니다.
교인들의 신임보다 하나님의 뜻이 우선이고
하나님의 뜻을 살피는데 있어 목사님이 까마득히 앞섰기 때문에
우리는 그 지도에 순종하는 것 하나로 실상 모든 난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시무투표의 결과는
하나님의 종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친히 길러서 파송하신 교역자의 임지 교회에 대한 충성 정도와
해당 어린 교회들의 형편과 사정을 파악하는
여러 자료 중의 하나일 뿐이었습니다.
신임이 되도 이동시킬 사람이 있었고
불신임이 되고 유임시킬 경우가 있었으므로
교회가 바른 투표를 하였다고 판단하시면 들어주시고
교회가 어려서 잘못된 판단을 하였을 때는 안 들어 주시기도 하고
때론 교회를 바로 키우기 위해 바른 교역자를 소원대로 옮겨서
어려움을 당하게 하여 회개케도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바른 지도자도 없고
모두가 분봉왕이 되어 있는 시대입니다.
누가 누구를 가라 말라 할 여지가 있습니까?
누가 이 결과를 바로 분석하여 바른 지도를 하겠습니까?
지금은 이 제도를 운영할만한 뚜렷한 주체도 없고
목적 용도도 다르지 않습니까?
시무투표의 득과 실을 따져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지금은 실이 더 많은 상황이 아닌가 걱정됩니다.
아니라면 최소 실(구원의 유익)이 되는 면의 점검이 있어야 할 줄 압니다.
투표를 할 상황이 아니면 그냥 하지 않는 것이 진실한 행동입니다.
이제는 본 투표의 제한된 의미와 목적
차후 결과를 사전에 분명히 밝히고 전체 동의하에 임해야 합니다.
교역자 시무 및 이동의 결정을 전제로 하는 지
단순 교인들의 신임의사 파악 정도인지
최종 이동지 결정은 누가 하는지
공연히 감당 못할 대상들에게
총공회의 성골 진골 감별 잣대로 사용하여
시비 거리가 되지는 않는 지
이제는 잘못하면
과거 공회 어떤 교회들에서 볼 수 있었듯이
교역자와 잘못된 교인들이 주동 연합하여
통째로 세속화로 갈 수 있는 법적인 근거를 보장해 줄 수도 있고
사분오열의 공회 분열로 인해
이동이 전제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시무투표의 현실적인 한계를 이용하여
교회에 협박과 공갈에 다름없는 횡포를 부리게 할 수도 있고
원래 취지 범위 용도도 모른 채
무슨 민주적인 대단한 제도인양 잘못 인식하여
타교단과 차별적인 제도의 하나로
교리도 다르고 신조도 다른 사람들에게
철없이 소개하고 들레어 자랑하므로
오히려 공연히 공회를 반대하게 하는 자리로 몰고
바른 교훈이 먼저 건너가지 못하게 하는
자칫 어리석은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시무투표는 성경에 명시된 절대적인 제도도 아니고
반드시 계속 유지되어야 하고
정통성의 명분으로 길이 남길 제도도 아닙니다.
교역자와 각 교회의 판단에 따라
얼마든지 실시여부를 시기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뜻을 찾는 제도 중 하나로 선용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교역자가 못나도
교인보다는 전체를 보는 면에 앞섰다고 보아야 하며
그래도 교역자의 판단이 교인의 판단보다는 옳을 것입니다.
본인이 잘 나서가 아니고 하나님이 세우신 종이라면
하나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므로 지혜와 권위를 주신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이 잘나서 지도자 된 것이 아니고
회중이 모세와 아론의 시무(신임) 여부를 결정할 사항도 아닙니다.
인간들이 뽑아 세운 왕정보다 신정 사사시대가 낫고
선출직보다는 임명직이 성경적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여 필요한 제도(행정)라면
사람이든 물건이든 무엇이든지 선히 여겨 채택하였고
필요 없으면 아무 것에도 응하지 않았습니다.
우선 지도자가 있고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전하는데 있어서
진리와 영감의 교훈과 인도가 있어야
모든 제도가 구원을 위하여 필요한대로 합력하여 선용되지
그렇지 못한 상황아래서는
일부 교회에서 보는 바와 같이 폐단의 빌미가 되고
오용 악용될 소지가 많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지상교회에서는
아무리 제도가 좋다 해도 아무리 보완한다 해도
완전하게 하기는 어려우므로
그래도 이 제도의 지금까지의 장점을 살려서
교역자와 교회가 서로 복되게 선용할 수 있다면
계속적인 시행에 찬성합니다.
이런저런 오해와 구실로 장점도 많은 시무투표제도의 완전 폐지에
명분을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가 있어 조심스럽기 때문입니다.
교리 신조 행정은 하나입니다.
그 중 제도는 행정입니다.
어린 교인들은 교리보다는 바른 행정을 통해 배워가는 면도 있고
연약한 인간으로서는 법과 제도적인 울타리도 필요할 줄 아오나
행정은 근본 바른 교리와 신조에 대한
해당된 현실의 실행이고 순종입니다.
아무리 문제가 있고 시비가 많아도
옳은 것이라면 시행하고 하나님에게 맡겨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러나 우선 이 시무투표의 제도가
현실적으로 성경에 명시된 교리 신조차원의
절대명령의 적용범위에 해당하는 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단순히 교황제의 폐단에 반작용으로 생겼다면
민주주의의 표본으로 여기는
장로교의 대의제도도 반대하는 총공회 아닙니까?
신앙의 세계에서는
민주주의 행정이라는 허울 뒤에 숨어 있는 해악이
독재보다 엄청나게 크다는 것을 알지 않습니까?
바른 지도자를 만났다면
자기의 전부를 맡기고
하나님의 종으로 권위를 인정하고 따르고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의 기본자세입니다.
성경에 회중들이 회의해서 바로 결정한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심의기관 정도이고
대개는 지도자를 통한 하나님의 명령을
유효하게 전달하는 중간적인 단계 역할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므로
지도자의 신앙사상과 신앙노선이
그래서 중요하고
아무리 강조해도 정말 지나침이 없습니다.
사도바울에게 은혜 받은 교인들이
눈이라도 빼서 다 받치고자 하는 것이
교훈을 받드는 행정의 성질입니다.
백 목사님께서
시무투표에 대하여 높은 가중치를 두고
설교하신 것은 많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데 있어서
크게 비중을 두신다는 의미가 아니고
단지 전체 지도의 참고 확인 정도였다고 생각합니다.
잘 아시는 대로
전원일치 가결, 시무투표, 주일학교 운영제도
기타 구역장 중심의 제도 등등
공회의 모든 제도의 도입과 운영, 그 성공이
법과 제도의 좋고 나쁨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지도자 한 사람에게 전적으로 매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바른 지도자라면 사선을 넘어 따라갔고
아니라면 혼자라도 독립으로 갔던 것이
바른 노선으로 이어 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시무투표에 대한 하나의 단견으로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전체적인 면에서 보아야 할 것과 함께
해당된 대상들이 결정하고 지켜 나갈 사항의 관점에서
원래의 취지와 함께 전제되고 선행되어야 할 것들을
한 번 살펴보고자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