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시무투표에 대한 단상-보충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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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시무투표에 대한 단상-보충설명

설명
무명인 0 2



교리 신조 행정은 하나, 그러나 항상 선행되어야 할 것은 교리와 신조,
그리고 우리의 전체 기도 제목 하나 더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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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소견에 대한 여러분들의 의견 잘 읽어 보았습니다.
모두 삼가 조심해서 살펴보아야 할 현실적인 말씀들이라 생각합니다.

모두 잘 아시는 대로, 먼저 지도자가 있고 바른 교훈(교리 신조)이 있고 그 다음에 제도와 행정이 있어야 한다는 가장 상식적인 전제 조건을 말씀드렸습니다. 이 홈에 시무투표에 관련된 글(주로 문제점들)이 요즘 들어 몇 개씩 올라오는 것을 보고 평소 가지고 있던 관련된 생각들을 적어 보았습니다.

조금 대상을 구체적으로 밝힐 수밖에 없겠습니다.

소위 대구공회나 서울공회에 속한 교회들은 죄송합니다만 현재로서는 이 면으로 볼 때 교역자 이동의 가능성 여부를 떠나 총공회 시무투표라는 거론 차체가 의미가 없다 할 만큼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가 쓴 글 마지막 부분]
“전체적인 면에서 보아야 할 것과 함께 ‘해당된 대상들’이 결정하고 지켜 나갈 사항의 관점에서 원래의 취지와 함께 전제되고 선행되어야 할 것들을 한 번 살펴보고자 하였습니다.”

문제는 실상 ‘우선’ 부산 1-2에 속한 교회들에 대한 안타까운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이미 운영자 목사님의 글(하기-발췌)에서도 지적이 있었습니다만 지난 10여 년간 시행되어 온 시무투표의 의미가 과거 총공회와 같다고 보십니까?

[운영자 목사님의 글 가운데 - 부분 인용]
“현재 부산공회(1)과 (2)는 지난 10여 년간 시무투표를 4-50여개 교회단위로 실시해온 중심에 있었습니다. 그분들의 경우를 두고 말하자면 시무투표는 다른 공회에 소속한 교회나 교역자를 탈락시키거나 자기 공회로 데려오는 스카웃의 방법으로 사용되었지 정상적으로 사용된 경우를 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외형적인 모습은 이스라엘 종교말년의 모습과 같이 현재 천주교와 같이 교리도 있고 신조도 있고 제도도 있고 의식도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총공회에 대한 내면적이고 독립적인 자체 연구와 확정이 없었으므로 확실한 자기 노선을 가지지 못한 분들은 갈팡질팡하는 것이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우리 거의 대부분이 이 면에 준비가 없어서 목사님 순교 후 혼란의 시대를 지내왔고 지금도 주위에 많은 분들이 그 가운데 살고 있는 줄 압니다.

문제도 표면적으로 들어난 대로는 덮지 말고 하나하나 고쳐 나가야 하겠지만, 솥에 물이 끓어 넘치려 한다면 아궁이에 불부터 꺼내야 되지 끓는 물만 퍼내 식혔다 부었다하는 식으로는 근본 회개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지적하신대로 시무투표는 당연히 근본 선한 동기와 목적에서 시작된 제도이므로 현재도 마땅히 선한 동기와 목적이라야 합니다. 앞의 지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소수를 제외하고 지금 행해지는 시무투표가 진정 선한 동기 목적이라고 보시는지요?

그 제도(행정)의 선한 동기와 목적이라 한다면, 너무 광범위하게 말하기 보다는, 공회교회 및 개인의 구원과 직접 관련된 실질적인 면에 있어서, 시무투표는 진리전원일치가결등과 같이 과거 총공회 제도중 하나이므로, 그 선한 동기와 목적에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바른 교훈 즉 총공회 교리 신조를 보수하고 전파하는 교역자와 교회의 그 ‘선한 행정 동기와 목적’이 있어야 할 것인데 그렇다고 보십니까?

요는, 교리 신조가 벌써 내외면적으로 가지각색인데 행정 제도가 무슨 의미를 가지느냐를 말씀드리고자 한 것입니다. 지키려면 제대로 알고 온전히 지키고 바꾸려면 다 바꾸어 각자에 맞는 제도를 가져야 합당한 태도일 것입니다. 교리 신조가 다른데 행정 제도 개선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어떤 교회처럼 아예 팀 칼라와 패턴을 다 바꾸어 기성교단에 맞추어 완전 탈색 동화되면 오히려 세상적인 성공이라도 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남의 나라에 가서 남의 걸음걸이 배우려다 돌아올 때는 자기 걸음걸이마저 잊어버려 기어왔다는 말도 있는 것처럼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노선적으로 어정쩡한 위치에 있는 분들에게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하나의 예로 들어 본 것입니다.

어느 분이 먼저 말씀하신대로 서부교회의 시무투표가 교역자 한 개인에 대한 신임투표이지만 그것이 곧 자기 신앙지도자와 교인 자신들의 ‘신앙노선’을 정하는 투표이었므로 ‘결과적으로’ 현재 목사님은 현재 서부교회 2층에 남아 있는 교인들의 노선에 가장 잘 맞는 목사님이라고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꼭 교역자 된 대로 교인되고 교인 된 대로 결국 그런 교역자 된다고 많이 배웠습니다. 복과 화의 갈림길입니다. 결국 법과 제도는 호불호 가부간에 해당 노선에 이용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입니다.

교리 신조가 바로 된 노선에서는 제한된 용도로 제한된 범위에서 선용될 수 있는 귀한 제도라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강단을 밤무대 가수에게 내어 준 교회, 열린 교회, 민주적인 교회, 드럼 치는 교회, 외부의 법과 제도만 남아 교권의 횡포를 부리는 교회, 그런 교회와 이런 저런 동류 지방 혈연 사업정실로 교제하는 교회와 공회들 - 그래도 그 교회들의 시무투표를 과거 총공회 본연의 제도라고 볼 수 있을 까요? 그것은 기독교 인화주의 내지 기독교 법치주의는 되어도 더 이상 신본주의 총공회는 아닐 것입니다.

과거 총공회 행정의 껍데기 모양은 천만가지였으나 교리 신조 행정은 필연 언제나 하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도 자타간에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나 항상 자꾸 성장 발전 향상되어 가는 ‘구원(성화)’ 하나였습니다. 행정의 최종 결정은 반드시 교훈권자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교훈이 틀렸다면 더 이상 자기의 지도자는 아닙니다. 자기 구원의 방향과 노선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에 같이 앉아 있는 것은 동조자요 배나 지옥자식을 만든 일에 같은 반열에서 심판을 받아야 하는 공범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지 바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나중에 가 봐야 아는 것이 아니고, 지금 바로 하지 않으면 그 결과가 다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바로 해야 할 것 중에 선행되어야 할 것들이 바로 되어 지지 않음으로 인해 나타나는 필연적인 문제들의 원인과 한계를 살펴보고자 함이었습니다.

교훈이 먼저 바로 가면 가정이고 구역이고 교회고 공회고 행정이 좀 어리고 모자라도 결국은 체제가 잡히고 바로 가게 됩니다만 교리 신조가 비뚤어지고 서로 다른 것이 섞이기 시작했으면 결과는 시간문제이고 호리지차가 천리지차로 될 것입니다. 에베소교회와 한가지입니다.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려서는 안 될 것들이 있는 줄로 압니다.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을 버린 이상 결코 온전한 십일조가 아닌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제 경험으로는 한 교회 안에서도 바로 된 지도자가 있고 그 다음에 제도와 행정이지 시무투표로 인해서 교회와 교역자가 회개운동으로 깨끗해지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법과 제도가 좋아도 단연 진실한 하나님의 종과 비교 못합니다.

‘교역자의 판단’의 의미도, 과거 총공회와 같이 하나님의 간섭과 인도가 있는 ‘정상적인’ 교회에서 교역자가 전체를 인도하고 지도하는 면의 판단과 범위를 말하는 것이지 삯군이나 거짓 선지자를 기준으로 말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곳은 잘못된 노선이므로 시편 1편의 복 있는 자가 따라가서는 안 될 자리일 것입니다. ‘비정상적’인 교회에서 법과 제도는 악용만 되지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는 이치입니다.

공회를 떠난 어떤 목사님의 말씀대로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과거에 ‘진리 전원일치 가결 행정’을 말했지만 실은 백 목사님의 진리에 대한 깨달음이 제일 앞섰기 때문에 결국 백 목사님의 교훈(진리)을 옳다고 인정하고 따라가는 사람이라면 그 행정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백 목사님이 80-90% 이상의 전체 동의를 받을 수 있는 당시 상황에서 굳이 100% 전체, ‘행정’의 진리 전원일치가결을 주장하여, 당신의 목회 행정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실 필요가 무엇이 있었겠습니까? 결국 쉽게 교역자 행정 편의에 맞추지 말고 더디고 힘들어도 한 단계 더 따져서라도 자꾸 진리에 맞추어 가고 주위를 돌아보아 진리에 낙오되는 사람이 없도록 사랑과 권면으로 한 번 더 살펴보라는 의미로 알고 있습니다.

시무투표의 결과를 보고 교회의 사정을 안다면 벌써 어두운 교역자입니다. 교인들은 몰라도 깨어 일하는 교역자라면 평소 지도하는 가운데 전체의 형편과 내용을 보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도 모르면 결과를 보고라도 좀 알라는 시행취지도 있었을 것입니다.

정상적인 총공회 역사에서 시무투표가 잘 되서 바로 나갔고 시무투표가 잘 못 되서 잘못 나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할 바에는 바로 알고 바로 하자는 것입니다. 미개하고 패역한 가운데서 개유하고 교화시켜 이끌어 나온 바른 지도와 교훈에 있었습니다. 올바른 지도자의 부재가 모든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아울러,

개인 경건의 성화구원이 아닌, 거룩한 ‘공회’적인 교회를 원한다면 우선 우리의 기도가 지도자에 대한 기도라야 하겠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다시 지도자는 없습니다. 재림이 임박한 이 시대에 최종승리를 눈앞에 둔 전투적인 공회라면 마지막 순간의 힘을 배가하기 위해 과거 목사님의 영감의 갑절을 가진 분이라야 하겠습니다. 우리 앞에서 순생 순교의 본을 보여 주셔야 따라가겠습니다. 많은 허상들을 보았고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삼는 삯군들에 속아서 지친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진정 대속의 사랑을 가지고 양떼를 불쌍히 여기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과거만 생각하면 새로운 지도자에 대한 낙망과 절망이 앞서는 것이 사실인 것은 우리가 너무 큰 어른을 이미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죄악이 하늘에 사무친 시대이므로 총공회 복음을 보수 유지 발전 전파할 능력 있는 선도자가 절실히 요망됩니다. 교역자라고 다 같은 교역자가 아닐 것입니다. 지도자로 모시고 따라가야 할 분을 세워주시기를 간구합시다.

일곱 별과 일곱 금 촛대의 비밀을 다 경험하고 있지 않습니까? 성공과 실패가 하나라고 배웠습니다.

다메섹 엘리에셀은 아닙니다. 이스마엘도 안 됩니다. 아브라함의 씨라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워 주시는 종이라야 하고 바른 신앙노선이라야 합니다.

투표 해 봐서 눈에 보이는 25% 이상의 부표만 안 나면 어떤 부덕한 불상사가 벌어져도 판세가 본인에게 정치적으로 조금이라도 유리한 상황이라면 하나님의 뜻이라고 강변하고 있는 이상 제2 제3의 서부교회는 과거에도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입니다. 법과 제도로 사는 사람도 있고 신앙양심으로 사는 사람도 있다고 아브라함의 노선에서 배웠습니다.

법이 있어도 제도가 좋아도 세상 유권해석기관 따라 그 해석이 다를 수 있듯이 상황과 세력의 판도에 따라 얼마든지 다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양심 버리고 나가는 그 순간 모든 제도와 법은 누가 저 성전 문을 닫아주었으면 좋겠다 하시는 상황이 되고 맙니다.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하는 것 외에 아무런 상향적 구원의 성장은 없겠습니다.

근본 시무투표의 존폐를 거론하는 것이나 무용론의 논리를 편 것이 아닙니다.

원래 취지와 의미를 알고 이제는 우선적인 방향과 노선이 선결된 후에, 하려면 원래 취지를 알고 제한된 범위에서 바로 하자는 뜻으로 말씀드린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제일 좋기로는 전체를 위해 우리 위에 하나님의 종을 ‘다시’ 세워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구약 말년처럼 선지자 없이 버려두시면 다수는 전멸입니다. 근본 총공회가 자신이 따라갈 지도자 한 사람(총공회는 ‘백 목사님 신앙노선’)을 선택하므로 인하여 자연스럽게 발족되었던 것처럼 이제 다시 하나로 모인다고 하면 세우신 ‘하나님의 종을 중심으로’ 바른 노선을 가고자 자원하는 개인과 교회들이 하나하나 차차 모여서 되어야 할 것입니다.

과거 거대한 로마와 전 유럽이 복음화 된 것은 세상으로는 부자유한 죄인 신분이었던 지도자 사도 바울과 핍박과 고난 중에 끝까지 함께 한 소수의 진실한 종들과 로마의 어느 셋집에서 배웠던 제자들과 도처에 퍼져 복음에 수종들었던 진실한 교인들의 순생 순교로 인해서 소리 없이 번져 나가 마침내 이루어진 것입니다. 복음의 성공은 이처럼 교회 역사(가깝게는 총공회)를 볼 때 좋은 신분과 자격을 갖춘 인물에 잘 짜여 진 조직과 법 제도에 순풍 같은 환경에 웅장한 건물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우리 총공회를 불쌍히 여기셔서 주와 복음을 위해 순교를 평생소원으로 가지고 주와 주의 백성을 사랑하는 백 목사님 같은 지도자를 우리 위에 세워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머지는 바로 가면 필요한 대로 다 주실 것이고 주시면 다 감사히 받으면 됩니다.

모든 문제가 가뭄에 논에 물이 없어 개인과 개인이 마을과 마을이 서로 사생결단 싸우다가 비 한번 오면 모든 것이 서로 일시에 해결되는 것처럼, 서로 부끄럽고 미안하고 모든 것이 은혜 되는 가운데 복되게 해결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특별히 이 시대의 지도자와 노선에 대한 은혜를 구합시다.

모든 분들이 동감하듯이 목사님 순교 후 한국사회의 모습을 보며 흡사 목자 없는 우리 진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평소의 생각을 이것저것 두서없이 적다보니 글이 극히 절제하려 했으나 표현이 과격하고 이곳저곳 오해의 여지가 많은 것 같아 죄송한 마음입니다만, 주위에 과거에 같이 신앙생활 했던 진실한 분들이 공회분열이후 신앙노선 관념이 약하고 이런저런 행정 제도 의식적인 교회 문제와 마찰로 인해 이제는 바른 교훈까지 버리고 떠나 살므로 갈수록 신앙이 피폐해 가는 것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적어 보았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이 홈을 적극 권하고 있습니다. 재독의 편의를 제공하시는 이 홈의 운영자 목사님을 비롯하여 수고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항상 감사하고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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