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되기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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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곡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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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7 00:00
목사가 되는 과정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소원을 가지거나 가치인식을 충분히 하여 선택한 자리는 누가 내놔라 해도 절대 안 내놓을라고 하고 투쟁을 해서라도 어떻게 해서든지 그 자리를 유지하려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하기 싫은 직책을 가치인식도 충분히 안된 상태에서 누구의 강권에 못이겨 시작한 자리이고 이 자리를 가지기 위해 다른 희생한 것이 더 많이 있을 때는 누가 그만 그 자리를 두라고 햇다면 내가 되고 싶은 그 소원이 강해서 된 것도 아닌 데 하면서 의외로 쉽게 사임하겠다고 말할 것이다.
우리 총공회의 교역직은 외관상 가치, 즉 세상적 가치로 본다면 참으로 목사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생활은 고난의 연속이고 가시밭길이다. 가치인식이 덜 된 상태에서 목사로 나왔을 때는 그래도 세상에서 있을 때의 생각이 나기도 하고 해서 후회도 될 수 있고 차리리 이 기회에 털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갈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누가 그만두라고 하지 않을 때에라도 목사직을 하고는 있지만 그 속 마음에는 기쁘지 못하고 교역을 한다는 것에 대해 참 잘햇다, 최고의 직책을 가졌다하는 속 마음이 있지 못하고 세상 어떤 직책도 부럽지 아니하고 실은 자랑하고 싶고 그만두라고 한다면 투쟁을 해서라도 어떻게 해서든지 목사직을 잘 가지려고 할 것이다.
우리 공회의 교역자의 사모는 남들 가는 백화점 한 번 못가고 재래시장에서 그껏해야 싸구려 반찬거리 하나만 사려해도 호주머니 계산을 하고 가족 끼리 외식한 번 제대로 못하고 교인의 자녀는 유학을 가도 자기 딸은 고등학교만 보내도 충분하고 대학까지 가려면 교인 눈치봐야 하고 좀 사치라고 여긴다. 이러한 생활은 일반 교계 목사들이 호텔을 들락거리며 해외 여행을 즐기며 자녀 유학도 다 보내고 고급승용차를 굴리며 살아가는 것을 비교해보면 총골공회에서 목회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가시밭길이고, 정말 가치 인식이 충분히 돼 있지 아니하면 언제 무슨 기회가 나타날 때에 흔들리기 쉬울것이고 또 교인들이 자기를 좀 섭섭하게만 해도 나는 이렇게 희생하는 데 교인들이 몰라준 다고 해서 야속한 마음을 갖기 쉬을 것이다.
실은 목회를 나간다는 것의 본질은 뭐인가.
목사직에 대한 가치인식의 정도이다. 목사직이 세상 그 어떤 직업보다 최고라는 가치인식이 있다면 세상의 어떤 화려한 직업, 의사 변호사 장관 교수 고위관료 정치인 기업회장 등보다 더 화려한 직업이 목사직이라는 가치 인식이 돼 있을 때는 목회로 나와서는 이런 고생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참 잘햇다. 세상 모든 것을 희생했어도 조금도 후회안되고 오리혀 세상의 화려한 직업이 좀 불쌍하게 보이고 목사직에 대한 실은 좀 자랑하고 싶고 목사가 된 것에 대해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가득찰 것이다. 교수 같은 직책은 만약 학교에서 재임용을 해주지 않으면 십년이라도 소송을 하고 투쟁을 해서라도 복직을 하려고 한다. 가치인식이 덜 된 상태에서 나왔다면 교인들이 좀 싫어라고 한다면 세상에서 포기한 것에 데한 본전 생각도 나고 해서 그를 빌미로 목사직을 사임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할것이다.
나는 목사가 되기 어렵다는 것은 다른 것 없다고 생각하며, 바로 가치인식의 정도라고 본다. 가치인식만 되어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세상 것 다 버리고 목사가 될 수 있으며 육적으로는 남들 하는 대로 못해도 하나님이 최고라고 인정하는 직업을 선택했으니 감사가 항상 끊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 공회의 목회자들은 그 목회 출발 과정을 분류하면 두 가지로 볼수 있다.
하나는 세상에서도 뭐가 잘안되고 변변치 못한 직장을 가져서 비교우위 정도를 재보니 목사가 더 낫다해서 나온 경우이고, 또 하나는 세상에서 좋은 직장도 가지고 아무런 문제도 없는 데 나온 경우인데, 문제는 이 경우에 자기 스스로 가치인식이 충분한 것이 아니라 주위의 강권에 못이겨 나온 경우나 물론 스스로 가치인식이 있더라도 충분하지 못했을 때는 교회가 복잡하고 교회 부흥도 잘 안될 때는 사임하고 싶은 생각이 난다면 이것 본전생각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차리리 후자보다 문제가 적다. 어떻게 해서 된 목사직인데 하고 생각할 것이고 세상에서 우유 배달부를 하다가 동서기를 하다가 수위를 하다가 택시기사를 하다가 아무런 직장도 없는 상태에서 목사가 됐으니 교회 부흥이 안돼도 교인들이 배척을 해도 목사직 그 자체만으로도 항상 감사하고 기쁘고 항상 충성 못해서 한이 되고 교인들이 나가라 해도 어떻게 해서든지 무슨 운동이라도 해서 안나갈려고 할 것이다. 수위시절에는 어이 좀 이리와바 했는데 목사가 돼니 교인들이 그래도 목사님, 목사님하고 불러 주니 얼마나 황송할 것인가.
그러나 후자는 오히려 교인들이 나가달라고 하면 그럼 그렇게 하지 뭐 쉽게 하면서 그럼 목사직 사면하면 될 것아니야 하면서 양심있는 것 처럼 행동하지만 깨끗한 것처럼 행동하지만 정말 속 마음이 그런지는 뜯어 봐야만 알 것이다.
오늘도 먹고 싶은 것 하나 제대로 못먹고 백화점 한 번못가고 해외 여행 한번 못가고 평생 호탤 로비 조차도 못가고 흔해 빠진 대학에도 딸을 못보내고 고졸에 만족해야 하고 하는 나인데 모든 것을 버리고 나온 나인데 교인들이 이렇게 나를 대접하니 참 서운하구나 에라 때려치자 한다면 이런 행태는 후자쪽에서 발견될 수 있다.
물론 양심이 예민해서 교인들의 부표가 많이나왔다 해서 스스로 사면 해야 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수는 있겠지만 이것도 정말 속 마음을 파 해쳐 볼 필요가 있다. 바울은 세상 것을 배설물도 여겼다. 따라서 교회가 좀 잘 안돼도 목사직 자체만으로도 가치를 가졌다는 인식으로 오늘도 기쁘고 흔들릴리 없다. 그래서 목사직는 하기 싫은데 백 목사님 같은 분이 강권한다고 해서 나왔다면 그 목회 일생은 언제 흔들릴지 모른다. 배드로가 다시 고기 잡겠다고 갈릴리 바다로 갈지도 모른다.
우리 공회에서 세상의 화려한 것을 버리고 목사가 된 분들이 참 많이 있다. 오리혀 일반 교단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 이런 분들속에 또 문제도 있다. 힘있게 목회를 못하고 있는 경우가 이런 경우에 오히려 쉽게 있을 수 있다. 본전 생각이 나서일까. 아니면 양심이 깨끗해서 일까. 아니면 이 둘의 혼합일 까.
내가 목회자를 나보다 더 낫게 보는 이유는 그분들은 목사직에 대한 가치 인식이 어느정도는 돼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목사직는 세상의 그 어떤 직보다 화려하고 세상 것 못 취해도 다른 보상으로 충분하다고 인식하는 데서 진정한 목사가 될 것이다. 대구공회나 짐실동 교회나 수정 노선이 모두 본전 생각이 나서 공회의 목회자들도 일반 교단의 목사들 처럼 좀 사생활도 누리고 자녀도 대학도 보내고 싶고 해서 세상 것 취하는 기쁨도 가져보자고 해서 수정된 것이다.
바울이 유명한 것이 뭐인가, 최고의 명문가를 버리고 오히려 항상 충성못해서 부족한 것만 탄식한 데 있지. 그렇면 그만 두지 하는 데 있지 않은 것이다. 모세는 어떠했던가 왕가를 버리고 이스라엘 백성과 더불어 고난취하기를 즐겨한 데 있지 않은가.
우리 공회에 명문대를 졸업하고 고시에 합격하고 교수자리를 주겠다는 것을 마다하고 목회를 나온 분이 있다. 그런데 그런 분이 힘있게 목회를 못하는 것을 보았다. 비교우위가 잘 인식이 안돼서 그런가. 그러나 그런 분도 일단은 출발은 했으니 출발도 못한 경우에 비교해 보면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