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산 서울지방공회 집회 (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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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곡의 백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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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7 00:00
서울 북한산(일명 삼각산)의 자락에 위치한 임마누엘수도원에서 서울지방교회의 소속 교회들이 연합 집회를 연 것은 정확히는 기억못하지만 대략 80년대 중반 쯤이( 83-84년 정도) 아닌 가 기억됩니다.
임마누엘 수도원은 서울 종로구 구기동에 위치한 기도원으로서 당시 임대료를 주고 집회를 하였습니다. 임마누엘 기도원은 돌로 된 건물로서 일반 교회들이 주로 임대하여 사용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기도원 위치는 당시 구기터널 위로 올라가면 있었고 현재도 소재하고 역사가 매우 오래인 서울지방교회의 기도원에서 근거리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서울지방교회의 소속 기도원은 설립 역사가 아주 오래되고 번듯한 기도원이 아니라 그냥 옛날 허름한 민가이고, 개축도 아니한 것이고, 서울 종로구 구기동에 위치하고 있는데 현재 서울 및 수도권에 거주하는 목사님들이 기도 및 평일에 쉬는 곳으로 사용하고 있고, 방은 약 10여개 안밖일 것입니다. 창량리교회는 수년 전에도 매주 이 장소에 와서 교인들이 단체로 기도를 하였습니다. 이 기도원의 위치는 서울 세검정이고 구기터널 바로 위 쪽인데 지금은 주위가 고급 발라로 주로 개발되어 대지값도 지금 수억에 이를 것입니다. 이 장소를 두고도 이후 분쟁거리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당시 백영희 목사님의 권유인지, 백 태영 목사님의 주도인지는 모르지만 서울지방교회의 소속 교회들이 연합 집회 형식으로 매회 수일간 집회를 하였습니다. 강사는 아무래도 당시 서울에서 가장 큰 교회가 잠실동교회라서 백 태영 목사님 혼자였고 당시는 백 태영 목사님은 추앙을 받던 시절이라 은혜도 있었습니다. 내가 그 집회에서 은혜를 받은 후 하던 고시공부를 주일에 시험보는 데 반드시 해야 되는 것이냐를 설교 후에 북한산의 바위산 봉우리를 바라보면서 명상에 잠겨 중단하자는 결단을 내리기도 하였으니까요. 당시는 백 태영 목사님이라면 백영희 목사님 다음으로 존경하고 그 분의 백발과 빛나는 눈매만 봐도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정도였니까요.
이 집회의 참석 교회는 잠실동교회, 청량리교회, 동문교회 등이었습니다. 당시 나는 청량리 교회 소속이었습니다. 이 집회는 계속되지 않고 일시적이었으으며 대략 1-2년 계속되고 종료되지 않았나 기억됩니다.
당시 백 태영 목사님은 교인이 돈이 없으면 가짜 반지라도 사서 좀 끼고다니라고 웃으면서 하는 말이 지금도 잊혀지 않고 기억납니다. 우리 총공회 교인들이 좀 꾀죄죄하게 다니지말라는 의미를 그렇게 표햔한 것으로 나는 받아들였습니다. 백 태영 목사님은 이 외에도 당시 공회의 설교 스타일과는 어울리지않는 말을 한 적이 수회나 있는데 나의 기억으로는 "우리 공회는 세상적으로 좀 유명한 사람이 드물다"거나 "교회 내에서 남녀 반사를 분리하여 접촉이 없으니 막상 결혼할 적에는 타진영 교회 신자와 결혼을 해버리는 사례가 있어 좀 문제가 있지 않느냐' 등의 말을 한 것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기억하는 대목입니다.
서울 북한산 집회에 대해서는 서울지방교회 소속 교회들 예컨대 청량리 교회. 동문교회 등에게 문의하면 당시 그 집회에 대한 비용지출 관계 등을 추적하여 충분히 알수 있을 것이고 그 집회에 당시 서울 교인들이 상당히 많은 수가 참석하였기 때문에 지금도 충분히 자료가 있을 것입니다. 제가 다른 사람에게 물어봐서 이후에라도 정확히 아는 것이 있으면 여기에 추가로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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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서울지방교회 소속 교회들 집회는 물론 거창여름집회나 대구봄집회 외에 추가로 치뤄졌고 집회는 아마 가을철에 열린 것으로 기억됩니다. 당시 이 집회 개최 자체에 대해서는 부정적이거나 비판적인 것은 없었을 것으로 생각되었으며 긍정적인 분위기 였다고 보았습니다.
다만 당시 저의 개인적 감정으로는 거창집회나 대구집회에 수많은 공회 소속 교회들이 모여서 하는 집회에 익숙한 터라 서울지방교회들만 모여서 한 것이 좀 새로와 보였고 또 장소가 일반기도원이라서 좀 색다르게 보였습니다. 이를 테면 당시 임마누엘기도원의 강대상 뒤의 벽면에는 "제단에 붙은 불을 끄지말라" 등의 표어를 크게 하여 붙혀 놓았는데, 거창이나 대구 집회 장소처럼 무슨 표어 같은 것도 하나도 없이 힌 천으로 강대상 뒤에 친 것만 보다가 이걸 접하니 좀 익숙하지 아니한 느낌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