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옛터에는 월색만 고요하고...... (백태영목사님 소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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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곡의 백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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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9 00:00
당시 그때만 해도 백 태영 목사님은 백 영희 목사님 다음으로 권위가 있었고 설교도 상당히 잘한편이어서 은혜도 많은 교인들이 받았읍니다. 다만 영안이 밝은 분들이나 설교를 평가적으로 듣는 사람들은 그때에도 벌써 아 이 설교는 좀 어딘지 다른다는 것을 느끼긴 했지만 잠실동교회에서는 백 태영 목사님이라면 거의 절대 신임을 받았읍니다. 사실 저도 설교를 평가하고 가려내고 비판하는 능력은 누구 못지 않해서 잠실동교회 예배를 참석할때나 백 태영 목사님의 설교를 들어 볼 때에도 좀 다르다는 것은 충분히 느낄 수있었고 어느정도는 장래 예측을 전혀 못한 것은 아니지요. 그래서 저는 다른 이들 처럼 백 태영 목사님에 대해서 그리 존경심을 가지지는 못햇습니다.
어쨋든 태영 목사님은 잘 생긴 안면에, 엄위한 쉰 목소리, 백발, 빛나는 눈 등의 풍채로 인해 이것만 가지고도 또 무엇보다도 백 영희 목사님의 후광을 입어 많은 교인들이 추종하고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할 정도로 순종하던 교인들이 많이 있었다는 사실은 저만 아는 것은 아니지요. 노공동 집회 장소의 강대상 바로 옆에 태영 목사님의 거소(방)가 있었는데 대구 집회에 가면 태영 목사님의 얼굴 모습만 봐도 좋았습니다. 일부러 가까이 가서 스스로 인사를 드리고 싶은 감정을 갖기도 했지요.
이젠 세월은 유수같이 흘러 태영 목사님은 어디에 계시는지. 그 당시 그 팔팔하시던 엄위하시던 카리스마적 모습이 여전하신지, 아니면 뒷골목에 할일 없어 서성이는 나이많은 늙은이의 모습인지, 서산에 지는 해에 스러져가는 황혼의 자태인지. 흐르는 세류속에 함께 흘러갔는지. 듣기로는 잠실동교회 주위의 석촌호수길에서 엣날 교인들이 만나도 인사조차도 하지 않고 못본채 하는 교인도 있다고 하니, 나 역시 지금 태영 목사님을 어디서 만난다면 일부러 다가가서 인사를 드릴 용기가 날까. 그저 서로 모른채하고 지나쳐 가는 것이 더 편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면 슬픈 일이겠지요.
다 이젠 황성옛터가 된 것 같아요. 그 옛날 전성기의 잠실동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부산에서 우리 공회의 대표 교회라면 서부교회라면 서울에서는 잠실동교회라고 자부심을 갖고 있었는데 지금의 잠실동교회는 요새 이 교회의 간판을 보면 요행히도 이번에 문제를 일으킨 분당의 샘물교회의 로고체와 비슷하데요.
아 흘러간 추억이여, 추야의 월색이 고요한 황성옛터에는 방초만 푸르르고, 폐허에 서린 회포를 그 누구를 찾아서 풀랴.
필기는 태영 목사님의 설교는 백 영희 목사님의 설교만큼 비중을 차지 하지 않고 있어서 필기를 그렇게 많이 했는지는 몰라도 우리의 공회 교인들의 관행상 필기는 상당히 했을 것입니다. 제가 기억력이 안 좋아서 그러지 정확힌 집회 날짜는 알아내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을 것이고 이 홈을 찾는 분들중에서도 당시 참석자가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