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김목사님? (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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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곡의 백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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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6 00:00
다시 기억을 더 듬어 보니 김 목사님은 시기적으로 아마 그 시기에는 거창 신천교회나 창원 창천교회에 담임할 때 인 것 같아 서부교회의 반사 시절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내가 착각을 한 것 같습니다. 다른 분을 찾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 산곡의 백합화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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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막연한 추측입니다만 혹시라도 그 당시 전도사님을 찾는데 도움이 될 까해서 하는데요, 당시 심방자는 주교 선생님이었을 테고 자가용을 가지고 심방을 왔다면 제법 경제형편이 나은 축에 속했을 터이고 하여서 내가 아는 분을 혹 지목해 본다면 김영채 목사님(현재 창원 창천 교회 담임)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 분은 당시 한국제지회사의 부산지역의 책임자로 근무하여 상당한 경제력을 가지고 자가용을 운행하여 학생 심방을 한 것으로 압니다. 시기적으로도 87,88년경이면 김영채 목사님이 아마 서부교회에 출석하여 주일학교를 열심히 충성하던 시절과 일치하는 것 같습니다. 여러 글을 보면 여러분들이 당시 반사님을 찾아줄려고 노력하는데 나도 막연한 추측으로 하는 말이니 참고만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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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년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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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도사님을 찾습니다^^
: : 글쓴이 : 이윤정 날짜 : 2008-08-17 14:50 조회수 : 49 인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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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저는 87년도쯤(8살~~10)
: : 부산 서부교회를 다녔습니다. 그 당시 집은 수정동이였구여 어려서 그런지 전도사님 성함에 생각이 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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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굴만 생각나구요 제 또래 아들 2명이 있었는데,,,
: : 매주 멀미가 심한 저를 직접 당신의 자가용으로 데려다 주시던 그 전도사님 지금은 전도사님이 아니시겠져?
: : 사시는 곳이 서부교회 근처셨습니다.
: : 믿음이라는 걸 모르는 그 어린 나이에는 교회를 가는 목적이 크리스마스, 부활절 ,,, 간식을 먹기위해 가곤 했답니다.
: : 아참 전 남동생(이성욱)같이 다녔어요 혹시 이 글을 그전도사님꼐서 보신다면 꼭 찾아뵈고싶습니다.
: : 저희 집 대문 앞에서 "윤정아~~! 성욱아~~! 교회가자~~!" 가기 싫을 땐 숨어서 인기척을 안 낸 적도 있습니다.
: : 그런 철없는 어린 저희들을 위해 매주 자가용으로 저희를 데리러 오셨습니다.
: : 그 분의 기도 덕에 저는 항상 주님의 보살핌으로 주님안에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 : 저는 서부교회랑 인연이 많나봐요^^
: : 캐나다 벤쿠버에 있을때 갈릴리 교회를 다녔습니다.
: : 그곳에서 조영택 목사님을 만났었는데 이 서부교회에서 결혼을 하셨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
: : 저에게 있어서 서부교회는 처음으로 저를 하나님을 만나게 해준 고향같은 곳입니다,
: : 지금은 거주지가 서울이라 비록 자주갈 수는 없지만 이번 여름 휴가 때 신랑이랑 갈려구요
: : 주님 뜻으로 믿음이 신실한 남자를 만났구요
: : 장로님, 권사님 댁에 시집도 가게 되었답니다. 이 모든 게 주님의 뜻이지요. 혹시 이 글을보시는 전도사님
: : 너무 너무 뵙고 싶습니다, 생각하면 그분은 하나님꼐서 제게 보내주신 천사이십니다^^
: : 당시 나이 8~~10세 이윤정, 이성욱 수정동 너무 어렵져?
: : 서부교회를 위해 기도 많이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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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도사님을 찾습니다^^
: :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08-08-18 11:01 조회수 : 36 인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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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당시 전도사님(우리교회서 보통 조사님이라고 부르지요.)은
: : 전응덕, 이탁원, 김춘도, 김윤수, 김부호, 장영목, 이민영...(지금은 전 조사님 외에 다 목사님입니다.)
: : 이분들인데
: : 전응덕 조사님은 장년반 담당이고,
: : 김춘도, 김윤수, 김부호 목사님은 중간반 담담이라서 아닐 거고,
: : 장영목 목사님은 그당시 주일학교 총무신데 그 시간에 주일학교 심방이 힘드실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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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력한 분은 이탁원 목사님 아니면, 이민영 목사님 같네요.
: : 이탁원 목사님은 지금도 서부교회서 주일학교를 하시면서 행정 업무를 담당하시고 계시고
: : 자녀는 아들 둘, 딸 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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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당시 자가용 운전하셨던 분은 이민영 목사님이 엑셀 가지고 운전하셨는데
: : 이민영 목사님은 지금 광안동 주변에서 "광남교회"에서 담임목회하시고 계십니다.
: : 자녀는 아들 둘이니까 이분이 가장 유력한 것 같네요.
: : 외모는 기억나시나요. 이민영 목사님은 안경끼시고, 약간 비만이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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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슷한 분 생각나시면 댓글 또는 관리자에게 쪽지 주세요. 그러면 전화번호 또는 카페 주소 등을 알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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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도사님을 찾습니다^^
: : 글쓴이 : 유력합니다. 날짜 : 2008-08-18 11:07 조회수 : 46 인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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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외모가 곱슬머리에 체격이 굉장하좋으셨어요^^
: : 안경은... 아들두분 이시고 부인께서는 좀 날씬하셨던걸루`~^^
: : 그교회주소나 홈페이지 알수있을까요?
: : 정말 정말 제가요~~너무 절실히만나뵙고싶어어요^^부탁드립니다^^
: : 그리고 관리자님 너무너무 감사드려요 이렇게 신경써주시고 이번에 부산가면 꼭 서부교회가서 그분만날수있게 기도드려야겠어요^^ 너무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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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전화번호는 017-205-7585, 051-611-9808, 수영구 광안4동 753-27, 홈피는 폐쇄된 것 같습니다. (2008-08-18 19:43) [삭제]
: : 이윤정 : 아! 위에 백목사님 순교 그당시 였어요.그럼 89년도인데...기억이새록새록나네요 (2008-08-20 12:42)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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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의용 당시 선생님
: : 글쓴이 : 목회자 날짜 : 2008-08-22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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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민영 당시 선생님은
: : 서부교회에서 수정동과 정 반대편에 있는 장림 쪽에서 반사를 하셨고
: : 출석 학생이 1백명을 넘나드는 대형반이며 장림 분교를 책임지셨기 때문에
: : 수정동으로는 주일학교 때문에 갈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물론 사모님 모습도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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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7년경 수정동 지역이라면
: : 이의용 당시 선생님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 : 곱슬에 체격이 좋으신데 어린 당시 눈으로 보면 체격이 아주 크다고 느끼셨을 것입니다.
: : 사모님에 대한 인상도 맞고 또 자녀는 아들 3명이지만 심방 때는 1명 정도 빠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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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민영 이의용 두 분 다 지금은 목사님이시며 이의용 당시 선생님은 내과 개업의였습니다.
: : 지금 목회와 병원을 함께 하시며 성격이 너무 소탈하고 인자하며 은혜로운 분입니다.
: : 연락하시면 부부가 다 함께 굉장히 반가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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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화는 051-256-3467(교회), 051-244-2446(병원)
: : 주소는 부산시 서구 서대신동3가 323-9 구덕빌딩1층이 예배당이며 연락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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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동 지역은
: : 1979년 경 이진석 당시 선생님이 처음으로 집중 활동하셨고
: : 1981년 이후 초량동에서 수정동 접경 사이에 다른 당시 이 선생님이 활동하셨습니다.
: : 1984년 한 분은 개인 사정으로 또 한 분은 교회의 필요 때문에 그 곳 반사활동을 중단했고
: : 이후 이의용선생님이 서울의대에서 전문의 과정까지 끝내고 신앙생활을 위해 서부교회로 오자
: : 당시 주일학교 장영목 총무님이 서부교회에서 가까우면서도 인구밀집 지역이어서 수정동으로
: : 위치를 정해 드렸고, 이 선생님은 남달리 충성하셨고 수정동분교 책임자로도 계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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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명 드린 모든 분들이 지금은 목사님들입니다.
: : 당시 서부교회 청년들은 조금 열심히 반사생활을 한다 할 정도면 이미 타 교회 전도사님 이상이었고
: : 훗날 많은 분들이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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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부교회 주일학교의 발전사에서
: : 처음에는 동대신동 서대신동 보수동 부민동 아미동의 걸어오는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으나
: : 반사가 많아지면서 새 개척지역을 찾아 남쪽인 영도나 감천 장림까지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 : 그리고 반사가 더 많아지면서 초량동, 수정동, 범일동으로 이어지는 동진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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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량동 수정동에서 서부교회를 오려면 한국 최고 또는 최대 교단이라고 하는 합동측과 고신측의
: : 가장 핵심 교회이자 부산지역 당시 최대교회인 '초량교회'와 '삼일교회'를 거쳐야 했습니다.
: : 초량과 수정의 산복도로 주변 학생들이 부산역이나 부산진역의 대로까지 30분을 걸어와서
: : 차를 타고 서부교회로 가는 모습은 초량교회 삼일교회에 굉장한 충격이었고
: : 고신에 속하는 삼일교회는 교단 체면 때문에 끝까지 애써 모른 척하는 편이었으나
: : 초량교회는 합동측이므로 비교적 넓었고 그 면 때문에 오히려 와서 적극적으로 배웠으며
: : 이 후 초량교회는 1-200명 주일학교가 2천명을 넘기게 되어 한국교회사에 유물 차원이었던
: : 초량교회 예배당 본당에 주일학교 때문에 4층을 증축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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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량교회 바로 앞에 초량초등학교가 있는데 초량교회 교육전도사님이 여름성경학교 행사 때문에
: : 학교 정문에서 학생들을 등록을 받고 선물을 주고 했는데 학생들이 '나는 서부교회 다녀요!' 이렇게 했고
: : '왜 그 먼 곳까지 다니니, 바로 여기가 교회인데...' 라고 하자 '그 곳에는 배울 것이 있잖아요?' 라는 대답에
: : '그래 지난 주일에 무엇을 배웠니?'라고 묻자 '본문...., 제목...., 첫째.... 둘째....' 이렇게 입에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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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무 충격을 받고 바로 서부교회로 와서 어떻게 가르쳤는지 어떻게 주일학교를 운영했는지를 물었고
: : 이후 초량교회 주일학교는 엄청난 발전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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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시, 부산 전체 지역에 흔하고 흔하게 일어났던, 우리 주일학교 활동의 사례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