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영희와 주 남선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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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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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5 00:00
1. 절간 된 전기책
책의 복간은 답변자가 주 목사님 가족들을 통해 최대한 빨리 이루어 지게 노력하겠습니다.
만일 수요 부족으로 복간이 불가능하다면 적법한 복사본 사용이 가능하게 부탁하겠습니다.
최근 복사본 기술의 발달로 비슷한 가격으로 정본 못지 않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2. 백 목사님과 주 목사님
전기 작성 시작은
1971년, 백 목사님을 비롯한 인터뷰 등 자료 완성은 1975년, 출간은 1976년입니다.
공회가 고신에서 배제 된 지 15 년 정도 되었고 지도부 전부가 배제한 당사자였습니다.
그리고 주 목사님은 고신 설립의 2 명 중 서열 제 1 위로 항상 거론 되는 분이었으며
고신 목회자로서 전기 인물 제 1 호였으므로 사실상 고신의 교단 차원 출간이었습니다.
전기 내용에서
만일 백 목사님에 대한 언급이 긍정적이 되면 고신은 그 만큼 부정이 되어야 하고
반대로 고신이 긍정적이라면 그 만큼 백 목사님은 부정적이 되어야 할 인물입니다.
보통 주 목사님에 대하여 가장 잘 안다고 알려 진 분이 후임자 남 영환 목사님이며
전기 작업 초기에는 백 목사님이 배제 되고 고신 인물 중심으로 조사가 되었는데
전기 작업이 진행되면서 백 목사님이 아니고는 이어 질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았고
특히 가족들이 백 목사님에 대한 감사와 사연을 너무 많이 언급하고 강조하게 되자
백 목사님 빼고는 이야기가 전개될 수 없는 상황임을 알고 인터뷰를 하게 됩니다.
백 목사님은
신앙에 유익하고 필요한 기억은 거의 녹음기 정도로 과거를 재현해 내는 분이었고
백 목사님의 인터뷰로 주 목사님 전기는 빠진 부분들과 중요한 부분들이 채워 집니다.
결론은
고신 초기의 주 목사님은 고신 설립의 제 1 인자였고 그 수제자가 백 목사님이었습니다.
주 목사님이 계셨다면 고신의 탈선과 백 목사님의 배제는 막아 졌을 것이라고들 합니다.
참고로
고신은 주 남선 백 영희 계통의 순수 경건 신앙파와 한 상동 송 상석 등의 교권파
그리고 중도 온건의 지성 학구파인 박 윤선 한 부선 등으로 크게 나눌 수가 있었습니다.
주 목사님이 돌아 가시고 백 목사님이 배제 되자 고신은 오늘까지 교권파로 내려 옵니다.
주 목사님의 가족들의 경우
그 사모님은 돌아 가실 때까지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백 목사님이 도왔던 기억에 늘 감사했고
마산에서 고아원을 했던 큰 딸은 돌아 가실 때까지 백 목사님을 늘 아버지처럼 찾았으며
조폐 공사 이사장을 했고 현재 LA에 거주하는 그 아드님도 당시를 잘 기억하고 그렇습니다.
몇 년 전 주 목사님 자손 중에 첫 목회자가 나왔는데 주 목사님을 제목으로 논문을 써면서
고신을 포함하여 전국 신학교를 살펴도 주 목사님 자료가 전혀 없다며 수소문을 하다가
가족들이 총공회를 찾으라 했고 답변자께 연락이 와서 이 곳에서 일체 소개한 기억이 있습니다.
현재 고려신학대학원에는 고신 교단의 역사 기념관이 교단 차원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원래 명칭은 고신의 역사는 주 목사님의 역사라는 인식 때문에 주 남선 기념관이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위원회가 구성되고 자료 수집이 시작 되었지만 주 목사님 자료는 없었고
주요 자료는 백 목사님에게 있었고 백 목사님께 기증 요청을 했던 적이 있었으며
그 자료 외에는 자료가 거의 없고 다른 형태의 주요 자료가 현재 답변자에게 있습니다.
고신이 교단적으로 교단 내외 모든 인물을 상대로 수 년 자료 수집하였으나 지금도 거의 없습니다.
강조하고 싶은 점은, 외형이 아니라 내면 깊이 들어 갈수록 고신의 진수는 공회에 있으나
다만 공회는 교회의 외형에 대하여 전혀 관심이 없어 표시를 하지 않고 있을 뿐이며
이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은 주 목사님과 백 목사님의 관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요약하면 주 목사님은 한국 교회사의 주요 인물 동정에서 보면 고신 지도부 중의 한 분이나
실제 신앙 내용과 깊이에 있어서는 백 목사님과 가장 가까웠던 분이었고
그 가까운 것은 장소적 의미가 아니라 신앙의 차원과 성향에서 주 목사님께 제일 가까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