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에 대한 47가지 문답-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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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가지 질문 중 20개)
목차
1. (질문) 주일은 안식일이 아니다.
2. (질문) '주일의 깊은 의미'를 알고 싶습니다.
3. (질문) 안식일과 주일에 대하여 아주 자세히 설명좀 부탁합니다.
4. (질문) 첫 안식일의 실패 원인, 주일날 받은 은혜
5. (질문) 안식일-->주일에 대한 히 4:7 말씀에 대하여
6. (질문) "주의 날"을 주일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약간 무리가 아닌지
7. (질문) "삼일, 오일"이라는 요일 이름에 대해서
8. (질문) 주5일 근무 제도에 대응할 믿는자의 자세는?
9. (질문) 주일 지키지 않은 죄는 사망에 해당될 정도인가요?
10. (질문) 주일의 은혜가 종자적이라는 말은?
11. (질문) 백목사님은 주일오전 설교에 초점을 두셨는지?
12. (질문) 이분법적 신앙의 위험
13. (질문) 주일의 영적 준수에 대한 칼빈의 글에 기초하여 질문드립니다.
14. (질문) 주일의 복은 어떻게 오는지?
15. (질문) 주님의 죽으심이 완성된 주일에 대하여
16. (질문) 어버이주일
17. (질문) 몽학선생과 율법과 주님의 복음
18. (질문) 주일날 먼 곳으로 집회나 기도, 재독하러 가는 것은?
19. (질문) 주일준비와 집회준비
20. (질문) 양계장을 할 경우 주일날 짐승 먹이 주는 것은?
1. (질문) 주일은 안식일이 아니다.
성경에 보면, 안식일을 폐하시고(골 2:16) 안식 후 첫날 곧 주일을 우리에게 주셨다.(히 4:1~13) 그 안식 후 첫날인 주일에 떡을 떼러 제자들이 모였는데(행 20:7), 이것은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석상에서 기념하라 말씀(눅 22:14~20)하신 대로 주의 죽으심을 기념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주일날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성경을 근거하여 따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성한 의무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총공회 교인들을 보면 실로 안타까운 일이 있다. 주일을 예수님께서 폐하신 과거의 안식일처럼 율법에 얽매여 지킨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친형제간의 결혼식이 있을 때 예배 시간이 아닌데도 참석치 않는다. 그래서 부모가 근심하고 속상하게 함으로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어긴다. 그뿐 아니라 믿지 않는 형제나 어린 형제의 복음 전파를 방해한다. 참석치 않는다고 그 시간을 뭐 대단하게 보내는 것도 아니다. 차라리 참석하여 그 형제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훨씬 주님께서 기뻐하실 일인데도 말이다. 심지어는 주일날 일을 하거나 돈을 쓰면 죄악시한다.
그런데 가장 안타까운 것은 그들 스스로도 왜 그렇게 하고 있는지 대부분 알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과거 폐하여진 안식일의 율법에 매여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차라리 안식교인처럼 안식일인 토요일을 그렇게 지킨다면 훨씬 더 이해가 가고 수용이 되겠다. 주일은 결코 안식일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자유를 주셨으니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 하신 뜻, 율법에 매이지 말라 하신 뜻을 잘 기억하기 바란다.
(답변) 안식일이 주일로 변경된 것은 이렇습니다.
주일에 대한 견해는 그 표현이 약간씩 다르지만 크게 나눈다면 대체로 3가지 정도입니다.
1)토요일을 구약 안식일로 그대로 지키는 것이 옳다는 견해
2)구약 안식일이 신약에 주일로 변경되었다는 견해
3)날짜는 주일로 변경되었으나 지키는 내용은 구약 안식일의 율법적 규율과는 달리 우리 위해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이라는 견해
이런 3가지 입장에 대하여 총공회 신앙 입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드립니다.
I.토요일 안식일이 일요일 주일로 변경되었습니다.
1)안식일의 폐지:
골2:15-16, 구약시대 성도가 일상생활에서 지킬 대부분이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구별하여 먹는 것이며 또 연중 돌아오는 절기들과 매주 지켜야 하는 안식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안식일을 분명히 폐지시켰습니다. 그러나 실은 폐지라는 말보다는 마5:17 말씀대로 완전케 하려 하셨습니다. 안식일이 완전으로 나가기 위해 토요일 안식일이 폐지된 것입니다.
2)안식일의 변경:
히4:7에서 안식일 대신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라고 안식일 변경까지 분명히 했습니다.
3)주일의 확정:
그리고 행20:7에서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라는 말씀으로 신약의 사도 때부터 주일을 지키게 됨은 분명합니다. 떡을 떼려 모이게 된 것은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라는 고전11:26에 따라 신약교회는 매주 안식후 첫 날을 주의날로 모여 구약의 안식일을 대신하게 된 것이며 계1:10에는 '주의 날'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4)반론의 주장:
참고로 안식일을 그대로 지켜야 한다는 측에서는 초대교회가 로마제국으로부터 신앙자유를 허락 받게 되면서 교회의 안식일을 로마 태양신의 날 즉 일요일로 바꿔 지켜나오게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로마의 신앙자유는 주후 313년이며, 위에서 살펴본 안식일이 주일로 변경되어 확정된 것은 바로 사도시대입니다. 예수님 당시와 달리 이때가 되면 사도들은 복음의 길, 주님 가르친 길이라면 이미 사선을 초월했던 때입니다. 효율성 또는 편이성을 고려하여 날짜를 변경할 주일이 아니며 그런 사도시대의 신앙이 아니었습니다. 맹수의 밥이 되지 않으려면 말 한 마디로 부인만 해도 살아나올 수 있는 분위기에서 말씀대로 죽는 것을 감사하며 순교했던 초대교회의 신앙세계가 편리함을 기준으로 주일을 바꾼다는 것은 전혀 가설일 뿐입니다.
II.주일 성수에 대한 교회의 노선
1)신앙의 두 흐름
①보수신앙과 자유신앙
안식일이 안식후 첫날인 주일로 바뀌었다는 것은 일부 이단들 외에는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주일을 어떻게 지켜야 하느냐는 문제는 교회 안에서 이전부터 내려오던 논쟁이었습니다. 주일은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정도면 충분하다는 주장과 구약의 율법시대를 연상케하는 엄격한 성수주일의 주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하나를 짚을 수 있습니다. 교회는 보다 자유롭게 믿는 자유주의 신앙과 말씀에 보다 엄격히 믿는 보수주의 신앙이 있어왔습니다. 과거로 올라갈수록 보수신앙이 많고 현재로 내려올수록 자유신앙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500년 전의 종교개혁기 정도 초기로 올라가면 거의가 보수신앙이었고 오늘 2000년에 이르면 거의가 자유신앙이라는 사실입니다.
②총공회는 보수신앙
우리 총공회 정통신앙은 그 시대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느 쪽에 있느냐는 것은 별로 고려치 않고 어느 쪽이 성경에 더 옳고 가깝겠느냐는 기준으로 신앙생활의 방향을 잡고 있습니다. 500년 전이나 100년 전이나 오늘이나 주일을 엄격하게 지키려는 것이 옳다면 이것이 우리의 노선입니다. 그러나 500년 전이나 100년 전이나 오늘이나 주일은 그냥 편히 지내며 주의 부활을 기념하는 정도로 지키면 된다는 주장이 있다면 우리의 신앙과는 다른 노선일 뿐입니다. 서로가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나 옳은 것은 하나일 것이니 어느 것이 옳으냐는 주장은 세월 속에 차근차근 따져보면 들어난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런 양측의 주장은 극소수이며, 대개의 주장은 어제까지 여기 속한 주장에서 오늘은 반대쪽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다른 사람의 주장을 반대하기 전, 먼저 자신과 자신에 속한 교회 또는 신앙노선이 어제까지 주장했던 것을 변경하는 이유 그렇게 되는 과정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2)총공회의 주일성수는 과거 우리 교회들의 평범한 신앙
①주일성수는 일반 교회의 평범한 신앙
예를 들면 총공회의 주일성수를 비판하는 교단들로서는 통합계열, 합동계열, 고신계열까지 있습니다. 한국장로교의 거의 90% 이상에 해당되는 교단들입니다. 주일문제를 두고는 별로이 논쟁이 필요없는 것은 현재 총공회 주일성수를 비판하는 그 교단들이 어제까지는 총공회와 꼭 같은, 적어도 거의 같은 주장을 했고 또 그렇게 주일을 지켜 왔다는 것입니다. 현재 '예수교 장로회' 내에서는 통합측이 비교적 제일 자유로운 교단이며 소속 목회자들이 주일에 유료 여행이나 일반 세상사를 많이 관계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그 교회들의 현재 보유 중인 과거 당회록을 보면 주일을 성수치 않고 논에 물을 댔기 때문에 어느 집사를 6개월 근신토록 치리하다 등의 내용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주일에 물건을 사지 않는다든지 주일에 결혼식 등의 세상 일반 행사에 참석치 않는다든지
그래서 가족들과 이웃들에게 복음에 대하여 마음 문을 닫게 만든다든지 하는 등의 폐단은 우리 한국교회 거의가 다 해당되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일반 불신자들이 아주 이상한 종교집단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초기 한국교회의 수많은 박해사가 쓰여졌던 것이 주로 이런 이유였습니다.
②따라서 주일성수문제는 보수신앙의 문제
따라서 주경운씨가 지적한 총공회의 주일문제는 실은 한국보수교회 노선의 주일성수 문제로 지적을 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그리고 지적하시는 바가 한국교회의 주일성수 문제라면 주일 성수의 내용에 대하여는 신앙적 설명을 다음 III장에서 계속하겠습니다.
주일성수에 관하여 총공회는 과거와 같이 현재도 가르치고 또 실제 그렇게 믿어가려고 애를 쓰고 있는 정도이며, 타 교단들은 과거에는 우리와 같이 가르치고 또 그렇게 행동을 했었는데 어느 날부터 자기들의 주장 반대편으로 행동이 점점 바뀌게 되었고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자신들은 처음부터 주일을 그렇게 주장하지 않았던 것처럼 '되어져 버린 것'입니다.
처음에는 '기독교 장로회'에 속했던 분들이 그랬고, 그다음은 통합, 그다음은 총신이라고 하는 합동측, 현재는 고신측에서조차 이런 주장들이 대세가 되어가고 있는데 유독 총공회에서만은 아직까지 과거의 보수신앙 노선이 대세로 유지되었고 따라서 주일문제에서는 총공회가 이상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III. 총공회가 주일성수를 주장하는 것은
이제 보수신앙계가 어떻게 되었던 총공회는 왜 현재의 주일성수를 고수하고 있는지가 문제일 것입니다. 그 신앙적 자세는 이러합니다.
1.구약의 제도가 그대로 이어지는 것이 몇 있습니다.
1)유대인이 오해하여 책망 받은 것은 구약의 제도가 구원되는 줄 알았습니다.
구약의 모든 제도가 더 완전케 되는 과정에서 폐지된 것이 대부분입니다. 구약의 모든 제도는 그 제도 자체로 구원을 이루는 방편이 아니었습니다. 구약의 모든 제도는 오실 메시야 예수님의 구원을 예표하는 것이었습니다. 제사에 관계된 모든 제도는 어린 양 예수님의 십자가를 향한 것이었고 기타 먹고 마시는 모든 음식 문제도 하나님의 백성이 취할 것, 버릴 것을 가르치는 그 시작이었습니다. 모든 구약의 말씀이 안내하는 예수님은 빼 버리고 그 말씀 자체의 맹목적 형식만 반복하고 그것이 말씀을 지키는 전부이며 그 행위로 구원 얻는 줄 알았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오히려 자기들이 지키는 율법의 내용이 되고 실상이 되는 예수님을 자기들이 지키는 그 율법의 형식으로 죽이는 데까지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2)예수님이 오심으로 예표로 주신 것 등 대부분의 제도가 폐하여졌습니다.
오실 예수님을 두고 주신 여러 제도들이 이제 예수님이 오셨기 때문에 또 십자가 구원의 완성을 하셨기 때문에 더 이상 필요없게 된 제도들이 많습니다. 이 제도들은 원래 잘못된 것이거나 또는 흠이 있어 없앤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올 때까지 그 이전에 필요했던 것들이었고 예수님이 오셨음으로 그 제도들 그 형식들은 이제 그 맡은 일을 다 끝내게 되어 자연히 필요없게 되어졌고 따라서 폐하게 된 것들입니다.
따라서 주님이 온 것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것이 아니고 완전케 하려 함이라는 말씀의 뜻을 여기서 찾아야 될 줄 압니다.
3)신약에까지 이어지는 구약의 율법 몇 가지가 있습니다.
구약성도가 율법이 안내하는 내용은 빼버리고 율법의 정한 바 그 형식에만 매여 율법에 옳은 행위를 하고도 구원얻지 못한 사람이 많았던 것은 율법 자체가 잘못되어 그런 것이 아닙니다. 심령이 어두워진 유대인들이 오해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신약 성도들이 극히 주의할 것은 이번에는 반대의 현상이 많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폐하였고 오늘은 은혜 시대라고 율법을 무시하는 것이 지나쳐 구약 말씀 전체에 대한 맹목적인 무시현상이 심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십계명은 구약 출20: 에 기록해 주신 대표적인 율법이며 율법 중에 중심입니다. 십계명을 폐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1계명이 구약에는 해당되고 신약에는 폐할 말씀이겠습니까?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는 말씀도 폐하여져서 이제는 신사참배를 해도 된다는 말이 될 수는 없습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6계명이 폐하여졌다면 살인해도 된다는 말로까지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은 성경원리를 몰라도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 중에 예수님이 인정하시고 확정해 놓은 몇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십계명은 마19:16-22에서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부자 청년에게 예수님이 십계명을 하나씩 예를 들면서 영생을 얻는 오늘의 행위로 일일이 확인시켰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자기 전 재물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이 말씀의 핵심이라고 합니다만 분명한 것은 예수님이 먼저 모든 성도들에게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십계명을 기본적으로 짚었고 눅18:22 에서는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주라'고 했습니다. 십계명이 틀렸고 폐할 일이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십계명은 필수입니다. 그리고 그 부자에게는 그 부자에게 필요한 한 가지를 덧붙혔습니다. 여기까지 나아가야 될 사람이 도중에 재물 욕심에 포기하고 주저 앉은 것이지 십계명이 신약에 필요없게 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십계명을 지킴으로 그 자체가 구원된다는 주장이 되면 율법주의가 되겠지요. 구원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된다고 확정지은 사람이 예수님이 예수 믿는 사람에게 예수 믿는 생활의 원칙으로 주신 십계명을 구원 받은 사람의 생활 원칙으로 가지는 것은 율법주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②십일조 역시 마23:23 '십일조를 드리되....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고 했습니다.
십일조라는 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을 행하고 그러나 십일조 제도 자체도 버리지 말아야 될 것은 신약에서 예수님이 확정시켰기 때문에 십일조는 오늘도 해야 할 일입니다.
③안식일에 대한 것입니다.
안식일 날짜는 주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을 두고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금한 일을 하지 않고 매매하지 않고 자기의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피한 것으로 구원을 얻는 줄 알았던 것이 잘못이며 이 안식일에 주인이 예수님인 줄 몰랐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완성이 참된 안식을 주는 것이며 주일의 안식에서 예수님이 이미 주신 구원을 감사하고 새기며 이 구원 받은 사람으로 살아야 될 모든 은혜를 받는 것이 신약의 안식일 즉 주일에 해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율법에 따라 추수도 일이며 따라서 제자들이 밀밭을 가면서 이삭을 잘라 먹은 것을 고하는 바리새인들을 책망한 것은 안식일에 개인의 볼 일과 개인의 사사로운 오락을 구하라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이 진설병을 먹은 것은 이스라엘을 구원길로 인도하는 다윗의 구원 걸음에 힘이 되는 것이 진설병이었고 구원의 힘이 될 신령한 양식이 성전의 진설병이었습니다. 구원 목적에 성령의 인도를 따라 순종한 것이었기 때문에 죄가 되지 않았던 것이지 게으른 사람이 배고프다고 자기 마음대로 먹어도 되는 성전의 진설병은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구약성도에게 성전과 제사법을 세운 하나님이 잘못했다는 것이 됩니다. 마12:9-13에서 양 한 마리를 예로 든 것도 그 사람 구원에 대한 활동이었습니다.
2. (질문) '주일의 깊은 의미'를 알고 싶습니다.
1. 첫째 유대인의 하루 계산법을 고려한 안식일과 주일의 시간적 차이를 알고 싶습니다.
: 유대인들의 하루는 저녁부터 저녁까지 였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 지키었다고 들었습니다. 혹, 토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저녁까지가 아닌지요? 창세기 2장에는 제 칠일을 거룩하게 구별해 놓으셨는데 모세를 통한 율법을 제정하시면서 왜 토요일이 안식일이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2. 백영희 목사님께서 안식일이 주일로 바뀔 것을 성경에 예언해 놓으셨다고 하신 설교가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어떤 성구인지, 안식일(토)이 주일(일)로 바뀐 근거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싶습니다.
3. 주일의 깊은 의미를 알고 싶습니다.
주일은 그저 쉬는 날이 아니라, 녹초가 될때까지 하나님 말씀 연구하는 날이라는 목사님 글 읽고 주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거룩한 주일을 지킬 수 있을까요?
4. 백영희 목사님은 주일을 토요일 24시 부터 다음날 24시까지(그러니까 밤 12시 부터 다음 밤 12시까지) 지키라 가르치셨는지요? 제가 본 총공회 분은 그런 기준을 가지고 있으셨습니다.
(답변) 여기서 다 살필 수는 없습니다. 약간 그 속만 들여다 보겠습니다.
1.성경의 계산법과 오늘의 계산법
열에 하나를 떼라는 십일조의 기준은 오늘도 지킵니다. 그러나 성찬에 사용하는 포도주와 떡은 어떤 포도주 어떤 재료로 된 떡을 어떤 조리법으로 해야 한다는 기준까지는 정하지도 지키지도 않고 있습니다. 다만 예수님이 처음으로 시작하시고 또 명령하신 성찬의 '포도주와 떡'은 그 지킴에 명령이 있지 그 포도주의 구성성분과 제작과정을 꼭같이 재현해 가라는 명령은 없습니다. 떡도 나라마다 시대마다 재료와 조리과정은 분명히 다릅니다. 어떤 경우는 저것을 떡이라고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하면서 심각히 생각해야 할 만큼 애매한 것이 많습니다.
오늘 우리는 포도즙을 사용하며 교회에 따라 전통의 떡이든 서양식 빵이든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즉, 성찬은 몸을 상징하는 떡, 그래서 먹음으로 양식이 되며 한편으로 우리 위해 희생된 그 육체, 그리고 그것을 되씹음으로 대속의 사람이 되며 그기에서 나오는 힘으로 신앙이 힘을 삼아야 한다는 것으로 성경을 읽고 있습니다. 포도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즉, 성경은 그 기준 자체를 지켜야 할 것으로 명하시는 것이 있고, 그 기준 자체는 자기 시대의 통용되는 범위로 지키도록 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일은 7일에 1일을 지키며 그 1일은 구약에는 안식일이었고 당시 안식일은 유대인에게만 해당된 날이어서 유대인의 하루 계산의 기준으로 했습니다. 오늘은 세계가 자정에서 자정까지로 지키고 있으며 이 기준으로 하루를 지키고 있습니다.
참고로, 날짜 변경선을 넘어갈 때 주일문제와 써머타임 때 발생하는 주일 문제를 백목사님께 문의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쪽은 토요일 오후인데 저쪽은 주일입니다. 그런데 비행기 때문에 주일을 빼고 14일을 계속 살 수가 있게 되었고 토요일 오후에 출발해서 출발지 기준에서는 주일인데 도착지에서는 또 토요일이 되는 등의 혼란을 전제로 문의한 것입니다.
양심으로 생각하여 일반 사람들이 주일이라고 다 알고 다 생각하는 주일을 지키면 된다는 말씀만 있었고 반복하여 재질문을 많이 드렸으나 그 이상은 끝까지 답변치 않았습니다. 답변자는 교리적으로 또 교회사적으로 정리할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말씀치 않았다고 지금도 이해하고 있으며 동시에 목사님 자신이 이 문제를 피해가거나 답변 못 할 내용이 있어 그렇지 않다는 것은 함께 앉아있던 분들도 다 아는 일입니다.
주일을 시간적인 기준에서 법을 세워 보라고 한다면, 주일은 일요일이라고 알고 있는 그 날입니다. 그 일요일이라고 정하는 시간이 써머 타임이나 날짜 변경 등을 통해 움직일 때는 그때마다 세상 변동에 맞추어야겠는가? 각자가 양심으로 생각할 일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각자의 양심에 맡겨놓게 되면 결국 주일 문제는 흐려지게 되어 있고 또 사람이 어려움을 닥칠 때는 이런 저런 해석을 통해 쉽게 해결되는 방향으로 살아나가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까지도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2.모세를 통해 율법을 기록할 때 토요일을 안식일로 한 것은
이미 창2:1-2 에서 천지를 창조하신 다음 제 칠에 안식하시니라 하셨고, 출20:11에서도 동일한 말씀으로 똑똑히 밝혔고 히4:3에서도 이를 다시 말씀하고 있습니다.
3.주일로 바뀐 성경 성구들은
1)골2:16, 안식일을 인하여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구약의 모든 제도를 신약에서 폐하셨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제도 중 신약에서까지 인정한 것은 십일조는 마23:23에서 십계명은 마19:17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래서 구약의 제도 중 그 형식까지를 오늘까지 지키는 것은 십일조와 십계명이며, 십계명 중에서 4계명은 골2:16의 안식일을 폐하신 말씀을 우선 아셔야겠습니다.
2)히3:16-4:11, 제 칠일 안식일을 폐하고 다른 날을 말씀했습니다.
4:4에서 구약성도들이 안식일을 통해 영원한 안식을 준비토록 했으나 이를 실패하여 다시 4:7에서 다른 날을 정했다고 했습니다.
3)위에 있는 두 성구는 안식일이 폐해지고 다른 날이 정해진 명백한 성구입니다.
그렇다면 그 바뀐 날이 주일이라는 말은 어디에 있느냐고 확인하고 싶을 것입니다. 2천년이 지난 오늘도 주일을 위해 죽는 순수한 성도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2천년 전 초대교회 때는 남녀노소 수많은 교인들이 말씀 하나를 위해 차례로 또 기쁨으로 다 짐승의 밥이 되며 수백년을 이어 갔습니다. 그 당시 순교의 자세와 분위기 또한 그 순교를 위해 그 순교의 기준이 되는 말씀을 대하는 것은 오늘 성경도 틀린 데가 있냐 없냐는 논쟁으로 세월을 보내는 때와는 전혀 다릅니다. 신약에서 날짜가 변경된 주일이, 오늘 교회 같으면 정치적으로 또 안식교도들의 주장대로 정권자의 편리를 따라 가감이 가능하고 변경도 가능하지만 당시에는 죽음으로 그 말씀 하나 하나를 지켜 나왔던 때입니다. 주일이 아닌 날을 위해 죽을 사람도 없고 주일을 위해 죽지 않을 사람도 없는 당시의 신앙을 생각해본다면 일요일로 주일을 지켜온 것은, 참으로 생사를 넘어서 믿어본 때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의심할 바가 아닙니다.
자기 어머니를 어머니로 증명을 해 보라고 한다면 적어도 50년 전만 해도 그 길은 전혀 없었습니다. 호적은 조작이 가능한 것이고, 증인도 조작할 수 있습니다. 닮은 것만 가지고 말하려면 그만큼 닮은 사람을 지구를 다 뒤져 찾으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어머니에 대하여 물증이 없어 의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경은 도마와 같은 우리에게 일일이 손과 옆구리를 다 보여주고 확인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물증 자료 용도로만 만들어진 책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차근차근 읽어보면 천국도 하나님 당신도 다 보입니다. 못 보는 사람을 중생되지 않았거나 어린 사람이라 하고 본 사람을 체험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뿐입니다.
꼭 한 가지를 더 더한다면, 계1:10에서 주의 날에 요한이 계시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 주의 날이 예수님의 직접 제자들의 생전에 벌써 있었고 성경에 기록까지 되었다면? 구약의 출애굽기가 이집트 고대사에 기록이 없다고 하여 이를 찾아야 출애굽을 증명할 수 있다는 성경고고학자들이 많습니다만 우리는 보고만 믿으려는 '불신'자들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4.사실 깊은 뜻을 알게 되면 이런 낮은 수준의 반증은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깊은 뜻은 설교록에서 주일에 관련된 많은 내용들이 있으니 시간 나는 대로 좀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찾는 방법은 '백영희관련자료/ 설교록발췌집/주일학교 공과'에서 '안식일'이나 '주일' 관련 공과를 찾은 다음 그 공과가 나왔던 당시 날자의 앞뒤 1주간 정도를 같은 본문으로 살펴보시면 공과에 해당되는 자세한 설교들이 나옵니다.
3. (질문) 안식일과 주일에 대하여 아주 자세히 설명좀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믿음으로 사는지 얼마 안 되는 초보신앙입니다.
안식일과주일에 대해 여쭤 볼려고 합니다.
저희고모님께서 안식일교회 다니고 계십니다.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하는지 힘이 들어서 문의합니다.
목사님말씀을 들어도 이해가 잘 안됩니다. 죄송합니다.
일차창조, 이차창조, 폐하여지고, 새것으로~~~여러면으로 궁금합니다.
그리고 음식(특히, 돼지고기 먹는 부분에 대해서 자세히 어느 성구에~~)먹는
부분도 궁금합니다.
백영희목사님의 깨달음은 어떠하셨는지 안식일 교회의 구원은 어떻게?
(성구와 백영희목사님 관련 설교 내용이 있는 곳도 가르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답변) 관련자료들을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특히 1986년 10월의 설교들을 잘 연구하셨으면
1.혹 다음 자료들을 보지 않으셨다면, 먼저 다음 자료들을 참고하셨으면
주일과 안식일에 관하여 여러가지 면으로 질문이 있었고 또 적지 않은 분량으로 답변해 드렸습니다. 혹 참고하지 않으셨다면 먼저 읽어보신 후 이해되지 않는 부분, 보충 설명이 필요한 부분, 또는 지적하실 부분 등을 다시 한번 질문하셨으면 합니다. 이미 참고하셨다면 그렇다고 한번 더 글을 올려주셨으면 합니다.
-참고 자료 : /총공회/연구실/문의답변방/에서
------------------------------------------------------------------
12번 '[교리]주일은 안식일이 아니다!' 주경운00/02/01
11번 'Re: 안식일이 주일로 변경된 것은 이렇습니다.' yilee 00/02/03
106번'창조주의 전능으로 다시 한번 살펴보셨으면' yilee 00/08/26
356번'[성경]주일은 이방인의 태양신 숭배일로 유래' email 01/09/13
355번'1.이단의 글들에 대한 상식 한 두 말씀 먼저' yilee 01/09/14
354번'2.주일을 반대하는 이단들의 전형적인 내용' yilee 01/09/14
353번'[성경]'주일의 깊은 의미'를 알고 싶습니다' email 01/09/13
352번'여기서 다 살필 수는 없습니다만 약간' yilee 01/09/14
472번'[생활]주일성수, 십일조' 박수인01/12/06
471번'주일은 그 기준을 먼저 아셨으면, - 보충' yilee 01/12/06
473번'실질적으로 '주일성수'는 육체의 생사문제' yilee 01/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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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앞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은 부분에 대하여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1)레위기 11장에 먹을 것과 금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토끼와 돼지를 예로 들면서 부정하니 먹지 말라고 6-7절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2)안식교인들의 구원은
구원은 오직 예수님 믿는 믿음으로만 얻는 것입니다. 어떤 종류의 인간 노력이라 해도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고 한다면 단정하고 이단입니다. 기본구원 자체가 없는 분들입니다. 안식교는 토요일 안식일을 지킴으로 구원얻는 것을 교리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단입니다. 이단이라는 말은 불교나 유교와 같다는 말입니다.
행4:12,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행16:31,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3)다른 자료 및 백목사님 설교 자료, 추가 질문
성구는 위의 자료들 중에 충분할 것 같습니다. 필요하면 더 말씀하시고 또한 백목사님 설교 내용은 다음 설교들을 위주로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언제든지 추가질문과 재질문을 하셨으면 합니다.
백목사님 설교 자료 중에서 다음 내용들을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공과는 초기화면 '공과'에서 찾으시면 됩니다.)
1986.11.2. 제15공과 본문:히4:3-7. 제목: 다시 안식일로 정한 주일
1980.10.19.제42공과 본문:히4:1-3. 제목: 주일
--------------------------------------------------------------------(많은 설교 중에서도 1986년도에 안식교 문제가 있어 집중적으로 설교한 내용들이 있습니다. 특히 10월 설교들을 잘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1986.5.8.
1986.7.7.월새
1986.9.20.토새
1986.10.19.주전/주후
1986.10.22.수야,23.목새,24.금새.금야.25.토새,26.주새.주전.주후.
1986.10.29.수야
4. (질문) 첫 안식일의 실패 원인, 주일날 받은 은혜
문의답변검색을 통해서
주일에 대하여는 여러 면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그곳에 없는 내용을 질문 하겠습니다.
1.첫 안식일은 육체의 이스라엘이 불순종으로 실패 했다고 하는데
무엇을 불순종해서 실패했나요?
2.그리고 주일을 보내는 우리에 자세를 말씀해주시고,
주일날에 우리는 어떤 은혜를 받습니까?
평일날은 은혜를 받지 못하나요?
(답변) 1.히3:15-4:11 전체 주해 2.주일날 예배시간의 말씀 은혜의 의미
1.히3:15-4:11에서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말씀했는데, 불순종했던 당시를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히브리서 3장 15절부터 4장 11절까지를 읽어보시면 모세를 따라 가나안으로 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순종하지 아니하여 광야에서 멸망받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히브리서 3장과 4장에 대한 실제 역사는 구약성경의 출애굽기에서 신명기까지를 읽어보시면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던 수많은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교회를 오래 다니지 않아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역사에 대하여는 많이 들을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요셉이 애굽에 팔려가고 그곳에서 총리가 된 후 흉년이 닥치게 되자 아버지 야곱과 모든 형제들이 애굽으로 이주를 합니다. 그리고 4백년이 흘러가게 되자 그 후손은 많아졌는데 애굽의 바로왕이 이스라엘백성들을 탄압하여 전멸을 시키려고 할 때 모세가 출생하고 모세가 80세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다시 데려오게 됩니다.
바로왕이 10번이나 막고 나섰지만 하나님께서 10가지 재앙으로 쳐서 출애굽을 하게 되는데 출발하자말자 바로 홍해바다가 가로막았고 3일후에는 물이 없어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이후 광야생활을 통해 전쟁도 있었고 내부 반란도 있었고 인간으로는 도저히 갈 수 없는 수많은 고난과 환란이 있었습니다. 이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늘 불평했고 원망했고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던 많은 기록들이 있습니다. 40년 광야생활을 통해 이스라엘의 범죄가 많았는데 이 면을 두고 순종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2.히3:15-4:11 본문 전체를 절수를 따라 잠깐 살펴드리면
'하나님 말씀이 있으면 순종을 해야지 거역하여 노하게 하면 안 된다, 그런데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하나님을 격노케 하던 이들이 이스라엘 광야 40년이다,
원래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킬 때 목적은 가나안 고향땅에 돌아가 평안하게 사는 '안식'을 받게하려 했는데 광야 40년간 하나님 말씀을 늘 거역하고 불순종하기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중간에 광야에서 다 죽게 되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평안한 안식을 얻기 위해 가야 할 고향 가나안이 있었던 것처럼, 오늘 믿는 우리에게도 우리가 말씀대로 순종하게 되면 하늘나라의 영원한 안식을 순종한 것만큼 받아가지게 되는데, 만일 하나님 말씀을 순종치 않으면 광야 이스라엘이 본향으로 가지 못하고 광야에 그 시체를 썩게 했듯이 우리도 천국에 가져가야 할 우리의 실력과 생애를 세상에서 썩혀버리고 가져가지 못하게 된다,
구약 이스라엘이 이렇게 가나안에 들어가서 평안하게 쉬는 안식을 받으려면 말씀에 순종을 해야 했고, 순종을 하게 되려면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대로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받아야 했는데, '안식일'이라는 것은 바로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대로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받는 날인데, 이스라엘백성들은 안식일을 지킬 때 주의해야 할 껍데기 준수사항만 지켰지 안식일날 배워야 할 말씀 내용은 배우지 않았고 또 그 말씀대로 실행할 능력은 받지를 못하고 지내왔다, 그래서 안식일의 껍데기는 지켜도 그 내용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항상 하나님의 명령이 나오면 이해하지 못했고 거부했고 강퍅하게 맞서다가 결국 다 죽게 되었다,
오늘 신약은 천국의 영원한 안식을 준비하는 때이고, 지금 살아 생전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을 받아 순종으로 걸어갈 때 그 순종한 것만큼 천국의 안식을 누릴 수 있는데, 구약성도들이 '안식일'을 통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는 '말씀순종'을 얻지 못하여 이제 신약교회에는 '주일'을 통해 다시 한번 영원한 안식을 준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으니 구약 성도들의 본을 따르지 말고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자,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생명이며 능력이고 그 말씀이 우리 속을 다 꿰뚫어 보고 마지막에 심판하여 상과 벌을 주실 것인데 다행히 예수님께서 우리 연약함을 아시기 때문에 우리가 당할 시험을 이길 수 있도록 은혜로 인도하실 것이니 주일을 통해 말씀을 배우고 순종하는 능력을 받아 이 세상에서 천국의 안식을 지금 준비하도록 하자'
3.질문하신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①
>1.첫 안식일은 육체의 이스라엘이 불순종으로 실패 했다고 하는데
>무엇을 불순종해서 실패했나요?
>
홍해바다의 어려움 물없는 어려움 고기먹지 못하는 어려움 등 광야 40년 동안 어려움을 만나기만 하면 일단 하나님께 원망하고 하나님을 믿고 따르지 못하겠으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심부름꾼인 모세를 죽이고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일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전체적으로는 '불순종'이라고 했는데 그 불순종한 사실은 출애굽기에서 신명기까지 많이 기록하고 있으니 직접 이 면을 두고 구약을 읽어보셔야 압니다. 아주 대표적인 것 몇 가지는 앞에서 잠깐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첫 안식일에 대한 실패'는, 하나님께서 어디로 인도하던 그 말씀을 믿고 따라만 가면 되는데 왜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거부를 하고 강퍅하게 반항을 했는가? 7일 중에 1일을 안식일로 지켜야 하는데 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외부로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지키는 것이지만 알맹이로 지켜야 할 실제 안식일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는지를 안식일을 통해 배우고 또 현실 속에서 순종할 때 어떤 어려움이 있을 것도 배우고, 어려움이 있다 해도 순종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안식일에 받아야 안식일을 바로 지키는 것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일날 일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안식일을 전부 지킨 줄 알고 안식일에 받아야 할 말씀 순종의 실상은 빼놓았습니다.
이것 때문에 구약 이스라엘은 안식일을 지키는 일에는 물불 가리지 않고 철두철미했던 것처럼 보이는데 실은 안식일을 바로 지키지 않았고 그래서 안식일을 바로 지켜야 하는 명령에도 불순종한 것이 되었고, 또 그 안식일을 지켜서 평소 생활에서 어려움을 이겨야 하는데 평소 닥치는 어려움에서 전혀 순종을 하지 못했으니 이 면을 두고 이스라엘이 첫안식일을 두고 불순종으로 멸망을 받았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②
>2.그리고 주일을 보내는 우리에 자세를 말씀해주시고,
>주일날에 우리는 어떤은혜를 받습니까?
>평일날은 은혜를 받지 못하나요?
이제 구약 이스라엘 역사를 가지고 간단하게 살펴보았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우리 생활 속에서 주일을 어떻게 지키고 또 주일을 지켜서 평일의 세상생활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결론이 나온 것 같습니다.
주일날 직장 가지 않고 공부하지 않고 예배 출석을 하게 되면 주일을 잘 지킨 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한 것을 두고 주일을 지켰다고 한다면,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을 그렇게 잘 지키고도 멸망받은 것처럼 우리도 평생 잘 믿은 것 같은데 훗날 천국에서 계산해보면 아주 외식으로 껍데기 생활만 하다가 인생을 헛살았다고 결산할 것입니다.
주일날 이것 저것을 하지 말아야 하고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은,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 속에 역사하는 성령의 감화와 감동을 받아 내 속이 변화되고 회개하고 앞으로 살아갈 한 주간동안 어떤 어려움이 실제 닥쳐도 이제는 말씀대로 그 현실을 바로 살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가 되어져야 정말 주일을 바로 지킨 사람입니다.
이런 점에서 주일에 대한 바른 자세를 두고 이곳 홈에서는 여러번 살펴본 문답들이 있으므로 우선 검색을 통해 다시 살펴주셨으면 합니다. 요약해서 몇 가지 중요한 것을 말씀드린다면
주일은 날 중에 제일 귀한 날입니다.
예배시간은 시간 중에 제일 귀한 시간입니다.
예배에 실패하면 주일을 실패한 사람입니다.
주일을 실패하면 한 주간을 다 실패한 사람입니다.
예배의 중심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은혜는 전부 말씀에 담아 말씀을 통해 주십니다.
주일 말씀 속에서 세상이 무엇이며 어려움이 무엇이며 순종이 무엇인지를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순종을 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바로 배워 바로 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면
그 사람은 한 주간 생활 속에서 말씀대로 산 것만큼 천국이 마련됩니다.
그 양이 바로 건설구원의 양이며, 그 실패가 바로 건설구원의 멸망입니다.
이 생활이 바로 되었으면 주일을 바로 지킨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또 다시 안식일 실패입니다.
5. (질문) 안식일==>주일에 대한 히 4:7 말씀에 대하여
안녕하십니까?
평소 관심있게 이 홈페이지를 찾아보는 주일학교 반사입니다.
홈페이지 문의답변에 나온 주일성수에 관한 글 중에서 아래 부분에 의문이 있어 질문드립니다.
--------------------------------------------
2)안식일의 변경:
히4:7에서 안식일 대신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라고 안식일 변경까지 분명히 했습니다.
--------------------------------------------
위의 히 4:7 말씀을 인용하셨는데요, 제가 히브리서 3장-4장까지 여러번 읽어보았습니다만 히 4:7 말씀은 안식일을 주일로 바꾸게 되었다는 말씀은 아닌 것 같습니다.
히브리서 3-4장 말씀은 우리가 새로운 안식에 들어간다는 말씀이며,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간 것이 참 안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앞으로 또 다른 안식을 누릴 일이 남아 있다는 뜻으로 풀이 됩니다.
물론, 안식일이 참 안식의 그림자임은 분명합니다. 또한 우리가 주일을 성수함은 앞으로의 참 안식을 이 땅에서 소망하며 누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히 4:7 말씀은 주일과 일말의 관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히 4:7 말씀이 안식일=>주일 로 변경되었다는 직접적인 근거라고 보기에는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런 저런 말씀을 덧붙인다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학교 교사로서 저는 평소 성경을 풀이하거나 해석할 때 "말씀이 가라하면 가고, 말씀이 서라하면 서라"는 신념으로 성경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제가 성경을 가르치면서 항상 마음에 다짐하는 몇가지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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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3: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요한계시록 22:18-19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베드로후서 3:15-16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잠언 30:5-6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 너는 그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하는 자가될까 두려우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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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제가 지금 논하는 히 4:7 말씀은 아주 사소한 부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 말씀이니, 제가 두려울 수 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되어야 되며 한구절이 아닌 전체적인 흐름에 따라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성경 구절을 인용할 때에는 그 내용이 분명한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될 때에만 인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성경해석이 잘못되었다면 지적해주십시오.
건강하십시오.
(답변) 주일교리의 성경근거 - 교리 서론과 교리 논쟁의 관점에서 본
1.넓은 마음과 냉정한 평가로 지적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①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보통 반대를 할 때는 너무 지나치게 반대를 해서 탈이고
또 그렇다고 설명을 할 때는 너무 지나치게 논리를 동원해서 탈이 생기는데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도 넓은 마음과 냉정한 설명을 유지해 주셨다고 읽었습니다.
이런 자세라면, 서로가 차분하게 대화가 가능하고 또 연구 건설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②필요하시면 '발언/주제연구' 게시판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번 답변에 대하여 순수하게 재질문 하실 것이 있다면 이 게시판에서 글을 계속 적으시고, 만일 반론자의 입장에서 이곳을 향해 설명하고 싶다면 이 글의 주제를 현 게시판 바로 밑에 있는 '발언/주제연구'로 옮겼으면 합니다.
참고로 이번 질문 내용은 기독교 교리사에서 오래 되고 중요한 논란 중의 하나이므로 - 질문하신 분의 신앙과 자세와는 상관없이 - 이곳을 찾는 분들 중에서 안식교의 논리를 접하며 혼동하는 분들 또 상대방에게 설명을 해야 하는 분들을 고려하여 약간 변론적으로 답변을 하겠습니다. 깊은 양해를 구합니다.
③질문 내용 중 질문자의 다음 3가지 표현을 이번 답변의 핵심으로 삼아보았습니다.
'히4:7 말씀은 주일과 일말의 관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됩니다.'
'물론 이런 저런 말씀을 덧붙인다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씀이 가라하면 가고 서라하면 서라는 신념으로'
2.‘일말 기록’의 성경과 ‘일말을 연결’하는 교리의 관계
①성경의 ‘일말’을 가지고도 성경의 근거를 삼는 이유는 성경기록의 원칙
이번 질문과 관련하여 강조하고 싶은 것은
성경 기록의 원칙 중 기록 분량에 대한 원칙은
‘전부 기록’이 아니고 ‘요약 기록’입니다.
이번 질문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성경기록은 전부 기록이 아니고 ‘일말 기록’이 원칙입니다.
요20:30-31, 21:25에서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 두기에 부족’하다 했습니다.
어떤 내용은 자세하게 기록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내용 전부는 아닙니다.
어떤 내용은 적게 기록한 대신 다른 곳에서 충분히 보충했습니다.
어떤 내용은 ‘일말’만 기록한 다음 성경 전체에 산재한 내용을 찾도록 한 것도 있습니다.
성경이 성경의 기록 원칙을 스스로 이렇게 정하고 발표를 했으므로
성경 일말의 기록을 가지고 성경 다른 부분을 찾고 맞추어 나가는 것을 금한다면
이는 성경에 철저한 신앙이 아니고 오히려 성경을 정면 거부하는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②안식일 기록을 통해 살펴본 성경 기록과 교리의 관계
안식일에 대한 성경 기록은 창세기 1장 내용 전부로부터 시작됩니다.
6일동안에는 창조가 있었고 7일에는 안식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6일의 창조는 그 과정이 낱낱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물론 일부일 뿐입니다만.
그러나 안식일에 대한 내용은 완전히 비어 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쉬기만 하여 비어 있는 날로 아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이전에는 공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1장에서 비워놓은 안식일의 내용은
그 내용이 너무 많고 또 한꺼번에 기록해서는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에
구약성경 전체를 통해 안식일을 수도 없이 기록하고 가르치기 위해
창세기 1장에 모아서 기록하지 않고
성경 전체에 안식일을 펼쳐놓고 다른 기록들과 함께 기록되도록 흩어놓은 것입니다.
알고 보면 안식일에는 채울 것이 없어 창세기 1장에서 그 기록을 비워둔 것이 아니고
안식일의 내용은 너무 많아서 창세기 1장 뒤에 기록하려고 통째로 비워둔 것입니다.
만일 창세기 1장 한곳에 모아놓고 안식일을 전부 다 기록하려면
그 기록 분량은 현 성경분량과는 비교되지 않도록 많아질 것이나
성경은 안식일만을 가르치려고 기록한 것이 아니고 우리 구원 전반을 위해 기록했으므로
전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칠 모든 내용을 최소한으로 요약하시면서
그 최소한의 요약을 위해 성경에 담을 모든 내용을
현재처럼 일말들의 구성을 통해
외부로는 단순하게 한 가지 사건을 기록한 것 같지만
그 내용으로는 영원무궁토록 펼쳐질 무한의 진리를 전면적으로 함축해 놓았습니다.
안식일 내용 하나만으로 예를 든다면
어떤 곳에는 집중적으로 기록하고 어떤 곳에서는 다른 내용에 얹어 일말을 흩뿌렸습니다.
우리의 지혜로는 이런 사실을 짐작조차 할 수 없었으나
성경이 그렇게 기록했다고 직접 말씀하시고 성경 기록이 실제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알고 설명하게 되는 것입니다.
③성경이 가라는 데까지만 가라는 표현과 교리 연구의 관계
주일로 변경된 모든 과정을 성경에서 선명한 기록으로 보자는 분이 계신다면
성경은 어떤 내용도 그렇게 기록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하겠습니다.
성경을 가지고 이번 질문자의 희망처럼 우리가 원하는 내용을 한곳에서 다 기록한 것을 보자고 한다면 그렇게 보여주는 대목은 단 1개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기록의 원칙을 알고 성경이 꼭 필요하여 곳곳에 표시해 두신 일말을 찾아 나서고 그 일말들을 연결시켜 나가다 보면 우리가 구원에 필요한 것은 성경을 통해 찾아내지 못할 것은 또한 하나도 없습니다.
질문자께서 답변자가 앞선 글에서 설명한 주일 문제를 두고 일말의 연결성을 보셨다면
그 일말을 가지고는 성경의 근거라고 할 수 없겠다고 표현하시는 것보다는
차라리 질문자께서 현재 성경의 여러 곳을 찾으며 과거 안식일을 그대로 지키는 것이 더 성경적이지 않겠느냐고 일말들을 구성하고 있는 안식교식 교리와
답변자처럼 안식일이 주일로 바뀐 것이 성경이 알려주신 일말들의 원래 알려 주시려는 전체 모습이라고 교리를 구성하는 기독교식 교리를 두고
어느 것이 성경의 원래 가르침이겠는지를 살펴봐야 할 문제라고 이 문제를 접근하시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만일 이곳의 주일 설명이 질문자 생각에 성경 그 어디에 어떤 일말의 가능성도 없다고 생각하신다면, 아예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이 그 생각은 인간 생각일 뿐이라고 단정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일말의 근거와 여러 설명으로 연결점이 나올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 이것이 바로 교리연구일 것입니다.
교리는 성경에 없는 것을 인간이 지어내는 것이 아니고
성경이 감추어두고 우리에게 찾아내라고 명령한 것을 순종하는 것이니
교리가 바로 연구된다면 이는 성경이 가라는 곳을 진정 가는 사람이고
성경이 일말을 보여주며 저 멀리 가보라고 지시하는데도
성경이 다 기록하기 전까지는 그곳으로 가지 않겠다고 한다면
이는 성경을 정면 반대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이 안식일을 주일로 바뀌었다며 일말만 보여주고 가라고 했다면
이곳처럼 그 일말을 가지고 성실하게 살펴 이렇게 주일을 지키는 것이 성경입니다.
만일 성경이 가라고 하는데도 성경 한곳에 주일로 변경된 모든 기록을 보여 달라 한다면
이는 성경이 가라는 데로 가지 않는 거역이 됩니다.
성경을 지키는 듯한데, 지키지 않는 것이 있고
인간이 지어내는 것처럼 보이는데, 삼위일체 교리처럼 실은 성경에 감추어 둔 것도 있습니다. 성경에 감추어두었다고 표현하는 것은 우리가 어두울 때 눈으로 봐서 그렇지 영안이 밝아지거나 아니면 배워서 알고 나면 훗날에는 너무 쉽고 간단해서 무슨 논쟁이 될 필요도 없었던 것이라는 뜻입니다.
3.현재 질문자의 정확한 위치는 모르겠지만, 이 문제로 일반적 설명을 드리고 있습니다.
①질문하신 주일의 성경적 근거의 의미
믿는 사람이면 안식일과 주일 문제를 두고
교파에 상관없이 처음에는 위에서 가르치는 대로 그런 줄로만 알고 나오다가
어느 날 성경 어디를 근거했는지 심각하게 자문자답을 하게 되거나
아니면 안식교인들을 통해 충격적인 도전을 받게 되면서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이번 질문자께서는 어느 위치에 서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안식교의 공격이라 해서 달라질 것이 없고
교회 내의 순수한 분들이 자연스럽게 자문자답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없습니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성경의 기록 원칙이 일말기록 원칙이고, 그 원칙은 하나님의 결정이며
일말기록의 원칙으로도 모든 종류의 내용을 전부 다 알 수 있도록 기록되었으니
우리의 노력은 성경을 가지고 성경이 어느 방향으로 어디까지 가라하는지를
살펴보고 따져볼 뿐입니다. 이것을 순종이라고도 하고 믿음이라고도 합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주일로 알았던 사람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안식일이 옳은 줄 알았던 분들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일말기록의 원칙 때문에
어느 정도 성경을 아는 분들끼리 논쟁을 하게 되면 결말은 나지 않습니다.
어떤 교리든지 마찬가지입니다.
여론 재판은 가능하고, 대세를 쥔 쪽에서 처벌을 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성경이 그 기록의 원칙을 일말기록의 원칙이므로
성경으로 상대 교리를 명확하게 정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도 교회가 감히 이단과 정통을 가려서 발표하고
이 홈도 그렇게 하고 있는 이유는
성경 안에는 성령의 내재 영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영감이란 각 사람이 자기 주관과 혼동을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도 열매로 나무를 판별할 수 있기 때문에
누가 영감을 팔아서 자기 일부러 거짓말을 하든
아니면 순수하게 잘못 알아서 오해를 했든
교리의 정통과 이단 여부는 하나님 앞에 서기 전, 이 땅 위에서도
하나님의 섭리 역사의 진행을 따라 약간의 과거를 ‘역사’라는 이름으로 살펴보면
단번에 지나간 논쟁들의 결과를 알 수 있고
현재 진행 중인 교리들은 약간의 미래가 되어야 확실하게 단정할 수 있겠지만
미래를 염두에 두고 지난날을 잘 살펴보면 거의 파악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②성경연구와 자연의 섭리 역사
성경 연구를 하다가 왜 세상 지나온 역사를 들고 나오는가!
불신자도 알 수 있는 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넓게 말하면 인간의 역사도 포함합니다.
교회로 말하면 성경을 엄하게 잣대로 삼은 다음
교회가 걸어온 역사를 이 잣대로 다시 놓고 살펴보면
성경기록은
성도가 실제 구원을 이루어가며 살아야 하는 현장에 이어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실험실 내의 이론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모든 교인들이 자기 평생의 매 현실에서 유일하게 붙들고 살아야 하는 현장 지침입니다.
따라서 성경연구를 하다가 일말들의 연결을 아무리 찾아도 애매하고 어려운 지경이 오면
그 빠뜨려진 연결 부분의 중요한 대목은
바로 우리 모든 교인들이 자기 현실에서 너무 상식적으로 알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미리 자연계시 속에 밝혀놓은 부분이 아닌가 하고 찾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안식일을 두고
일단 이곳의 주장을 ‘일말’이라도 가능성은 있고
또 이곳의 주장이 ‘이런 저런 여러 가지 말로 조합을 하다 보면 연결’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셨다면
이곳은 그것이 성경 연구의 완벽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확대해석을 해 드리고 싶습니다.
안식일이 주일로 변경된 증거 중에 가장 확실한 제1차 증거가
‘성경의 일말’이고 그것이 히4:7 등이라고 한다면
안식일이 주일로 변경된 보충 증거이면서 제2차 증거가 될 수 있는 것은
교회의 2천년 내려온 역사입니다.
2천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이
한국교회 초기 순교사에서 주일 때문에 당한 박해는
오늘 주일을 하나의 선택으로 보고 노는 것 반, 예배 반으로 아는 세대로서는
전혀 느낄 수도 없겠지만
이 홈과 같이 아직도 이전 주일을 지키기 위해 직장과 평생과 결혼과 자신의 인생 모든 것을 뒤로 접어두고 신앙생활을 해 오는 교단에서는, 과거 주일 때문에 순교한 분들의 실력에는 미치지 못해도 어떤 분위기에서 어떤 과정을 통해 순교했다 하는 것은 파악하고 있습니다.
③예수님의 승천 이후 사도행전과 그 후 교회 역사의 증거
사도행전을 이어 250여년 로마 박해 속에서 수없이 순교했던 당시의 분위기보다
10분의 1, 100분의 1의 분위기밖에 되지 않는 오늘 이 노선 이 공회 분위기에서만 해도
주일과 안식일의 문제에 대하여서는 혹시 잘못 깨달아서 잘못 주장하는 수는 있을지라도
무슨 세상 국경일이나 주5일근무제와 섞어 타협적으로 넘어가려는 의도에서는 나오래야 나올 수가 없습니다. 하물며 초대교회이겠습니까?
총공회라고 하는 오늘 21세기 신앙노선의 중심지에서조차
주일을 지키는 것은 세상 주5일근무제를 편리하게 응용한 것이 아니고
주일은 주일이기 때문이며
주일은 교회가 이어져 지켜온 것이므로 그대로 나가는 것이지
오늘 노동환경의 변화된 근무일제도를 고려한 것이 아닙니다.
이런 사실을 오늘 공회 교회에서 역사 기록을 위해 남겨 두지 않는 이유는
너무도 환한 문제이므로 따로 기록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해서 그렇지
감추어야 할 문제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하물며 역사 기록이나 사도행전 종료시점 전후를 두고
오늘 우리에게 명확하게 기록으로 남지 않는 주일로 변경된 역사 때문에 안식일이 주일로 바뀐 것은 잘못이라는 주장들이 많지만 그 대목은 오히려 정반대의 논리를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이미 말씀했고 사도들이 신약교회를 그렇게 출발시켜 세웠고 그것을 이어 대규모 순교를 통해 피로 지킨 초대교회 역사 전부가 이 사실을 두고 따로 살필 필요가 없는 하루 세끼 밥 먹는 정도의 상식이므로 따로 기록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아마 오늘 대한민국의 역사를 공식적으로 기록하는 총무부나 사학단체가 있다면 2005년 5월 7일을 기록하면서 오늘은 해가 동쪽에서 떴다는 사실을 적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늘의 해가 동쪽에서 떴다는 그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 사실은 해가 서쪽에서 떴다는 것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당연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즉, 어느 누구라도 정말 신앙을 위해 모든 것을 다 포기하면 교리 하나와 말씀 하나를 지키려는 사람들이라면, 다른 문제도 아니고 주일 문제를 두고는 사도행전의 사도들을 통해서 주일이 전해지지 않고는 초대교회가 로마박해에서 그 많은 세월동안 그렇게 주일을 지켜 내려올 수가 없었고, 또한 로마의 신앙자유 선포 후에도 교회가 여러 형태로 급격하게 타락을 했다 해서 당시 교회가 선택했던 성경과 하나님도 잘못되었다는 논리로 비약해서 불교가 옳다고 말한다면 안 되는 것처럼, 그 당시 타락이 주일을 혼동하는 방향으로 나가지 않았다는 것은 역사의 초보를 짐작하는 사람이라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열매로 나무를 안다는 표현이 바로 이런 자연계시로 알 수 있는 성경 해석이고
이렇게 자연 계시의 섭리 역사를 통해 환하게 알 수 있는 부분은 성경이 자세하게 기록하지 않고 성경의 기록을 줄이고 그대신 우리 각자가 알 수 있는 부분은 우리에게 맡겨놓고 우리 속의 성령의 인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집에 가서 과외를 받거나 자습을 해서 보충할 수 있는 내용은 수업시간에 그냥 넘어가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4.주일변경 문제를 두고 안식교의 미혹이 많아서 이번 답변은 좀 길었습니다.
질문자와 상관없이
이 문제로 살펴보는 분들이 많을 것 같고
이번 질문은 이렇게 답변하기에 좋은 질문이어서
질문자를 고려하지 않고 일반적인 사안으로 설명을 길게 했습니다.
양해하시고 단순한 자료로 봐주셨으면 합니다.
6. (질문) "주의 날"을 주일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약간 무리가 아닌지
살전 5:2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살후 2:2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
벧후 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계 1: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답변) 살전5:2, 살후2:2, 벧후3:10의 주의날은 재림을 말합니다.
여러번 이 홈에서 주일 관련 날자 변경 문제를 문답한 적이 있습니다.
과거 자료를 참고하셨다는 전제로, 이번에는 약간 다른 면으로 설명을 드립니다.
1.예를 드신 성구들은 2가지로 분류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에 예를 든 3가지(살전5:2, 살후2:2, 벧후3:10) 성구는 분명히 재림을 말합니다.
마지막에 예를 든 계1:10은 사도요한이 계시록 기록을 위해 주님을 만난 날입니다.
2.앞에 예를 드신 3가지 성구는 재림날입니다.
따라서 주님이 이 세상의 왕으로 오셔서 세상을 완전히 정리하는 날
세상 전부가 완전히 주의 것이 되는 '주의 날'이라는 의미의 앞에 3곳 성구는
재림 또는 재림과 같은 성격의 세상 종말적 일자를 말합니다.
3.계시록의 주일
①계1:10의 '주의 날'의 의미를 다시 한번 살펴보셨으면
계시록 1장 전체를 우선 차분하게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계1:10을 중심으로 요한에게 일어나는 변화도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이 계1:10의 주일 날은....
'요한이 새롭게 함을 받는 날'
'과거 살아온 걸음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돌아서는 날'
'이 세상 신앙생활 과정에서 돌변하는 은혜를 받는 날'
'평소 보았지만 보지 못하고 살다가 새롭게 영안을 뜨게 되는 약속의 날'
.....
.....
이런 성격의 날입니다.
②구약의 안식일과 비교한다면
구약으로 말하면 7일 중에 이런 은혜와 변화를 주시는 날은 바로 안식일입니다.
구약 성경을 통해 안식일의 의미를 살펴본다면
그런 종류의 안식
그런 하늘의 신령한 은혜를 받게 되는 날을
날 중에서 골라 본다면 '월'도 아니고 '화'도 아니고 ..... '안식일'이었습니다.
③구약 안식일의 변경은 히4:7에서 확실히 말씀했습니다.
안식일을 통해 구약 이스라엘이 그 은혜들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예수님이 오셨고 신약이 시작되었으며 신약의 은혜 방편은 모든 것이 예수님 중심이므로
히4:7에서 구약 안식일을 대신하는 새로운 날을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어느 특별 사안에 대하여 단정적으로 기록하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
안식일의 변경만큼은 아주 명확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④그렇다면, 변경된 그날은 어느 날인가?
일, 월, 화, 수, 목, 금요일 중에서 어느 날이 안식일을 대신하게 되었는가?
이미 신약이 시작되는 초두가 4복음으로 기록되었고
그후 초대교회로 이어지는 시기가 사도행전에서 확고하게 기록되었으므로
우리는 토요일 안식일 외에 특별하게 기록된 날을 날들 중에서 찾아본다면
그날이 토요일 다음 날인 일요일이라는 데에 도저히 주저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8일'
'안식후 첫날'
'부활하신 날'
바로 이 주일날이 신약교회가 모이기를 힘쓴 바로 그 날입니다.
신약의 중심이 주님이고
주님의 부활은 모든 날 중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는 진정한 새날입니다.
신약의 시작이요
우리의 생명이 중생으로 시작되는 날이며
우리의 하나님 향한 모든 건설의 중심이며 시작이며 전부입니다.
안식일이 다른 날로 바뀌었다면 주일이라는 것은 달리 생각해 볼 여지가 없었고
예수님 이후 제자들, 그 제자들을 이어온 신약 오늘까지 이 날을 지키려
순교의 피로만 이어온 정통 교회 내부에서는
주일은 주님 부활 후 신약교회가 날 중에 유일하게 지켜 온 날이므로
이 날에 대한 역사적 연결은 끊어질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누가 어떻게 불사르고 없애려 애를 썼다 해도
성경이 교회의 제일 중심에서 이어져 온 것과 같습니다.
⑤너무 쉽고 간단하고 명확한 것일수록 기록이 불필요합니다.
조선 500년 왕조실록이 500년 조선국정의 모든 것을 다 기록하고 있지만
임금들이 매일 숨을 몇 번 쉬었는지는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임금들 중에는 귀나 코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근거로 귀나 코가 없던 임금이 있었다고 표현하려면 조선왕들 거의 전부가 아마 장애자라 해야 할 것입니다.
너무 당연한 것은 오히려 기록에서 빠집니다.
이것이 성경을 억지로 풀어 오해하는 이들에게 늘 이야기거리가 되지만
한번 그 면을 알게 된 사람에게는 성경이 기록하지 않은 엄청난 분량의 과거 기록을
자기 마음의 영안이 밝아지는 만큼 엄청나게 많은 양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원래 정통교회를 이어오는 곳에서는 주일 관련 질문이 질문으로 성립되지 않습니다.
교회를 흔들어보려고 귀신이 던지는 밑져봤자 본전식의 장난입니다.
정상적인 남한국민들에게 6.25가 북침이냐 남침이냐는 질문은 질문이 될 수 없는데
북한에서 남쪽에다 밑져봤자 본전식으로 던진 것이 의외로 남한사회의 1990년대를
어지럽게 만들었고, 오늘까지 그 잔불이 남아 사회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6.25를 거쳐본 사람들
거쳐보지 않아도 남한 내에서 6.25의 흔적을 체감할 수 있는 이들에게는
모든 문제가 너무 환한 것인데
이것을 남의 나라 일로, 학적인 말 장난으로 한번 던져보는 사람들에게는
역사 1천년이 더 지나가도 갈수록 숙제거리가 되지 명쾌하게 끝날 문제는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 역사에서 우리가 자연계시로 볼 수 있는 현상 중 하나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세계 내에서 제기 되는 몇 가지 말도 되지 않는 소리인데
실은 신앙어린 이들이게 심각한 타격을 입히는 악령의 깊은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이 존재하는가?
성경이 과연 정확무오한가, 하나님의 말씀이 정말 맞는 말인가?
하나님이 과연 삼위일체인가?
주일이 과연 안식일의 변경된 날인가?
바로 믿고 나온 이들에게는 이런 것은 질문으로서 성립이 되지 못하고
신앙에 의심이 있는 어린 시절에는 이 하나 하나가 전부 신앙 뿌리를 흔들어 놓을
사안들입니다.
4.주일문제는, 안식교와 여호와증인을 앞세워 말세 교회를 흔드는 악령의 유혹입니다.
6.25가 진행되던 3년 동안은 남침과 북침 문제가 거론될 리가 없었습니다.
6.25가 지나고 세월이 흘러가고 나니까 이런 말도 되지 않는 소리가 나옵니다.
밑져야 본전이니까 그냥 내놓는 것입니다.
6.25 당시 사람들에게는 체험적 지식이므로 따로 증명이 필요없는 사안이므로
그런 소리를 하면 미친 사람 소리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일단 지난 오늘에 그 말을 하면
남침이라 하는 사람도 남침을 눈에 보여주며 증명할 수 없고
북침이라 하는 사람도 북침을 눈에 보여 줄 증거로 증명할 수 없으니
실제는 남침이지만 북침을 주장하는 사람으로서는 북침을 주장해서는 손해 볼 일이 아닙니다.
안식일이 주일로 바뀐 것은 초대교회 시절에는 직접 목도한 일인데
초대교회에서 멀어져 역사가 지나갈수록 이 사안은 말로만 따지다가 서로 상대방에게 눈에 보여줄 증거가 남지 않는 과거사이므로 주일을 부인하는 이들에게는 밑져야 본전식 장난거리가 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경의 명백성과 보편성입니다.
성경은 어떤 누구라 해도 쉽게 다 같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정말 믿는 이들이라면 성경을 조금이라도 차분하게 읽으면 구약의 안식일이 주일로 변경된 것은 너무 쉬워서 두번 재론할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세상 증거주의 법정처럼 상대방에게 그들의 눈에 보이는 증거로 증명하고 그런 증거에 의하여 믿으려는 이들에게는 죽는날까지 연구해도 밝힐 수 없는 문제입니다.
이런 점에서 백영희신앙노선은
이런 문제와 관련하여 정통신학이 세상이 말하는 과학적 방법으로 이런 논제를 증명하려는 모든 노력을 헛되다고 반대하고 그런 노력을 하는 순간 그 신학은 이미 악령에게 넓은 면에서 삼켰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재질문) 참으로 맞는 말씀인데 어린 신앙에게는
질문한 사람도 살전등의 성구는 재림을 말한다고 생각했는데, 혹시 요한계시록의 '주의 날'도 재림을 말하는 성구가 아닐까 해서 질문을 드렸습니다.
히브리서 말씀도 한 1년전에는 아무리 읽어봐도 안식일이 주일로 변경된 말씀으로 받아드려지지 않았는데 요즘 읽어보면 안식일이 변경된다는 말씀이 분명함을 느낍니다.
또 목사님 글을 읽고 생각해 보니, 계시록의 '주의 날'이 주일이라고 충분히 생각이 되어 집니다. 실마리를 잡았으니 묵상하다보면 '주일'이라는 단정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사도들의 행동이나 교회 전통이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곰곰히 생각해 봤을 때 안식일이 주일된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게 주일을 잡고 나면, 이제 안식일의 엄한 법칙까지 주일까지 끌어다 놔야 하는 미혹이 생깁니다.
목사님 말씀에는 참으로 동감하는데,
저처럼 눈이 어두운 어린 신앙에게는
'안식일이 주일이 된 것은 영감으로 보면 너무나 명확한 일이라'고 말씀해 주시면 마음에는 한두가지 미혹이 남으면서도 더 이상 반론할 수가 없어 주일됨이 맞는 것 같으면서도 찜찜합니다.
아뭏튼, 개인적으로
안식일이 주일로 바뀐 것을 히브리서 말씀으로 명확히 잡았고,
이번 질문을 통해 '주의 날'에 대한 의구심이 풀리면서 앞으로 묵상해 보도록 할 것이고,
주일에 안식일의 법칙을 복음으로 접하여 매매등을 금하는 것이 분명 옳은 일이라 생각됩니다.
주일은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기념하는 날이라는 말씀을 더욱 생각해 보겠습니다.
(답변) 단숨에 열리는 것도 있고, 불씨만 살려놓고 불피워 가는 것도 있습니다.
1.깨닫는 과정을 통계적으로 살핀다면
①건설구원론 관련 교리는
거의 모든 교파와
거의 모든 종류의 교인과
거의 모든 정도의 신앙차원들에게
한 자리에서 단숨에 설명하고 듣는 이들은 한순간에 눈이 열려서 해결되는 교리입니다.
이런 교리들은 주로 지성인들에게서 엄청난 반응을 경험합니다.
②삼분론과 영에 대한 존재는
설명을 하기는 쉬우나
듣는 이들이 들을 때는 그럴 것 같다고 생각하다가
돌아서면 그런지 안 그런지 혼동을 하며
확고히 개닫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이 대개 경험칙입니다.
이런 교리들을 전할 때는 늘 지성인은 불행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③삼위일체와 예정론과 같은 교리는
설명하는 것부터가 극히 어렵고 위험합니다.
토씨 하나에서 바로 이단이 될 사안이 많고 달리 세상에서 비교할 것도 없습니다.
설명하는 사람도 한참 말을 하다보면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자기도 모르고
듣는 사람은 약장수 말장난으로 들리는 정도입니다.
이런 교리들은 그야말로 깨닫게 해 주시는 은혜로만 깨닫지
인적 요소의 노력으로는 오히려 점점 그 교리들로부터 멀어지는 결과 뿐입니다.
이런 교리들을 살필 때마다 우리는 진리 연구에 대한 우리의 노력과 열정에 회의가 들면서 맥이 탁 풀리고 계1:10 이하의 사도요한처럼 하나님 앞에 아주 죽은 자처럼 되어지는 지경에 이르지 않고는 그 다음 단계에 나갈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2.안식일의 변경 문제는
안식교처럼 반론하는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 그냥 가르치면
첫번째 경우처럼 한 자리에서 듣고 그 자리에서 단정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외부든 자기 내부든 일단 반론이 제기되어 따지기 시작하면
두번째 경우처럼 논리적으로 설명은 가능한데 문제는 혼동의 기간이 오래 가게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의 신앙 성장이
'믿는 사람'인 상태와 '믿어지는 사람'의 상태를 반복한다는 것과
그렇게 교차시키며 길러가시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게 되며 또한번 하나님께 크게 감사하게 됩니다.
3.이번 문제를 두고
단숨에 해결하신 분들은
'믿어지는 은혜'를 받았으니 복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조금 더 높은 신앙으로 자라가야 하는 단계가 되면
'믿는 은혜'만 주시고 '믿어지는 은혜'를 감추시는 듯 하면서 길러갑니다.
가끔 믿음에서 믿음으로만 모든 성경을 깨달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래서 독수리 하늘을 향해 치닫는 것처럼 거침없이 단숨에 차고 오르는 분도 있고
대개는 미리 머리 속에 들어와 있는 인간 지식과 자기 강퍅 때문에
믿는 은혜와 믿어지는 은혜를 반복하며 자라가는 경우입니다.
일단 조금이라도 가능성을 보셨으면 불씨는 잡았다고 보시면 됩니다.
단숨에 열리면 좋지만, 안식일과 주일 관련 문제를 불씨만 살려주시고
그다음에는 스스로 불을 지펴나가도록 한꺼번에 다 열어주지 않으신다면
본인이 이 문제를 두고 늘 은혜를 구하면서 노력하셨으면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방법으로 길러가시겠다면 그렇게 노력해야 믿어지는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4.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신앙 관련 연구와 깨달음을 두고는
미리 깨닫고 단숨에 깨닫는 것은 '믿어지는 은혜'로 되는 것이지만
우리 믿는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하나님께서 적용시키는 깨달음의 법칙 중 하나는
열매로 나무를 알아보는 결과적 단정법입니다.
바른 깨달음 성경에 맞는 교리는
세월이 가면 갈수록 빛이 나고 점점 더 자라가게 됩니다.
어떤 인간의 두뇌와 아이디어도 세월만큼은 넘어서지 못하게 하나님께서 막아놓았습니다.
그래서 불씨를 잡았다면, 조급하지 마시고 그러나 꾸준히 지켜보고 살펴보시면
갈수록 점점 더 뜨거운 확신이 들게 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주일로 바뀌었다고 반대할 수는 없다'는 정도에서 시작하지만
다음에는 '주일로 바뀌었다고 생각할 여지가 있다'로 자라가게 됩니다.
그후에는 '주일로 바뀐 것이 정말로 맞는 것 같다'라는 단계가 오고
최후에는 '주일로 바뀌었다는 것에 서슴치않고 목숨을 걸겠다'는 단정이 옵니다.
그래서 빨리 단정을 주시면 좋고
나에게 믿는 은혜만 주시고 믿어지는 은혜가 올 때까지 노력하도록 원하시면
불씨를 찾기 위해 노력하시고, 불씨를 찾았다면 안심하고 차분하게 살펴보시면
그렇게 오랜 세월이 걸리지 않고도
성경에 명문이 없는데도 단정할 수 있는 것도 주시고
성경에 명문이 없기 때문에 잘못 추론한 것이 결과적으로도 잘못 되었다는 것도 세월을 통해 또 우리가 노력하는 과정을 보시고 각자에게 적당한 시기에 그렇게 확신을 주십니다.
5.한 가지 덧붙인다면
성경과 자기 속에 확신을 주시는 영감 외에는 우리가 믿어서 안 되지만
아주 중요하게 '참고'하고 '존중'할 만한 것 중 하나는
2천년 기독교 역사를 통해 우리에게는
교회가 옳고 바르게 나갈 때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그런 단계를 거쳐
최종적으로 교회의 교리로 확정해 놓은 수많은 선례가 있고 사례가 있습니다.
여론은 이 홈에서 애당초 가치로 두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로 깨닫고 노력해 온 선배들이 우리 앞서 우리처럼 그런 단계를 반복했으며
그런 반복 전부가 무조건 다 맞다는 것도 문제지만
그런 과거 정통의 깨달음이 다 틀렸고 참고할 것이 전혀 없다는 것도 엄청난 실수입니다.
과거 깨달은 것이 적어도 교회 관리와 발전 역사를 주관하시는 주님에 의하여
비록 어릴지는 몰라도 그 당시 당시로서는 교회가 가질 가장 옳고 바른 깨달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셨고 교회는 역사 2천년을 통해 그런 정통의 깨달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참고해야 합니다.
이는 사람을 통해 사람을 길러가시는 하나님의 섭리 역사의 중요한 궤 중의 하나이고
이는 믿는 사람 전체를 한 몸으로 만들어 사용하시려는 목적의 성질과도 통화는 부분입니다.
과거는 무조건 옳고 그 과거에서 더 나가도 안되고 덜 나가도 안된다는 것을 우리는 경계하는 것이고 그런 원리는 성경에만 해당된다고 강조하는 것이지
우리의 모든 깨달음은 항상 과거 하나님께서 앞서 세우시고 사용하신 종들을 통한 역사를 성경 다음에는 가장 중요한 사안으로 참고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도 주일과 같은 문제는
그 사안이 외부로 표시가 나고 그 사안은 교회 역사에서 7일간이 통째로 사라져 버린 적이 있으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다음에는 연속적으로 지켜 내려 오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도 다른 논리가 필요없을 문제입니다.
주일날 무엇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문제는 다른 문답에서 많이 살폈고
또 다음 기회에 적겠습니다.
7. (질문) "삼일, 오일"이라는 요일 이름에 대해서 176
유대인의 안식(토요일) 후 "첫 날"이 "주일"이 된 우리에게 수요일이 왜 "삼일"로 불려야 하는지, 마찬가지로 금요일은 왜 "오일"로 불려야 하는지, 우리 신약 교회의 역사에나 한국 교회사에 어떤 유래가 있는지, 또는 어떤 성경적인 근거가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주일이 아닌 월요일을 첫 날로 삼아야 수요일이 "삼일"이 되고 금요일이 "오일"이 됩니다. 토요일을 "제칠일"이라고 부르는 안식교회에서는 금요일을 "제육일"로 여기고 있다는 점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변) 주일 기준으로 헤아리던 초기 교회의 모습입니다.,
(이곳 안내문과 같이 질문자를 위주로 하나, 일반 방문객을 고려한다는 점을 양해바랍니다.)
1.우선 '요일' 문제가 나오면 여호와의 증인들이 '일요일'을 우상 축제일이라고 합니다.
예수님 부정이 핵심교리이며 이 땅에서 볼 수 없는 세계를 부인하고 이 땅에서 이룰 수 있는 것만을 목표하는 것이 '여호와의 증인'입니다. 성경과 하나님을 전면에 내놓았지만 우리와 정반대 방향인 '지상낙원만'을 최종목적지로 삼은 이들이므로, '공산주의'을 기독교 페인트로 도색한 정도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안식교와 여호와의 증인은 원래 한 뿌리였습니다.
예수님의 사활대속으로 시작되는 신약교회, 그 출발일로 주신 '주일'을 흔들기 위해서 항상 사용하고 나오는 것이 '일요일'은 로마 태양(日)신의 축제일이며,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킬 교회가 쉬는 날이 달라서 발생되는 불편과 박해를 피하기 위해 태양신의 날로 안식일을 옮긴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주장은 늘 여러 역사적 인물, 연대, 지명, 사건들을 구체적으로 나열하며 증빙서류를 많이 제출합니다.
그들 이상으로 일반교회들이 역사적 자료를 연구 제시하지만, 이곳은 모든 면에서 신학적 접근은 최소한으로 그리고 신앙적 접근을 주로 하는 곳이므로 다음과 같이 반증합니다.
교회는 극심했던 로마 박해 150여년을 통과하면서 단 한 마디 한 교리의 타협이면 평안을 가질 수 있었으나 말씀대로만 갔었고 그 박해의 정도는 세상 역사도 상식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이 아니고 초대교회 그 당시 순교정신은 교회가 가던 한 길이었습니다. 오늘 19세기 중반, 문명국 미국에서 발생된 여호와의 증인들이 볼 때는 한 마디 타협으로 편한 길을 택했겠다고 생각할 만하며 그 주장을 위해 역사적 자료를 제시하는 것은 사학과 학생 정도면 충분할 것입니다만, '순교'를 아는 교회, 교인이라면 한번 웃고 지나갈 '가벼운 가설'입니다.
예수님 말씀, 제자들의 순교, 이후 로마 150년으로 이어진 초대교회는 주일을 변경하라는 박해를 순교로 맞는 길을 걸었고, 박해 후 로마의 기독교 자유화는 불과 수년도 가지 못해 기독교 유일주의로 되면서 교회가 요구하는 것은 로마가 국법으로 맹종하는데 이르게 됩니다. 이렇게 교회가 세상을 좌지우지하다 1000년을 천주교로 나갔던 역사는 최소한의 상식이며 따라서 여호와의 증인들이 '일요일' 주일을 부정키 위해 동원하는 수많은 신학적 연구와 자료를 무식하지만 이렇게 간단한 신앙경험, 최소한의 상식으로도 정죄할 수 있습니다.
2.수요 밤예배를 삼일예배로 금요 밤예배를 오일예배로 부르게 된 것은
1)구별에 남 달랐던 초기 교회의 모습을 간직해 온 것입니다.
주일을 지나 삼일이 지난 날 드리는 예배라고 삼일예배라는 이름은 고신계통을 비롯하여 옛날을 기억하는 분들은 지금도 삼일예배를 알아듣습니다. 초기 교회들이 예배 중 남녀반을 분리 착석시키는 등 예배당 분위기를 전반적으로 경건하게 유지해 왔으나 지금은 개방 사회에 영향을 받아 보다 편하고 자유로운 착석과 함께 강단까지도 개방형으로 바뀌었습니다. 백목사님은 초기 교회들의 이런 장점을 세월에 상관없이 그대로 이어왔습니다. 초기 교회들이 귀신을 섬기던 우리 사회의 전통 제사를 철저하게 단절시켰으나 지금은 전통과 문화라는 포장으로 교회 안에까지 자유 출입을 하고 있습니다. 백목사님은 초기 한국 교회들의 이런 장점을 세월에 상관없이 그대로 이어왔습니다.
수백년 내려온 주일학교 운영 모습을 근본적으로 바꾸던 과감과 단행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입니다. 바꿀 것과 지킬 것을 구별하여 교회의 생명과 성장을 함께 가졌던 경우이며 기독교계 역사에 몇 되지 않는 이상향이었습니다.
초기 교회들이 모든 전래 전통 속에 있었던 이교적 요소를 분별하고 조심하면서 요일에 대하여도 해와 달을 지칭하는 요일들 대신에 1, 2, 3일로 하게 된 것입니다. 그 유례가 분분하지만 가장 성경적 모습은 구약은 창세기 1장에 창조 첫째 날, 둘째 날로 기록을 하셨고, 또 날 중에 중심되는 안식일을 제 7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기록되고 구약 교회가 그 모습을 성막과 성전으로 나타나게 되면서 실제 신앙생활의 중심은 날 중에 제일 귀한 안식일이었고, 이 안식일의 제사를 통하여 구원의 예표를 가지게 되기 때문에 안식일이 기준이 되고 그 안식일을 기준으로 주일날이 '안식후 첫날'로 신약성경에 기록이 되었습니다.
2)'안식후 첫날'이라고 기록된 신약성경들은 아직도 구약제도가 이어지던 때였습니다.
예수님이 오셨으나 구약의 율법을 지키셨습니다. 할례를 하셨고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전체적으로 율법을 지키시면서 내용적으로는 생명과 구원에 속한 큰 일들은 전부 안식후 첫날에 하시고 계셨습니다. 예수님 승천 후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는 사도행전 초대교회에서도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친 내용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골로새서 2장 16절에서 폐지를 분명히 했고 히브리서 3장 4장에서 새날을 확실하게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이미 신약교회는 주일을 변경된 안식일로 지켰으나 유대인들을 전도하기 위하여 안식일을 사용하였습니다. 이는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얻는 안식일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얻는 복음을 전하는 날로 사용한 것입니다.
따라서 외부 모습으로는, 안식일의 계명들이 신약교회에서도 이어지고 있었다고 보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볼 수 있는 성경 명문이 있으며, 부활로부터 신약교회는 주일만 지켰다고 단정을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구약교회를 유대교라고 이름을 붙여 이교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구약교회를 신약교회를 위한 어린 때요 준비의 때로 보고 구약교회로부터 신약교회가 출생되었다고 보는 입장이기 때문에 구약의 안식일도 신약의 주일을 출생시킨 의미로 봅니다.
따라서 안식일을 지키는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는 율법주의 유대인을 상대할 때는 안식일을 비판하였고, 구약에서 신약이 출발되는 이 면에서는 모든 구약의 모습들을 소중하게 그러면서도 자연스럽게 변화시켜 나갔다는 면을 생각한다면 '안식후 첫날'이라는 표현은 그 표현까지를 지킬 '내용'이 아니라 '안식일'을 기준으로 날짜 표시를 하신 이유를 연구하고 그 뜻을 살피는 의미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고 이를 행하라고 하신 요13:15 말씀을 근거하여 지금도 목사님이 교인 발을 꼭 씻기는 교단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의 뜻, 그 교훈을 지키고 있습니다. 명문대로 그대로 지킬 것과 이렇게 교훈으로 지킬 것이 있다면, '안식후 첫날'의 표현은 신약의 변경된 새 안식일의 고유명사로 주신 것이 아니라 그 표현으로 기록된 그 성구를 연구하고 그 뜻을 살필 문제로 본다는 것입니다.
3)따라서 우리는 신약교회로서 날 중에 가장 귀한 주일날을 기준으로 1, 2, 3일을 헤아려 왔습니다.
7일을 단위로 엿새 일하고 하루 안식하는 것이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에게는 기본 인식입니다. 어느날을 기준으로 삼느냐는 것은, 신약교회로는 주일이며 따라서 구약교회가 안식일을 기준으로 날짜를 헤아렸던 것처럼 신약은 주일을 기준으로 날짜를 헤아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헤아리는 것이 될 수 있는 대로 중생의 본능으로 말씀대로의 새생활 새언어 새습관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며 반드시 지켜야 할 문제로 보지는 않는다는 것은 재차 강조드립니다. 성경 위에는 절대로 다른 물건이나 다른 책들을 올려놓지 않는 초기교회의 모습들이 있었습니다. 성경이 지상이라는 뜻입니다. 또 성경을 반드시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을 평생에 지키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런 행위들을 두고, '지켜야 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중생의 본능이 저절로 그 방향으로 향하게 되고 또 그런 행위를 통해서 연약한 인간에게 교훈과 사상이 굳게 박히게 함이라'고 하는 정도입니다. 20가지 회개할 것 중에도 있는 내용이지만 그 차원은 여러 면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오늘 총공회의 혼란 중에 하나가, '재독이 죄다'고 단정했던 많은 분들과 '재독만 해야 한다'는 몇 분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양측에 대하여 잘못되었다고 단정을 합니다. 은혜스러워 많이 하는 분이 있을 것이고, 죄는 아니지만 하기 싫어 안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기 싫어 안하는 경우와 죄가 되기 때문에 안하는 것은 다르며, 은혜스러워 늘 재독하는 분과 '재독만 해야 한다'는 분과는 아주 다르다고 봅니다.
1, 2, 3일로 요일 표시를 하는 것도 이런 경우였습니다. 목사님의 교훈은 비록 계명적 강조는 아니더라도 교인들의 현실적 신앙을 보며 지도가 필요할 때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거의 계명적 수준으로 들리도록 강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때에 설교록 전체와 백목사님 교훈 전체로 그 한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면 극단적인 행위들이 나옵니다. 재독, 요일, 국기주목, 성찬참석의 깨끗에 대한 기준 등 그런 경우가 허다하며 이런 경우들을 오해하여 이렇게 어지러운 원인 중에 하나입니다.
4)참고로,
목사님의 평소 요일 언급은 '요일'로 말씀합니다. 유독 수요일예배와 금요일예배는 삼일예배와 오일예배로 말씀하십니다. 교역자회의를 월요일부터 한다고 말씀하시지 일일 또는 첫째날 등으로 표현치 않습니다. 예배에만 그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밤예배의 이름에만 그렇게 꼭 그렇게 하셨으나 또 한번씩 수요일 밤예배라고 하실 때도 있었습니다.
설교록을 출간하면서 설교 본문을 매 장의 왼쪽에 그 날짜는 오른쪽에 표시를 해 왔었습니다. 목사님 설교록은 목회설교록이며 또 매 설교가 전부 수록이 되고 있었기 때문에 요일 표시라는 것은 사용의 편리성과 함께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요일을 표시하지 못하게 하셔서 '1985. 8.2. 밤' '1985. 8. 3. 새벽' 이렇게만 표시를 했고 주일은 '주일오전, 오후'까지를 표시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다보니까 어느 요일 밤예배인지 어느 요일 새벽예배인지를 찾아보는데 불편이 많았고, 주일 표시가 된 페이지로 가서 다시 헤아려가며 계산을 해야 했습니다. 혹 설교가 빠진 요일들이 있을 때는 계산이 더 복잡해집니다.
목사님께서 요일을 적지 않아야 된다는 것을 '꼭'이라는 단서는 붙이지 않으셨으나 그냥 '적지마라'고 하셨기 때문에 목사님 생전에는 100여권 설교록 전부에 요일이 없습니다. 지금은 제가 설교록 출간할 때 (월 새벽) 이런 식으로 붙이고 있습니다. 계명적 지시가 아니고 백목사님의 특유한 '신앙본능적 성향'이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며 그 성향을 지키는 것과 오늘 일반 교계에 내 보낼 설교록으로 요일이 필요하다는 것은 첨부가능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는 예배당 수리 문제에서도 종종 있었습니다. 아무 설명없이 또 특별한 지시없이 목사님이 아시는 대로는 예배당 내 시설 때문에 못을 박을 경우가 생기면 최대한 적게 최대한 못을 박지 않고 할 수 있는 방법을 자꾸 말씀하십니다. 왕상6:7에서 '성전 안에서는 방망이나 도끼나 모든 철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였으며' 하신 말씀 때문이라는 느낌이 많았습니다. 물론 목사님은 콘크리이트 건축물에 관한한 최고 수준의 전문가이며 '진동'을 극히 경계하는 기술적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예배당을 예배보는 하나의 시설로만 생각하는 분도 드문데 유독 이런 한 면씩을 보게 될 때 느끼는 부분이 많습니다.
8. (질문) 주5일 근무 제도에 대응할 믿는자의 자세는? 471
늘 이곳을 통하여 은혜 많이 받고 있습니다.
금번 노사정 간에 주5일 근무 제도에 대한 이슈가 뜨겁게 논의 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내년 하반기 부터 시행한다고 하지만 실제 대다수 대기업 및 외국인 회사는 이미 시행되고 있고, 근간에 시행하려고 검토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년월차 수당이 감면되어 실제로는 임금삭감과 같은 경영합리화와 근무시간 단축으로 인한 고용증대, 근로자의 사기진작 및 생산성 증대를 주장하지만 우리 믿는 사람은 현재와 같은 주일을 준비하는 토요일 개념이 없어지기 때문에 심방과 전도가 힘들어 지고, 심신의 피로를 안정시키는 준비가 없어지면서 올바른 주일성수에 적지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 같습니다.
현재보다 많은 여가를 어떻게 활용하고, 어떻게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할지, 그리고 주일학교를 담당하는 반사들은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어떤 시간에 가야할지 지혜가 필요한 싯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점점 나아지고 있는 생활 수준과 의식 향상으로 산으로 바다로 향하는 믿지 않는 가정의 아이들에게 주일 성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에는 믿음과 기도외에 교회의 올바른 가르침의 교과과정 또한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목사님의 의견을 기다립니다.
(답변) 귀신은 큰 귀신이 요동하고 있습니다. 기도 외에는 아무리 둘러봐도 방법이 없습니다.
1.현재 국내 교계의 반응은 대략 2가지입니다.
서울교회 이종윤목사님은 엿세 일하고 하루 쉬라는 계명 때문에, 또 주말을 장기 나들이 가는 분위기로 교회 출석 등에 지장이 있기 때문에 반대하는 입장을 대표했고, 한민제일교회 이억주목사님은 오히려 주일 시험이 토요일로 옮겨지면 주일성수에 도움이 될 것이며 교회가 많은 여가를 이용할 수 있어 찬성하는 입장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현재 9월 10일 교계는 찬반 여론을 수렴하는 회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1)한국교회는 이미 주일성수에 대한 논란을 할 자격도 없게 되었습니다.
정도 차이일 뿐이지 주일을 이미 주일성수로 지키는 교단은 총공회뿐일 것입니다. 대학까지 16년을 공부하고도 주일 시험 한번만 치르면 되는 입사시험, 자격시험, 사법고시 등 모든 시험을 포기하여 교단과 교회 내에 공무원이 거의 없는 것은 일반 교단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며 이런 문제를 두고 오히려 율법주의 또는 이단이라는 말을 쉽게 했던 것이 오늘까지였습니다. 이런 점에서 그 정도 차이일 뿐이지 이미 주일성수란 될 수 있으면 쉬는 것이 좋고 일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을 정도라는 입장을 가진 일반 교단으로서는 주5일제 근무를 두고 왜 주일성수라는 단어를 사용하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듭니다.
2)현 한국교회의 주5일제 근무에 대한 염려는 이권계산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기준이었다면, 이미 각 교단과 교회가 오늘에 이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이번 주5일제 근무에 극도로 민감해 하는 것은 선진화된 생활환경, 특히 매주 2박 3일의 가족 여행이 일반화되어 갈 것이고 이런 현실은 교회의 주일 출석이 급감되는 요소입니다. 이는 교세에 절대적인 두 요소, 즉 출석 교인 숫자와 연보를 지탱할 수 없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된다고 혹평하고 싶습니다.
국가의 정책 결정을 두고 재계와 노동계 등 사회 각 계층이 서로의 이해타산을 근거로 쟁투를 벌이고 있는 중에 기독교는 교세 약화 문제를 두고 그들 중 하나가 되어 나서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남북 통일 운동에 교회도 사회 대표들 중에 한 자리를 잡고 있듯이.
2.주5일제에 대한 이곳 기준의 평가는 이렇습니다.
1)개미에게서 배우라는 것이 성경이며 게으른 것은 어떤 경우에도 금합니다.
주5일 근무를 재충전의 기회라 생산성 제고를 위한 고도의 사회적 행위라는 등의 어려운 학술 용어들을 쏟아놓고 있지만, 이곳에서는 백목사님 식의 아주 간단한 자연이치와 성경말씀으로 단순화하고 싶습니다.
망할 집은 놀고 먹습니다. 놀고 먹을 핑게만 찾게 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쉴 시간이 없어야 합니다. 주일을 6일 일하기 위해 쉬는 날이라거나 아니면 일하기 위해 미리 쉬어 두어야 한다는 개념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주일은 세상 일 대신에 말씀으로 자신을 만드는 일에 녹초가 되어야 하는 날입니다. 믿음의 일을 위해서 세상 일을 쉬라고 한 것입니다. 현재 교계가 주5일 근무제를 두고 생산성이니 쉬는 개념이니 등으로 접근하는 것은 주일성수가 아니라 주일 파괴입니다.
2)주5일 근무가 지나면 주4일 주장이 나올 것입니다. 인간 안일 향락욕심이 무저갱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씀한 6일을 땀흘려 지키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5일로 4일로 내려가면 한이 없습니다. 물론 엿세 일하라는 것은 5일을 일하면 안 된다고 해석한 서울교회는 오해를 했습니다. 그리고 놀고 쉬는 일이 발전되면 교회는 그 근본이 해체되는 것이 오늘 기독교 선진국이 보여주는 교회사입니다. 보여주는 데도 그리로 가면 결국 그리 되는 것입니다.
3)교회의 입장은 주5일제 근무를 반대합니다만 반대하는 식은 교회 식이라야 합니다.
세상이 가진 권한으로 세상이 결정을 할 때, 교회는 그 사안에 따라 각각의 입장은 가지고 있지만 그 발표는 삼가 조심합니다. 세상 결정은 남의 나라 결정이기 때문에 남의 나라에 신세지고 사는 천국백성들은 섣불리 나서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간섭이 되며 월권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취사선택과 선호는 뚜렷하지만 그렇다고 절대로 되고 안 될 입장은 역시 아닙니다. 주5일제가 온다면 더욱 충성할 수 있는 기회로 사용할 사람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팔린 현실은 또 다른 다음의 준비였을 뿐입니다. 교계가 무슨 포럼을 한다거나 아니면 언론을 통해 자꾸 발언을 하게 되면 결국 교회의 사회화가 진행되어 바다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일입니다.
3.우리 신앙노선에서 주의할 일은 이렇습니다.
1)주일시험으로 그동안 막혔던 모든 시험과 취직에 길이 열릴 수 있습니다.
천하가 타락하고 교계가 속화되는 기회가 될 것이지만 바로 이용하는 사람에게는 이 역시 두번 기대하기 어려운 선물이 될 것입니다. 또한 매주 2박 3일 놀러가느라고 연구하고 시간과 경제를 소진할 사람과 반대로 이 기회로 실컷 성경 보고 심방 전도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학생들이나 어린 교인들을 위한 조처는 기도뿐입니다. 그리고 말씀 원칙뿐입니다.
교회는 경제가 허락된다고 모든 것을 쉽게 편리하게 해 주다 보면 나중에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 가장 편리하고 쉽기 때문에 교회를 나오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됩니다. 자식이 많고 먹기가 어려웠을 때는 효도가 있었고, 자식을 줄이고 경제가 나아지면서 오히려 효도가 없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연계시요 현상입니다.
어떤 조처가 있고 어떤 사회 변화가 있다 해도 결국 안 될 사람은 안 됩니다. 그러나 이런 변동의 세월 변혁의 시대에는 오히려 너무 심하다 할 만큼 엄격한 성경연구와 기도생활로 정면돌파하게 되면 말씀과 기도의 능력으로 이전보다 더 많이 학생들을 챙기게 될 것입니다.
주5일 근무제의 파괴력은 특히 교회 출석률에 심각하게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 여건이 가파르게 어려워지면 교회는 더욱 더 아무 수단도 연구도 방편도 교재도 사용할 수 없게 됩니다. 오직 주님 은혜로 능력의 자신이 되고 교회가 되기를 기도하고 실행할 뿐입니다. 하다 보면 그 다음 모든 방법은 나오게 될 것입니다.
9. (질문) 주일 지키지 않은 죄는 사망에 해당될 정도인가요?
주일 성수
혼자 생각해도 답을 얻을 수 있는 사안임에도 굳이 질문드립니다.
모든 세상적 불이익을 무릅쓰고 엄격한 기준으로 생명 걸고 주일을 지키는 총공회 입장에서는 단호한 답이 나올 수 있겠다고 충분히 예상이 됩니다만.
신약시대에도 역시 주일을 지키지 않은 죄는 '사망'에 해당될 정도로 하나님을 노엽게 해 드리는 일이 될 수도 있을까요?
아침부터 이것저것 (지적 수준이 의심되는 유치한 질문까지...) 질문드려서 죄송합니다.
많이 바쁘시리라 생각되어 간략하게 답변해 주셨으면 합니다.
혹 어떤 부분은 적절하지 않다 생각되시면 그냥 지나치셔도 상관없겠습니다.
언제나 영육간 강건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답변) 실질적으로 '주일성수'는 육체의 생사를 걸 문제입니다.
1.구약은 법이었고 형식에서 시작했습니다.
신앙이 있든 없든 안식일은 법이고 무조건 집행되는 계명이었습니다.
몰랐다면 뒤에 배울 일이고, 몰랐더라도 일단 안식일에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무조건 순종해 놓고 봐야 할 때였습니다. 모든 계명이 다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의 중요성은 그 계명 자체의 중요성도 있지만 다른 모든 계명을 지키게 하는 중심되는 역할, 비유하자면 교차로에 위치한 중요성을 가진 면이 있어 특별히 엄격했습니다.
2.신약은 내용입니다. 실제로 길러가는 면으로 요구하십니다.
몰라도 일단 해놓고 본다면, 기특할 일입니다. 발전할 신앙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칭찬할 일도 아닙니다. 신약은 하나 알고, 알았으면 아는 대로 실행해보고, 실행하여 알게 된 여러 면을 검토하고 연구하여 깨달은 것을 가지고 그다음 또 앞으로 나아가는 시대입니다.
따라서 무조건 법으로 형식을 맞추어야 하는 때와는 다릅니다. 교회에 주일을 예사로 어기는 분들이 계셔도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고 기다리면서 언젠가 그러지 않을 사람으로 만들 연구를 하는 때입니다. 구약이라면 죄인이니 회개하지 않고는 성전에 발도 들여놓지 말라고 해야 하겠지요?
이렇게 설명을 드리면 대충 지킬 만큼 지키고 또 좀 어렵고 곤란할 때는 그냥 넘어가고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신약에서도 변치 않는 것은 구약과 같이 목표와 최종은 같다는 것입니다. 그 중요성과 그 계명을 지켜야 할 우리의 심정도 그러해야 합니다. 그 목표를 이루는 방편이 좀 다를 뿐입니다.
3.사실, 지금의 주일 문제는 스스로 팔려 범하면 범하는 시대가 아닌지?
주일과 십일조는 구약 제도를 거의 다 폐하면서도 남겨 놓은 몇 되지 않은 계명입니다. 따라서 엄격하게 지킬수록 좋고 그 정도는 구약의 기준이 그대로 적용될 부분입니다. 참고로, 공회는 주일 문제로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주일에 보는 모든 시험을 전부 포기하고 군대에서 감옥가고 죽도록 매맞고 가정에서 쫓겨나는 등 순교나 순생에 해당될 사안이 가장 많았습니다. 지금은 가정에서도 자녀가 가출할까봐 오히려 부모가 눈치 보는 세상이며, 아이를 낳아 와도 할 말을 못하지, 학교는 학생 눈치보며, 군대도 사병 눈치 보느라 정신이 없어 이제는 주일 때문에 약간의 손해를 보는 정도이지 주일 때문에 순교와 순생을 각오해야 할 일이 아주 없어진 시대입니다.
따라서 예상하신 대로 답변이야 지나치게 단호합니다만, 이렇게 아합이 스스로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듯이 지금은 스스로 주일을 범하는 시대라고 해야지 힘껏 지켜도 순생과 순교에 이를 신앙이 되지 못해 연약함으로 넘어지는 때가 아니라고 보고 싶습니다. 스스로 좀더 좋은 형편과 유익, 또는 떨쳐버려도 될 정도의 작은 안면에 매여서 주일 문제가 생기면 생길까 하는 것이지, 그리 걱정할 일은 없는 시대이니 그냥 지킬 수 있는 데까지 힘써 지키시라는 권면을 누구에게라도 좀 미친 사람 고함지르듯 하고 싶습니다.
누가 주일 때문에 죽이러 오고 고문을 하러 오지는 않겠지만 우리의 중심은 그런 각오로 지켜야 할 문제가 주일입니다. 실은 그렇게 하여 주일을 범하지 않더라도 정작 더 어려운 것은 주일 하루 종일 말씀과 묵상으로 고요히 주님을 상대할 수 있는 자신이냐는 것입니다. 주일을 범하지 않는 분들 중에서 주일을 주일답게 사용하시는 분은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10. (질문) 주일의 은혜가 종자적이라는 말은
주일날
감사의 새 종자를 받는다는 뜻은?
사활대속의 은혜를 받는다는 뜻은?
자체 성화의 은혜와 같은 구원의 종자를 받는다는 뜻은?
(답변) 신령한 은혜는 주일날에 씨앗과 같은 은혜를 받고 6일간 그것을 기른다는 뜻입니다.
1.창조 때부터 오늘까지 하나님의 세상 운영을 '날자' 기준으로 살핀다면
①가장 외형적으로는, 6일 일하고 1일을 쉬는 체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6일에 나누어 만들어야 할 만큼 천지창조의 업무량이 그렇게 많았던가? 그렇지 않습니다. 1일 안에 다 만들 수도 있었고 1분 안에도 가능했고, 1초도 안 되는 순식간에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로 6일에 나누어 만들고 그다음 날에는 '안식'하셨다고 했습니다. 6일간 얼마나 힘이 들었으니 1일을 휴식하셨다는 모습을 성경에 기록했습니다.
이 모습은 신약에서도 날짜만 변경된 채 그대로 유지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신약은 형식이나 제도는 완전히 다 없애버렸다고 표현할 정도로 신앙의 방향을 바꾸어 주셨는데, 주일만큼은 예외로 지키게 했습니다. 구약은 토요일이고 신약은 주일이며, 그 지키는 것은 그 날 외의 6일은 일하고 1일은 쉬는 모습을 기본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②특히 신약의 주일은 부활의 의미가 중심에 들어와 있습니다.
6일 업무 1일 휴식제도는 전능자 완전자 하나님께 해당이 되지 않지만 우리에게 가르칠 것이 있어 그렇게 기록했는데, 신약의 주일은 구약의 안식일 개념에다가 예수님의 부활이 중심에 들어왔습니다. 부활은 새생명을 다시 받았다는 뜻입니다. 구약의 안식일은 외부적으로 쉬는 일을 먼저 하면서 왜 쉬는지를 찾아 나서야 했고, 신약은 부활의 새생명을 받는 날로 정해졌으니 이 날에 부활의 새생명에 속한 것을 받되 그 일을 하기 위해서 다른 세상일을 쉬게 되었습니다.
2.질문 내용에 집중을 해 본다면
①주일날에는 종자적 은혜를 받는다는 뜻은
주일날에는 하나님 없이 살던 우리가 하나님으로 살아가는 참 생명에 속한 것, 하늘나라에 가져갈 것, 진리대로 된 옳은 것을 받는 날입니다. 예수님이 주일 아침에 부활을 했다는 사실이 특별하게 기록된 이유와 그 날 이후 매 주일날마다 제자들이 예배로 모인 것은 바로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이 부활로 완성된 이 날이 주일이고 이 주일날에 생명에 속한 것을 받기 때문입니다.
'부활'을 받은 날이 주일입니다. 오늘도 주일에는 '부활'을 우리가 받게 됩니다. 매 현실에서 세상에 없는 하늘의 것을 새로 받는 것은 주일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6일동안은 주일에 받은 새로운 은혜나 신앙의 새생명에 속한 종자를 세상 속에서 길러 가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주일날은 새로운 종자를 받는 날이고, 나머지 6일동안은 주일에 받은 그 종자를 길러서 키우는 날들이라는 뜻입니다. 부활이 주일에 이루어진 의미가 그러하고 또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실제로 겪고 아는 일이 그러합니다. 따라서 주일예배시간을 실패하면 주일을 실패한 것이고, 주일을 실패하면 나머지 6일은 그냥 세상사람들처럼 껍데기로만 살지 자기 속에 참 생명에 속한
하늘의 신령한 것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보시면 될 것입니다.
②사활대속의 은혜를 받는다는 뜻은?
예수님께서 '사'망으로 우리를 구원한 부분이 있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를 '사활'대속이라고 합니다. 죽음만으로 우리를 구원한 것이 아니며 부활만으로 우리를 구원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둘은 나눌 수 없는 하나의 수고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모든 수고를 한 마디로 표현할 때는 '사활의 대속'이라고 합니다. 사활의 대속이라고 표현해야 한다면 사활의 대속이 완성된 시점은 십자가에서 죽었을 때가 아니고 부활할 때입니다.
그래서 부활의 주일날은 예수님이 죽고 부활하여 우리 위해 이루어놓은 모든 역사를 받는 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음으로 우리를 구원한 것은 우리가 저질러놓은 죄값을 없애는 일이었습니다. 말씀을 어긴 죄, 마음대로 산 불의의 죄, 하나님과 원수된 죄, 절망의 죄 등이 우리가 지은 죄의 4가지 차원입니다. 이 죄값을 죽음으로 청산했으니, 오늘 우리는 주일을 당할 때마다 우리가 말씀을 어긴 죄, 마음대로 산 불의의 죄와 같은 이런 죄를 회개하고 이런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는 분위기와 그 자세 때문에 그런 죄를 회개하고 청산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십니다. 그리고 주일 예배 말씀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무엇이 죄였으며 어떤 일을 두고 내 마음대로 살았는지를 하나씩 구체적으로 알게 됩니다. 그리고 실제 자기가 죄, 불의, 원수, 절망의 사람이 되었던 상태에서 청산하고 자기를 깨끗하게 씻을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주일날, 그 예배 시간에 받는 은혜들입니다. 주일 예배에서 구체적으로 죄를 알고 회개하게 되고 또 주일날 나머지 시간에 돌이킨 회개의 마음에 불을 붙혀 다시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자신을 만들도록 더욱 묵상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그다음 월요일부터 시작되는 1주간 6일동안 우리는 죄와 생활속에서 실제로 멀어지고 깨끗해진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과 부활에 관련된 죄문제 등을 하나씩 이렇게 따져보시면 아마 이곳에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는 많은 분량의 설명이 있다는 것을 느끼실 것입니다. 우선 잠깐 예를 든 것을 참고하여 이곳 홈의 /초기화면/연구실/정리방/주제2/교리요약/인죄론/의 '죄'에 대한 면과 /교리요약/기독론/에서 '죽음과 부활'로 구원한 내용들을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③'자체 성화의 은혜와 같은 구원의 종자를 받는다는 뜻은?'
이 질문은 무슨 내용인지 답변자가 잘 파악하지를 못하겠습니다. 이곳에 답변자가 올린 글의 내용은 대단히 많습니다. 그 표현과 내용이 어떻게 기록되어 있든지 상관없이 답변자가 평소 대단히 많은 시간과 노력으로 살펴보고 또 내적으로 확실하게 파악한 것만 주로 발표하고 있기 때문에 비록 인용한 글의 당시 상황을 잘 알지 못해도 내용 일부를 들어보면 파악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질문자께서 마지막으로 말씀하신 부분은 인용을 하시면서 조금 떨어져 나간 부분이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질문하신 내용이 어느 글에서 나왔는지를 답변자가 찾아서 답변했으면 좋겠으나 될 수 있으면 그런 부분은 질문자들께 부탁하고 있습니다.
11. (질문) 백목사님은 주일오전 설교에 초점을 두셨는지?
주일을 한주간의 말씀의 씨와 양식을 얻는 날이라고 배웠습니다.
백목사님은 설교시 '주일날 받을 말씀'을 주일오전을 기준해서 설교 하셨는지요?
모든 예배가 다 중요하고 모든 예배를 다 힘써서 증거하셨겠고, 그때그때의 영감이 있었겠지만, 그래도 가장 힘써서 증거 하신 예배는 주일오전이 아닌지요?
또 가끔씩은 주일날 받을 말씀이 주일오전 설교가 아닌 주일오후나 주일새벽예배로 볼 수도 있는지요?
(답변) 주일이 한 주간의 씨와 양식이라 할 때는 주일 자체의 의미 때문입니다.
1.주일 오전 예배는 어느 교회든 그 교회 교인 전체가 가장 많이 모이는 기본예배입니다.
어느 교회든 가장 중요한 예배로 진행될 것입니다. 서부교회도 주일오전 예배는 다른 예배에 비하여 더 비중이 크다고 느낄 수 있을 만큼 확실하게 표시는 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예배는 예배입니다. 주일 오전예배 따로 있고 오후예배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신앙어린 교인들이 한번 온다면 주로 주일오전예배이기 때문에 주일오전예배는 그런 점에서 다른 예배와 설교의 내용은 조금 차이을 느낄 수 있습니다.
2.주일오전예배 설교는
마치 한 주간 설교 전체의 총론이자 전체 요약과 같다는 느낌을 쉽게 가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하게 어느 한 주일 설교만 가지고 그렇게 단정짓기는 좀 곤란할 때가 있지만, 아마 10여개 주간을 통계로 잡은 다음, 주일 오전예배와 그 이후 이어지는 일주간 다른 예배들을 비교해 본다면, 확연하게 그렇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금요일 저녁 예배는 항상 한 주간 설교의 최절정으로 느낄 수 있으며, 토요일 새벽 예배는 한 주간 설교 전체를 마무리하는 설교라고 해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처음 백목사님 설교를 접하는 이들에게 금요일 저녁이나 토요일 새벽 설교를 바로 듣게 하면 어렵다고 하는 분들이 많고, 그대신 주일 오전 설교를 접하게 되면 귀가 있는 분들은 아주 깊은 설교라고 말씀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이 점점 설교를 알아가게 되면 이제 여기서 설명한 이런 설교들의 진행을 동의할 것 같습니다.
3.주일의 말씀을 한 주간의 씨와 양식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주일 오전 설교의 은혜 때문이 아니라 '주일'이라는 제4계명의 의미가 그렇기 때문입니다. 주일은 한 주간 전체의 종자와 같은 날입니다. 주일을 잘못 지킨 교인은 그 다음 한 주간이 헛되게 됩니다. 만일 주일을 바로 지키지 못한 대신에 월요일로 토요일까지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면? 그렇다면 그 한 주간은 그 이전 주일에 잘못 행동한 것을 보충했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 한 주간 충성 때문에 그 다음 오는 주일에 받을 은혜의 준비가 바로 되어 그 다음 주일의 은혜로 인하여 그 다음 다시 다가오는 주간에 복이 될 것입니다.
물론 말씀의 은혜만 가지고 말한다면, 주일 예배보다 더 은혜로운 밤예배도 있고 특히 집회 설교는 주일날 받는 은혜와는 비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만, 중요한 것은 객관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는 날 중에 제일 귀한 날, 날 중에 제일 종자되는 날, 바로 주일날을 통해서 주시는 은혜는 주일에만 받는 것이고, 평일날이나 다른 기회를 통해 받는 은혜는 다른 종류의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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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질문) 이분법적 신앙의 위험
모든 것을 무조건 둘로만 나누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주일날에도 이런 것은 해야 한다 저런 것은 하면 안 된다
이렇게 둘로만 나누다 보면 사람이 유치해질 수도 있구요.
어릴 때 세상은 둘로만 보이지만
알면 알수록 세상은 다면으로 된 세상이고
이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서로 더불어 살 수 있지 않을까요?
(답변) 천국과 지옥만 만드셨지 제3의 공간을 주지 않았으니
우리가 이렇게 말하든 저렇게 말하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결정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는 것입니다.
세상법과 세상모습은
이분법이 좋으니 이분법으로 운영해 갈 수도 있고
이분법이 싫으니 제각각 좋은 대로 살도록 만들 수도 있습니다.
법을 만들어 자기 원하는 것을 강제로 시행할 수도 있고
법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협박이든 데모든 호소든 표운동이든 하여튼 바꾸면 됩니다.
현재 이 홈은 신앙관련 전문 홈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말씀을 절대로 인정한 상태에서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말씀에 대하여서는 절대를 인정할 수 있는 사람끼리 그 범위 안에서만
대화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분법'이 좋으냐 좋지 않으냐는 것을 우리끼리 대화하기 이전에
성경이 무엇이라고 하느냐는 것을 찾는 것이 먼저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없는 가운데에서 모든 것을 만들 때부터
모든 것을 이분법으로 만들어 놓고 분류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홈은 무엇이든 엄격한 이분법적 사고방식으로 살피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원을 천국과 지옥 둘로만 만들어 놓으시고
오늘 이 땅 위의 모든 행위를 둘로만 나누어
하나는 천국으로 하나는 지옥으로 보내는 이분법만 주셨습니다.
모든 인류가 전원일치로 지옥을 폐지하자 결정짓는다면? 헛소리에서 그칩니다.
천국과 지옥의 이분법은 잘못된 것이라고 아무리 고쳐 보려 해도 헛일입니다.
세상에 수많은 것이 있고 제각각 별별 것이 다 있는 것 같아도
마지막에는 결국 이분법으로만 분류됩니다. 천국과 지옥만 우리에게 있지
제3의 공간은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남 북한 사이에 중립을 지키는 사람은 있을 수 있고
여 야당 사이에 제3당이나 소외당을 만들 수는 있으나
사람에게는 천국과 지옥, 이분법을 피하는 길은 없습니다.
천국과 지옥의 이분법 앞에서
질문자가 오늘 하루를 살아야 할 현실과 답변자 제가 살아야 할 현실은 다를 수 있습니다.
천국을 준비하는 현실과 행동과 주력할 일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지만
그 마지막 가는 길은 아주 간단하게 오직 두 길뿐입니다.
같은 현실에서 한 사람은 1계명을 어기고, 다른 사람은 2계명을 어기되
1계명을 어기는 모습도 다르고 동기도 다 각각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는 길은 지옥 한 길뿐입니다.
목회자가 지킬 주일의 모습이 다르고
불신 가정에서 믿는 이가 노력해야 할 주일의 모습이 다를 수 있습니다.
신앙 어린 사람이 주님 뜻을 찾아 주일을 지키려 할 때 그 노력이 다르며
오래 믿은 사람의 경우가 다 다를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신앙은 마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신앙은 다양성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개별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천이면 천, 만이면 만이 지켜야 할 자기 현실의 자기 충성할 길은 다 다릅니다.
문제는 최종 분류는 단 둘입니다.
이 최종 이분법 때문에 신앙은 우선 겉모습은 개별성 같고 다양성이 인정되는 것 같은데
그 본질은 엄연히 어분법입니다.
천국 아니면 지옥!
이것만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아주 간단하고 명쾌한 길입니다.
13. (질문) 주일의 영적 준수에 대한 칼빈의 글에 기초하여 질문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주일의 영적 준수에 대한 칼빈의 글에 기초하여 주일과 안식일의 개념과 그것의 혼동으로 인한 주일의 율법적 준수에 대해 질문드리고자 합니다.
아래의 글은 주일에 대해 혹자가 질문한 것에 대한 목사님의 답변입니다.
1.사58:3 말씀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2.구약에는 안식일이라 하고 신약 오늘날에는 주일이라고 합니다.
주일날은 주님의 날이니 주님 기쁘게 하는 일을 하는 날이고
자기를 기쁘게 하는 날이 아니기 때문에 오목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목 두는 것을 주님이 즐거워하신다면 주일날 해도 됩니다.
그런데 오목을 두는 것은 오목을 두는 우리가 즐거운 것이지
주님이 즐거워하지는 않을 것 같지요?
3.만일 주일날 오목을 하지 않으면 심심해서 견디지 못하는 학생이 있다면?
오목을 두지 않으면 등산이라도 해야 한다면?
오목을 두지 않으면 심심해서 낚시라도 가야 하는 어린 신앙이라면?
등산이나 낚시를 가는 죄보다는 조용하게 앉아서 오목을 하는 것이 낫겠지요!
공부 시간에 떠들고 장난을 치는 것도 잘못이고
공부 시간에 선생님 몰래 만화책을 보는 것도 잘못입니다.
그러나 떠들고 장난을 치는 잘못보다는 차라리 몰래 만화책 보는 것이 낫습니다.
4.주일날 무엇은 해야 하고 무엇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
①주일날 해야 할 일
주일날 오전예배는, 믿는 사람이면 좋든 싫든 무조건 가야 합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신앙이 있다면 주일 오전 오후 2번은 교회를 가야 합니다.
만일, 신앙이 점점 많이 자라기를 원하면
예배 참석 외에 남는 시간에 성경 읽고 기도하면서 점점 주님 기쁘하는 일을 늘려가면 됩니다.
주님이 기쁘하시는 일을 많이 할수록 신앙은 많이 자랍니다.
공부를 열심히 할수록 공부 실력이 느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②주일날 하지 말아야 할 일
주일날 돈을 사용하거나 공부나 일을 하는 것은 무조건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신앙이 있다면, 주일날은 모든 행동을 조금 조심해야 합니다.
만일, 신앙이 점점 많이 자라기를 원하면
낚시 가는 것, 등산 가는 것처럼 활동을 많이 해야 하는 것부터 줄여야 합니다.
그리고 신앙이 더 많이 자라고 싶으면 자기를 즐겁게 하는 일을 줄이면 됩니다.
5.따라서 주일날 오목두기는 자기 신앙에 따라 각자 알아서 결정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주일날 오목을 두도 되고 어떤 사람은 평일에도 두면 안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마다 다르니까, 현재 자기 신앙을 자기가 살펴 자기 양심대로 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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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강요 제 2권 23. 주일의 영적 준수
그러나 옛 사람들이 우리가 말하는 주일로 날을 대치시킨 데에는, 매우 신중한 분별이 없지 않았다. 고대의 안식일이 나타내었던 바 그 참된 안식은 바로 우리 주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그 목적이 성취되었다. 그러므로, 주님이 부활하신 그날이 그 그림자를 종결지은 것이요,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그림자와 같은 의식을 고집하지 말도록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일곱"이라는 숫자에 집착하여 교회를 그것으로 묶어두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나로서는, 미신이 개입되지 않는다면, 교회들이 다른 날을 엄숙히 지적하여 모임을 갖는다 할지라도 그것을 정죄하지 않을 것이다. 그 교회들이 권징과 선한 질서의 유지를 고려하여 그렇게 정했다면, 나는 얼마든지 용인할 것이다. 정리하자면, 유대인들에게 그림자 아래에서 진리가 전해졌든지, 우리 앞에는 그림자가 없이 진리가 제시되어 있다. 첫째로, 우리는 우리의 모든 일에서 벗어나 영원히 누리게 될 그 안식을 평생토록 묵상하여, 주께서 그의 영을 통해서 우리 속에서 일하시도록 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틈이 있을 때마다 우리들 각자 하나님의 일들에 대한 경건한 묵상을 부지런히 시행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말씀을 듣는 일과 성례의 시행과 공적인 기도를 위하여 교회가 세운 정당한 질서를 모두 함께 지켜야 할 것이다. 셋째로, 우리의 밑에 있는 사람들을 가혹하게 억압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 옛날 유대인의 사고로 사람들을 감염시켜 놓은 거짓 선지자들의 하찮은 이야기들이 사라진다. 그들은 이 계명에서 의식적인 부분만-그들이 쓰는 말로는 일곱째 날을 "지정한 것"만-폐지되었고, 도덕적인 부분은, 즉 일곱 날 중 하루를 정하는 부분은 그대로 존속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유대인들을 책망하는 의미로 날짜만 바꿀 뿐, 그날을 신성한 날로 보는 것은 그대로 지키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똑같이 그날에 신비한 의미를 붙여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그런 가르침을 통해서 그들이 얼마나 이들을 얻었는지를 잘 볼 수 있다. 자기들의 규정을 고집하는 그런 자들은 안식일에 관하여 유치하고 더러운 미신을 조장하는 면에서 유대인들보다 세 배는 더한 것이다. 그리하여 이사야서에서 나타나는 책망들이, 선지자 당시의 사람들에게와 똑같이 오늘날 그런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일반적인 가르침을 특별히 견지해야 할 것이다. 곧, 우리들 가운데서 신앙이 쇠퇴하거나 무너지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거룩한 모임들을 자주 부지런히 가져야 하고, 또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돕는 외형적인 보조 수단들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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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칼빈은 고대 유대인들의 안식일의 개념을 오늘날의 주일의 개념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유치하고 더러운 미신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백영희신앙노선에서는 고대 유대인의 안식일 개념을 그대로 주일에 적용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주일성수'란 유대인들에게 부과된 안식일이란 개념을 그대로 존속시켜 '주의 날'을 일주일중의 가장 특별하고 신성한 날이라 하여 또하나의 율법적 짐을 성도들에게 지우는 것이 아닌지요? 칼빈의 글에 근거한다면 '주일성수'라는 말 자체가 없어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하며 그것에 대한 율법적 강요 또한 폐기됨이 마땅치 않을까 합니다.
(답변) 지적하신 지적에 대한 칼빈과 이 노선의 주일관은 같습니다.
(05.8.13. 답변)
1.좋은 주제지만 간단하게 답변하겠습니다.
심층적으로 답변해야 할 주제로 읽었습니다.
그러나 집회 이후 집중 된 일정 때문에 윗글 질문에 대하여
아쉽게도 우선 간단하게 답변의 방향만 잡겠습니다.
2.역사 교회 전체를 위해 내신 종들의 발언
이 홈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숨겨둔 7천의 종들을 통해 인간들이 전혀 알지 못하고 꿈도 꾸지 못한 일을 오묘하게 진행한다는 점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도 그런 역사가 우리 주변에서 어떻게 진행하며 어떻게 우리 눈에 접하게 될런지 찾아보는 노력을 잊어본 적은 없습니다.
동시에 이 홈은
하나님께서 역사 교회 전체를 통해 몇몇 종들을 대표적으로 세워 각 시대를 연결하며 교회의 생명줄이 이어지게 하는 역사가 있다는 것도 늘 잊지 않고 있습니다. 칼빈과 같은 분들의 이름을 들을 때는 늘 이런 면에서 접하고 있습니다. 칼빈도 흠이 있는 사람이지만 그의 이름을 역사 교회 차원에서 특별하게 하나님께서 붙들고 사용하셨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칼빈의 설교나 발언은 극단적으로 조심스럽게 그리고 존중하며 늘 대하고 있습니다.
3.칼빈의 주일관에 대한 기억
윗글 질문자께서 소개한 칼빈의 주일 문제 발언 내용은 답변자가 20여년 전 접해 본 기억이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칼빈이 주일에 대하여 어떻게 발언했는지 그 전체 방향과 중요한 핵심 내용은 당시 살펴본 기억이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이 홈의 백영희신앙노선과 칼빈의 주일 개념은 기본적으로 같았습니다. 칼빈의 주일관을 요약하자면 날자의 변경은, 구약은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고 신약은 예수님의 부활로 인하여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도록 변경되었습니다. 그리고 주일을 지키는 접근법은, 구약교회가 율법주의 자세를 가지고 그림자만 쫓다가 실패한 그런 자세를 버리고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 신약교회에 주어진 새로운 은혜를 실제 받는 주일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정도로 가르쳤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윗글 질문자께서 소개하셔서 당시 칼빈의 주일관을 다시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소개한 내용을 읽으면서 당시 답변자가 기억한 내용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당시 칼빈의 글을 읽으면서, 역사교회가 주님 오실 때가지 늘 싸워야 할 문제점 하나를 새삼스럽게 느낀 것이 있었습니다. 그 문제점은, 역사교회가 모처럼 바로 가르치는 훌륭한 선지자를 가지게 되었다 해도 그 선지자 당대에는 큰 문제가 없으나 그 선지자가 죽고 나면 그 후시대에서는 그 선지자의 발언과 가르침을 놓고 그 해석 문제만 가지고도 또 다시 신앙노선이 나뉘겠다는 면입니다.
여호와증인에게 성경이 없어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성경을 잘못 읽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여호와증인의 조상급이라 할 수 있는 사두개인들의 문제점도 그러했고 정통교파를 유지했던 바리새인 역시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칼빈주의 신앙노선을 엄하게 지키는 교파 내부에서 칼빈의 발언과 가르침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그를 존중하기 때문에 역시 두 신앙길은 나뉘고 있습니다.
4.칼빈의 주일관과 이 노선의 주일관은 일치하고 있습니다.
언뜻 읽으면 질문자 소개하신 칼빈의 표현과 이 홈에서 소개한 이 노선의 주일관은 서로 맞서는 듯 보일 수 있습니다. 칼빈은 주일을 거룩한 날로 만들어 특별한 규제를 하게 된다면 구약 율법 의식을 탈피하지 못한 것으로 보고 심지어 미신적인 날 지키기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홈에서 소개하는 주일 개념은 구약을 옮겨놓은 듯 규제가 많고 자세하며 주일의 의미를 특별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질문자 염려는 칼빈이 경계하고 조심시킨 바를 이 노선은 현저하게 넘어서고 있다고 읽었습니다.
그러나 조금 면밀하게 살핀다면 칼빈의 표현은 주일관에 대한 총론이며 이 홈의 소개는 그 총론을 가지고 현실 교회 내부에 있는 어린 신앙을 실제 가르칠 때 필요한 현장 지침의 성격입니다. 칼빈은 총론만 가르쳤다는 것이 아니고 또한 이 노선은 칼빈에게 총론을 배우고 각론은 이 노선에서 독자적으로 발전시켰다는 것도 아닙니다. 칼빈의 많은 가르침 중에서 윗글 질문자가 소개한 부분은 칼빈의 주일관 중에서도 총론 부분만 소개 되었다는 것이고, 또한 이 홈에서는 주일에 대하여 각론만 소개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이 홈의 다른 부분, 또는 이 홈에서 소개하는 백영희신앙노선의 총론적 소개 글들을 살펴 보시면 칼빈이 염려하여 주일의 성격을 설명한 부분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내용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따로 어느 자료를 소개해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혹시 이곳 문답을 읽는 일반인들 중에서는 칼빈의 주일 성수에 대하여 각론적 자세한 행동지침이 따로 있다면 답변자에게 소개를 요구할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칼빈의 가르침은 주로 총론적인 면이 많습니다. 이유는, 천주교 1천년으로 인하여 기독교는 거의 모든 부분이 완전히 변질되었는데 칼빈의 손으로 그 모든 분야를 전부 다 복구시켰기 때문에 그가 각론에 치우쳐 일일이 글을 적으려 했다면 한도 없는 분량의 글을 남겼을 것입니다.
우선 간단하게 살펴볼 수 있는 방법은, 소개하신 칼빈의 주일관을 가지고, 일단 칼빈 시대 칼빈이 장악하고 있었던 칼빈의 통치 범위 내에서 주일을 어떻게 지켰는지 살펴보신다면 답변자의 소개는 그렇게 낯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칼빈의 상기 소개하신 주일관에 의하면 칼빈이 목회한 교회와 칼빈이 통치한 주민들이 주일날 각자 일정과 개성과 생활 여건에 따라 소위 세상 기준에서 볼 때 자유롭게 여가를 즐길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실제 칼빈이 다스린 사람들의 주일 행동과 일정은 마치 오늘 이 노선에서 소개하는 생활과 가장 흡사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모습은 이 노선 뿐 아니라, 얼마 전가지만 해도 칼빈주의의 전통적인 주일 성수의 기본 모습은 거의 모든 보수 교회들에게 칼빈시대 이래로 수백년 내려온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최근에 들어서 급격하게 각 보수교단들이 자신들의 과거 건전한 주일성수를 버리고 자신들의 선배들이 그토록 자유주의에 물들어 속화되었다고 비판한 자유주의자들의 논리와 주일 모습을 자신들이 수입하여 자신들이 소속한 신앙노선을 스스로 이탈하고 있습니다.
지금 질문자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고 우연히 이번 질문자의 지적하신 내용은 정통 칼빈주의들이 최근 급격하게 자유주의화 하면서 자신들의 변질을 변호하기 위해 변질을 거부하고 있는 이 노선을 비판할 때 주로 사용하는 논리와 너무 흡사합니다. 이번 질문자의 경우는 정확하게 어떤 입장에서 나온 것인지 답변자가 알지 못합니다만 전체 질문 글을 통해 우연히 결과적으로 그런 모습이 되었다고 읽고 있습니다.
5.칼빈주의 주일성수 모습
현재 국내 교계를 두고 말한다면, 5백여 년 내려온 정통 칼빈주의의 주일성수를 두고 이론과 모습 등에서 칼빈주의의 원칙과 원래 모습을 가장 잘 보관하고 있는 곳이 이 노선입니다. 그리고 국내 최고의 칼빈노선이라고 자부하는 고신측이나 합동측의 주일성수는 이 홈에서 비판할 것도 없이 그들 스스로 그들의 50년전 선배들의 신앙이 옳았는지 현재 그들의 신앙이 옳았는지, 그들의 선배와 현 그들은 서로가 세상에서 가장 칼빈주의에 정통하다고 자부하는 이들이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 논쟁을 하는 것이 모든 면에서 순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선배들이 율법주의로 잘못 믿었고 현재 그들의 주일성수 모습이 옳다면 이 홈은 그들에 의하여 정죄받을 사안이 많습니다. 그러나 고신과 합동측의 50년 전 주일성수가 정통 칼빈주의에 가깝고 오늘 그들의 주일 성수는 탈선이며 타락 차원에 가깝다고 판단이 된다면 이 홈은 정통 칼빈주의를 실제로 오늘까지 보수하고 있다며 극찬을 받아야 할 상황입니다. 그들 선배들의 과거 주일 성수가 잘못되었다고 만일 오늘 칼빈주의를 자처하는 이들이 입증을 하게 된다면, 이 홈은 그들과 함께 그들의 선배들을 대신하여 정통 칼빈주의의 주일관에 대하여 차분하게 재론할 수 있습니다.
6.이 홈에서 제시하는 여러 주일성수의 각론들은
주일성수의 절대적 기준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홈의 주일 관련 많은 자료를 면밀하게 살펴보신다면
이 홈의 주일관은 칼빈의 주일관과 총론적으로 또 신학적으로 하나일 것이고
이 홈이 교인들에게 주일을 알기 쉽게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안내하는 바는, 칼빈 시대 자료를 살펴보신다면 이 노선보다 더 엄했을 것으로 밝혀질 것입니다.
윗글 질문자가 소개한 내용은 사실 그 기준을 어느 정도로 설정하느냐에 따라 칼빈의 윗글 입장으로 칼빈 자신의 주일 행동을 비판한다면 칼빈 역시 율법주의로 정죄받을 수 있는 상대적인 기준입니다. 실제 기독교 내 '보수 정통'이라는 개념을 조금 넓게 잡는다면 칼빈은 율법주의자라고 비판하는 교파들이 적지 않습니다.
7.자세하게 살피고 싶은 사안이 많으나
여러 일정 때문에 이번 문답은 일단 이 정도 글로 대신했으면 합니다.
14. (질문) 주일의 복은 어떻게 오는지
구약 이스라엘은 안식일을 지키도록 안식일 전에 2일 분량 만나를 받았습니다.
신약 우리들이 주일을 바로 지키면 주일날 벌지 못한 돈을 토요일에 2배 벌게 하는지, 아니면 월요일에 2배를 벌게 하는지, 아니면 일주일 전체를 통해서 주일날 장사하지 못한 돈을 벌게 하는지 궁금합니다.
최근 개인 사업 중에서 주일 하루에 버는 돈이 평일 하루에 비하여 너무 많은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사업은 주일 하루에 버는 돈이 한 주간 전체 매상만큼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사업을 하면서 주일을 정말 온전히 지키는 것은 어렵습니다. 교회에서 몇 부 예배로 나누어 보는 이유 중 하나는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아침 일찍 예배 보고 장사가도록 하고 있습니다.
정말 바로 믿고 사는 것은 너무 어려워지는 세상입니다.
(답변) 구약은 외부적, 신약은 내부적
구약은 어린 교회를 가르치기 위해
눈에 보이는 외부문제를 외형적으로 가르치면서 그 내면을 짐작하게 했습니다.
안식일 문제도 구약은 외적인 면을 먼저 가르쳤고
그래서 안식일 전에 2배의 양식을 미리 주셨지만
신약은 그 내면을 중심으로 가르치기 때문에
주일날 벌지 못한 것을 보충시킬 때 꼭 토요일이나 월요일에 보충하지 않으시고
평소 신앙전반에서 보충합니다.
그러나 신앙이 어릴 때는 주일을 지킨 표시를 확실히 보이기 위해
오늘 신약에도 토요일에나 월요일날 주일매출을 보상받는 것을 일부로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린 신앙을 길러가는 임시 방편일 뿐입니다.
좀 자란 신앙에게는
주일을 지켰는데 보상을 해주지 않아서 어려움을 당하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땅의 것으로 보상을 받는 것에 머물지 않도록 가르칠 필요가 있을 때는 그럴 수도 있습니다.
15. (질문) 주님의 죽으심이 완성된 주일에 대하여 6141
주일은 주님이 죽고 사신 사활대속을 기념하는 날로 알고 있습니다.
주님은 금요일에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주일날 영시에 죽으심의 대속이
완료되고
주일날 부활하심으로 부활의 대속도 주일날 완료되어 사활대속의 구원
완성이 주일에 이루어진 걸로 알고 있습니다.
주님의 육신의 생명은 마27:50 막15:37,42절에 안식일 전날 운명하신 걸로
나오는데
왜 죽으심이 주일 영시에 완료되었다하는 것인지 정확한 뜻을 알고싶습니다.
(답변) 천문학적 의미의 시각이 아니라, 주일 전부를 강조한 의미
1.주일 '영시' 부활이란 표현은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24시간 시각 개념의 시간적 단위에서 말하는 '0'시가 아니라
주일은 주일 전부가 예수님의 '부활'을 의미하는 날임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태양의 각도를 기준으로 하루를 24개 등분하고
그 24개 중 하나를 '시간'이라고 표시하고 있는 천문학적 의미의 '0'시가 아니라
주일은 그 시작부터 그 하루 전체가 '부활'이라는 뜻을 강조한 것입니다.
백목사님 생전 이 표현을 가지고 직접 질문한 적이 있었으며
당시 직접 확인받은 내용입니다.
2.사도신경에서 '장사한 지 사흘만에'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초대교회로부터 성경의 최소한의 요약이 '사도신경'에 담겨져 있습니다.
그 짧은 내용에서도 '3일'이 표시되어 있으며
금요일 돌아가셨고 토요일을 지난 다음 주일에 부활을 했기 때문에
천문학적 시각을 기준으로 엄밀히 말씀드린다면 '0'시에서 단 1초라도 더 지나가야 '사흘'이 됩니다.
3.질문 관련 핵심은 '주일의 의미'에 모아졌으면 합니다.
주일은
죄로부터 해방받은 우리가
이제는 새생명으로 새것으로 살아야 하는
모든 시작이며 그 전부가 되는 의미의 '날'입니다.
16. (질문) 어버이주일
교회에서 어버이주일날이라 주변어르신을 초청하여
식사 음식 대접 한 것까지 이해가되지만 예배시간에 어버이노래를 부르자고 목사님께서 주관하여 노래를 부르는데 이것이 옳은지 아닌지 아니라면 어떻게 앞으로 대처해야 할지 그것이 옳지 않다고 주장하고 시정이 되지 않으면 그 교회를 떠날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소견으로 인본주의적 목회자인듯 한데 하나님의 교회에서 어떻게 찬송이 아닌 세상노래를 부를 수 있는지 참 한심하기까지 했습니다. 힘이 되는 답을 주십시요.
(답변) 교회 결정은 가정으로 비교하셨으면
1.질문하신 교회의 행사
신본주의는 신앙이고 인본주의는 죄입니다.
그러나 어느 선까지가 신본이고 어떤 행동이 인본인지 짚어내는 것은 어렵습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주일을 어버이에 의한, 어버이를 위한, 어버이의 주일로 이름 붙이고 행사한 것은 죄지만
어떤 교회는 그런 문제를 잘 알고 그런 문제를 피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하면서
오히려 어버이들을 특별하게 전도하여 신앙으로 이끌려고 했는지 단정할 수 없습니다.
질문자가 전하는 전체 분위기도
분명하게 잘못 나가고 있다고 '짐작'은 되지만 99.9%이지 100%라고 단정할 정도는 아닙니다.
2.만일 질문자 교회가 정말 잘못한 경우라면?
그래도 그 일 하나만 가지고는 교회 소속을 바꿀 정도는 아닙니다.
자기 부모의 잘못 한 가지가 확실하게 증명이 되는 경우 가출을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이 땅 위에 자기 집에서 끝까지 자랄 자녀는 없을 것입니다.
만일 있다면, 그 자녀는 재수가 좋아서 부모의 다른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지
실제 그 부모의 잘못이 없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지금 이 시대 목회자와 교회를 두고 비판을 하자면
너무 명백하게 잘못 된 것이어서 얼마든지 비판하고 교회를 떠날 수 있는 사례가 많습니다.
어버이행사 하나 잘못한 것보다 교리 문제는 훨씬 큰 사안인데
교리에 대하여 아주 특별한 전문가가 아닌 일반 목회자라면
그 목회자 1년 설교 전체를 모아서 교리라는 현미경으로 살펴 이단이 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잘 알지 못해서 실수를 한 것인데, 세월 속에 계속 좋아지고 있는지?
알면서 고의로 교회를 세상식으로 만들기 위해 작정을 하고 노력을 하고 있는지?
근본 성격을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만일 두번 째 경우라고 한다면 교회를 옮기는 문제를 두고 반대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두번 째 경우라고 단정을 했다 해도
다니던 교회를 떠난다고 선포를 하기 전에 먼저 가야 할 교회를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아마 주변 거의 모든 교회가 현재 교회보다 더 못하면 못했지 낫다할 교회가 없을 것입니다.
부모의 잘못을 목격한 자녀가 도저히 집에 있을 수 없어 짐을 싸서 나가는 것은 이해하지만
나간 후에 집보다 더 나은 곳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나간 다음에 짐 풀 곳을 찾는다면 너무 안타깝습니다. 집보다 못한 곳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가출청소년은 나가서 혹 후회를 한다면 가출을 한번 후회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교인의 교회 결정은 한번 교회를 떠나서 뒤에 후회하게 된다면 그냥 단순하게 한번의 실수로 끝나지 않고 영원히 되돌릴 수 없는 손실이 발생하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현재 다니는 교회는
대충 들어봐도 무슨 문제인지 질문자 고민이 무엇인지 대충 알겠습니다.
문제는 현재 교회의 단점이 그 정도라면 다른 교회보다는 낫지 않은가 라는 짐작이 들고
만일 교회를 옮긴다 해도 무슨 일이 있을 때 갑자기 결심하는 것보다
평소 어떤 기준을 세워 어떤 정도 어느 문제라면 교회를 옮기겠다라고 생각을 해 두거나
다시 택할 교회는 어떤 조건이라야 선택을 하겠다는 것을 면밀하게 잘 결정해 두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런 기준을 마련하실 때는
혼자 아무리 연구해도 훗날 돌이켜 보면 젊은 날 철없는 결정이었다고 후회할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 사례를 면밀히 잘 살펴보시기를 권합니다.
교회 소속 문제는
가정으로 비교할 수 있을 만큼 신중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한번 맺은 것은 지키는 것이 원칙입니다.
물론 가정도 피치 못하게 나뉘는 경우가 있어 아브라함과 야곱도 제 집을 떠났으나
일반 교인들이 쉽게 생각하고 결정하는 그런 수준은 아니어야 합니다.
전체적으로 말하면
현 사회의 가정 문제는 개인의 사정도 있겠으나 이미 도를 넘었고
현 교계의 소속 문제도 충분히 이해할 면이 있지만 선이 아주 무너졌습니다.
17. (질문) 몽학선생과 율법과 주님의 복음
목사님 안녕하세요
저는 이곳에 들려서 많은 은혜를 체험하고 늘 감사하게 생각하는 일반교회의 성도입니다. 그런데 신앙으로 교제하는 어느 홈페이지를 방문하였다가 아래와 같은 문의/답변이 되는 것을 보고 웬지 답답한 생각이 들어서 그 내용을 이곳에 옮겨서 목사님의 의견을 구하고 싶습니다. 바쁘시더라도 아래의 내용을 한번 살펴주셨으면합니다.
이하는 어느 여대생의 주일의 의미에 대한 고민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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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주일의 의미
안녕하세요?
저는 너무 나도 궁금하고 고민 되는 문제가 있어서
이곳에 글을 올립니다.
주일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전에 전도사님께서는 돈을 쓰지 말라고 하시더군요.
그것이 성경적인가요?
저는 제가 율법에 얽매여 산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저는 고3때 너무 나도 괴로웠습니다.
주일날 공부한다는 것에 대해서요~
예배를 드렸지만 왠지 찝찝하고 죄스러웠습니다.
선생님께 용기 있게 말씀 드리지도 못했고
그래서 저는 믿음이 부족함을 한탄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만은 아니더군요.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주일날 예배를 안 드려도
수능셤 잘보던데요.
제가 율법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 걸까요?
저는 사람을 많이 두려워해서 아직까지 술자리 같은 곳에
가보질 못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 그 시선이 너무 괴로웠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안에 강하고 담대해야 하는 데
그것이 쉽지 않으니 어찌해야 할까요?
혼자 있을 때 참 두렵고 떨립니다.
저는 대학교 1학년생이고
이제 아르바이트를 구하고자 하는데
주일날 쉬지 않아서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 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면 되는 것일까요?
저는 여행을 가려고 돈을 모으고 있는 중인데
이것이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인가요?
너무나도 궁금해서요.
이럴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해주셔요.
구약성경을 어떻게 읽고 적용시켜야 할지도 궁금합니다.
예수님을 갈망하고 있는 한 자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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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는 위의 질문에 대한 어느 답변자의 답변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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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주일의 의미
이런 고민은 학창시절에 저도 많이 했습니다.
주일날 공부하는 것 돈 쓰는 것 등등.
주님은 이 때문에 오셔서 우리에게 가장 큰 계명을 주시고 몽학선생 아래 있던 우리에게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지위를 부여 하셨습니다.
그 계명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외에 우리에게 일어나는 많은 일상 생활의 충돌은 하나님이 더 이상 우리를 구속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나 자신 뿐 아니라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도 이런 율법의 요구를 이루려는 시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무시하는 발상입니다. 주일날 일하지 않는 나라는 이스라엘 즉 율법이 지배하는 나라뿐입니다. 토요일이 일요일이 된다고 그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지요. 성경을 지식적으로 알아 가면 사람들은
자꾸 이런 율법의 요구를 이루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여긴다며 자기도
이루지 못하는 것을 남에게 이루라고 요구하지만 초대교회 예루살렘 총회에서의 결론도 중요한 것 외에는 멍에를 씌우는 것이 좋지 않다고 구약을 정리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취지를 많이 훼손했습니다.
율법과 주님의 복음을 잘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안식일 일하는 것은 큰 반역입니다. 어린아이가 길을 걷다가 차도로 방향을
틀면 부모가 호통을 칩니다.그러나 장성한 아들이 방향을 틀때는 부모가 아무말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몽학선생 아래 있을 때와 복음 아래 있을 때 하나님이 우리를 판단 하시는 기준입니다.
돈을 벌어 여행을 가서 하나님의 넓을 세계를 보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생각의 촛점을 우리를 자유케 하신 주님께 두고 회초리를 들고 우리의 사사건건 매질하는 몽학선생에게 두지 마십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진정 자유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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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답변을 보고 질문자는 자유함을 얻고 아래의 감사의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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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해주심 감사합니다.
저는 많이 율법에 매여 있어서 답답하기도 했고
하나님께서 치실까봐 이것저것 해보질 못했습니다.
주일날 시내를 나가는 게 옳은 것인지
너무 많이 고민했는데 답변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신앙적으로 많은 고민이 있는 데 이곳에 올리니
답을 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기도 드렸는데
답변을 해주시네요.
저는 기쁜 마음으로 주일날 예배를 드리고 알바를 해도 되겠네요.
저는 하나님 안에서 자유하고 싶은 소망이 있습니다.
그분의 뜻을 진정 알고 싶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로~
항상 주님과 함께 동행 하시는 삶 사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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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글들이 그곳 홈페이지의 일련의 내용입니다.
(답변1) 주일에 얽매이지 말라고 하려면 살인하지 말라고 한 옆에 계명도 같이 폐해야
1.'주일날 일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대표적으로 다루며 율법과 은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주일날 일하지 말라는 것을 대표적으로 예를 들었습니다. 주일날 일하지 말라는 것은 십계명인 율법의 요구이니 이는 구약으로 끝이났고 신약은 주님의 복음으로 모든 면에 얽매이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자유생활을 하라는 것이 답변자의 입장이었습니다.
2.간단하게 답변하겠습니다.
이곳에는 여러곳에서 주일문제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곳에서는 간단하게 답변하겠습니다. 질문하신 분이 소개하신 내용은 요8:32에서 말씀하신 '진리가 자유케 해 주는 진리의 자유'가 아니라 진리를 무시하고 진리를 짓밟는 자유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전능하신'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아도 성경 한곳에서 하나님을 '전능'이라고 가르쳤으면 모든 성경에서 표현된 '하나님'은 두말할 것 없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다 적는다면 세상에 둘 곳이 없어 간추린 것이 성경이기 때문에 일일이 적지 않는 것입니다. 자유도 일일이 '진리가 자유케 해 주는 진리 안에서의 자유'라고 설명하지 않아도 '진리를 아는 진리의 자유'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마다 취향과 생각과 형편이 다른데, 그 모든 믿는 사람이 제각각 전부 자기 마음에 하고 싶어하는 바로 '그 자유'를 성경이 말하는 자유라고 해석한다면 이는 잘못입니다.
만일, 주일날 일하지 않는 것이 구약 십계명이기 때문에 율법의 요구라고 해서 이를 폐해야 한다면, 십계명에 1계명인 '하나님외에 다른 신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하신 말씀도 함께 폐해야겠고, 2계명의 요구인 우상금지도 율법의 요구가 되는 것입니다. 5계명인 부모효도도 폐해야겠고, 그렇다면 고려장을 해야 복음이 될 것입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것은 6계명 율법이니 이것도 지키려고 애쓰지 말라는 말인데....
그렇다면, 살인하고 싶을 때는 자유롭게 하고? 수학여행을 갔다가 절에 가서 불상 앞에 합장하자는 선생님이 계실 때는 주저하고 머뭇거리는 것은 율법에 매인 것이니 그냥 합장하고 참배해 버리는 것이 자유라?
3.소개하신 설명은, 현재 교계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이론입니다.
구약성경이 요구하는 모든 것은 다 버려야하는가? 구약성경도 오늘 그대로 다 지켜야 하는가?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부자청년에게 마19:16-7에서 영생을 얻으려면 계명을 지키라고 한 것이 신약성경이며 동시에 앞에 인용한 답변자가 말한 행15장, 덧붙혀 골2:16에서 구약율법은 전체적으로 폐했습니다. 따라서 십계명을 제외한 다른 율법은 신약에서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고 해석해야 성경 전체에 옳습니다. 물론 십일조와 같이 신약(마23:23)에서 따로 인정하고 있는 것은 당연히 지켜야 합니다.
(답변2) '몽학선생' '율법' '복음'에 대한 추가 설명
1.'몽학선생'
몽학선생이란 갈3:34-5에서 어린아이를 가르치는 선생이란 뜻으로 사용되었으니, 이는 구약시대 구약교회에게 주셨던 '율법'은 구약시대가 어렸기 때문에 장차 오실 예수님에 대하여 신약처럼 장성한 수준에서 가르치지 못하고 어린 수준에서 가르쳤다는 뜻으로 사용한 표현입니다. 신약은 예수님이 직접 오셔서 십자가 대속을 완성했고 또 성령이 우리 속에서 역사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환하고 밝은 빛 가운데서 알게 되었습니다.
2.'율법'과 '복음'
율법이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뜻으로, 구약교회에 주신 말씀은 전부가 반드시 지켜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신약의 말씀은 지키지 않아도 되는 말씀인가? 신약에서 이웃을 사랑하라는 소위 가장 즐겨 인용하는 말씀은 지키지 않아도 되는 말씀인가?
신약도 율법이요 구약도 율법이지만, 구약에서는 지켜야 할 말씀이라는 것이 강조되어 율법이라고 했고 신약에서는 지켜야 할 말씀이지만 은혜로 주신 구원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또 이 구원으로 복받게 되었다는 점을 강조하여 '복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은 전부가 율법이며 예언이며 복음이며 진리며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구약은 율법이라 신약에서는 지킬 필요가 없다고 한다면 우리 성경을 신약만 가지고 다녀야 할 것입니다. 또한 신약은 은혜와 복음의 시대이니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믿으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신약성경 자체도 필요없는 시대라는 말이 됩니다.
'복음'이라는 표현은, 예수님 은혜로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이니 그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는 것은 전적 은혜이지만 그 구원을 받은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덧붙혀 부탁해 놓은 말씀은 그대로 순종하면 복이 됨으로 복음입니다. 그 예수님께서 믿는 사람에게 부탁해 놓은 것이 바로 신구약성경말씀 전부입니다. 다만 그 중에서 구약의 십계명과 십일조는 그대로 지키고, 주일은 날짜만 변경해서 그대로 지킬 것이고, 나머지 구약 전부는 왜 하나님이 구약교회에 이 말씀을 주셨는지 그대로 오늘 신약 우리에게 거울로 주셔서 항상 들여다 보게 했습니다. 따라서 신약에서 그대로 지킬 내용 외의 구약은 그 내용이 오늘 우리에게 요구하는 바를 지키라고 주신 말씀입니다.
3.'율법' '몽학선생' '복음' 등은 말씀 지키기 힘든 분들이 항상 들고 나옵니다.
율법주의는 예수님 대속없이 성경을 행위로 지켜 구원얻겠다는 주장이니 이 주장을 우리가 반대해야 합니다. 구원은 은혜로 얻는 것이고 믿고 난 뒤에는 이 성경말씀이 바로 우리가 살아갈 진리입니다.
이렇게 혼동이 되는 것은 일반 신학이 구약의 십계명은 신약에서도 지켜야 된다는 정도로는 알고 있으나 건설구원에 대한 교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결정적으로 혼동을 야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요약하면 천국가는 기본구원은 은혜로만 가는 것이고 말씀을 지켜 가는 것이 아닌데, 구약교회는 말씀을 지켜 그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 했으니 이것이 율법주의입니다. 신약교회가 율법에 대하여 알고 있을 것은, 구원은 예수님 믿고 은혜로만 얻지만 일단 예수믿고 난 다음부터 죽는 날까지 우리의 신앙생활은 바로 말씀대로 사는 생활에 있습니다. 이때 말씀대로라 함은, 구약의 제도와 규례는 십계명과 십일조 외에는 외부적으로 지킬 것이 아니고 그 뜻을 진리 이치로 지키라는 것을 뜻합니다.
18. (질문) 주일날 먼 곳으로 집회나 기도, 재독하러 가는 것은? 386
주일날 차를 타고 갈 수 있는 거리는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지요?
또 주일날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먼 거리를 기도나 혹은 재독하러 가도 되는지요? 서부교회 중간반에서는 집회 갈 때도 주일날 오후에 출발을 하고, 또 기도원 같은 먼 곳을 별 거리낌없이 주일날 오후에 가서 며칠씩 지내곤 합니다. 먼 거리를 가게 되면 통행료 문제나 기타 여러 가지 주일 성수가 될 수 없는 일들이 있을 것 같은데...
갈등과 반목으로 서로 구원에 손해 보는 것보다는 조용히 마음 맞는 분들끼리 기도나 재독으로 은혜 받는 것은 좋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주일 성수의 관점에서 보면 분명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해서 여쭈어 봅니다.
(답변) 3박 4일 집회 출발을 주일날에 하는 것은 분명히 안 됩니다.
1.주일을 어느 선에서 지키느냐는 것은 사실 양심문제에 속합니다.
주일을 어느 선에서 지키느냐는 것은 각 개인과 교회별로 다 다릅니다. 중간반 중심으로 집회를 간다고 하지만 이미 그분들은 독립된 한 교회가 되어 있는 분들입니다. 따라서 그 교회 형편에서 그 교인들의 신앙에 유익하겠다고 결정했다면 옆에서 말하기가 여간 조심스럽지 않습니다. 개별 영감의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2.아무리 그렇다해도 3박 4일의 출타를 주일 오후에 떠나는 것은 잘못입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조금씩이라도 고쳐가는 것이 소망이며 또한 한 교회라고 한다면 여러 종류의 신앙들이 있기 때문에 전체를 생각하여 지도부가 결정했으리라고 봅니다. 이런 집회출발은 투쟁도 아니며 논쟁도 아니라 내부 은혜를 주 목적으로 했을 것이기 때문에 그 운영의 자세한 일정이나 외부 모습 하나를 보고 그 교회 전체를 평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스럽습니다. 어린 사람을 길러가다 보면 때로는 정상 성인에게 해당되지 않을 조처도 필요할 수 있기 때문에 단순 비교하지는 못합니다. 이렇게 두번 세번을 이해하고 본다 하더라도 주일에 전체 교인이 3박 4일 출타를 하는 것은 그 자체도 주일의 선을 넘은 것이며 이것이 앞으로 신앙노선 전반에 교리 원칙 없는 교회가 되는 한 모습일 수가 있습니다.
3.중심과 열심에서는 가장 앞선 교회이나 교리와 노선에서는 극히 우려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세상 사람이 다 지탄하고 모든 공회인들이 비난했던 포크레인 사건까지도 이곳에서는 우호적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일 그것이 단 한번이었다면, 그리고 비상적인 상황이었다면, 그것이 비록 명백한 폭동이었다 할지라도 이해하고 오히려 동감하는 편입니다. 비느하스가 창을 든 것과는 전혀 다른 실수라고 보지만 지도부의 결정이 비느하스의 심정에 있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런 폭행을 반복하며 구조적으로 지속하겠다는 방향을 확정짓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의사를 확인했던 1991년, 이곳은 서부교회 중간반과 서로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도 이곳은 목적과 중심은 서부교회 중간반과 함께 하기 때문에 신앙본질은 같다고 확신합니다. 다만 그 방편만은 주일출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뚜렷하게 다른 면이 있습니다. 은혜가 되겠다고 생각하면 주일에라도 집회 출발을 하는 곳이 중간반이며, 은혜가 되면 거의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지만 그래도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이 이곳입니다. 양쪽을 함께 아끼는 분들은 그 정도 차이는 서로 이해할 수 있지 않느냐고 하지만 이 차이는 결국 해방직후 고신과 재건교회라는 모습으로 한국교회사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한 그후 고신과 총공회의 노선 결별도 교리가 아니라 이런 행정 노선에 대한 견해 차이가 먼저 있었습니다. ,
(방문자) 중간반 장거리 기도의 주일성수에 대한 답변 (서부교회 중간반사 )
서부교인 이라며 서부교회 중간반이 주일 먼 곳으로 기도하러 가는 것이
주일 성수가 될 수 없는 일이 있다라고 한 것에 대해,
우리는 주일밤 김해 묘지로 산기도 가거나 양산으로 기도회를 갈 때에도
시간이 많이 걸리고 길이 안좋아도 꼭 국도로 갔고, 고속도로 통행카드도
쓴 적이 없습니다.
또 주일날에 기도회를 갈 때는 저녁 도시락을 다 싸가지고 갑니다.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옳은 복음역사를 훼방하는 데 대해
아말렉 족속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복수를 모르십니까?
말을 하면 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왜 자기 이름을 밝히지 않습니까?
양심이 있으면 이름을 밝히든지, 바로 알았으니까 사과를 하든지 해야
진실이 있는 사람이 아닙니까.
19. (질문) 주일준비와 집회준비 /span>
각 공회의 집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집회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 가르쳐 주셨으면 합니다.
가끔, 주일준비보다 집회준비를 더 열심히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집회를 월요일날 떠나므로 그 바로 앞 주일이 집회준비 주일이 되는 듯한 생각이 들때도 있습니다.
교회와 개인의 신앙과 경제 등등 모든 여건을 살펴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만, 집회 준비하듯 매 주일을 준비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자신을 탓해봅니다.
(답변) 주일은 날 중의 날이요, 유일한 날이며, 다른 날이 주일을 범해서는 안 됩니다.
1.주일은 신약 성경이 유일하게 명령한 '날'입니다. 모든 날의 날입니다.
구약교회가 지킬 날들은 많았습니다. 유월절 맥추절 수장절 속죄일 안식일 ... 등 그 종류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오직 주일만 '날'입니다. '날'의 의미는 지켜야 할 일자라는 뜻입니다. 신약은 모든 날을 7일을 단위로 계산하여 주일을 지킵니다. 나머지는 신앙의 유익을 위해 각 교회가 신약의 여러 원칙을 기억하여 조심스럽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일을 앞서거나 대신하거나 범하는 면으로 움직이면 안 됩니다.
일반적으로 교회들이 설립일이나 몇 주년 기념식이나 어린이 주일처럼 세상 이름을 붙이는 날들을 지키고 심지어 담임목회자 생일이나 몇 년 부임 기념일 또는 교인들이 집안에서 지키는 여러 종류의 날들을 아주 규칙처럼 지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모든 날들은, 그 날들을 지키는 자체가 죄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디까지는 안 믿는 사람들과 엄격히 죄되지 않는 문제를 가지고 필요이상의 마찰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지키는 척 하는 수는 있어도 그 날들에 대한 우리의 기본자세가 '날'로 지키는 것이면 곤란합니다. 특히 신앙관련 사항으로 교회가 기억하고 지키는 것도 단순히 그 의미를 한번 더 돌아보는 그 이상이 된다면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2.집회와 주일
주일과 집회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잘못입니다. 주일은 주일이고, 집회는 평소 주일을 통해 받는 은혜를 보충하는 방법으로 주일을 더욱 주일 되게 지원하는 행사 중 하나입니다.
집회 준비 때문에 주일을 범하게 된다면 이는 본말이 전도되는 경우입니다. 마치 부모 돈을 훔쳐서 부모에게 선물을 준비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요? 어디까지나 주일날 받는 은혜가 주식이며 3끼식사와 같고, 집회의 은혜는 하루 3끼 주식을 더욱 잘 먹도록 하기 위해 더위 먹은 사람에게 좋은 보양식을 먹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같은 한 시간에 받는 은혜만을 가지고 짧게 비교한다면 집회 때 은혜가 주일날 받는 은혜와 비교할 수 없이 큰 경우는 많습니다. 그러나 집회의 은혜가 아무리 크도 집회의 은혜는 주일을 이제 잘 지켜서 앞으로 주일을 지킴으로 더 큰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역할을 합니다. 주일을 잘 지켜 신앙이 자라니까 집회를 잘 지켜서 집회 때 받는 은혜로 신앙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3.총공회 집회와 주일
'총공회 집회'라는 단어는 흔히 '백영희목사님이 인도하던 집회'라는 단어와 같은 뜻으로 사용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백목사님 사후 지금은 부산공회의 경우는 여전히 그런 뜻으로 사용되고 있으나 타 공회의 경우는 이제 일반 교단의 집회와 꼭 같은 뜻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질문하신 내용은 백영희목사님의 생전 집회나 혹은 사후 지금까지 이어지는 그 재독집회의 경우를 두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백목사님의 설교가 이 시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느냐는 것은 적어도 공회 노선에 있는 분들에게는 정말 특별한 설교이며 이 설교를 통해 받는 은혜로 총공회 신앙노선이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집회의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에 공회 신앙노선 소속의 교회들은 주일날을 소홀히 하는 듯한 행동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잘 주의를 시켜 어디까지나 주일과 집회의 위치와 의미는 뚜렷히 구별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무리 백목사님의 설교 재독이 갖는 은혜가 크다 해도 역시 주일을 지켜야 하는 것과 집회를 준비하는 것은 신앙 근본적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차이가 있습니다.
4.다만, 주일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잠이나 자는 경우라면
남들에게 오해되지 않고 또 자신에게 신앙에 손해 되지 않는 면으로 집회를 준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매일 덮고 자는 이불과 매일 사용하는 비누 등 일상 준비물을 챙기는 정도의 짐싸기는 주일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토요일날 모든 다른 짐과 필요한 조처는 끝난 상태에서 주일날 사용하는 비누를 사용한 뒤 짐보따리에 그 비누를 챙겨 넣는 정도는 상관이 없다는 뜻입니다.
만일 주일날 오전 예배를 보고 오후 예배는 친구들을 만나러 돌아다니는 정도의 어린 신앙을 잘 설득하여 집회를 데리고 가는 경우라면 그 아이에게 주일날 짐을 처음부터 다 싸도록 해도 될 것입니다. 그 아이에게는 주일날 집회 간다고 짐싸느라고 친구들과 밖으로 놀러다니지 않는 것이 그 아이가 주일을 더욱 주일답게 지키는데 한 걸음 더 진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일을 잘 아는 분들이 토요일까지 충분히 해놓을 수 있는 일을 집회 핑계로 주일날 오후나 저녁에 짐을 꾸리기 시작한다면 자기 신앙양심이 먼저 자신에게 지적을 할 것입니다.
5.교회 전체적으로 챙길 일이 있습니다.
비록 주일이지만 교인 전체를 상대로 월요일 집회를 떠나기 위해 주일날 저녁에 미리 연락을 한다든지 짐을 한 곳으로 모아놓는 일들은 할 수 있습니다. 이유는, 한 교회 교인들이 전체로 집회를 간다면, 그 중에는 주일날 비누 하나까지도 완벽하게 따로 준비하여 주일날은 더 이상 할 일이 없도록 해야 하는 신앙도 있으나 대개 교회가 움직일 때는 집회를 가자고 공을 많이 들여야 하는 어린 신앙들이 섞여 있습니다.
이런 이들과 함께 움직이는 일이기 때문에 교회가 전체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몇 가지 일들 중에서 주일날 엄격하게 금하고 있는 일들이 아니면 어린 신앙을 위해서 할 일들이 더러 있습니다. 아주 자세한 문제는 더 구체적으로 질문을 하셔야 안내를 드리겠고, 여기서 일일이 설명을 다 드리려면 글의 양이 너무 많아질 것 같습니다. 전반적인 원칙을 기억하셔서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6.이전 백목사님 생전 공회 집회을 위한 하루 전 주일날의 움직임에 대하여
당시는 월요일 첫날 저녁 예배를 위해 안 믿는 가정의 주일학생까지 포함한 전 교인이 집회장소까지 움직이고, 대로에서 집회장소 골짝까지 이동하고 또 집회 당일 식당이나 숙소 천막 설치 등을 한 뒤에 저녁 첫 예배를 드리려고 하면 최대한 일찍 출발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주일 밤 12시가 지나면 바로 차량을 출발시켰고 그 일을 위해 토요일 저녁에 모든 준비를 끝냈다고 주일날은 집회 출발을 위한 마무리 단 한 가지 순서만 남겨둡니다. 그리고 주일 밤 12시를 지나면 바로 출발 준비에 들어가서 집회 장소로 이동을 했습니다.
지금은 전국 어디서나 어느 공회 집회장소를 향하던 차량으로 불과 4-5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도록 교통망이 탁월하게 확보되어 있습니다. 가장 시간이 많이 걸렸던 도평 집회장소 골짝 안까지도 이제 차량이 바로 진입할 수 있도록 포장이 되어 있는 정도입니다. 또 경제 여건이 좋아져서 집회 장소에 고정 설치물을 충분하게 확보하여 이제는 집회 당일날 숙소나 부엌 도구 자재들을 지게에 지고 가서 임시 건설현장처럼 일을 해야 할 일이 없어졌습니다. 또 단일 집회가 현재 5개 정도로 나뉘어 진행되므로 참석 숫자도 아주 간편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개 저녁 7시에 첫 예배가 있기 때문에 이 정도라면 월요일 점심 먹고 12시에 출발해도 별 불편이 없는 정도입니다. 이런데도 만일 토요일 오후나 월요일 오전에 할 수 있는 일을 주일날 한다면 비록 어린 신앙들에게도 그렇게 하지 않도록 조심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20. (질문) 양계장을 할 경우 주일날 짐승 먹이 주는 것은 /span>
저희 동네는 양계를 하는 동네입니다.
그런데 주일날에도 일을 해야 합니다. 짐승의 먹이를 주고 주다 보니 다른 일도 하게 됩니다. 짐승의 먹이만주고 다른 일은 안했으면 하는데 그게 그렇게 되질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일 오후예배는 많이 출석이 저조 합니다.
그리고 양계를 하는 사람들은 한달 수입이 많이 될 때는 엄청납니다.
그러나 십일조는 일반 봉급쟁이 보다 적게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답변) 주일은 그 기준을 먼저 아셨으면, 십일조는 계산법을 참고하셨으면. - 보충
주일문제
1.주일을 포함해서 모든 신앙생활에는 '기준'이 있습니다.
①주일을 두고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그 기준이 애매하다는 것입니다.
수도, 전화, 전기, 도시가스 등등은 전부 외상으로 사용하고 한 달 뒤에 돈을 내고 있습니다. 외상거래입니다. 외상도 물건을 사고 파는 매매에 속하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 분명히 옳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외상행위는 하면서 주일에 쌀을 가져오고 월요일에 돈을 주는 외상은 하지 않습니다. 또 월세와 전세로 살고 있는 사람은 한달 집세에 주일 사용료도 들어 있습니다. 이것도 외상이 됩니다.
너무 불편하고 큰 문제는 주일이라도 외상을 허용하고, 피할 수 있는 작은 문제는 금하는 것인가? 기준이 그렇지는 않습니다. 주일에 할 수 있는 것이면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 것이면 아무리 그 손실과 불편이 크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문제는 기준입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일'이면 할 수 없고 '생활'이면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디까지가 일이며 어디까지가 생활인가 구별하는 기준이 애매합니다. 사실 그 선을 두부 자르듯이 자를 수 없습니다. 주일 문제뿐이 아니고 모든 신앙생활의 기준은 양심껏 살아보려는 사람들은 자세하게 살펴보게 되는데 많이 연구하다 보면 결국 어떤 문제도 전부 그 선이 애매하다는 것을 바로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불편해도 우리는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너무도 확실한 원칙이 있기 때문에 해도 되느냐 안 되느냐는 것만 문제이지 너무 불편이 많으니까 그런 문제는 그냥 넘어 가자고 하는 식은 잘못입니다.
그러나 불편 여부를 떠나서 위에 열거한 외상 거래는 왜 되는 것이고, 주일날 쌀을 가져오고 월요일날 돈을 주는 것은 왜 금하는 것인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만일 말씀이 정확히 그렇게 하라고 요구한다면, 생명도 내놓아야 할 우리가 그까짓 불편이야 당연히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해도 되는 일을 잘못 깨닫고 포기한다면, 꼭 해야 할 일을 못하게 되는 또 다른 신앙손실이 크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일에 할 수 있는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많이 생각하고 조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주일에 일과 생활이라는 기준으로 선을 정하기 전, 신앙생활을 실제 깊이 하려고 하면 모든 문제가 애매하도록 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겠습니다.
②모든 신앙의 기준들이 마지막에는 전부 애매하도록 한 것은 유기적 양육 때문입니다.
사람을 기계와 같이 조립하여 제작하려 하신다면 0.001 mm 와 같이 수치 단위로 좌우를 자르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유기적인 인격체로 만들었고 우리를 하나님과 같은 자유성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 만들어가시려고 했기 때문에 우리 인간에게는 상대성이 있고 대화성이 있으며 사랑과 정이 있는 신격과 같은 인격을 가지게 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닮아가는 이 세상 기간 동안 우리를 길러 가시는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형편에서, 모든 존재들과 모든 형편으로 상대를 하면서도 원칙은 진리대로 하게 하시지만, 각각의 존재들과 접하는 모든 행동의 자세하고 구체적인 사항은 자기 속에 성령의 인도를 받아 신앙양심으로 처리하도록 해 두셨습니다.
진리는 모든 사람에게 같이 적용되는 것이고 성령이 각자의 양심을 통해 따로 지도하는 것은 사람마다 전부 다를 수 있는 것입니다.
너무 복잡고 귀찮고 번거롭다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이는 우리를 만드신 창조의 목적에 대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그 뜻에 맞추어야지 우리가 귀찮다고 하나님께 목적과 방향을 바꾸시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따지는 성격, 꼼꼼하게 살펴보는 본성을 가진 분은 예수 믿는 데 아주 큰 장점 하나를 가지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2.주일에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은 '생활'이냐 '일'이냐로 나눕니다.
①'일'은 할 수 없고, '생활'은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이며 '계속적'으로 필요한 것을 '생활'이라고 합니다. 생존에 관련 있는 것입니다. 숨을 쉬는 것, 물을 마시는 것, 밥을 먹는 것은 생활이라 하겠습니다. 오늘 교환원을 통하지 아니하고 바로 기계가 연결되는 전화는 생활이 되어 있습니다. 전화는 구두 의사 소통의 확장이라고 보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출근해서 돈을 버는 것, 물건을 사고 파는 것, 집을 수리하는 일 등은 일에 속합니다. 주일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실 위에서 예를 든 것처럼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은 우리가 거의 듣고 아는 상식입니다. 그러나 왜 그것은 되고 그것은 안되느냐 하는 이유를 아는 분은 많지를 못합니다. 시키니까 무작정 따라 하는 것보다 이유를 살펴 아는 가운데 하는 것이 신앙이기 때문에 다른 설명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②그러나 일과 생활을 구별할 때는 이런 면도 아셔야 합니다.
물론 숨과 물을 섭취하는 것은 시대에 상관없이 필수적인 생존 문제였고 따라서 이는 생활이었습니다만, 먹는 문제는 아주 다른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밥은 하루 한 두 끼 굶을 때도 많았고 또 세끼 밥을 다 먹는다고 하지만 실제 먹는 식사의 양이나 질로 본다면 하루 한 두끼는 먹고 한 두끼는 굶는 것이 고대 사회에서는 예사였습니다.
당시는 먹는 것을 위해서만 모든 활동을 다 하던 때이기 때문에 안식일에 먹는 것을 평일처럼 한다는 것은 요즘으로 말한다면 안식일이 평일과 같이 분잡고 바쁜 날이 되던 때입니다. 따라서 안식일에는 불도 피우지 못하게 하여 다른 날에 먹는 그 문제를 위해 전력하게 하고 안식일에는 가장 중요한 주업을 가장 간단하게 최소화시켜 미리 준비한 것만 섭취케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은혜 받는 일에 집중하기 위해 세상 일을 금한 것이 원래 취지이기 때문에 요즘같이 식사 문제는 안 먹기 위해 노력하고 또 먹더라도 그 노력이 전자렌지 스위치 한 두 번 누르는 시대이며 더구나 이 식사 문제는 생활의 가장 근본이기 때문에 주일에 불을 피워 먹는 문제 등을 해결하는 것은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는 '생활'입니다.
즉, 구약의 안식 제도가 신약 주일에도 그대로 적용은 되고 있습니다만 구약에 불을 피우지 못하게 한 것이 오늘 신약에는 불을 피워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하도록 한 데에는 '생활'과 '일'을 기준으로 금하고 또 허락하는 것이나 무엇이 생활이며 무엇이 일이냐는 '정의' 자체가 시대나 형편을 따라 변동되는 것임을 알아야겠습니다.
③양계장 일을 두고 예를 들겠습니다.
닭은 사람과 같이 생명체이므로 매일 사료를 주는 일과 같이 필수적으로 생존이 유지되고 또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처리는 할 수 있습니다. 기계 장치를 통해 자동으로 된다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습니다만 사람의 손이 아직도 많이 가야 할 것이니 조심할 일이 몇 가지 있습니다.
염소처럼 먹이만 주어서 되는 것이 아니고 흩어놓은 꼴들을 치워주어야 한다면, '청소'에 해당되는 일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주일 외에 충분히 할 수 있다면 주일을 피하는 것은 당연합니다만 그냥 일상적으로 하는 정도로 해야 할 때는 자연스럽게 할 수 있습니다. 사람으로 말하면 일어난 자리를 청소하는 것은 생활입니다. 그러나 헛간 청소에 장농 위에까지 청소하는 것은 주일에 피해도 되는 '좀 특별한 일'입니다.
닭이 낳은 계란이 만일 그날 그날 회수를 하지 않으면 썩는다든지 하게 되어 바로 회수를 해야 한다면 그것도 할 수 있습니다. 며칠에 한번씩 방역을 하는 것이면 주일을 피해서 해야 할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가축은 어떤 종류의 업보다도 주일에 할 수 있는 행위가 가장 많은 것입니다. 사람보다는 못하지만 거의 사람과 비슷하게 해야 할 '생활'이 많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속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가장 주일을 안 지키는 사람들과 같이 보이지만 그 업의 성질이 '생활'의 범위가 다른 업의 '생활'과는 다르다는 것을 아셔서 좀더 마음 편하게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정도로 아셨으면 합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 아닙니다. 만일 닭은 수 만 마리를 기른다면, 그리고 그 닭에게 모이 주는 일로만 하루 10시간을 계속해서 일을 해야 한다면, 닭 모이 주는 것은 죄가 아니지만 주일에 예배 등으로 은혜 받는 일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가장 중요하고 큰 원칙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주일날 잠 자는 것은 죄가 아니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잠만 자고 있다면, 주일날 잠을 잤기 때문에 죄되는 것이 아니고 주일날 해야 할 일, 즉 예배 보고 은혜 생활해야 하는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이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주일날 소가 새끼를 낳는데 그것을 방치하지는 않습니다. 그 생명을 돌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새끼빼는 것만으로 주업을 삼은 사람이 주일날에도 자연출산되는 새끼가 많으니까 하루종일 새끼빼는 '생활'을 한다고 하면 안될 것입니다. 생활이 아니고 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생활이니 할 수는 있겠지만 그 생활이라는 양이 너무 많아지게 되어 일이 되는 업은 축산업이 가장 많이 해당됩니다. 자연히 문제가 많아지겠지요? 결국 어느 정도 수입을 줄이느냐는 문제입니다.
④여기에서 중요한 원칙이 적용됩니다.
주일에 이것 저것을 하지 말라고 한 것은 전부가 해야 할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금해놓은 것들입니다. 일하지 말고 돈 사용하지 말고... 한 것은 은혜를 받도록 하나님만 상대하도록 하기 위해 누구에게나 방해가 되는 것을 법으로 다 금해 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지 말라는 것은 '일'이니 일만 하지 않으면 된다 하고 '생활'은 할 수 있는 것이라는 데에만 집착하여 '생활'의 양을 늘려서 '생활'에 속한 행위가 주일날 원래 해야 하는 은혜 생활에 지장이 된다면 이미 그 '생활'은 '생활'의 범위를 벗어나 '일'이 된 것입니다 .
닭장에서 무엇은 하고 무엇은 하지 말아야 하는가? 생활에 속한 것들, 즉 닭을 기르는 사람이 닭에게 매일 매일 꼭 필요한 조처는 계속해 줄 수 있지만 그 조처도 주일의 시간을 얼마나 차지 하느냐는 양을 생각하여, 생활은 그 날에 가장 필수적인 시간에서 조절되어야 합니다.
주일에 우리가 은혜받는 일을 '일'이라고 한다면, 평일에 일을 대부분 위주로 많이 하고 생활은 그 배경이 되는 것처럼, 주일날 은혜 받는 일은 주업이 되어야 하고 주일에 꼭 해야 하는 생활은 주업을 위해서 주업에 지장이 없도록 지원하는 정도에서 양과 종류가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⑤이렇게 정리를 하게 된다면, 그동안 양계업을 하면서 하던 일을 새롭게 보셔야 합니다.
주일날 닭 배설물 한 무더기가 저 귀퉁이에 보이는데 이왕 닭장에 나온 김에 그냥 치웠다면, 마음 한 편으로는 양심에 좀 걸리면서도 늘 하던 일이고 이것보다 더 많은 수고가 필요한 먹이주는 일도 했는데... 라고 위안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엄격히 구분하는 사람입니다. 더 많은 시간이 들어갈 일도 해야 할 것이면 하고, 손 하나 까딱 할 일도 금할 것은 금해야 합니다.
생활과 일이라는 기준으로 '생물'인 닭을 상대하면서 매일매일 꼭 필요한 일은 하시되 다만 시간적으로 오후예배를 빼야 할 정도로 '생활의 양'이 많아졌다면 하시는 행위는 '일'이 아니라 생활이라도 그 양 때문에 생활이 '일'이 되었다고 보겠습니다. 이렇게 환하게 일이 되었다면 나머지 문제는 본인이 결정할 일입니다.
물론 양계의 경제성을 생각하면 한꺼번에 많이 먹일수록 수입이 늘기 때문에 대규모로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만, 주일날 사용할 시간이 지나치게 많다면 결국 선을 넘어가게 되는 것이고 또 질문자의 신앙이 양심에 가책을 느낄 정도라면, 언젠가 결산을 내보면 헛고생만 했다는 때가 올 것입니다. 양계는 어느 한 순간 전염병 지나가고 나면 그냥 허무하게 끝나는 것이 아닙니까? 만일 하나님 앞에 이런 저런 자세한 문제까지 양심에 개운치 않으시다면 이미 양계의 양을 조절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양을 조절하신 다음,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의 기준은 '생활'과 '일'로 구별하셨으면 합니다.
⑥교회 전체적으로 양계업이 많다면
두 말 할 것 없이 주일이 흐려지겠습니다. 양계의 경제성 때문에 마리수는 최대한 늘여야 할 것이고, 결국 생활과 일로 기준을 세워두어도 합법적으로 생활은 할 수 있다 하여 생활에 속한 일은 꾸준히 많이 할 것이고 결국 양을 늘려서 주일을 충분히 어기는 데까지 나갈 것인데, 신앙 어린 사람이 먼저 그리하고 애매하니까 그 다음 사람 그 다음 사람 그리 하다가 결국 전체 분위기가 그리 되어버리면 이미 주일 문제에 관한 한 선이 없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애매한 선은 하나님께서 그리 크게 손을 대지 않고 신앙에 따라 알게 모르게 본인에게만 조금씩 알려가며 길러가시는데 개인도 그 정도가 심하면, 또 교회가 교회 전체적으로 뚜렷하게 그 선을 넘겨 이제 누가 보더라도 주일문제는 아주 선을 넘겼다고 할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손을 대시되 그 손 대는 범위가 대단히 크게 나타납니다. 처음 몇 달 몇 년은 주일 문제는 좀 있어도 그만 그만 재미가 있기 때문에 그냥 했는데 이것이 수년을 지나면서 아주 지극히 감당 못할 큰 문제로 하나님께서 막으실 때는 평생에 다시 일어서지도 못할 정도로 끝내버릴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때가 오면 잘 믿는 사람부터 큰 손실이 오도록 하십니다.
그러니 말이 통할 수 있는 분들에게 생활이기 때문에 해도 되는 것이 거의 전부이지만, 그 양이 결국 많아지면 개인과 전체에게 닥칠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잘 이해시켜 스스로 두려운 마음들을 가지고 자제하도록 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런 일은 기독교사와 한국교회사 그리고 보수교회들에 있어서는 아주 공식과 같은 일임을 잘 기억하시고 말씀하시면 어느 정도 신앙있는 분들은 두려움을 가질 듯합니다.
주일의 기준이 애매한 것이 많기 때문에 굳이 말을 만들어가면서 할 수 있다고 자꾸 반론을 대는 사람에게는, 물이 좋기야 얼마나 좋습니다만 한 드럼통을 마시면 죽는 것입니다. 밥이 좋기야 말 할 수 없이 좋지만 한 자리에서 두끼씩을 계속 먹으면 언젠가 큰 탈이 나는 것입니다. 따뜻한 안방이 얼마나 좋기야 좋지만 그 온도가 100도를 넘기면 집에 불이나고 사람이 타서 죽는 것입니다. 조절이라는 큰 원칙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이것은 자기 속의 끝없는 욕심, 즉 무저갱의 위험으로 우리를 삼키는 또 다른 적이니 양가죽을 쓰고 나온 이리, 즉 주일에 생활은 할 수 있지 않느냐는 양가죽을 쓰고 나온 무저갱의 욕심이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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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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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십일조는 법입니다.
십일조는 그 양이 많아질수록 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사업하는 사람치고 십일조를 제대로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교회 체면, 하나님 앞에 두려움 때문에 인사조로 하게 되지 그리 다 계산키는 어려습니다.
그러나 십일조도 주일과 마찬가지로 신약교회에 주신 법입니다. 구약의 제도와 법을 거의 전부를 폐하면서도 신약교회에 살려놓은 것이 10계명과 십일조 뿐입니다. 따라서 실제 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아는 것이고 문제는 십일조에 손을 댄 사람은 그 손을 댄 것만큼 반드시 다른 면으로 경제 손실이 간다는 점을 알게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②신약에도 남아있는 특별한 법이기 때문에 그 결과도 아주 엄격합니다.
주일문제와 함께 십일조는 신약교회에 법으로까지 명한 것이기 때문에 특이하게도 이 두 문제는 구약시대와 같이 하나님께서 세밀하고 확실하게 외부로 표시가 나도록 치는 사안입니다. 일반 교계에서 아주 그 예수 믿는 방향이 넓기를 한이 없어도 십일조만은 그렇게 두려워합니다.
주일문제는 생활과 일의 기준이 애매하기도 하지만 십일조는 너무도 확실하게 1/10입니다. 계산에 다른 여지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보응과 보상 역시 그렇게 숫자적으로 갑니다. 때문에 아주 넓게 믿는 교회들이라도 십일조는 그렇게 두려워 하는데, 그것은 신앙이 있어서라기 보다 매를 즉각 즉각 맞아보면서 느낀 것이 있기 때문에 신앙의 본능이 십일조에 대하여는 겁을 먹고 있다는 것입니다.
③아무리 큰 일이 닥쳐도, 강제하고 야단할 수는 없습니다. 조용히 설득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켜야 할 법과 따라가는 징계의 두려움을 간증으로 다른 사람의 예로 차근차근 알게 하여 서서히 느껴지도록 하는 것만이 다른 교인들의 행동을 두고 자기가 할 일입니다. 표 나게 징계하거나 변론을 하게 되면 비록 옳을찌라도 상대방 속에 들어있는 마음의 철벽이 닫혀 버리게 됩니다.
④십일조 계산의 방법만은 알았으면 합니다. 대개 오해가 많습니다.
한가지, 십일조와 관련하여 대개 매출의 1/10으로 생각하고 드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소득의 십일조가 십일조이기 때문에 그 돈을 버느라고 투자된 돈은 빼고 순수한 수입에서만 십일조를 바치는 것이 옳습니다.
월 수입 1000만원, 사료값 200만원, 양계장 융자 이자 100만원, 양계장 수리 증축비용 200만원, 인건비 300만원이 그 달의 결산이라면, 순 수입은 200만원입니다. 그렇다면 십일조는 20만원입니다. 인건비 중에는 함께 사는 가족의 수고는 품으로 계산하지 않습니다.
답변자가 목회하는 곳도 시골이어서 이런 점을 많이 보고 느낍니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그냥 인식이 되어 있어 쌀 10가마가 추수되면 1가마를 십일조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 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하답니다.
어디까지나 십일조는 십일조이고, 그 이외에 또 연보를 하고 싶으면 다 바친들 마음에 차겠습니까? 그러나 십일조에 대한 계산이 철저해서 뺄 돈은 빼는 사람이 되어야 아는 가운데 자라가는 사람이고, 이렇게 철저해야 후에 막대한 돈을 벌어도 또 내야 할 십일조를 아낌없이 내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⑤십일조 계산법이 잘못되어 공연히 죄짓는 분들이 많습니다.
양계업 첫 해에 시설 투자 1억, 수입 8천만원이면 대개 십일조를 8백만원으로 하든지 아니면 매달 들어간 비용만 빼고 순 소득 계산으로 십일조를 하는 것을 많이 봅니다. 그러나 시설 투자 1억은 비용이기 때문에 수입 8천에서 계산을 한다면 첫해의 수입은 적자 2천만원입니다. 십일조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 사업한 사람이 수천만원 벌었다는 소문과 표시가 나는데도 연보봉투에 십일조가 없으면 장로님으로 또 집사님으로서 민망하여 십일조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결국 십일조를 법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안면으로 하는 것이니 나중에 형편과 사정이 달라지면 해야 할 십일조도 하지 않을 사람일 것입니다.
꼭 사람보기에 오해가 되겠다 싶으면 시설비를 2년이나 수년에 나누어 계산을 해서라도 뺄 것은 빼고 할 것은 해야 합니다. 위에 예를 든 것처럼 어떤 때는 시설비 계산을 하지 않고 십일조를 했다가 뒤에 빚이 누적되어지면 남 보기에는 큰 돈을 번 것 같은데 2년 전 빚진 것, 5년 전 융자 갚을 것 이런 것은 다른 사람 보기에 다 감추어져 있고 이번에 몇 천만원 번 것만 눈에 보이니까 남들이 볼 때는 십일조를 안 내는 사람, 자기 양심으로는 내야 하는데 안 내는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이런 경우 자세히 계산해보면 비용을 빼야 할 때 안 뺀 것, 또 시설 투자비 같은 것을 처음부터 바로 구별해서 했더라면 처음에는 십일조를 좀 덜했어야 했고 지금은 십일조를 좀 더 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것이 거꾸러 되어 가지고 처음에는 실제 계산보다 훨씬 십일조를 많이 했다가 후에는 해야 될 십일조조차도 대폭 빼버리는 경우가 됩니다.
같은 십일조를 하면서도 앞에 했던 십일조는 계산치 않은 성의없는 십일조가 되었고 뒤에 십일조는 현저하게 십일조 도적이 되는 경우입니다. 비슷한 연보를 하면서도 앞에는 남들이 볼 때는 십일조를 떼먹는 사람처럼 보였으나 실제로는 '계산하여 정확한 십일조'를 냈고, 초기 비용을 비용으로 계산했기 때문에 후에는 다른 사람에 비하여 십일조를 많이 내는 것처럼 보여 신앙있는 사람으로 보이는데 실은 여전히 정확한 십일조로 계속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제별로 볼 수 있도록 하고, 또 필요할 때 메인 화면에서 찾을 수 있게 하는 것.
너무나도 당연하고 이미 완료했어야 하는 업무입니다.
기술적인 부분 때문이라고 하지만 너무 많이 늦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의 전달과 사명을 위해서, 또 연구소를 위해서 기도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