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영의 창조나 중생 순간의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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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에 관하여
1. 영은 우리의 몸이 만들어질 때 같이 만들어지는데, 이때 영은 깨어 산 영인지요? 아니면 살았지만 잠자는 영인지요?
2. 처음부터 택자의 영이 산 영(깨어 있는 영)이라면 하나님의 절대 예정을 따라 각 사람마다 정한 때에 '하나님이 궁금하다'라는 찰나의 순간이 있게 되는데, 이때가 산 영이 드디어 성령의 인도함을 받은 것인지요?
2-1 아니면 택자의 영은 살아 있고 잠자는 영인데. 하나님이 궁금해진 순간은 이 잠자는 영이 깨는 순간이자 동시에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것인지요?
3. 창세기에 '하나님이 숨을 불어넣어 아담이 생령이 된 지라'는 아담은 어떤 죄도 짓지 않은 상태이므로 깨어 있는 산 영이며 '생령이 된 순간' 성령의 인도를 받기 시작한 순간인지요?
4. 요한복음 20:22 하반절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말씀에 "숨을 내쉬며"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활대속으로 산 영이 되었으나 아직 잠자는 영이니
a. 성령이 깨웠고 b.동시에 성령의 인도를 따라 행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므로 b측면(성령의 인도를 따르라)에서는 창세기의 "생령이 된지라"와 같은 의미인지요?
5. 4번에서 열 제자(도마는 그 자리에 없어서 제외)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행하기 시작했는데, 오순절때 사도행전 2:4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의 말씀은 열 제자는 이미 성령의 인도를 받았는데 택자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임함을 보여주기 위함인지요?
*질문은 하다보니 아래와 같이 정리가 되어지는데 확인 부탁드립니다.
1. 아담을 제외하고, 처음 사람이 만들어질 때 영은 살아 있으나 원죄와 본죄로 잠자는 영이다.
2. 이 잠자는 영을 깨우는 것은 성령의 음성이다.
3. 성령의 음성을 듣고 깨어 행하는 순간은 "생령이 된지라"의미에 해당할 수 있다.
1. 첫 영
심신이 만들어질 때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여 넣는 첫 영은 살아있는 영입니다. 그러나 그 영이 자기의 심신을 가지고 완전한 사람이 되면, 그 순간 아담의 원죄에 모든 인류는 동참했던 죄로 인하여 원죄의 책임지고 그 영은 바로 죽습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에 죽은 영입니다.
2. 산 영
하나님과 연결이 생명입니다. 영이 죽으면 하나님을 감각할 수 없습니다. 모든 인간의 영은 죽었으나,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택자의 영은 다시 살립니다. 중생이라 합니다. 갓 태어난 아이가 엄마 얼굴을 알아보지 못해도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어머니와 그 아이는 피로 연결되어 있듯이, 중생되면 심신의 감각과 상관없이 하나님과의 연결은 영원불변이 됩니다. 그 동안 믿어지지 않았는데 믿어진 첫 순간이나 하나님을 진심으로 찾은 그 감각은, 영이 중생되는 그 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 영에게 피동된 심신이 드디어 성령의 인도를 받은 상태를 말합니다.
3. 생령
창세기의 생령은 심신으로 된 육과 영을 제작 완성한 상태에서 하나님께 연결시켜 동작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 때는 죄가 없었기 때문에, 아담의 영은 처음부터 산 영이었고 심신도 거부없이 이 영에게 복종함으로 하나님께 연결되었습니다. 이렇게 죄가 없이 하나님과 심신과 영이 연결된 상태가 생령이라고 생각합니다.
4. 성령
영이 중생된 택자에게 역사하실 성령은 영을 다시 살리거나 깨우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 나게 하시리라" 중생되어 육의 병기로 살 수도 있고 의의 병기로 살수 있는 양자택일의 택자에게 감화와 감동으로 가르치고 이끌어 일방이 아니라 원하고 원함으로 중생된 영에게 피동되어 하나님께 연결되도록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후에 제자들은 완전히 변하여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때 중생된 것이 아니라, 심신이 바뀌었습니다.
(정리)
1. 범죄 전 아담은 죄가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이 살았고, 하나님과 연결의 작동 시작이 생령이다.
2. 아담의 범죄 후 모든 인간의 영은 죽었다.
3. 그러나, 택자의 죽은 영은 하나님의 절대 예정으로 살린다.
4. 영이 살아날 때 그 성령의 역사를 즉시 심신이 느낄 수도 있고 나중에 느낄 수도 있다.
5. 심신의 감각과 상관없이 살릴 사람은 살리고 살아난다.
6. 그러나, 심신이 이 산 영에게 피동을 거부하면 그 영은 살았으나 죽고 잠자는 상태와 같다.
7. 그렇다고 영이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중생된 영은 완전하고 심신이 문제이다.
8.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 하신 것은, 심신을 향한 것이다.
9. 심신이 성령의 감화감동으로 죄를 끊고 산 영에게 피동되면 죄 없던 생령의 상태와 같다.
영을 중생시키는 성령의 역사
심신을 변화시키는 성령의 역사의 구분이 필요합니다.
(영에 관하여)
1. 영의 창조 순간 상태
마25:34에서 영계와 물질계의 창조는 동시였습니다. 그러나 창1, 2장에서 창조는 물질계만 설명하고 있습니다. 쉽게 하나씩 알려 주시는 과정에 배려입니다. 첫째 영계와 우주의 동시 창조로 볼 때, 둘째는 아담을 만들고 사람이라고 했으니 '영'이 빠지면 사람이 되지 않고 뒤에 신앙의 행위를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창1, 2장의 아담 창조는 물질계에 속한 몸과 마음을 중심으로 기록하였으나 우리는 영의 창조를 동시에 볼 수 있습니다. 다른 만물은 따로 만들어도 되지만 인간만은 영육으로 되어 있어 분리하지 못합니다. 다만 육체, 물질, 세상에서 본 목격을 중심에 뒀을 뿐입니다. 이 질문은 '영'에 대한 것이니 육의 창조를 통해 영을 읽어 봅니다.
창2:7에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라고 했는데 이분설 때문에 또는 얼른 눈에 먼저 보이고 명확하다고 느낄 '흙 = 인체'로 읽어 버리면서 성경 전체를 살피지 않게 되어 교회사의 초기는 불편이 없었으나 신약 내내 건설구원 문제로 너무 많은 면이 막혀 왔습니다. 2:19에 짐승도 흙으로 만들었다 했으니 본질적으로 사람과 짐승이 함께 가진 육체와 마음을 물질로 분류해 놓으면 영은 저절로 나와 버립니다.
7절에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여기까지 딱 잘라 버리면 겉으로 심신이 흙이라는 물질로 만들어 졌고, 흙으로 만들었는데 '사람을 지으시고' 했으니 그 속에는 영이 동시 창조 된 상태입니다. 아이가 태어 났다 하면 산통 > 출산 > 탯줄의 과정이 다 포함 된 것인데 아이 출산 소식을 듣고 산통도 없었더냐, 탯줄은 왜 빼 놓고 말을 했겠느냐.. 이렇게 따지는 사람과는 대화를 중단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습니다. 이 부분은 모든 이분설과 함께 역사의 거의 모든 삼분설 학자들에게까지 미리 말을 해 놓고 과제로 또는 방어를 치는 것입니다. 역사의 삼분설과 오늘의 잡다한 삼분설이 우리와 가까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은 우리와 거의 다 다르다고 기억합니다.
7절의 전반에서 '사람을 지으시고'에 몸뿐 아니라 심신을 지었고 더 나아가 영까지 만들어 진 상태를 알아야 공회 교리와 성경 해석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되고, 그렇게 해야 성경과 교리의 모든 체계가 흐트러 지지 않습니다. 계약신학 > 계신대 > 계신측 이병규 목사님이 대외 활동을 하다 보니 한국의 삼분론, 특히 김현봉 백영희의 삼분론까지 대표하는 것처럼 알려 져 있는데 이 목사님의 삼분설과 건설구원론은 백태영 식으로 우리와 기본 방향은 같으나 핵심 곳곳이 다릅니다.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이 순간에 몸 > 마음 > 영이 완성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라 한 것입니다. 완성차 조립하는 최종 자동차 공장에서 엔진이 탑재 되지 않았는데 차량을 만들었다, 완성했다, 출고했다고 하지 않습니다.
7절의 중반에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이 부분을 모두가 흙으로 빚어 놓은 아담의 인체에 마음 = 생각 = 혼 = 심령 = 영을 불어 넣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흙으로 된 보이는 물질 재료에 볼 수 없는 신비한 신령한 영적인 존재, 즉 마음을 훅 불어 넣으니 아담의 육체가 사람 노릇을 시작했고, 이 상태를 가지고 아담의 내면을 중심으로 표현한 것이 '생령'이 되었다고 해석합니다.
우리는 마25:34 '동시 창조'와 창1:19 '짐승도 흙으로 창조'라는 2 가지 면으로 볼 때 인간 속에 흙이라는 물질 재료로 된 부분은 몸과 마음이고, 영은 따로 기록하지 않고 동시 창조가 되어 있고, 그래서 영-마음-몸이라는 3대 구성은 모두 갖춰 진 상태가 '사람을 지으시고'까지 해당한다고 봅니다. 이렇게 제조가 된, 만들어 진, 완성품이 된 아담이 비록 만들어 졌으나 하나님과의 연결이 된 상태가 아닌데 '생기를 넣으시니'라는 표현에서 하나님과 '연결'이 되었다고 봅니다.
성탄 장식을 모두 끝낸 상태가 '사람을 지으시고'
스위치를 켜는 순간 '생기를 넣으시니'
성탄 장식이 반짝거리는 것을 '생령이 된지라'
이렇게 읽고 있습니다. 이 설명 이 단계가 더 중요한 것은 신약의 우리에게 매일 일어 나는 2차 창조, 성화의 과정, 중생 후의 모든 신앙의 세부 과정에 적용 되기 때문입니다. 행2:1의 오순절을 이렇게 해석하든 저렇게 해석하든 역사적으로만 해석한다면 어떻게 해석해도 별 문제가 없습니다. 오늘도 오순절의 은혜가 반복 되고 재현 되고 우리가 그런 생활을 해야 한다면, 소음을 냈다고 깨닫는 분들은 오늘도 한 잔 먹고 열심히 못 알아 듣는 발성에 평생 주력하고 우리들은 일시 또는 필요하면 그런 모습일 수도 있으나 근본적으로 성령으로 전하는 깨달음과 교훈은 각자의 환경과 현실과 사명과 위치에 따라 다를 수 있고 달라야 하는 것으로 읽습니다. 오순절 신앙과 우리는 천국은 함께 가야 하나 서로의 준비만을 보면 우리가 옳다면 오순절 신앙은 평생 거의 헛일만 하는 것이고 오순절이 옳다면 공회는 평생을 오판하고 엉뚱한 문제집을 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불신자로 살다가 복음을 처음 접하며 영이 중생이 될 때, 없던 영을 넣어 주시는 것인가 우리 속에 존재하기는 하지만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 져 기능만 중단 된 상태로 있다가 중생이란 연결만 되는 것인가? 공회 신앙은 항상 현실, 환경, 주어 진 여건은 주님께 맡겨 놓고 주님과의 동행이라는 내적 연결에 첫째 주력을 합니다. 세상 학교가 아무리 막 간다 해도 최대한 그 속에서 신앙의 바른 연결과 실행에 주력하지 세상 학교 정치 환경 불신 가정 그런 사회 자체를 버리고 새로 무엇을 만들지 않으려 합니다.
너무 중요한 질문이고 얽힌 주제가 많아서 설명이 길었습니다. 일반인과 공개 된 장소에서 대화를 한다면 결론을 먼저 간단히 적고 나서 설명을 덧붙여야 하겠지만 내부 질문이어서 논문 형식으로 먼저 설명을 하고 결론을 내고 있습니다. '아담의 영이 만들어 지는 순간, 그 영은 영이 존재적으로 완성품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연결이 되기 전까지는 영은 활동이 없습니다. 영이란 심신과 달라서 하나님이 없는 상태에서는 독자적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를 가르치기 위해 일부를 적고, 표면을 적고, 다른 면은 다른 곳에서 맞추게 했으나 실제로는 아담을 만들고 하나님이 붙들고 움직이기 시작하는 그 일련의 절차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순간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내면의 구조와 작동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마치 시간을 두고 하나씩 절차를 밟듯 적었을 뿐입니다. 보이는 세상을 창조할 때도 순간적으로 다 만들 수 있으나 순서를 우리에게 알리시려고 일부로 6일을 걸쳐 하나씩 늘어 놓았으나 아담의 심신을 만들 때 영을 만들고 영을 움직이는 문제는 영적 세계이니 시간이 요하지 않습니다.
백 목사님은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라는 부분을 늘 '영감'이라고 불러 왔습니다. 이 때 영감이란 표현은 성령의 감화와 감동이라는 표현을 줄인 영감보다는 '하나님의 역사'를 포함하는 넓은 의미입니다. '생령이 된지라' 이제 하나님께서 자유롭게 붙들고 사용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질문1에 구체적 안내로,
몸이 만들어질 때 같이 만들어진 영은 깨어 산 영인지요? 아니면 살았지만 잠자는 영인지요?
오늘도 한 사람이 세상에 태어 날 때 부모를 통해 심신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심신이 발생하는 최초 순간에 하나님은 바로 영을 만들어 사람이 되게 합니다. 하나님이 오늘 어머니 뱃속에 생기는 한 아이의 심신에 새로운 영을 만들 때 상태가 아담의 심신 속에 만들어 넣은 영과 같은 상태입니다. 존재적으로는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 있으나 역사적으로는 아직 작동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아담은 만들고, 바로 하나님께서 붙들고 움직여 그 영이 산 영으로 활동을 시작했고, 오늘 출생하는 사람의 심신에 주입 되는 영은 주입 되어 사람이 되는 순간 바로 원죄로 그 영은 죽습니다.
잠자는 영, 깨어 있는 영...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앞에서 설명한 것은 공회가 오랜 세월 밝혔고 살폈고 확인한 내용이어서 이 번 질문의 기본적 안내는 쉽지만 '잠' '깬' 상태까지 더 구체화를 한다면 짐작은 쉽게 하겠으나 교리적 표현은 최종 확정을 할 때까지는 늘 연구적 자세가 필요하여 이 자리에서 명확하게 하지는 않겠습니다. 이 정도가 이해가 된다면, 그리고 우리가 다른 분들보다는 성경을 평소 많이 읽고 세세히 집중하면서도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읽는다는 점에서 이 곳의 우리 전부가 이해 될 정도면 거의 맞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먼 비유지만 성탄 장식이 완성 된 상태, 이제 스위치가 들어 가면 되는 상태를 가지고 우리의 신비한 신령한 영을 살펴야 합니다. 영을 살필 방법은 없습니다. 그런데 마음의 세계로 살피면 거의 정확합니다. 성경이 우리의 마음을 우리의 인체나 보이는 물체로 표현해 주셨고, 영과 천사 심지어 하나님의 세계도 그런 방법으로 표현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후 조직신학에 추가 할 때 반대할 신학자들의 반론까지를 생각하면 적고 있습니다.
2. 택자의 영에 성령의 인도하심
아담의 영은 창2:7을 중심으로 살폈고, 오늘 우리의 경우 택자가 중생 되지 않았을 때는 영의 존재만 있고 하나님과 연결이 없으므로 전기 없는 전기제품과 같은 상태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사람의 마음 속에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일반인의 종교적 관심 정도가 아니라 훗날 돌아 볼 때 중생의 표시로 관심을 가지게 된 첫 순간이 있다면, 그 이전에 영은 이미 중생이 되어 있었다는 말이 되고, 성령에 붙들린 영이 마음을 흔드는 첫 순간은 땅에 뿌려 진 씨앗이 흙 위에 움을 내미는 순간과 같습니다. 대개 이 순간에 중생이 되었다고 난리들인데, 대개는 이미 씨는 땅 밑에서 생명으로 활동한 후의 결과입니다. 고전12:3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했는데 '예수는 나의 주님'이라는 단어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 관련 된 것 전부입니다. 김일성과 정규 인민군만 적이 아닙니다. 특수 간첩은 우리 곳곳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2-1 택자의 영은 살아 있고 잠자는 영이라면, 하나님이 궁금해진 순간은 깨는 순간 성령 인도를 받는 순간?
택자의 심신과 불택자의 심신은 그 재료와 구조는 근본적으로 같습니다. 천사와 악령이 같듯이 택자의 중생 전 영과 불택자의 현재 영도 동일입니다. 전기 끊어 진 전기 기계 상태입니다. 택자의 영에게는 성령이 전선을 꽂을 것이고 불택자 영은 영원히 꽂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인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불택자의 영은 지옥을 가게 되고, 지옥에 가는 순간부터 모든 것을 다 아는 영이 됩니다. 심신은 지옥에서 고통을 겪고 불택자의 영은 돌덩이처럼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 땅 위에서 미중생 또는 불택자의 영을 '죽었다' 할 때는 하나님께 붙들려 영이 영답게 활동하는 것이 중단 된 상태를 말합니다. 영이 이 땅 위에서는 성령에게 붙들려 활동하지 않으면 어떤 활동도 할 것이 없고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지옥에 던져 지게 되면 자기 심신이 죄로 고통을 겪을 때 악령과 함께 불택자의 영은 자기 심신의 고통을 지켜 봐야 합니다. 구더기도 죽지 않는 곳, 만물이 모든 것을 서로 다 아는 세계를 영계라 합니다.
우리만을 두고, 우리가 처음 중생이 되면 우리 영은 우리 마음을 향해 발동을 시작합니다. 이 순간까지 우리 심신은 천하 멋도 모르고 삽니다. 그러다 어느 날 우리 마음 깊은 어느 한 구석에서 억누를 수 없고 잊어 버릴 수 없고 파묻어 버릴 수 없는 그 무엇이 움 돋기 시작합니다. 이 것은 영이 마음에게 보내는 활동 표시입니다. 이미 성령이 영을 살렸고 성령이 영을 앞 세워 우리 마음을 흔들고 있는데 마음이 이제 처음 느낀 것입니다. 윤석열 정부가 이 번에 대규모 간첩단을 발견했다 합니다. 야당은 조작이라고 펄쩍 뛰고 문 정권에 국정원장을 지낸 인간들조차 입도 열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알았고 국민이 몰랐다는 뜻입니다. 영과 마음의 세계, 그들의 관계, 그 관계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들.. 사실 이 것이 더 중합니다. 우리는 그냥 교회를 다녀 건강과 가정의 웃음과 돈을 번 것만 가지고 주로 이야기 합니다.
3. 창세기에 '하나님이 숨을 불어넣어 아담이 생령이 된 지라'는 아담은 어떤 죄도 짓지 않은 상태이므로 깨어 있는 산 영이며 '생령이 된 순간' 성령의 인도를 받기 시작한 순간인지요?
앞에서 설명이 되었을 듯
4. 요한복음 20:22 하반절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말씀에 "숨을 내쉬며"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요20:22에서 숨을 내쉬며 라는 이 때도 성령을 받으라는 것이 성령을 던져 주니 받았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구원의 단계를 다 해결했고 주님의 사활 대속 다음 단계로 이제 성령이 우리를 붙들고 역사한다는 것을 이렇게 표시했습니다.
a. 성령이 깨웠고 b.동시에 성령의 인도를 따라 행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므로 b측면(성령의 인도를 따르라)에서는 창세기의 "생령이 된지라"와 같은 의미인지요?
앞에 설명을 통해 스스로 재구성할 수 있을 듯합니다.
5. 4번에서 열 제자(도마는 그 자리에 없어서 제외)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행하기 시작했는데, 오순절때 사도행전 2:4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의 말씀은 열 제자는 이미 성령의 인도를 받았는데 택자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임함을 보여주기 위함인지요?
성령은 구약에도 빠진 적이 없습니다. 창세기 1:2에 창조로부터 사울 왕에도 다윗에게도 늘 역사를 했습니다. 성부도 성자도 성령도 빠지는 순간이 없습니다. 삼위일체이기 때문입니다. 주로 삼위 중 어느 분이 우리 볼 때 우리 구원을 두고 전면에 나섰느냐만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제자들이 주님을 처음 만날 때 이미 중생은 되었고 그 중생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이 행2:1처럼 신앙 생활 도중에 아주 돌변 되는 상황은 성령의 첫 역사가 아니라 역사 성령의 특별한 순간입니다.
*질문은 하다보니 아래와 같이 정리가 되어지는데 확인 부탁드립니다.
1. 아담을 제외하고, 처음 사람이 만들어질 때 영은 살아 있으나 원죄와 본죄로 잠자는 영이다.
'잠자는 = 활동이 중단, 모든 것이 중단된'
2. 이 잠자는 영을 깨우는 것은 성령의 음성이다.
'깨우는 = 성령의 역사 시작'
3. 성령의 음성을 듣고 깨어 행하는 순간은 "생령이 된지라"의미에 해당할 수 있다.
이 마지막 표현은 제가 이 번 안내를 하면서 첫 질문부터 하나씩 설명하다가 오늘 우리가 성령으로 신앙 출발을 하는 것이 아담에게는 '생령이 된지라'에 해당 된다는 취지로 설명을 했고 제가 그렇게 처음으로 연결을 시켜 봤는데 질문자가 질문 끝에 이미 연결을 시켜 놓았습니다. 진리가 하나이므로 양심으로 살피다 보면 둘러 와도 하나로 만납니다.
여러 업무가 겹쳐 있어 바쁘지 않은 설명은 며칠 씩 뒤로 미루다 한 번씩 잊어 버리는 경우도 있으니 누구든 제 글이 너무 늦어 진다 싶으면 부담 갖지 말고 촉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아담의 영'과 '중생 순간의 영'에 대해서는 설교록에도 이 정도가 세밀하게 한 곳에서 설명 된 적은 없으므로 교리적으로 중요한 내용입니다.
첫 질문에 먼저 의견을 적은 분의 글은 다른 업무 때문에 직접 비교하기 곤란하니 글을 적은 분이 질문과 답변을 가지고 본인의 의견과 대조해 보면 좋겠습니다. 잊은 것은 해당 부분만 간단히 요약 보충해 주면 좋겠습니다.
살펴보아 주십시오.
(영에 관하여)
1. 아담의 창조 순간 상태
①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창2:7상)
- 몸, 마음, 영의 창조로 사람의 완성
- 몸, 마음은 본질적으로 짐승과 같다.
- 영은 존재적으로는 완성품이나 활동은 없다.
▶몸, 마음, 영의 동시 창조
- 심신을 만들 때 영을 만들고 움직이는 것은 영적세계이니 시간이 요하지 않는다.
②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생령이 된지라’ (창2:7하)
- 하나님과의 연결로 영이 활동한다.
- 하나님께서 붙들어 사용하는 존재가 된다.
▶창조 즉시 활동
- 만들고 바로 하나님께서 붙들고 움직여 산영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2. 아담이후 영의 창조 순간 상태
① 아담의 심신에 만들어 넣은 영과 같은 상태다.
② 존재적으로는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 있으나 역사적으로는 작동하지 않은 상태다.
③ 심신에 주입되어 사람이 되는 순간 영은 바로 원죄로 죽는다.
3. 불택자의 영
① 중생 전의 택자의 영과 불택자의 현재의 영은 동일하다.
② 영의 존재는 있으나 하나님께 붙들린 활동은 중단된 상태다.
③ 영원히 하나님과의 연결은 없다.
④ 인식이 없는 것은 아니므로 지옥에서 자기 심신의 고통을 지켜본다.
4.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요20:22하)
- 주님의 사활대속의 다음 단계로 성령이 붙들고 역사한다는 것을 표시한 것이다.
- 하나님의 역사를 의미하는 넓은 의미의 성령의 영감을 받는 것이다.
▶생령이 된 것이나 성령을 받은 것은 하나님께서 자유롭게 붙들고 사용하는 존재로 활동하는 것이다.
잘 요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적어 봐야 정리가 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요약 된 상태는 조직신학에 편재가 될 때 거의 그대로 또는 약간의 조정만 있으면 됩니다. 더 줄일 수 있으나 사정을 모르는 분들을 감안하면 이 정도 요약이 좋아 보입니다. 1 차 설명은 설교에 가깝고 이 정리는 교리 요약에 가깝습니다. 설명은 좀 길었으나 앞에 내용처럼 해설이 있으면 논란이 될 때 필요합니다.
(질문하신 분)
1차 질문을 적은 분이, 답변을 먼저 읽고 이해와 동의 또는 재론 등을 주시고 이해가 되었다면 요약본을 보며 의견을 다시 주시면 좋겠습니다. 같은 내용에 대해 이해가 같다 해도 사람에 따라 어려워 하기도 하고 다르게 읽으며 차이가 날 수도 있습니다. 교리에 관한한 최종 정리 된 표현에는 그런 면이 없어야 한다는 점에서 1 차 설명에 문제가 없다면 공회원3의 요약에 대해서도 의견을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