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를 다녀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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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를 다녀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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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갈한 절벽 0 0



검정 옷은 검소, 청빈, 실용, 세상과 절연, 자기죽임, 자기겸비 등을 상징하는 목회하기에 좋은 의복이며, 우리 공회의 아름다운 전통이며, 스승이신 백 목사님을 따르는 외면적인 하나의 형식입니다. 이 점에서 검정 의복 그 자체야 탓할 수 없겠지요.

검정못은 우리 공회의 외부적 표지중의 하나이지요. 나의 바램은 교역자의 검정 옷과 검정 넥타이가 세상 종말까지 변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대구공회는 이미 변했어요. 색깔있고 화려한 넥타이를 매는 것이 대개이지요. 반드시 그렇다고는 볼수는 없지만, 색깔있는 넥타이는 자기를 꾸미겠다는 심중이라면 검정넥타이는 자기를 죽이겠다는 심중이라면 어느 것이 더 나은 의복인지 판단이 쉽게 갑니다.

아다시피 일반 교계는 예배시에 목사님들이 긴옷과 수술이 달린 화려한 가운을 입지요. 카돌릭과 정도의 차이이지 크게 다를 것 없겠지요. 바리새인 처럼 긴옷을 입는 것을 경계했고, 전대를 차지말고 두벌 옷을 가지지 말라고 주님이 사도들을 보낼 때에 말씀하셨어요. 요새는 일반 교회도 보면, 가운 착용을 하지 않고 평상복으로 예배시에 입는 추세가 상당한 것 같이요. 이는 우리 총공회의 영향이 미친 것이 아닌 지 라고 생각됩니다.

이재순 목사님은 물론 교권 남용이 심하고, 성령의 소욕인지 자신의 사욕인지 막 휘두르는 행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백 목사님의 교훈과 태도를 누구보다 충실히 따르고, 변질되지 않고, 우리 공회의 교훈의 가치를 인식하고, 백 목사님의 교훈을 철저히 파수하려고 하는 태도는 좋습니다.

사실 이 재순 목사님 처럼 우리 공회의 교훈 계대를 위해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 분도 드뭅니다. 그간 그분의 과오는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도 많아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이 백 목사님의 것이라면 그것이 실질이든지 형식이든 곧이 곧대로 하려는 태도는 맘에 듭니다.

백 목사님과 같은 의인의 모든 것을 존귀히 여기고 파수하려는 자세와 그간 과오를 형량해 본다면 그런 자세가 과오를 능가하리라고 봅니다. 이점에서 90세 노구를 이끌으시면서도 집회 사회를 하시는 것을 보면 크게 거부감이 없다고 보여집니다. 만약 이 목사님이 사회를 보지 않고서 서 목사님이나 봤더라면 벌써 집회는 재독 집회는 쪽박났을 것이고, 공회의 변질, 속화와 일반 교계에게로의 동화 속도를 힘치게 하였을 것은 능히 추측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이 재순 목사님은 94장 찬송가를 아마 공회 목회자 중에서 가장 애창하실 것처럼 보이고 개별 교회예배나 집회 중에도 거의 빠지지 않는 모습도 비록 그것이 외식일지라도 94장을 안 부르거나 기피하는 것 보다는 훨씬 좋고 맘에 듭니다.

94장을 즐겨 부름으로써 백 목사님을 모르는 세대나 새신자에게 백 목사님을 알리고 또 94장을 불러보면 가사에서 영감이 오고 은혜가 오고, 94장 가사는 백 목사님이 생전에 주장했던 교리가 중요한 것은 상당히 포함되어 있습니다. 94장이 이렇게 좋는 역할을 하는 데도 부끄러워서 못 부르는 교역자도 많고 가치인식을 잘 못하는 교역자도 않고 예배시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해서 기피하는 교역자도 않습니다.

스승이 많든 찬송을 박대하는 것이지요. 사소한 부분인 것 같아도 손해가 많아 보입니다. 이 재순 목사님은 94장을 자꾸 부르니까, 껍데기로 하든 어쩌든 간에 아, 이 분이 백 목사님을 진정으로 따르는 제자로구나 하고 신뢰를 가는데 추가적 요소로 작용하지요. 백 목사님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자는 그의 제자도 역시 사랑하게 되거든요.

이 재순 목사님은 94장 찬송가를 즐겨 부르는 것 만으로도 점수를 따게 돼요. 이렇게 손쉽게 양떼에게 점수 따는 방법을 우리 공회의 다른 상당수의 목회자님들은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고 그 효율성을 인식을 못해 안타깝습니다.


이 재순 목사님은 백 목사님이 생전에 가장 칭친했던 목사님들 중 한분 이었기에, 저는 백 목사님의 사람 평가를 믿고 싶습니다.

글에서, 집회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은 자신을 돌아보게 하여서 좋습니다.






>> 공회인 님이 쓰신 내용 <<
:
: 올 집회에도 90세 고령의 이목사님이 또 사회를 봤다. 몇년을 더 사시겠냐고 송목사님이 전하던 것이 벌써 10년이나 된 것같다. 죽을 때까지 강단을 지키겠다, 누굴 위해서인가. 주와 양떼를 위한 것이면 환영한다. 그런데 자기 기록을 갱신하기 위해 그렇다면 사양한다. 자기 후손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말도 들었다. 주를 근심시키고 양떼에게 90세 노구를 얹혀 놓고 짐을 메우고 그 기록을 세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백목사님 생전에는 70세면 노인이었고 80세에도 걸어다닌 정도면 특별한 케이스였다. 그런데 지금은 90세 노인이 즐비하다. 젊다 해도 교인에게 은혜가 되지 않으면 조기퇴직을 시켜야 하나 노인이라도 은혜가 된다면 된다.
:
: 공회는 올해도 아무 말 없이 그대로 간다. 테이프를 틀어놓으면 어느 정도 은혜는 받게 되어 있다. 부공1은 부공2가 앉아주니 거저다. 왜 마다하겠는가. 부공2는 조금만 더 기다리면 부공1 노인네가 주저앉는다. 그러면 누구 것이 되겠는가. 벌써 부공1에서 작지 들고 설치던 이들이 부공2로 오거나 다른 곳으로 흩어졌다. 몇 남지 않았다. 손대다가 다친 적이 많았다. 이제 고사 작전이다. 독수리가 모인다. 주검이 가까운 짐승이 있다는 뜻이다. 이것이 공횐가. 이것이 진리노선인다. 속셈은 이렇게 하고서 겉으로는 과거집회를 명분으로 삼아 한자리에 모인다. 대단하기는 대단하다만 이 노선 송장모습이다. 죽은 무리들이 검정양복을 입고 한삐딱 간다. 그뒤를 아직도 몇천의 검정옷에 익어진 무리들이 따라간다. 죽음의 행렬, 장송곡... 죽음의 향연인가, 진리가 주는 은혜를 받아 바로 살 뜨거운 각오가 넘치는 생명수 샘인가... 그 강단밑에 은혜를 받겠다고 부공2 지도자들이 다 머리를 숙이고 있다. 겉으로는 팔이 떨어져나가도록 악수하고 속으로는 서로 셈을 한다. 남는 장사다. 설교록에 있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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