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공회와 일치화 해가는 힌국 교계

공회내부 발언      

우리 공회와 일치화 해가는 힌국 교계

설명
산곡의 백합 0 0



저하고 보는 관점이 유사하고 쓰신 글에 동감이 됩니다. 저도 마침 이런 류의 글을 쓰려고 하던 참에 형제의 글이 올라와 이것이 혹 영감의 일치는 아닌지 하고 생각됩니다.

우리 공회의 제도나 관습, 행정이 나아가 설교 까지도 일반 교계가 추종하고 모방하고 배우고 있다는 것을 저는 수년전 부터 뚜렷하게 감지하고 있으며 참 이상하다. 기이하다고 심중에 생각하고 있을 뿐입니다. 어쨌든 고무적 현상이고 우리 공회가 과연 옳긴 올구나 하는 믿음을 증가케 하고 있습니다.

우리 공회의 선한 제도나 관습, 행위를 따라오니 이런 점에서 우리공회는 한국 교계를 선도하고 있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다음의 대표적 인 것을 보고서 우리 총공회가 한국의 교계를 리드하고 있다고 보며 산위에 세운 동네가 되엇으며 빛이 되었습니다.

1. 오후 예배 제도

한 때 일반교계에서 우리 공회는 저녁예배를 보지 않고 오후에 예배를 본다고 이단이라고 말한 경우까지 있었다. 이젠 많은 교회가 저녁예배를 오후 예배로 갈음하였다. 우리 공회는 오전 예배 마치고 낮에 다른 일하다가 저녁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 보다 더 잘 주일을 지킬려고 했는데, 물론 지금의 일반 교계의 변화는 아예 오전에 온 김에 오후 예배까지 보고 저녁에 오지 않아도 되니 편리하고 맘놓고 남은 낮 시간에 무슨 일을 하거나 놀려고 하는 지는 모르지만 어쨋든 우리 공회의 제도와 이면에서 일치되게 되었다.


2. 교회 주보에 헌금자 명단 공개 제도

이 제도는 우리 공회에서는 아예 하지 아니하였는데 오늘 한국 교계에서 이 제도는 거의 의 사라진것으로 본다.

3. 헌금 주머니 돌리지 않고 연보함 설치

연보괘는 우리 공회의 오랜 제도인데 일반교계가 거의 오늘 주머니를 돌리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4. 교역자 가운 착용 기피는 형제님이 지적한 대로이다.

5. 왁자지껄한 통성 기도 소리

아직 다대수의 교회에서 울면서 울부짖으면서 요란스럽게 통성 기도 소리가 많지만 수십년내에 조용한 기도 로 바뀔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미국 현지 교회를 가보니까 요란한 기도가 별로 없는 것도 보았습니다. 큰소리의 통성 기도는 순복음이 창시자라고 본다면 앞으로 순복음의 영향은 퇴조할 것이다.

6. 방언의 퇴조 예측

한국 교계의 방언은 기도자 스스로 억지로 신비한 현상을 조작하는 자기 암시이고 부자연스런 행동이다. 예를 들어 '왈라스키' '왈라스키' ~~~하고 수천번 수만번을 큰소리로 하면서 '왈라스크'에 '주여 도우소서'라는 의미를 스스로 부여하고 이를 수천번 크게 하면 입에도 자기 귀로 전파되어 스스로의 자기 암시나 최면이 된다. 또는 '왈라' '왈라' '왈라'라는 어휘를 자기만이 아는 뜻으로 스스로 지어 만들어서 여기에 '주여' '주여' 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주여' '주님' 할 때마다 '주님'이라고 하지 않고 '왈라' '왈라' 한다. 이는 자기만이 아는 단어이고 옆에서 듣는 다른 이는 그 뜻을 모른다. 일종의 언어 창조 행위이다.

원래 방언은 한 가지의 언어로 성령에 감화되어 말을 했는 데, 듣는 모든 이들은 그 언어를 몰라도 각각 은혜는 나름대로 받는 성령의 역사를 의미하며, 성령이 압도하여 말을 하기는 해야 하겠는데 미처 혀가 따르지 못해 발음이 제대로 안나오거나 더듬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것이 참 방언인 바, 어떤 외래어도 아닌, 소위 자기하고 하나님과만 통하는 방언이라는 것은 주지 않는 은혜를 갈구하고 억지로 하나님으로 부터 은혜를 강탈하고픈 강한 심적 의지에서 발로된 허상이고 무의한 입의 작용일 뿐이다. 오늘 유행하는 방언은 멍텅구리 짓이며 정상적이지 못한 변태적 행위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전달시키는 통로가 되지 못하는 삐뚤어진 통로이다.

우리 공회는 이런 방언은 모른다. 향후 10년 이내에 한국에서 이런 억지 방언 추세는 소멸할 것으로 본다. 결국 방언은 한국에서 그간 수 십년간의 일시적 유행으로 종언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 면에서도 일반 교계는 방언하기를 기피하는 우리 공회를 추종하게 된다.


7. 주일이나 삼일예배시에 찬송가를 녹음하여 울려 퍼지게 하는 행위

70- 80년대 유행하였던 제도 중의 하나로서 거의 모든 교회들이 고성능 스피커를 십자가 탑에 설치하고 새벽 기도시나 주일 예배를 알리는 또는 전도 수단으로 이용하였다. 그러나 이런 제도는 주민들의 안온 방해를 이유로 행정기관의 지적을 당하거나 주민들의 항의를 불러와서 이제는 이런 행위가 거의 한국 에서 소멸되어 버렸다. 우리 공회는 일찌기 이런 행위를 하지 아니하였다. 교회 지붕위에 변변한 십자가 하나 설치 하지 않은 곳이 우리 공회이다. 이 것 또한 우리 공회가 선행하고 일반 교계에서 추종하여 우리 공회가 선도하는 위치에 있었다.

이외에도 더 많은 제도나 관습 면에서 우리 공회가 일반 교계를 리드하는 사례가 많으나 여기서는 이만 하고 형제님이 지적한 것들도 저의 관점과 일치하는 것이 많으니 형제님의 글에 일치하기로 합니다.

나는 아직 현상의 원인을 모르겠다. 우리 공회를 그난 비판적으로 보는 자들이나 잘 모르는 자들이나, 바람직하게 평가하는 자들은 당연하다고 하지만, 심지어 한 때 우리 공회를 이단이라고 평하던 교회들 까지 우리 총공회를 따라오고 우리는 리드하는 현상이 도처에서 각양의 부문에서 생기고 있으니 이 어인 일인지.

우리는 리드할려고 생각해 본적도 없고 따라오라고 한 적도 없고 우월감을 가져 본 일도 별로 없는데 말이다. 고갈한 절벽에 핀 이름 모를 한 송이 야생화 처럼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피웠다가 스러지는 꽃 처럼 살아오기만 했는데 참으로 오늘 교계가 우리 공회와 비록 외면적 면에서 현저하지만, 일치하는 경향과 추세를 어떻게 설명할 까. 이심전심이란 말이 이런 경우에 사용하기에 맞는 것인가. 요새 유행어도 긍정적 바이러스의 전파인가.

어쨋든 오늘 한국 교계가 우리 공회 제도들이나 관습와 유사하게 일치되어 가는 현저한 추세는 그 속셈도 더 파고 들어가 봐야 알 것도 있겠지만, 이런 추세는 점점 관찰하기 쉬워 지는 것은 사실이다.

*** 필자는 이 홈피에서 필명으로써 '고갈한 절벽', '산곡의 백합화' 등 여러 가지를 사용하지만 동일인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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