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번 경우
| 설명 |
|---|
yilee
0
0
2010.01.10 00:00
2번 질문인 '진실' 면만 조금 알고 있습니다.
진실한 분으로 소개를 했습니다. 또 추가 설명을 부탁하시니 겪고 아는 대로 2번만 잠깐 소개 드립니다. 다른 면은 답변자 역시 궁금합니다. 늘 마음 속에 그 때 존경스런 모습이 남아 있어 10년의 세월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현재까지 어떤 분으로 계실까, 열매는 어떠할까 하는 궁금한 면이 있습니다.
- 1990년대 중반의 부산에서
1997년 9월까지 부산의 연구소로 매주 출퇴근을 했고 교역자 회는 1990년 4월 부산공회의 출발 시작부터 싸움만 하고 있어 거의 참석을 하지 않았습니다. 김남수 당시 조사님을 뵌 것은 97년 또는 그 직전까지 연구소에서 한번 뵐 수 있었습니다.
97년이면 서파와 반서파의 투쟁이 절정이었습니다. 교역자 회의를 참석하는 부산공회 모든 교역자들이 연구소 1층에서 자료를 구입하기 때문에 서로 마주 치게 됩니다. 모두 성경을 들고 검정 양복에 007 가방을 들었으므로 겉보기는 영락 없이 총공회 교역자들이었으나 교역자 회의 때마다 서파와 반서파로 나뉘어 생사를 건 전쟁을 했기 때문에 모두들 살기가 등등했고 떼거리로 몰려 다니며 회의에 역할 분담을 어떻게 해서 적을 죽이고 짓밟을지만 연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저기 몰려 다니고 쏠려 다니는 모습만 있을 때였습니다.
이미 이 홈은 1990년부터 백 목사님 사후의 모든 노선 분쟁에서 해야 할 일을 다했고, 이제 남은 것은 나뉜 공회 내에서 이권 다툼으로 전개 될 교권싸움뿐일 것이므로 연구 작업에만 전력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부산공회 내의 싸움에 대해 이 홈은 객관적이었기 때문에 당시 목격은 다른 사안보다 더욱 부담 없이 말씀 드릴 상황입니다.
김윤수 김부호 김영채 김영환 목사님의 얼굴에서는 교역자회의 때마다 개떼처럼 공격하는 부산공회 모든 교역자들의 가해를 받아 분노 좌절 고통에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고, 김영채 목사님은 도인이어서 감정이 많이 절제 되는 편이나 다른 분들은 여과 없이 드러 나고 있었습니다. 나머지 거의 대부분 교역자들은 한바탕 쥐사냥을 하고 난 고양이들이 잘 먹고 나온 식당에서 이를 쑤시는 사장님들처럼 여유가 있었고 만족한 얼굴을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그 분들이 거의 다 함께 부공2에서 모여 있는 분들입니다.
이렇게 극단적인 투쟁기에는 답변자처럼 중립에 서게 되면 양쪽으로부터 함께 공격을 받게 되어 제명을 당합니다. 서파와 반서파가 그렇게 진흙탕 싸움을 하면서 일단 이 홈을 제명할 때는 일단 힘을 합해서 처리했습니다. 이만기 김영환 두 분이 실무를 맡았고 이재순 서영호 목사님이 지도부에서 중간에 있는 목사님을 통해 합의를 했습니다. 부산공회가 시작 되던 첫 총공회인 1990년 3월 회의에서 교학실장 행정실장에 답변자가 만장일치로 추대 되고 그 자리에서 부산공회 발족의 최대 공로자라고 공식 소개 되던 답변자조차 서파와 반서파 투쟁에서 중립에 섰다고 양측이 합의해서 제명하는 분위기를 고려한다면, 김남수 당시 조사님은 어느 한 곳에 서서 선배들의 눈치를 보며 급급한 모습을 가져야 했던 당시 모든 조사님들 중에 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그런 싸움에 초연하며 교역자들 중에서 홀로 자기 속에 주님으로 동행하려는 신앙 면만 치중하여 말 한 마디 행동 하나를 평소 긴장하고 조심하던 분이어서 연구실의 자료 판매 담당자께 누군지 여쭈었습니다. 목회자들이 겉으로는 007 가방에 검정양복을 입으면 다 점잖고 경건해 보이나 연구실의 1층 판매대에서는 목회자들을 국제시장 장사치들처럼 상대합니다. 교회에서 받아 온 설교록 대금을 다른 데 쓰고 몇개 월씩 버티는 분들, 교회로부터 확인까지 받았는데 거짓말하는 분들 등 돈이 오가는 곳이어서 교역자들의 내면을 그대로 보는 자리여서 판매대 직원들은 교역자들을 아주 사기꾼들 비슷하게 그렇게 보는데 김 조사님에 대해서는만은 오래 동안 겪어 보며 유일하게 진실한 분으로 소개를 했습니다.
답변자 눈에도 그렇게 보였고, 1층 직원이라는 교역자 언행 내면을 뒤져 보는 X레이 기사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는데, 당시 그런 상황에서 그 정도 되는 분이 거의 없던 시절입니다. 평소라면 거의 대부분 목회자들이 다 그럴 수 있는데 환란과 극단적 혼란기라는 것은 평소 감추어 둔 깊은 속이 드러 나는 때이므로 잠깐 봤던 그 모습이 그냥 첫 눈에 반한 그런 감성적 기억 때문이 아니라 이런 여러 정황 때문에 존경하게 된 것입니다.
그 후, 지금은 잊었는데 무슨 극단적인 사안이 있어 그 분에게 그 분과는 직접 상관이 없으나 그 분과 관계 된 교회와 교역자 일 때문에 그 분이 듣는 자리에서 답변자가 입에 담을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언사를 퍼부은 적이 있었습니다. 겉보기는 화가 나서 성질을 부린 것처럼 보였을 것이나 답변자는 다른 이유가 있어 부러 그 분의 내면을 보고 싶어 휘젓어 봤습니다. 우리 공회에서 최고의 도를 닦았다 하는 최고봉의 경건한 원로들도 답변자가 그 분들의 약점을 잘 알기 때문에 약간 흔들어 놓으면 평생 닦은 도를 던지고 원색적인 반응이 나오는 것이 보통인데 그 분은 일절 피동이 되지 않았습니다. 좀 피동을 받았더라면 목적 달성도 일부 되고 상대방의 책임도 일부 있기 때문에 덜 죄송했을 터인데 전혀 피동이 되지 않고 있었으므로 답변자가 너무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이후 얼굴도 음성도 다시 들을 기회는 없었습니다.
10 년이면 강산이 변합니다. 환경도 변하는데 환경에 지배를 받고 또 환경에 앞서 내면에서 역사하는 여러 작용 때문에 스스로 변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이후 그 분이 늘 궁금하였으나 시간도 없었고 기회도 없었습니다.
>> 어디든지 님이 쓰신 내용 <<
:
: 여러 교회를 추천하여 주셨는데
: 1. 조치원 신흥교회 김남수 목사님에 대해서 그 이력에 대해 알고 싶으며
: 2. 어떤 면에서 진실한지
: 3. 지금은 개척교회를 하신다고 했는데 결실이 어떠한지
: 4. 그 분의 노선과 신앙이 어떠한지 (4번은 신흥교회에 다니시는 분이 답변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