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교회가 사용하는 '칼빈주의'라는 그런 식의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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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0 00:00
1. 칼빈
한국 교회 거의 대부분이 '칼빈주의'라는 표현을 자랑스럽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교단 별로는 구체적으로 합동 교단 1만 1천, 통합 교단 6천, 합동 교단의 방계 1만여 교회, 고려파 1천 6백 등을 합하면 약 3만여 교회들이 '칼빈' 이름으로 신학교에서 배우고 목회자들의 서재에 놓고 보는 책들의 대부분이 '칼빈' 이름으로 뒤 덮여 있습니다. 그리고 누가 더 칼빈주의적이냐는 것으로 경쟁도 하고 논쟁도 심각합니다. 칼빈은 500 년 전 스위스 제네바에서 활동했던 목회자입니다.
'장로교'라는 이름이 붙은 교회는 눈을 딱 감고 그냥 '칼빈주의자'라고 말하면 됩니다. 신학의 상식입니다. 교회의 운영 체제를 중심으로 교파 이름을 표시할 때는 '장로교'인데 이 교파의 흐름에 너무 큰 수고를 했고 오늘까지 그 흐름이 계속 되는 이름이 바로 '칼빈'이기 때문입니다.
2. 알미니우스
칼빈주의를 앞 세우고 평생을 노력하는 교회들 목회자들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교인들에 맞서서 감리교나 성결교나 순복음교회 계통 교회들은 400 년 전에 활동했던 유럽의 '알미니우스'라는 인물을 따르는 분들입니다.
교회가 잠들고 졸고 있을 때 세계 교회를 깨웠던 분의 이름 중에 웨슬레라는 분이 계셨는데 이 분도 그 속에 흐름은 알미니우스를 선생으로 삼아 배웠고 그 가르침에 충실했던 분입니다. 그들의 이름이 오늘 '감리교'로 나타 나고 있습니다. 순복음이나 성결교회들도 비슷합니다.
3. 교회가 사람의 이름을 기억할 때
복음을 위해 수고한 사람이 자기 스스로 자기를 명예롭게 만들기 위해 자기 이름을 높혔다면 마6장 이후 말씀에서 문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앙이 어리고 모르는 자기를 가르쳐 준 사람에게 고맙게 인사를 하고 그 은혜를 잊지 않는다는 자세를 가지고 후배나 제자 된 사람이 선생의 이름을 기억한다면 고전6:18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바른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고마움이 지나 쳐서 2계명의 우상이 되거나 그런 인사를 하다가 성경과 예수님이 흐려 지는 정도라면 바리새인의 폐단이 생길까 우려해야 한다고 봅니다. 위 글은 그런 뜻으로 발언하셨다고 읽었습니다. 당연한 말씀이고 모두가 다 경청하며 한 번쯤 자신을 돌아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위 글의 우려나 취지를 다 알면서 신학 논쟁에 있어 또는 신앙 노선을 택하는 문제에 있어 서로가 예수님과 성경을 앞 세우면서 가는 길은 반대로 가게 될 때 서로의 입장을 표시하기 위해 과거부터 내려 온 신앙의 흐름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을 가지고 신학의 흐름을 표시하여서 서로 혼동이 되지 않도록 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취지에서 칼빈처럼 절대 주권을 강조한 교회가 칼빈주의라는 이름을 사용한다면 그 이름 때문에 이교가 되거나 칼빈을 우상화 하는 죄가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감리교회가 하나님의 주권은 최소화 하고 그 대신 인간이 열심히 노력을 해야 바로 믿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는데 이런 교훈의 첫 길을 낸 분이 알미니우스이니 감리교회가 자신들을 알미니안주의라고 할 때 우리는 그 이름 때문에 그들을 비판하기에 앞서 그들이 그런 이름을 사용하는 뜻과 취지를 이해하려 합니다.
감리교와 장로교가 서로 자기들이 믿고 가는 식이 맞다고 생각하며 서로의 입장 차이를 과거 이런 문제로 처음 큰 소리가 있었던 인물의 이름을 가지고 살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학들이 그 배운 바에 충실할 때 우리는 칼빈주의라 하고 알미니안주의라고 한다면 이는 같은 성경을 두고 해석과 강조하는 면이 달라서 생기는 차이이므로 양측이 서로 깨닫는 입장과 걸어 가는 길을 표시하는 방법으로 사람의 이름을 사용한 것입니다.
4. 백영희라는 인물
한국 교회에서도 보수 쪽에 철저한 분들은 이 분에게서 배운 사람이나 이 분의 설교 자료를 접한 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칼빈주의 내에서도 오늘 이 시대에 실제 걸어 가야 할 칼빈주의의 원래 취지를 가장 잘 적용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가 돌아 가신 지 불과 21 년 전이어서 그에게 오랜 세월 배운 이들이 현재 40대까지도 많고 또 그의 설교 자료를 접하면서 성경을 제대로 알게 된 분들은 그의 얼굴을 본 적도 없는 10대로부터 20대와 30대에서도 많습니다.
이들이 다른 분에게서 배운 것과 차이가 너무 많이 나기 때문에 '백영희'의 이름에 고마움을 표시하고 장로교 안에서도 하나의 신앙 흐름을 형성하고 있으니 이런 흐름에 이름이 있다면 혼동을 피할 수 있기 때문에 이 홈에서 백영희라는 이름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위 글로 우려하신 것처럼 이 흐름의 신앙은 눈으로 보는 외부의 변화에는 굉장히 조심하는 신앙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변화가 없는 상태로 어떻게 이 시대를 맞서 신앙으로 바로 살겠느냐고 걱정해 주시는데 실은 그 우려대로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걸음을 걷는 이들은 그런 면을 알면서도 오늘 교회가 환경에 너무 민감하게 대처하고 사회의 전반적 변혁에 대하여 교회가 기술적으로 너무 피동이 많이 되다 보니까 세상을 활용하는 정도를 넘어 서서 교회가 원래 가진 신앙의 본질을 잊어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즉,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교회 안에는 변치 말아야 할 것도 있다는 입장입니다. 이 표현에는 시대가 변하면 따라서 변해야 하는 것도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은 바꾸고 무엇은 바꾸지 말아야 하겠는가! 이 문제를 두고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교회는 끊임 없이 교파가 새로 생기고 신앙 노선이 나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상황에서 이 것 저 것 따지지 말고 다 합하고 서로 타협을 하자는 쪽도 생기는데 어떤 신앙들은 타협을 할 것도 있으나 신앙의 노선이란 세상 회사처럼 정당처럼 그렇게 무조건 타협하고 통합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도 있는 것입니다.
대화하고 타협하며 양보하면서 하나가 되어야 할 때도 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면 발전하지 못하고 답보 상태가 되면서 교회의 손실이 클 것입니다. 반대로 타협 양보 통합하지 말아야 할 것을 했다면 그 때는 그 교회가 교회가 아니라 세상 단체가 되는 면도 있을 것입니다.
이 홈은, 옳은 것과 잘못 된 것을 우선 살피고 따지고 비교하며 토론한 다음 만일 바꾸는 것이 옳다면 교회라는 것은 성경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바꾸지 못할 것이 없다는 입장입니다. 반대로 교회가 따지지 않고 살피지 않고 덮어 놓고 바꾸거나 합하자고 한다면 목숨을 걸고라도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으나 이렇게 실제 걸어 가는 것은 위 글이 지적하신 것처럼 교회가 침체 되는 원인이 될 수 있어 그렇게 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한국 교회에는 환경에 잘 적응하여 발전하는 교회들도 있는 반면에 비록 환경 적응에 실패하여 군소 교단이 되고 심지어 교단으로서의 존립조차 어려운 상황을 맞는다 해도 이 걸음을 끝까지 걸어 가는 곳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위 글이 지적하신 내용에서 설교록의 원고를 그대로 읽어야 은혜가 있다 없다 하는 그런 발언은 이 노선이나 총공회 교단의 확정 된 공식 원칙이 아닙니다. 따라서 그런 발언을 가지고 이 노선 전체를 다 비판하거나 이 홈을 오 가는 모든 분들에게 동일하게 인식을 가진다면? 재고해 주시기를 요청합니다. 설교록 그대로 읽기만 해도 은혜가 되더라 하는 경험담은 마치 말 못하는 정치가가 참모들이 준비 해 준 좋은 원고를 조심스럽게 잘 읽기만 해도 좋은 정책이 되고 선거에서 승리할 정도가 되는데 괜히 그 정치가가 만용과 명예에 붙들려 시원스럽게 말을 잘하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입에다 대국민 공약이나 정책 의견을 쭈욱 담았다가 그 표현 한 마디 때문에 낙선하는 경우가 있고 온 나라가 큰 혼란에 빠지는 경우가 있으니 하물며 말씀을 전하는 강단이겠습니까? 아마, 강단의 목회자 발언은 한 마디 한 표현조차 조심해야 하고 실력 없는 이들이 함부로 뱉다가 실수하는 것보다 이미 오랜 세월 그 깊이와 은혜가 검증 된 좋은 설교 자료를 잘 전하는 것이 낫다는 선배, 원로, 선각자, 체험자의 권면으로 듣는다면 좋을 듯 합니다.
5. 형제 분께
예수님조차 그 12 제자를 가지고 비판을 하려면 비판을 받아야 할 터인데, 하물며 우리겠습니까? 이 홈과 이 홈의 성향을 가진 이들을 두고 비판하신다면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한도 없을 것이고 국내 그 어느 교단보다 책망 받을 사안이 많을 것으로 봅니다. 잘못 된 것은 비판해 주시되, 다만 이 홈을 대하는 기본 자세는 쓰레기통에도 뒤지다 보면 재활용할 것이 있어 주워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하셔서 이 홈과 그 발언들 속에서 혹시 한국 교회가 들어야 할 그런 쓸 만한 것도 없을까 하는 자세로 봐 주셨으면 합니다.
어쨌든 위 글에서 지적해 주신 그런 문제는 이 노선을 걷는 이들로서는 늘 마음에 숙제로 가지고 있을 줄 압니다.
주은 중 편안을 구하며
이 홈의 주 운영자 올림
>> 시온의 대로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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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한 홈피가 있어서 들렀습니다.
: 백목사님이란 분을 평가한 것으로 보아 성경인물인줄 알았습니다.
: 성경을 아무리 봐도 백목사란 분이 안나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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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는 there then을 here now로 바꾸는 일입니다.
: 즉, 성경시대는 거의 군인,목축,농경등 단순한 직업의 생활을 하고
: 성전중심, 제사중심으로 살아왔습니다.
: 하지만 지금은 수 만종의 직종과 제도가 있고 변화하느 세상속에 교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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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기에 성경의 정신과 하나님의 뜻을 지금 현재로 재해석해서 가르치는 것이 설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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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세가 전파한 것, 엘리야가 전파한 것, 이사야, 세례요한이 전한 것... 모두 하나님이 뜻을 전한 것이지만 내용은 다른 것입니다.
: 왜냐면 듣는 대상이 틀리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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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목사란 분은 4~50년전 분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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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설교를 지금 그대로 베껴서 하는 것은 목사들의 직무유기고, 그만큼 학문과 지식에
: 자신이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 설교자가 현시대와 교회에 대하여 성도에 대하여.. 선지자적인 외침을 해야함에도 불구하고,앵무새처럼 몇 십년 전 남의 설교 잘 베끼는 것을 제1로 생각한다면 그 교회는 세상에서 낙오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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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온라인,인터넷, 사이버, 글로벌, 전자, 디지털 ......로 바쁘게 달려가고,
: 학교도 내년부터 e-book 즉, 전자교과서를 사용하길 시작합니다.
: 종이교과서를 점점 사용하지 않죠.
: 이런 시대에 교회는 어떻게 그들이 세상속에서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릴지를 가르쳐야합니다. 예수님도 예루살렘 성전이 아닌 그 시대에 맞게 개조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그 회당을
: 인정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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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목사님이 썼다는 말을, 지금은 사용되는 언어도 아닌데 데 흉내나 내고,
: 그 흉내로 학생들에가 가르치니, 학생들은 아웃사이더로 전락해 가는데, 그걸 책임지시겠습니까??
: 그시대 발행된 성경이나 찾고, 설교록어쩌고......너무 어이없습니다.
: 성경도 세로도 된것, 빨간 칠한것... 찬송도 내가 정한 것만 불러야 된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