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회 교회의 부흥의 요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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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갈한 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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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8 00:00
공회 교회의 부흥의 요건
1. 하나부터 열까지 속속들이 백 목사님의 교훈 중심으로 철저히 하라. 설교에 총공회의 것 외에는 조금이라도 섞지 말라.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가는 이 시대에 백 목사님의 노선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어가고 있다.
2. 백 목사님의 형식을, 외형을, 껍데기에는 힘을 쓰지만, 막상 진수를, 실질을 소홀히 하지 말라. 외형 보다는 설교에 힘쓰라.
3. 현재 백 목사님의 교훈을 제대로 발휘하는 목회자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대개 백 목사님의 교훈을 10 내지 20프로 밖에는 발휘하지 못한다. 70-90을 발휘할수 있도록 하라. 타 교단에서 백 목사님이 교훈에 혹하여 왔다가 얼마 있다 보니 별로 백 목사님을 나타내지 못하여 실망하고 돌아가는 경향이 많다.
4. 목회자의 실력은 설교가 거의 90프로를 차지한다. 설교만 백 목사님의 노선을 잘 드러낸다면 교회 부흥은 시간 문제로 성공한다. 설교를 차라리 자신 없으면 설교록을 연설할 때 처럼 미리 10-20번 읽고 저금만 슬쩍 슬쩍 보고 할 정도로 외워서 그대로 읽어라. 마치 방송앵커가 뉴스를 전달할 때 처럼 하라. 그럼 교인 들이 반드시 은혜 받는다.
5. 백 목사님이 생전에 하시던 방식이나 태도를 적은 것이라도 경히 여기지 말라. 백 목사님이 작사한 찬송가는 하나 밖에 없다. 이것을 예배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잘 안부르고 사용하기를 인색해 한다. 이런 교회는 총공회식으로는 부흥 잘 안된다. 94장은 그 자체에 특히 영감이 내재한 량이 다른 이의 찬송가들 보다 특출하고 공회의 근본 교리가 찬송으로 나타났으니 이를 부를 때마다 교인들은 힘이 난다. 이 좋은 찬송을 소홀히 하는 자는 가까이 해 줄수 없는 교역자이다.
6. 설교를 소곤거리는 식으로 하지 말라. 가능하면 큰 소리로 우렁차게 하라. 마이크 볼륨도 될 수 있는 대로 이빠이 올려라. 외형은 일반 교회를 따라가도 좋다. 겸비한다고 해서 설교가 청중의 자장가가 되지 않도록 하라. 설교를 답답하게 하지 말라. 시원 시원하게 확신있는 어조로 교단이 떠날갈 정도로 열정을 발휘하라.
6. 설교를 마치 대독하는 식으로 하지 말라. 총리가 대통령의 연설을 대독하는 것을 보라.
자기의 원고가 아니니 얼마나 힘이 없는 것을. 백 목사님의 설교를 제3자적인 입장에서 전달하는 식으로 하지 말라.
7. 일단 교회에 단 한번이라도 나온 신자는 절대로 놓치지 아니하고 붙든다는 각오로 목회를 하라. 오는 것도 주의 뜻이고 가는 것도 갈 만한 이유가 있으니 먼산 보듯이 하면 어느 세월에 부흥이 되느냐. 새 신자에 철저히 밀착하라. 성령의 소욕대로 하는데 무슨 교인에 대한 욕심이라고 해서 경계할 필요가 있는가. 우리 공회에 혹해서 와서 막상 설교가 밖에서 소문듣던 대로 보다 미약해서 다시 돌아가는 신자가 있다면 어떻게 밥맛이 있으며 잠이 잘 오겠는가.
8. 공회를 알리고 소개하는 수단들에 대해 신경을 많이 써라. 홈페이지, 설교록, 테입등을 교인들에게 잘 소개해서 친근감을 갖도록 하고, 특히 새신자에게는 되도록 많이 소개하여 매체들에 대한 접근을 최대화 시켜라.
9. 결국 부흥의 요체는 다른 것 전혀 없고 교역자 자신의 믿음의 분량에 비례한다. 백 목사님의 설교에 모든 것이 들어 있다. 백 목사님의 교훈을 철저히 교역자가 믿은 후, 교인들에게 믿게 하라.
10. 요새 우리 공회를 흠모해서 제발로 찾아오는 신자들이 특히 수도권에서 점증하고 있는 현실이다. 하나님이 보내주실 때 잘 붙들도록 설교를 통해 우리 공회의 중심을 잘 소개하고 나타내로록 하라. 총공회의 본질을 잘 보여 주도록 힘쓰는데 설교가 모든 것을 차지한다. 안 되면 설교록을 20,30번 읽어서 그대로 강단에는 확대 복사하여- 큰 글씨로- 페이지를 넘겨 가며 - 넘기는 종이소리가 나도 괜찮다 - 힘 있는 목소리로 전달하라.
11. 백 목사님의 설교는 자기를 죽이고 맨날 회개하라는 설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 성공이나 낙망시에 소망을 붙잡는 것이나 얼마든지 은혜가 무한한 설교가 많다. 회개 설교는 물론 필요하지만 너무 집중하지 말라. 예를 들어 눅 18장, 죽은 나사로의 살아나는 믿음 등 기막힌 설교가 너무 많은 데, 이런 설교류는 소홀히 하고 맨날 "내가 이런 흉칙한 죄인입니다." 되뇌이는 식의 설교만 하지 말라. 낙망에서, 실패에서, 모든 죽은 데서 살아나는 설교가 너무 많은데 왜 어려운 설교, 맘에 와 닿기가 어려운 설교에 비중을 많이 두고 즉효가 나는 설교는 홀대 하는지를 모르겠다.
* 주제 넘는 말을 하였다. 답답해서 하는 말이니 이해해 주시길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