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수준의 신앙과 어린 신앙의 자라 가는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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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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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09 00:00
김삼암 목사님은 집회 때 옆에서 보면 늘 눈을 감고 계십니다. 주무시는가 해서 유심히 보면 말씀을 깊이 음미하시느라고 눈을 감습니다. 그런데 그외 원로목사님들은 깊이 들으려고 눈을 감다가 나중에 다 졸아버립니다. 그래서 온교인들 앞에서 야단을 맞았지요. 집회 재독할 때마다 나오는 대목입니다. '눈을 똑 바로 뜨고 들어요! 깊이 듣는 척하다가 졸지말고, 어? 안 졸았어, 아니야! 졸았어. 졸음마귀가 들어 갔어!' 이런 식의 내용은 우리가 백 목사님 집회를 참석하면서 항상 듣던 내용이 아닌가요? 원본 테이프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는데 재독할 때는 교훈이 아닌 내용은 좀 빼는 경향이 있더군요.
백합님이 제시한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은 모를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백합님은 그렇게 하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인들은 그렇게 했다가는 다 쿨쿨 잠을 잘 겁니다. 백 목사님이 '목회'설교록이라는 것을 그렇게 강조한 것은 교회란 항상 새로 오는 교인이 있고 어린양이어서 관리가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백합님께서 직접 전도를 해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전도해서 교회를 처음 나온 학생이나 어린 교인을 옆자리에 앉혀 보셨는지요? 그들에게 눈을 감고 들어라고 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백 목사님 자신이 늘 눈을 뜨고 들으라고 그렇게 야단을 치셨는데 백합님께서는 눈을 감고 들을 수준이면 일반 목회자들보다 훌륭하신 겁니다. 그것은 인정을 하지만 집회장소에서 모든 분들에게 그 기준으로 말한다면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부공3집회는 외부에서 최근에 들어온 분들이 대부분이라고 들었습니다. 우리 공회를 오래 다닌 분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객관을 너무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백 목사님 같았으면 눈을 감고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눈을 감고 들어서는 안 될 주변 다른 사람을 위해 눈을 뜨고 들어라고 하실 것 같습니다. 기도록에 이름을 적고 기도하는 것은 대표적인 바리새인 서기관의 외식 행동입니다. 그런데 서부교회 장로님들께 이름을 꼬박꼬박 적고 기도회를 참석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린 교인들에게 힘을 주라는 뜻이었습니다. 백합님처럼 원로교인들이 연필을 들고 줄을 그어 가면서 듣는다면 주변 어린학생들에게 본이 되어 그들이 예배드리는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지요?
그리고 백 목사님 생전의 집회를 그 정도로 아시는 분으로서 여기서 글을 적는 것으로 본다면 연세가 아마 꽤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연세가 높아지면 가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고 청력에 좀 문제가 생깁니다. 앰프 볼퓸조절이야 어느 집회든지 참석하는 전체 교인의 평균을 생각해서 결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연세 많은 분들이 좋다 하는 정도의 음량으로 그 많은 시간을 계속해서 고음에 노출시키면 아이들에게는 고막에 이상현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 마치 목욕탕에서 노인들이 뜨끈뜨끈해서 좋다하는 정도가 되면 아이들은 살을 데입니다.
여기 글을 다 읽고보니까 서로 소리 높일 내용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조절해야 할 그런 내용이 아닐까요? 강단에 선 사람은 사회자든 설교자든 맡은 직임에 대해서는 주관이나 자아도취라는 표현은 삼가해야 할 줄 압니다. 성경 기록조차 하나님께서는 주관자의 주관을 배제하고 기록하지 않았다는 것이 정통신학이요 우리 공회의 입장입니다. 일본에 갔다 온 적이 있었기 때문에 백 목사님은 설교 내용에 수많은 일본 견문을 인용했고 심지어 일본어를 직접 사용한 적도 많습니다. 백 목사님이 일제 때 미국에 몇 년을 갔다 오셨다면 미국생활 경험담이 들어갈 것이고 영어 문장도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영어를 사용하면 타락했고 일본어를 사용한 것은 경건하다 하면 안될 것 같습니다.
사회자나 설교자의 주관이 주님께 붙들려 사용되라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회자가 주님께 붙들리려고 노력을 하다가 붙들리는 경우도 있고 놓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붙들렸는지 아니붙들렸는지를 남들이 잘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확실하게 실수라는 것이 드러날 때까지는 좀 기다려 주는 것이 공회적 신앙이 아닐까요? 자기도취라는 말이야 어느 목회자든지 자기가 붙들렸다고 생각하고 강단에서 진행을 해야지 도취가되지 않았는데도 그 자리에서 사회를 진행하거나 설교를 한다면 양심이 없는 사람이지요. 양심 있는 사람은 제가 확신이 없어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하여튼 공회의 깊은 말씀을 한번씩 발언해 주셔서 우리 목회자들까지도 정신이 번쩍 들게 해 주시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나 어린학생이나 이제 배우고 자라며 익히는 분들을 부디 생각해서 말씀해 주시면 더 좋겠습니다.
>> 산곡의 백합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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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람의 편의를 위해 동일 주제는 한 곳에 모음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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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재독 예배시에 설교록에 눈을 멎춰 따라 가며 하나라도 안 놓칠려고 하고, 중요하다고 느끼는 경우는 밑줄도 그으는데 이것은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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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통상적 방법은 아는 것 위주의 자세가 되기 쉽고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설교록을 보지 않고 백 목사님이 생전에 설교하는 것을 듣는 것 처럼 그냥 듣는 것이다. 생전에도 필기를 하는 방법이 어느 정도 훈련이 된 경우라며 최선의 방법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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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음 음성에 따라 설교록에 눈을 따라가다보면 거기에 집중하게 되고 생각하면서 듣는 것에 소홀히 하기 쉽다. 결국 설교는 듣고 깨달아서 믿음이 생겨지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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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이야 설교록을 보고서 듣는다고 하더라도, 공회의 오래된 신자라면 설교록을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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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않고 듣는 것만을 권하고 싶다. 하기야 오래된 신자가 아니라도 설교록은 그냥 폼으로 가지고 있으면서 아예 덮어 놓든지 하면서 귀로 듣기만 하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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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집회는 스피커 음성 볼륨이 커서 좋았다. 예년 보다는 훨씬 볼륨을 크게 했다. 음성을 크게 하는 것도 내가 수차 문제 제기를 하였던 것인데 이번 집회에서 시정 되었구나 하고 생각한다. 설교록 보지 않고 듣기만 할 때에는 음성을 크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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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상 집회 장소는 주위에 소리 크게 항의받을 것은 전혀 없어서 얼마든지 크게 해서 잘 들을 수 있다. 은은하고 고요하고 조용하게 세미한 음성으로 듣는 경향이 우리 공회에 있다고 보는데, 본교회에서나 집회에서의 재독 설교에서나 음성은 커야 보다 효과적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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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 교회에 비하여 우리가 더 소리를 적게 하여 듣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귀에만 거슬릴 정도가 아니라면 소리가 몹시 커야 좋다. 청소년이 음악을 적당히 해도 잘 들리는데 귀가 째지도록, 어어폰소리가 옆에 않은 승객까지 들리도록 볼륨을 높여서 음악을 듣는 이치와 유사하다. 몰입하기에 좋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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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집회에서 월요일 밤,즉 첫 설교만 중요하다고 강조할 것은 아니다. 설교는 우선 쉽고 즉효가 나는 것이 좋다. 원본대로 하면 목요일 밤 설교는 주권개별섭리에 관한 설교 이다. 들어보면 너무 쉽고 금방 은혜가 온다. 즉효가 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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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실교는이제 막 우리 공회에 온 신자나 어린 학생들도 금방 어렵지 않게 이해가 갈 것 같다. 설교록 딱 덮어 놓고 들어도 이해가 속속 갈 것 같다. 이에 비해 월요일 첫 설교는 더 어럽다. 이러한데 목요일 밤 설교는 생략했다. 이와 같은 것이 문제가 된다는 말이다. 이번처럼 변칙적인 재독 방식을 취할 때에 생기는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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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목록
- 한 설교를 3회 반복한 재독 방법 - 부공3 집회의 경우
- 저는 .... 아닙니다.
- ★ (공지) '재독의 방법론'에 집중해 주셨으면
- 이번 집회 재독 방식에 대하여
- 집회 의견 모음 - 2
- 집회 의견 모음 - 1
- 재독집회의 참모습에
- 재독 설교를 가장 잘 듣는 방법
- 최고 수준의 신앙과 어린 신앙의 자라 가는 단계
- 구별합시다
- ★(진행) 부공3 집회의 경우
- 자아도취? 청중이 바보? 인간의 의지가 앞섬? 이색적인 방법? - 서영호 목사님의 제자이십니까?
- 맞습니다만 다 늙어서 죽었습니다.
- 신앙의 순수성을 잃지 마세요.
- 신앙의 순수성을 절대로 잃지 마세요.
- ?????
- ????? - 2
- 거절합니다.
- ?????
- 저는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 지적에 대하여
- 한 설교를 3회 반복한 재독 방법 - 부공3 집회의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