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순수성을 잃지 마세요.

공회내부 발언      

신앙의 순수성을 잃지 마세요.

설명
공회 0 7


감정 조절에서 실폐하신 분입니다.
신앙의 순수성을 잃지 마시길 바랍니다.
"예의? '청중이 바보?'
: 설마 초신자라 하더라도 일단 몽둥이 약부터 필요합니다." 이른식의 글은 좀 곤란하지 않을까요?
이른식의 말꼬리 잡고 늘어지기식은 발언에서 좀 곤란하지 않을까요?
맨처음 쓰신 분의 의견에도 공감하시는 분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두번째분의 은혜 받은 면에서 공감 하시는 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서로가 서로에게 인신 공격은 삼가 하시는것이 옳지 않을까요?
같은 부산공회3의 성도들끼리 집안싸움 같아서 보기가 흉합니다.
몽둥이가 약이란 표현이나 서영호 목사님쪽의 거론은 좀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서목사님쪽 교인이 부산3의 집회에 참석할리는 만무하며, 처음 반론하신 분은 제 생각에는 공회에서 신앙생활 하신지가 오래되신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인신 공격성은 마음에 상쳐만 남기며, 저들과 다를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집회에 참석하시는 분들중에는 전자와 같이 전체 설교를 다 듣기를 원하는 분들도 분명 많을테고 두번째 분처럼 한설교를 세번 네번 반복해서 듣고자 하시는 분들도 있을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두번째 분의 논리중에는 본인은 집에서 MP3로 설교 듣겠다는 발언을 하셨는데, 반대로 그렇게 은혜 스러웠다면 돌아와서 같은 설교를 반복해서 MP3로 들을 수 도 있는것도 방법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생활 하다보면 집회 설교를 일상중에 전체를 듣기는 참 어려운것이 현실입니다.
대체로 집회의 설교는 2시간 이상이 태반이기에 일상중에 집회처럼 모든 현실을 떠나서 은혜 받는데 전신의 힘을 쏟기는 참 힘들다고 생각하여, 두시간 이상을 집회처럼 쉬지않고 듣는다는것은 정말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집회 기간에는 모든 설교를 어떻해서든 다 듣게 하고 특별히 더더욱 은혜 스러운 설교는 각자 본교회로 돌아가서 말씀하신 분 처럼 반복해서 MP3로 듣는다든지 녹음으로 듣는다든지 주일 밤이나 별도 시간을 내어 듣는것이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사회자의 특별한 은혜도 좋지만 집회에서 만큼은 사회자의 은혜는 개인의 은혜로 접어두고 전 교인들을 고려하여 전체 설교를 다 들을 수 있도록 하는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제 경험 중에는 목사님이 특별한 찬송에 은혜를 받았다고 예배시간마다 두달이란 기간동안 같은 찬송만 하시든 분이 계셨습니다.
제가 은혜 받는 찬송이 분명 있고 다른 성도들이 은혜 받는 찬송이 있을텐데 목회자 개인의 은혜를 전 성도들에게 똑같이 느끼기를 바라고 계속해서 한찬송으로 두달을 부르니 정말 힘든적이 있었습니다.
설교전 찬송이나 설교후 찬송 세벽예배나 삼일밤 오일밤 모든 찬송을 같은 찬송만 하니 예배에 은건한 반발심도 생겼습니다.
사회자는 개인모다 모두를 위한 자리입니다.
백목사님의 설교는 대체로 한 설교를 여러 방면으로 깨닫게 하시는 영감의 설교인것이 특징입니다.
성경 한귀절로 일주일을 계속 설교 하셔도 또다른 깨닮음이 생기고 알지 못했든 말씀들로 체워지십니다.
11시간의 설교를 두시간 동안 계속 하셔도 다른 깨닮음이 생기는것은 그만큼의 전체적인 은혜를 성도들이 받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한설교에 집중해서 뒷 부분의 설교를 접하지 못했다면 설교 전체 흐름을 파악하고 깨닳기는 어려운 부분이 변명 있다고 생각합니다.
집회 기간에 전체의 설교를 다 듣지 못하고 돌아 온다면 듣지 못한 설교는 생활중에 집중해서 들을 수 밖에 없을터인데 일상중에 2시간 이상을 혼신으로 은혜받기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설교듣다가 손님 맞이하고, 전화받고, 장사하고, 출근하고, 학교가고, 그렇게 일상생활 하다가 돌아와서 다시 듣는다는것이 좀 힘들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특별히 은혜 스러운 설교는 집회 기간중에는 틈틈히 MP3를 이용하시고 첫번째 분처럼 전체의 설교를 원하시는 분들의 의견을 존중하여 전체 설교를 다 들을 수 있도록 하는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것이 집회 참석의 목적이기도 했으니까요.
11번 설교를 하루 4번의 설교로 늘리면서 목요일까지로 결정한것도 같은 목적이었구요.
굳이 같은 설교를 3번 4번으로 반복한다면, 이틀이나 삼일로 줄일 수도 있고, 반대로 5일이나 6일로 늘릴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중요한것은 진리에 목마른 자는 같은 설교를 계속 반복해서 들어도 새로운 깨달음이 생기고 또 생겨서 목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늘 은혜 스럽기 때문에 3번 아니라 10번도 부족할 수가 있으니까 집회 기간의 설교는 전체 설교를 다 들을 수 있는 시간이면 좋겠다는 쪽에 무게를 두는 바입니다.
분명 첫분째분의 반론중
"동기 를 이해합니다. 그러나 설교 전체 흐름 상 맥락을 놓치게 하고 이번 설교 집회에서 모두 듣지 못함으로(11번 모두), 서론 못지 않게 중요 한 본론, 결론을 소홀이 하게 되지 않나 하는 염려가 있습니다.
본래 금요일에 종료하던 집회를 목요일에 종료함으로써 하루에 4회 재독하는 것도 11회 설교를 모두 듣기 위함" 이란 글에는 저못지 않게 동감하시는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느것이든 정답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확실한 정답은 각자의 신앙양심의 답으로 정하기로 하고 결론은 세분처럼 감정의 싸움이 된다면 어느 한쪽이든지 집회와 멀어지는 결과만 초례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집회의 순수성 , 신앙의 순수성 만은 잃지 마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끝-




>> 교인 님이 쓰신 내용 <<
:
: 자아도취? 청중이 바보? 사회자의 의지 노력? 이색적인 방법?
:
: 어느 교회 교인인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 어느 교회에서 배웠길래 말씀을 이렇게 함부로 하는지 정중히 묻고 싶습니다.
:
:
: 혹시 목회자이신지요? 혹시 개척 희망자 이신지요?
:
: 인간의 의지가 앞섰고, 깨닫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라고?
: 혹시 서영호목사님의 제자이신가요? 진심으로 묻는 말씀입니다.
: 그런 말은 서영호 목사님이 자주 하시는 말씀입니다.
: 서영호 목사님 말고 그런 말을 하시는 분이 또 한 분 있기는 합니다.
:
: 서영호 목사님의 제자이시든지, 청량리 교회에서 서목사님께 배운 출신이시든지, 서부교회 다니다가 나와서 떠도는 떠돌이 이시든지, 설교록 은혜 받은 후 혼자 하나님으로 나간 분 중에 하나이신 듯 합니다만 인신공격이 될 것 같아 말을 자제합니다.
:
: 3번 듣고 은혜받은 사람은 바보입니까?
:
:
: 차분히 논리적으로 반박을 해드릴 수도 있겠습니까마는
: 우선 몽둥이가 약이라서 좀 몽둥이로 맞고 나서 논리적인 대화가 필요한 분입니다.
:
: 예의? '청중이 바보?'
: 설마 초신자라 하더라도 일단 몽둥이 약부터 필요합니다.
:
:
:
:
:
:
: >> 건의자 님이 쓰신 내용 <<
: :
: : (부공3의 5월 집회 중 한 설교를 가지고 세 번 예배를 재독한 것에 반대한 '제안서')
: :
: :
: :
: :
: : 첫 설교를 3번 반복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사회자의 영감이라 하지만 이건 주관이고, 자아도치인 것 같습니다.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고 말씀대로의 그 사람이 되지 않해서 말씀을 구경만 하고 지나가서 애가 타서 그런 줄 알지만, 너무 합니다. 청중이 바보도 아니고, 11번 설교에서 전체적 깨달음이 있는 것인데, 본론 결론을 듣지 못한다면 문제 있습니다. 사회자가 애가 타서 사람을 만들 의도로써 한다지만, 통상대로 11번 그대로 재독하고, 깨닫게 하는 것은 성령이지, 사회자의 의지 노력이 아닙니다.
: :
: : 백 목사님도 지금의 11번을 각각 다르게 설교하지 않했습니까? 서부교회에서는 예배 외에 재독은 2번이 아니라 20번도 재독할 수 있지만 예배시에 백 목사님이 돌일한 내용의 설교 를 3번 연구푸한 일이 있습니까? 물론 육성으로는 동일 할 수도 없지만(성경 본문은 동일 할 수 있어도) 사회자의 의지대로 저희 참석자를 깨닫게 하기 위하여 첫 설교를 강조하여 3번 재독케 하는 것은 그 노력 간절한 마음은 이해합니다만, 자연스럽게 11번 녹읍을 틀어 주면 깨닫게 하는 것은 성령이시나 이색적인 방법을 이번 처음 시도하시는 것은 인간의 의지 노력 간절한 심정이 성령님의 은혜보다 우선 순위를 둔 것 같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 의지 의뢰보다 인간의 의지가 앞선 것 같습니다. 깨닫는 것은 하나니에게 맡겨야 됩니다. 사회자의 간절한 의지가 깨 닫게 하는 거 ㅅ이 아닙니다. 바로 하ㅏ님을 의지해서 하나님이 참석자를 깨닫게 하려는 것보다 사회자가 노력을 해서 깨닫게 하려는 것 같아, 하나님에게 깨닫게 해 주시도록 의지하는 것보다 자기 의지(意志)가 우선한 것 같습니다.
: :
: : 동기 를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런 이색적 방법은 설교 전체 흐름 상 맥락을 놓치게 하고 이번 설교 집회에서 모두 듣지 못함으로(11번 모두), 서론 못지 않게 중요 한 본론, 결론을 소홀리 하게 되지 않나 하는 염려가 있습니다.
: :
: :
: : 본래 금요일에 종료하던 집회를 목요일에 종료함으로써 하루에 4회 재독하는 것도 11회 설교를 모두 듣기 위함이잖아요. 또 이번 집회에 84년 5월 집회를 재독한다는 것은 11회 설교 전부를 들을 수 있다는 일종의 광고였지 아니합니까? 11회 모두 듣지 못하는 것은 이런 것들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지금 문제 제기는 설교자에게 설교를 이런 식으로 해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설교는 물론 설교자의 영감이 우선이고, 영감 가는 대로 하는 것이지 듣는 자가 이런 식으로 해 달라고 요구할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이해할려도, 재독설교, 그것도 동일 재독을 3번이나 하는 것은 너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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