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연구소에 대한 간절한 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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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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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1 00:00
1. 부산 연구소에 대한 애원의 표현
'백영희목회연구소'는 부산의 동대신 1가 37-4번지입니다. 그 곳을 책임 진 분들이 연구소의 설립 취지며 서부교회의 재산이 기증 된 원래 목적에 따라 '백영희목회설교록'을 출간하고 이 노선의 자료의 수집과 연구와 발표에 전력해 주시기를 바라며 총공회 전체의 소식지처럼 공회적 발행의 중심에 서 주시라는 애원을 담아 '백영희목회연구소'라는 이름으로 발행했습니다.
2. 이 홈의 설립 취지와 활동 자세
이 홈은 그 연구소가 그 어떤 이유로서든 중단해서 아니 되는 상기 업무를 5 년이나 중단했기 때문에 수 없이 건의하고 애원하다가 기약할 수 없는 앞 날이 예견 되어 운영 책임자가 버려 둔 연구소의 업무를 연구부 직원들이 중심이 되어 1997년에 재개했습니다. 연구소 설립 취지를 거부한다면 직원들은 인적 지도부의 거부 행위를 추종하는 것보다 설립 취지에 순종하는 것이 옳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 일 때문에 1997년 9월에 제명이 되어 졌으므로 이후 지금까지 이 홈 등의 활동에서 보여 드린 것처럼 당시 직원들은 부산의 목회연구소가 정상적으로 활동을 재개할 때까지 '목회연구회' 이름으로 부산 연구소의 의무를 대행하고 있습니다.
3. 이 홈의 진심 어린 소망
부산의 목회연구소가 지금이라도 69호의 출간을 확실하게 추진한다면 이 홈은 설교록 출간의 모든 활동을 즉각 중단할 것입니다. 차선으로 대구공회나 부산공회처럼 공회 차원이면 더 좋겠고 서부교회나 개명교회나 청량리교회처럼 이 노선의 중심을 자처하는 개별 교회가 만일 출간을 맡고 나선다면 우리는 즉각 출간을 양보할 것입니다.
어떤 출간이나 노력이든 우리는 단순 중복을 할 생각이 없습니다. 같은 것이지만 내 손으로 해서 내 이름을 남기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꼭 같은 설교록 내용을 제공하고 있는데 너도 나도 이름을 남기려고 사이트를 운용하는 일은 우습기도 한 일이고 심판 앞에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며 그런 노력은 이 노선에서 해야 할 여러 다른 업무에 쏟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총공회의 핵심이며 전부며 존립 기반이라 할 수 있는 목회설교록을 왜 전라도 여수 땅 바닷가에 시골 어촌 마을의 작은 교회가 출간해야 하는가? 처음에는 자료를 도둑질 해 가서 할 수가 없게 되었다는 발표가 나왔고 이 말을 듣고 현장을 확인하러 간다는 말에 공회의 영안 밝은 지도부가 따라 나섰는데 그 곳에는 어떤 증거도 확인할 수 없었으니 악용만 되어 져 공회 영안만 우스운 꼴이 되었습니다.
4. 총공회적으로 해야 할 일, 연구소가 해야 할 일
이 노선에 은혜를 받고 이 노선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현재 기술력과 경제 상황에서는 그 누구라도 설교록을 출간할 수 있고 총공회 소식지를 발간할 수 있습니다. 하는 사람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 하지 않는다는 것이 참으로 슬픈 일이며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더 잘 할 수 있는 공회, 교회, 개인들이 많음은 우리가 서로 아는 일입니다.
5. 그렇다 해도 하필 '목회연구소'라는 이름인가?
- 법적으로 명의 도용이 아닌가?
이 홈이 1997년에 5 년간 발간이 중단 된 설교록을 재개한 첫 책이 88호입니다. 그 설교록을 출간할 때 '목회연구소' 이름이었는데 당시 목회연구소 지도부의 허락이 없었고 이로 인해 목회연구소의 형식적 책임자 선상에 있던 4 명의 권사님들과 총괄 위원님과 연구소장님이 협력하여 이 홈의 운영자 및 함께 한 직원들을 10 건의 형사 고소를 했는데 전부 무혐의가 나왔습니다. 오히려 고발자가 무고로 크게 처벌 받을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수사 대상 범죄에는 '명의 무단 도용'도 들어 있었는데 이 부분도 무혐의 처분을 받았습니다. 이미 이 나라의 사법부가 답변자의 '백영희목회연구소'나 '목회연구소'의 명의를 사용한 것은 무혐의 처분을 했으므로 법적인 문제는 없습니다.
- 상표법 등에도 문제가 없습니다.
1998년에 이 홈은 '백영희목회연구소'라는 이름을 상표 등록하기 위해 신청을 했습니다. 특정인의 이름과 연관성 문제 등으로 등록이 거부 되었고 몇 년 후에 부산의 연구소가 신청을 해서 현재 상표권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이 홈은 이미 '목회연구소' 명칭을 부산 연구소의 신청 이전부터 사용했고 사용한 증거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단체나 개인과 달리 기득권이 보호 됩니다.
- 민법 등에 의한 가족의 권리
1997년의 고발 사건 때 가족 대표의 중재가 있었고 이후 '백영희성경연구소' 이름의 과도기를 통해 가족 내 일체 이의가 없도록 되었으며 그 성경연구소의 1 년 활동이 중단 되면서 신풍에서 모든 출간 사업이 진행 되는 것으로 허락이 있었습니다. 가족 전체의 개별 의견은 유동적일 수 있으나 적어도 이 홈의 출간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또 모든 이견과 의견에도 불구하고 백 목사님의 설교록 출간에 30 년을 바쳐 오고 그 취지가 그대로 유지 되고 있으며 1998년 이후에는 오직 자력으로 무보수로 전적 노력하는 이 일을 두고 격려와 인사를 들어 왔지 한 번도 이의나 제재의 뜻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만일 이 홈이 가족들에게 설교록 출간 지속 여부를 질문하게 된다면 그 자체가 큰 모욕일 것입니다.
- 출간 주체의 혼란이 우려 된다면?
소식지의 출간 주소가 전남 여수입니다. 소식지는 총공회 내부의 핵심 지도부의 내부용 회람입니다. 부산 연구소와 여수 연구소가 나뉘어 있는 줄 압니다. 혼란이 있을 수는 없습니다.
- 하필 '연구소'인가?
부산의 연구소가 전혀 할 일을 하지 않고 있으므로 14 년을 기다렸고 이제는 더 이상 할 의지도 가능성도 보이지 않으므로 '백영희 목회'라는 이름에 연구회만 존재하는 것보다 연구소 이름이 존재하고 활동하는 것이 '백영희 목회'의 위상에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997년부터 이 홈은 '백영희목회연구소'와 '백영희목회연구회'라는 이름을 함께 가지고 있었습니다. 본부요 형식적 외부적 일차적 책임을 가진 쪽이 먼저 하기를 기다렸습니다. 이제 의리만 생각하여 파행적이며 과도기적이며 참으로 기이한 모습이 더 이상 계속 되기를 원치 않았고 소식지처럼 의미가 적은 것에 연구소 이름을 사용하여 부산 연구소께 강력한 애원을 담아 부산 연구소가 연구소로 활동해 주시기를 청원한 것입니다.
아무런 응답이 없으시다면 연구소 활동을 접었다는 것을 더 강하게 확인한 것이니 연구소 이름을 더 많이 사용할 것입니다. 언제든지 재개하면 연구회 이름을 사용하겠습니다. 백 목사님을 이 홈보다 더 사랑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백영희 목회'에 도움이 된다면 본인들의 명예나 개인적 희망을 접고 대대적으로 환영을 해 주시든 아니면 직접 나서시든 하실 것으로 기대하니다.
>> 대필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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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식지에
: '백영희목회연구소'라고 되어있는데
: 왜 그런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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