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는 말씀이 근거나 말씀을 무시하기 쉬운 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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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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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6 00:00
선교, 그 의미와 사용이 현대 교회에 적용이 되면
선교는 말씀 때문에 시작한 것이나 말씀을 선교 이름으로 거의 무시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공회는 '선교'라는 표현을 일반적인 소개 차원에서 사용하지 공회의 해야 할 일로 사용하는 경우는 없는 정도입니다. 선교의 실적 앞에 교리도 성경도 신앙의 노선도 소속까지도 으레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노선은 기본구원을 알기 때문에 선교지 주민들의 천국은 어느 교단의 전도를 받는다 해도 마찬 가지인데, 이 노선이 선교에 나선다면 다른 교단이나 선교사들이 거의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믿은 후 바로 믿는 길'을 가르 치는 데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유아 세례는 이 노선의 출발 초기부터 배제한 제도입니다.
타 교단이 하는 일이며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노선입니다.
이 노선의 출발을 부정하는 행위입니다.
>> 산곡의 백합화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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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식 1692번에서 이동 -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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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례는 사람이 죄를 예수님의 피공로로 씻고 중생하여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으로 살겠다는 표시의 의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세례를 받을 수 있는 인간 상태는 자기의 죄를 알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믿고 새사람으로 살겠다는 마음의 결정과 의지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세례를 받을 수 있는 인간의 조건이자 자격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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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아는 자기 의사와 결정 능력이 있는 마음의 작용이 없고 따라서 죄를 의식하지 못하고 대속을 믿거나 인정할 능력도 없는 심신의 무능력 상태에 있어 출생당시 가지고 태어난 본능에 의해서만 심신의 작용이 자동적으로 움직인다. 죄와 의를 판단하거나 옛사람과 새사람의 구별 능력이 없음도 당연하다. 이런 아무 것도 인지할 수 없는 상태에 있는 유아에게 세례를 준다고 한 들 무엇을 의식하고 결정하고 중생되었다는 자각을 할 수 있을 까. 따라서 판단 능력이나 아무 지적 능력이 전혀 없는 유아에게 세례를 준다는 것은 세례의 참 뜻을 모르는 소치이며 기존의 오도된 관습대로 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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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주교나 일부 개신교에서 유아세례는 주는 행위는 잘 못된 것이다. 또 세례를 받는 본인의 자유 의사에 위배된 것이기도 하다. 세례는 받는 당사자인 유아의 의사는 무시하고 부모의 의사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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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가 자기 아이를 아직 철 모를 때부터 신앙을 심어 주어 평생 신앙을 가지고 살게 하겠다는 부모의 의지이지 그 유아의 의지나 각오가 아니다. 그 유아가 성장해서 가지게 될 자유의사를 무시하는 것이고 부모가 아아에게 신앙을 강제하는 것일 뿐이다. 다만 유아세례는 유아는 육체적 의식능력은 없을지라도 잘 관찰할 수 없는 영적인 능력은 있을 수 있어서 세례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구석이 있을 수 있을 까를 상상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이런 영적인 능력을 하나님이 출생시 부터나 보다 거슬러 오른 시기인 모태 태중에서 부터 부여해 주었는지는 모를 일이나 이렇다면 유아세례도 의미가 있을 수 있겠으나 이런 태아나 출생후 유아가 영적 능력을 가졌다고는 일반적으로는 긍정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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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세례는 유아가 성장하여 의식능력이나 의지능력이 있고 죄를 자각하고 대속의 공로를 인식하고 인정할 상태가 되어야 세례를 받을 조건을 갖추게 되는 것이고 세례의 실효가 있는 것이지 현재 일부 교계에서 행해지고 있는 행태는 오도된 관습에 기인하는 것이며 세례의 참 의미와는 동떨어진 것이며 사실은 부모의 유아의 신앙에 대한 기대와 각오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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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유아세례의 오류를 알고서 우리 공회에서는 유아세례를 행하지 아니하며 세례받는 연령도 일반 교단에 비해 매우 늦으며 필자도 교회 출석한지 10년도 훨씬 넘어서 나이 30이 넘어서 받았으며 여자는 요즘은 좀 변화 된 것 같지만 대개 결혼을 한 후에 세례를 주는 경향도 많았다. 이는 여자는 결혼을 하면 대개는 남편의 신앙를 따라가기 때문에 처녀 시절에 세례를 받고 불신자와 결혼하여 신앙을 버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세례 받고 다시 새사람에서 옛사람으로 돌아가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한 것도 하나의 이유 이다. 즉 확실한 상태에 있을 때에 세례를 주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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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현상을 보면 하물며 아무 것도 지각할 수 없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는 유아에게 세례를 행한다는 것은 얼마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인가. 천주교는 유아세례가 잘 못된 제도인지도 모르고 행한다고 할지라도 또 일부 개신교도 전통에 따라 그 전통이 오류가 있는 것인줄도 모르고 행한다고 하더라도 장 목사님은 서부교회에서 배워서 유아세례의 오류를 잘 아실 텐데도 이를 기꺼이 필리핀에서 행한다는 것은 자기 지식과는 반대로 하는 것이거나 이니면 자기 지식을 바꾸었던 것으로 보여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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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에서 어려운 환경에서 자신을 희생하여 주님께 충성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존경하고 감사를 드리지만 유아 세례 만큼은 성경적이 아니고 우리 총공회의 제도에 부적합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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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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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공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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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년 4월 필리핀 모리아선교회 장영목 목사님의 유아세례 집례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