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37 의 "대저"가 무슨 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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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37 의 "대저"가 무슨 뜻인가?

설명
산곡의 백합 0 1


누가복음 1장 37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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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성경에서 왜 '대저'를 붙여 번역했는지 모를 일이다. 당시 번역자의 영감이 어떠했는지가 모를 일이다.

위 성경 중에서 '대저'를 혹시 '대개'라고 해석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대개'는 능치 못하심이 없다라고 해석하면 큰 오류가 될 것이다. 그래서 백 목사님도 이점을 유의하셨고, '대저'의 뜻을 '오히려 보다' 로 풀이하셨으리라고 보다. 즉,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고 하던 마리아의 친족 엘리사벳이 이미 잉태한지 6달이 되었는데 이 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라고 풀이 하셨다고 본다.

나는 설교를 재독하면서 외국어 성경에 '대저'가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지가 궁금해서 영어와 독일성경을 찾아 보았다.

영어성경(Holy Bible, King James Version, 1611): "For with God nothing shall be impossible"(ST. Luke 1:37)로서 '대저'에 해당하는 영어성구가 없다.

독일성경(Die Gute Nachricht Die Bibel in heutigem Deutch, 1982): "Für Gott ist nichts unmöglich"(Lukas 1:37)로서 역시 '대저'에 해당하는 성구가 없다.

위와 같이 영어와 독일서 성경에는 없는 '대저'라는 성구가 우리말 성경에는 있어서 '대저'를 혹시나 '대개'로 풀이하여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소지를 유발할 필요가 있는지 모를 일이다. 이런 오류 유발을 염려하여 백 목사님은 '대저'가 '대개'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보다'를 말한다고 명확히 하셨다(아래 설교 해당 발췌 부분 참조).

결론적으로 나의 주장은 왜 외국어 성경에는 없는 '대저'를 삽입하였는지를 모를 일이고, '대저'라는 성구를 삽입함으로써 더 올바르게 되었는가이다. 물론 우리말 성경이 영어나 독일어 성경보다 더 영감적인 번역이 될 수는 있는 소지를 전혀 배제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어느 나라 성경이 보다 원문성경 혹은 사본성경에 더 일치하는지가 될 것이다. 수년전부터 국내 교계에서 대다수의 교회들이 사용하고 있는 개역개정판 성경(2008년)에도 '대저'를 그대로 넣고 있다. 다른 부분은 고치면서 이런 부분에는 신경을 안 썼던가.

나는 개역개정판 성경의 출간 동기나 필요성을 긍정하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 하나다. 소경을 맹인으로, 절뚝발이를 다리 저는 사람으로 바꿨다. 이럴 필요성이 약간 있을 지라도 정당성까지는 담보되지 않는다고 본다. 이미 38년 병자는 굳어진 성구인데 이를 서른여덟 해 된 병자로 바꾼 것은 아라비아 숫자대로 읽지 않고 국어로 통일시키기 위하여 한 것 같은데 38년 병자라면 금방 그 성구의 내재적 영감이 떠오른데 이를 서른 여덟 해 된 병자로 바꾸어 놓았으니 이에 따라가기 위해서는 마음 작용을 바꾸어야 할 형편이 되어 버렸다.

신세대에나 초신자에게도 38년된 병자보다는 서른 여덟 해 된 병자가 더 쉽게 닥아오는 어휘라고는 반드시 볼 수 없을 것이다. 사회학적으로 봐도 요즘 시대에 숫자를 발음할 때에 우리말 발음보다 숫자 그대로 발음하는 경우가 더 많은 실정을 본다면 더욱 그렇다. 예로 12개월을 열두달이라고 발음하는 것보다 십이개월이라고 발음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따라서 삼십팔년을 서른 여덟해라고 바꾼 것은 그 정당성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개역개정판 출간 동기 중의 하나가 현대인의 어법에 일치하게 하려는 것이 있었다면 이런 동기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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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에 해당하는 백 목사님의 설교 해당 부분


본문 : 누가복음 1장 37절∼38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 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설교 1:

여게 '대저'라는 말씀의 뜻은 오히려, 오히려, 보다 그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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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2:

여게 대저라는 말을 대개라고 이렇게 생각하면 아주 틀립니다. 대저라 말은, 모든 것보다 더 확실하다는 그런 뜻을 나타내서 대저라고 이렇게 번역을 한 것입니다. 대저라 말은, `대저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세상에는 다 되는 일들이 있지만 어떤 것보다도, 이런 것도 되는 일이 있고 저런 것도 되는 일이 있고 세상에서는, 쌀을 가지고 밥을 하면 밥이 되고 또 나무를 가지고 불을 피우면 불이 피워지고 *또* 물로 씻으면 깨끗해지고, 그런 것도 됩니다. 물로 씻어서 깨끗해지는 것보다, 나무를 불로 태우면 타는 것보다, 쌀로 밥을 하면 밥이 되는 것보다. 세상에 되는 것이 많지만 그런 모든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 그대로 된다 하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대저란 말은 이거 우리나라 말로는 좀 번역하기가 안 됐은 데 보다, *어떤* 것보다, 세상에 이런 것도 되고 저런 것도 되는 일이 많이 있지만 되는 일이 많이 있지만 어떤 것이 되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 그대로 된다 그걸 가리켜서 말합니다. 쌀로 밥 하면 밥이 되는 그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런 것보다 더 절대성 있게 그대로 된다 그런 것을 나타내서 대저라 말을 붙였는데, 이 대저란 말을 그만 대개라고, 하나님 말씀대로 되는 것도 있지만 대충 되고 혹 안 되는 것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도록 그렇게 요 말이 번역이 돼 가지고 있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대저라는 말 이것을 잘못 새기면,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 하나님 말씀은 사람 보기에 그거는 안 된다 해도 다 되다. 사람 보기에 이거는 절대 안 된다 하는 그것도 다 된다. 다 되는데, 석유 기름에다가 불을 붙이면 불이 붙는 그것도 붙지만, 석유에다가 불 붙이면 불 붙는 그것도 붙지만 그런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대로 된다는 것은 이거는 절대 가감도 없다. 절대성 가진 것이다 이렇게 표시한 것인데 그만 대저란 말 붙이니까 사람들이 유혹을 받기 쉽습니다. "대저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의 말씀하신 것은 다 그대로 되고, 하나님이 말씀해 놓으신 것은 다 그대로 되고 또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능한 능력을 가졌다 하나님의 말씀하신 것은 인간들이 볼 때에 `안 된다'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 하신 것은 다 그대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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