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상 인물 회고, 부공2의 개화를 위했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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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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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8 12:19
출처: [부공2] 장기상 목사님 장례 일정
일시: 2023.12.18
이름: 장기상
일정
1. 별세, 23.12.17.주일
2. 입관, 23.12.18.월 16:30
3. 출상, 23.12.19.화 07:00, 해운대 인제대 백병원 장례식장 101호
4. 하관, 23.12.19.화 13:30
부산영락공원 - 부산추모공원 (부산 기장군 정관로 225)
<가족>
부인: 이봉순 사모님
자녀: 장지훈 임영민, 장지현 김수진, 장은미 고장수, 장은영 천상현, 장은주 이양재, 장은진 로버트
손주: 장재혁 장준혁 장세완 장혜원 장혜신 장혜정, 고결 고건, 천영주 천영찬 천소희, 이수영 이수찬 이수민
* 소개
장기상 인물 소개
초기화면/총공회/자료 9347번 '장기상 - 1970년대 주변, 모범적인 서부교인의 모습 한 토막 : 서기, 2021.02.18'
** 연구소의 회상
장기상 목사님은 누구나 주소록에서 접한 목회자 중 한 분이다. 수영동교회로 개척했고 이후 동부교회로 이어진 목사님의 교회 교인과 주변 인물들만 아는 정도일 듯하다. 그런데 백 목사님 생전에 장기상 집사님은 이동근 목사님의 고향 조카로 이동근 목사님을 장로님으로 기억하는 분들에게는 장기상 집사님은 참으로 특별했다. 서부교회의 그 수많은 교인 중 한 분이었지만 대예배 때 찬송 인도를 했다. 다른 찬송 인도자들은 음악을 전공한 분들이어서 대개 이해를 했으나 이 분을 세웠을 때 모두가 의아했다. 그럴까 싶어 목사님은 설명을 보탰다. 성악을 해서 목소리가 다듬어진 것이 아니라 타고난 목소리라 했다. 새를 길러 보면 소리 좋은 새에게 주변 새들이 영향을 받는다며 예를 들었다. 새가 울면 우는 것이지 새의 소리도 차이가 있는가? 목사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비로소 그런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또 그런 세계를 설명하는 목사님의 청음은 다른 면이 있다고 느꼈다. 다른 찬송 인도자들은 성악을 했고 찬송을 인도하는 수준에 그친다면, 장기상의 찬송 인도는 교인들이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에 서부교회의 수준 낮은 찬송 소리를 좋게 만들 수 있다는 면까지 감안하고 지명을 한 것이다. 이런 사례를 한번 겪고 나면 목사님의 결정은 사소한 것이라도 쉽게 반대하거나 다른 소리를 내지 못하게 된다.
찬송 인도 때문에 이렇게 소개하겠는가? 이동근 장로님은 공회가 고신에서 출발하여 독자적으로 걸어 갈 때 목사 한 사람이 독재를 하려고 장로도 세우지 않는다고 교계가 비판을 했고, 이런 비판을 막기 위해 그 큰 서부교회에 장로 1명을 세우며 안수를 받은 인물이다. 목사님이 가실 때는 장로님이 16명이었다. 그 분들과 이동근 '장로님'은 의미가 다르다. 대구의 동성로교회 신도관 장로님도 그런 경우로 안수 받은 경우다. 신도관은 교계적 공회적 이름이고, 이동근은 서부교회적 이름이다. 서부교회와 공회의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교훈의 깊이는 아주 독보적이다. 신도관은 대구동성로교회를 정통 개혁주의 신학으로 지도하려고 왔던 박윤선에 맞서 공회 교리를 지킨 분이다. 이동근은 서부교회 안에서 매일 백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말씀을 배우고 적고 익히고 파악하며 나온 중심 인물이다. 이동근의 강단 사회 때 기도나, 목사님의 공석을 대신하여 설교를 할 때 비록 백영희 설교를 필기하고 읽기만 하는 정도였으나 낭독이 아니었고 목사님이 비운 강단을 대신하는 은혜가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의 수학 강좌야 누가 대신하지 못할까? 고등학교 3학년의 고등 수학은 아무나 쉽게 가르치기 어렵다. 대학의 수학과 교수가 수학계의 석학으로 유명한데 그 자리를 대신하여 강좌를 이어 간다면 이 것이 쉬운 일일까?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서부교회의 고요하던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동근 장로님의 성함이 정말 무거웠다. 일반 교인들로서는 실질적인 부목으로 생각했다.
8월 집회가 은혜의 열기로 뜨겁던 시절, 새벽과 오전과 오후 예배를 마치면 강사의 목소리 때문에 또는 여름의 가장 더운 기간에 야산에서 흠뻑 젖으며 말씀에 몰입했던 교인들과 아이들이 오후 예배 이후에는 냇가에 나가 씻기도 하고 집회 진행에 모두가 잠깐 바빴다. 전기가 없던 시절이니 모두 일찍 잔다. 그렇다 해도 긴긴 여름 날의 저녁이어서 저녁 먹고 나면 교회 별로 모여서 그 날 3차례.. 장장 9시간에서 10시간을 배운 말씀으로 복습을 한다. 서부교회는 구역 단위로 모인다. 서봉월 권사님 구역은 남편 이동근 장로님이 하루의 말씀을 다시 정리했다. 백 목사님의 집회 설교는 새벽 오전 오후 각각 한번 설교하면 3시간이 기본이다. 쏟아지는, 헛말이 없고 쉬운 대목이 없는 태산 같은 분량을 요약하고 핵심을 정리해서 전하는 이동근 장로님의 저녁 새김질 시간은 정평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집회부터 이 장로님은 장기상 집사님에게 맡겼다. 이동근 장로님보다 더 낫더라는 이야기가 바로 퍼지고 있었다. 서부교회의 내부를 아는 사람은 이런 소식 하나를 들으면 장기상이라는 이름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아 본다.
장기상 목사님은 한국유리에 근무했다. 70년대 80년대 한국유리가 대기업으로 잘 나갈 때 내부에서 여러 면으로 인정을 받아 신앙의 자유와 함께 주변 직원들이 서부교회로 출석하는 모습이 확연하게 보였다. 서부교회의 주력 교인은 제대로 된 직장이 없다. 주일 시험 때문에 취업도 어려웠지만 타 교회를 다녔거나 불신 시절의 교인은 주일에 시험 치고 출근을 하다가 서부교인이 되면서 주일을 알게 되면 직장을 중단하는 것이 거의 대부분이다. 그리고 먹고 살 만한 바닥 생활로 바뀐다. 대기업에 다니며 교회의 만사에 모범적이라는 말은, 그 직장에 가 볼 것도 없이 윗 사람 주변 사람 모두가 실력과 충성과 인격에 인정을 받기 때문에 서부교인의 까다로운 신앙 생활 전부를 보장해 주면서도 잡고 싶은 사람이라는 뜻이 된다. 회사를 함께 다니던 사람들이 함께 서부교회로 출석을 한다는 것이 그런 의미였다.
그리고 수영동분교를 맡게 되었고 목사님 사후 자연스럽게 수영동교회로 발전을 했다. 교리적으로, 교훈적으로, 목회적으로, 주교 중간반 장년반에 이르는 세상과 신앙의 모든 면을 원만하게 훌륭하게 이끌고 세운 것이 부산공회2의 중견 교회이며 지도적 강사였던 장기상 목사님이었다. 주변의 지원 없이 도움 없이, 혼자 믿고 혼자 실행하고 혼자 반사하고 혼자 중간반과 주변을 인도하고 지도하고, 어느 날 하나의 교회로서 불편이 없고 손색이 없게 되자 자연스럽게 교회로 개척이 되었는데 말이 개척이지 이미 교회가 교회 된 세월은 많이 지났을 때였다. 백 목사님 사후 바로 안수를 받고 교회가 개별 교회로 출발할 수 있었는데 서부교회의 후임 혼란과 이로 인해 분교의 개척 금지라는 정책 때문에 늦어졌을 뿐이다.
수영동교회는 그 개척 예배의 출발부터 바로 중견 교회였고, 교회의 내면은 그 어느 교회보다 단단할 것으로 짐작한다. 부산공회2가 1999년부터 공회 차원의 사이트를 마련할 때 이후 부공2의 사이트 개편 때마다 늘 미세한 디자인까지 전부 기술적으로 실무를 맡은 분도 장 목사님이다. 또 부공2 목회자들만 사용하는 내부 '백영희 설교 프로그램, 성경 연구 프로그램'의 개발자도 목사님이다. 첨단의 기술이 손끝에 자유로우면 공회적 신앙이 깊게 들어 가기가 참 어려운데, 절묘하게 양면을 함께 가졌던 분이다. 부공2 그들만이 아는 장기상, 그 이상의 장기상이다. 서부교회의 발전 과정에 가장 서부교회적이며 백영희 신앙적인 인물 몇 사람 중 하나로 소개할 만한 분이다. 굳이 아쉬운 점을 하나 찾는다면 부공2에 철저할 성향은 아니라고 봤는데 종신토록 부공2적이라는 점이다. 손양원은 고신 신앙의 반대 쪽에 있던 총회 측에 가장 반대적인 인물이었다. 그런데 총회파에 자신을 소속 시켰다. 오늘까지 고신과 합동과 통합의 교회사는 이 문제로 논쟁이 많다. 백 목사님은 총회의 탈선 속에 손양원이 들어 간 것은 타협이겠는가 순응이겠는가, 그가 그 곳을 정화해야 할 사명을 느꼈겠는가? 선교사가 복음 없는 곳에 가는 것처럼 봤다. 현재 이 연구소의 주소가 손양원이 활동한 바로 그 곳이다. 그리고 백영희의 그 해석은 정확하다고 감탄하며 이 글을 적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