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에 서부교회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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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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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6 00:00
크리스천의 생활정보신문 크리스찬패밀리 발행인 오창조 대표
2009년 8월 혜성같이 나타나 부산지역 크리스천의 생활 향상을 도모하는 생활정보신문 ‘크리스찬패밀리’가 발간됐다. 정보화 시대를 맞아 실속있는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는 초교파신문으로 다양한 신앙정보 및 교계뉴스 뿐만이 아니라 부산시민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다양한 컨텐츠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크리스천과 부산시민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주도하는 신문으로, 만남과 소통의 역할을 감당할 계획이다. 창간호 발간을 앞둔 크리스찬패밀리 발행인 오창조 대표(호산나교회 안수집사)를 만났다.
오창조 집사는 젊은 시절 부친의 출판업을 도우며 다양한 사업을 펼친 다재다능한 인물이다. 성공도, 실패도 경험했기 때문에 세상에 대한 두려움 없이, 하나님만 붙든 믿음과 자신감으로 살아간다.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한다.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는지, 짧은 간증을 부탁드립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교회를 다녔습니다. 어릴 때 부산 서부교회 백영희 목사님 집 바로 옆이라 목사님과 사모님 손을 잡고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서 교회에 얼굴만 살짝 내미는 정도로 잘 나가지 않았습니다. 20대 중반이 되면서, 살다보니 세상이 너무 좋았습니다.
저희 아버님께서 도서출판 영문사를 하셨습니다. 출판업계에서 아버님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만큼 열심히 하셨고 그 결과로 사업이 잘 되어 재정적 어려움 없이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아버님 몸이 아파 쓰러지셔서 제 대학1학년 때 자퇴를 해야 했습니다. 아버님의 건강악화로 인쇄업을 맡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처지라 그 후 20년간 출판업에 종사했습니다. 그러면서 정수기 사업, 사출 사업, 패스트푸드 사업 등 여러 사업을 겸해서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월수익이 높아 세상사는 것이 재밌었습니다. 또 스포츠를 즐겨 하다 보니 사교성도 높아지면서 친구들과 노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즐겁게 놀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허무함이 몰려왔습니다. 즐겁게 놀면 놀수록 허무함은 더 커져갔습니다. ‘사는 게 이것이 다인가? 사는 게 별거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몰려오면서 이렇게 살다가 끝이 나면 안된다는 생각에 자연스럽게 다시 교회에 출석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특별한 경험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체험을 하셨다구요?
▲네. 당시 호산나교회에 출석하면서 크로스웨이, 성경입문학교, 제자반, 사역반, 순장반 등 훈련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자반 수업에서 ‘천국에 가고 싶은 사람 계십니까?’하자 모두 손을 들었습니다. 이어 ‘지금 가고 싶은 분 계십니까?’라고 하자 저만 손을 들었습니다.
당시 저는 천식이 있었는데 밤 2시가 되면 호흡이 가빠져 잠을 깼습니다. 매일 베란다에서 속기침을 하며 숨을 헐떡였습니다. 보통 1시간을 기침하면 나아졌는데 그 제자반 수업 다음날 밤, 전 여전히 베란다에서 기침을 하고 있었는데 2시간이 지나도 멈추지 않아 이러다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때 제 아내가 같은 아파트에 살던 김진석 장로님께 연락해 메리놀병원 응급실에 갔습니다. 그런데 환자가 많아 땅바닥에 누워 있었는데 한순간 숨이 편안해졌었습니다. 그때 의사가 “숨이 넘어갔습니다”고 했죠. 전 숨이 편안해지면서 제가 순간적으로 맨홀 같은 곳에 빨려 들어가는 걸 느꼈습니다. 그런데 그 때 괜히 제자반에서 손들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그동안 제가 잘못 살았습니다. 절 다시 살려주시면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살겠습니다”고 회개하자 바람소리와 함께 숨이 돌아와 손이 움직였습니다. 숨이 멈춰 죽은 지 5분 정도가 지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다시금 기회를 주셨죠. 그 날로 천식이 나았습니다. 완전히 나은 것은 아니라 약간 숨이 가쁜 것은 있지만 잠을 자지 못할 만큼 힘들진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호산나교회 장애우 부서인 사랑부에서 교사로, 부장, 부감으로 섬겼고 전도폭발훈련을 모두 마치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다양한 사업경험이 있으신데, 어떤 계기로 ‘크리스찬패밀리’를 발간하게 되셨습니까?
▲우리나라는 일본과 달리 장인의식이 약해 2세 장인으로 자리 잡기가 어렵습니다. 아버지의 사업을 맡아 20년간 출판업에 종사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열심히해도 사람들이 “네 아버지 때문에 잘 사는거야”라는 말을 들었을 때 새로운 나만의 사업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6년전입니다. 아버님의 사무실과 결별을하고 서울로 올라가 (주)엘리애드라는 법인을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엘리베이터 내 LCD모니터를 장착 다양한 컨텐츠를 구현하는 사업으로 창업 박람회에서 프랜차이즈로 12억원의 지사계약으로 사업을 시작해 서울 강남구청과 협약을 통해 강남지역 모든 아파트에 모니터를 설치했습니다. 사업을 하면서 거액의 수입을 얻기도 하고 또 실패해 주변의 사람을 잃어보기도 했습니다. 그 후에도 비슷한 사업을 통해 성공도 경험하고 실패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실패했을 때 친구도, 주변의 모든 사람들도 떠나는 것을 경험하고 상처도 받았습니다.
결국 5년만에 부산으로 내려왔습니다. 잠시 가수 서유석씨가 상조회사 대표를 제안해 함께 일도 했지만 이 일은 아니라는 생각에 기도원에 들어가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신문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크리스찬패밀리를 어떤 방향으로 운영할 계획이신지?
▲크리스천들은 문화에 뒤떨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문화를 앞서가는, 새롭게 구축하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현재 대다수의 기독교신문은 목회자와 장로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크리스찬패밀리는 집사들이 읽는, 일반 성도들이 읽는 신문이 될 것입니다. 좋은 기사를 통해 기독교 이미지를 증진하고, 다양한 컨텐츠를 통해 일반 시민들도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숨어있는 크리스천의 그림자를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크고 거창하게 이 신문을 통해 세상이 변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기독교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데 기초석이 되고자 합니다. 크리스천과 부산시민이 자연스럽게 공감할 수 있는 매체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크리스찬패밀리의 발행인으로서 중한 책임감과 사명감을 품고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며 모든 크리스천들과 섬김과 나눔의 장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크리스찬패밀리’는 매주 5만부를 발행하며 월, 수, 금요일 퇴근시간인 오후 6시~8시 지하철에 무료배포한다.
또한 부산지역 교회, 서점에 비치하며 대형 병원과 금융기관(부산지역 농협 전 지점)에도 비치할 예정이며 대형교회는 주일 예배 시 직접 배포할 계획이다.
신문발행 부수나 세금 등 자료공개를 통해 깨끗한 운영을 약속하는 오창조 집사. 이제 곧 창간호를 통해 만나게 될 ‘크리스찬패밀리’를 기대해 본다.
오혜진 기자
2009.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