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우 목사님이 보내온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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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곡백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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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5 00:00
세월은 여류하여 이 천우 목사님과 헤어진지도 어언 30,40년이 되었나 봅니다. 70대 초부터 80년대초 쯤 간 청량리 교회에서 함께 저와 반사도 하고, 당시 교역자는 신용인, 장렬, 유차연, 이재순(안산) 목사님 등이었을 것입니다. 주일학교 부장은 전재수 집사(목사), 김무웅 집사(장로)(대림대 전기 전공 교수, 안산 교회 설립자, 이재순 목사의 사위, 배종일 목사의 동서) 등으로 기억 됩니다. 이 천우 목사님은 그 당시 부터 중고교 학생인데 신앙이 특심하고 성향이 이지적으로보여 일찌기 목회를 할 것으로 예감되었고, 그 모친과 함께 교회를 잘 섬겼으며 -그 모친은 교회의 일에 많은 봉사를 하였으며, 다만 신앙 성향이 공회의 복음에 완전히 뿌리를 깊게 박지는 못한 것 같이 보였고, 동도 교회(최훈 목사 시무, 청량리 교회와 근거리에 있는,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소재, 고신 측 보수)로 간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당시 반사를 당장 기억나는 분을 들으면 김종상, 정경신, 경천 형제(신도범 목사님을 따랐으며 청량리교회를 떠났음), 신동수, 윤석규, 정형인, 김영채 등이 생각나고, 여반사로는 유혜자(장선혜 집사의 딸, 이대 성악 전공?), 신현숙(경원대 미술 전공 교수?), 박정희(김명재 목사의 사모, 박윤철 목사의 딸), 이혜숙(연세대 출신, 세브란스 병원 간호원), 김초실 등이 당장 기억나네요. 당시 청량리 교회는 전성기로서 주교 학생수가 천여명 이었고(서부교회, 남천교회에 이어 3,4위 정도를 하지 않았나 기억됨), 청량리 교회 주변에는 복개안한 냇가가 있어 냇가를 중심으로 뚝방이 연이어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었고, 빈민, 서민층의 인구밀도가 높아 주교생의 전도도 쉽고 교회로 인도하는 것도 아주 쉬었습니다.
당시 허름한 갑바지붕 슬레트 예배당을 헐고 신축할 때에 국수먹으면서 이천우 목사님과 함께 동고 동락하던 시절이 3,40년만에 아련한 추억으로 떠오릅니다. 우리 진영 출신 들은 우리 공회를 떠났어도 어디 가나 목회를 해도 교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이 거의 입니다. 이는 어린 시절이나 청장년 시절에 좋은 올바른 복음 노선에 서서 양육을 받았던 탓으로 돌리게 됩니다. 성장기에 받은 복음은 일생을 좌우 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우리 공회는 한국교계에 우수한 목회자를 배출하는 곳이 되어버렸다고 봅니다.
청량리 교회 하나만 놓고 볼 때도 청량리 교회의 출신으로서, 청량리 교회를 거쳐간 목회자, 장로님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 겨울 날 깊은 밤에 잠안자고 밤새도록 세어도 다 못 셀 것입니다.
세월은 가고 옛동지 들도 떠나고,
이 겨울 밤은 깊어가고,
옛 신앙 동지들의 추억은 그리웁고,
어디서 무엇이 되어 그리운 얼굴들을 또 만나랴.
물새야 우지를 마라.
인생이 한번 가면 또 다시 못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부할 소망이 있고,
청산에 남는 것은 신앙 뿐이라.
물새야 우지를 말라.
물새 우는 강언덕에서 ............
한 겨울 밤에 서울에서 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