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 체질, 한계

공회내부 발언      

본질, 체질, 한계

설명
집회참석 0 2


집회만은 꼬박꼬박 참석합니다. 재독은 하지 없고 3명 목사님들께서 설교만 하십니다. 자주 인도하시는 분도 계시고 가끔 서는 분도 계십니다. 집회를 늘 오는 교인들끼리는 가족이 되고 친구가 됩니다. 서로 안부를 묻습니다. 한 마디만 주고받으면 서로가 다 압니다. 수십년동안 그 목사님들과 그 교인들끼리 맺어진 역사 때문입니다. 교인들이 반갑게 인사하고 돌아가지만 속으로는 가장 큰관심이 목사님들의 설교 은혜와 교회 부흥 문제입니다.

공회 목사님들의 설교 실력은 오랜세월 비교가 되어 이제 다 압니다. 20년 넘게 하다보니까 전국에 별별 교인들이 다 모였는데 모두 설교를 잘한다고 좋아하는 분도 계시고 어떤 분들은 순서상 맡고 끝나기도 합니다. 시골이나 도시나 어디 교인이라도 설교가 은혜스럽다고 다 인정하는 목사님의 교회가 부흥이 되는가 이게 늘 관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설교를 못하는 교회나 잘하는 교회나 차이가 없습니다. 좀 부흥된다 했는데 또 보면 가라앉고 그 와중에 중심교인은 슬슬 흩어지고 그 자리에 막 온 교인이 앉으니 숫자는 비슷해도 교회의 무게는 말할수 없이 가벼워집니다. 돈은 많은지 예배당은 곳곳에 새로 마련합니다. 건축면만 가지고 보면 전반적으로 다 부흥을 한 것같습니다. 교인의 숫자만 가지고 보면 한눈에 모두 다 가라앉아 있습니다.

요즘은 다 공개가 되었으니 실례될 것도 없지만 부흥에 좋다는 것은 안해 본 것이 없습니다. 목사님들이 일반교단에 설교 잘하고 부흥되는 곳을 찾아가서 부지런히 배웠고 모셔와서 해봤고 안해 본것은 없습니다. 그래도 안됩니다. 공회라고 낙인이 찍혀서 안되는가. 우리 공회는 간판부터 다 바꿔봤는데도 안되니. 결국 돈도 못벌고 몸만 버린 타락자 신세가 되어 이도저도 아닙니다. 타교단은 다 내버려도 교세라도 얻는데 우리는 교세도 키우지 못했고 그렇다고 공회성을 말하나 참 스스로 창피합니다. 서울공회 분들과도 이야기 해보는데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산곡백합화님은 평신도같은데 우리도 그런 말은 참 많이 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그런 말은 교인끼리 숨어서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 말씀을 백목사님처럼 그렇게 힘있게 전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또 조용히 전해도 능력이 따라 가니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그리 할려면 설교자의 변화가 따라가서 능력이 함께 해야 하는데 사실 한계라는 것을 느낍니다. 이 복음이 좋다고 여기 있는 분들은 보통 체질이라는 것이 다른 식을 흉내를 내려해도 잘 되지 않습니다. 공차기를 중계하는 아나운서와 해설자가 그라운드에 내려가서 공을 차면 이기게 됩니다. 그들은 직업이 다르다 하지만 공회는 이걸 다르다 하지 않습니다.

설교 은혜와 부흥에 좋다면 이제 공회 목사님들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릴 분은 없습니다. 은혜와 부흥을 목회자들인들 마음에 없겠습니까? 부흥에 관심없는 목회자는 없을 것입니다. 부흥이 안되니까 우리는 신앙만 본다 그리 말하는데 속으로는 부흥에 다 관심이 있습니다. 그런데 흉내를 내려고 해도 입이 떨어지지 않는데 어떻게 합니까? 하드웨어를 맞추다 보면 뜻도 모르고 고함만 지른다 그러지 또 뜻을 전하려다 보면 하드웨어가 안 좋다 그러지 안팎을 다 잘해라 하는데 그 말 듣기 전에 그렇게 해보려고 해도 맨날 안 되니 참 죽을 지경입니다. 전국에 목사님들은 이미 다 나서서 해봤는데 안됩니다. 이제 마지막 남은 극약처방은 교인들 중에서 인재들이 나서서 해볼 때입니다. 물론 해봐야 더 나쁘지 나을 것은 없는줄 우리가 서로 압니다.

이 노선 본질은 백목사님 생전에 우리가 다 배워서 압니다. 목회자들의 체질이 밖에서 하는 분들처럼 흉내를 내려해도 안됩니다. 안되는 분들에게 척척 말을 하면 말하는 사람은 쉬워도 한계가 있습니다. 포기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뻔히 한계가 있고 이 복음의 본질이 있는데 체질도 안되는 분들에게 당장에 하라한다고 됩니까? 그냥 각교회 원로들이 목사님 생전에 받은 것을 가지고 자기 교회를 붙들고 지키는대로 지키다가 마지막에 자기 죽으면 그 교회를 하나님께 맡기고 가는 것밖에야 달리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공회노선의 마지막 지킴이가 될 처지라 생각되어 씁쓸할 뿐입니다. 외로움을 함께 하는 사람.











>> 산곡백합화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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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가 다른 가? 하드웨어의 일부는 공통적이어도 좋다. 왜 부흥이 안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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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실히 다르긴 다르다. 아무리 선입견 안 가지고, 주관을 가지지 아니하고 객관적으로 비교해봐도, 차별하지 아니하고 공정하게 평가해 볼려고 해도 다르긴 다르다. 그것도 조금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고 너무 차이가 난다. 차이를 아무리 부인할려 해도 부인이 안된다. 이것은 필연적이고 자연적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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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우리 공회의 설교가 비공회의 일반교계의 설교와 다른 것인가. 이 것은 땅의 소리와 하늘의 음성과의 비교이다. 인간 사고력과 영감의 차이이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공들여 노력하여 하는 설교와 하나님이 직접 계시해 준 설교이다. 정규 신학대학을 통해서 배운 지식이나 여러 책이나 참고자료를 가지고 노력하여 만든 설교와 이런 인간 노력이나 가공도 함이 없이 하나님이 직접 알려쥐서 하는 설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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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공회의 소속 장로님들이나 중진 집사님들이 어느날 홀연히 공회를 떠나 일반 유명하다는 큰 교회나 일반 교회로 나간다. 이런 현상을 보고서 도대체 일반 교회는 어떻길래 우리 공회가 뭐가 잘 못되어서 수십년간 있던 우리 공회를 떠나 저렇게 떠날까. 이런 현상을 경험할 때마다 일반 교계의 유명설교로 정평이 나 있거나 옯겨간 그 교회의 홈에 들어가 백 목사님의 설교를 듣다가 중단하고 일반 교회의 유명 목사의 설교를 듣다가 또 백 목사님의 설교를 또 듣고 또 일반 교회의 설교를 번갈아 듣고 이렇게 교차하여 청취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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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대체 뭐가 다른가. 실은 생각보다 오히려 골은 깊다. 이 둘 설교 사이에는 너무 큰 강으로 갈라 놓여 있다. 양 안의 강언덕으로 건너가기에는 그 강폭이 너무 넓고 넓다. 산이라면 산 사이에 골이, 계곡이 너무 깊어 이 산에서 저산으로 아무리 무신경하면서 의도적으로 건너 갈려해도 참 건너기 어렵다. 그런데 이상하다. 미국에 잠시 체류하는 중에 일반교회에 다녀 봤다. 그런데 그런대로 적응하겠더라. 그 교회의 설교는 국내 유명 설교와는 질이 좀 달랐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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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 교회의 설교는 대개 이렇다. 인본적인, 즉흥적 감동위주 온통 계획적으로 꾸밈있는 설교, 인위적으로 노력하고 공들인 설교, 부자연스런 설교, 땅의 것 잘되는 위주의 설교, 사랑을 강조해도 거의 인간 사랑이지, 한 편의 작품같은 연출적 설교, 억지 은혜적 설교, 아멘을 분위기 따라 어쩔수 없게 유도하는 설교, 분위기 조성 위주의 설교, 많은 지식을 섭렵하여 이 지식을 포함 시킨 설교, 억지 감동을 자아내려는 설교, 목표있는 설교, 어렵지 않고 금방 피부에 와 닿는 설교, 설교 외에도 찬송, 여러 장치로 예배 분위기를 맞춘 설교, 복잡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예배 방식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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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 비해 우리 공회 설교는 사전에 계획적으로 준비하지 않은 설교, 당시 영감 주는 대로 하는 설교, 수식 없이 자연스러움, 억지가 아니라 필연적인 설교, 은혜를 주기 위해 고심 속에 연구한 설교가 아니고 저절로 나오는 대로 하는 설교, 복잡한 예배 순서 없이 단순한 예배 형식, 유머 없는 설교, 인본적이거나 의도적이거나 사전에 목표를 설정하지 않고 하는 설교, 일반 교회의 설교가 사이다, 콜라 같은 달콤한 즉효가 나는 것이라면 우리의 것은 산골짝의 샘물 같은 설교, 달콤하지도 아니하고 여러 식품첨가물로 가공하지 않은 그저 맹물 그대로인 설교, 일반 교회의 설교는 예의를 잘 갖춘 것이지만 우리 설교는 예의에도 별로 신경 안 쓴다. 일반 교회의 설교는 우리 설교에 비하면 유치하고 너무 쉬우며 맛도 없고 너무 싱겁다. 너무 의도적이고 속이 보인다. 맨날 초보만 되풀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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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 교회의 설교와 우리 공회의 설교는 수준 차이가 너무 심하다. 약간의 차이가 아니다. 동질성은 적고 이질성은 너무 크다. 그런데 일반 교회는 이런 세상적이고 쉬운 설교를 잘 받아 잘 믿는다. 그런데 우리는 높은 설교를 받아 믿는 정도는 일반 교인에 뒤 떨어진다. 다 그렇다 하는 것은 아니고 대개가 그렇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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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럼에도 교인 수를 보면 일반교회는 수천, 수만, 수십만이라면 우리 공회는 두자리 숫자, 많아야 수백이고 천을 넘는 교회는 서부교회 뿐이 아닌가. 설교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차이가 심한데 교인 수 또한 차이가 엄청나다. 교인 수를 보면 우리 공회는 일반 교회를 당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항상 그런 것은 아니고 과거 서부교회는 부산에서 제일의 교회였고 전국에서도 등수 안에 들었다. 우리 공회는 아예 부흥하고는 구조상 안되게 되어 있기 깨문에 부흥에는 신경 안 쓰고 목회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물론 시대는 백 목사님의 생전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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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비교해 봐도 설교는 탁월한데 부흥은 안 되니 모순 아닌가. 이 모순을 어떻게 해결한 것인가. 그렇다고 부흥을 위하여 일반 교회 방식 대로 할 건가. 그렇게 할려 해도 되지도 않는다. 송충이는 솔입파리를 먹어야 하지 겉으로만 화려하다고 장미 꽃을 먹고 살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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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정도로 하여 고치면 될 것 같다. 백 목사님의 설교는 염감적 설교이고 시대적으로 역사적으로 통계적으로 아마 전 세계적으로 흔치 않은 설교이지만 이런 면을 고려해 봤으면 어떠할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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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 목사님의 설교 중 남을 치는 내용, 공개로 심하게 교인을 책망 하는 내용, 일반 교계를 심하게 비판하는 내용, 제자 교역자를 책망하는 내용, 사생활을 폭로하는 내용, 실은 독재가 아닌데 독재로 비치는 언사. 설교 중간에 사이 사이에 앰프 안 들리는 것을 확인 하는 것, 아이들 떠드는 소리 책망 하는 것(: 설교 본문에 관게 없는 것을 사이사이에 끼워 넣는 것), 타인을 비판하거나 비방하는 내용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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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이런 백 목사님의 특유의 설교 방식은 백 목사님은 이런 것 하나 빠짐 없이 구원에 필요해서 한 것이지만 이제는 백 목사님도 없고 시대가 바뀌었으니 제자 목회자들은 백 목사님이 하던 방식대로는 그대로는 하기도 힘들고 할려 해도 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백 목사님에게는 남을 비판을 해도 그것이 당시에는 영감이고 듣는 이에게도 별로 거부 없이 받아 들여지고 은혜가 되었지만 이제는 아니라는 말이다. 백 목사님 외에는 후배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벡 목사님의 설교 중에서 뺄 것은 빼자는 말이다. 이미 거의 대개 목회자들는 이렇게 감하여 하는 줄 안다. 이렇게 보면 백 목사님의 설교는 정확무오하지는 않다는 평가가 된다. 그렇다. 정확무오한 것은 성경 뿐이다. 이에 대해서는 누구도 긍정할 것이다. 표현 어감상 만으로는 반항적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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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부분에서 백 목사님의 설교에 대해 은혜의 삭감 요인이 올 수 있다. 정말 그렇다면 억울할 수 있다. 백 목사님의 설교를 접해 보지 않은 외부인들에게 우리 공회의 영감 설교의 은혜를 갉아 먹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 해보면 어찌 애석하지 않으랴. 손해 많이 보는 것이다. 이런 부분에서 오해를 외부에게 불러 일으키고 이단 시비를 받게 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면 억물한 일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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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 부흥과의 관계는?
: 혹자는 우리 식대로 하면 교회 부흥은 물 건너간 것이고 우리 식대로 하면서 부흥을 원한다면 양립될 수 없는 것을 바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사실은 오히려 우리 식대로 철저히 하지 않아서 부흥이 안되는 것이다. 이렇게 역설적으로 말 할 수 있다. 다만 외양이나 하드웨어나 기초 인프라는 일반 교계의 공통적이거나 통상적인 관례나 식양대로 할 필요가 있다. 이런 것을 안 한 것이 교회 부흥과 인과 관계가 있다면 이도 억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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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점에서 가끔 우리이 설교와 일반 유명 교회, 대형 교회의 설교, 또는 우리 교우들이 옯겨간 교회들의 설교를 지금은 인터넷으로 쉽게 접할 수 있으므로 들어 볼 필요가 충분히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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