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홈에서 정한 '편의상 붙인 이름'

공회내부 발언      

이 홈에서 정한 '편의상 붙인 이름'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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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3월에 제21회 총공회가 둘로 나뉘어 부산과 대구에서 따로 개최 되었습니다. 당시 전국의 총공회 소속 100여 개 교회 교인들을 상대로 서로 자기 쪽이 옳고 저 쪽이 틀렸는데 이 문제는 너무 심각해서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비장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름 한 자를 내 준다는 것은 자신들의 지난 날과 그 동안 실제 투쟁한 모든 싸움과 앞 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전국의 일반 교인들이 어느 쪽이 총공회인지를 지켜 보고 있기 때문에 회원 확보 때문에 이름 문제는 혈안이 되고 있었습니다. 여기까지는 1990년 3월의 상황입니다.

총공회는 2 개로 나뉘었는데 서로가 자기만 총공회고 상대방은 절대로 아니라 합니다. 당시 이 문제는 양측의 핵심들이나 적극 교인들끼리는 주먹이 날라 올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했습니다. 그래서 답변자가 먼저 양 쪽을 적으면서 부산공회를 '총공회(보수)'라 하고 대구공회를 '총공회(수정)'이라고 적었습니다. 그러자 대구공회 분들이 부산측은 총공회를 버리고 '보수 총공회'로 이름을 바꿨으니 이제 우리만 총공회라고 했습니다. 이 정도면? 대화라는 것은 존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객관적이고 공평한 표현을 연구한 끝에 양 쪽의 총공회 개최 장소를 따라 또 지역적 중심 지명을 따라 한 쪽은 '부산공회'로 또 한 쪽은 '대구공회'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 '대구공회'라는 이름 때문에 현재 대구공회의 핵심 지도부가 되어 있는 분들이 대표단을 파송하여 제게 엄중 항의를 하겠다며 주소지까지 보내려 한 적이 있었는데 하루 전날의 통화를 통해 흐지부지 되었습니다.



부산공회 내에서 이재순 목사님을 앞 세운 서성교회 중심의 세력이 하나 있고
부산공회 내에서 서영호 목사님을 앞 세운 서부교회 2층 중심의 김 목사님들이 있고
부산공회 내에서 위의 두 쪽에서 합해서 제명을 한 이 홈의 제 주변이 있습니다.
그래서 부산공회1,2,3으로 편의상 분류를 한 것입니다. 이 이름은 제가 지은 이름입니다. 그런데 이 이름을 지은 저부터 부공3이라는 저만 '총공회'라고 생각하고 저 외에는 모두가 총공회를 탈퇴하여 다 나가 버리고 총공회에는 아무도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반복하면 앞으로 서로 합할 때도 늘 간판 때문에 시비가 벌어 질 것이고, 합하지 못한다 해도 장례식처럼 한 번씩 만나야 할 때가 있고 서로 행사를 하거나 안부를 전하다 보면 어느 쪽에 계신지 등을 두고 대화할 때가 있는데 항상 서로 '저는 총공회 소속입니다. 그 쪽은 탈퇴한 쪽입니까?'라고 하다가 끝 없이 별 건 논쟁을 벌일까 해서 공평하게 이름을 적어 봤습니다. 제가 이름을 붙이는 입장이니 좀 불리한 쪽에 서야 최소한의 객관성이 인정 될까 해서 부공3이라 했고 그리고는 주도측 외관상 먼저 보인 곳을 부공1 그다음을 부공2라고 했습니다.

부공1이 둘로 나뉘어 모이기 때문에 그 분들이 부공1과 부공4로 알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서성교회 지도로 모이는 곳을 부공1이라고 제가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그 반대 쪽은 부공4가 된 것이고, 그리고 이진헌 김응도 송종섭 송종관 목사님들은 초기에 부공1 입장에 서서 부공2의 서 목사님을 격렬하게 밀어 붙인 분들입니다. 그래서 부공2에서 삐라를 전국에 뿌릴 때마다 이 분들 이름을 기쁨조 등으로 붙이며 못 견뎌 했습니다. 그런데 1999년이 지나고 2000년에 들어 서면서 어느 날 이 분들이 모두 부공2 쪽에서 양성원이나 기타 행동을 함께 했습니다. 그런데 김 목사님들이 과거 서 목사님께 너무 심하게 했던 것을 기억하고 어른 대접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이 분들도 부공2 모임에 가셨다가 설 자리가 애매하게 되자 좀 어중간하게 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사례를 드신 바, 백 목사님 손주들의 결혼 주례는 가족분들의 개인적 상황입니다. 그 연유는 아마 저만큼 내면을 아는 사람이 없을 듯합니다. 그리고 집회 참석 과정은 부공2 김 목사님들이 과거 집회 장소를 내어 주고 다른 곳에서 별도 개최하자 할 때 법적으로 훗날 기득권 문제가 있다 해서 여지를 살리는 방향이 고려 되었습니다. 당시 부공2 실세들은 모두 별도 집회를 추진했으나 김 목사님들 중에서 강단에 서지 못할 처지임을 아는 분의 이탈과 이견도 있었고 또 막상 시작하고 보니 재독을 대신하는 것이 어려운 면도 있었고 가장 큰 원인은 부공2 교인들이 비록 부공2 소속 목사님들 때문에 소속은 그렇게 두고 있어도 옛날을 그리워 하는 이 구심력이 별도 집회를 하자는 원심력을 이기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현장 요구에 밀려서 부공1 집회가 대세가 되었습니다. 세월 속에 분쟁은 잊혀 졌고 어제 전쟁을 했던 남북이 오늘 왕래를 하는 것처럼 부공2가 부공1 집회를 계속 참석하다 보니 과거 은혜가 살아 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되자 어느 날 부공2가 자신들의 어제는 잊고 갑자기 부공1 집회에 자신들이 대주주처럼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전 역사를 잊지 않는다면 이런 상황은 부공1로서도 용납할 수 없고, 부공2로서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왜 있을 수 없는 일이 현재 진행 되고 있느냐? 정치가들이어서 그렇습니다. 과거 목숨을 걸고 싸운다고 했던 '이 노선 사수' '우리가 정통' '교리 신조 행정'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표현'이었고 상대방을 치고 나의 것을 확보하는 하나의 무기였지 진심은 아니었습니다.

확실한 것은 부공의 원로 대신에 해당 되는 목사님들은 부공1의 원로로 활동하신 세월이 있었고 서 목사님 공격에 힘을 모으되 역할 분담을 하고 서로 앞 서 나섰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서 목사님 쪽의 모임에 참석하고 활동하는 모습이 자주 발견 됩니다. 참고로 부공1은 원래 한 마디만 벗어 나면 내부적으로는 오늘의 원수로 삼고 오늘의 원수는 어제의 원수보다 더 나쁜 원수로 취급합니다. 부공1로서 부공의 어른들의 처신이란 평생 다시 보지 않을 행동이었으나 약간의 세월이 가면서 부공1로서도 그 분들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선을 대기 시작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공회는 서울공회 > 대구공회 > 부공2 > 부공1 순서로 모두가 정치단체로 변화 되어 왔습니다. 시간 문제지 부공3도 그 어느 날 어느 순간에 오늘 이 글이 비판하는 모습 그대로 정치 단체화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숨을 쉬고 있는 한 내부 투쟁은 있어도 전체가 그리 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이런 곳에 이런 글을 자주 적어 두는 이유 중에 하나는 언젠가 그렇게 될지라도 미리 이렇게 많이 적어 두면 요단 강 언덕에 세워 둔 열 두 돌들처럼 훗날에 탈선을 좀 막는 효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공1로서는 존폐의 위기를 느낄 극단 상황에서 부산공회의 여론이랄까 대세랄까 그런 것에 영향을 미치는 분들을 상대로 무한정 비판만 할 수 없게 되자 서부교회 차기 청빙의 대상으로 생각한다는 표현으로 선을 잡고, 또 상대방 목사님들은 실현 가능성은 갈수록 떨어 지고 있으나 언제든지 돌발 변수가 있기 때문에 항상 양 극단을 배제하고 가운데 서서 어느 정도 처신을 조절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를 우리는 신앙이라 하지 않고 세상이라 하며, 우리는 이런 것을 지혜라 하지 않고 두 마음이라고 합니다만, 그렇다고 이 홈은 좁은 문을 열고 좁은 길을 걷느냐고 반문하는 분들이 계신다면 소원은 그렇지만 그 좁은 문의 문고리라도 사실 제대로 잡았는지 몰라서 여러 문고리를 눈 앞에 두고 망설이고 있다고 표현한다면 좀 정확할 듯합니다.

부공1만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1992년 이래로 김 목사님들은 그들 몇 분 외의 모든 교역자들에게 극단적으로 몰려 존폐 위기를 거쳤으므로 인심과 민심의 유동성에 대해서는 본능적으로 경계하는 분들입니다. 전체 운용에 있어 손해 볼 것도 없고 그렇다고 자기들 마음대로 다 되는 것도 아님을 역사를 통해 체득하였으므로 부공2로 대거 넘어 온 분들과 어느 정도 부공2의 형태는 유지하지만 속으로는 어디까지나 창립자들과 귀순한 분들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김 목사님들의 단결이 이어 지면 부공2는 핵심 몇이 주도권을 쥐고 나머지는 붙여 놓은 정도로 운영할 수가 있는데, 외부 분쟁이 끝나고 평화기가 오래 되자 내부적으로 다시 갈등이 생기고 그 틈에 외부에서 오신 분들이 무거운 느낌으로 공회 내의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자 또 다시 부공2도 역사의 수레에 꼭 같은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그런데 그 어른들도 속으로는 다 생각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상황에서는 부공2로서는 원래 부공2의 형성 과정부터 정치적이었기 때문에 위장 귀순이든 두 마음을 가진 분이든 적으로 돌리는 것보다 어느 정도 유대를 가지는 것이 좋기 때문에 부공2의 세력권 내에 그 분들을 모시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 분들이 사석이나 다른 종류의 글에서 부공1은 몇 남지 않았다고 하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 대신 부공1이란 원래부터 내부적으로도 항상 내부인과 외부인을 명확하게 구별합니다. 부공1은 그 속성상 이런 분들을 내부인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홈은 그 어른들을 모두 부공2로 분류하는 것이 객관적일 것입니다. 실제 공회 여러 대소 행사에서도 이런 면은 확실하게 보입니다.

최근의 상황은 잘 모르지만 흘러 온 전체 방향을 두고 이런 점을 고려하고 제가 그냥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원로 목사님들이 부공1, 2, 3, 4가 뭐냐고 어리둥절하셨다면 바로 물으셨고 바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본인들도 모르는 이름, 이 홈에서 객관성과 편의성과 최소한의 분류 필요에 의해 표를 만든 것입니다.



혹시 교계 쪽을 아실지 모르겠으나

통합 교단은 자기들만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라고 합니다.
합동 교단도 그렇습니다. 고신도 그렇게 말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곳이 수백 개가 넘습니다. 나중에는 어디가 어딘 줄 몰라서 서로 자기들까지도 불편하게 되니까 공식 교단 표시에까지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통합측)'이라고 붙이고 있습니다. 총공회 이름을 쓰게 된 이유가 다른 교단과 다르며 우리의 행동은 우리 이름으로 우리가 책임을 진다는 입장 때문에 공회 명칭을 따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해서 일단 이름들을 붙여 봤는데, 좀 객관적이고 더 나은 좋은 이름이나 분류법을 주신다면 이 홈부터 적극 따르겠고 또 저절로 따라 가게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총공회를 강하게 주장하는 분들만 항상 '우리는 총공회, 옛날 그대로야, 바뀐 것 없어. 남들은 바뀌었다 해도 적어도 나는 옛날 그대로야.'라고 말하는 바로 그 분들 몇을 빼 놓으면 이제 어느 날 세월이 지나서 거의 모든 총공회 교인들이 '대구공회' '부공1' '부공2'... 이렇게 사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특별하게 나쁜 이름이 아니라면 그냥 쓰시는 것이 객관적이지 않을까 라고 생각합니다.

홈을 운영하고 있는 관계로 이런 명칭 문제로 오 가는 대화는 의외로 이 홈에서 많이 듣고 있는 편입니다. 외부 교단 관계자들이 대구공회에 아는 분들이 계실 때 이 홈에 책 구입을 하거나 연락처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대구공회 측에 어느 분을 압니다.'라고 하거나 또는 심지어 해외에서까지 '그런 말을 한다면 부산공회2겠군요.'라고 하는 등입니다.








>> ..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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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가 한번 올라온 글이 있었습니다.
: 편이상 부산1,2,3,4로 나누었으나 원로 목사님들은 그렇게 생각하지를 않습니다.
: 김춘도 목사님이 서영호 목사님과의 뜻이 맞지 않는 것이고 서목사님 5대장성 김목사님들과 뜻이 맞지 않는 것이지 강목사님과의 뜻이 맞지 않는 것이 아닌것입니다.
: 강목사님의 경우는 백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으시기 때문에 당신의 뜻에 따라 순종할뿐 부산2나 부산1이라 생각하지 않고 단지 서부교회 구역장의 심방 목사님으로 계실뿐입니다.
: 서부교회는 2층과 4층으로 나뉘어서 예배 드리고 있으나 서부교회라고 하면 대외적으로 2층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서부교회 본교회의 목사님으로 강목사님이 대외적인 업무를 보고 계시기 때문에 참석하신 것입니다.
: 서목사님의 경우 공식적으로 당회장으로 인정을 못받고 있는 현실적 문제에서 강목사님이 참석하신것이기도 하며, 특히 원로 목사님들 사의에서는 서로의 뜻에 따라 움직일뿐 부산1도2도4도 없다는 것을 아셔야 할것입니다.
: 백명희 사모님의 아들 결혼에는 송종섭 목사님이 주례를 서신것도 다같은 맥락으로 보셔야 할것이며, 대구집회나 거창집회의 참석도 동일한 맥락으로 이해하심이 좋을듯합니다.
: 어떻게 보면 강목사님이 서부교회의 대외 목사님으로 보셔도 무방하지 않나 생각하며, 이탁원 목사님 또한 굳이 부산2로 나눈것이 분류에 지나지 않고 서부교회 행정목사님으로 보심이 좋을듯 싶습니다.
: 유리의 아이디를 쓰시는 분은 분류상 부산2의 이은수 목사님으로 알고 있으며, 그분또한 신덕교회 입당예배에 참석 하지 않았겠나 짐작합니다.
: 원로 목사님들이 떠나시기 전에 다시한번 합칠 수 있는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며, 원로 목사님들이 떠나시고 나면 합쳐지는 것은 정말 힘들어 질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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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사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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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연히 들렀는데 부공2 홈페이지에 부공1 김춘도 목사님의 신덕교회 입당예배가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김 목사님이 누굽니까? 이홈은 모르실 듯하나 양측이 파이프 들고 수백 명씩 서부교회에서 싸우고 전경 차량이 출동할 때 부공1의 실력자였고 서부교회에서는 공적 1호라고 생각했던 분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10년 지나니까 강산이 바뀌고 공회와 서부교회도 다 바뀐 것 같습니다. 서부교회 심방목사님이지만 그래도 서부교회 2층에 속한 강 목사님도 순서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상상하지도 못할 일입니다. 부공2는 사진과 함께 소개도 했습니다.
: :
: : 탓하거나 잘못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뭐 이렇게 될 일을 가지고 그때는 왜 그렇게 했을까 한탄스럽습니다. 이미 부산에서는 모르는 교회가 없고 복음운동은 철저하게 가로막혔습니다.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고 말이 아니면 하지를 말지 왜들 모두 그토록 분요하게 그러셨는지. 고신과 합동 교단도 50년 전에 그랬더랍니다.
: :
: : 부산공회2 홈페이에 올린 글입니다.
: :
: :
: : ㆍ작성자 유리
: : ㆍ작성일 2011-11-08 09:00
: : ㆍ첨부#1 20110919_115830.jpg (1,582KB) (Down:4)
: : ㆍ추천: 0 ㆍ조회: 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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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신덕교회 입당예배
: :
: : 2011년 9월 19일 (월요일) 오전 11시에 입당 예배를 드렸습니다.
: :
: : 사회 김춘도 목사 설교 정정표 목사 기도 류정현 목사 축도 강행수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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