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칼빈-청교도-현대 영미개혁주의-백영희 구원론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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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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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8 12:27
루터는 구원받은 성도의 상태를 "의인이자 죄인"으로 표현하고 정의 했습니다. 이 말은 구원받은 성도는 절반은 의인이고 절반은 죄인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구원받은 성도는 완전한 의인이자 완전한 죄인이라는 내용입니다. 즉 구원받은 성도는 법정적(신분)으로는 완전한 의인이지만, 그 성도의 내면은 완전한 죄인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루터는 성화라는 표현은 직접적으로 거의 사용하지 않았지만 구원받은 후에 악마와 성도의 내면의 죄와의 투쟁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칼빈의 구원관은 "칭의 - 성화"로 표현했고, 이 표현과 개념은 칼빈이후 500년 정통기독교 구원관의 중심적 내용이 됩니다. 칼빈은 구원얻은 성도의 성화의 삶을 "자기부인과 자기십자가를 지는 삶"으로 많이 설명합니다.
이러한 방향으로 루터-칼빈-17세기 청교도 - 현대 영미개혁주의의 구원관을 간략히 설명한 후에 백영희목사님의 "기본구원-건설구원"과 비교를 해보려 합니다.
ps) 제가 필력이 부족하고 꾸준함이 없어서...댓글을 다는 형식으로 내용을 계속 적으려고 합니다. "영혼의 단순성을 통한 공회삼분설 진입"에 대한 내용도 연구소홈페이지에 댓글로 적어가면서 제 자신도 정리가 많이 되었고, 제 나름 뼈대를 많이 세우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연구소홈페이지에 제 글을 적게 해주신것 만으로 많이 감사드립니다.
루터의 칭의론은 다섯 가지 중심사상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첫째, 죄인은 바깥의 낯선 의(義)에 대한 신앙을 통하여 의롭다고 칭해진다. 죄인은 "사람 안에 내재된 의"가 아니라 "사람 밖에서 오는 의"를 통하여서만 의롭게 될 수 있다. 루터는 "죄인은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내려주시는 바깥의 낯선 의(義)를 믿음으로만 받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주장하면서, 중세교회의 잘못된 칭의의 방식인 '내재적 의' 즉 사람 안에서 생겨난 의가 없이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가르침을 비판한다. 바깥의 낯선 의(義)는 예수그리스의 구속으로 말미암은 의이다.
둘째, 루터는 사람이 외래적 의에 대한 신앙을 통하여 의로워 진후에, 신앙의 행위를 행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하나님은 먼저 그를 믿는 사람으로 받으신 다음에 믿음으로 부터 흘러나오는 행위들을 받으신다.
셋째, 죄인은 의의 전가를 통하여 의로워진다. 인간이 의로워 지는 것은 철저히 우리 안에 있는 어떤 것들을 통하여 의로워 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 밖으로부터 주어지는 하나님의 의의 전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본다. 오직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하심을 통하여 의로워진다.
넷째, 그리스도인은 죄인이면서 동시에 의인이다.
루터가 죄인이면서 동시에 의인이라 말할 때, 우리 신자가 "절반은 의롭고, 절반은 죄인"이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완전한 의인이고 우리 안에 있는 아담의 죄의 본성으로 인하여 완전한 죄인이다 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 상태는 정지되어 있는 상태가 아니다. 죄인을 의롭게 만들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를 의롭게 만들어 가시는 새 창조의 일을, 즉 우리의 옛사람을 죽이고 새사람을 살리는 일을 계속 하시어 우리가 완전에 도달해가도록 하신다.
다섯째, 하나님은 신자에게 환난을 주심을 통하여 신자를 계속 의롭게 만들어 가신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자신의 육체안에 있는 죄와 세상과 악마와 끊임없이 싸워나가야 하며, 죄와 싸워 승리하면서 신자의 삶은 매일 갱신을 경험한다.
루터의 칭의론을 정리하면, 첫째 죄인은 바깥의 낯선 의를 믿음을 통하여 의로워 진다. 둘째, 신앙은 율법의 행위를 없애려 했지 신앙의 행위를 없애려 하지 않는다. 즉 루터는 구원받은 성도의 선행 자체를 없애려 하지 않았고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 지려는 행위를 비판했다. 셋째 죄인은 오직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하심을 통하여 의로워진다. 넷째 그리스도인은 죄인이면서 동시에 의인이다. 그리스도의 의는 전가적 의이므로 하나님 앞에서는 의인으로 인정되지만 자신과 사람들 앞에서는 실제로는 죄인이다. 다섯째 의인은 자신 안에 있는 죄의 잔재로 인하여 안주에 빠질 수 있으므로 하나님은 환난을 통하여 죄와 싸우게 하시고 성도가 더욱 의롭게 되도록 투쟁하게 만드신다.
칼빈에 의하면, 칭의와 성화는 어떤 시간적 연대기적 순서나 인과적인 관계 혹은 목적론적 관계에 있지 않다. 즉, 칭의가 성화에 시간적으로 앞서거나 성화의 원인이 되는 것이 아니며, 또한 성화가 칭의의 결과적 산물이거나 목적이 되는 것도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칼빈에게 있어서 칭의와 성화는 신자들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에게 접붙여짐으로써 그 결과로 성도들에게 "동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며, 또한 "서로 구별되지만 나뉠 수 없는 그리스도의 은덕으로 보았습니다.
칼빈의 구원론을 이해할 때 중요한 부분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도는 그리스도와 접붙여 그 결과로써 성도에게 "동시적'으로 칭의와 성화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칭의와 성화의 동시성과 불가분리적인 관계성을 다음과 닽은 명제로 아주 분명하고 정확하게 요약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반드시 동시에 성화시키지 않는 사람은 그 누구도 칭의시키지 않는다>
그러므로 칼빈의 견해에 의하면 칭의 없이 성화가 있을 수 없고, 또한 성화 없이 칭의가 있을 수 없습니다. 칼빈은 성도가 "성화와 칭의" 모두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합" 됨으로 "동시적"으로 얻게 되는 "이중은혜" 임을 강조하였습니다.
※ 아래 내용은 청교도목사 존 브라운(1609-1679년) 이 두 은혜(칭의와 성화)를 비교한 내용입니다.
칭의: 신분의 변화, 하나님이 믿는 자에게 무죄를 선고하시는 사법적 행위 , 여러 단계가 없고 단번에 완결됨, 최초의 순간에 완성됨, 모든 믿는 자에게 동일함, 상실될 수 없음, 즉각적, 죄책을 제거함, 그리스도의 의가 전가됨, 영생의 권한이 주어짐, 오직 믿음으로 칭의됨
성화: 본성의 변화, 지속적으로 세워 나감, 많은 단계를 거쳐 성장하는 과정, 죽을 때까지 완성되지 않음, 모든 믿는 자에게서 동일하지 않음, 이전 단계로 퇴보 할 수 있음, 점진적, 죄의 존재와 권세를 죽임(억누름), 은혜가 성도 내면에 주입됨, 천국의 유업에 참여하는 데 적합하게 함, 모든 은혜의 사용(설교 기도 성찬 등)을 요구함
성화는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성경에서 성화의 두 부분이 다음과 같이 제시되고 있다.
(1) 옛사람, 죄의 몸의 극복. 이러한 성경 용어는 죄로 인한 인간 본성의 부패와 타락이 점진적으로 제거되게 하는 하나님의 행위를 나타낸다. 이는 종종 성경에서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으로 표현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죽음과 연관된다. 옛사람은 죄로 인해 죄의 지배를 받는 인간의 본성이다(롬 6:6; 갈 5:24). 갈라디아서의 문맥에서 바울은 육신의 행위와 성령의 행위를 대조시키며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라고 말한다. 이는 그들의 경우 성령이 지배력을 행사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2)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을 위해 창조된 새사람의 소생. 성화의 전반부가(옛사람을 줄여감) 소극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이 부분은 적극적이다. 이는 영혼의 거룩한 성향이 강화되고 거룩한 실천들이 증대되고 새로운 생의 과정이 창출되고 촉진되는 하나님의 행위이다. 죄의 옛 구조가 점진적으로 파괴되고, 그 대신 하나님의 새로운 구조가 건조된다. 성화의 이 두 부분은 연속적이라기보다는 동시적이다.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새로운 건물의 점진적인 건축 과정이 옛 건물이 완전히 파괴될 때까지 지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이렇게 지연되어야 한다면 이는 결코 이생에서 시작될 수 없을 것이다. 옛 것이 점진적으로 해체됨에 따라 새 것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는 유독한 냄새로 가득 채워진 집을 환기시키는 것과 같다. 옛 공기가 빠져 나가게 됨에 따라 새로운 공기가 들어온다. 이러한 성화의 적극적인 측면은 종종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입음”이라고 불린다(롬 6:4, 5; 골 2:12; 3:1, 2). 이것이 인도하는 새로운 생은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것이라고 불린다(롬 6:11; 갈 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