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공회의 정체성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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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공회 소속한 총공회 교인 입니다.
우리 총공회는 독립신앙 개인교회의 성장이 우선 되어야 가정교회 사회교회를 이루어 갈수 있다고
지금까지 배워왔고, 그렇다고 가치관을 가지며 신앙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의문스러운 것은, 외부적인 입으로 말하는 것으로는 다른 사람의 신앙을 평가하지 않아야
하며, 결혼할 배우자를 선택할때에 그사람의 신앙을 평가하고 조건에 부합하는지 마음 속으로는
다른 사람의 신앙을 평가한다고, 제 자신도 그렇게 알고 있고 다른 신앙생활 하시는 분에게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는 교회 내에서도 파벌이 생기고 하나가 아닌 누구의 편 누구의 편
갈라지는 양상을 보이는 것도, 당연히 외적으로는 다른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본인의 마음속에는 이미 하나 하나 개인별로 자기가 가진 기준에서 다른 사람의 신앙을 평가하며
외적으로는 모든 사람을 존중과 배려로 대하는 모습처럼 보이나, 실질적으로는 같은 동급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무시하는 모습을 볼수가 있습니다.
이에 따른 반박은 외적으로 다른 사람의 신앙을 평가하는 것은 직접적으로 다른 사람의 신앙에
영향을 줄수 있고, 성경에도 어긋난 행위이니 하지 말라고 하면서, 마음 속으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나누는 것은, 구별된 생활이라 합니다.
과연 겉과 속이 다른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사람이 모를것 같습니까?
다 보입니다. 오히려 그런 모습들이 진실되지 못하고, 굉장히 가식적이고 위선자로 보이며
신앙생활 오래해도 특별한 변화가 없구나, 모든 믿는 사람에게 본이 되지 않는구나
매번 그렇게 느낍니다.
예수님이 많이 배운 지식이 많은 사람이나, 경제적으로 여유로는 부자나, 외모가 뛰어난 사람이나,
세상적으로 좋은 지위나 직업을 가진 실력있는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나, 차별을 두고
상대 하셨습니까? 다 같은 예수님의 아들으로 제자로 똑같이 생각하셨던 예수님의 모습은
오늘날 교회에서 찾아볼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외적으로는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모습으로 성경에 어긋난다는 명분으로 사람을 대하면서
정작 마음속으로는 구별이라는 핑계로 자기와 동급인지 동급이 아닌지 평가하고 나누는 모습이
정말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의 모습입니까?
총공회가 텃새가 심하다는 말은 예전부터 일반교단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사실입니다.
정말로 총공회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좋은 교리와 교훈으로 인도하여 부족함이 많고 어려움에 처하고 세상적으로 실력이
없을지라도 그들을 부족함이 없이 실력을 기르게 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구제할수 있는
총공회가 되어야 맞는것이 아닙니까?
왜 겉과 속이 다른 모습으로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모습만 보여주면서 구별이라는 명분으로
사람을 평가합니까? 총공회는 결과주의가 너무 심합니다. 결과가 올바르게 나오지 못한
신앙인은 신앙생활을 열심히 안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을 못받았기에 신앙이 부족하며
신앙생활을 올바르게 하지 못한 것이라 어떻게 하나님도 아닌데 단정하고 구별을 합니까?
결과로 어떻게 그 사람의 신앙을 판단합니까? 과정도 중요하고 그 사람의 인생을 다 낱낱이
파헤쳐서 분석한 것도 아닌데 결과 하나만 가지고 그 사람의 신앙을 평가합니까?
외적으로는 가식적인 모습 보여주지만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 안하지 않습니까?
경쟁하는 불신자와 다른점이 무엇입니까? 파벌을 나누고 급을 나누는 불신자와 다른점이
무엇입니까? 독립신앙 개인교회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명분으로 잘되서 복받으면 하나님
은혜를 받은것이요, 복받은 흔적이 없고 그저 그런 생활을 한다면 본인의 개인 신앙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단정하고, 실질적인 도움은 주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그렇게
평가를 잘하십니까?
마지막으로 도대체 총공회의 정체성은 무엇이며, 현재 이 시점에 잘하고 있습니까?
하는 질문으로 글을 마무리 합니다.
■ 총공회의 전반적 현황
(내부 모습들)
* 좀 넓게도 보셨으면.
적어 주신 발언은 구구절절 눈 앞에 선합니다. 그러나 설명에 앞서 더 넓은 눈으로 우리 주변을 살피고 나서 적겠습니다.
자녀는 자기 가정에 대해 보고 느낀 것을 가지고 우리 가정만 그렇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사실은 대부분 마찬 가지입니다. 한 부모 가정.. 부유한 가정.. 시골 가정.. 아파트 주택 등으로 세분화를 하면 거의 같습니다. 그렇다는 것을 알고, 그렇지만 우리 가정의 문제는 따로 살피면 보다 좋습니다. 공회의 여러 면을 지적했습니다. 일일이 공감합니다. 다만 역사적으로 좀 잘 믿어 보려는 교회들은 이런 내면이 사실 흔합니다. 공회의 문제점, 분명히 그렇습니다. 다만 공회만 그런 것은 아니고 공회처럼 믿어 보려고 노력하다 보면 그런 부작용이 따라 옵니다. 일반적인 사례도 알고 그리고 공회 내면도 파악하면서 대처하면 훨씬 낫다는 점을 우선 말씀 드립니다.
* 정밀하게 그리고 넓게
성경의 기록에도 교회사에도 그리고 한국의 재건교회 고신교회의 초기가 공회처럼 그렇게 작정하고 열심히 믿으려 할 때 지금 발언자께서 지적한 현상은 참으로 안타깝지만 늘 따라 다녔습니다. 그냥 배낀 듯합니다. 바로 이런 면이 나의 현재 신앙에 아주 도움이 되기 때문에 공회는 예로부터 꼭 대학을 가려면 '법학'과 '사학'을 전공하라 했는데 법학은 오늘 기준의 잣대를 강조했고, 사학은 그런 잣대로 살아 온 지난 날을 살피라는 뜻입니다.
(부산공회라 할 때)
* 총공회의 대략적인 분화
이 곳을 찾는 외부인을 위해 간단히 설명합니다. 총공회는 지도자 목사님 사후에 과거 그대로를 고수하자는 '부산공회' 성향의 교회와 교계의 흐름을 참고할 수 있다는 '대구공회'로 크게 나뉩니다. 대구공회 안에서는 교계로 완전 편입이 되자는 10여 교회가 있어 이를 '서울공회'라고 하며, 부산공회 안에는 대체로 3 가지 정도의 흐름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왜 골치 아프게 나뉘냐, 왜 싸우냐고 역정부터 낼 수도 있으나 대학과 병원에는 전공 과목이 많습니다. 싸우다가 나뉠 수도 있지만 그냥 둬도 필요에 따라 상황에 따라 분화는 사실 불가피합니다. 그 분화 과정이 아름답고 발전적이고 합리적이면 좋은데 우리가 부족하고 또 죄악의 세상은 귀신이 그냥 두지를 않기 때문이니 총공회 내에 여러 공회가 있는 것도 우선 넓게 이해를 하면서 또 필요하면 더 들여다 보면 좋습니다.
* 부산공회의 여러 방향들
소속을 구체화 해 주시니 설명도 더 구체화 할 수 있습니다. 현재 부산공회는 3개 정도의 흐름이 있습니다. 칸을 더 나눈다면 5개도 되고 그 이상도 되지만
'부공1'은 서부교회의 벽돌 하나도 옛 모습으로 지켜 낸다는 성향입니다. 이 분들은 집회도 대구의 노곡동에서 옛 모습 그대로 지켜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2019년까지 그들 스스로 과거의 주장을 모두 변경했으니 이제는 부공1의 정체성은 의미가 없다 하겠습니다. 처음에 50여 개로 시작하다 30여 개로 그리고 지금은 아마 10여 개 정도만 남아 있고 이제 거의 흔적만 남은 정도입니다. 이 번 발언이 이 곳에 속한 상황이면 재질문을 해 주셔야 합니다.
'부공2'는 서부교회가 중심이며 60여 교회가 있습니다. 부공2 내에는 대구공회 정도의 교회도 있고, 이 곳보다 더 나아 보이는 곳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체로 발언하신 분의 분위기에 해당 되는 면이 많습니다. 교회도 많고 교인도 많으며 인터넷도 활발하게 하는 분들이 계셔서 이 곳에 발언을 해도 지적 받을 정도는 아닐 듯합니다. 다만 목회자들이 이 곳을 이용하면 완벽하게 왕따를 시키기 때문에 각자 알아서 참고하는 정도에 그칩니다. 지금 이 글을 지켜 보기는 합니다.
부공3은 이 곳에 속했고 평소 각 교회 별로 비실명으로 제한 없이 발언할 수 있으니 이 곳까지 글을 적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 해도 '부산공회'라는 곳은 대부분 발언하신 분이 지적한 분위기에 해당이 됩니다. 이 곳을 찾는 외부 잘 모르는 분들 때문에 간단히 총공회를 소개하면서 그들도 자신을 돌아 볼 기회를 드리고 있습니다.
■ 발언자의 '독립 신앙'과 공회의 정체성
(신앙의 자유성)
원래 자유성은 아주 소중한 표현이었는데 요즘은 멋대로 하라는 방종처럼 사용합니다. 발언자와 이 곳이 말하는 자유는 신앙의 본질의 소중한 표현입니다. 이 자유성을 정치적으로 표현하면 '독립 신앙'이 됩니다. 발언하신 첫 마디의 '독립신앙'이란 나만 좋으면 좋다, 내 멋대로 산다, 남이야 죽든말든.. 그런 의미가 아니라 휩쓸리지 않고 나 스스로 주님만을 정말 좋아서 따르는.. 그런 의미입니다.
(공회의 정체성)
한국인의 정체성은 인체와 성격과 행동으로 바로 식별이 됩니다. 그러나 더 정확하게 말하려면 좀 복잡하지만 찢어진 눈매, 급한 성격, 빠른 손발이라고 합니다. 더 정확하게 규정하려면 검은 머리에 몽고 반점까지 거론하고 북방 도래인과 남방 도래인을 설명해야 하고 한반도 지정학이 빚어 낸 우리의 내면을 검출해 내야 합니다.
공회의 정체성은 '총공회' 교단이 가장 쉬운 표시일 것이고, 그 교회들의 교회 운영은 대체로 답답하고 갑갑한 근대식 모습으로 그냥 표시가 됩니다. 더 분석해 들어 가면 남에 대한 비판의 날이 새파랗습니다. 번쩍이는 칼날입니다. 이 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이 것이 아니라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발언자처럼 이런 면이 총공회라고 소리를 높여도 반론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 해도 발언자의 지적을 설명하면서도 동시에 '정체성'을 말씀하셨으니 살펴 보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사실 정체성이 명확하면 부정적으로 비판 받는 모습이 해결됩니다. 이래 보나 저래 보나 총공회의 정체성은 반드시 파악을 해야 합니다.
(독립 신앙 > 개별 신앙 : 신앙의 자유성)
* 개인의 신앙 자유
중세의 천주교에서 오늘의 기독교가 5백 년 전에 다시 출발하면서 내건 기치가 '신앙은 자유'였습니다. 교황, 천주교, 각 지역의 신부가 시키면 무조건 따라 했던 1천 년의 세월을 돌아 보며 한 사람의 지시에 따라 전체가 하나처럼 되다 보면 중세 말의 암흑 시대처럼 된다는 것을 루터와 칼빈은 생생하게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칼빈의 경우 오늘 우리의 신앙으로 직계 선배가 되는데 그의 첫 외침을 '정체성'으로 표시하자면 '신앙이란 교회, 교황, 신부가 시킨다고 무조건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사람이 성경으로 자기 양심 속에서 인도하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가는 것이니 이를 '개인 신앙의 자유'라고 합니다. 이를 줄여서 자유성이라 합니다. 자유성이란 한 사람의 개인은 그 사람만을 인도하는 개별 신앙이 있고 그런 신앙은 남이 억지로 어떻게 해서 안 된다는 것입니다.
* 교회의 신앙 자유
개인마다 그에게 주신 현실이 있고 그에게 주신 장단점이 다르니 당연히 개인마다 다른 사람과는 다른 자기만의 신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개인들이 함께 모인 교회는 어떨까? 교회도 전국과 세계의 모든 교회들이 그 교회의 위치와 교인들의 구성에 따라 다른 교회와는 다른 사명이 있고 그 교회만에게 필요한 형편이 있으니 교회도 교회 단위로 교회의 자유가 있습니다. 이를 '교회 자유'라고 합니다. 개인은 '개인의 신앙 자유'가 있고 교회는 교회 별로 따로 '교회의 자유'가 있습니다.
지금 설명한 이 2 가지의 자유, '교인의 신앙 자유'와 '교회의 운영 자유'는 천주교에서 나온 모든 교회들의 출발 정신입니다. 물론 극단적으로 보장한 곳은 침례교라 하고, 많이 조심하며 천주교의 절반이라 할 만큼 억제하는 곳은 감리교라 합니다. 장로교는 그 중간쯤 됩니다. 침례교처럼 너무 풀면 방종이 되고, 감리교처럼 너무 조아 대면 천주교 꼴이 나게 되니, 장로와 목사라는 간부들에게 중요한 업무를 맡기되 정말 중요한 것은 전체 교인들이 결정한다' 라고 방향을 잡았습니다. 그래서 '장로'들이 중요한 교회여서 '장로교'입니다.
(공회의 정체성)
공회는 천주교가 초대교회를 거치면서 잘 믿으려다 천주교로 된 것처럼, 개신교 중에서 장로교가 잘 믿으려다가 잘못된 장로교가 된 것처럼, 세월 속에 또 그렇게 굳어 지는 일이 없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신앙의 진정한 자유, 각 교회의 진정한 자기 운영이 바로 되면서 계속 이어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럴 찾다가 방향을 잡고 그 방향에서 점점 구체화 된 것이 '총공회'입니다.
총공회는 한 교인이 자기 신앙으로 살려고 할 때 다른 사람 때문에, 전도회니 교회 내의 어떤 단체 때문에, 또는 자기 소속의 교회 때문에, 또는 교회가 속한 공회니 총공회 때문에 제재 받지 않도록 방향을 잡았고 그 방향이 구체화가 되어 있습니다. 총공회에 속한 교회도 한 교회가 자기들이 꼭 방향을 잡으려 하면 주변 다른 교회나 소속한 공회에게 제재를 당하지 않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총공회 교회, 진정한 공회 교회의 교인이라면 남에게 제재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제재를 받는다면 이는 근본적으로 정체성 문제에 고장이 생긴 것입니다. '총공회'라는 이름을 내 건 이상, 이후부터 생기는 문제는 공회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살 풀어 보고 살피면 저절로 고장이 고쳐집니다. 차에는 볼트 하나의 규격과 위치까지 전부 그려 놓은 정비 지침 설계도가 있습니다. 시간이 걸려 그렇지 하나씩 뒤져 보면 누구라도 알 수가 있습니다.
■ 발언자께서 구체적으로 지적한 문제점들
(다른 사람의 신앙 평가)
* 교인 사이의 관계
지성인 부자 사장님이 같은 교회의 얻어 먹는 노숙자 거지를 향해 '예배 시간에 언행과 모습이 덕스럽지 못하다'고 했다면, 그런데 그 사장님이 그 노숙자 거지에게 그렇게 말을 해도 될 서로의 특별한 관계가 있다면 그 것은 충고요 선도요 심방이며 사랑의 권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구역도 다르고 전도한 식구도 아니고 그냥 지나치는 사이인데 그렇게 말을 했다면 '오만'이며 '건방'이며 '간섭'이며 '비판'이니 '정죄'를 한 셈입니다.
교회 안에서 장로 권사 집사와 같은 직책 문제, 남녀 청년의 결혼 문제, 함께 신앙 생활을 하다 보면 별별 것이 비교가 되는데 그 중에 경제나 자녀 문제는 그대로 다 노출이 되어 버립니다. 일단 결혼 문제를 중심으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 결혼의 청년을 두고
학벌 실력 직장 인물 건강 집안을 최고로 갖춘 남 청년이 신앙 하나만 보고 아주 수준 낮은 여성과 결혼을 추진하려고 한다면, 한 교회 안에서 여러 말이 나올 것입니다. 신앙 하나만 보고 하지만 나중에 살아 가다 보면 부부 사이가 엉망이 될 것인데.. 또는 저런 사람이 저 정도를 마음에 둔다는 것은 너무 눈이 높은 것은 아닐까.. 등등 별별 이야기가 나올 때 공회의 정체성으로 말한다면 각 사람 속에 그를 인도하는 하나님께서 어떤 마음을 주시고 어떻게 인도하는지, 그리고 두 사람이 가정 교회를 이루는 모습이 세상 기준이 아니고 일반 다른 가정과 다른 모습으로 다른 방법으로 진행할 수 있는 것이니 그들의 결정을 삼가 조심하고 주의해야 합니다. 함부로 비판하다가 성령 훼방죄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앞 날은 누구도 모르고, 사람의 현재조차 그 내면을 파악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습니다. 각자에게 역사하는 영감의 인도가 있으니 삼가삼가 조심할 뿐입니다. 걱정이 되면 위해서 기도하면 되고, 둘도 없는 동생이어서 평소 그런 이야기까지 서로 해온 사이라면 '이런 면을 생각했는가?' '혹시 순간의 이성 감정에 휘둘려 나중에 생활이 지속될 때 감당이 되겠냐'면서 함께 계산을 한다든지 토론을 한다든지 지적을 하는 것이야, 평소 서로 상대방을 알고 서로 존중하며 살아 온 과거가 있으니 그런 언급이 개입이 아니라 대화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관계도 없는데 툭툭 말을 던지되 그 것이 고층 아파트에서 창밖으로 유리 잔도 던지고 밥 그릇도 던지는 식이면 밑에 지나 다니는 사람을 살인이나 상해하는 중범죄자가 될 것입니다.
* 교회 내의 파벌
우리는 자기 한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 봐도 이럴까 저럴까, 편 싸움을 합니다. 공부를 할까 놀러 갈까. 이 것을 먹을까 건강을 위해 참을까.. 극단 투쟁도 합니다. 어떤 부부도, 어떤 가족도 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 가정만 그렇다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그 어떤 교회도 내부 투쟁은 심합니다. 주님이 목회하던 2천 년 전의 교회에 12 사도끼리도 패싸움이 심각했습니다. 패싸움은 당연하니 괜찮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죄악 세상에서는 피할 수가 없습니다. 잘 알고, 그리고 대처를 잘 하면 되는 것입니다. 공회가 공회인 것은, 그런 면까지 모두 고려를 한 것입니다. 교회 내 편이 갈라 지고 파가 생길 때 어떻게 할 것인가? 평소 신앙은 개별 자유가 있고 각 교회는 교회만의 자유성이 있으니 지금 부모로서 어린 자녀의 식사 지도법은 간섭이 아니라 마땅한 지도인가, 지금 부모라 하지만 이제는 결혼을 했고 다른 사람과 부부가 되어 함께 먹고 살아야 한다는 점에서 더 이상 이 자녀에게 식사를 언급하는 것은 그 두 사람의 신앙과 생활과 인격에 개입하는 것이니 이 것은 신앙의 자유성에 따라 호소에 그칠 것인가, 아예 맡겨 놓고 기도만 할 것인가.. 이런 면을 신중하게 생각하면 교회 내에 파벌이 있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으나 그 것은 교회 내의 다양성일 뿐이고 실제로는 신앙의 파벌은 아닐 것이고 형성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 잘 믿으려는 교회, 교인
그런데 대충 믿고 대충 사는 사람이면 그냥 만나서 웃고 지나 가지만, 사랑이 애정에 이르고 돌아 보는 것이 지도를 넘고 지시에 이르고 안부를 전하는 것이 심방을 지나쳐 설교가 되고 지시가 될 정도에 이르면 두 사람의 관계가 부부나 부모 자녀이든지 아니면 신앙으로 펄펄 끓는 열심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원래 가족으로 가깝든, 아니면 신앙이 넘치든, 하나님이 주신 각자의 위치와 사명과 범위라는 것이 있는데 이 것을 넘어 가게 되면 부부라도 교회라도 심방이니 설교니 그 어떤 명목을 붙여도 개인의 신앙 자유를 침범하는 것이 됩니다. 즉, 종교 탄압이 되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자기의 생각)
* 개인의 신앙 자유란
앞에서는 한 사람의 신앙 자유를 강조했습니다. 반대로 나도 남의 신앙을, 남의 생각을, 남이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든 내가 그 사람의 생각과 철학과 사고방식과 표정까지 개입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교인들이 이 번 나의 결혼을 이상하게 생각하더라.. 모두가 눈치가 그렇고 표정이 그렇더라.. 지금 모두 나를 왕따를 시키고 있다..
예전으로 가면 먹고 살기 바빠서 남의 속 마음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편하다 보니 남의 심리까지를 들여다 보려 합니다. 상대방이 적극적으로 나를 위해 박수를 치고 열렬히 환영하지 않으면 우울증이 생기는 상황입니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 다릅니다. 남이 표시 내면 싫어 하는 사람은, 남이 표시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입니다. 나는 남이 표시 내는 것을 싫다면 이제 충돌하는 두 사람의 경계점에서 어떻게 잘 조정하는지 그 것은 두 사람의 역량이지 상대방의 신앙 간섭이나 독립 신앙을 훼손한다고 생각하면 곤란해 집니다. 내가 원하는 교회의 분위기, 그런데 남들이 생각하는 교회의 분위기, 이 둘이 서로 다를 때는 어느 정도로 조정하느냐는 것은 서로가 대화하고 조정할 일이지 나쁜 교회라거나 교인들의 심성이 문제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 잘 믿으려는 교회는
강단의 설교도 당연히 교인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표시하게 됩니다. 교회 내 앞서 믿는 분들의 언행도 그렇습니다. 그렇다 보니 교인 전체의 분위기가 왜 주일에 빠졌는가? 말 못할 사정으로 응급실에 갔을 수 있는데도 꼬치꼬치 물어 보면 이 것은 물어 보는 사람이 상식이 없고 눈치가 없어 그렇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신앙의 자유성, 독립 신앙의 범위라는 것이 있으니 물어 볼 수 있는 말이 있고 더 이상은 물어 보지 않아야 하는 선이 있는데 이를 쉽게 넘나 들면 상종 못할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 이제 발언자의 문제점
겉과 속이 다르다 해서 사람이 모르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표정을 통해 다 감추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남의 속 마음까지를 측정하려 들면 이 것은 발언자가 너무 지나친 것이 됩니다. 사람이 자기 속에 정화조가 있다고 내보일 수는 없습니다. 건강상 위생상 뱃살로 가루고 속 옷과 겉 옷으로 단장을 해야 합니다. 자기의 수준과 체질이 저 사람을 싫어 하는데 싫다는 표시를 내면 그 것은 침략이 됩니다. 그래서 참고 있다면 이는 그 사람의 수련이며 절제며 자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표시가 많이 난다면 수련이 부족한 것입니다. 정말 무서운 사람은 아예 표시를 전혀 내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의 신앙의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이 상대방이 철저하게 감춰 놓은 그 속을 들여다 보려 하면 되겠습니까? 그 것은 그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이 그 사람의 속에서 그 사람에게 과제를 주시고 매도 들고 칭찬도 하면서 따로 진행 될 그 사람의 자기 신앙의 세계입니다. 내가 개입하거나 간여할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의 상황)
* 오늘을 돌아 봅니다.
오늘 교회 안에는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말은, 불신자도 하고 잘 믿는 교회도 그리 말을 하고 우리 공회들도 그렇게 말을 합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할 때마다 나도 남들에게 예수님의 모습은 아니라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나 주변 다른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을 좀 닮았으면.. 소원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되는 노력은, 나는 나에게만 요구할 수 있습니다. 이 것이 신앙의 자유성의 원칙입니다.
* 그런데 나도 돌아 봐야 합니다.
지금 발언자께서 초두부터 구구절절 옳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글은 교회의 정체성을 가지고 교회사와 함께 여러 사례를 안내했습니다. 그런데 모든 논점은 왜 신앙은 자유인데 남들이 나를 이상하게 보나, 뒤로 말을 하나, 속으로 덮어 놓았지만 뻔히 다 짐작을 하는 것인데 .. 이 정도로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다 맞는 말씀인데 마지막 부분이 문제입니다. 나의 신앙은 하나님께 받은 나만의 문제입니다. 남들이 개입하면 그 개입만큼이 아주 큰 죄가 됩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대신하는 망령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위험과 그런 죄라는 것은 나도 남에게 쉽게 실수할 수 있습니다. 남이 나를 뭐라 하든 그 것은 그들을 그 정도의 수준으로 만들어 놓은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들이 뒤로 별별 언행을 하는데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손을 댑니다. 그렇게 맞아 가면서 배우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을 향해 좀 안 됐다 싶은 마음을 가지고, 내가 어떻게 해야 그들이 좀 나아질까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하는데 바로 그런 과제를 주시려고 발언자에게 그런 환경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예화, 이 모든 대화의 전제에는 알고 보니 그들은 다른 뜻으로 그랬는데 내가 오해한 것도 더러 섞여 있는 것입니다. 앞 글에서는 내 판단이 맞다고 생각하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나의 판단 자체가 아예 틀린 경우도 너무 허다합니다.
* 총공회의 텃세
타 교단에서 공회를 접한 분들이 텃세가 너무 심하다고 합니다. 전국 어느 교회라도 공회에는 흔한 일입니다. 그런데 타 교단의 텃세는 언론에 보도가 되면서 공회보다 못지 않은 경우가 허다합니다. 각자 접한 사례가 달라 다르게 느껴 지겠지만 이 곳은 교계와 공회 내를 두루 아는 편입니다. 공회의 텃세는 교인 별로 교역자 별로 소리 없이 진행 되는 정도라면 타 교단은 헌법으로 교단 운영 규정 곳곳에 아예 제도적으로 못을 박아 놓았습니다.
판검사 경찰이란 그 직책상 결정권이 강한 법인데 아예 특권을 명시해 버리면 어느 정도겠습니까? 요즘은 특권을 최대한 빼버렸는데도 여전히 암암리에 그렇습니다. 이 것은 인간의 본성에 관한 것이고, 그 직책의 특성 때문에 완전히 제거 하는 것은 어려울 듯합니다. 지금 스포츠 계에 사건에 온 나라가 난리들입니다. 요즘 세상에 아직도 저 정도입니다. 그 사람으 그 쪽만 그런 줄 아는데 사실 그렇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그 사람이 그 곳에만 있었기 때문에 그 곳만 그렇다고 느낀 것입니다. 그 차별, 그 텃세는 잘못이지만 곳곳이 거의 다 그렇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가 현재 당한 텃세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이 것은 별개 문제입니다. 사방도 알고 자기도 알면 도움이 되고 오로지 자기만 그렇다고 생각하면 자기의 대처에 문제가 생깁니다.
(총공회의 정체성)
이제 설명한 이 모든 문제는 아마 교인으로서 겪은 일인 듯합니다. 공회는 교인들이 그런 문제를 느끼기 전에 우선 목회자들의 세계가 훨씬 먼저 그렇게 진행 될 것으로 보고 목회자를 중심으로 철저히 텃세를 하지 못하게 최선을 다했습니다. 아마, 세계 기독교사에 없다 할 정도로.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나라 수백 개의 교단들 중에서는 공회 정도에 비교할 곳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부산공회들의 텃세에 목회자들까지도 주눅이 들어 기고 들어 가고 있습니다. 곧 어느 한 부산공회의 중견 목사님 건으로 실명 사례를 보고하게 될 것인데, 이미 해당 되는 분에게 8월 말쯤 실명으로 진행한다고 알려 드렸고 양해가 되어 있습니다.
그 글을 읽어 보면 천주교와 같지 않느냐는 이야기가 나올 듯합니다. 1천 년 전의 천주교가 그랬고 5백여 년 기독교의 교회사가 또 그러했기 때문에 1960년대부터 공회만은 그러지 말자고, 그러지 않을 수 있도록 공회의 방향과 내용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런데도 2024년의 오늘,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지난 수십 년 동안 총공회 내 부산공회들의 목사님들도 이런 정도라면 그 분들의 교회에 교인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공회의 결과주의에 대하여)
* 참으로 오해 소지는 많지만
타락한 세상의 모든 움직임은 약육강식이 근본 방향입니다. 덩치가 큰 것은 작은 것을 먹어 버립니다. 그래서 일단 빨리 가고, 덩치를 키우며, 기술이나 지식이나 그 어떤 면으로든지 남보다 앞서려고 합니다. 생존의 본능이요 죄악 세상의 현상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교회만은 이웃을 배려하고 약자를 일으키기 위해 손을 내어 밀어야 한다는 생각들이 최근에는 대세인 듯합니다. 사실 이 설명에는 함정이 있고 또 착각이 있습니다. 교회는 죄를 지어 어두운 사람에게 진리의 길을 안내하여 빛을 찾게 하고, 빛을 찾아 가려 할 때 본인 스스로 할 수 없는 그 빈틈 정도만 돕습니다. 그런데 자기를 위해서는 열심히 살지만 남을 인도하는 일에는 대충대충 살기 때문에 공회는 스스로 해야 할 일에 나태하지 않도록 우리의 연약한 면을 깨우치려고 비교를 시키고 재촉을 할 수 있도록 통계를 발표하며 챙기고 있습니다.
* 심각한, 총공회의 결과주의
잘 보셨습니다. 공회는 전국의 교회마다 모든 출석수를 매월 집계해서 1등에서 마지막까지 전부 공개를 합니다. 목회자의 산 기도 횟수와 심방 전도의 횟수까지 일일이 보고를 해서 밝힙니다. 심지어 2년마다 시무투표를 통해 목회자에 대한 교인의 찬성과 반대 숫자를 그 교회에서도 밝히고 전국 통계를 비교합니다. 인간이 연약하기 때문에 대충 그냥 두면 학생은 공부를 하지 않게 되고, 아빠들은 대충 놀고 먹게 됩니다. 공무원들의 문제점은 더 잘 아실 것이고, 심지어 중은 산 속에서 놀고, 목사는 시내 중심가를 다니며 인생을 즐깁니다.
주님이 오셔서 마7:20,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는 말씀을 주셨고, 일정 기간을 기회로 주시지만 반드시 '회계' 결산을 일일이 하게 된다는 것은 므나비유 달란트비유와 함께 전체 성경과 계시록까지 명확하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주님 날 위해 죽으심을 생각해서 나 스스로 죽도록 충성한다면 우리는 주남선처럼 손양원처럼 그리고 우리의 눈 앞에 계셨던 백영희 목사님처럼 거의 완벽하게 살다가 가겠습니다. 그런데 공회의 그 위대했던 60년대 목회자들조차 시무투표로 교인 전체의 뜻을 확인하지 않으면 게을러 지고, 교회 돈을 빼먹고, 교인들에게 전횡을 하게 되는 별별 일이 생길 수 있어서 1970년에 시무투표로 챙겼습니다. 이는 목회자들을 혹사 시키려는 주인의 강제 노동이나 착취의 방법이 아니라 원하고 원하여 주님 따라 가겠다고 나선 종들조차 방심하다 보면 방종으로 나가게 되고 결과적으로 교회를 주저 앉혀 버리게 된다는 것을 파악하여 이를 막는 예방 주사며 치료제이며 보약 처방입니다.
목회자들부터 먼저 이렇게 관리를 하다 보니 1989년 8월에 백 목사님이 돌아 가시자 3분의 2에 해당하던 당시 대구공회측은 1990년의 시무투표 제도를 바로 없애 버렸습니다. 목사들을 왜 경쟁 시키는가? 왜 평가를 시켜 혹사를 시키는가? 그런 뜻이었습니다. 목회자를 교인들이 감시하지 않으면 목회자는 놀고 먹고, 교인들이 피해를 입는데도 대구공회 교인들은 멍하고 쳐다만 봤습니다. 지금 아마 속 마음은 시무투표를 원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 원리 이 심리 이 생각을 가지고 교인이 교인을 돌아 본다면 주일학교 반사로부터 중간반 책임자와 교회의 구역장과 모든 종류의 담당자가 평소 얼마나 자기를 독촉했음을 결과를 가지고 비교하고 돌아 보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성경적으로 교회사적으로, 또 우리는 공회는 총공회적으로 볼 때 결과는 너무 뻔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런 문제는 교인을 다그치기 전에 목회자가 먼저 자신들을 스스로 다그치고 관리를 해야 하는데 목회자는 평가를 받지 않고 왕궁의 왕족처럼 귀족처럼 공무원처럼 신분과 평생을 보장 받고 교인만 다그친다면 팥쥐 엄마일 것이나, 목회자가 먼저 고난의 길을 걸어 가면서 교인들에게 주를 위해 우리는 각자 자기 속에 나태와 옛사람과 싸우기 위해 스스로 평가를 하고, 그 평가를 비교하여 열매를 나란히 진열하면서 지난 여름 농사를 지은 것이 어떠했는지 돌아 보자고 한다면, 좋은 의미요 좋은 제도가 아닐까요? 백 목사님은 스스로 매 2년 시무투표를 받았고 그 때마다 수백 표의 반대가 나왔습니다. 교인이 수백 명인 교회는 기습적으로 대처하면 방법이 있지만 서부교회처럼 초대형교회의 수만 교인이 출석하는 곳에는 비상적인 수습이나 대처를 할 수 없습니다. 서부교회가 무너지면 총공회 전부가 무너집니다. 따라서 시무투표의 위험은 백 목사님이 가장 취약한데도 제일 앞에 나섰고, 그리고 후배 목회자들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매2년 시무투표를 받는 목회자가 구역장이나 각 책임자에게 정기적으로 열매를 보고 지난 날을 살피자고 한다면 마땅하지 않을까요?
지금 서부교회는 시무투표를 1992년 이후로 30년 동안 없애 버렸습니다. 그 결과 지금 서부교회는 세계 10대 교회요 국내 5대 교회의 규모가 이제는 도심에 흔한 골목 교회로 주저 앉았습니다. 목회자와 교인들은 다 좋아 하고.. 그리고 그 결과는? 목회자가 시무투표를 내버렸는데 일반 담당자들에게 결과를 가지고 신임과 실력과 대우를 달리 하겠다고 할 수 있을지요? 그 속을 들여다 보지 않아도 망하려고 작정한 단체입니다. 지금도 부산공회들 중에서는 아마 전국에서 가장 공회적이면서도 어려운 여건을 다 제치고 부흥 발전 되는 모습을 가진 곳은 충북 제천의 구도심에 남천교회일 듯합니다. 부흥이 될 수 없다는 조건은 족히 10개가 넘습니다. 부흥이 될 여건은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목회자의 연륜도 공회성도 만사가 가장 불리한데도 어떻게 가장 공회적으로, 가장 보란 듯이, 가장 확실하게 잘 운영이 되고 부흥이 되고 있는지.. 그 교회의 주보를 보면 모두 환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되는 교회는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됩니다. 안 되는 교회와 안 되는 신앙은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됩니다.
이런 면을 세월 속에 잘 지켜 본 곳이 공회들 중에서 현재의 대구공회입니다. 대구공회는 목사님 생전에 '행정 보고'를 없애자고 했던 이들이 중심이었습니다. 행정보고란 주일학교 중간반 장년반에 목사의 기도 횟수까지 일일이 보고해서 비교하고 따지고 책임을 지우는 짐을 벗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 가시고 모든 짐을 다 벗어 버렸는데.. 어느 정도의 세월이 지난 다음에 그들 스스로 지금은 가장 철저하게 모든 보고를 다 하고 있습니다. 달라 진 것이 있다면 목회자 시무투표만은 여전히 없습니다. 그 것은 대구공회의 교인들이 동의하면 되는 것이니 부산공회 사람들이 간여할 바는 아니지만 늘 속으로는 바늘 방석일 듯합니다. 그 외에 다른 면으로는 열심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목사님 생전에 철저히 해 봤고, 사후에 아주 없애 보았고, 이제는 적절하게 그들의 기준과 형편에 따라 시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닌데 단정하는 것은)
만사에 최종을 단정하면 하나님 자리에 대신 앉는 중죄가 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산 인생을 반드시 계산하실 터인데 그 계산하는 자리에서는 무르기가 없고 재수가 없으며 심은 대로 그대로 영원히 고착이 됩니다. 그 때 가서 땅을 치고 호소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이 땅 위에서 각 교회는 '모의고사'를 치고 있는 것입니다. 대학의 입시 담당자도 아닌데 왜 고3에게 대입 시험과 같은 것을 치게 하고 몇 점이다 어느 대학 합격이다 불합격이다 이렇게 발표를 하고 단정을 하는가? 최종 확정, 단정이 아닌 줄은 고3의 교사도 알고 학생도 압니다. 모의고사입니다. 전쟁을 염두에 둔 실전 훈련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16세기 말, 여수 앞 바다에서 실전보다 더 혹독하게 훈련한 수군 때문에 조선이 수백 년 지켜 집니다. 세상 원리가 다 그렇지 않습니까?
모의고사에 1등 하고도 대입에 떨어 지는 수도 있고, 모의고사에 꼴찌하고도 서울대 법학과 입학한 학생도 있습니다. 천에 하나 만에 하나의 그런 예외적 사례 때문에 전부가 모의고사를 없애자고 하겠습니까? 우리가 부족하기 때문에 속은 더러운데 겉이라도 씻고 닦고 입고 출근하여 남들에게는 불쾌하지 않도록 배려를 합니다. 간밤에 술 먹고 토한 몸과 얼굴과 옷과 머리카락을 가지고 그대로 출근하면 그 것이 솔직하며 자유로우며 양심적인가, 그렇다면 히피나 노숙자가 될 듯합니다. 간밤에 엉망이 되었지만 오늘은 또 내게 기대하는 사람이 있고 또 내가 오늘은 다시 출근을 해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에 어젯 일이 더럽고 아니꼽지만 오늘 또 출근을 합니다. 등교를 합니다. 그리고 부부가 가정을 지킵니다. 그러다가 세월이 좀 지나고 나면 내 마음대로 하고 싶던 순간을 참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때쯤이면 이제 철이 들었는데 바로 그 때쯤 자식ㄴ들이 대듭니다. 왜 이래라 저래라 시키냐고. 내 인생 내 마음대로 살겠다고..
경쟁이 심해져 그 결과가 오히려 정말 좋지 않게 된다면 그 교회는 그냥 둬도 망할 것입니다.
각 교인과 구역의 책임자를 잘 이끌어서 옳은 길에 세우는 경쟁이 되었다면 그 교회는 발전할 것입니다.
경쟁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닙니다. 과도하게 사용했다면 좀 절제하면 됩니다. 너무 방심하고 방종하게 되었다면 반발이 있어도 다잡고 나가야 할 듯합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자연을 통해 가르치는 계시입니다. 세상도 조선처럼 파벌 싸움이 나라를 망치면 잘못된 것이고 미국과 선진국들처럼 발전을 위해 치열하게 방법론을 두고 서로 경쟁을 잘 했다면 제국이 되는 것입니다.
(총공회의 정체성)
이제 설명한 모든 내용에서 마지막으로 총공회의 정체성은 도출할 수 있습니다.
더 잘 해보자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정말 고쳐 보고 노력하고 평가하고 비교하며 나가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앞에 있는 사람이 먼저 자신을 그렇게 하고, 그리고 뒤에 따르는 분들에게도 부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 잘 되자는 것입니다.
이런 말은 어느 교단 어느 교회 어느 지도자라도 쉽게 뱉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해 보는 교회는 아직까지 보지 못했습니다.
시무투표를 하는 교회는 없습니다. 혹 예외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는데 내막을 들여다 보면 쇼를 하는 것이지 진심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자세를 일제 때도, 해방 후에도, 교계의 반대에도, 그리고 교계의 환호 속에서도 변치 않고 정말 줄기차게 끝까지 걸어 가다 보니
일반 장로교회의 어느 시골 한 구석에서 시작을 했는데 '교회 운영'의 모습이 확연히 달라 졌고, '설교 내용'이 달라 질 수 밖에 없었고, 심지어 '교리의 발전'이 거듭 되었습니다. 이런 기본 정신과 자세가 철저하지 않으면 어느 정도 알기는 알지만 실제 그렇게 설교를 하려 들다가 상부에서 눈치를 주면 알아서 굽신거립니다. 찍히면 직장 문제가 생기니까.. 이 것이 장로교회의 당회와 노회의 시스템입니다. 공회는 백영희 한 사람이 1936년 덕유산 깊은 골짝에서 믿으려면 제대로 믿어 보자고 나섰습니다. 전국에 그런 사람이 하나겠습니까?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런데 믿어 갈수록, 알아 갈수록, 세월이 지나 갈수록, 그리고 교회의 지도부의 공기를 느껴 갈수록 대충대충 전체 분위기에 쓸려 갑니다. 백영희의 장점 중에 장점 하나는, 믿으려면 제대로 믿어 보자고 출발을 했는데 그 어느 누구에게도 막히지 않고 정말 끝까지 걸어 가다 보니 그의 설교도 성경 해석도 교리도 그의 교회 운영법도 '총공회'라는 결실로 열매를 맺혔습니다. 목사님은 믿던 첫 주간 한 주간만에 이단으로 이탈했던 분입니다. 그런데 자세가 바르다 보니 2주만에 다시 돌아 왔습니다. 자세가 바르다 보니 주의 인도가 있었고, 주의 인도가 보이면 안면 체면 형편 사정 가리지 않고 그대로 걸어 갔습니다. 그래서 그의 설교도 성경의 해석에도 자체 모순이 있고 실수가 있지만 자세가 바르니 세월이 지날수록 자꾸 고쳐지고, 고쳐지니 자라 가고, 자라 가니 더 밝아 지고, 더 밝아 지니 가속도로 만사가 쑤우욱 자라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를 가르쳤던 분들이 속속 그 밑에 배우는 사람이 되었고, 끝까지 맞섰던 그의 스승은 말년에 무릎을 마주 대하고 네가 옳다 맞다 내가 틀렸다고 고백하고 떠났습니다. 그가 이 나라 보수 교계와 개혁신학의 최고봉이라고 칭송하는 지도자입니다. 일일이 손을 꼽자면 많습니다. 그리고 공회의 모든 제도는 한번도 그 자리에 고착 시켜 주저 앉혀 본 적이 없습니다. 늘 새로운 현실에 어떻게 해야 더 좋을까 이렇게 연구했고 실험했고 그러다가 확실한 답이 나오면 실행했고, 그런데 지나고 보니 문제가 있으면 또 고쳤습니다. 이런 것을 '개혁'이라고 합니다. 이런 개혁을 두고 입에 올리는 사람과 역사는 무수하지만 정말 죽을 때까지 계속 그렇게 나갔던 인물은, 이 곳이 아무리 살펴도 이 분의 총공회 노선뿐이고 혹 비슷한 곳이 있다 해도 실제 비교해 보면 그래도 이 곳이 더 낫고 또 무엇보다 이 곳은 우리에게 주어 진 곳이니 당연히 이 곳을 먼저 연구하고 소개하고 고수하는 것이 옳기 때문에 이 곳에 연구소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총공회 교회에 계신 분들의 고민은
이 번 '발언'에 적은 심정이 아마 거의 대부분일 것입니다. 공석이기 때문에 엄청 절제를 해서 이 정도지 이 안내를 적는 사람 같았으면 육두문자 욕으로 도배를 했을 듯합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모두 감안한다 해도 이 곳의 이 안내는 신중히 한번 돌아 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글에는 성구와 교회사의 실제 사건과 공회의 지난 날과 함께 우리가 다 함께 아는 우리 주변의 세상 사례까지 짚어 가려면 변증거리는 넘칩니다. 평소 이 곳의 다른 답변과 이 곳의 남단 게시판에서 기본적으로 하나씩 설명한 기억이 많습니다.
글이 길었습니다.
발언하신 분의 심정을 살피다 보니 답변의 핵심은 짧게 적을 수 있으나 좀 돌아 보시자는 뜻으로 길게 적었습니다.
그렇다 해도 미진한 부분이 있으면 재질문이나 보충의 글을 주시면, 정성을 기울여 보겠습니다.
우리는 '총공회'를 고수해 보자는 '부산공회'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사실 횡재한 것입니다. 다만 우리의 객관적 입장을 알면 그렇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귀하다면, 이 곳처럼 이 귀한 것을 잘 고수하기 위해 온갖 오해와 박해를 받아 가면서도 이 곳에서 이런 활동을 합니다. 발언자께서는 일반 교인이라 치고, 소속 교회에서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끝까지 노력하다 보면 본인도 또 교회 전체도 발언자 한 분이 소금이 되고 빛이 되어 소리 없이 좋아 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답변에 대해서 저도 답변을 하고 그 답변에 질문도 같이 하겠습니다.
알고 있는 내용에 관해서 답변은 하지 않았습니다.
(내부 모습들)
넓은 눈으로 살폈으면 좋겠다. 발언에 공감은 하지만, 역사적으로 잘 믿어 보려고 하는 교회들은
이런 사실이 흔하다. 공회만 그런것이 아니라 공회처럼 믿어보려고 하면 그런 부작용이 따라온다.
그리고 정밀하게 넓게 이해하기 위해서 법학과 사학을 전공 해봐야 한다.
글을 올린 분은 그런 지식이 없기에 이해하지 못한느 부분이 있다.
답변 : 그런 사실들을 부정하는것이 아니라, 잘 믿어 보려고 하는 교회들이 부작용이 생긴다면
부작용이 적게 생기도록 최선을 노력을 해야하는데, 지금의 교회들은 그런 노력보다
방치를 하기에 이런 글들을 올리게 되었으며, 법학과 사학을 전공하고 그런 교회사나 법에대한
지식이 없으면 이런 판단은 하지도 못하며, 이런 발언은 삼가해야 합니까?
(신앙의 자유성) - 개인의 신앙자유, 교회의 신앙자유 다 합쳐서 질문합니다.
소중한 표현이지만, 요즘은 방종처럼 사용한다. 정치적으로 표현하면 " 독립신앙" 이 된다.
내 멋대로 산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말든, 그런 의미가 아니라 나 스스로 주님만을 좋아서 따르는 의미이다.
답변: 원초적인 뿌리와 개념은 잘못된 것이 아닌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유성이라는
명분으로 오히려 지금 시대에 신앙인들은 무기처럼 사용하여 나태하고 교만하며 잘못이 있어도
신앙양심을 기울이지 않는, 잘못된 방법으로 자유성이라는 무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공회의 정체성)
천주교가 초대교회를 거치고 개신교가 되고 개신교에서 장로교가 생기면서 잘 믿어보려다가
잘못된 경로로 가는 일들이 발생하면서 방향을 잡고 구체화 한것이 총공회인데,
진정한 공회 교인이면 남에게 제재를 받을 필요가 없다. 제재를 받는다면 정체성에 문제가 있다.
답변 : 공회가 처음부터 잘못된 길을 걷지 않은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악하여지고, 말세지말이 되면서 시스템과 교리와 행정은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잘 만들어졌지만, 그 안에서도 편법으로 잘못된 길로 가지 않는것처럼 보이면서
잘못된 길로 가고있는 앞에서 말한 신앙의 자유성, 독립신앙 이라는 명분과 무기로 정체성에서
벗어난 교회들이 있기에 질문을 하였습니다. 세상에서도 법을 전공하거나 법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편법, 탈법, 불법을 행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다른 사람의 신앙 평가, 교회 내의 파벌)
교인 사이에 관계에서 구역도 다르고 전도한 식구가 아니라면 그렇게 말했을때 오만이며 건방이며
간섭이며 비판과 정죄를 한것이다. 그렇지만, 구역식구이고 전도한 사람이거나 가까운 관계라면
그것은 충고요 선도요 심방이다. 교회내의 파벌은 부부도 가족도 어떤 교회도 내부투쟁이 있기에
그것은 교회내의 다양성이고 신앙은 파벌은 아니다.
답변 :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이든 업는 사람이든 평가라는 행위가 그사람에게 무조건 좋은 영향을
준다는 보장이 있는것도 아니며, 꼭 나와 관계가 있으면 정당하고 관계가 없는 사람은 정당하지 않은
행위가 된다는 것은, 평가라는 행위의 조심성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는 모습이
되니 조심해서 평가해야 된다고 말은 하면서 결국 속으로는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해위가 생길수 밖에
없는 그런 분위기와 시스템이 외부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평가하는 모습이 오늘날에 너무 허다하게
생기기에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늘의 상황, 총공회의 텃세, 공회의 결과주의 위와 중복된는 내용이 많기에
마무리 질문합니다.
결론은 발언자인 글쓴이는 법학과 사학을 공부하지 않은 짧고 좁은 지식을 가졌기에, 넓고 깊은
지식을 습득하여 이해하여야 되는 부분이며, 다른 사람의 신앙을 평가하는것은 하나님의 각각
개인에게 주신 신앙의 세계를 침범한 것이며 글쓴이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
그런 개입은 아주 큰 죄가 되며, 하나님을 대신하는 망령이 된다. 그리고 그들은 다른 뜻으로 그랬는데
글쓴이가 오해한 것도 더러 섞여있다. 그들을 위해서 어떻게 하면 나아질수 있을까? 고민하고
안됐다 싶은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이 맞다.
경쟁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다. 과도하게 사용 했다면 절제하면 된다. 너무 방심하고 방종하게 되었다면
반발이 있어도 다잡고 나아가야 할것이다. 결국 총공회는 잘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정말 고쳐보고 노력하고 평가하고 비교하며 나가자는 것이다.
답변 : 제 자신이 이런 발언을 하는것이 하나님을 월권한 중죄요 내가 관여할수 있는 문제가 아닌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더러 오해한것도 있고 생각을 넓고 깊게 안한 부분도 있으니 다른 사람을 안타깝게
여기고 총공회의 본질과 정체성은 잘해보고자 노력하고 있으니, 다른 사람을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평가라는 단어를 상황에 따라서는 맞다. 때로는 틀리다. 이분법적인 마인드로
생각하며 합리화 하는데, 본인에게는 어떤 상황이든 평가하면 안되는 것이며, 다른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서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는 이런 말들이 교묘하게 편법이나 탈법을 하는 법에 지식이 있는
사람과 다를바가 무엇입니까? 좋은 교훈과 행정과 시스템을 갖추면 그에따른 신앙양심도 깊어지도록
모두가 반성해야 성경적을 옳은 행위가 아닙니까? 어떻게 신앙생활을 오래하고 성경을 오랫동안
연구하고 다른 사람을 기르는 직분으로 올라가도 신앙양심이 깊어지지 않고 합리화 하는 말들만
늘어가고 명분으로 상황에 따라서는 이럴수도 있고 저럴수도 있고 이해해야 한다는 변명만 수도없이
늘어가는데, 윗물이 맑아야 중간에 있는 물도 맑고 아래에 있는 물도 맑을텐데, 그러지 못하는
지금을 모습을 보고 이런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결국은 사람이 있는 곳이니, 사람의 잘못된 본성이 좋은것들을 다 망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사람의 말을 전면 반박할때는 무조건 하나님, 성경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이 하실일을 나서서 니가하면 월권이다. 큰 죄가 된다.
성경에 어긋난 것이니 잘못된 것이다. 명분과 변명은 잘합니다.
그 사람의 말을 공감할때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다. 신앙생활 잘해서 복받은 것이다.
잘못된 것을 찾고 고치려고 노력하며 연구하고 평가하고 비교하여 나아지려고 한다.
늘 총공회가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노력하고 연구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왜 늘 똑같이 쳇바퀴 돌듯이 크게 달라진 부분이 없을까요?
잘못된 것을 찾고 고치기 위해 평가하고 비교한다 하셨는데, 이미 수많은 논란들 사건들
조그마한 교회 내부에서도 니가 옳다 내가 옳다 싫으면 나가라, 교회에서 분열과 탈퇴와
심지어는 부산공회 자체도 부산공회 1,2,3 예전에는 크게보면 1,2,3,4 이렇게도 나뉘었고
중요한것은 이제 총공회도 많은 병이 들어 아프다는 것입니다.
나 원래 건강했고, 건강을 위해서 음식이며 운동이며 건강을 위해서는 많이 노력하고 있어!
그런데 실제로는 몸에 암세포가 있습니다. 아니야, 내가 이렇게 아플리가 없어, 괜찮을거야
발언을 죄라고 단정하고 공감하지만, 그렇게 말하는것 자체가 잘모르고 이해가 부족해서
그럴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기에 그런말은 안됩니다. 라고 말하기 전에
그 발언하는 사람도 죄를 지어서 나중에 벌을받을지 죄가 아니라고 판단하는지는 하나님이 하실 일입니다.
그럼 우리가 돌아보아야 하는것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을 평가하면 안된다는 중요한 말을 하셨습니다. 그 발언한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다면 평가한 사람의 행위는 하나님이 처분을 하실 일이니 가만 있으면 되는 일이요
존재한다면, 심각하게 잘못된 것을 하고 있다 생각하고 고쳐야 하는 것입니다.
명분과 변명으로 무장한 외식과 이중성을 가진 신앙양심을 이대로 나는 아무 문제없어 라고
태연하게 주님이 오실 그날을 기다릴 것입니까?
정말로 옳은 시스템과 교리와 행정이라면, 그렇게 원초적인 뿌리와 가치관을 훼손하지 않고
계승해야 옳은 시스템과 교리와 행정이며, 다른사람에게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는 그것은
하나님만 하실수 있고 간섭하면 월권이고 중죄이다 라고 말할수 있지 않을까요?
목사님은 생전의 이른 시기부터 '제도'라는 것은 도움이 된다 문제는 사람이다 라고 오랜 세월 가르쳤습니다. 천주교는 1천 년 부패했으나 루터 칼빈은 천주교 안에서 새로 출발했습니다. 목사님은 우리가 싫어 하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일반 교회에서 출발했습니다. 천주교의 초기도, 일반 교회의 초기도 모두 이상적이었습니다. 세월 속에 사람이 썩어 갔습니다. 공회도 역시 마찬 가지입니다. 길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공회인은 유독 무식하고 미련합니다. 다만 정신만 차린다면 이왕이면 길이 좋기 때문에 좋은 앞 날을 기대합니다.
(성경 이야기)
모든 말씀이란 자기를 먼저 조사하고 자기부터 실행할 때 복음이라고 합니다. 그 말씀으로 남을 먼저 비판하고 그 사람에게 말씀으로 살라고 말하면 정죄의 율법이 됩니다. 원래 말씀을 좀 우습게 아는 교파는 말씀으로 남을 칠 일도 별로 없습니다. 물론 자기를 고칠 일도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공회의 말씀은 역사에 찾기 어려울 정도로 높고 깊고 대단합니다. 성능이 너무 좋은 칼입니다. 이 칼로 남을 잡기 시작하면 막아 낼 재주가 없습니다. 지적하신 말씀을 모두 공감합니다. 눈에 선합니다. 자기를 막을 때는 방패로 사용하고 남에게만 칼입니다.
(늘 꼭 같은 짓)
바꾸기 귀찮거나 바꾸면 자기가 손해를 볼 상황이 되면 갑자기 '지켜야 한다'며 보수를 주장합니다. 그러다가 자기에게 필요해서 바꿀 일이 있으면 말을 바꿉니다. 모든 공회들이 다 그러했습니다. 물론, 당연히, 이 곳을 운영하는 곳은 그렇게 될까 싶어 그러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이 곳의 내부 반대 교인들은 역시 꼭 같다고 비판을 합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말씀을 해 보라 하시면 아직까지 해 보는 분은 없습니다. 그래도 이 곳은 옳고 좋은 것을 고치려고 실제 부단히 노력했고 또 스스로를 먼저 비판하기 위해 경주한 내면과 역사는 적지 않습니다. 다만 부족할 뿐이라고 설명하고 싶습니다.
(총공회? 중환자가 맞습니다.)
각 공회의 통계를 봐도 그렇고, 우연히 공회 교회를 들렀던 분들이 세월 속에 다양하게 이 곳에 그 유명한 어느 교회, 어느 목회자, 어느 지역의 안부를 전해 옵니다. 가장 참담한 곳이 서부교회이고, 대부분이 거의 다 마찬 가지입니다. 아주 간혹 그렇지 않은 곳도 있지만 아직은 더 지켜 봐야 합니다.
발언을 죄라고 단정하고 공감하지만, 그렇게 말하는것 자체가 잘모르고 이해가 부족해서
그럴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기에 그런말은 안됩니다. 라고 말하기 전에
그 발언하는 사람도 죄를 지어서 나중에 벌을받을지 죄가 아니라고 판단하는지는 하나님이 하실 일입니다.
(다만, 발언하신 분과 설명하는 제가)
함께 자신을 먼저 돌아 보면 좋겠습니다. 남의 문제를 볼 때, 남의 문제를 봐야 하는 이유는, 내 속에 그런 사례가 있는지를 살필 때 가장 빠르고 좋은 방편이기 때문입니다. 이 곳의 소식 게시판을 면밀히 살펴 보시면, 이 곳은 비록 적지만 또 부족하지만 늘 꾸준히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를 노력해 왔습니다. 가장 보수적으로 보이겠지만 실은 뭐든지 고쳐 보려고 물불을 가리지 않다가 목사님 사후에 제명 당한 것이 5번입니다. 고발 고소 당한 것이 최근에도 수백 건씩 두 번이고 30년 전에도 십여 건으로 이미 그런 길을 걸었습니다.
무엇이든 다 바꾼다든지
내 취향이나 나의 소신을 기준으로 바꾼다는 것만 아니라면
생명의 신앙이란 아이가 소년이 되고 청년이 되는 과정에 옷도 음식도 공부나 행동도 달라 져야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요즘 뒷골목에 또래들과 같아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 것은 좀 따져 보자며 말리지만 유아복과 청소년의 옷은 다르지 않고는 곤란해 집니다. 그 어떤 것도 무조건 바꾸자가 아니라 하나씩 사안을 구체적으로 말씀해 보시면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을 드릴 수 있을 듯합니다. 지난 36년, 이 곳은 늘 더 나은 길을 찾아 왔습니다. 그래서 아마 지적하는 거의 모든 사안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게 노력을 하고도 역량이 부족할 때는 주의 은혜를 구하며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모든 공회가 같다고 일획화 해버린다면 더 이상 할 말은 없습니다.
이 곳은 교계적으로도 거의 유일하고 공회적으로는 단언코 비실명으로 그 어떤 글을 올릴 수 있습니다. 이런 언론의 개방부터가 오늘의 기술 때문에 가능한 것이고, 공회가 원래 그런 자세로 운영을 해 온 곳이기 때문에 저희는 겉 모습이 달라 졌고 개혁 개방적으로 보이나 실은 공회의 원래 모습을 지켜 내고 있습니다. 저희보다 더 보수적인 곳에서는 변질 되었다 할 수 있고, 저희보다 더 변화를 원하는 곳에서는 여전히 보수적이라 답답하다고 말을 할 수는 있을 듯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안이든 하나를 두고 설명을 시작한다면, 그래도 이 곳은 노력은 하고 있다고 평가를 받지 않을까?
각자 자기부터, 자기 교회 안에서, 그리고 자기 공회 안에서 그렇게 노력하다 보면 전체가 움직이는 계기가 되는데 모두가 뒤로만 또는 속으로만 생각하고 표시를 내지 않기 때문에 아까운 기회가 참 많았습니다. 그렇다고 이 곳에서 민중 운동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제는 이 곳의 주력이 60대가 되어 나이 때문에 무시 당할 상황은 아니지만 목사님 장례 직후의 총공회 급변기에 이 곳의 주력은 30세 안팎이었고 항상 가장 앞에 서서
'공회의 좋은 제도를 지키되'
'주시는 환경이 달라 졌으니 어떻게 방향을 잡아야 과거보다 더 나아 질까'
'적어도 속화와 침체를 최소화 할 수 있을까'
이 곳은 총공회 이름 내부에서는 말로 행동으로 현장마다 심지어 전국의 교회릘 다니며 행동에 나섰습니다. 그 때마다 어린 ㄴ들이, 철 없는 것들이.. 그렇게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 때마다 어리고 말고를 떠나 우리의 어떤 주장, 어떤 행동, 어떤 대안이 왜 문제가 되는지를 물었습니다. 말이 막히니 오로지 어린 ㄴ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총공회가 가져야 할 생각과 방향성은 무엇일까? 그곳에 소속된 나 자신에게도 수없이 질문합니다.
개인신앙이 먼저고 남에게 의지보다 독립으로 무언의 용사로 주님만 모시고 어디든지 라는 표어와 같이
자신을 먼저 돌아보고 타인과 그곳에 있는 집단에게 안타까움과 기도로 하나님이 좋은 방향으로
인도 하시도록 기다리고 기도로 준비하는것이 성경적입니다.
안타까움과 기도로 기다리지만, 사람의 본성이 죄가 있는 부족한 부분이 있기에 조그만 돌아보고
회개를 한다면 바뀔수 있는 부분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마귀가 돌아보지 못하게 하고 회개를
하지 못하도록 너무 많은 세상의 사람들과 문화가 또 자기자신의 끝이없는 욕심에
조금만 돌아보고 회개를 하는 기회조차 생기지를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글들을 적고 이 사이트를 좋아하는 이유는 돌아볼수 있고 회개할수 있도록 우리에게
구별할수 있는 기회를 주신것 같아 감사드리며,
누구 하나의 특정인이 특정집단이 돌아보고 회개해야 된다. 이것이 아니라, 모두가 전체가
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제도는 좋은것이다. 그것을 따르는 사람의 문제이다.
위에서 백영희 목사님께서도 말씀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을 1년을 하든 5년을 하든 10년을 하든 20-30년을 하든 50년 100년을 하든
오래 했다고 이만하면 잘하고 있는 것인데, 왜 이렇다 저렇다 말을하나, 말씀하지 마시고
이제는 모두가 자신을 돌아보고 총공회를 계승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계승하려고
노력한 소수의 분들의 노력이 다 물거품이 되고, 총공회 조차 일반교회와 다르지 않는
길을 걷게 될것이 너무나 예측이 되기에 한번이라도 더 돌아볼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목사님 생전에 제일 옆에서 지켜 봤습니다. 그 때 함께 5층을 오가던 분들, 목사님의 측근 중에 최측근들이며 서부교회의 부서 하나를 맡아 전권을 행사하며 목사님의 지시만 받는다는 중직 중에 중직이었는데 목사님 가신 후 차례로 생전과 다른 길로 가셨고 지금은 비교를 해 볼 여지조차 없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런 분들이 함께 해 주셨다면 이 곳이 지금보다 규모부터 여러 배는 되었을 것이고 그 정도만 되어도 공회 내에서 뚜렷히 앞 선다는 표시가 났을 터입니다. 그랬다면 그 빛이 더 멀리 가고 파급 효과도 기대했을 터이나 마음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말하는 대로 참 너무 적고 작다 보니 참고할 가치조차 없는 것입니다. 싱가폴은 아무리 국민소득이 높고 별별 분야에서 세계 최고를 기록하는 것이 많다 해도 도시 국가니 통계에서 아예 잡지를 않습니다. 현재 우리 나라는 만일 통일만 된다면 그리고 내전에 이르는 내부 분쟁만 좀 적당하게 된다면 정말 세계적인 표상이 될 상황입니다. 싱가폴은 치안 경제 사회 교육 편의 복지가 탁월하지만 빛이 될 수 없습니다. 이 것이 이 곳의 한계고, 이런 점 때문에 지나 온 날 함께 하다가 차례로 이탈한 분들이 야속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또는 우리의 원래 수준이 조약돌인데 무슨 반석인 줄 알고 잠꼬대인가.. 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 해도, 이 곳에 공개 할 수 없는 비화로 예를 들면 이 곳은 이미 도시국가 정도가 아니라 통일 한국이 오늘의 남한 수준에 이르는 사례가 있어 저희가 평생 연락 한 번 해 볼 수도 없었던 교계적 중요한 분들에게 극찬을 받거나 또는 이 곳의 원래 평가를 이 노선 후계로 들었다는 이야기도 듣고 있습니다. 이 곳이 낙담할까 싶어 위로해 주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단, 이 곳은 생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모두가 절대 될 수가 없다는 어떤 여건에서도 그냥 이 노선의 원칙과 함께 이 노선을 지키면서도 얼마든지 내게 주신 각종 은혜를 에덴의 각종 열매가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 좋았던 상황으로 생각하여 꾸준히 10년 또는 20년을 버텨 본 결과, 교회로서 정말 중요한 지표들이 너무 좋은 모습을 보여 저희 속으로는 행복에 겨워 꿀 먹은 벙어리 혼자 좋아서 취해서 곯아 떨어질 정도입니다. 이 곳에 구체적인 실명으로 구체적 사안으로 구체적 지표를 숫자로 표시해 드리면 이 노선 자체에 대한 의심만은 없어 지지 않을까..
개인 신상 때문에 또 사회적 파장이 잇따를 수 있기 때문에 이 정도의 마음만 전합니다.
코로나 때 부공2의 서울 구일과 동문과 부산의 서부교회 정도가 TV로 전해 지면서 신앙의 모습을 뚜렷히 보였다고들 하지만 이 곳은 그런 사례와 비교조차 할 수가 없었습니다. 집회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모두에게 함께 버텨 보고 함께 당시를 건너 가자고 했더니 이 곳의 안내를 읽은 분이 거창 군청에 직접 신고를 해서 군 담당자들이 와서 민원 때문에 할 수 없이 둘러 본다 하여 한두 번 예배당의 벽 밖에서 유무선으로 예배를 진행한 적은 있었습니다만 어떤 교회는 2년 내내 단 한 번의 방문이나 방해조차 없이, 그리고도 펼쳐 놓고 모든 예배를 잘 드렸었습니다. 일제 시기의 공회가 해방 후가 되고야 그런 일을 언급할 수가 있었고, 그마저 작은 승리로 교회사에서 당시의 전부인 것처럼 적어 대고 모두가 그 쪽을 쳐다 볼 때 이 쪽은 훨씬 큰 승리를 했다고 우리가 말하지 않다 보니 역사에 그냥 묻혀 버렸습니다. 이 노선이 그렇습니다. 이 노선에 수 없이 묻어 두신 보물 상자를 아무쪼록 하나씩 접해 보고 열어 보고, 전문가에게 비교 평가를 받아 보고, 그리고 이 곳과 함께 마음을 같이 하여 각자 주신 곳에서 죽는 날까지 또 죽은 뒤에는 나를 이어 갈 신앙을 만들어서 이어 가는 분이 되면 좋겠습니다.
후반부의 ‘결과’가 초래하게 된 주(된) 원인됨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또한 (위 내용상으로 볼 적에) 전반부의 내용으로 인한 결과가 후반부(내용)처럼 부정적 결과가 초래된 것으로 느껴지는바 (이게 맞는 경우이면) 그 상호관계성을 중심으로 이해해보고 싶습니다.
-(위 교회에선) 지금껏 시무투표가 없고 그 해결이 없는 이유가(원인이) 양방(측)의 견해가 (또는 주장이) 크게 상충 되(었)기 때문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애초, 양측 간의 결정적 상충 점이 무엇인지,
지금도 여전 그 상충됨에 변함 없음인지,
긴 세월 동안, 어느 한쪽에서 (이 해결에) 진보위한 어떠한 양보된 의견을 제시한 적이 있(었)는지를 분별해보고 싶습니다.
-‘..부흥이 될 수 없다는 조건은 족히 10개가 넘습니다..’의 부문에 있어
그 건설적인 면을 긍정과 발전적으로 이해해보고 싶습니다.
-‘가장 참담한 곳이 서부교회이고, 대부분이 거의 다 마찬가지입니다. 아주 간혹 그렇지 않은 곳도 있지만 아직은 더 지켜 봐야 합니다...’의 부문을 보며 (개인적으로) 애타는 심정을 엿보게 됨입니다.
위 여러 측면들에 있어 (간략히 라도) 그 건설적 면을 긍정과 발전적 중심으로 이해해보고 싶습니다.
이 문제가 비록 지교회적인 것이나 주님 안에서 서로 지체된 공동체의 과제이며 마땅히 온 공동체적으로 근심해야할 (매우) 큰 사안이라 생각합니다.
이 난제해결에 너나가(양편이) 따로 있을 수 없음이며 기어코 참 가치를 창출해내야 함이 정도며 총 공회의 긍지와 정신에도 부합됨이라 굳게 여겨봄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긍정적, 건설적인 대안제시에 있어 온 공동체 공히, 유기적으로 진중한 서로 섬김 된 권면의 필요성이 (때론) 요청됨이란 생각을 (차제에) 해보게 됩니다.
세상 통계와 경험에도 '10년이면 만사 거의 드러' 납니다. 34년 재임이면 이제는 그 어떤 핑계도 댈 수가 없는 시점입니다. 생명이 있다면 아무리 별별 일이 있어도 자람이 있어야 합니다. 숫적이든, 신앙의 강함이든, 학적 교양이든, 어떤 면으로든지.. 목회자의 놀이터가 되고, 목회자의 소신 펼치는 연습장이 되고, 교수 강사 연사의 사상 교육장이 되면서 교회는 내려 앉게 될까 싶어서 시작한 것이 시무투표입니다.
시무투표의 목적은 첫째 목회자로 둘 수 없는 잘못된 점을 시정하기 위해서였고, 별로 문제가 없다면 두 번째는 그냥 목회자의 세월 보내기에 교회와 교인이 희생 될까 해서 양면으로 살피려 했습니다. 현재 목회자는 일반적으로 볼 때 공회 전체적으로 만사 가장 좋은 분입니다. 인물부터 음성도 성품도 이 정도 되는 분은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형편을 본다면 공회 방식은 차라리 불량배를 데려다 놓고 교회에 깨지는 소리가 좀 들려도 역동을 추구했습니다. 물론 목사님 생전 때는 최종 통제가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사후에는 총괄 지도력이 없어서 그렇게까지는 할 수가 없습니다만.
(서부교회의 의미)
목사님이 계셨던 교회였고, 공회의 중심이었으며, 또한 전국의 지교회 교인들이 몰려 들어서 서부교회 건설에 동참을 했기 때문에 서부교회는 전국의 공회 교회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칭찬도 지도도 비판도 함께 주고 받아야 하는 특수한 입장입니다. 서부교회가 잘 될 때 전국 교회는 그 명성 때문에 도움을 받았고, 전국 교회의 교인이 서부교회 핵심으로 제공되며 서부교회를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그 연고 때문에 고언을 드립니다.
차지도 더웁지도 않고 그냥 고사목이 되어 버렸습니다.
영어 강의를 한다고 그렇게 광고를 했으나 동네 영어 학원만 못했을 것이고
신학 강좌를 한다고 청년들을 교육 시켰으나 공회식도 아니지만 그 효력도 없었을 것이고
전국 탐방을 한다고 했으나 타 교단은 그런 연수, 관광, 교제에 관해서는 탁월하게 앞섰으나 교회만 망쳤고
칼갈이 전도, 악단 전도, 청소 전도, 지교회 전도 지원 전도까지 해 보지 않은 것은 없었으나 행사에 그쳤습니다.
공회도 아니고
신학도 아니고
교양도 아니고
공회 지우기는 분명했고
그렇다고 공회를 확실히 지우지도 못했습니다.
4층이 건재했을 때는 4층 때문이라고 이유를 댈 수가 있었으나 지금은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요?
한국교회의 역사는 분열로 서로가 경쟁하면서 오히려 더 자란 것이 역사입니다. 분열 분쟁도 양면이 있습니다.
남녀 청년회를 하면서 타 교단 하고 싶은 것을 다해 온 것도 세월이 너무 지나니 공지의 사실입니다.
오케스트라도 하고, 남녀 성가대도 하고, CCM도 하고..
이 정도가 되었으면
남천교회 목사님을 초빙해서 현재 지도부가 무릎꿇고 다윗에게 배운 사울처럼 해야 할 때가 아닐까?
다른 곳은 일장 일단 정도로 본다면 남천교회 정도라면, 물론 더 엄한 기준에서야 문제가 있겠지만 현실 교회의 실황에서 볼 때 백 목사님이면 바로 모셔다 놓는 분입니다. 부임 초기에 그 어떤 목회자도 세우지 않던 것은 목사님 식도 아니지만 한국 교회의 한 몸된 예의에도 사례에도 인사에도 맞지 않았습니다.
북한이 남한 때문에 살지 못한다고 70년을 저러고 있습니다.
그 세월에 남한은 북한 때문에 더 고달팠으나 북쪽의 무력 침공을 막느라고 방위산업에 헛돈을 소비했는데 그 돈까지 지금은 주력 수출이 되는 판입니다. 1992년의 시무투표 건으로 초기 몇 달의 분쟁과 이후 몇 년의 분쟁을 겪었을 때 먼저 개척을 나간 쪽은 오늘처럼 되지는 않았을 듯합니다. 건물을 붙들고 그 건물에 앉을 사람을 대거 놓쳤고, 그래도 몇은 붙들었으나 그들 속에 있던 이 노선의 마지막까지 다 없애 버렸습니다.
34년의 세월..
세상 말로 말하면 이제는 말할 수도 있고, 이제는 그들 스스로 공개 회개도 해야 합니다.
끝까지 함구하자 코로나를 통해 세상에게는 그래도 서부교회라는 말을 들었으나 원래의 신앙은 아주 사라진 허무한 내부만 공개했습니다. 대처의 방식도 진행 과정도 최종도 공회는 환란과 핍박을 그렇게 맞지 않습니다.
좁은 면으로, 24.8.21일자(담당)의 내용과 관련하여 아래부문을 이해해 보고자 했던바
차제에 구체적으로 이해해보고 싶습니다.(24.8.29일자 참고)
1. ‘지금 서부교회는 시무투표를 1992년 이후로 30년 동안 없애 버렸습니다. 그 결과 지금 서부교회는 세계 10대 교회요 국내 5대 교회의 규모가 이제는 도심에 흔한 골목 교회로 주저앉았습니다..’에서
‘후반부의 “결과”’를 초래하게 된 주(된) 원인됨이 무엇인지를
그 상호관계성을 중심으로 이해해보고 싶습니다.
2. (위 교회에선) 지금껏 시무투표가 없고 그 해결이 없는 이유가(원인이) 양방(측)의 견해가 (또는 주장이) 크게 상충 되(었)기 때문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애초, 양측 간의 결정적인 상충 점 무엇인지
-지금도 여전히 그 상충됨에 변함 없음인지
-긴 세월동안, 어느 한쪽에서 (이 해결에) 진보위한 어떠한 양보된 의견을 제시한 적이 있(었)는 지에
(아시는 점 있다면) 분별해보고 싶습니다.
3. ‘부흥이 될 수 없다는 조건은 족히 10개가 넘습니다. 부흥이 될 여건은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에서
이에 건설적인 면들을 긍정적으로 이해해보고 싶습니다.
4. 또한, ‘가장 참담한 곳이 서부교회이고, 대부분이 거의 다 마찬가지입니다. 아주 간혹 그렇지 않은 곳도 있지만 아직은 더 지켜 봐야 합니다...’에 있어
(위 연구님의 내용 외에 다른 부문이 있다면) 분별해보고자 합니다.
1. ‘지금 서부교회는 시무투표를 1992년 이후로 30년 동안 없애 버렸습니다. 그 결과 지금 서부교회는 세계 10대 교회요 국내 5대 교회의 규모가 이제는 도심에 흔한 골목 교회로 주저앉았습니다..’에서
‘후반부의 “결과”’를 초래하게 된 주(된) 원인됨이 무엇인지를
그 상호관계성을 중심으로 이해해보고 싶습니다.
□
단기간에 일어 나는 일은 쉽게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백 목사님의 평생도 교회의 부흥이 오르고 내렸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꾸준히 오르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의 생전 100개, 사후에는 총 200여 개의 총공회 교회 전체를 두고 10년 정도의 기간으로 본다면 대부분은 교회가 나아 지는지, 정체인지, 하강인지 대략 나옵니다. 그런데 아주 가끔 10년 단위로도 알기가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20년 정도의 기간으로 비교한다면 결과를 가지고 원인을 짐작할 때 거의 변명할 사안은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1년 단위면 대략 추세가 나옵니다. 10세으로 비교하면 추세가 아니고 거의 그렇다고 단정할 정도입니다. 20년이라면 정말 특별한 상황이 있다 해도 당사자는 내가 부족하다고 해야 합니다.
서부교회는 구도심 한 블럭을 다 차지했고 4차선을 직접 끼고 있습니다. 또 역사와 전통과 백영희 이름으로 심어 놓은 인지도가 넘치는 교회입니다. 적어도 60년대부터 서부교회를 거쳐 간 수 많은 사람들이 청년과 장년과 노년을 보내면서 언제든 그 때를 사모하고 궁금해 하고 또 그리는 마음과 역사적인 기록을 가진 여러 사유로 부산 전체의 그 어떤 교회보다 교인이 찾아 올 수 있는 여건은 최상의 조건이었습니다.
혹, 4층 쪽 교인들이 10여 년을 투쟁했고 주변은 물론 뉴스까지 나오는 바람에 올 사람들이 다 막혔다고 설명할 듯합니다. 그런 특수 상황까지 고려하여 20년으로 기간을 길게 잡아 봤습니다. 1992년의 시무투표로 문제가 시작했고 10여 년으로 4층의 반대측은 거의 표시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코로나 때문에 2021년에 서부교회의 상황은 세세히 발표가 되었습니다. 또 오랜 세월을 통해 이 곳에서 꾸준히 서부교회를 소개해 왔기 때문에 세월 속에 별별 형편을 가진 분들이 다녀 온 뒤에 상황을 설명해 온 자료가 충분합니다.
30년의 세월이 지나 갔다면 목회자가 전부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그 목회자의 장점은 평소 이 곳에서 많이 설명한 것처럼 10가지가 넘고 수십 가지를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총공회와 서부교회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그 분은 물에 간 사슴이고, 육지에 나온 돌고래입니다. 자기의 원래 곳으로 갔어야 그 분의 모든 장점이 출중하게 솟구쳤을 것입니다. 그 분은 서부교회에 오려는 야망이든 희망이든 기대든 그런 면이 없다 할 정도입니다. 그래도 온 이상 모든 책임은 목회자에게 있습니다. 특히 서부교회의 기본 구조가 그렇고 실제 30년 그 분은 전권을 행사했습니다. 그 분은 총공회적이며 서부교회를 일으켜 세울 것이라고 말했던 모든 분들은, 그냥 회개하면 됩니다. 구차히 다른 말을 하면 비겁해 집니다. 1990년의 극한 대립 속에서 서부교회의 핵심 3인이 서울의 그 분을 찾아 갔을 때 '교회 싸움은 재미 있는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편하게 쉽게 설명한 것이지 그 분은 원래 악의가 없습니다. 그런데 찾아 갔던 분들은 분노했고, 연구부는 그 분을 해명해 드렸습니다. 그러나 더 무서운 것은 교회, 교인 하나의 전도, 주일학생 하나의 아픔에 대한 느낌이 너무 허무한 점은 그 분의 이면입니다. 사람이 다 갖출 수는 없습니다.
그 분은 학자입니다. 책 한 권을 잃어 버리면 눅15장의 잃은 양 하나를 찾듯 목숨을 걸 수 있을 것이고, 논문의 근거가 하나 애매하면 마25장 드라크마 비유의 여인이 쓸고 쓸면서 찾도록 찾을 듯합니다. 그러나 교인 1명의 출결을 두고는 그 분은 대범한 분이고 역사와 정치 체계를 논할 분이지 애터질 분은 아닌 듯합니다. 애가 터질 분이었으면 전재수 전성수 홍순철 추순덕처럼 벌써 장례를 치렀을 듯합니다. 이 글은 서부교회를 두고 적는 것입니다. 총공회 2백 개 교회를 다 합한 것보다, 한국 교계 전부를 다 합한 것보다 그 의미가 더한 위치 때문에 표현이 조금 강한 듯합니다. 시골 면장이 낚시 갔다가 상황 대처를 하지 못한 것과 대통령이 6.25 전쟁 초기 3일에 밤 낚시 같다가 연락이 끊어 진 것은 좀 다를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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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위 교회에선) 지금껏 시무투표가 없고 그 해결이 없는 이유가(원인이) 양방(측)의 견해가 (또는 주장이) 크게 상충 되(었)기 때문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애초, 양측 간의 결정적인 상충 점 무엇인지
-지금도 여전히 그 상충됨에 변함 없음인지
-긴 세월동안, 어느 한쪽에서 (이 해결에) 진보위한 어떠한 양보된 의견을 제시한 적이 있(었)는 지에
(아시는 점 있다면) 분별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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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몇 년을 투표하지 않았다면 그럴 수 있습니다. 그 것도 말은 되지 않습니다. 초기 10년을 하지 않았다 해도 이해합니다. 그 것은 더더욱 말은 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분과 함께 1992년의 시무투표 때 당시 장로님 전부가 불신임을 당했고 이익 공동체가 되어 교회 안정을 이유로 시무투표 대상들이 시무투표를 아예 처형을 해 버렸습니다. 당시 격분에 찬 서명과 서명을 이끈 성토의 글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자기 위신, 자기 명예, 자기 이권이 없어 졌다고 시무투표 제도를 다시 일어 나지도 못하게 매장을 해버렸습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라 앉는, 꺼져 가는 오늘의 교회가 그들의 위신 대신에 값이 되어 돌아 오고 있습니다. 시무투표는 교인 중에 누가 반대를 하든말든 목회자가 자기를 위해 교회를 위해 그냥 하면 됩니다. 여기에는 협의도 필요 없고 상담도 흥정도 필요가 없습니다. 대화나 흥정이나 타협의 대상 자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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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부흥이 될 수 없다는 조건은 족히 10개가 넘습니다. 부흥이 될 여건은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에서
이에 건설적인 면들을 긍정적으로 이해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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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으로 교계의 일반 기준으로 보면 서부교회가 부흥이 될 수 없는 조건은 10개 이상입니다. 수십 가지는 손 끝에 헤아려 집니다. 그렇지만 서부교회는 목사님이 처음 오시던 1952년에는 더 어려웠었고, 그런 고비는 참으로 많았습니다. 서부교회를 잘 이끌 목회자가 가면 해결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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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또한, ‘가장 참담한 곳이 서부교회이고, 대부분이 거의 다 마찬가지입니다. 아주 간혹 그렇지 않은 곳도 있지만 아직은 더 지켜 봐야 합니다...’에 있어
(위 연구님의 내용 외에 다른 부문이 있다면) 분별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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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속에 집안 친척 자기 자녀 친구.. 또는 출장이나 뉴스 등을 통해 수도 없는 교회들이 서부교회보다 훨씬 나은 모습을 보이는 것을 모른다 할 수 없습니다. 그 때마다 흘러 간 옛노래가 마음 한 켠에서 나오겠지만 공회는 현실 교리가 있습니다. 공회가 아니라 해도 현실은 현실입니다.
일단 서부교회의 현황에 대해 현재 서부교회의 중심 교인으로 계신 분들이 반론을 할 수 있어 기다려 봤으면 합니다. 아무 말이 없으면, 4번에 대해 그 다음에 글을 적으면 덜 복잡해 듯합니다. 충분한, 또는 적당한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적어 주시면 성실하게 적어 보겠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백성 된 자는 서로지체 됨이며 주님의 몸 된 교회공동체이기에 서로 간의 고심어린 권면(성)도 (서로) 겸허히 들을 수 있게 됨이라 (한편으로) 생각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으로 비록 한 교인이나 차제에 더 이해하고 싶은 부문은
위 ‘연구’님의 내용 중,
1. ‘공회도 아니고
신학도 아니고
교양도 아니고
공회 지우기는 분명했고
그렇다고 공회를 확실히 지우지도 못했습니다.’의 부문에 있어,
그 교회가, 총 공회의 본래(전래)된 제반범주(또는 규범)에 견주어 각기 다른 점이 구체적으로 어떠한지에 대한 ‘고언’을 (요약으로라도) 듣고 더 이해하고 싶음입니다.
2. ‘..다른 곳은 일장 일단 정도로 본다면 남천교회 정도라면, 물론 더 엄한 기준에서야 문제가 있겠지만 현실 교회의 실황에서 볼 때 백 목사님이면 바로 모셔다 놓는 분입니다..’ 관련하여,
그 교회가 양적 질적 부흥 이루게 된 모 본적 사례들에 대해 (누구시든 아시는 대로) 듣고 싶음입니다.
내부적 어떤 문제가 자체적으로 뚜렷이 잘 안 보여 질 적도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때론) 말씀의 거울에 비쳐진 진지한 외부적 조언도 듣게 되며 그 생산적 분별과 해결점 찾기 위해 (필요시) 토론도 하게 됨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백성 된 자는 서로지체 됨이며 주님의 몸 된 교회공동체이기에 서로 간의 고심어린 권면(성)도 (서로) 겸허히 들을 수 있게 됨이라 (한편으로) 생각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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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란 내면이 중요하니 교회를 평가할 때도 그 내부를 살펴야 하는데 짧은 기간이나 특별한 사연이 외부에서 알기 어려워 타 교회를 입에 담을 때는 늘 조심에 조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 해도 세월이 10년씩을 지나게 되면 하나님의 세상 운영 원리에 따라 외부로 표시는 나게 됩니다. 서부교회가 조금이라도 잘 되도록 하는 마음으로 함께 글을 적는다고 생각합니다. 시무투표는 반대하던 사람, 지나 가는 나그네의 의견이라도 들어 보고 싶은 갈급으로 부탁한 것입니다.
타 교단처럼 70세에 강제 퇴직을 시키든, 그렇지 않으면 20대 목회자라도 매2년을 단위로 평가를 해서 근무 여부를 결정했어야 합니다. 시무투표를 거부하려면 현 목회자가 그토록 광고하고 강조해 왔던 개혁주의를 부르짖는 교계의 공론에 맞춰 17년 전에 사직이라도 했다면 부공2 내부에 뭔가 움직여 보려고 노력이라도 하는 목회자를 모실 기회조차 있었습니다. 지금 몇몇 분들은 현재 서부교회 담임이 서부교회 오기 전에 거쳤던 모든 교회들의 실적과 비교해 볼 때 확실히 나은 분들이 계십니다. 이 문제는 서부교회 내에 현 목회자를 지지하는 측에서 현 목회자와 자신들과 교회를 위해 먼저 제기했어야 하는데 평양도 아니고 그렇다고 신천지도 아니고 죽도밥도 아닌 상황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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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연구’님의 내용 중,
1. ‘공회도 아니고
신학도 아니고
교양도 아니고
공회 지우기는 분명했고
그렇다고 공회를 확실히 지우지도 못했습니다.’의 부문에 있어,
그 교회가, 총 공회의 본래(전래)된 제반범주(또는 규범)에 견주어 각기 다른 점이 구체적으로 어떠한지에 대한 ‘고언’을 (요약으로라도) 듣고 더 이해하고 싶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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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회도 아니고 > 1991년의 부임 이후 오늘까지의 모습에 공회 해체 과정이었음은 분명하고
신학도 아니고 > 평생 신학을 공부했고 강조했으나 서부교회에 개혁주의 신학을 심은 것도 없고
교양도 아니고 > 그 분을 모신 교인들이 그렇게 인품을 강조했으나 고비마다 그런 것은 아니었고
공회 지우기 > 너무 많아서 일일이 헤아리기도 어렵습니다. 서부교회 반대측에 출근을 평생하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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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른 곳은 일장 일단 정도로 본다면 남천교회 정도라면, 물론 더 엄한 기준에서야 문제가 있겠지만 현실 교회의 실황에서 볼 때 백 목사님이면 바로 모셔다 놓는 분입니다..’ 관련하여,
그 교회가 양적 질적 부흥 이루게 된 모 본적 사례들에 대해 (누구시든 아시는 대로) 듣고 싶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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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천교회의 상황은 부공2나 남천교인 중에서 적어야 할 듯합니다. 일단 매주 공개하는 주보를 보면 일부 아쉬운 부분이나 서로 달리 생각할 여지는 있다 해도 그 정도야 없는 교회가 없고, 전체적으로 기도 말씀 전도 집회.. 모든 면에서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목회자의 연세니 연륜이니 뭐니 말이 있다 하지만 현재 진행 상황을 보면 부공2에서 가장 또렷하게 앞서 있습니다.
남천의 상황은, 연구소에서도 공회 연구 차원에서 궁금합니다. 누구든 잘 적어 주시면 모두에게 좋겠습니다. 목사님 생전에는 평소 설교와 집회를 통해 어린 교인들조차 전국의 공회 목회자와 교회들의 상황은 소상하게 알 수 있게 하여 서로 참고하게 했습니다. 부공2의 봉쇄 폐쇄 은익은 평양보다 더한 듯합니다. 평양 이야기는 요즘 거의 다 나오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본 교회의 시무투표와 관련한 그 세부적 이면(裏面)을 정확히 모름이다. 정확한지..(주위에서 들은 바를 간략해보면) 당시에, ‘한 측은 (부정이 있는 것은 깨끗하지 못하니..) 재투표하자, 다른 측은 결과에 따르자..’는 걸로 이해하고 있음이다. 그러다 어느 시점에서부터 재투표하자는 측에선 상대측이 안하겠다면 어쩔 수 없음이란 모양새(?)로 지금껏 끌어오고 있음인지..또는 당시 재투표하자는 측에서 아예 투표를 안 하는 방향으로 정했음인지, 결과에 따르자는 한 측에서 처음과 정반대로 투료하자는 것인지..그 내면을 (개인적으로) 명확히 이해할 수 없음이다.
(손끝이 작은 가시에 찔렸어도 그 아픔이 온 몸에 느껴지듯) 긴 세월 분쟁(논쟁)으로 인해 영과 심신이 (개인이나 공동체적으로) 무척 지쳐있음이 (주님의 몸 된 지체일 진대는) 공감됨이라 여겨보고 싶음이다.
이는 실로 서로 지체된 교회공동체의 큰 불행이라 아니할 명분을 어떻게 찾음이며, (이러한) 긴 후유증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맛보기 위한 긍정적 동기나 발전적 현상이 결코 아닌 것이란 생각을 해보게 됨이다.
여하튼 어두움의 지속인 것이며 이는 밝고 기쁜 모습됨이 결코 아니기에 온 공동체가 급속히 풀어야할 중차대한 과제란 생각을 하게 됨이다.
이러한 주님의 교회와 (애초)양성원 관련하여 혹여 개인적 방안 있는지 말해보라시면 (평소 지녔던 생각으로)
하나는,
(위에서 이 면에 관해 언급하셨지만) 양측의 공동참여로 무조건 재신임투표를 실행함이다.
양측이 합의한 일정규범(규칙)하에 투표권 자를 공동으로 확인 확정하고 그 (투표)결과를 공히 무조건 인정함이다.
그런데 (전체적인 공감대인지는 모르나) 혹자의 말인즉, ‘지금 투표하게 되면 (결과 관계없이) 교회가 혼란’해진다고 했다. (그 뒤 대화내용 생략)
모두가, 말씀에 뿌리내린 심지와 믿음의 정체성이 분명 있다고 보며, 긴 세월 실로 주님의 공동체가 이토록 곤비함인데 (과연) 그럴지..
(만에 하나) 그럴 경우 양방이 명쾌히 내세울 명분이_
(설령 그렇다 쳐도) 개개인은 물론 전 공동체적으로 덮친 격이 될 텐데 또다시 해(害)입게 되는 경우, 이를 실로 감내할 명쾌한 명분이_
(지금도 분분한데) 이 정도(수준)의 공회인 줄은 (미처)몰랐다며 교계의 쑤군대는 따가운 시선을 피할 명쾌한 명분이_ 무엇이겠는지..
숫제 의심부터하게 되면 한도 끝도 없는 법이며, 정상으로 쌓여진 공회의 저력이 있기에 (개인적으로) 그리 여겨보고 싶지 않음입니다.
(자신 부끄럽지만) 이를 오직 주님께 의탁하며 (주님 앞에) 함께 다 내려놓아야만
온 공동체가 참 사는 길이며, 이럴 적에 주님께서 돌아보시고 역사하심이라 배웠습니다.
다른 하나는, (좀 어려울지 모르나)
(예로) 현 (서부교회)담임목사에게 애초 총공회양성원과 관련된 (어느) 직무에 대해 그 수용여부의 의향을 진지하게 타진(打診)해봄입니다. (원하실 경우 차기 교회청빙투표에 피선거권이 있음과 현 거주지에 거하는 전제로) 애초 통합된 양성원의 (어떤) 직무를(직분을) 적극 타진해봄입니다.
긴 세월 애초 양성원을 송두리째 땅에 묻어 놓은 듯 함은, 분명 총 공회적 손실인 것이며 성경적이 아니라는 생각을 (분명히) 하게 됩니다.
오래도록 정체된 (애초) 총공회양성원의 실제복원과 그곳 중심으로 의의 열매를 위한 생산적인 일들이 크게 기화되길(이룸 되길) 바람이 온 공동체의 소망인 줄로 여겨봄입니다. 물론, 총 공회적인 동의와 일정한 규칙이 수반됨이나 전 공회적 의지로 이를 넉넉히 극복할 수 있음이라 여겨봄입니다.
언제고 이 현상에 머물 수가 없음이며 지속되는 만큼 믿음에 손해라 생각해봄입니다. 후대 어린이들은 아직 어려서 형편을 잘 모른다지만 점차 장성하면서 결국 (묵은 어두운 점들을) 알게 되고 (공회와 공동체의) 믿음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이로 인해 하나둘 떠나게 되는 근심됨이 많을 수도 있음이라 생각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못 미치는 것은 죄라고 했습니다. (곁가지 현상들은 두고서라도) 이 현상을 우선 큰 틀로 볼 적에 분명 하나님의 영광에 못 미치는 것이라 생각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껏 그 결과들이(결말들이) 공동체적으로 후회스러운 게 아닌 것이면 그 성경적 근거가 분명 있을 것인바 이를 소상히 듣고 분별해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에 반대인 것이면 온 공동체적으로 그 반전(反轉)이 될 수 있는 지혜로운 선택과 책임과 기회를 찾고 갖춤이 (개인이나 교회공동체의) 신앙인생 됨이란 생각을 주제넘게 (한편으로) 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1992년의 문제로 두어 번을 시행하지 않았다면 그럴 수 있습니다. 시무투표는 처음부터 목회자를 믿으라는 것이 아니라 믿지 말라는 전제가 붙었습니다. 2년을 기다렸으니 마음껏 반대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양측이 이해상충이 있었다면 2년 설교한 쪽에서 2년을 기다린 쪽을 위해 최대한 배려해야 합니다. 제도의 취지 자체를 몰라서 생긴 일이며, 강단을 잡은 쪽이 거부한 것입니다.
* 집사 직분 세움이 없고, 회중 앞에서 공적 세례와 성찬식이 이제껏 없음
공회는 형식보다 내용이어서 이 문제는 사실 문제가 아닌데 1992년에 부임한 현 담임은 부임하자 말자 이런 것을 전 교인 앞에 공식으로 정식으로 공적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를 지나치게 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서부교회를 아는 사람들은 백 목사님 생전은 약식이고 편법이고 가짜라고 인식할 정도였습니다. 이제는 입장이 바뀌니 아예 반대로 하고 있습니다. 세상이니 그렇습니다.
* 재투표하자는 측
1992년의 투표를 두고 효력을 인정하냐 마냐는 것은 첫 2년의 문제입니다. 1994년의 투표부터는 그런 문제가 아니라 그냥 2년 임기제라는 투표제를 없애고 평양처럼 천주교처럼 종신제로 간 것입니다. 그래야 교권을 잡는 것이고 그래야 교회가 내려 앉아도 한 사람의 종신에는 지장이 없는 법입니다.
* 공동체적으로 무척 지쳐있음
믿을 마음도 없고 다시 예전처럼 믿게 되면 피곤하게 될 터이니 교회가 다시 움직일까 싶어 그냥 안주하는 것이 우리의 일반 마음입니다. 이런 상황을 차지도 않고 더웁지도 않은 라오디게아교회라 합니다. 서부교인들은 이런 글과 내용을 이 곳이 적지 않아도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인간이 꼭 죽으려 작정하면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더구나 교회라는 단체가 그렇게 작정하면 그렇게 되어야 교회 자유입니다. 그 상황을 지켜 보면서 그래도 그 주변을 감싸고 지금도 존경해 마지 않는 부공2라는 단체는 이 곳이 무슨 말을 하기 전에 자신들이 지나 온 30년 세월을 스스로 돌아 보면 논란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 양측의 공동참여로 무조건 재신임투표를 실행
양측이 존재하지 않은 세월이 10년 단위로 지나 가버렸습니다. 양측이 없는데도 우주인의 내습이 있을까 싶어 떨고 있다면 병원에 가셔야 합니다.
* 총공회양성원과 관련된 직무
서부교회 담임은 교회와 교인 몰래 서부교회를 평생 반대해 온 적지의 신학교를 설립하고 그 곳에 중심 교수로 활동했고, 이중 사례를 받았으며, 목사님 생전 또는 사후에 공회를 극단적으로 비판하고 탈퇴해 나간 이들과 동지가 되어 그 곳에서 그들을 양육했습니다. 서울대 교수가 몰래 평양 김대에 철학과 교수를 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 학교의 설립자가 가게 되고 학교가 없어 지는 그런 시점에 이제 그 곳을 가지 않는 상황입니다. 공회는 타 노선에 관련 된 사람은 교수로 진입조차 금지합니다.
* 양성원의 건축물
이 것은 목사님 생전에 그 취지와 진행과 향후를 미리 말씀해 놓았습니다. 위치는 그 곳이 맞지만 건축의 배경과 과정은 참으로 불손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늘을 팔고, 온갖 명분을 세워 진행했습니다. 고소금지원칙이라는 공회 출발 정신조차 묻고 세운 시설입니다. 그래서 변변히 운영조차 하지 못하고 '묘비'로 그 곳에 둔 것입니다.
* 총공회양성원의 실제 복원
양성원은 성경과 설교록으로 각 학생이 하나님 앞에 이 노선에서 자기를 돌아 보는 시간입니다. 현재 각 공회이 양성원 내용은 함께 합하면 함께 탈선일 뿐입니다. 회개가 먼저 있고, 노선을 정립한 다음에, 논의해야 합니다. 건물이 있으니 일단 모여 들어서 함께 하자고 한다면 참 우습게 됩니다. 타 교단은 시설이 있으면 교회와 교단과 신학교가 따라 오면서 세를 형성하지만 공회는 그 반대입니다.
* 하나님의 영광에 못 미치는 것은 죄
죄인들이 더 큰 죄를 짓기 위해 모여서 '영광을 받으옵소서'라고 하면 가증한 죄가 됩니다. 나를 부인하고 이 노선의 바른 길을 찾고, 그리고 나서 그런 모임이 커지고 많아진다면 그 것은 영광입니다.
선의로 연구하고 노력하는 것은 늘 존경스럽고 감사합니다.
그러나 선의라는 것이 길을 잘못 들어 서면 더 멀리 더 좋지 않은 결과를 낳습니다. 앞에 설명한 내용을 다시 잘 돌아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 결과로서 지금껏 주님의 몸 된 교회(공동체)가 강건치 못하고 주님위한 역동적인 진보와 유기적 건설에 분명 크나큰 장애가 되고 있음이라 여겨봄이다.
여태껏 분쟁의 파장으로 인해 주님의 품꾼으로 위탁 받은 (주님의 것인) 애초 양성원의 경영마저 완전히 무너져 있음이다. 마치 커다란 망을 송두리째 덮어씌움 같음 듯 되어 여실히 복음의 빛을 드러내지 못한 채 황폐하게 서 있는 모습이 (그 단적으로) 반증함이다.
지금껏 서로지체 간 어깨를 겨룬 듯, 불목 된 현상들이 본래의 정도를(정칙을) 이미 크게 비켜났음이라 여겨짐이다. 이 어두운 모습들은 분명히 언약의 조건에 위배(위반) 되고,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께 염려 끼침이며 이는 결국 (진리에) 불순종을 의미함이라 여겨봄이다.
지금껏 현상들이 성경적 이미지관점으로 절대적 실추인지, 고취인 것인지를 근심해봄이다. (본의 아니게) 오랜 동안 세상에 비소와 조롱거리의 빌미를 주고,
더더욱 근심해볼 것은, 분쟁과 화평이 무너진 그 틈새로 이미 가만히 스며들어와 엎드린 ‘무엇’만이 좋아할 뿐인지.. (온 공동체가 심각히 근심하며) 영적분별 해야 할 급선무의 과제로 여겨봄이다.
결과적으로 지금껏 현상들이 어떤 기쁨으로 하늘에 사무침 되며, 어떤 선한 일로 분명 주님께서 기억되심 되겠는지를 (주님의 교회공동체로서) 마땅히 직시해야할 심각한 계제로 여겨봄이다.
차제에 이 문제에 대해 선두적인 위치에서 지도하는 분들께 여쭘입니다. 이 현상들에 있어 (좁은 면으로) 여기에 관여치 않은 교인들이나 후대들에게 어떤 (직접적) 잘못 있음인지.. 참 살리는 게 복음인데 (이 현상들이) 정녕 모두의 심령을 평안케 하며 온전한 믿음 일구는 선한 방편 됨인지에 짙은 의문을 가집니다.
각기 분산된 제자들이 갈릴리로가 부활하신 예수님 만났던 것처럼, 오늘날 주님의 양떼가 오늘에 영적 갈릴리에서 미리 기다리시는 주님 앞에 뜨겁게 모두 나아가, 긴 세월 얼룩지고 굴곡진 (나와) 공동체의 정체성을 (함께) 급히 회복하도록 적극 끌어 주심이 옳지 않겠습니까!
(배운 대로) 이 해결의 길은 주님 앞에 다 내려놓고, '오늘에 주님의 신호'가 무엇인지를 심히 떨며 (귀 기울여) 들어야함이라 여겨짐입니다.
현재의 로마카톨릭과 종교개혁으로 시작된 개신교회는 중세시대까지는 한교회 였습니다. 종교개혁으로 두 교회가 나누어졌습니다. 다시 하나로 돌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다시 하나로 돌아가는데 크게 두가지 길이 있는 것 같습니다.
1. 로마카톨릭이 개신교의 교리로 완전히 전향하면서 두 교회가 다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2. 몇년전에 감리교와 로마카톨릭이 칭의교리에 대하여 합의를 보면서 서로 하나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감리교에 더하여 루터파교회도 로마카톨릭의 현재 교리를 그대로 두면서 하나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원래 합동교단과 통합교단은 하나였습니다. WCC에 대한 의견이 다르면서 나누어지게 되었습니다. 합동교단과 통합교단이 하나되는 길은 성경적으로 통합교단이 종교다원주의 노선인 WCC를 버릴 때 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합동교단이 WCC를 수용하면서 통합교단과 하나되는 것은 잘못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백목사님 사후에 총공회가 크게5개노선으로 나누어졌습니다.
함께 양성원을 운영하고 집회를 하면 더할나위 없이 좋을 것 같습니다. 다시 5개공회가 합하는 성경적인 길은, 로마카톨릭과 감리교가 합하는 것처럼 합해야 할까요? 아니면 합동교단이 종교다원주의노선인 WCC를 수용하면서 합하는 방향으로...총공회도 합해야 할까요? 이 방향으로 합하는 길은 교인님도 아시다시피 명백히 잘못된것을 아실 것입니다.
화평이 좋다, 다시 합하는 것이 좋다하면서 이런씩으로 합하는 방향을 주장하는 사람은 교인님도 아시다시피 바른신앙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사람일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할 일은.. 내 속의 영의 단일성을 본받아 내 마음이 단일의 한 마음이 되도록 노력을 하고, 내 가정이 바른노선으로 하나되도록 노력하고, 내 교회 성도님들이 공예배를 함께 드리도록 노력하고...그것이 가장 중요하고 급선무의 일이라 생각이 됩니다.
교인님이 소속된 교회의 성향이 어떤지 모르겠으나, 교인님의 교회는 A교회가 예배때 박수치고 율동하고 드럼 기타 신디사이저를 사용하는 교회와 합할 수 있겠습니까?
교인님의 교회와 A교회가 원래 하나였기에 합하기로 하였다면, A교회의 예배모습을 그대로 둔채 합하실 것입니까? A교회는 현재의 예배모습을 절대 포기하지 않고 합하기를 바라신다면 교인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2. 김구의 길은 아니될 것이라 사료됩니다.
김구는 대통령이 되지 못하였고,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고 북한에 올라가 김일성과 회담까지 하며 남한과 북한의 공동정부를 계속 주장했습니다.
만약 김구의 주장데로 되었다면 현재의 대한민국의 번영은 없었을 것입니다.
교인님의 길이 김구의 길이 될까 몹시도 우려스럽습니다.
그런데 김구가 만약 이승만대신 대통령이 되었더라면, 김구가 남북한의 하나된 정부를 계속 주장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김구의 주장이 아직도 대한민국에는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생각 말 글 하나가 이렇게 영향력이 큽니다.
불신세상에도 그러할찐대 우리의 모든 언행심사가 나 뿐만 아니라 다른 기독자들의 영생에 영향을 미침을 누구보다 잘 아실 것입니다. 성경말씀에 소자하나 실족하게 하면 연자맷돌을 매고 죽어야 한다라고 나옵니다.
교인님의 필력과 총공회를 사랑하는 마음과 연구자세가 너무나 훌륭하시나, 교인님이 총공회에서 김구의 노선으로 나아가고 있다면...교인님께 가장 해악이 클것이고 교인님의 가정과 교인님이 소속된 교회에 가장 크게 악영향을 먼저 끼칠 것입니다. 그리고 교인님의 글을 읽는 분들에게 점점 신앙의 큰 손해를 줄 것입니다. 그래서 교인님의 위치정도(총공회에 대해 이정도까지 알고 글을 쓰신다는것은 최소한 장로급이라 생각이 됩니다)면 굉장히 말한마디 글 한줄 조심해야 될 줄 믿습니다.
3. 제가 세밀하게는 잘은 모르지만 현재 총공회에 속한 5개공회는, 교인님이 속한 교회와 1번에 제가 예시로 든 A교회처럼...여러면으로 생각이나 행정 노선이 다른면이 많습니다.
그런데 합하고 하나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계속 하나되고 합하자 하는 이야기는 현실을 잘 모르고 이상론만 계속 이야기 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이상론은 먼저 나 자신에게 내 가정에 내가 속한 지역교회에 최우선적으로 적용하고 추구해야 합니다. 내가 속한 교회에서 쫓겨나는 일이 있더라도...그런데 내 가족에게 이상론을 주장하기 위해서도 나의 너무나 큰 희생과 수고가 필요합니다. 남의 한가정에게 이상론을 주장하기 위해서도 내 가정에서 먼저 너무나 큰 희생과 수고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내가 속한 지역교회에 이상론 한마디를 하기 위해서는 나와 내 가정이 거의 실신할 정도로 너무나 큰 희생과 수고가 필요합니다.
과거 다녔던 교회가 어린이부터 장년까지 총출석이 200여명 정도 되었는데, 웨슬리노선 예수전도단노선 인터콥노선 변승우구원관노선 칼빈주의구원관 노선으로 다양했습니다. 이 교회에서 가장 큰 손해는 칼빈주의노선을 가진 성도였습니다. 그리고 교회내 노선끼리 충돌도 너무 많았고 노선싸움 하다가 정작 중요한 자라가는 신앙을 많이 놓혔습니다.
지금은 각 노선별로 성도님들이 자기 노선으로 나아갔고... 노선이 약한 교인분들도 본인들이 믿는 노선에서 열심히 하며 나름 열매들을 맺어가고 있습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총공회의 5개공회가 본인들이 가장 옳다고 믿는 노선으로 나아가고 또 고쳐간다면...열매들도 많이 맺일거고 또 말씀으로 자기공회를 각자가 고쳐간다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하나되고 연합하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녔던 교회에서(여러노선이 공존했던 개교회) 칼빈주의노선을 가진 교인이 계속 그 교회에서 지냈다면, 다른노선을 가진 교인들보다 너무나 막대한 손해를 입게 되는 것처럼...교인님의 말씀처럼 총공회가 하나되고 합하게 되면 가장 바른노선을 가진 공회가 너무나 크게 손해를 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로마카톨릭과 감리교가 하나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말 한마디 글 한줄 너무나 조심해야 함을 제 자신에게 먼저, 그리고 김구노선으로 나아가지 않기를 제 자신을 위해 작성합니다.
(참고로) 본 전체내용의 주 맥락은 서부교회에 관해 생각해보게 된 것임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구의 길은 아니될 것이라 사료..’의 언급 부분에 있어, (간단히 말하면) 당시 그의 속 심정은 알 길 없으나 외형의 말과 행동이 정치적 사상과 깊이 결부됨이라(관련됨이라)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부분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로 한 형제 된 공동체생활에서 발생된 신앙적 견해로서 각 나름, 보다나은 (어떤) 규범을 모색함에서 비롯된 (이해적) 차이인 것입니다.
주안에 거한 교회공동체이면, 비록 각기 갈라져있어도 (장차) 새 예루살렘을 향한 목표와 주님의 일에 구심점이 같은 한 지체입니다. 비록 (본의 아니게) 떨어져있어도 (총 공회의 명칭을 함께 공유하는 한) 애초의 한 뿌리에 붙은 가지들이라 (한편) 생각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애초 양성원과 관련해선) 총 공회의 명칭을 각기 유익으로 삼을 뿐, 애초 태생된 총 공회본래의 정신과 경영에 따른 구심점을 정, 소홀히 여긴다면 각기 총 공회명칭에 따른 족보를 (각기로) 다시 써 내려갈 수밖에 없는 것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보다 앞서 그 선결된 장소에서 주님 위함과 주님의 양떼를 양육하기 위한 거룩한 모임마저 (무조건) 차단할 경우는, 애초 주님 위한 공통된 선한 일에 순응이겠으며, 이를 버려둠 같음이 주님과 주님의 백성위한 영광된 사역에 크나큰 미흡 됨이라 (한편) 생각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각 공회가 필시 애초 총 공회란 뿌리에서 일궈진 것일진대, (그 한 뿌리에 붙은 한) 서로지체 간 문제들에 있어 (서로 간) 아무런 권면이나 관심마저 없음은 영광된 공동체의 유기적 복음사역에 소홀 됨이며,
하나님께 영광위한 보다 아름답고 건강한 총 공동체의 형성에 소극적이 됨이라 생각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생활에서 부모의 모습에 따라 자식들이 안도하기도하고 불안해지기도 함입니다. '이러냐 저러냐..'에 대한 논의는 차후며, 주님의 양떼를 돌볼 영광된 사역위한 (어쩌면 영적 아버지격인) 목회자님들이 양떼의 신앙성숙과 주님의 몸 된 (총공동체)교회의 발전과 증진위해 우선, 주님 면전에서 머리를 맞대는 아름다운 모습을 실로 보게 되면 (이를 목격하는 주님의 양떼들이) 크게 안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보잘 것 없이 생각되는 일들도 (때론) 주님 앞에선 절대적 의미를 가짐이라 생각합니다. 하물며, 한 사람의 인생도, 주님의 교회와 총 공회는 어떠하겠는지..
(자신 부끄럽지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펼치시는 사실을 성경에서 보듯, 합동하여 얼마든 선을 이루게 됨이라 배웁니다. 주님의 전 공동체가 함께 영광되게 이룰 구심점을 찾는 것을 보게 되는 소망을 (실로) 가져봄입니다.
(물론..조심해야겠지만) 이 면들을 두고 언급함인데, ‘김구의 길..’과 대입시킴은 신앙적 논리에 부합하지 않으며 비약됨인 것입니다.
새롭게_! 애초 총공회 정신에 입각된 공유의 지평이 열릴지.. (성경의 예 통해 볼 적에) 하찮게 보여 진 일도 주님 면전에서 최선 다하는 이들에 의해 바로 세워짐이라 배웁니다. 하찮게 여기는 일들도, 분명 주님의 뜻일 진대는 (그 일을) 마냥 하찮게 여김이 교만이 되는 것이라 배웁니다.
(만남을) 피하고 싶고 부정적인 경우에도 주안에 한 형제인 만큼 거룩한 근심으로, (교단의 중추격인 서부교회와 애초 양성원 등, 제반문제를) 마지막 기회로 여기는 심정으로 주님의 뜻을 공동으로 심히 애써 찾고 찾으며 이를 확고히 정리할 필요가 있으심이
전 목회자님들의 공감이신지 (아닌 것인지)에 양떼들이 (이를) 깨달을 필요가 있음인지..무조건 순종으로 따라야함인지에 생각이 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열띤 선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애초 총 공회의 구심점에 대한 공동의 모색과 합의가 정 불가항력적인 경우,
그 응변으로, (회원님의 말미에 언급처럼) 각기의 갈 길을(노선을) 분명히 함 가운데, 서로 축복하며 (차후) 각 공회별과 교회의 일들과 사역에 서로 일체 간섭치 않으며, 각 나름 (총 공회적) 족보를 다시 써 내려가는 도리밖에 없음인지, 양떼들도 이에 따라 신중히 각자의 생각대로 갈 길을 찾아 안정을 되찾을 수밖에 별 도리가 없음인지 생각하게 되며,
훗날, (교단의) 역사가 (평가적으로) 말해 줄 것이란 생각을 가집니다.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양보하지 못할 것을 양보하고 화평하면 인본이며 탈선입니다. 양보할 것을 하지 않다가 싸우는 것은 세상의 밥그릇 싸움과 같습니다. 서로 대화해 보면 쉽게 드러 납니다. 서로 깨닫는 것이 다르면 하나가 될 때까지 기도하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각 공회는 지난 30년 이상의 세월 속에 만사가 다 드러 났습니다.
(화평과 분쟁)
행15장에서 첫 공회가 모인 것부터 다툼과 변론 때문이었습니다. 잘 몰라서 찾아 가는 과정은 다툼과 변론의 외견을 띄고 있으나 내용은 거룩과 진실이니 이 것은 신앙 세계의 생명입니다. 그런데 서부교회의 시무투표 건, 각 공회의 문제들, 직전의 저작권과 현재 노곡동 건 등은 너무 명확해서 이견도 이론도 없습니다. 한 쪽은 그냥 막가는 것이고 한 쪽은 공회 노선을 다 지키고 있습니다. 이럴 때 중간에서 서로 사이좋게 지내라고 한다면 그 것은 잘못 된 쪽을 편드는 것이 됩니다. 서로 옳은 줄 알면 나란히 놓고 비교하면 됩니다. 예전에는 교통 통신 장소가 곤란했다. 지금은 게시판에 나란히 적어 놓으면 바로 해결 됩니다.
그 교회의 (평)교인신분으로 (윗선과의) 대화가 (개인적으로)결코 쉽지 않은 만큼, 소통이 비교적 활성화된 이곳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 점 혜량하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마냥 묵혀둘 계제가 결코 아닌 것이며) 애초양성원의 통합발전에 대한 정지(整地)작업 또는 선한 매듭위해 어느 분이든 그 역할을 일익 감당하실 일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면으로 (현 해당교회의 담임목회자께서 2년 후, 그 규정된 청빙투표에 원할 경우 피선거권이 있음을 양측 공동합의 전제로) 그 목회(사역)의 일정이동을 전 공회적 차원으로 숙고해봄 어떠한지, 그 동시에 해당교회의 문제가 긍정적으로 해소됨인지를 생각해보게 된 것입니다.
(이는 각 공회의 신학적 사고나 제도에 있어 다소 차이가 있는 경우와는 별개이며) 그 우선적 사역방향과 중심을 애초양성원의 복원 또는 전 공회적 활용방안의 모색에 두고 (전 공회가 부여한) 직무에 따른 공식적 수행인 셈입니다.
그 구체적 단계를 나름 생각해봄이면,
(위 합의가 정 안 될 시, 차선의 한 예로) 각 공회가 주님영광위해 (그 장소를) 활용하도록 전체적 합의를 적극 모색함입니다. 이에 어느 측의 극구반대가 있는 경우, 길게는 주님 오실 때까지 (짧게는 다시금 어떤 합의 있을 때까지) 각 공회가 그곳을 자유로 공유 가능하다면 그 자산소유권이 하등 문제이겠는지를 생각해봄입니다.
(이마저 정 합의가 안 된다면) 주님께서 이를 분명 보심이니 (주님을 생각하여) 이 시설을 필요로 하는 건전한 교단이나 기독교단체가 있다면 그 (임대)방안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며. 아니면 타 교단에서 해외선교사로 파송됐다가 안식년을 맞거나 일시 귀국하여 마땅히 머물 거처가 없는 분들에게 숙소를 제공하는 등 여러 모색도 있는 것입니다.
그 실용적 운용의 미를 창출해냄에 있어 총 공회의 저력이 있음을 믿고 싶음입니다.
묵혀 둠이 부정적인 (단편적) 이유로서, 주님영광위해 세워진 크나큰 자산을 (본의 아니게) 수 십 년 마냥 둠이 성경에서 보듯 땅에 묻어둠과 어떻게 다름이며 이는 믿음의 후대에게 실로 어떤 긍정적인 믿음을 굳게 심어줌이며 이것은 분명코 주님의 소유이심에 대한 도리에 실로 어긋남이며 선한 청지기 됨이라 보기가 어려우며 교계의 부정적 시선이 어떠하며 줄곧 세상과 마귀의 치소거리가 될 뿐더러 최선 추구하는 총 공회의 정신에 걸맞지 않음이 전 지체의 공감이 아니겠는지.. 그 전 과정이 총 공회의 역사에 분명 기억되고 믿음의 후손들이 (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위 모두가 전혀 건설적이 아닌 경우, (차후 규정된 청빙투표에 그 참여 원할 시 피선거권이 있음을 양측 간 합의전제로) 현 (소위)부공2측의 교회들을 중심한 양성원의 보다 효율적 진보와 확대운영위한 전담사역의 (한시적) 이동의 의향을 타진해봄이며, 그 성사가 되는 경우 교회의 묵은 난제가 일시에 해소되어야하고 (그럴 적에) 2년 주기 사이클을 자연 회복하게 되는 셈이라 보는 것입니다.
이 면에 있어서도 부정적이라면, 즐겁게 분립하여 주님의 선한 일들을 각기 이루어감이 합리이며 합당함이라 생각해봄입니다. 한 지붕아래 거하면서도 각기의 모습이 실로 성경적 공동체생활이겠는지, 후세대마저 서로 등을 돌리며 상종치 않는 믿음생활이 실로 서로 지체된 아름다운 모습인지에 강한 의문을 지울 수 없음입니다.
현안문제에 (양측의) 일치된 합의로서 목회사역이 (일단) 이동 되는 경우, (목회자의) 주거지는 현 거주지로하며 제반 예우적인 것은 (양측이) 의논하면 될 것이며,
(아시는 대로) 동시적 일정기간 회개의 선포가 절실히 필요 됨이며, 이후 해당교회에선 모든 제직 임명은 물론, 원상대로 정상의 교회공동체생활과 그 운영과 믿음의 진보에 한마음으로 최선 기울임이 이어지는 믿음의 저력을 실제로 볼 수 있음이라는 생각을 나름 해보게 된 것입니다.
(위 내용이 성경적으로 어긋나고 심히 결례이면 널리 혜량 있으시길 원합니다.)
공회 교인들은 공동체 어쩌고 저쩌고 이런건 안쓴다고 봅니다
교인들도 문제 많치만 강단에 있는분도 문제가 많은거 아닌가요 실력이 안되면 자리를 빨리 비워 빨리 교회가 정상적으로 가든지 하겠끔 해야지 자리 짜지 하고 누가날쫓아네 이러고 앉아 있음 결꼬 좋게 보이지 않을 겁니다
자기도 들어가지 않고들어가고자 하는분들 막고 있어 교인들은 참 답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