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발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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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려웠던 집회 말씀
집회 때 에스겔 성전을 배웠습니다. 말씀을 들어도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기가 어려웠습니다. 강사 목사님은 100번을 읽고 외우다시피 하여 비로소 설명할 정도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100번을 그냥 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연구하고 살피며 읽고 또 읽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을 것입니다. 노력 없이 되는 것은 세상에도 신앙에도 없습니다. 신앙은 노력이고, 노력은 수없는 반복의 연습입니다.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이라는 세상 말을 실감합니다.
무슨 말인지 들어도 몰랐는데, 집회 마치고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읽고 또 읽고, 쓰고 또 써 봅니다. 너무 어려워 한꺼번에 다 알지 못하는데, 읽고 또 읽으며, 생각하며 써보고 또 써보니까 앞에서부터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제 시작 부분이지만 집회 때 배운 말씀들의 의미를 조금씩 알겠고, 더하여 집회 때 배운 말씀을 바탕으로 배우지 않은 부분까지 알아지는 것 같습니다. 토끼 꼬리만 한 깨달음의 경험으로 앞선 종들의 깨달음의 세계를 어렴풋이 짐작해 보고 있습니다.
2. 발전 없는 모습들
백 목사님은 칼빈주의자들을 강하게 비판하셨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칼빈을 우려먹고 이용해 먹는 사람들을 비판하신 것입니다. 깊은 깨달음, 좋은 깨달음을 배웠고 그런 스승을 모셨으면 그 스승의 깨달음을 계승하면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제자 된 도리이며 의무인데, 칼빈의 깨달음을 이용하면서 우려먹고만 있지 더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없이 500년 세월을 허송하고 있다고 비판하신 것입니다. 칼빈을 앞세우며 자칭 칼빈주의자라고 자랑하는 그들이 자기 스승을 500년 넘는 세월 동안 새 움이 나지 않는 고목 나무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백 목사님 사후 자칭 ‘그대로’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과거에는 소위 ‘비디오파’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백 목사님 그대로’를 주장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속을 들여보면 백 목사님의 교리도, 신조도, 행정도, 노선도, 깨달음도 전혀 모르고 껍데기만 알았고 그래서 껍데기만 붙들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수십 년이 지난 오늘에 그들은 다 없어졌습니다. 어딘가 그 흔적은 남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백 목사님께서 생전에 그토록 비판하셨던 칼빈을 우려먹는 그 사람들과 꼭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3. 발전의 역사
성경의 기록은 발전의 역사입니다. 6천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인간 세상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서 오늘의 지식과 과학은 인류 역사상 최고조에 이르고 있습니다. 동시에 인간의 타락 또한 타락에 타락을 거듭하여 말세지 말 오늘에는 타락의 극을 향해서 달리고 있지만, 한편으로 그 속에는 하나님을 향한 깨달음 역시 최고에 이르고 있습니다. 성경의 깨달음도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 것입니다. 인간의 지식도 발전하고 지식을 기초한 과학과 모든 문명이 발전하며 타락한 인간의 본능까지 점점 발전하여, 세상이 발전함과 동시에 인간의 타락상도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 것입니다. ‘타락’이란 떨어져 내려가는 것이니 인간의 타락을 발전이라 할 수 없지만 말하자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깨달음도 발전하여 오늘은 최고조에 이르고 있는 것입니다.
발전이란 말 그대로 발전입니다. 점점 자라가는 것입니다. 생명으로 말하면 자라가는 것이고, 생명이 작용하여 뭔가를 이루는 면으로 말하면 발전하는 것입니다. 자라가고 발전되고 발달하고 향상되는 것입니다. 한 말로 발전이라고 표현해 봅니다. 사람은 생명이니 자라가야 합니다. 생명 가진 사람은 모든 면으로 발전해 가야 합니다. 발전의 최종 모습은 온전이 됩니다. 생명의 성장도 최종은 그 존재의 온전입니다. 피조물 차원의 온전을 말합니다. 자라가지 않으면, 발전하지 않으면 온전함이란 완성되지 않습니다.
4. 깨달음의 발전상
성경 깨달음, 교리의 깨달음도 자라가야 합니다. 발전해야 합니다. 생명의 성장은 종자가 있고 자라가는 과정의 모습들이 있습니다. 식물을 심으면 뿌리를 먼저 내립니다. 뿌리가 뻗으면서 둥치를 냅니다. 둥치가 가지를 뻗습니다. 가지에서 잔가지가 나오고 잎사귀가 나며 꽃이 피고 열매를 맺습니다. 가지 없는 열매나 잎사귀는 있을 수 없고, 둥치 없는 가지도 없으며, 뿌리 없는 둥치도 없습니다. 이 전부는 뿌리를 뿌리로 삼아 둥치로, 가지로, 잔가지로, 잎사귀로, 꽃으로, 열매로 한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생명의 성장상입니다. 깨달음의 발전이 이와 같습니다.
건축물 탑으로 비유하면, 먼저 터가 있어야 합니다. 터를 닦으면 그 위에 기초를 다지고 탑의 상징물을 얹을 구조물을 만들어야 합니다. 나무의 둥치와 같은 것입니다. 구조물이 만들어지면 그 위 탑의 꼭대기에 상징이 되는 것을 얹을 수 있습니다. 터 없이 구조물을 만들 수 없고 구조물 없이 탑 꼭대기는 없는 것입니다. 깨달음의 발전이 이와 같습니다.
앞선 종들의 깨달음을 바탕으로, 연구하고 살펴서 새로운 깨달음이 나오는 것이 정상이라는 것입니다. 배운 것을 배운 그대로 앵무새처럼 되풀이만 하면 앵무새가 되고 녹음기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을 못 박아 죽인 서기관 바리새인들 대제사장들이 되고, 스승을 500년 동안 새 움이 없는 고목 나무를 만든 자칭 칼빈주의자들처럼 되며, 백 목사님 ‘그대로’를 외치면서 자신들도 모르게 백 목사님을 새 움 나지 않는 고목 나무를 만들려고 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는, 생명의 세계를 모르는 그들처럼 되고 마는 것입니다. 사람은 별사람이 없는데, 그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토끼 꼬리만 한 깨달음의 경험으로 위대한 종들의 깨달음의 세계를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