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은 부공2. 활동은 양 쪽

공회내부 발언      

소속은 부공2. 활동은 양 쪽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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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 분의 목사님
① 중요하신 목사님들
세 분 목사님들의 평소 성향상 그 분들에 대해 비판적 대화가 진행 되는 것은 너무 당황스러울 것입니다. 그러나 백 목사님 사후의 공회 분립사에서 그 분들이 가졌던 위치와 활동으로 볼 때 공개 평가는 피할 수 없습니다. 공회의 분립 역사에서 세 분은 중요한 위치에서 중요한 일을 했고 그 활동은 공회의 분립 역사가 되었습니다. 좋은 면도 있었을 것이고 나쁜 면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쨌든 능동적으로 공회 분립사에 중요 인물인 이상 공개적 평가는 피할 수 없습니다. 지금 진행 되는 이야기는 아주 미세한 부분에 이견은 있을 수 있으나 전체 설명 방향에는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② 평소 성향
세 분의 원로 목사님들은 평소 전혀 다른 성향으로 활동하십니다. 김 목사님은 기도와 말씀 일변도로 사십니다. 동생 목사님은 백 목사님 면전에서 총공회 이름을 고치라고 감히 진언 드리는 소신파며 애국자며 항상 일선에 서신 분입니다. 형님 목사님은 언행을 거의 볼 수 없을 만큼 조용한 분입니다.

③ 공회 격변기
세 분은 지나 가면서 단순히 인사하고 안부 묻는 정도 이상으로 함께 활동하는 일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백 목사님 사후 공회의 분열 과정에서 세 분은 결정적인 위치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해 오셨습니다.

- 김응도 목사님
이 홈은 김 목사님의 개인 신앙과 경건은 전적 존경하나 김 목사님의 행정적인 처신과 활동을 두고는 거의 모든 면에서 반대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앙은 좁을수록 좋고 묵상은 혼자 생각할수록 좋으나 행정은 아무리 옳아도 상대와 협의가 있고 객관을 생각해야 합니다. 신앙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결판 나지만 행정은 전원일치를 위한 심의라야 합니다. 김 목사님은 하나님과 목사님 사이에서 확인한 내용을 행정에서는 집행만 하지 다른 사람이 하나님과 별도로 기도하고 말씀으로 연구한 것은 인정을 하지 않습니다. 백 목사님의 말씀 연구와 하나님 동행은 너무 차원이 높기 때문에 백 목사님을 상대로 우리는 대개 토론하거나 연구 과제로 넘기지 않고 순종합니다. 꼭 이해가 안 되면 혼자 속으로 과제로 삼습니다. 그런데 김 목사님은 백 목사님 사후 공회의 분립 과정에서 수 많은 논쟁이 있고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있었는데 김 목사님이 깨달은 것만 주장하고 밀어 붙이지 다른 사람의 다른 깨달음은 인정을 하지 않습니다. 백 목사님의 실력이 아닌데 백 목사님 위치에서 그렇게 행정을 하면 우리는 좋은 의미에서 독재가 아니라 나쁘고 부정적 의미의 독재라고 생각합니다. 김 목사님과는 평소 신앙 내면에서는 거의 모든 면을 함께 하지만 공회 행정 면을 두고는 이 홈은 거의 모든 면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신앙 사상이 같고 또 지금처럼 행정적으로 논쟁할 문제가 없을 때가 되면 서로 연락은 없지만 김 목사님의 신앙과 걸음과 중심을 늘 옆에 모시고 함께 가는 선배라고 생각합니다.

- 송종섭 목사님
송 목사님은 사고가 넓고 쌓아 두신 지식이 대단하신 분이므로 잘 모르는 것이 있으면 이 홈에서 항상 전화를 들어 여쭙고 있습니다. 김 목사님 못지 않게 하나님과 관계가 깊고 깨달음도 많습니다. 다만 매사의 마지막 결론에 도달하여 판단에 이르게 되면 이 홈은 송 목사님과 서로 다른 것이 너무 많아서 소속은 물론 매사를 처리할 때 마치 맞서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다 해도 송 목사님의 양심과 노력과 중심과 신앙만은 항상 깊은 마음으로 존경하고 있습니다. 까마득하게 어린 이 홈을 상대할 때도 옳은 것을 두고 대화 의논하시지 무조건 지시하여 밀어 붙이는 일이 없습니다. 자세가 이러하기 때문에 서로 가는 방향은 아주 달라도 가장 많이 대화하며 배우는 분입니다. 송 목사님과 공회 격변기의 초기를 함께 했습니다. 이후로는 오늘까지 이 홈은 반대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송 목사님의 결정은 매사 결과적으로 거의 다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소속과 걷는 길이 다릅니다.

- 송종관 목사님
조용한 분이고 생각이 깊고 활동을 잘 하지 않습니다. 평소 대화도 거의 없기 때문에 전혀 알지 못합니다. 다만 행정 문제에 있어서는 가장 신중하고 가장 보수적이며 가장 움직임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꼭 필요한 순간이나 양론이 갈라 설 때는 한 쪽으로 소신을 밝힙니다. 조용한 분이어서 그 언행은 하나하나가 소리 없이 주변에 영향을 크게 미칩니다. 송 목사님이 움직였다 하면 모두가 오죽하면 그렇게 했겠는가, 또는 그렇게 신중한 분이니 예사 결정이 아니라고 인식하게 됩니다. 송 목사님은 이렇게 언행이 신중하기 때문에 누가 부탁해도 첫 반응은 바로 찬성하고 나서지 않기 때문에 마치 반대 쪽에 선 것처럼 오해하기 쉽상입니다. 그래서 송 목사님은 자신들의 적이 아닌데도 괜히 적의 위치에 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조차도 그들의 오해지 송 목사님으로서는 아직도 결정하지 않고 있을 뿐이라는 때가 많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이 홈은 매사 결정이 신중해야 할 때는 송 목사님 입장을 들어 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나 만일 결정을 뒤로 미룰 수 없이 시급할 때 송 목사님은 항상 옳은 결정에 반대 입장처럼 처신한다고 생각합니다. 송 목사님의 본심과 진심은 그렇지 않으나 그 순간에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될 때의 송 목사님은 옳은 쪽을 반대해서가 아니라 결정을 아직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반대 편에 설 수 있는 분입니다. 실제 공회 과거를 통해 그러했습니다. 한 가지 더한다면 아주 가끔 평소와는 달리 너무 민첩하게 대응할 때도 있습니다.



2. 부산공회 내부의 소속 문제
① 부공1
- 결정과 집행 과정
원래 부산공회 하나의 공회로 내려 오다가 이 홈이 제명 되어 부공3이 되었고 부공3을 제외하고 나머지 부산공회를 부공1과 부공2로 표현했습니다. 죽어도 서로 자기들만 부산공회라 해서 이름 가지고 싸울 것은 없다 해서 부공1 부공2로 붙여 드린 것입니다. 부공과 대공과 서공이라는 표현도 같은 이유입니다.
부공1이 서부교회 4층과 서성교회 측으로 나뉘기 전인 1990년대 10 년 동안에는 늘 의사 결정 과정과 집행 과정이 정해 져 있었습니다. 4층에서 판단하고 서성이 집행을 했습니다. 필요하면 함께 의논하고 함께 집행하였으나 전체적으로 역할 분담의 주요 내용이 그러했습니다. 4층에서 공회적 문제를 상대할 때는 거의 직접 하지 않습니다. 꼭 해야 한다면 서성의 보조 또는 지원 차원에서 구 장로님이나 김춘도 목사님이 나섰습니다. 서성이 집행을 할 때는 인산 이재순 목사님을 통해 공회의 원로들을 주로 부탁했고 젊은 층은 김춘도 목사님이 주로 맡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꼭 필요할 때나 또는 막히는 경우가 있으면 해당 목회자들에게 직접 부탁하는 수도 있으나 전체적인 구도는 이러합니다.

- 세 분과 관계
어떤 때는 서성에서 직접 전화를 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인산을 통해 세 분에게 필요한 지시가 내려 갑니다. 물론 지시라는 미개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미리 4층에서 집행 기관인 서성을 통해 각 목사님들을 설득할 때 구체적인 방법까지 알려 드립니다. 김응도 목사님은 4층이 차기 목회자로 모실 수 있는 분 중에 한 분입니다. 김 목사님께는 4층이나 서성에서 다음에는 아무래도 목사님이 오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라는 귀뜸을 드리게 되면 이후부터는 어지간한 것은 알아서 움직인다는 이런 식입니다. 송종섭 목사님께 무리한 부탁을 할 때는 자꾸 반복적으로 귀찮도록 애걸하면 어지간하면 백 목사님의 자녀들을 상대로 맞서지 않는 분이기 때문에 된다고 파악하고 있습니다. 송종관 목사님은 목에 칼이 들어 가도 잘 움직이지 않습니다. 대신에 명분과 체제 유지를 선호하는 분이기 때문에 나머지 분들을 먼저 타협해서 다 맞춰 놓으면 혼자서 끝까지 반대할 분이 아니므로 최종적으로 그냥 따라 오든지 최소한 묵인 동조가 된다고 생각하여 상대했습니다.
세 분과 부공1의 관계는 세 분이 들으면 펄쩍 뛸지 모르겠으나 백 목사님 사후 10여 년 정도 부공1로서는 비록 불편하기는 했으나 세 분을 움직여 공회를 움직이는 데 별 불편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4층은 정보와 인력과 대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백 목사님의 자녀라는 점과 과거 공회의 정통성 등을 두고 2층 서 목사님 중심의 부공2와는 견줄 바가 아닙니다. 그래서 부공1은 1990년대 10 년간 부산공회의 정부 여당이었고 부공2와 서부교회 2층은 야당이며 재야였습니다. 이 시기에 정부 여당의 청와대는 4층이었고 서성은 국무회의였으며 이재순 목사님은 총리나 여당 대표 정도였고 세 분은 이재순 목사님의 최측근 핵심에 있었습니다. 김춘도 목사님은 각목 들고 전국을 누비는 행동 대장이었고 나머지는 행동책들이었다 하면 억울할까요? 세 분 목사님들의 언행은 이 홈만 아는 정도의 내막이 있고 김춘도 목사님의 활동부터는 그 분이 전국을 다니며 행동으로 보였기 때문에 모르는 분들이 없을 듯합니다.

- 부공1의 인사관
백 목사님 생전부터 신앙의 큰 흐름을 참고할 때 시대의 자연과 농사와 정치를 통해 비유도 하시고 비견도 많이 하셨습니다. 갈수록 많이 느껴 집니다. 4층은 박근혜 씨와 닮은 점이 많습니다. 결국 정권을 잡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으나 많은 면에서 흡사합니다. 자기 관리나 실력이나 견문이나 훌륭한 아버지로 인해 자연스럽게 내려 지는 기대나 흠모나 쏠림 현상이 그러합니다. 그리고 적들에게는 대단히 혐오스런 원수겠지만 우호적인 이들에게는 그 이상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 것이 4층의 1990년대 10 년이고 이 것이 박근혜 씨의 최근 10 년이라고 생각 됩니다. 두 분의 공통점 중에 하나는 자기 관리가 철저하면서 부모를 평생 보면서 아주 어릴 때부터 일반인이 갖기 어려운 안목, 부하들의 충성과 실력 파악에 남 다른 파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배신을 가장 싫어 합니다. 한 번 믿으면 자신을 전부 다 맡깁니다. 그러나 함께 갈 수 없는 면이 보이면 외부적으로는 별 표시가 없는데 깊은 내면의 신뢰 관계와 협조는 소리 없이 유리 병 금 가듯 가게 됩니다. 재봉합은 없다 할 정도입니다. 물론 큰 단체의 많은 사람을 지도하기 위해 재봉합을 하는 수도 있고 표시를 내지 않을 수도 있으나 과거와는 확연하게 다른 내면을 가집니다. 바로 이 점이 단점이면서 장점입니다. 정치판은 개판인데도 정치판에서 이 두 분의 여성 지도자들은 정치 이전에 인간의 한 차원 더 높은 인력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일반 정치판의 정치인들의 사고방식과 계산 가지고는 이 분들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이제 10 년 이상의 공개 활동 때문에 알게 된 이들도 많으나 문제는 남들이 알지 못할 때 알아야 대처를 해도 하고 손을 잡아도 잡고 싸운다면 쉽게 이길 방법이 나올 것입니다.
이 홈은 박근혜 씨의 내면과 정치계 활동은 이 노선에 자연계시로 생각하여 다른 사람에 비해 더 주목하고 살펴 왔습니다. 물론 세상과 신앙은 같지 않기 때문에 올해 12월 대선에 박근혜 씨가 당선 된다 하여 4층이 2층을 이길 징조라고 생각하지는 않으나 늘 양 쪽을 비교하는 면은 있습니다.
부공1의 서성 쪽은 집행만 맡는 정도여서 언제든지 바뀔 수 있고 싸우다가 돌아 서면 그뿐입니다. 그러나 4층은 철학이 있고 신앙이 있으며 인격이 있고 소신이 있습니다. 자존심을 내 주는 것보다는 죽는 것이 쉬운 쪽입니다. 서 목사님이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면 그 다음부터는 세월을 노래하고 낚시하는 식이면 4층은 목표 의식과 꺾여 지지 않는 투쟁력이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힘으로 결판 날 싸움이었습니다. 1980년대에 박근혜 씨의 재기는 아무도 예측한 사람이 없습니다. 국회의원이나 한 번 할 정도로 봤습니다. 올해는 모두가 제1순위로 보고 있습니다. 1990년대의 4층은 서부교회와 공회를 주도했습니다. 교회기 때문에 급작스런 변동은 어렵지만 세월은 4층을 돕고 있었습니다. 2000년대는 그 반대입니다. 그러나 현재 75 세의 서 목사님이 10 년 이상을 근무하는 것은 어렵다 보이고 현재 2층은 4층이 미워서 2층이 많고 서 목사님을 처음 모실 때처럼 존경해서 따르는 숫자는 적습니다. 서 목사님의 최 핵심 측근들이 서 목사님 없는 데서는 ‘서 목사님’이 아니라 ‘서 목사’로 지칭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바로 이 시기에 이런 엉뚱한 설명에 시간을 많이 보내는 이유는 세 분의 지난 20 년의 처신과 최근 10 년의 처신 역시 이런 점에서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 분은 기본적으로 4층의 내심적인 내부인이 아닙니다. 상황 전개에 필요하여 배치하고 부탁하는 우호적 외부인입니다. 부공1 핵심이 앉으면 세 분 목사님은 활용 대상이지 인격적 내부인이었던 시기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 면을 두고는 인산도 마찬 가지입니다. 부공1의 외곽에 겉 도는 분들은 부공1의 지도자들이 이재순 목사님을 부공1의 대표로 총공회 모든 사명을 맡은 분으로 대우하니까 실제 그런 줄 알지만 세 분 목사님보다 이재순 목사님은 부공1 지도부가 더 신임하지 않습니다. 인산과 부공1의 핵심 관계는 전략적 동반자입니다. 일본과 한국이 북한을 상대하듯이, 과거 북한이 소련과 중국을 활용한 것과 같습니다. 이재순 목사님과는 단 한 번도 신뢰 관계를 형성해 본 적이 없습니다. 서부교회로 1989년 9월에 모실 때부터 그러했습니다. 모신 직후부터 한 달 간 양측은 치열하게 탐색전을 하면서 난타를 주고 받았습니다. 인산은 남정으로 나갈 분들과 대구공회 지도부를 팔면서 부공1 지도부를 쳤고, 부공1은 서부교회 주도권을 가지고 인산의 방망이를 부러뜨렸습니다. 그 후 오늘까지 내려 오는 것입니다.
부공1의 인인관계는 한 번 맺으면 목숨을 걸지만 한 번 금이 가면 유리 금이기 때문에 두 번의 기회는 없습니다. 그리고 외부 다른 유리와는 함께 있다 해도 한 유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사실 백 목사님도 그렇게 보입니다. 그러나 그 분의 판단은 미리 보고 있고 또 전혀 다른 유리를 녹여서 붙이는데 4층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 번 나뉘었다 다시 합하면서는 화학적 결합으로 간 경우는 없습니다. 바로 이 대목 때문에 4층은 신앙 단체임이 분명하고 정치 단체가 아닙니다. 그 대신 현재 정치 단체화가 되어 있는 서부교회 교인들과 총공회 내에서 4층의 과거 지배력은 회복도 난망이며 이런 면에서 총공회와 서부교회는 가장 훌륭한 지도자를 모시고 과거처럼 단결하고 하나 될 가능성이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4층은 이왕 서부교회와 총공회를 주도해야 할 사명을 가졌고 실질적으로도 가장 좋은 대안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단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백 목사님처럼 녹이는 실력을 갖추든지 그렇게까지 할 정도가 아니면 최소한 서부교회 전체와 총공회 전체를 주도할 지도층으로서 각양각색의 목회자와 구역장들과 교인들에게 노선에 근본 문제가 없는 한 포용해야만 백 목사님께서 1989년에 맡긴 사명이나 과제를 해결할 듯싶습니다. 사실 이 홈은 처음부터 서부교회나 총공회를 주도하는 그런 사명은 받은 적이 없습니다. 현재 홈을 통해 활동하는 연구가 전부입니다. 그래서 이 홈은 속이 좁고 언행이 과격해도 사실 사명 수행에 큰 어려움은 없으나 4층은 이 홈과는 차원이 다른 곳입니다.
결론적으로 세 분 목사님은 부공1일 수가 없습니다. 부공1의 소속 목회자가 되려면 부공2에 간첩으로 파견을 받아 가는 방법은 있습니다만 부공1은 그 본질상 그런 전법은 쓸 수가 있을지라도 배제합니다. 정공법이 부공1입니다. 6.25 전면적을 벌이거나 지리산 유격대를 활용하면 했지, 부공2처럼 부공1 주도 하의 공회에 10여 년을 잠복해 있다가 어느 날 국내 좌파들처럼 남한의 민주화를 앞 세워 평양인으로 활동하는 그런 일은 하지 않습니다. 1999년, 부공1의 송 목사님과 부공2의 김윤수 목사님은 부산공회 전체의 젊은 목회자들 안수 문제로 바쁘게 협상을 진행했습니다. 이 때까지는 확실하게 세 분 목사님은 부공1의 수족이었습니다. 김윤수 목사님은 몇 명의 김 목사님들과 서 목사님 파에 속해서 안수 건을 기회로 남한의 공산정권 수립처럼 그런 일을 도모했고 남한 좌파가 비록 공산당은 아니나 과거 남한 사회의 개념에서 본다면 그렇게 볼 만한 성향으로서 1997년에 정권을 잡았듯이 김윤수 목사님은 바로 그 시점부터 시도하여 부산공회 내에서 서 목사님이라는 인물과 김효순이라는 인물을 중심에 두고 부산공회 정권을 1999-2000년 사이에 잡게 됩니다. 한국사회는 이 시기가 과거 좌파의 집권으로 인해 국가적 혼란이 극심할 때입니다. 남파 간첩을 잡는 정보부가 간첩을 잡는 기술자들을 다 솎아 내버리고 남한에는 북쪽에서 보낸 간첩이 없다 하던 시절입니다. 과거 빨갱이라던 인물들이 이 시기부터 남한의 애국자가 되고 사회와 정부 안에까지 국가 집권 세력으로 진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 시기가 부산공회에는 서영호 목사님이라는 공회 내의 극좌파 운동이 총공회 본부에서 실권을 가지고 서부교회와 총공회까지를 주도하는 시기입니다.

② 부공2
이론적으로는 부공1과 부공2를 오가거나 이중국적을 취득하거나 중립국 출신으로 남북한을 오고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공1이 남한이 아니고 북한 평양 같은 사고방식을 가졌고 그 존립과 운영 본질이 그렇습니다. 부공2가 부공1에 비해서는 평양 같은 좌파지만 남북으로 말하면 부공2는 남한과 같은 체제입니다. 부공2에는 골수 부공2인 서파의 김 목사님들도 있고 그 분들을 추종하는 몇 분들도 계시나, 부공2는 태생적으로 세 분 목사님의 계열인데도 세 분 목사님의 처신 때문에 부공2에 소속하고 정식 활동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여러 형태가 다 모여 있습니다. 남한처럼 정권을 비판하고 심지어 남한의 헌법과 국가 출발부터 비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에는 그런 개념이 없습니다.
김윤수 목사님이 젊은 목회자의 안수라는 사건을 가지고 부공1에 있던 목회자들을 부공2로 대거 유치했습니다. 수족이라 할 수 있는 젊은이들이 대거 넘어 가면서 어느 날 총공회의 대세가 부공2가 되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세 분 목사님과 그 주변의 비슷한 처지의 목사님들이 부공1은 대세가 기울었고 또 본래 투쟁하던 기본 명분과 신앙 순수성도 퇴색 되었고 그런데 부공2에는 서 목사님과 그 측근만 있던 시기에서 이제 부공1에서 넘어 간 분들이 대세가 되어 적어도 숫적으로는 오히려 과거 부공1 출신들이 주도를 하거나 최소한 일방적으로 당하지 않을 상황이 되었습니다. 부공2는 부공1을 대거 유치한 것이 부공1의 핵심 지도부를 타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어제까지 자신들을 토벌하던 일제 순사를 아무런 전향 절차도 없이 받아 들였고, 그들을 따라 원로 목사님들이 들어오게 되자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마치 이제 전체 총공회가 그들이 앉은 그 자리가 된 것처럼 만들었습니다. 새로 오신 분들은 그 자리에 앉는 것 자체가 그렇게 힘들고 불편했으나 부공1의 지도부의 수족 노릇 10 년에 목사 이름도 공회도 노선도 신앙도 모든 것도 다 엉망이 되었으므로 부공2로 온 것이고 부공2에서 부공1 출신이 대세이므로 해방 후 친일파를 다 숙청할 수 없는 것처럼 그런 상황이 고착 된 것이 현재 부공2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부공1 출신이라는 사실 자체로 처벌하지는 못해도, 또 처벌할 실익도 없는 상태에서, 부공1에서 넘어 온 원로들을 모두 서 목사님과 같은 반열에 올려 놓으면 부공2를 위해 빨치산 운동을 했던 김 목사님들은 어느 날 부공1의 원수들 밑에 수하가 될 상황입니다. 그래서 부공1 출신의 원로 목사님들을 대거 받아 들여서 부공1과의 싸움을 확실하게 승리하고 그 표시까지 내는 한 편, 그 원로 목사님들이 부공2 안에서 자리 잡고 어른 노릇하도록 두지는 않았습니다. 마치 대구공회와 부산공회가 1990년 3월에 나뉘어 질 때 부공2의 핵심 목사님들이 부산공회에 참석하는 것이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부공1의 지도부에 말 없는 승인이나 묵인이 있어야 가능했기 때문에 연구실을 드나 들며 인사말을 가지고 가입 여부를 받았던 바로 그 상황의 재판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애매하게 지나 가면서 굳어 지게 되자 젊은 목사님들은 부공2에서 새로운 날을 기대하고 서부교회의 혜택과 부공1 지도부보다는 나은 인사 이동의 가능성 등을 보며 새로운 앞 날에 적응했지만 세 분 목사님처럼 원로 목사님들은 이만기 목사님 한 분을 빼 놓고는 모두가 젊은 목사님들처럼 그렇게 할 안면도 아니고 처지도 아니며 실효 면까지 고려한다면 부공2의 일반적인 위치는 가지고 부공2의 양성원 등 원로 대우를 하는 경우는 받아 들이면서도, 한 편으로 부공1의 행사가 있으면 개인적 인연이라는 명분으로 조금 활동하여 여기서 조금 또 저기서 조금씩을 모아 가며 노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③ 결론은
세 분 목사님은 부공2 소속이 맞습니다. 비록 부공2가 결의를 통해 그들 소속이 아니라 하고, 부공1이 결의를 통해 그들 소속이라고 할지라도 이 홈의 내심은 세 분의 2000년 이후 지금까지의 입장은 부공2 소속입니다. 부공1과는 과거 인연 때문에 개인적으로 행사에 참석합니다. 현재로 볼 때 부공1은 가능성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사 어떻게 될지 백 목사님 사후의 급변적 상황을 여러 번 겪었습니다. 그래서 부공1의 가능성은 없다고 하면서도 정말 없다 할 수는 없다는 것이 원로 정도가 된 분들의 경험입니다. 그런데 부공1에는 신앙으로 비슷한 분들이 많고 백 목사님의 가족들의 부탁이 간간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공1을 끊을 이유도 없고 오히려 실익이 있다고 해야 할 입장입니다.
객관적 설명을 위해 표현을 은혜 중심보다 실무 중심으로 적었지만, 세 분 목사님들 때문에 특히 송종섭 목사님 때문에 백 목사님 가정의 가족적인 행사들이 가능할 만큼 상호 관계는 깊습니다. 그러나 소속은 부공1에서도 송 목사님이 부공2인 줄 알고 초청하고 있습니다.






























>> 공회인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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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제 질문이 답변하시기에 난처하시다면 답변 안하셔도 되겠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이목사님의 고견을 구하고 싶어 질문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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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윗 분의 말씀의 요지는 충분히 이해하고 저 또한 동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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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응도 목사님, 송종섭 목사님은 이영인 목사님께서 아시듯이 부공2에서 인정하고 있는 공회 직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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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적으로 살펴보더라도 그 두 분때문에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공회혼란이 더 극심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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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목사님께서 아시듯이 당시 아현동교회 김응도목사님, 청량리교회 송종섭목사님, 동문교회 송종관목사님의 삼각편대는 이제 다시 보지못할 최강의 정치 협력체계를 구축하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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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분들이어떤 일을 하셨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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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응도 목사님, 지금 구체적 직함은 밝히지 않겠으나 중책을 가지고 계시죠? 당시에도 그 분은 중립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과연 그랬을까요? 부공1에 계시다가 갑자기 부공2로 옳기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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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송종섭 목사님, 이때 부공2에 상당한 공적을 남기십니다.. 당시 세 자매의 정치역량은 당시 어뚱하게도 사직동교회로 향합니다. 당시 담임목사님, 구민완 목사님입니다. 이 교회는 공회 혼란기에 중립노선이었습니다. 제가 알기에도 공회에 들어오라고 많은 압력을 받은줄 압니다. 그 와중에 송목사님, 참 많은 역량을 발휘하시죠... 사직동교회 담임목사님, 개척나갑니다.. 그 후 사직동교회 거의 공중분해수준이 됩니다...
: 후임인선에도 송목사님 다시한 번 힘을 발휘하셔서 부공2로 소속시키고 부공2 교역자가 오게 합니다. 그 중에서도 송목사님계열의 교역자가 오게 하도록 하는것도 잊지 않으셨구요..그리고 몇년후 이해하기 힘든 교역자 이동이 발생합니다... 여기에 세 자매의 협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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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도 김응도 목사님, 중립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근데 서울에 또다른 중립교회인 사직동교회를 송목사님과 함께 부공2로 소속시켜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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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더 말씀드릴까요? 송목사님, 집회장소에도 탈월한 방향을 제시해 주셨죠? 부공2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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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응도 목사님, 송종섭목사님. 서울공회 묘지건에서도 부공2의 직함을 가지고 참여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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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성원에서도 부공2 경건회 인도하시죠, 강의 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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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종 공문에 부공2 직함을 가지고 도장 찍으시지... 더 이상 뭐가 더 필요합니까?
:
: 제가 알고있는 '일반적인' 내용은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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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분들이 정말 중립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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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라리 부공3이 중립이라고 하면 믿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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