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천교회 주일학교의 그 후 몇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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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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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5 00:00
1949년 7월의 뜨거운 여름, 교장실에서 1학년 여학생으로서 목숨 걸고 국기 배례를 하지 못하겠다고 버틴 신소남, 그 분은 이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교회를 다니지 않았습니다.
책을 출간한 것은 50여 년이 다 되던 1997년 말입니다. 책이 나간 지 얼마 지난 어느 날 위천의 옛 교인과 통화를 하다가 신소남의 소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위천은 작은 다리를 기준으로 큰 마을이 두 개인데 그 제일 중심에 상점을 하고 계셨습니다. 연세 60 세 안팎이 되셨고 그 때 일을 새로 여쭈어 볼 수 있었습니다. 책을 이미 출간한 상태에서 그 이야기의 한 중심에 있었으며 설마 그렇게까지 했겠느냐고 반문이 나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당시 이 책에 관련 된 인물들을 아는 대로는 다 찾아 만나 뵈었고 이미 쌓여 진 증언과 자료는 책으로 출간할 수 있는 확신에 섰기 때문에 더 이상 관련 당사자들을 찾지 않았습니다.
신소남의 생존과 거처를 알게 된 저는 가슴이 몹시 두근거렸습니다. 책의 내용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허위 증거에 대한 책임이 있고 이 땅에서부터 이를 바로 잡으려면 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책임이라는 단어를 안다면 말이란 함부로 할 수 없고 더우기 출간이라는 것은 실적을 위해 서두르거나 해 놓고 보는 일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시험을 치르 가는 학생처럼 무겁고 긴장 된 마음으로 찾아 갔습니다.
당시 일을 처음부터 다시 듣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이야기가 출간 된 것도 모르고, 출간 된 책을 증언해 주셨던 분들과는 소식을 끊고 살아 온 분으로부터 당시를 다시 듣는 그 순간은 마치 중요한 시험을 치는 것과 같았습니다. 준비는 충분히 했으나 혹시 한 문제라도 틀리게 될까 하는 염려입니다. 다행히 모든 시험 문제는 100 점이었습니다. 출간 된 내용과 확실하게 일치 되었습니다. 얼마나 다행스러웠든지! 그 책을 출간할 때 증언해 주신 분들이 기억력과 진실성이 확실했기 때문에 전혀 서로 연락이 없었던 신소남 당시 당사자와 증언들의 내용이 일치 되어 너무 감사했습니다. 책을 적어 출간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기초 사실이 잘못 되면 소설이 되기 때문입니다.
신소남은 그 때를 잘 기억했습니다. 새로운 증언은 한 가지였습니다. 그 일이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교회를 다니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또 한 사람의 주인공인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나 이미 백 목사님의 전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개명교회의 전설적인 환란을 겪었던 분들 중에도 백 목사님이 개명교회를 떠난 뒤에 불신자로 돌아 선 분들이 한두 사람이 아니고 또 신앙생활은 해도 저런 분들이 과거 그런 신앙을 가졌다니 믿어 지지 않는다 할 만큼 허무한 신앙들이 많아서 신소남의 불신 생애를 두고 그리 큰 충격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1949년의 그 날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교회를 다니지 않았고 세월이 지나 임 씨라는 분과 불신 결혼을 했고 평생 교회와 아주 담을 쌓고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사시는 곳이 위천 중심지였고 또 집안의 어른이 김현봉 목사님 계통에 가서 머리를 깎고 목사님이 되셨으며 이 분이 거창 집회를 꼭 참석했기 때문에 백 목사님과 공회의 이후 소식을 어느 정도 파악은 하고 계셨습니다. 또 고신과 공회의 분리에 대해서도 그 본질을 알고 있었습니다. 시골에서 가게를 하면 사시지만 예사로운 분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교회를 다시 나가게 된 이유는 몸이 좋지 않고 인생 가야 할 때가 되니 옛 신앙이 생각 났다고 하셨습니다. 위천교회는 공회가 제명 되면서 고신에 남았고 공회 교인들은 위산교회를 개척하면서 좀 떨어 진 곳에 예배당을 마련했기 때문에 신소남은 옛날 다니던 위천교회를 그대로 출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1949년의 교장실 투쟁이 있고 나서 곧 바로 교회를 다니지 않게 된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제 50여 년이 흐른 노년에 교회를 일단 새로 출발하게 되었다 해서 얼마나 다행스러웠습니다.
대화 중에 또 한 가지 알게 된 것은 저와 제일 가까운 친구 중 하나가 바로 신소남 모친의 아들이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거의 한 반에서 함께 공부했고 가장 가까왔으나 서로의 성향이나 활동 방향이 너무 달라서 별로 친할 수 없었는데 이상하게 친했습니다. 그 친구는 학교를 다니면서 늘 학년 전체에서 제일 잘 난 학생이었습니다. 반에서 반장 정도가 아니라 늘 전교 회장이나 그런 입장을 가진 대표 인물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세상 살아 가는 세계가 너무 달라서 다시는 보지 못할 줄 알았는데 대학에서도 또 군에서도 여러 모습으로 뜻 깊게 만나고 알고 사는 인연이 이어 졌습니다. 심지어 지금 이 홈이 관련 된 거창의 집회 장소로 들어 가는 입구의 주유소가 그 동생이 운영하고 있어 집회 장소의 난방유 배달도 그 동생이 오고 있습니다. 집회를 갈 때나 교역자회나 양성원 때문에 집회 장소를 찾을 때마다 위천 입구의 삼거리에 있는 그 주유소는 눈으로 보지 않고 지나 갈 수가 없습니다. 늘 신소남, 위천교회 주교 사건을 기억하며 그 친구를 눈에 그리며 지나 다니고 있습니다.
다시 몇 년을 지났을 때 이 번에는 그 국기배례 사건의 또 한 당사자인 진학일 목사님이 전화를 해 오셨습니다. 얼마 전에 우연히 그 책을 접하게 되었다 하시며 그 동안 미국에 계셨다 하셨습니다. 책의 내용에 극적인 고비가 많은데 일반인들이 읽으면 설마 그렇게까지 전개가 되었을까 의구심을 가질 정도일 것이나 정말 구구절절이 그러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자세하게 당시를 재구성하게 되었는지 책을 출간했던 과정까지 세세히 질문을 했습니다.
진 목사님도 이 책에 너무 중요한 인물인데 미국에서 목회를 하고 계셨기 때문에 연락을 할 수 없었습니다. 진 목사님도 국기배례 사건에 관련 된 줄 알기 전부터 잘 아는 분이었습니다. 물론 국기배례 사건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천세욱 목사님은 초등학교 6학년부터 제 담임이었고, 그 첫 아들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지나 지금까지 가장 친한 친구입니다. 지금 영국에 유학하여 박사 학위를 받고 서울에서 목회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관계를 설명해 나가려 한다면 이 노선에 옛날 분들이나 중요한 분들과는 다 이런 관계로 엮어 주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 이 노선 연구를 위해 주신 특별히 미리 짜 맞추어 두셨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다시 몇 년을 지난 얼마 전에 류차인 목사님이 전화를 하셔서 당시 이 문제를 대형 사건으로 키워 버린 위천지서 담당 경찰을 얼마 전에 우연히 만나게 되었는데 부산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계셨고 그 때 일을 잘 알고 죄송하게 생각하더라는 등의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공회의 국기배례 사건은 이 노선의 내용과 성향 그리고 교회사적 위치와 의미를 볼 때 너무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노선은 역사와 계통 그리고 속에 담고 있는 실체의 의미와 위치가 너무 특별하여 이런 식으로 발굴하고 출간하여 알려야 할 내용들이 무수합니다. 이 노선에 인재들이 있고 이런 면의 가치를 알아 서로 중첩 되지 않는 분야를 재조명하고 역사와 교계 앞에 증거를 하며 이 노선의 여러 차원을 잘 소개한다면 우리는 우리 것을 알게 됨으로 설교록 내용을 더욱 깊이 실감 있게 깨닫게 될 것이고 또 전함을 받는 사람들은 복음의 실천 현장을 통해 복음의 내용과 그 세계를 보다 알기 쉽게 이해할 것이므로 여러 기대 되는 바가 많습니다.
할 일은 무수한데 돈 되는 것이 아니면 아예 움직이지 않고, 명예나 교권에 관련이 없는 것이면 역시 외면해 버리고, 기초 자료의 수집이나 연구나 증거에는 너무 혹독하고 매정하리 만큼 움직이지 않으니 탄식입니다. 이 노선이 어떤 노선인데 이 노선을 어느 인물 혼자서 독차지를 다해 버리도록 버려 두다니! 그리고 출간한 이유도 모를 소모적 혼란적 저서나 한 번씩 나타 납니다.
지금 백영희 신앙생애를 출간하기 위한 막바지 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국기배례 사건은 백 목사님 생애에 수도 없는 사건 중에 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제대로 그 생애를 구성하려면 수천 페이지가 넘어야 하겠는데 그렇게 하다가는 오히려 많아서 불리하고 불편해 질까 해서 아주 간단히 요약할 생각입니다. 국기배례 관련 책과 같은 책들을 여러 권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번에는 최대한 다른 분들에게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 교회 교인들이나 이 홈의 회원들이 앞으로 출간 될 책에는 대개 저자로 나서게 됩니다. 공회의 교회사적 의미가 큰데 왜 자기 연구는 외면하고 이 좁은 나라 안에서도 50 개가 넘고 이제 곧 100 개가 될 타 교단 신학대학에서 남 공부를 하고 있을까? 원어를 배우고 신학이론들을 듣고 학위를 받아 봐야 신앙에도 손해고 이 노선과는 그 공부한 것만큼 멀어 지고 희석이 되어 흐려 지는데도 불구하고.
'총공회 소개'라는 책자로부터 시작해서 이미 일반 평교인들이 이 노선 관련 책들을 출간했고 곧 다른 중요 책들도 계속 출간을 하게 될 터인데, 소위 이 노선의 지도부요 핵심이요 이 노선을 다 알고 있다고 자신하면서 스스로 신학에 전문가이며 학위를 가지고 논문을 적는다는 분들은, 일반 교인들이 나서서 공회 연구서를 출간하게 되면 여러 면에서 많은 책임이 따를 것입니다. 공회 관련 연구서는 수백 권이 아니라 적어도 수천 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본 연구소의 입장이며 판단입니다.
'역사 한 토막'이라고 표현하실 윗 글 때문에 이런저런 생각이 좀 떠 올라서 몇 가지를 적었습니다. '왜, 신소남은 그 사건을 승리한 이후 신앙을 포기했을까?' 사실 이 과제를 우리 전체 공회 교인들께 던지고 싶었습니다. 공회의 오늘 모습을 미리 귀뜸한 일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의 신앙의 주력 방향을 결정하는 데도 심각하게 고려할 문제입니다.
개인적인 일을 모처럼 많이 적은 것은 이 홈에서 공회의 역사적 위치와 함께 그 구체적 증거를 제시할 때 괜히 큰소리를 치거나 짐작과 희망 사항을 가지고 실제 있었던 일처럼 글을 적는다고 오해할 분들이 계실까 염려가 되어 이를 좀 해명하고 싶었습니다. 조금 더 들어 가면 자기 자랑 정도가 아니라 자기 전기를 적으려 했다고 들고 나설 분들도 계실까 해서 늘 조심하고 있습니다. 제게 이런 특별한 관계를 수 없이 주신 것은 오늘 이 곳에서 이런 연구에 전념 하도록 미리 마련해 주셨다고 생각하며, 이 글의 또 하나의 결론은 이 노선은 예사롭지 않으며 이를 증명하는 자료들은 일반 연구 발표들과 달리 사실 관계가 늘 충실함을 말씀 드리고 싶었습니다.
>> 산곡백합화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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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기배례거부, 그 의로운 승리의 역사 한토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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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기배례는 한 나라를 상징하는 국기를 인격체 대하듯이 예를 갖추어서 절을 하는 것을 말한다. 국기 자체는 물건이고 단지 보통 물건과는 달리 나라를 상징하고 표시하며, 이 상징물을 대하면서 자기가 살고 있는 터전인 조국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였던 선조를 생각하며 애국심을 가져보려고 만든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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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국기에 절을 하고 이를 숭배한다면 이는 "너를 위하여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라"(제2계명)에 위반되므로 문제가 되는 것이다. 국기를 대할 때에 산 사람 대하듯이 절을 하고 예를 갖추는 것은 원시적 인지에서 오는 행동일 것이다. 미개시대에 해나 달을 보거나 큰 산을 보고 기암괴석를 보고서 이를 숭배하는 것이나 본질적으로 유사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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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교단에서도 투쟁을 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 총공회 공회에서 국기배례 문제에 대해 지난날 환란을 당하고 이를 승리한 역사는 특심하다. 국기배례 문제를 가지고 우리 공회의 주일학교 학생들이 계명을 지키기 위해 악의 세력과 싸운 고난은 역사적 사건이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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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국민학교 학생들이 학교 조회나 행사시에 국기배례를 거부한 사례를 보면 어린 주일학교 학생들이 피를 흘리며까지 국기배례에서 승리하였다. 역사적으로 보면 국기배례문제 때문에 고난을 당한 장소는 주로 학교나 군대일 것이다. 우리 공회 출신 신자들 중에서 군대생활시절에 국기 배례- 군대식 국기배례방식인 '국기에 대해 받들어 총!'- 때문에 고생을 해 본 추억을 가진 분들이 너무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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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공회에서 교회적으로 국기배례문제 때문에 고생한 사례는 많을 것이지만 특히 그중에서도 제천 남천교회나 거창 위천교회에서의 사건은 백 목사님의 설교에서 자주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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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기배례를 거부한 행위는 실정법상으로는 형법의 국기비기죄를 구성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몇몇 법원에서는 논란이 되었었다. 당시 최종심인 대법원에서는 국기경례 거부행위는 형법상 국기비기죄 내지 국기모욕죄를 구성하지 아니한다고 하는 유사한 취지로 판결했다. 당시 우리 공회 소속 교회주일학교 학생들이 다녔던 국민학교에서 국기경례를 거부하여 고발당하여 검찰에서 기소했으나 최종심인 대법원에서는 무죄 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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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어느 여고에서는 국기경례 거부한 학생들의 행위는 형법상 국기비기죄 등에 해당하는 위법한 것이라고 유죄판결을 한 사례도 있다. 이를 보면 국기경례 거부행위가 실정법에 위반된다고 보는 입장과 위반되지 않는다고 보는 입장으로 법원에서도 판결에 따라 나뉘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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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국기배례거부행위가 형법에 해당되는 범죄로 본다면 이는 인간법과 하나님의 법이 충돌하는 영역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법에서는 국기배례를 제2계명에 위반되는 죄로 인정하고, 인간법에서는 그 반대인 국기배례 거부행위를 위법행위로 보게 되므로 서로 상반되어 충돌되게 된다. 하나님의 법에 위반되는 인간법은 산산히 가루처럼 깨어질 것이다. 마치 집 채만한 바윗돌을 조그마한 사접시위에 올려 놓으면 사접지가 어떻게 될 것인가. 국기배례 거부 행위를 유죄로 판결하는 판사나 국기경례를 거부하는 행위를 징계하는 학교 선생이나 군대 상관 또한 사접시 처럼 한 움큼의 돌가루로 깨어질 것이다. 피조물이 창조주를 거역한 것이야말로 산산히 가루로 부서져 돌가루 먼지로 공중에 흩날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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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가 흐른 이제와서는 국기배례거부가 형법 조문에 위배되는지는 법학계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고 형법상 국기비기죄 등은 악법이라서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견해까지 등장한 것을 보면 인지는 세월이 흐르면 발달하여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국기경례 거부행위가 위법하지 않다는 대법원 판결 이후에 당시 정부는 예하 기관들에게 국기에 대한 경례 대신에 가슴에 손을 얹는 방식으로 국민의례를 변경할 것을 하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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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 이 홈피상의 '소식란'에 올라온 글 중 백영침 목사님의 소개글에서 제천의 주일학교 학생의 국기배례 거부 승리 사건에 대해 언급하고 있어서 여기서는 추가하는 의미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참고로 백영침 목사님의 스승이 백영희 목사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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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에서 우리 공회에서 국기배례에 대해 싸운 주일학교 학생들의 의로운 승리 한 토막의 역사를 백영희 목사님의 설교에서 찾아 묵상해 본다. 이미 아래 사건은 우리 공회 신자라면 익히 잘 알고 있을 것이지만 외부자를 위해서 이미 알고 있는 역사를 소개하고자 한다. 주일학교 국기경례 거부 승리 사건은 본 홈 페이지에서 출간한 '국법을 바꾼 주일학생' 등에서도 자세히 소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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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위천교회 있을 때에 그래 국기배례 문제가 있었는데 국기배례를 시키려고 그 교장이 심히 애를 써 가지고 그렇게 하나 학생들이 국기배례 안 했습니다. 안 하니까 개인 개인 데려다 놓고 이러다가 나중에는 하도 화가 나니까 때려서 뭐 교무실에 피가 막흥건히 고일 만치 아이들이 맞고 피를 흘리고 이렇게 했었습니다. 그래도 항복 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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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니까 나중에 가서 그래는, 지금은 무기가 쌨지만 그때 무기 없을 때요. 바로 해방 직후니까. 무기 없을 때인데 서에서 경관들이 무기를 가져와 가지고 막 위협을 하면서 '예수 믿는 학생들 이리 나오라' 다 나왔다 말이오. 쫙 다 나오니까 '여게서 국기에 대해서 절할 학생들은 들어가고 절하지 아니할 학생들은 여기 섰거라' 하나도 안 들어가고 딱 섰다 말이오. 이러니까 그때 뭐 부장이 끌려가서 서에 가 가지고 좀 구류도 살고 뭐 이래 했어. 그래도 항복 안 해요. 안 하니까, 교장이 하는 말이 왜 화가 났느냐? 우리 학교에서는 엿새 동안을 계속 가르치는데 교회서는 찍해야 일주일 동안에 한 시간밖에는 안 가르치는데 한 시간 가르치는 그 말은 듣고 우리 말은 안 듣는다고 그래 분해 가지고 지금 그렇게 뭐 때리고 피가 흐르기까지 야단이 났다 말이오. 하나님 말씀은, 하나님 말씀은 전지 전능의 말씀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는 전지 전능의 말씀이기 때문에 이 말씀을 그 속에 박아 놓으면 천하에 이 학문을 다 들어 덮어도 뚫고 올라옵니다."(백영희, 요한계시록 2:23, 설교록 제174호, 1989.01.22 주일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