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란 무엇인가?(제2회 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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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곡백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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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8 00:00
죄가 무엇인가?
- 죄의 본질과 정의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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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이라는 뜻은 어떤 사물의 근본적인 성질을 일컫는다고 한다면, '정의'는 그 성질을 함축적으로 또는 일의적으로 외부로 표현한 것을 뜻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전적 개념은 사전을 찾아보면 될 것이다.
죄의 본질이나 정의를 논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택자나 불택자나 우리 인간에게 원치아니하는 고생, 가난, 육신병, 절망, 멸시, 천대, 가련, 수치, 실패, 불행, 화, 재앙 등 이 모든 좋지 않은 것들이 우리 인간에게 닥치는 그 원인은 죄이고 이 것들에게서부터 벗어나는 유일의 방법은 죄를 회개하고 의를 행하는 데에 있다고 보고, 그럼 회개하기 위해서는 우선 무엇이 죄인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죄의 본질과 정의를 논하는 것은 견해마다 다양할 수 있다. 자신의 지식과 경험이 다양한 만큼이나 그 본질과 정의를 여러 면으로 다양하게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를 다 열람할 수는 없지만 죄란 무엇인가를 명상하고 궁구하여 깨달아 왔던 수많은 견해 중에서, 여기서는 백영희 목사님이 죄에 대해 설교한 수많은 것들 중에서 무작위로 찾은 것을 가지고 알아 보기로 한다.
백 목사님은 죄를 간단히 정의하자면 '삐뚤어진 것'이라고 설교했다. 하나님과 관계에서 삐뚤어진 것을 말한다. 죄란 '삐뚤어진 것'을 말한다고 설교한 한 토막을 인용해서 살펴 보자.
"개인이나 단체나 전체가 하나님과의 그 관계의 잘못된 것, 죄라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가 삐뚤어졌다 그 말입니다. 죄라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가 삐뚤어진걸 가리켜서 죄라 말합니다. 김일성하고 삐뚤어진 게 죄가 아니고, 우리 나라 대통령하고 삐뚤어진 게 죄가 아니고 그 어떤 사람하고 삐뚤어진 게 죄가 아니고 하나님과 삐뚤어진 것을 가리켜서 성경에서 죄라 그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위 설교 부분에서, 죄란 하나님과 관계가 삐뚤어진 것을 의미한다고 죄의 본질을 명백히 논하고 있다. 죄에 대해 '삐뚤어진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물론 정의나 본질이라는 표현을 하지는 않했다고 하더라도 죄의 본질과 정의를 말한 것으로 보아도 별 차이는 없을 것이다.
백 목사님은 또 아래와 같이 설교했다.
"하나님과 이 삐뚤어진 것을 이것을 바로 잡아서 고치면 세상도 영원도 다 행복을 누리면서 평안히 살고 아주 고치면 안 죽고 영생하고, 또 하나님과 삐뚤어진 것이 차차 차차 많아지면 가정 전쟁, 사회 전쟁, 국제 전쟁 이렇게 전쟁으로서 다 망한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위 설교와 같이 백 목사님은 삐뚤어진 것을 고치면 행복을 누리고 고치지 아니하고 삐뚤어진 것이 점차 많아지면 망한다고 설교한다. 이 것을 보면 행복의 원인은 고치는 데에 있고 망하는 원인은 고치지 아니하는 데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모든 인생사의 행복의 원인과 망하는 원인을 극명하게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과 하나 되면 생명과 평안이고 하나님과 자꾸 삐뚤어지면 전부 사망이다 이것을 우리가 똑똑히 잡아야 됩니다. 그러기에, 자기 개인을 생명과 평강으로 보존하는 데에는 자기 개인이 하나님과 삐뚤어지지 안하도록 그렇게 하는 것이 이것이 유일한 방편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해 놓은 것들은 이 방편을 써야 되지 이 법칙 외에 제까짓 것들이 암만 말해 봐야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이 선악과 먹으면 죽는다 했는데 먹었기 때문에 다 죽습니다. 안 죽는 인간이 있습니까?"
역시 연속해서 백 목사님은 생명과 평안의 원인은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이고, 삐둘어지면 전부 사망이라고 설교한다. 자기가 하나님과 삐뚤어지지 안하도록 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생명과 평강으로 이르게 하는 유일한 방편이라고 한다.
"하나님이 지으신 것은 하나님과 삐뚤어진 것을 고쳐서 하나님과 바로 될 때에 생명과 평강을 누리게 되고 하나님과 삐뚤어질 때에 죽고 망하게 되는 것이다 하는 이 원리를 자기 개인이나. 가정이나, 단체나, 교회나, 사회나, 민족이나, 국가가 다 이 원리만 가지고 있다면 참으로 그 나라는 행복될 것입니다. 이 진리를 굳게 잡고 있으면 이 진리의 역사가 있는 것만침 이 효력이 있는 것만침 이 관계가 바로 되는 것만침 삐뚤어지게 정리되는 것만치 거기에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위 설교 대목에서 재차 삐뚤어진 것을 고칠 것을 강조한다. 하나님과 삐뚤어진 것을 고쳐서 하나님과 바로 될 때에 생명과 평강을 누리게 되고 하나님과 삐뚤어질 때에 죽고 망하게 된다고 한다. 이 대목의 설교를 보면 우리 인간사의 생명과 평강, 죽고 망하는 원인을 바로 알 수 있고, 이러한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이자 어디에도 통하는 원리이고 진리라고 갈파한다. 생명의 역사가 어떻게 해서 일어나는 지도 알려 주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생명과 평강을 원하지, 죽고 망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온전한 정신이라면 하나도 없을 것이다.
백 목사님은 또 계속해서 "피조물 개인이나, 단체나, 다수나, 소수나 모든 사망의 해는 하나님과 삐뚤어진 결과이니까 이것을 치료하는 데에는 하나님과 관계를 바로 고쳐 가지는 이것만이가 치료하는 방법이지 이거 아니고 이십세기의 과학이 저거가 뭐라고 떠들어 쌓지만 과학은 늘어나는데 병원은 늘어나고 환자는 더 많아집니다."라고 설교한다. 나에게나 너에게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망의 해는 하나님과의 삐둘어진 결과이므로 이를 치료하는 방편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고치는 것이라고 재재차 강조한다.
백 목사님은 "모든 면에 원치 안하는 죽고 망하는데 사망에 속한 것들을 이것을 치료하는 것은 하나님과 삐뚤어진 것을 고치는 이거만이가 법칙으로 되어 있다 이 외의 법칙은 인간이 쓰면 되는 것 같으나 석유불로 석유불 가지고 불 끄는 거 한 가지지 퍽 부으니까 턱 까부쳐서 꺼졌지만 그 불은 뒤에 몇 배나 더 일어나는 것입니다." 라고 설교하여 삐뚤어진 것을 고치는 것은 사망에 속한 것을 치료하는 법칙이라고 표현한다.
얼마전부터 우리 총공회를 제외한 일반교회의 설교들에서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 중 하나가 '회복'이라는 것이 있는데 - 아랫 글에서의 이의용 목사도 자신의 '서광교회'의 홈피상에 '회복'이라는 키워드를 사용하고 있다 - 회복은 치료가 있은 후에 회복이 있다는 순서를 생각하면 '치료'를 말하지 않고 회복부터 말하는 것은 순서에 맞지 않거나 치료를 생략한 것이라서 은혜받기에 좋은 키워드가 되기에 미흡할 것이다.
이미 국내 교계에서는 '회복'이라는 키워드를 각 교회의 설교에서마다 유행처럼 사용된지가 상당히 오래된지만, 삐뚤어짐(:죄)---> 회개---> 치료----> 행복(:불행의 물러감) 이런 도식이라면 막연히 '회복'만을 강조하는 것보다 더 은혜역사면에서 탁월한 깨달음이라고 여겨진다.
백 목사님은 "개인이나 단체나 국가나 사회나 전 인류나 무엇이든지 이 우주라도 그저 자기가 평안하고 행복될라고 하면 이 조물주, 창조주, 모든 것을 주권하고 계시는 이분과의 관계를 바로 맺는 거 이거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생사에 대한 법칙을 아는 것이요, 이것을 무시하는 자는 뱀에게 속해서 저 망하고 남 망하고 합니다." 라고 하여,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대하여 재차 재재차 삼차로 설파한다.
마지막으로 백 목사님은 "우리는 이 진리를 굳게 잡습니다. 모든 피조물의 사망은 조물주 그분과 삐뚤어진 그 결과다. 그러기에, 피조물의 모든 사망을 치료하는 데는 조물주와 삐뚤어진 것을 이것을 바로 잡는 이거 외에는 법칙이 없다. 그러면, 피조물의 생명과 평강은 무엇이냐? 피조물의 생명과 평강은 나를 지으신 조물주 그분과 나와의 관계가 바로 잘되는 것이다 바로 맺어지는 이것뿐이다. 이것을 굳게 잡아야 됩니다."라고 설교하면서 끝을 맺는다. 조물주와의 삐뚤어진 것을 바로 잡는 것은 원치않는 모든 사망을 치료하는 유일의 법칙이라고 말한다.
청교도 목사인 오웬은 죄의 본질을 하나님에 대한 적대감 또는 반감이라고 말했다. 이는 직관적인 깨달음같이 보이고- 본래 깨달음은 직관적이지만- 죄를 회개하기에 도움을 주는데로 이끄는데에 좋은 면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는 예를 들어 7계를 범할 때에 하나님을 미워하거나 반감을 가지고 있지 아니한다고 해도 제어할 수 없는 육욕에 못이겨 부득이 음행죄를 짓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 7계를 범하는 죄를 지을 때의 상황에서, 죄 짓는 자의 당시의 심리상태를 보면 하나님에 대해 전혀 적대감을 갖지 아니하면서도 말초신경 자극에 못이겨 음행을 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죄의 본질을 하나님에 대한 적대감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따라서 오웬이 죄의 본질을 하나님에 대한 적대감 또는 반감이라고 말한 것은 누구에게나 어떤 때와 어떤 장소를 막론하고 만인에게 시공을 초월하여 적용되거나 은혜가 되는 깨달음이 되기에는 부족하다고 보여진다.
한편, 백영희의 죄에 대한 본질내지 정의라고 할 수 있는, 즉 죄란 '하나님과의 삐뚤어 것'이다라고 하는 설교는 유사 이래 설교사적으로 탁월한 깨달음이라고 여겨진다.
< 위 인용한 설교 내용들은 1985.03.03, 주일오전, 설교제목:회개해서 하나님과 하나되자·
성경본문: 이사야01:18-20. 에서 인용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