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 개교회주의의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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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윗을 향한 시므이의 저주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난을 피하여 피신을 갑니다. 바후림이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 사울의 지파인 베냐민 족속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다윗을 향하여 돌을 던지고 티끌을 날리며 저주를 퍼붓습니다.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비록 왕궁에서 도망 나왔지만 다윗은 대왕이고 주변에는 용장들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망한 지파의 일개 필부가 감히 대왕 다윗을 향하여 저주를 퍼붓고 돌을 던지고 티끌을 날리다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아비새가 나섰습니다.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나로 건너가서 머리를 베게 하소서’ 왕을 호위하는 아비새로서는 당연하고 마땅한 심정이고 태도였습니다. 당장에 건너가서 머리를 베고 쳐 죽여야 마땅했습니다. 분을 참지 못했습니다.
대통령을 경호하는 많은 사람이 여론에 휩쓸려서 문을 슬슬 열어주고 대통령이 체포당하는 것을 구경만 했다고 합니다. 처녀가 아이를 낳아도 제 할 말은 있다고 하더니, 그래 놓고도 뚫린 입이라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합리화를 시도합니다. 경호원이면 모시는 주군을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야 마땅하거늘… 모조리 쫓아내야 하지 않을까?
2. 아비새의 분개
분을 참지 못하는 아비새에게 다윗이 하는 말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저가 저주하는 것은…’ 아비새는 왕을 모시면서 호위하는 위치입니다. 자기가 모시는 왕을 저주하는 자에 대해서 분을 참지 못하고 당장에 처단하겠다는 것은 왕을 호위하는 아비새의 당연하고도 마땅한 분개이고 자세입니다. 옳은 것입니다.
아비새는 요압의 동생으로서 30용사의 위에 있는 3인 중의 한 사람이고 다윗의 최측근 중 한 사람입니다. 이후 압살롬의 난이 평정되고 난 다음의 일이지만, 다윗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블레셋의 3백 세겔 무게의 창을 든 이스비브놉이라는 장대한 자와 싸우다가 피곤하여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아비새가 다윗을 도와서 목숨을 구해줍니다. 다윗의 생명의 은인이 되는 사람입니다.
이런 아비새가 자기가 모시는 왕을 저주하는 시므이를 대하여 분을 내고 당장에 처단하겠다고 하는데, 다윗은 ‘내가 오늘날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너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합니다. 왜 다윗은 아비새와 상관이 없다고 했을까? 그 말의 뜻이 무엇일까?
3.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시므이의 다윗을 향한 저주는 아비새와는 상관이 없었습니다. 다윗의 말마따나 하나님이 시므이를 시켜서 다윗을 저주하라 하신 것이고, 그 원인은 다윗의 범죄 때문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시므이의 저주는 다윗과 하나님과의 관계일 뿐 아비새와는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다윗과 아비새의 관계에 있어서는 시므이의 다윗을 향한 저주는 아비새 입장에서 당장에 쳐서 목을 베야 하지만, 다윗의 입장에서 시므이의 저주는 아비새와는 상관이 없는, 하나님과 다윗 자신의 관계일 뿐이었습니다.
다윗이 아비새에게 다 설명할 수도 없고 설명할 일도 아니므로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다윗의 말을 해석하면, ‘시므이의 저주는 하나님과 나와의 상관된 일이다. 내가 하나님께 죄를 지었고 그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이니 너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하는 뜻이고, 그래서 그 다음에 ‘하나님이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고 할 자가 누구겠느냐’고 한 것입니다. 이 말씀의 해석에서 개교회주의의 원리를 생각해 봅니다.
4. 개교회주의의 원리
공회는 개교회주의를 표방합니다. 그런데 개교회를 잘 모르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고,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악용하는 못된 사람들이 가끔 공회 안에도 있었고 지금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를 차지하려는 욕심을 품고 교인들과 공회와의 관계를 끊어버리면서 ‘개교회주의’를 입에 담습니다. 무식하기 짝이 없는 아주 고약한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개교회라고 하면 특정 교단에 속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나가는 교회를 생각하고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그런 교회는 ‘독립교회’라고 합니다. 개교회는 전혀 다릅니다. 개(個)교회란 개인과 하나님과의 직접 관계를 말합니다. 다윗이 아비새에게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는 것은 바로 이 면을 두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와 일 대 일의 관계다.
신약시대 모든 성도는 개인 개인이 다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를 ‘개인교회’라고 합니다. 교회란 ‘하나님을 모시고, 진리로 사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니, 이 사람이 혼자이면 개인교회가 되고, 이 개인교회가 바로 개교회 원리의 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개인교회가 자라면 가정교회가 되고 가정교회가 자라면 사회교회가 되는데, 가정교회와 사회교회는 전부 개인교회가 자라서 되는 것이므로 외형은 커지고 많아져도 그 속에 본질은 개인교회 즉 개교회가 그대로 살아 있어야 진정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이 원리가 무너지고 변질된 것이 일반 교계의 당회, 노회, 총회 제도이고, 이는 곧 천주교 교황, 주교, 신부들의 계급 체제로 되어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윗이 아비새에게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한 것은, 다윗에게 당면한 이 일은 다윗 자신과 하나님과의 직접 관계라는 것을 나타낸 것이고, 이는 곧 개교회주의의 원리를 나타낸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개교회주의를 악용하는 못된 목사들이 이 원리를 안다면 그렇게 악용하지는 못할 것인데, 안다고 하지만 모르는 것이고, 이 원리를 알면서도 악용한다면 그 죄는 사함받기 어려운 참으로 큰 죄가 될 것입니다.
5. 주님의 몸인 교회와 사람의 몸
사람의 몸은 수백억 개의 세포로 되어 있고 그 세포 하나하나가 모두 각각의 생명체로 되어 있습니다. 교회를 주님의 ‘몸’이라고 하는 것은 이런 면을 말하는 것이고, 그래서 주님의 몸인 교회를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자연계시가 바로 사람의 몸인 것입니다.
생명은 자라는 것이 필연입니다. 생명의 한 점이 모태에서 자라면서 인체의 각 기관이 발달합니다. 자라면서 구조가 정교하게 되고 기능이 발달합니다. 더 자라면서 근육과 신경계가 발달합니다. 소화기관이 발달하고 뇌가 성장합니다. 계속 자라면서 피부가 두꺼워지고 머리카락 손발톱이 생기고 기관들이 작용합니다. 수많은 기관과 근육과 신경과 피부들이 형성되고 발달하는데 그 전부는 다 생명의 한 점에서 시작합니다. 수없이 많은데 전부 하나로 연결된 하나입니다. 이것이 사람의 몸이고, 이것이 교회입니다. 이것이 개교회의 기본 원리입니다.
교회는 생명체입니다. 개교회가 자라서 가정교회 사회교회가 되어야 하고, 더 자라서 공회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자라지 않는 생명은 도태되고 맙니다. 생명이 정상으로 자라면 생명의 본 모습이 나오게 됩니다. 교회의 본모습은 주님의 몸이고, 이 몸은 개인으로, 가정으로, 교회로, 공회로 자라면서 온전한 교회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정통 교계에서 예배 때마다 외우고 있는 사도신경에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 이렇게 나갑니다. ‘성령’ 다음에 ‘거룩한 공회’가 나오고 ‘성도의 교통’이 그다음이며, 그다음에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이 나옵니다.
공회에서 끊어진 교회, 교회에서 끊어진 가정, 가정에서 끊어진 개인은 전부 몸에서 끊어져 떨어져 나간 세포 같아서 죽은 것이 됩니다.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게 됩니다. 주님의 몸인 교회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