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교회의 성찬과 공회의 성찬 비교.

공회내부 발언      

정통교회의 성찬과 공회의 성찬 비교.

설명
신학 8 0

예수님이 "이것은 내 몸이다' 라고 하시면서 주님 오실 때까지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오실 때까지 예수님의 몸을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셔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보이지 않는 예수님의 몸을 어떻게 먹는지, 성찬에서 무엇을 먹는지? 해석이 바르게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내용때문에 종교개혁 당시 성찬의 본질과 본질을 설명하는 방식에 대하여 많은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1530년 공동의 적 로마카톨릭에 대항하기 위해 루터파와 츠빙글리파가 독일 마부르크에서 교회 일치를 이루기 위해 협상을 시도하였는데, 다른 모든 신앙은 여러 조항에서는 동일한 결론으로 합의를 이루었지만, 성찬에서 의견이 달라 하나의 교회를 이루려는 노력이 무너졌습니다. 루터는 로마카톨릭의 화체설을 거절하였지만, 츠빙글리의 성징설도 반대했습니다. 루터는 츠빙글리가 성찬에서 그리스도의 육체적 임재를 무시했다고 보았습니다.


다른 모든 신앙에 대한 이해가 같았지만 단 한가지 성찬에 대한 이해가 달라서 교회연합 교회의 하나됨이 무너졌을 정도로 기독교역사에서 성찬에 대한 이해는 굉장히 중요한 교리적 내용입니다.


그래서 로마카톨릭, 츠빙글리, 루터, 칼빈의 성찬에서 무엇을 먹고 어떻게 먹는지에 대하여 간략히 정리해 본 후에, 공회의 성찬을 설명하는 방식을 살펴 보았으면 합니다.


*참고로, 루터와 츠빙글리는 1세대 종교개혁자들이고 칼빈은 2세대 종교개혁자 입니다. 루터 츠빙글리 칼빈 모두 예정교리(택자 불택자)에 대하여 깊이는 좀 차이가 있으나 동일한 방향이었고 3명 모두 당연히 이신칭의 교리를 믿었습니다. 




 


 

신학 2025.01.10 15:44  
성찬에 대한 4가지 해석.

성찬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의식입니다. 떡과 포도주를 나눔으로 의식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의 몸이니...." , "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하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해석을 두고 여러 해석이 있었습니다.

중세에 교리화된 화체설, 즉 떡의 본질이 예수 그리스도의 살로 변한다는 것과 성찬식을 행할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제물이 되신 사실을 재현한다는 화체설은 로마카톨릭에서 지금도 그대로 믿고 있는 견해인데, 종교개혁자들은 이를 하나같이 거부하였습니다.

루터는 화체설을 거부하고, 칼케돈신경의 기독론 교리를 그대로 받아들여, 그리스도께서는 편재하시는 분이시며, 속성의 교류(교관)를 통하여, 즉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상호 교관함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인성이 신성과 함께 편재하므로 성찬에 몸으로 임하신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츠빙글리는 이에 반하여 성찬은 예수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는 것일 뿐이며,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선언하는 모든 사람들의 감사와 공통적인 기쁜일 뿐이라고 말하는 영적 의미로 해석 함으로써 중세교회의 가르침에 반대되는 견해를 말함과 동시에 루터의 공재설에도 반대되는 견해를 말했습니다.

칼빈은 양자를(루터와 츠빙글리) 절충하는 견해를 취하였습니다. 즉 성찬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는 것이면서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과 함께 은혜를 주시는 방편이며 인을 치는 보증이라 말하고, 그리스도께서 성찬에 영으로 임재하신다고 말하였습니다. 칼빈은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심으로써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셔서 영적으로 연합하는 것임을 강조하였습니다.

※ 루터와 칼빈의 성찬에 대한 이해에 대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더 할 부분이 있습니다.
신학 2025.01.10 16:05  
루터의 성찬론(공재설) 이해.

루터의 성찬론을 바로 이해하려면 그의 기독론을 잘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을 참 하나님인 동시에 참 사람으로 고백해 왔습니다. 그러나 한 인격체가 본질적으로 어떻게 전혀 다른 두 본성을 취하는지 설명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했고,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의 인성을 강조했습니다. 오랜 논쟁 끝에 칼케돈 공의에에서 그리스도의 양성(신성과 인성)은 혼합되지 않고, 변화되지 않고, 분리되지 않고, 분할되지 않는다는 교리를 확립하였습니다. 이 신조는 그리스도가 지닌 두 본성의 관계에 대해 "이것이다"라는 식으로 적극적으로 정의하기보다 "이것은 아니다" 라는 식으로 소극적으로 정의하였습니다.

루터는 칼케돈 신조를 따르면서도 그리스도의 양성 일치를 강조하기 위해 두 본성이 서로 교류한다는 전통적인 견해를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을 속성의 교류(신성과 인성의 교류)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은 분리되지 않고 상호간의 교통을 통해 하나됨을 유지한다는 견해입니다. 그리스도의 인성이 신성에 전달되고 신성이 인성에도 전달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신성이 있는 곳에는 그리스도의 인성도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속성의 교류를 통해 그리스도의 인성은 어디에나 실제로 존재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을 편재설이라고 부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 보좌 우편에만 계시고, 사람들과는 오직 성령으로만 함께 하신다고 생각하는 한국 기독교인들에게는 루터파의 이 교리는 많이 생소합니다. 루터파는 그리스도의 인성이 하늘에 갇혀 있거나 하늘의 특정 장소에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몸이 주는 유익을 지상에 있는 성도가 누리지 못하고, 성도의 구원은 부분적인 구원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온전한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모두가 주는 구원의 은더을 함께 받아야 합니다.

루터파의 기독론을 성찬에 적용시키면 그리스도의 몸은 비록 하늘에 있지만 그분이 지닌 신성을 통해 성찬상에 차린 떡에도 임할 수 있게 됩니다. 화체설과는 다르게 떡은 떡일 뿐이지만 일반적인 떡과는 구분 됩니다. 그 떡 '속에', 떡 '위에', 떡과 '함께' 그리스도의 몸이 임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루터파의 성찬 교리를 공재설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성찬상에 차린 떡을 가리켜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이니" 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떡을 가르킬 때는 떡뿐 아니라(비록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떡과 함께 있는 그리스도의 몸도 동시에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로마카톨릭의 화체설에 의하면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몸만 먹지만, 공재설에 따르면 떡과 함께 그리스도의 몸도 같이 먹습니다.
신학 2025.01.13 08:04  
츠빙글리의 상징설.

로마카톨릭의 화체설에 반대하여 츠빙글리는 떡은 예수그리스도의 살을 "상징" 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것은 내 몸이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것은 내 몸을 의미한다"로 해석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이것은 내 몸이 아니며 내 몸을 가리킨다"로 이해했습니다.

츠빙글리는 떡이 예수님의 살을 상진하는 표현으로 생각했습니다. 상징으로 쓰인 떡이야말로 성찬의 본질을 가장 잘 설명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결혼식 때 찍은 사진을 예를 들면 결혼식 사진 자체는 결혼식이 아닙니다. 단지 과거의 결혼식을 보여줄 뿐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보는 당사자는 과거의 기뻤던 순간을 회상하며 즐거워합니다. 그에게 기쁨을 주는 것은 사진 자체가 아니라 결혼식에 관한 기억입니다. 츠빙글리에게 성찬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신자들은 떡을 먹으면서 그리스도가 죽은 일을 회상합니다. 결국 성찬식에서 각자의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영적유익을 누리는 것이지, 떡을 통해 어떤 실제적 유익을 얻는 것은 아니라는 논리입니다. 아마도 오늘날 대부분의 성도들은 알게 모르게 츠빙글리의 견해를 따르고 있을 것입니다.
신학 2025.01.14 15:44  
로마카톨릭의 화체설.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에서 떡을 들어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고전11:24)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카톨릭은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떡이 실제로 예수님의 살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눈에 분명 떡으로 보이는 것이 어떻게 실제로 예수님의 살이 되는지에 대하여 그들은 화체설이라는 교리를 만들었습니다.
화체설이란 본질 혹은 본체가 바뀌었음을 뜻합니다. 성찬식 때 먹는 떡의 본질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물이라는 본질은 3가지의 양태로 현실세계에 나타납니다. 즉 액체, 수증기, 얼음으로 존재합니다. 물은 물이라는 본질에 3가지의 양태로 존재합니다. 
물이라는 본질은 그대로이지만 양태가 변할 수 있다고 본 로마카톨릭은 그 반대의 변화도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즉 양태는(보이는 모습) 변하지 않으면서 본질은 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찬에 적용을 하면, 겉모습은 떡 그대로지만 그 떡 속에 있는 떡이라는 본질이 예수님의 살로 본질이 변한다는 주장이 화체설입니다. 로마카톨릭에서는 사람이 만든 떡의 양태(보이는 모습)는 떡이지만, 본질은 떡에서 예수님의 살로 실제로 변했기에  그 떡을 예수님의 실제 살이라고 생각합니다.

※ 본질과 양상의 이해를 돕기위해...책상이라는 본질은 하나이지만 책상의 모습(양태)은 수십 수백가지가 있는 것처럼, 어떠한 사물의 본질은 하나이고 그 본질이 나타나는 형태는(양태)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로마카톨릭은 중세때부터 보아 왔습니다. 나아가 로마카톨릭은 본질은 하나이고 그대로 이지만 양태가 여러가지이고 변할 수 있듯이, 양태는 그대로 있으면서 본질이 변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화체설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중세 때부터 지금까지도 로마카톨릭이 화체설을 믿는 근거에 대하여 간단히 설명 하였습니다.
신학 2025.01.17 08:30  
역사적 정통교회의 성찬론을 살펴보면, 성찬을 할 때 예수님이 영적으로 임재하여 영적으로 성도들에게 영적유익을 준다는 영적임재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이 실제로 성찬의 떡에 임하여 그리스도의 몸에서 나오는 신앙의 양식을 성도들에게 나누어 준다는 등의 방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공회삼분설에 의하면 사람은 영육으로 이루어져 있고 육은 물질인  마음과 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정통적 성찬론을 공회의 삼분설로 적용을 하게되면 각 노선의  성찬론이 강조했던 부분을 좀 더 잘 이해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공회구원론을 가지고 역사적 정통교회의 구원론을 살펴보면 각 구원론이 어느지점을 강조했는지 알 수 있는데, 마찬가지로 공회삼분설로 성경이 말씀하는 성찬을 나아가 역사적 정통교회의 성찬론을 살펴보면 각 노선의 성찬론이 어떤 면을 설명한 것인지 또 각 노선의 성찬론을 더 깊게 넓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되어집니다.
신학 2025.01.20 16:04  
칼빈의 성찬론.

칼빈은 성찬식에 참여한 성도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태양과 식물을 비유로 들었습니다. 식물은 태양에서 오는 빛을 먹고 자랍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몸에서 나오는 모든 영적 유익을 성찬에서 실제로 누립니다. 이것은 순전히 영적인 일만도 아니고 비유적이거나 상징적인 일은 더욱 아닙니다. 성찬에서 우리 영혼이 누리는 영적유익은 실제적입니다.

칼빈은 성찬석에 참여한 성도들의 영혼은 한몸을 이루어 성령의 사역을 통해 하늘로 들려 올라 간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다음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의 임재속으로 들어갑니다. 성령 하나님은 부활하고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몸에서 나오는 영혼의 양식을 성도 들에게 나눠 주시고, 성도들의 영혼은 믿음으로 그 양식을 받아 먹습니다.
신학 2025.12.08 19:33  
마태복음 28장 20절에 예수님께서 세상 끝날 때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성도가 예배당에서 성찬식을 거행할 때 예수님의 영육이 실제로 그 성찬식에 함께 계시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담당 2025.12.09 12:36  
교리적으로
예수님의 몸은 부활을 하셨고 이후 시공을 초월했습니다. 또한 계시지 않는 곳이 없는 편재성을 가졌습니다. 부활 후 예수님의 인성은 신성과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장소적으로 계시지 않는 곳이 없으니 성찬의 장소에 부활의 몸으로 함께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성찬의 떡과 잔은 주님의 고난을 표시하는 것이니 그 고난의 표시라는 것을 알고 깨닫고 감사하는 그 정도만큼 주님은 성찬적 은혜를 주십니다.

주님 생전에 주님의 손을 잡고 성찬을 참석한 유다는 장소적으로 주님의 몸을 옆에 또는 앞에 모시고 함께 했습니다. 그러나 성찬에 담은 고난은 거절했습니다. 장소적으로는 주님의 몸과 함께 했고, 주님이 전해 주시는 고난의 복에는 불참했습니다. 부활 후 주님의 몸은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겠다 하셨으니 성찬이 아닌 시간과 장소에도 함께 합니다. 그런데 성찬은 다른 시간보다 더욱 주님의 고난을 감사하는 기회인데 실은 일상 시간이나 일반 상황과 비교할 수 없는 절정의 순간이므로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은 당연하고, 우리의 준비가 되는 만큼 그 효력 그 은혜를 직접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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