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다 있다, 찾지 못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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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무한이므로 성경은 무한입니다. 당연히 말씀 속에 내재된 영감을 포함합니다. 성경에는 우리 구원에 필요한 모든 도리가 들어 있습니다. 성경에는 우주의 창조와 운행 원리, 영원한 영계의 운영 원리까지 들어 있습니다. 무한한 도리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도리는 이치이고, 이치를 신앙에 적용하면 구원의 도리인 진리가 되고, 자연 계시에 적용하면 물리가 됩니다.
성경에는 ‘삼위일체’라는 표현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삼위일체 교리가 들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랐고, 알아도 표현하지 못했는데 어거스틴이 ‘삼위일체’라고 요약해서 표현했고 모든 사람이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에는 ‘기본구원’이라는 표현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기본구원이 들어 있습니다. 칼빈이 그것을 성경에서 뽑아냈습니다. ‘전적 은혜, 전적 믿음, 절대 예정과 절대 주권’은 기본구원에 관한 교리들입니다. 성경에서 찾아냈고 뽑아낸 것입니다. 물론 칼빈은 ‘기본구원’이라는 표현은 몰랐습니다. ‘건설구원’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기본구원’이라는 표현과 함께 ‘건설구원’이라는 표현도 성경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건설구원은 들어 있습니다. 성경의 많은 부분이 그것을 가르치고 있지만 2천년 교회 역사에 찾아낸 사람이 없었습니다. 성경에 워낙 많이 기록되어 있어서 비슷하게 깨닫기는 했겠지만 ‘기본구원, 건설구원’이라고 명확하게 찾아내서 밝힌 것은 백영희가 처음이었습니다. 성경에 없는 것을 만든 것이 아니라 성경에 있는 것을 찾아서 뽑아냈고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이단이라고 모두 난리를 쳤지만, 기본구원 건설구원의 구별은 지금은 상식이 되었을 것입니다. 옳은 쪽을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아서 예수님을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고 십자가에 못 박은 것과 행태가 같습니다. 역사는 되풀이되고 이단들도 되풀이되는 것처럼 지금도 이런 행태들은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순교자들의 순교는 대개 교회 안에서 당한다고 합니다. 선지자들이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다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이고 성경입니다.
이단들은 정통을 이단이라고 정죄하지 않습니다. 저것들이 정통이라고 인정받기 위해서만 노력합니다. 그런데 정통에서는 진짜 정통을 이단으로 정죄합니다. 예수님 당시 가장 정통이었던 바리새파가 예수님을 이단으로 몰아서 못 박아 죽였습니다. 정통 교파들이 기본구원 건설구원을 이단으로 정죄했고,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는 교리를 한국의 가장 정통 교파라고 하는 고신에서 정죄했습니다. 이런 행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칼빈주의, 청교도 신앙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사람들이 기본구원 건설구원을 비판합니다. 종으로 태어난 하갈이 믿음의 아들 이삭을 희롱했듯이 오늘도 꼭 그 모습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500년 동안 묶은 둥치 칼빈주의 청교도 개혁주의자들이, 6천 년 역사로 이어지고 이어져서 생명으로 새롭게 움이 돋는 삼분론, 기본구원 건설구원을 정죄하기도 하고 비판도 합니다.
‘기능구원’ 교리도 성경에 있습니다. 성화구원, 건설구원, 행위구원의 절정이 기능구원입니다. 기능구원 교리를 말씀하실 때는 공회 안에서부터 반대가 심했습니다. 공회 안에서도 위에서 가장 머리 된다는 목사들부터 차례로 반대했습니다. 기능구원으로 나가지 않는 건설구원 행위구원은 미완성이 아닐까? 기능구원이 나와야 비로소 완성이 되는데, 건설구원 교리는 당연하게 받은 공회 안에서 기능구원은 왜 그렇게 반대했는지?
‘무식한 것은 죄’라고 누가 한 말이 동감이 됩니다. 모르면 좀 더 연구하고 생각해 보고 숙제로 두고 세월을 지켜보면 되는데, 현재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반대부터 하고 비판부터 하고 보니 세월이 흐르면 많은 문제가 생깁니다.
내계 기도원에서 교역지회를 한때가 있었습니다. 공회 목사님이 식사를 마치고 이쑤시개 같은 가느다란 나무로 율무차를 물에 타서 젓고 있었습니다. 율무차는 커피와 달리 가루가 많고 열매도 있어서 뭉치기도 하고 잘 저어지지 않는데 저렇게 가느다란 이쑤시개로 풀어질까 싶어서, ‘그렇게 해서 저어지겠습니까? 안 될 겁니다.’ 했더니, ‘지켜보면 알겠지요.’라고 하시면서 계속 저었습니다. 좀 지나니까 가루 입자가 다 녹아서 마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1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그때의 상황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지켜보면 알겠지요.’ 그 후부터 어떤 일이든지 성급하게 말하거나 결정하지 않고 지켜보는 자세를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무한입니다. 우리 구원에 필요한 모든 교리가 들었고, 믿는 사람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이치가 빠짐없이 다 들어 있습니다. 밝은 만큼 찾아내고 뽑아냅니다. 같은 성경을 봐도 어두우면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으면 찾아내지 못합니다. 평생 배우면서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배우기라도 하면 좋겠는데 별것도 아닌 자존심 때문에 배우지도 않습니다. 토끼 꼬리만큼 아는 성경 지식, 교리 지식 가지고 그게 전부인 줄 압니다. 그 토끼 꼬리만 한 자존심을 건들면 공회도 박차고 나가버립니다. 하나님도 없습니다. 빈대 속이 따로 없고 우물 안의 개구리가 따로 없습니다.
영계와 우주의 창조와 운영 원리가 빠짐없이 다 들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 성경, 성도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원리가 다 있고, 구원에 필요한 모든 이치가 빠짐없이 들어 있는 성경,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만큼 찾을 수 있고 뽑아낼 수 있겠지만, 부지런히 읽고 공부하고 연구해야 하겠습니다. 공회의 법은 성경만이 유일한 법입니다. 기가 막힌 깨달음이고 정곡을 짚어서 찾아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