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공2와 노곡동 기도원에 대한 문답 - 3신 (오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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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공2와 노곡동 기도원에 대한 문답 - 3신 (오후 20:20)

설명
부공3 0 0

이 글의 댓글은 본문에서 글을 완료했다고 표시한 다음부터 적기 바랍니다. 내용이 많아서 일단 듣고 나서 댓글이 이어 져야 혼선이 없어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이 곳의 노곡동은 1970년경 총공회가 목사님 생전에 대구에 5월 집회를 위해 마련한 4만평의 기도원을 말합니다.




* 노곡동 기도원은 부공2의 것이다. - 최근 부공3의 강동 교인 입장

부공2의 것이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목사님 사후 대구공회가 3년을 단독으로 운영했고 소송 후 부산공회가 1993년부터 지금까지 운영했습니다. 부산공회란 백순희의 부공1, 서영호의 부공2, 연구소의 부공3으로 분리 되어 있었습니다. 부공3은 부공1의 파행에 대하여 현장에서 싸울 문제가 아니라고 보고 기다렸습니다. 부공2는 삐라로 인원 동원으로 각목으로 맞붙었다가 번번히 맞아서 쫓겨 났습니다. 1999년경부터 집회를 따로 한다고 나갔다가 장소에 앉지 않으면 재산을 영영 뺏긴다고 하여 방청으로만 지금까지 참석했을 뿐입니다.

노곡동은 총공회 소속 공회들의 공동 재산입니다. 굳이 현장을 장악한 것으로 본다면 부공2는 단 한번도 지금까지 관리한 적이 없었습니다. 부공2의 허위 선전에 부공3 내부에서 불만이 많은 분들이 부공3을 주저 앉히기 위해 거짓말을 교인들에게 유포한 것입니다.





* 부공2 대표들이 노력해도 부공3이 대화를 피한다. - 부공2 대표단

2019년 5월에도 2023년 12월경에도 부공2 대표들을 만난 적이 있다. 2019년 5월에 왔을 때는 부공3의 고발로 노곡동을 철거해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은 허위였다. 2006년에 대구시가 자체적으로 항공 촬영을 통해 불법을 적발했고 이미 법원에서 처벌까지 했다. 남은 것은 이행 사항뿐이었다. 부공3과는 상관도 없지만 철거는 1년에 이미 몇십 만원 과태료만 내면서 갈 수 있었다. 대표단이 그냥 웃고 갔었다. 2023년 12월경에 대표들이 만나자 했을 때 등기 표시 문제를 두고 부공2 원하는 대로 반영해 드리겠다고 했다. 알고 보니 하루 전에 교역자회를 통해 이미 결론을 내 놓고 통고만 하러 왔던 것이다.

부공3은 1989년부터 총공회 모든 일은 대화로만 해결해야 한다고 서울공회 대구공회 부산공회1과 2에게 항상 공사간에 말했다. 1998년부터 사이트를 전면 운영하면서 단 한번도 빠짐 없이 대화를 부탁했다. 그런데 부공2는 부공3이란 존재 자체가 없다고 항상 거부했다.




* 부공3이 너무 악하기 때문에 부공2가 소송을 한다. - 부공2 교인들

부공3은 2019년에 부공1과 2가 자진해서 완전 철거를 하고 내버려 둔 임야에 여름 폭우 태풍 장마철까지 겹쳐 민원이 발생하고 주민들의 거센 항의 때문에 관리에 들어 갔다. 또 주변 외국인 노동자와 불량 청소년들의 출입 때문에 당연히 대문에 열쇠를 걸고 CCTV로 자동 신고 체계를 만들어 두었다. 부공3은 부공1이든 2와 더불어 단 한번도 노곡동 때문에 소리를 낸 적이 없다. 부공2의 경우는 1992년부터 노곡동에서 부공1에게 항상 당해 왔다. 전국적으로 각목 패싸움이 있었고 서부교회 앞의 양성원 건물 때문에 전투경찰이 출동을 했었다. 부공1에게는 매타작을 받고 살았다. 그리고 지금도 방청인으로 연보만 하고 축도만 받고 온다. 그들끼리 그렇게 싸웠다고 내부적으로 늘 대책 회의를 했다.

부공3이 부공2에게 단 한번도 나쁜 일을 한 적이 없다. 대화만 부탁했다. 그런데 몰래 담을 넘다고 CCTV에 자동 신고가 되었다. 누구를 원망 하겠는가? 경찰이 출동한 다음에야 부공2 교역자인 줄 알고 대화를 요구했으나 법으로만 해결한다고 했다. 부공2가 너무 악하지 않았나?




* 부공3 내부에서도 부공2를 지지한다. - 부공3의 비주류 교인들

2013년에 강동교회 모덕교회 서진교회 목회자들까지 포함하고 전국의 공회들과 교인들에게 전부 공포했다. 소송금지원칙에 대하여 의논을 했고 최종 결론을 내렸다. 당시 저작권에 대한 문제까지 다 검토를 했고, 부공3의 모든 목회자들은 각자 자기들 책임을 끝까지 지기로 했다. 그런데 도중에 고소자와 내통을 하고 고소자 편을 들기 시작했다. 중간에 서약을 어긴 것이다. 처음 서원을 어긴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불행하게도 부공3 내부의 비주류는 법을 알기 때문에 부공3에게 한 마디도 하지 못한다. 공개 토론회도 제안했다. 지금도 할 수 있다. 공정하게 어디서든지 가능하다. 자신이 있는가? 1분씩 3분씩 10분씩 원하는 대로 서로 이야기를 다 할 수 있을까? 서로 어떤 법적 책임도 묻지 않겠다고 약속해 준다면 그 분들의 지난 날과 그들이 그렇게 된 사정을 전부 공개할 수 있다.

현재 비주류 3개 교회는 교회로서 기능을 다 포기했다. 한 교회는 안식교 교인이 그 교회 기둥이고 또 한 교인은 총공회 탈퇴를 공식 선언까지 했다. 3개 교회 목회자들은 그들 스스로 사택에 공회 결혼을 하지 않으면 전도사 자격도 없다고 주장했다. 지금 모두 다 문제가 있지 않은가?




* 부공3은 고소파다. 노곡동을 고소했다. - 부공2 교인들

자기 교회 목회자들에게 부공2의 유리한 이야기만 선별해서 들었기 때문입니다. 법행정을 조금만 아는 사람들이면 그렇게 허무하게 속지는 않을 터인데, 우리 공회의 일반 수준이 한글 읽기가 잘 되지 않는 상태에서 목회를 나온 분들이 너무 많아서 참으로 딱한 수준입니다. 회의를 하면서 '동의'나 '재청'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며 온갖 결정을 하고 살았으며 대구공회 초기 목회자들은 '심의'라는 말을 못 알아 들어서 지금도 '노소원위원회' 대신에 '운영위원회'라는 것을 따로 두고 있습니다. 1989년 3월에 재론도 하지 말자고 전원일치로 손들고 결정을 해놓고 1년도 되지 않아서 허무하게 내버렸습니다.

총공회가 '관습법'이라는 단어도, '전원일치라는 표현'도 모두가 몰랐었습니다. 공소 시효가 뭔 말인지도 모르는 목회자를 만났으니 천국만 배우면 좋은데 그 분들에게 천국을 배우다 그 분들이 한번씩 세상을 가르치면 천국도 잘 가르쳤으니 세상도 잘 가르친다며 생각 없이 모두가 몰려 다녔습니다. 그냥 불쌍할 뿐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세상 이야기를 이 곳보다 훨씬 잘 아는 분들도 공회라는 울타리 안에만 들어 오면 갑자기 정전된 기계처럼 그냥 갑자기 바보가 된 듯합니다. 이 곳이 활짝 펴놓고 만사를 운영하는 이유는 '거짓말은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잘못 안 것이 있으면 대문짝에다 큼직하게 걸어 놓고 밝혀 왔습니다. 대구공회 김희준 목사님이 한번 억울하다 하신 적이 있어서 그 분의 억울하다는 원고 입장의 주장을 거의 사실처럼 소개해 드렸습니다. 실은 그 분이 오해를 했지만 이 곳은 그렇게 운영을 했기 때문에 자꾸 나아 졌습니다.

이 곳을 비판하는 분들은 사이트를 공개하지 못합니다. 아무나 글쓰기를 하게 버려 두지 않습니다. 진실의 등불을 켜면 그 교회 그 공회가 우습게 되기 때문입니다. 부공1도 부공2도 대구공회도 한번씩 이 곳처럼 사이트를 준비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곳의 직원이 글쓰기를 하고 반갑다고 하자 바로 폐쇄 시켜 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이 곳의 주장은 맞을 가능성이 아주 많고 이 곳을 비판하는 곳은 그 행태만 봐도 그냥 아닌 경우가 거의 전부입니다.





* 이진헌 목사님이 총공회 대표다 - 부공2 주장

이진헌 목사님은 원래 부공3이었습니다. 부산공회가 하나로 함께 할 때 부산공회의 내용을 볼 때 불가피하게 여러 개로 나뉠 수밖에 없고 도저히 대화 자체를 피하고 목회자들을 몰아 세우며 패싸움으로 나갈 상황이 너무 뚜렷하게 될 때 이진헌 이민영 이도영, 이영인 이치영 이신영, 장영목 장천룡 등이 함께 모여 부산공회 내에서 따로 모임을 가졌습니다. 부산공회 내에서 이들이 모여서 대화로 운영해야지 패거리로 각목 들고 우르르 몰려 다니는 것은 막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자 훗날 부공1과 부공2로 나뉠 분들이 부공3이 될 우리를 향해 분파주의가 아니냐 등으로 몰아 세울 때 총공회에는 소공회라는 것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진헌 목사님은 1997년 9월까지 부공3의 대표였습니다. 실제 모든 일을 주관한 것은 연구 부장이었지만 부공3은 회의도 따로 했고 서기도 있었고 회비도 모았고 공금도 있었습니다. 이진헌 목사님은 1997년까지는 부공3의 대표였다가 이후 부공3에서 이탈하신 후 부공1이 대세일 때 부공1의 대표로 활동하시다가 부공2가 대세를 형성하게 된 2000년 경부터 소속을 부공2로 다시 옮겼습니다. 이진헌 목사님과의 관계는 이 곳이 너무 오래 되었고 사연이 너무 많아서 아무도 그렇지 않다 할 사람은 없을 듯합니다. 역사와 당시를 잘 모르는 분들이 그냥 주장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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