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패소 이후 2심 진행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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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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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1 07:10
1심 패소 이후 2심 재판과정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요?
3심 최종 판결까지 어떤 준비가 예상되는지요?
준비로 보면, 부산연구소의 대표로 임명 된 박영태 장로님이 사실 그대로 한 마디만 하면 바로 끝날 터이고 이대로 패소되면 역사 앞에 그 책임은 박 장로님이 되는데도 자신은 관계 하지 않겠다는 언행이 지금 고소인의 뜻에 가장 잘 맞아 떨어지는지를 알고도 그러는지 정말 몰라서 그러는지... 참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진헌 목사님도 박 장로님 못지 않게 책임을 져야 하는데 평생 이 노선에 바친 세월을 노년에 한 번의 침묵이 침묵이 아니라 '백영희 설교는 자녀의 개인 재산이다!'라는 결론을 만들게 되면, 그렇다면 이 목사님의 설교도 자녀들의 사유재산이라는 말인가? 그 것을 원하시기 때문인가. 그럴 리는 없는 어른인데..
연구소 자체적으로 준비한 것은 공회 사람이 보면 두 번 볼 것도 없이 명확하나, 문제는 공회를 외부에서 볼 때입니다. 그렇다 해도 말할 것이 없도록 명확하다고 생각이 되는데, 아무래도 하나님의 섭리를 지켜 볼 뿐입니다.
2심에서 1심 판결을 확정하고 우리가 진다 해도 원고는 더 억울하여 3심을 신청할 것입니다.
2심 항소와 3심 항소는 안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가 항소하여 대법원까지 가는 것보다 상대방이 항소하여 대법원까지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가이사에게 호소한 것은 무죄를 입증하려고 간 것보다 로마에 복음 전하러.. 그러다가 죽으러 간 것이 아니겠습니까?
죽음을 각오했다면 pkist.net 홈페이지가 열린 상태에서 소송을 진행해야 우리의 무죄가 더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이 홈페이지를 닫은 상태에서 소송을 진행하게 하셨으니 사도 바울처럼죽음을 각오할 사안은 아니지 않겠는가? 불신자 세상인 판사에게 무죄를 판결해 달라는 자체가 공회 복음에 큰 손해가 예상됩니다
소송에 불리해도 항소는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공회의 노선 중에 '물질개악설은 이단'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 자체가 죄라는 것은 이 땅 위에 없습니다. 고소 그 자체를 공회는 반대한 적이 없습니다. 해서 안 될 소송은 피고로 대응하는 것조차 반대했습니다. 이 말은 해야 할 소송도 있다는 뜻입니다. 국기배례의 경우 정부를 상대로 우리는 대법원까지 가서 승소했습니다. 일반인이 단순히 쉽게 말하기 어려운, 여러 고려 사항이 있음을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현재 고소자는 고소 만능주의자들이며, 세상 법정이 교회와 신앙과 성경까지 다 판결하니 따라야 한다는 사람들이고
지금 질문자의 제안은 자칫 알지 못함으로 작은 죄를 지을 사람들에게 큰 죄를 짓도록 돕는 결과가 될 수 있습니다.
이 곳은 해서 안 될 것은 목숨이든 예배당이든 그 어떤 것이든 원래부터 돌아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과 전혀 상관이 없는 문제이면서 더 큰 가치를 위해 작은 가치를 내어 줄 때는 그렇게 하는 곳입니다.
다만 한가지 아는 것은 설교록 출판권은 부산연구소든, 신풍연구소든 어느 한 곳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입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신다 하실 때 말렸던 베드로의 중심이면 죄를 회개해야 하겠지만
목회자가 죽으러 간다 하시는데 말리지 않을 교인이 있겠습니까?
아직 젖도 떼지 못한 양떼들의 겁먹은 울음소리가 애처롭기 그지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러고 있는지요? 부산연구소는 2016년을 끝으로 더 이상 출판하지 않고 있습니다.
2017년에는 저작권 문제로 기소가 되어서 더 이상 출판연극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뜻이지요.
설교록 출판권이 1곳인데 다른 사람의 전파를 모조리 막아 버린다면? 천주교의 교황 1인 체제지요.
'출판권은 본 연구소에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한 문장의 해석이 이번 소송의 쟁점이라 하겠습니다.
설교록 출판을 본 연구소에서만 하라는 뜻인가?
아니면 본 연구소도 출판하지만 이후 생기는 연구소도 설교록을 출판할 수 있는가?
아무 연구소나 출판할 수 있다면 연구소 정관에 출판권에 관한 권리를 명시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해석과는 무관하게 개인적으로는
본 연구소가 천주교처럼 썩으면
새로운 연구소가 출판을 하면 좋겠고
본 연구소가 앞으로 설교록 출판을 잘 한다면
실력이 더 좋은 새로운 연구소는 기회를 주거나 우선권을 주는 것도 좋은 모습이겠습니다.
정확하게 일치한다 할 수는 없겠으나 이치적으로
집회에 전기를 이집사님이 책임자로 맡아서 하시는데
새로운 교인이 더 실력이 있어서 자기가 해 보겠다 그러면
목회자나 교회로서는 일단 먼저 하던 사람이 정 책임자로 하고
새로운 교인이 부 책임자로 한다든지, 이집사님을 따라 새로운 교인이 함께 협력한다든지
방법은 얼마든지 여러가지로 할 수 있는데 어느 한 쪽이 자기 혼자 하겠다는 논리를 편다면 교회가 시끄러워 질 것입니다. 좋기는 이집사님이 그동안 수고했으니 총책임자로 새로운 교인이 밑에 돕는 조력자로 함께 전기를 맡는다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겠습니다.
그러나 서로 대화로 풀 수 없다는 것이 이번 소송의 슬픈 사연입니다.
둘다 같이 협력한다면 좋겠지만 어느 한쪽만 출판권을 가져 간다면 세상은 누구의 손을 들어 줄 것인가?
지금 돌아가는 세상 재판 상황은 출판권이 오직 한 곳에서만 있다라고 인정하려는 듯 합니다.
결국 악한 인간의 원죄성과 세상법이라는 방편이 있고 가장 큰 문제는 대화가 통하지 않으니 피고의 소원대로는 되지 않을 듯 합니다.
피고의 소원대로 되기를 원하나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처럼 억울하지만 강퍅한 원고대로 돌아갈 상황입니다.
슬프고 애타지만 현실이 그렇다면 그 현실에서 해야 할 일을 찾는 것이 우리 배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소한 죄인들은 고소의 죄만 짓고
고소를 당한 의인들은 좁게 보면 억울하나 넓게 보면 복음으로 자라가야 할 다음을 향할 기회입니다.
부산연구소와의 연을 끊고
새줄발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