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당에 앉아야 예배다. 방송 설교의 은혜는 예배가 아니다 - 배종일,199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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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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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5 11:43
1990년 8월
발표 : 배종일 목사님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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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령과 진정으로 산제사를 드리는 먼저 예배를 드리는 <헌신>을 생각은 않고 은혜를 받는데만 주력하는 한국교회의 잘못된 경향이 문제입니다. 이렇게 되면 예배에 있어서 설교자는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이고, 설교의 내용만 생각하게 되고, 나의 모든 것을 드리는 산제사로서의 예배는 없어져 버리게 되어 결국은 교회는 필요없게 되고 좋은 목사는 은혜있는 설교만 하면 좋은 목사요 은혜 받으러 많이 모이나 은혜 떠나면 떠나게 됩니다. 이는 예배를 드리러 오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받으러 오기 때문입니다.
은혜만 받으려면 훌륭한 설교자가 방송국에서 설교하고 집에서 텔레비젼 수상기를 켜기만 하면 얼마든지 은혜는 받을 수 있으나 예배 드리는 것은 되지 않습니다. 미국 영국에서 교회가 타락하게 된 원인이 텔레비젼 예배를 통해 교회에 모이지 않고 집안에서 예배 드리다가 긴장 안 되고 피곤하니 기대고 눕고 하다가 타락했습니다. 만일 미국같이 텔레비젼 예배와 같이 은혜면만 강조하면 비디오를 통해 가정에서 예배하고 <주일날 교회 출석할 필요가 없고 성수 주일이나 교회관에 일대 혼란과 교역자도 필요없게 되며 공예배의 본질이 변질>을 낳게 됩니다.
* 저자 : 배종일
백 목사님 생전 서부교회의 첫 직원이자 역할이 가장 많고 뛰어난 인재이며 처조카 이재순 목사님의 둘째 사위. 백 목사님이 서영준 목사님을 후계자로 지명하는 과정에 공정성 등을 들어 반발했고 백 목사님의 교회 운영과 목회의 기본 방향에 대하여 문제점을 소신 있게 지적. 반론을 가진 이들이 모두 암약을 했으나 배 목사님은 백영희와 교회를 위해 백 목사님과 의견이 다를 때는 떳떳하게 발표를 했다는 점에서 김철수와 함께 양심적인 제자로 평가할 수 있음)
(원문)
제목: 사자(死者) 비디오 설교를 공예배시 함은 비예배적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 지난 한 시대에 하나님의 종을 세우셔서 우리 구원의 지도자로 쓰시던 목사님은 평소 원하고 원하시던 순교의 제물이 되셔서 우리 곁을 떠나 주님의 품에 안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함께 하셔서 종을 통하여 우리를 양육하여 주셨던 은혜의 말씀을 사모하는 성도들의 지도자를 잃은 슬픔과 종을 통하여 주셨던 은혜의 말씀은 이젠 더 이상 받을 수 없다는 현실에서 종을 사모하고 그리워하는 양떼들의 말씀 사모는 무어라고 표현할 수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모세를 장례한 지 30일을 애곡한 사실을 감안 목사님 사후 50일이 지난 시점에 목사님께서 평소에 교훈하신 정신에 따라 사자 비디오 설교는 공식 예배시는 하지 말고 담임 목사님이 직접 설교를 담당해야 하며 개인적으로나 단체적으로 공식 예배 외에 어떤 장소 어떤 회합에서든지 자유로 새김질이나 은혜를 받기 위한 재독은 자유로 할 수 있다는 20회 임시 공회 결의가 다수결로 졸속 처리 되었다며 진리 투쟁이란 명분으로 서부교회가 비디오파 반디오파 투쟁이 일어나고 있음은 심히 가슴 아픈 일입니다.
1.예배의 정의
예배는 하나님과 성도와의 인격적 교제 혹은 만남입니다. 그리고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목사님 설교 가운데 기도는 하나님과 자기와의 대화요 설교는 하나님과 설교자와 교인과의 3자의 대화라고 양성원 학생들을 차례로 새벽 예배시 기도를 시키면서 교훈 하셨습니다.
신약의 예배는 구약시대의 제사행위의 신약적 행위로서 예배자가 하나님께 기도와 찬양과 헌물을 드리고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말씀과 축복을 해 주시는 것으로 설교하는 교역자나 성도는 다같이 광의적 의미에서 제물로 드려지는 예배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2.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 가? (방법)
구약시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때 살아있고 흠없는 것을 여호와 앞에 열납 하시도록 했고 (레1:4) 더러운 떡 눈 멀고 저는 것 병든 것은 악하다 가납치 않는다고 하셨습니다(말1:7-8).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산 짐승을 성소에 가져오면 산 짐승을 잡아서 피를 제단 사면에 뿌리고 가죽을 벗기고 각을 떠서 제물로 드렸습니다(레1:5-7). 죽지 않고 산 것입니다.
먼저 제물을 드려 제사장이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흠향하시고 제물에 따라 합당한 은혜를 제사장을 통해 베풀어 주셨습니다.
신약시대 예배는 영이신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라고 했습니다(요4:23-24). 그리고 산 제사를 드리라고도 했습니다(롬12:1).
신령은 성령의 감화 감동을 받은 심신이요, 진정이란 자기의 몸, 마음, 뜻, 정성, 인격을 다 기울여 예배를 드리라는 말입니다 산제물은 심신이 살아 있으나 자기의 몸, 마음, 생각, 뜻이 전적 하나님 뜻대로 움직이지 자주장이 없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설교자도 예배를 드리는 사람으로 신령과 진정으로 산제사를 드려야 함으로 사자(死者)는 될 수 없습니다. 사자가 어떻게 하나님과 성도와 대화를 할 수 없습니다.
3.예배시 말씀 선포와 화답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율례를 백성에게 선포하실 때 하나님과 교제에는 3단계가 있음을 알 수 있고, 백성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명하신 말씀을 준행하겠다고 했습니다(출24:1-3). 에스라가 광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느니라(느8:6). 모든 백성은 응답하여 아멘 할지니라(신27:15하반절).
예배시 말씀 선포를 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에베소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계2:1) 7교회 사자에게 직접 하셨고 예배시간에 주시는 말씀은 오늘날 내게 대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신28:1). 서부교회 비디오 설교시 아멘으로 화답한다면 비디오 속에 나오는 목사님을 생존의 인물이나 인격체로 상대할 위험이 있고 성경 이치나 배울 것이나 설교자에 대한 예를 표하거나 화답하는 이를 삼가 하라는 비디오 재독에 대한 주의 문은 성경정신과 배치된다 하겠습니다.
4.사회자가 예배 순서에 따라 비디오를 재독하면 문제가 안 된다는 것에 대하여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 앞에 단을 쌓고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라 일찍 일어나 번제, 화목제를 여호와 법대로 제사를 드리고 앉아서 먹고 마시고 뛰놀았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부패하였도다 그것을 숭배하며 그것에게 희생을 드렸다고 하나님께서 진노하고, 진멸하려 하셨습니다(출32:1-10). 예배 순서에 따라 한다고 해도 성경정신과 배치된 것은 옳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5.예배 드리는 것과 은혜 받는 것의 차이
신령과 진정으로 산제사를 드리는 먼저 예배를 드리는 헌신을 생각은 않고 은혜를 받는데만 주력하는 한국교회의 잘못된 경향이 문제입니다.
이렇게 되면 예배에 있어서 설교자는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이고, 설교의 내용만 생각하게 되고, 나의 모든 것을 드리는 산제사로서의 예배는 없어져 버리게 되어 결국은 교회는 필요없게 되고 좋은 목사는 은혜있는 설교만 하면 좋은 목사요 은혜 받으러 많이 모이나 은혜 떠나면 떠나게 됩니다. 이는 예배를 드리러 오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받으러 오기 때문입니다.
은혜만 받으려면 훌륭한 설교자가 방송국에서 설교하고 집에서 텔레비젼 수상기를 켜기만 하면 얼마든지 은혜는 받을 수 있으나 예배 드리는 것은 되지 않습니다. 미국 영국에서 교회가 타락하게 된 원인이 텔레비젼 예배를 통해 교회에 모이지 않고 집안에서 예배 드리다가 긴장 안 되고 피곤하니 기대고 눕고 하다가 타락했습니다. 만일 미국같이 텔레비젼 예배와 같이 은혜면만 강조하면 비디오를 통해 가정에서 예배하고 주일날 교회 출석할 필요가 없고 성수 주일이나 교회관에 일대 혼란과 교역자도 필요없게 되며 공예배의 본질이 변질을 낳게 됩니다.
6.영감역사에 대하여
비디오는 기록의 보존이요 그것을 통해 과거적 영감은 있으나 현재와 미래적 영감역사는 없습니다. 교역자들이 강단에 설 때 이 시간은 인간의 생각이나 주장이나 교훈을 전달하는 시간이 아니요 하나님이 영을 입어서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말씀하고 계신다는 확신과 믿음이 있다면 이 문제 해결에 척도가 될 것입니다. 설교 중 원고에도 없는데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는 그 영감역사는 없습니다. 칼빈시대에 다른 사람보다 탁월하게 역사하는 그 영감역사가 살아 역사한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하여 지도자 목사님은 주물로 형틀에 쇠를 부어 고정 시키는 것 같고 그것을 초월한 영감역사가 없다고 가르쳤습니다(설교록 129호 570페이지). 주기철 목사님께서 설교록을 모아다가 불태운 것을 두고 영안이 밝아서 하셨다고 하셨고, 설교록을 발간함은 받아서 전할 때 빠지거나 엉뚱한 것 덧붙여 전하기 때문에 대조시켜 정확히 전하기 위해 발간하나 이것도 속화시키는 방법이라고 걱정하셨습니다(설교록 129호 568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