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법을 지켜야 하는 한계, 1995년 연구소의 당시 입장

공회내부 발언      

세상법을 지켜야 하는 한계, 1995년 연구소의 당시 입장

설명
담당 0 0

JAN 11 '95 12:05 PAIK PASTORAL INSTITUTE P.1

* 세상법을 지켜야 하는 한계
결론적으로 말하면 세상법은 하나님의 법에 걸리지 않는 한 전부 다 지켜야 합니다.
논리적으로 몇 가지만 살펴본다면

1. 성도(교회)와 세상과의 관계

1)세상 속에 있는 교회 (성도)
창세기 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동방의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만드신 사람을 거기에 두시고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셨으며 동산에 있는 모든 실과 중 선악과 외에는 다 임의로 먹을 수 있게 하셨고 동산을 다스리며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에덴동산은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현실입니다. 현실은 세상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세상을 등지고 사는 염세주의가 아니고 세상 속에 살면서 구원을 이루어가는 득세주의요 구세주의입니다. 마태복음 5장에는 성도를 가리켜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세상의 빛이라 말씀하셨고 마태복음 10장 16절에는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보내신 것은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고전 5:10에는 음행하는 자들 탐하는 자들 우상 숭배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않으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하리라 말씀했습니다. 세상 속에 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세상 속에 살고 있는 성도가 세상 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세상과의 모든 관계에서 불필요한 마찰이 빚어져 자타의 구원을 바로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2) 세상은 이용물, 배설물
다시 창세기 2:15에 동산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셨습니다. 자기 현실을 지배하지 현실에 지배받아 현실에 피동되지 말고, 현실 하나님과의 관계에 다른 것이 들어오지 못하게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민 14:9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했습니다.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우리의 먹을 양식이라는 말씀으로 해석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이루어 가는데 필요한 모든 조력의 것들이라는 말씀입니다. 빌 3:8 사도 바울은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필요한 영양분을 다 먹고 찌꺼기는 버리는 것입니다. 이 세상 속에는 우리 성도가 구원을 이루어 가는데 필요한 영양분들이 한없이 들어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우리는 다 양식으로 먹고 자라가야 하며 찌꺼기는 버리는 배설물이 되어야 합니다.

3) 세상 속에 있으나 구원된 성도(교회)
이렇게 성도(교회)는 세상 속에 살면서 세상을 이용물로 배설물로 삼아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세상이 없이는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질 수가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할 것은 세상 속에 살면서 세상을 밟고 이용하고 먹으면서 살아야지 세상에서 밟히고 이용당하고 먹히면 멸망이라는 것입니다. 노아 때에 방주가 가치가 있었던 것은 홍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배는 상선도 어선도 군함도 아니었습니다. 홍수가 없었다면 방주는 아무런 쓸모도 가치도 없었을 것입니다. 홍수가 있을 때, 물이 있을 때 방주는 필요하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방주에 구멍이 뚫려서 물이 방주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 그 방주는 곧 가라앉아 못 쓰게 되고 거기 탄 사람들은 다 죽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도에게 있어 세상은 방주의 물과 같이 없어서는 안될 꼭 필요한 것이지만 그러나 성도가 세상 속에 빠져버리면, 세상에게 이용당하면, 세상에게 먹혀 속화되면 방주에 구멍이 뚫려서 물이 새는 것처럼 성도는 멸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교회)는 세상 속에 살지만 세상과는 뚜렷이 구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이름을 성도, 즉 구별된 무리라 그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2. 성도도 세상법을 지켜야 합니다.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성도와 세상과의 관계가 이러하기 때문에 성도도 세상법을 다 지켜야 합니다.
롬 13:1 – 보면 모든 권세는 하나님의 정하신 바이기 때문에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고 했습니다. 또 공세 바칠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바칠 자에게 국세를 바치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성도가 세상법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요 곧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3. 세상법을 지켜야 하는 한계
1) 세상법과 하나님의 법이 대립될 때
성도가 세상법을 지켜야 하는 이유를 간단한 논리로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세상법을 지켜도 하나님의 법에 아무런 갈림이 없을 때는 문제가 없으나 세상법과 하나님의 법이 대립되어 세상법을 지키려면 하나님의 법을 어겨야 하고 하나님의 법을 지키려면 세상법을 어겨야 할 때가 문제입니다.

2) 성도의 두 나라 한 통치
성도가 땅 위에 사는 동안에 하나님이 주신 세상의 나라는 자기의 조국입니다. 이 나라는 무시도 부인도 배반도 할 수 없습니다. 자기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구원을 이루어가는 데 필요한 한 기관이요 울타리이기 때문입니다.
또 성도에게는 무궁세계 곧 하늘나라가 있습니다. 이곳을 본향이라고 말을 합니다. 원래의 고향이요 원래의 나라라는 말이니 곧 우리의 참 본향이요 참 우리의 나라인 것입니다. 이렇게 성도는 세상에 있는 동안 두 나라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라는 두 개이지만 통치는 한 통치만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 한 분 만의 통치를 우리는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나라의 통치자는 하늘의 통치자이신 하나님이 세우신 분봉왕과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 통치자의 통치가 하늘 통치자의 통치와 일치하면 순복해야 하니 세상 통치자의 통치가 하늘 통치자의 통치와 틀리면 이는 분봉왕이 대왕을 반역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복종하면 반역에 가담하는 죄가 되어 함께 반역자가 되는 것이므로 순복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다니엘을 듭니다. 다니엘이 왕에게 등용되어 신임을 받아 전국의 총리가 되었고 왕이 가장 신임할만큼 왕의 명령(세상법)을 충성으로 지켰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것을 막는 반역의 통치가 왔을 때에는 사자굴이 앞에 있고 왕이 하루종일 사정해도 변함없이 하나님의 법을 지켰고 이것이 바사 나라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케 하였던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성도가 세상에 사는 동안에 세상법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법에 걸리지 않는 모든 세상법은 지켜야 하는 것이고 이것은 곧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 중의 하나인 것입니다.

4. 세상법을 지켜야 하는 한계는 하나님 법과 세상법의 차이 때문
위에서 설명한 것들을 역으로 설명하면 성도는 하나님의 법에 걸리는 세상법은 하나도 지킬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세상법과 하나님의 법의 차이 때문입니다. 법을 어기는 것을 죄라고 말하고 죄에는 반드시 형벌이 따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이요 이 하나님이 법을 모형해서 만든 것이 세상의 모든 크고 작은 여러 종류의 많은 법들입니다. 고전 15:56에 보면 사망(형벌)의 쏘는 것은 죄요 죄(법을 어긴 것)의 권능을 율법이라 했습니다. 여기서 한 단계 더 올라가서 설명한다면 율법의 권능은 입법자의 힘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법을 어겨 죄를 지어도 법을 만든 입법자나 입법 기관이 힘이 없어 그 형을 집행할 수 없다면 그 법은 무용지물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법이라는 것은 법을 만든 입법자나 입법기관이 그 법을 집행할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효력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에서도 개인보다는 가정법 가정법보다는 사회법 사회법보다는 국가법 국가법보다는 세계법을 우선해서 지킬 수 밖에 없는 것은 그 법의 입법자나 입법 기관의 힘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세상법과 하나님의 법 차이도 이와 유사한 것으로 설명은 설명할 수 있습니다. 성도가 세상법보다 하나님의 법을 우선해서 지키는 이유 중의 하나는 세상의 어떤 법의 입법자나 기관도 하나님의 법을 만드신 하나님보다 강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만약에 하나님보다 강한 어떤 존재가 나와서 법을 만든다면 하나님의 법은 두 번째로 밀려나고 그 존재의 법이 최우선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법을 두고 두 번째의 하나님의 법을 지킨다면 하나님보다 강한 그 존재에 의해서 하나님도, 그 법을 지키는 자도 다 멸해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과 함께 세상법보다 하나님의 법을 종신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세상의 모든 법은 어떤 법도 그 법의 입법자나 그 기관 혹은 거기에 속한 존재를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그 법과 무관한 존재들에게는 해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요. 또 그 임명자나 기관이 자기대로 만존재를 위해서 만들었다 하더라도 불완전한 피조물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며, 따라서 불완전한 이 세상의 불완전한 피조물 그 중에 영장인 인간이라 하나 역시 불완전한 인간과 그 단체가 만든 법이 완전한 법이 있을 수가 없는 것이고, 불완전한 그것은 당연히 세월이 가고 환경이 변해짐에 따라서 그 모든 법도 변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니 세상의 모든 법은 다 그러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은 입법자이신 하나님이 자존, 완전, 영원 불변자이시며 따라서 그 분이 만드신 법 또한 완전하고 영원불변한 법이며, 이 법이 곧 하나님에게 지음 받은 모든 만존재들에게 영원한 생명과 평강이 되는 완전하고 불변한 유일의 법이기 때문에 천상천하의 모든 법보다 이 하나님의 법을 중심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절대 불가항력의 이치를, 또 이것이 하나님을 중심한 하나님에게서 나온 천상 천하의 모든 존재들의 생명의 법칙이니 이것이 세상법의 하나님의 법의 무한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쓰기 공회내부 발언 초기목록
(1) 게시판 검색
분류별
자료보기
생활 노선 공회 교리 교계 총공회 서부 신학
교회 설교록 기타 . . . . .
번호제목이름파일날짜
  • 2640
    동천실
    2020-12-10
  • 2639
    세종실
    2020-12-05
  • 2638
    서인실
    2020-11-29
  • 2637
    세종실
    2020-11-29
  • 2636
    북단
    2020-11-21
  • 2635
    공회
    2020-11-10
  • 2634
    소식
    2020-11-06
  • 2633
    연구소
    2020-11-05
  • 2632
    회원
    2020-10-27
  • 2631
    목회자
    2020-10-20
  • 2630
    서부인
    2020-10-15
  • 2629
    밤갓
    2020-10-11
  • 열람중
    담당
    2020-09-23
  • 2627
    司書
    2020-09-20
  • 2626
    MARK
    2020-09-12
  • 2625
    司書
    2020-09-06
  • 2624
    司書
    2020-08-30
  • 2623
    교인
    2020-08-28
  • 2622
    남반
    2020-08-25
  • 2621
    교인
    2020-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