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가호위(狐假虎威)를 생각하며
| 설명 |
|---|
호가호위(狐假虎威)를 생각하며
세상은 자연 계시입니다. 고사성어도 자연 계시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호가호위라는 고사성어를 좀 달리 해석하여 우리의 신앙 세계에서 복되게 선용하여 적용해 봅니다. 호가호위(狐假虎威)의 거짓 가(假)를 가짜가 아닌 진짜로 바꾸어 우리에게 적용시켜 생각해 보았습니다.
1. 동물의 세계에서
동물들이 여우를 보고 도망을 칩니다. 여우는 제가 산중의 왕인 양 뒤로 저뻥 하면서 위세를 떱니다. 여우 뒤에는 호랑이가 있습니다. 동물들은 여우 뒤에 있는 호랑이를 보고 다 도망을 치는데 여우는 그 호랑이 앞에서 호기를 부립니다. 여우는 호랑이를 이용하여 제 뒤에 두었습니다. 꾀 많은 놈입니다. 그래서 이름이 여우입니다. 호랑이가 뒤에 있으니 동물들은 호랑이를 뒤에 두고 있는 여우 앞에서 도망을 칩니다. 여우는 그것을 이용했습니다. 호랑이의 위세지만 그 위세를 이용한 것은 여우였습니다.
2. 사업의 세계에서
바이어가 물건을 주문하려고 합니다. 평판 좋고 실력 있다는 회사 세 군데를 우선 선정했습니다. 한 회사는 중소기업입니다. 실력도 있고 신용도 있고 주변 평판도 좋습니다. 친절하게, 자신 있게 상담했습니다. 두 번째 회사 역시 중소기업입니다. 비슷하게 실력도 평판도 좋고 친절했습니다. 그런데 자신감은 조금 떨어지는 듯, 좋게 말하면 겸손한 듯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따로 알아보니 그 회사는 대기업을 배후에 두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회사가 잘못한 것은 모기업인 대기업에서 책임을 져 준다고 합니다. 세 번째 회사도 중소기업인데 역시 앞 두 회사와 모든 면이 비슷했는데 배후에 국내 최고의 세계적인 기업이 아주 잘 연결이 되어 있었습니다. 바이어는 어느 회사와 거래를 할까? 교역자가 이런 경우 교인은 어떤 교회를 선택할까?
3. 신앙의 세계에서
1)공회 교역자들의 호가호위
백 목사님 당시 실력 있는 많은 교역자들이 있었습니다. 고만고만한 분들은 목회나 신앙이나 모든 면이 말 그대로 고만고만했습니다. 실력 있는 분들은 달랐습니다. 신앙도 달랐고 목회 실적도 탁월했습니다. 자신감도 충만했습니다. 교회에 대한 장악력도 교인들의 존경도 남달랐습니다.
호가호위라는 고사성어를 선용하여 당시 공회의 교역자들, 특히 실력 있는 분들을 분류해 보면 크게 둘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한 종류는, 자기 실력을 실력의 전부로 삼은 분들입니다. 대표적으로 김철수 송용조 장렬 목사님 같은 분들입니다. 신앙도, 학벌도, 실력도 탁월한 분들입니다. 어느 곳에 가도 앞설 분들입니다. 한 분은 목회 실적은 별로 좋지 않았으나 두 분은 목회 실적도 탁월했습니다. 교회를 부흥시키며 교인들을 거의 완벽하게 장악했었습니다. 세 분 다 뒤에 공회를 탈퇴했습니다.
한 종류는, 자기 위에 백 목사님 실력을 자기 실력으로 삼은 분들입니다. 서영준 전성수 홍순철 목사님 같은 분들은 특히 그러했습니다. 이분들 역시 신앙도 세상 실력도 탁월한 분들입니다. 목회 실적도 참 좋았고 진정으로 교인들의 존경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이분들은 늘 자기 위에 백 목사님을 모시고 있었습니다. 앞의 분들은 백 목사님 밑에 있었지만 내면은 자기들이 전부였습니다. 그분들의 탈퇴한 행보가 말해 주고 있습니다.
백 목사님은 사람의 중심 내면을 파악하는 통찰력이 탁월한 분입니다. 일반 사람들뿐 아니라 어지간히 탁월하다는 분들과도 전혀 다른 차원으로 사람을 살피셨습니다. 당연히 이런 모든 분들의 내면을 정확하게 알고 계셨습니다. 자기 실력을 전부로 삼는 분들에 대해서는 많이 책망하셨습니다. 백 목사님을 위로 모시고 있는 분들은 알게 모르게 칭찬하셨습니다. 서영준 목사님은 후계자로까지 생각하셨습니다.
교역자도 교인들도 대부분은, 백 목사님과 가깝고 백 목사님을 높이면 칭찬하고 백 목사님을 높이지 않으면 책망하는 줄로 오해했을 것 같습니다. 아는 사람들은 그 이유를 그 당시도 알았고, 세월이 증명하고 있는 지금은 누구나 뚜렷하게 알 수 있습니다. 공개적으로도 가끔 말씀하셨습니다. 백 목사님과 가까운 것이 하나님과 가까운 것이고 백 목사님과 멀어지는 것이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그때나 지금이나 모르는 분들은 여전히 모를 수 있습니다. 복 없는 분들입니다. 이런 것은 참 중요한 것인데…
2)백 목사님의 호가호위
백 목사님은 당신의 실력을 전부로 아셨을까? 그랬다면 백 목사님에 대한 존경은 한계가 있었을 것입니다. 백 목사님의 성화와 깨달음과 충성은 역사적으로도 흔하지 않고, 사람에 따라 존경하는 방향과 정도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백 목사님을 두고 그분이 당신의 성화, 그 깨달음, 충성, 세월 속에 이루어 놓으신 업적들을 전부로 알고 있었다면 어떤 사람은 그렇게 크게 존경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백 목사님은 이 모든 것 위에 하나님을 당신의 머리로 두셨고, 순교하시는 날까지 이것은 변치도 않았고 식지도 않았습니다. 백 목사님을 가까이 접하는 분들이 백 목사님께 특히 머리를 숙이고 존경하는 것이 바로 이 면입니다. 순교하시는 그날까지 당신은 하나님의 ‘종’이었고 하나님이 버리시면 한순간 어디까지 천해질 수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한 분이었습니다.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사랑하고 두려워하며 순종한 참 하나님의 종이며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가까이서 접한 분들은 이면을 늘 보기 때문에 그분에 대한 존경은 세월이 갈수록 더해집니다.
4. 이 시대, 우리의 호가호위
교인들은 교역자를 존경합니다. 갈라디아교회 교인들은 목회자인 바울을 하나님의 사자와 천사처럼 대접했고 눈이라도 빼 줄 만큼 아끼고 존경했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복이었습니다. 오늘도 교회마다 정도는 다르지만 올바른 교회라면 교인들은 교역자를 존경합니다. 어떤 교회 교인들은 정말 눈이라도 빼 줄 만큼 교역자를 존경하며 아끼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 정도는 아니라도 교인들이 정말 교역자를 아끼고 존경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생각해 봅니다. 이분들이 교역자에게 이렇게 하는 것은 그 교역자가 주님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교역자 자기 실력 자기 인품이 아니라 주님 때문이라는 것을. 그럴 때마다 호가호위라는 동물 세계의 사자성어를 생각해 봅니다. 여우는 허세였지만 교역자가 참으로 주님을 모신다면 실세가 됩니다. 주님 앞에 모든 사람은 머리 숙일 수밖에 없고 순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인들에게 인정받고 존경받는 교역자가 자기 실력을 전부로 삼는 것과 자기 위에 스승을 두는 것 중 어느 것이 나을까? 백 목사님께서 평소 가장 안타까워하셨던 것 중 하나가 어려운 일을 만날 때 물어볼 스승, 배울 스승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주님과 직접 통하셨습니다. 가장 좋은 것이고 하나님께서 특별히 쓰신 경우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어지간하면 자기를 전부 삼지 말고 자기가 배울 자기 위에 스승을 두는 것이 지혜일 것입니다. 그런 스승을 찾는 것이 쉽지 않으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복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런 깨달음과 인식에 들어올 수 있는 안일과 무책임을 조심하며, 말이 될지 모르겠지만 ‘배주상사시아(背主上師示我)’라는 단어를 만들어봅니다. 앞에 보이는 것은 나, 내 위에 스승, 그 배후에는 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