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과 육의 거듭남의 인식에 대해서 (이동-관)
| 설명 |
|---|
반사
34
0
2021.06.16 11:49
문답방 10317 거듭남의 인식 -영과 육(제-관)) 에서 이어지는 주제입니다.
원제 : 거듭남 공과, 내용 추가 건 - 모르는 것이 영인가? 육인가?
개인적으로 확정이 안되어 문답방에 이어 여러 다양한 분들의 생각을 들어보고자 발언/연구방에 추가로 올립니다.
만약 과거 공과 거듭남에서 그 내용을 추가한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겠습니까?
거듭나는 것은 본인이 알 수 없다고 요3:7-8절과 주교 공과 거듭남 본론2.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엇이 모르는가? 나의 영인가? 나의 육인가?
주일학생을 지도하고 영과 육을 구분하여 가르치는 입장에서 정리한다면.
1. 영의 중생은 본인이 모르나 현실에서 육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본인이 알 수 있다.
(요3:7-8절 바람 비유는 중생된 영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다.)
2. 영의 중생을 본인이 모르듯 현실에서 육이 다시 살아나는 것도 본인이 모른다.
(요3:7-8절 바람 비유는 영과 육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씀이다.)
공과 내용에 설명을 추가한다면 위 두 문장 중에 어느 정리가 옳은 방향인지
담당, 1,2,3,4 ... 목회자님들의 답변을 듣기 전에 먼저는 각 교회별 또는 각 공회별
주일학교 오전, 오후 예배 설교를 인도하시는 선생님들의 평소 생각이나 답변을 우선적으로 듣고 싶습니다.
요한복음 3:7-8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2. 영의 중생을 본인이 모르듯 현실에서 육이 다시 살아나는 것도 본인이 모른다.
(요3:7-8절 바람 비유는 영과 육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씀이다.)
위의 글이 맞다면.. 요3:7~8과 육이 살아나는 것으로 해석하셨으니
"육이 살아나는 것 = 거듭남 =중생"
으로 해석이 되는 것이 아닌지?
우리는 이렇게 구분짓지만
주님은 영이 다시 살아나는 것도 육이 다시 살아나는 것도
요3:7-8절에서 거듭났다고 주님이 표현하셨다면
이런 가정하에서 주장2번이 도출된 듯 합니다.
그런데 요즘도 가끔 기독교가 진리인가 의심이 듭니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신가 의심이 들때가 있습니다.
어떤 통계로는 예배당에 2달이상 안나오면 하나님을 의심 부인하게 된다고 합니다.
제 생각은 본인의 심신의 성화에 대해선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의 현재 신앙상태에 따라서요.
그런데 "심신의 성화를 성도 본인이 모른다"와 요3:7~8의 연결은 맞지 않는 해석 같습니다.
심신의 성화를 본인이 모른다와 요3:7~8을 연결한다면
결국 심신의성화를 중생으로(거듭남)으로 해석이 되기 때문에 반사선생님도 심신의 성화를 중생으로 안보시니...
요3:7~8과 심신의성화를 본인이 모른다를 연결시키는것은 더욱이 아니라고 봅니다.
2번의 반론이 있어 그렇게도 한번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육의 살아남을 거듭남으로 표현한 설교록을 보고서, 고민이 되어 공회교인분들께 질문을 하였는데
당시에 그분들의 답변은 심신의 성화는 거듭남으로 표현 할 수 없다 였는것 같습니다.
엡2:8~9(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요3: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요14:6(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이 말씀들을 기본구원-건설구원 둘다로 해석이 가능한가로 보고 있습니다.
교리사적으로 성경해석학적으로 주요한 문제 같습니다.
죽은 영을 다시 살리는 것은 전적 하나님이 살리시는데
피, 진리, 영감 이 세가지 역사가 하나되어 살린다고 한다면
죽어 있는 심신의 육을 다시 살리는 것도 사람이 살릴 수는 없고 전적으로 신적 요소인 3가지가 와서 살리니
본인이 현실에서 힘은 쓰지만 그래서 심신의 성화, 변화의 일련의 과정은 본인이 인식하지만
궁극적으로 육을 살리는 것도 영의 중생과 마찬가지로
피, 진리, 영감 이 세가지가 하나되어 심신의 기능, 요소를 살린다고 한다면
육이 다시 살아날 때 그 과정은 인적 요소인, 본인의 작심과 단행 등의 힘이 사용되었으니 안다 할지라도
신적 요소인 피, 진리, 영감이 살리는 것이고, 살아날 때 그 순간은 본인이 모른다는 것이 맞다 하겠으니
영의 중생과 마찬가지로 육이 현실에서 거듭 살아나는 것도 본인이 알 수 없다고 표현하는 게 맞다는 것이
요3:7-8절 거듭남과 바람처럼 알지 못한다는 것이 영과 육을 다 말씀하신 것이라는 2번 주장의 근거입니다.
1.본질적으로 심신의 성화인 건설구원도 전적은혜이나
현상적으로 심신의 성화는 인간의 자유성으로 움직입니다.
그러므로 중생이란 교리적용어를 심신의 성화에 적용시키기가 어렵다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중생은 현상적으로 인간의 자유성이 전혀 안들어가고 전적 은혜로 하나님이 죽은 영을 살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제가 알기로 백영희목사님이 육의 요소가 살아나는 것을 거듭남으로 표현한 곳은 단 한번으로 알고있습니다. 속성적이로 육의요소가 살아나는 것을 거듭남으로 설명은 할 수 있겠으나
육의 요소가 살아나는 것을 교리적표현으로 까지 정립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교리는 성경전체의 요약인데, 성경전체적으로 육의요소가 살아나는 것을 거듭남으로 표현한 곳은 단 한곳도 없고, 백목사님도 단 한번 표현한 정도이니..
삼위일체라는 교리적표현과 중생이란 교리적표현의 무게감은 다르겠으나, 교리적표현을 제정하고 정립하는 속성은 같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면 심신의 성화를 중생으로 교리적표현으로 제정/정립하는 것은 무리감이 너무 큼을 느낍니다.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 표현처럼
성경 깨달음을 한 단어,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영이 거듭나는 것을 본인이 모른다'는 것은 명확한데
1. 육이 현실에서 거듭 살아나는 것은? 본인이 안다.
2. 육이 현실에서 거듭 살아나는 것은? 본인이 모른다.
연구 주제가 곁길로 갈 수도 있어서
연구 핵심 방향만 다시 적어 봅니다.
신앙의 장성정도에 따라 당연히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습니다.
중생되고 나서 교회가고 싶은 마음이 들고,
기독교에 대해 관심 의문 의심이 드는 자체도
마음의 요소가 성화되고 있는것이잖아요
그런데 그때 당사자는 본인이 성화되고 있다고 인지 못하고, 기독교가 정말 진리라면 본인은 아직 기독교를 못 믿고 있고 의심하고 있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신앙이 자라고 교리를 알게되면, 본인의 영은 과거에 본인이 알기전에 중생했고, 과거에 기독교에 대하여 의문을 가졌던 것도 성화의 과정이라고 알게됩니다.
그러니 결론적으로 본인의 신앙의 장성함 정도에 따라
본인이 성화과정 중 이라는 것을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은 교리적 표현이 아니고, 교리적표현의 내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주일학생들에게 가르칠 때
1번이다. 2번이다. 가 아니라
신앙 정도에 따라 육의 살아남을 본인이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으니
교리적으로 딱 잘라 정리할 수는 없다.
다만 설명으로 대신할 수 있다.
제가 바로 이해했습니까?
현재 신풍교회에서 성령론을 정립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기점으로 베드로를 비유로 생각해보자면,
1. 영의 중생
예수님을 따라다니기 전, 육체의 이스라엘 구약의 유대인으로 영원 전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민족적으로 택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베드로 본인이 언제 중생이 되었는지는 모릅니다. 어느 순간 믿어졌을 것입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생일을 알 수 없듯이, 영의 중생은 정확히 언제인지 스스로 인지할 수 없습니다.
2. 심신의 성화
그러나 심신의 성화는 인간의 노력을 하기 때문에 알 수 있습니다. 죄를 끊으려고 100번을 노력하니까 끊어졌다면 분명히 그 시점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보면 끊은 것 같아도 끊어지지 않은 경우가 허다합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바로 아는 신앙의 고백을 통해 반석이라는 칭찬과 함께 하늘이 매이고 풀리는 열쇠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바로 뒤에 사단이라는 말을 들었고 예수님이 붙잡혀가실 때에는 세번 부인까지 했습니다.
그때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진실이었으며 사선을 넘어 모든 것을 버리고 자기를 꺽고 주님을 모시며 경험했던 신앙의 실제였습니다. 베드로의 말은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바로 그 뒤를 이어서 주님을 배반했고 심지어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도 다시 죄악의 갈릴리 바다로 돌아갔던 베드로와 제자들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죽기로 주님을 쫓았던 베드로와 제자들도 한 순간은 몰라도, 결과적으로 이렇게 변질이 되었는데, 과연 인간의 노력으로 심신의 성화가 가능하다고 볼 수 있겠는가? 그러나 베드로와 제자들은 사도행전 1-2장에 성령을 받고나서는 변화되어 그때부터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죄 없는 완전자가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이제야 비로소 참 제자다운 제자가 되었습니다.
3. 성화의 인식
전적 은혜요 인지조차할 수 없는 영의 중생과 다르게 인간의 무한한 노력의 정점에 심신의 성화가 있는 듯 보이지만, 제자들의 경우를 살펴본다면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참고로, 어떤 믿는 사람은 음욕을 꺽기 위해서 자기 남성을 잘랐는데도 그 생각을 끊을 수 없더라는 경험담도 있습니다.
분명히 심신의 성화는 영의 중생과 달리 인간의 노력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성경 읽기 싫지만 읽어야 합니다. 읽다보니까 성경이 읽힙니다. 교회 오기 싫지만 오다보니까 좋아집니다. 아예 어떤 사람은 처음부터 성경을 TV보다 더 좋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으로만 보면 바로 이 시점에 심신의 성화가 이루어지 것 같고, 자기 노력으로 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진짜 성화는 생명이 경각간에 닥치는 어려움이 왔을 때 증명됩니다. 예수님이 잡혀가고 믿는다고 하면 죽음이 목전에 있을 때, 장기간의 고문과 고형이 닥칠 때에 그 고통 속에서 주님을 배반하지않을 수 있는 그런 심신의 세포 하나까지, 진리와 영감에 피동된 상태야말로 그 순간이 심신의 성화입니다. 그리고 이 성화는 인간의 노력만이 아니고,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만 되는데 이 은혜를 받기 위한 노력만 하는 것입니다. 그 분량을 채우는 노력,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 밖에 없는 그러한 준비만 하는 것, 우리는 그것을 충성이라 합니다.
1. 이 부분만 보면 본인이 안다 하신 것 같고?
죽음이 목전에 있을 때, 장기간의 고문과 고형이 닥칠 때에 그 고통 속에서 주님을 배반하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심신의 세포 하나까지, 진리와 영감에 피동된 상태야말로 그 순간이 심신의 성화입니다. 그리고 이 성화는 인간의 노력만이 아니고,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만 되는데 이 은혜를 받기 위한 노력만 하는 것입니다. 그 분량을 채우는 노력,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 밖에 없는 그러한 준비만 하는 것, 우리는 그것을 충성이라 합니다.
2. 이 부분을 해석하려다 보니 노력만 하고 충성만 하고 준비만 우리가 하는 것이고
결국 하나님 은혜가 와서 변화시키는 것은 본인이 모른다는 말씀인지?
1. 베드로가 주님을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할 때와
2. 직후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것을 원치 않았을 때
3. 주님 세번 부인하고 울었을 때
4. 다락방에서 성령 받았을 때
5. 이방인이 와서 피하니 바울이 꾸짖은 그 때
6. 전언에 따르면 마지막에 십자가 형을 피하는 길에서 갈등하다가 거꾸로 매다리는 순간 그 때
각각 성화의 분량이 작게든 많게든 있었다면, 물론 은혜 받아 힘쓰게 되고 결과가 좋았든지, 나빴든지.
연구님의 결론은
베드로가 위 6가지 현실에서
본인의 심신, 육의 변화, 육의 다시 살아남을
본인이 알았느냐 몰랐느냐
본인이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다
백목사님이 거듭남 공과 본론2.를 작성하실 때
거듭나는 것은 본인이 모른다고 기록할 당시
본인의 영으로만 보셨나? 육도 모른다고 보셨나는 것이 제 의문입니다.
연구님의 설명은 감사한데
그래서 개인적 결론은 무엇입니까?
제목처럼 육의 거듭남을, 육이 현실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본인이 압니까? 본인이 모릅니까?
둘 다 입니까?
연구님의 글로는 어느 쪽을 말씀하신 것인지 제가 아직 모르겠습니다.
제가 주일학생이라 생각하시고 부연 설명과 간단 명료한 결론을 연구님께 한번 더 부탁드립니다.
영의 중생은 단번에 거듭난다.
육은 현실에서 여러번을 통해 살아난다. 처럼
사후 공과지에 문서화로, 교리화로 추가 확정하여 적는다면
본론 2. 거듭나는 것은 본인이 모른다. 에서
영의 거듭남은 본인이 모르는데,
육이 현실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은 본인이 아는가?
육이 현실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은 본인이 모르나?
현실에서 육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본인이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는가?
심신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과정적 순간적으로는 알아도
최종적 결과적으로는 알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영의 거듭남과 같이 심신이 다시 살아나는 것도 본인이 알 수 없다. ( 과정이야 어떠하든 결과적으로) 는 것이
연구님의 현재까지 결론이시라면 아래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주장 : 육의 거듭남 본인 인식 차이에 따라 아래 성구 해석도 달라진다.
요한복음3: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1.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부와 모의 육체적인 관계로 태어난 것은 (육으로 난 것은)
사람의 심신인 '육'만을 말한 것이 아니라
죽은 영과 + 죽은 육의 - 육적인 것들의 - '육이요'
2.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성령으로 거듭 살아난 것은
사람의 영만을 말한 것이 아니라
중생된 영과 + 현실에서 살아난 육의 - 신령한 것들의 - '영이니'
1. 육이 현실에서 거듭 살아나는 것은 본인이 안다.
그리고
요3:6절의 위 성구 해석은
육이 거듭 살아나는 것은 본인이 모른다. 고 2번을 믿는 분의 해석입니다.
저는 아직까지,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에서 뒤에 육을 저는 사람의 심신인 '육'만을 말한 것이고
(물론 태어날 때 죽은 영도 있지만 육으로 나서 살아 움직이는 부분만 가지고 이해를 돕는 설명이기에)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에서 뒤에 영을 저는 사람의 영만을 말한 것이라 현재까지는 믿고 있습니다.
(물론 영도 육도 성령으로 다시 살아나지만 여기선 영의 중생만을 강조해서 설명하는 면이 있다 보기에)
"이런 자" 가 기본구원 받은 자라면,
육신은 - 심신의 죄악의 요소/기능
영은 - 성화된 심신의 요소/기능
으로 해석 할 수 있습니다.
요3:6,7-8 말씀도 고전5:5 말씀처럼 해석해야 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발언/연구방에 글을 올린 것입니다.
일반교단에서도 본인의 성화되고 있음을 알 수도 있고 모를수도 있다고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인데..
예수님을 처음 믿고나서 동일한 죄에 대하어 죄 지었다 안지었다 반복하여 자기가 아직 구원못받았다 자책을 하고 있는데..(이 사람은 본인이 성화과정 중임을 모르는 상태죠)
목사님이 "너는 죄에 대하여 고민하고 아파하는건 미중생자는 그럴 수 없고, 구원받았으니 죄 짓는 것에 대하여힘들어 하는거고 지금 성화과정이다" 라고 설명해주면
그 사람은 본인이 지금 성화의 과정이란걸 인식하게 됩니다.
이건 일반교단에서 모두 공통적으로 믿고 알고 적용하고 있는데
이 내용을 교리화 한다면 일반교단에서 " 공회는 뭘 모르고 자기들만 최고로 생각한다" 라고 비판할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아이고 무슨 소리 하십니까? 저는 과거에 중생되었고(과거구원) 지금은 성화중이고(현재구원)
죄많지만 주님의 대속으로 영화를 받아(미래구원) 영원한 천국에서 주님과 살게 되는걸요"
이렇게 답변합니다.
구원파는 본인들이 이미 구원받았지만 본인들은 성화중임을 인식못하잖아여. 그들은 성화자체를 인정안하니깐요.
그러므로 잠을 잘 자는 것도(성경에 주님이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고 하였고, 불면증에 걸려 있으면 성화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정리정돈도 공부열심히 하는 것도 돈버는 것도
체중관리도 효도도 등 인간의 모든삶은 성화에 들어갑니다.
새벽예배 안나가다 새벽예배 가는것도 성화가 이루어진 것이며, 연보 안하다 연보1000원씩 하는 것도 성화가 되고 있는 것이며, 욕을 입에 달고 살다가 조금씩 줄여 가는 것도 성화입니다.
성화는 삶의 모든 부분에 적용된다는 것이 개혁주의노선 입니다.
육의 요소가 살아난다는 개념때문에 성화를 너무 추상적으로 생각하고 어렵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그럼 쉽게 한번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백목사님 생전으로 돌아가 주일학생이 수밤 거듭남의 설교를 듣고 의문이 하나 생겼습니다.
본론 2.에서 사람이 거듭나는 것은 바람 비유처럼 본인이 모른다고 하셨다.
여기서 모른다의 주체가 영에 해당되는 것만 말씀하셨고 육은 이렇다 저렇다 말씀 안하신 것으로 기억한다.
다만 영의 중생을 본인이 몰랐다가 나중에 심신의 행동을 보아 본인의 영의 중생을 짐작할 수 있다고 하셨다
즉 영의 중생과 본인의 인식, 이 둘에게만 촛점이 맞추어져 성구를 해석하신 것처럼 들린다.
그런데 3.4번에서 영은 단번에 거듭나고 육은 여러번 거듭난다고 하셨다.
거듭남을 영과 육으로 나누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계신다.
그럼 본론2.로 다시 돌아가 사람이 거듭나는 것을 본인이 모른다고 하신 것은
영의 거듭남을 본인이 모르는 것은 분명한데 육도 모른다는 말씀이신가? 아니면 육은 안다는 말씀이신가?
이 의문이 제가 거듭남 공과 설교를 재독하면서 생긴 궁금증입니다.
지금까지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에서 뒤에 영은 사람의 영이라고만 생각했지
육도 포함한다는 해석은 처음 듣는 말이라 연구 과제로 삼아 올려 여러분들의 검증을 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1988년 7월 3일 주일오후 설교 중에서 일부
이래서 우리 마음은 많은 그 분자로 합해 가지고 된 것이요 몸도 그렇기 때문에 이 몸과 마음이 살아나는 것은 여러 차례로 살아납니다 단번에 살아나는 게 아니고 여러 차례로 살아나고 영은 단번에 살아납니다
그러면 영이 살아나는 것은 이것을 가리켜서 거듭난다 말했고 여기 본문에 말하기를 성령으로 난 자는 영이니 하는 것은 성령으로 살아난 자는 영이라 성령으로 난 자는 영이니 하는 그 영은 성령은 하나님을 가리킨 것이고 영은 사람의 영을 가리켜서 말한 것입니다
문제점1. 반사선생님은 계속 육이 거듭난다는 표현을 사용화하셔서 일반화 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백목사님 전체설교에도 육이 거듭난다 설교는 단 한번이고
3공회 수많은 설교에서도 육이 거듭난다고 표현한 설교는 한번도 없었는것으로 알고있습니다.
그렇다면 육이 거듭난다고 포현하는 것이 옳은지 먼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문제점2 백목사님이 설령 육이 거듭난다고 믿으셨다고 하더라도, 또 설교도 그렇게 하셨으니.. 백목사님이 잘못 판단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후학된 우리들은 백목사님이 육이 거듭난다고 하였는게 이것이 교리적/성경적으로 맞는 표현인가 대화/토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설교의(육이 거듭난다) 내용이 잘못되었다면 백목사님께서 이부분은 잘못 깨달으셨다라고 이야기 해야 합니다.
하지만 육이 거듭난다 라는 내용을 표현을 평생에 한번 설교 하였다는 것은 백목사님도 중요하게 생각지 않으신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3.백목사님 설교에 신앙이 어릴 때 심신의성화를 잘 모르고 신앙이 장성하면 심신의성화를 잘 알게 된다는 내용들이 많이 나옵니다.
보통 질문이나 발언 글을 올리면 보통 5명, 10명을 넘지 않는데 대한 아쉬움이 좀 있어 왔습니다.
다들 바쁘시겠지만 집회 후 설문 조사처럼 각자 의견을 부탁드린 것 뿐입니다.
다른 뜻이나 의중은 없습니다.
교인님의 답글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관건은 요3:7~8을 기본구원 건설구원 둘다로 해석 할 수 있느냐 인 것 같습니다.
(심신의 성화를 심신의 중생으로 표현할 수 있는가?)
-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심신의 성화를 인지할 수 있는가?)
- 행위의 결과는 영광이기 때문에, 손양원 목사님처럼 아무리 숨기고 감춰도 심신의 성화된 결과는 자타가 다 알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1. 영의 중생은 절대 주권, 절대 예정으로 완전 해결되었기 때문에, 기본구원은 객관적 절대 판단을 할 수 있으나
2. 심신의 성화는 진리와 영감에 피동된 바로 그 상태를 말하기 때문에, 절대 판단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든지 오늘의 베드로가 내일의 가룟 유다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나의 심신이 성령에 붙들린 그 순간만 성화입니다. 단, 그 모습과 형편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신앙 때문에 술 10잔 먹던 사람이 1잔으로 줄인 것도 성화입니다. 새벽예배 안 나오던 사람이 주변 강요로 나오고 있다면 성화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제 그러다가 새벽예배를 단 한번도 빠지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면 심신의 '중생'이 된 것으로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술 마시는 것도 성화인가? 예배 한번 나오는 것도 성화인가? 대학 공업수학만 수학이고 초등학교 1+1은 수학이 아닌게 아니듯이 진리와 영감에 피동된 택자의 심신의 행위는 전부는 성화된 것입니다. 그러나 성화되어야 심신의 기능은 한 두개가 아니기 때문에,계속해서 완전한 심신의 성화를 이루도록 죽는 순간까지 인도하십니다. 그러니 문제는 지금 계속해서 내 신앙이 자라느냐 못 자라느냐 이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각 사람의 충성이 관건입니다.
평상시 매 순간마다 성령에 붙들려야 살아야 하고
이렇게 살다가
인생의 최후의 순간이 왔을 때에 그 순간까지 성령에 붙들려
죽음 고통까지 초월하는 그런 위대한 심신의 성화까지 도달해가는 것이 우리의 믿는 목적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성화된 사람은 자타가 다 알게 되는 영광의 존재가 됩니다.
2. 롬8:10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롬8:11 ....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3. 평소 배웠던 심신에 대한 교훈 중, 영은 단번에 죽었고, 육은 세월을 두고 죽어가며, 완전히 죽는 것이 우리가
인식하는 죽음이라고 배웠음.
4. 이에 더해 우리의 심신의 구원은 현실에 닥쳐 죽을 육의 기능을 롬8:11 처럼 살려나가는 것이라고 배웠음.
5. 육의 구원을 거듭남이라는 용어로 표현하기에는 현실이라는 시점에서는 맞지 않다고 보이며,
굳이 육과 결부 시키려면 재림시에 살아나는 것을 거듭남이라고 봐야 하지만, 이는 부활이라는 용어로 사용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