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화) 백영희 중생론 - 비공개 문답

공회내부 발언      

(자료화) 백영희 중생론 - 비공개 문답

설명
신대원 18 2

* 설명

서울고려, 계신대, 신촌 아현, 수도권 대동측 및 대구공회 소속 목회자나 신학생으로서 지난 10여년 간 개인 메일을 통해 연구소와 직접 대화한 내용들 중에 가장 진지한 것은 항상 '중생론'이었고, 질문의 내용도 또 문답의 전개 과정도 모두가 비슷하여 누구든 정통의 신학을 아는 사람으로서 백영희 조직신학을 접하게 되면 마치 짜여진 듯 대화가 진행 된다. 소속 단체로부터 오해 소지 등을 고려하여 비실명 대화로 오간 내용은 익명 또는 부분 변형 처리했다. 중생론에 대한 일반적 연구 차원에서 자료화를 했고, 곳곳에 여러 사람의 여러 상황도 포함이 되어 있다. 교리 연구의 자료로만 참고하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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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 개인 메일


 


안녕하십니까?


신학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다가

백영희신앙연구 웹싸이트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예전부터 알고 있던 싸이트이긴 했는데, 오랫만에 다시 접하게 되었네요.


저는 타 교단 소속 신학생입니다.

저희 교단에서는 "중생한 영은 범죄치 않는다"라는 것을 중요한 진리로 믿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도 어려서부터 그렇게 배워왔습니다.

그런데 머리가 좀 굵어지니까 그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말이지요.

교단 목사님들께 여쭈어도 속 시원한 답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교단에서 발행한 기본적인 중생론 책자는 있지만,

체계적으로 만족스럽게 충분히 다뤄지지는 않고 있습니다.

유상섭 교수님의 글도 읽어보았지만 의문을 다 풀지 못했고요.


백목사님 싸이트에 보니까 여러 자료들이 있는듯 한데,

질문답은 열람이 되어도 조직신학에 관해 체계적인 자료는 온라인으로 열람이 안되는듯 싶습니다.

제가 해외에 나와있는데, 혹시 중생론에 대해서 공개된 파일이나 잘 정리된 싸이트가 있을까요?

아니면 제가 궁금해 하는 것을 직접 여쭐 수 있을지요?


감사합니다.

담당 2025.10.23 15:19  
주은 중 평안을 기도합니다.

어떤 질문이든 환영합니다. 제가 조금 아는 부분이면 당연히 안내할 사명이 있고, 제가 모르는 부분이 나온다면 함께 연구할 우리의 과제며, 제가 아는 부분에 문제가 있다면 지적하신 분은 백 목사님처럼 제 스승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 많은 반론측 주장은 접해 보았습니다. 반론측의 일부는 더 이상 반론할 수 없다며 끝을 냈고, 반론측의 일부는 이해를 한다며 동의를 표했고, 반론측의 많은 분은 굉장한 사안이라는 반응이었습니다. 한국 교계에 중생 교리를 이단으로 정죄한 제1의 핵심으로부터 적지 않은 분들과 대화의 결과입니다. 저는 시골에 있으나 저희 쪽에서 제대로 활동하는 사람이 없고 제 위치가 설명할 입장이어서 자연스럽게 가졌던 상황입니다.

지금 질문해 주신 신학생의 글이 제게 너무 특별한 것은, 중생 교리를 어릴 때부터 배워 온 분으로부터 중생 교리의 문제를 제기해 주실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신학생이라는 신분, 어릴 때부터 이 교리를 배운 분이니 더욱 반갑습니다. 그 곳도 그렇겠지만 저희 공회만 해도 이 곳에서 외부로 탈퇴한 분은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공통적인 것은 뭔가 목회 현장이나 교회 생활이 흘러 가는 가운데 인간적인 오해나 교회 행정적인 손익 계산 때문에 나갔지 중생 교리나 삼분론 그 자체를 반대하고 나간 분은 없습니다. 단 1명은 외부 활동 가운데 교리 문제까지 거론을 했지만 그 분을 제가 개인적으로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 발표는 정치적 표현으로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해를 한다면, 그 곳이나 공회에서 이런 문제를 제기한다면 오해 받기 딱 좋지만 저는 백 목사님께 진리의 세계는 그 어떤 비판과 가능성을 하나도 빼지 않고 넘어 설 수 있을 때 가능하다고 배웠고, 이런 것은 배우지 않아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말씀이든 옳은 것을 찾아 보려는 진실 때문임을 알고 있으니  마음껏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 역시 태어 날 때부터 그렇게 배우고 자랐습니다. 적지 않은 세월을 이 노선의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대하다가 그 부정을 넘어  서고 오늘을 걷고 있습니다. 제가 가졌던 숙제였다면 비교적 쉬울 것이고, 제가 미쳐 생각하지 못했다면 이 노선 내에 표시하지 않은 많은 분들을 소리 없이 상대해야 하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신대원 2025.10.23 15:23  
제 문제는 범죄의 주체에 대한 것입니다.

저희 교단에서 "중생한 영이 범죄하지 않을 때 죄를 범하는 것은 누구냐?"라는 질문에
"사람"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영과 사람의 관계를 설명하셨지만 명쾌히 닿지 않았습니다.
저희 교단에서는 이분설을 기본적으로 따르지만 기능적인 설명으로 삼분설 비슷하게 합니다.
그리고 더 자세히는 제가 미처 못 여쭤보고 세월을 보내다가 계속 혼자서 생각하였습니다.

사람이 죄를 짓는다고 할 때, 그 주체는 인격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죄를 짓느냐고 물을때, "내"가 죄를 짓는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중생한 영이 죄를 짓지 않는데, 중생한 사람이 죄를 짓는다고 한다면,
중생한 사람내에서 영이 아닌 다른 부분이 죄를 짓는 것처럼 표현이 됩니다.
백목사님 조직신학에서는 그 죄를 짓는 것이 심신으로 표현된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인격이 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것이라고 구별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마음이 영과는 존재적으로 다른 것이라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애초에 죄를 짓고 말고는 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것인데,
중생한 사람이든 중생하지 않은 사람이든 죄를 짓는 것은 영이 아니라 마음이 되는 거고요.
즉, 영이란 것이 사람의 주체, 즉 인격이 아니라,
단지 그 인격이 사용하는 어떤 기관의 하나로 취급되게 됩니다.
그렇게 이해할 때, "중생한 영은 죄와 상관이 없다" 정도로는 이해가 됩니다.
중생한 영이 죄를 범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중생한 영은 죄를 짓지 않는다"라는 표현을 할 수 있는것인가요?
내 안에서 죄를 짓는 것은 "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좀더 생각해보면 사람의 영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이르게 됩니다.
죽은 영과 산 영의 차이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되기도 합니다.

인격의 주체를 영에 두지 않고 영과 구별시킨다면
(즉 내 인격은 죄를 짓는데 내 영은 죄를 짓지 않는다면),
불신자와 신자의 영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불신자의 영은 죽어서 아무 역할도 안하고
신자의 영은 살아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주는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인가요?
아니면 불신자의 영은 죄와 관계있고, 신자의 영은 그렇지 않은 것인가요?

어떤 쪽이든지, 불신자의 영이든 신자의 영이든 먼저 의문과 마찬가지로
죄를 짓는 주체는 아닌 것입니다.

마치 사탄과 세상이 죄를 유혹해도 죄를 범하는 것은 "나"이듯이,
죽은 영이 죄를 짓는 것은 아니지요.
그러면 중생한 영이 죄를 짓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짜피 영이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닌데 말입니다.

이것이 제가 기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문제입니다.

저희 교단에서는 이 중생교리를 확고히 붙든다지만
심도있게 고민하는 분 찾아뵙기 쉽지 않습니다.
그저 존경하는 선배 목사님의 깨달음으로 순종하며 배웁니다.
그렇게 저도 배우고 익혔지만 제 신앙고백이 되기엔 쉽지 않네요.

연구소 사이트에서는 고민의 세월이 길으셨던 것 같아서
소망 가운데 질문을 시작합니다.
관심을 가져주시고 질문을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담당 2025.10.23 15:25  
1. 양해
제기하신 문제는 중생 교리를 처음 접해 본 타 교단들이 주로 지적해 온 내용이어서 이미 pkist.net/연구실/문의답변 게시판에 여러 형태로 설명한 기억이 있습니다.

2. 검색
가능하시다면, pkist.net/연구실/문의답변/ 게시판의 제일 밑에 있는 검색창에 '중생'이나 ' 주격'이라는 단어로 검색을 해 보시면 여기서 대화하는 내용을 미리 살필 수 있고, 좀 불편하시더라도 '범죄'라는 표현으로 검색을 해 보시면 관련 없는 자료도 많지만 이 번 대화의 내용에 관련 된 자료는 더 많이 확보할 수 있습니다.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라는 대화는 '삼분론인가?' '영의 존재에 대한 실감이나 실체가 어떤가?' '기능구원' '이중 인격 문제' '천국에 차이가 존재한다면?' 등의 대화를 포함하게 되는데 지금 질문하신 분의 지적하신 문제는 상기 오간 문답 내용 중에 없는 자료도 있고 일부 포함 된 자료도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참고하실 자료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3. 최삼경
1996년, WCC의 중심에 있는 통합교단 최삼경 목사님이 공회를 이 교리로 정죄한 다음 저희의 반론을 받고 섣불리 정죄했다며 자기 입장을 취소한 다음, 학문적으로 다시 살펴 보겠다고 했는데 그 분이 신학교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저희 교리에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과제를 주면서 연구해 보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 쪽에서 의문으로 제기만 했지 이후 저희에 대해 더 이상 언급이 없습니다. '/pkist.net/연구실/자료' 게시판에서 '최삼경'으로 자료를 찾아 보시면 관련 내용이 나올 것입니다. 비록 질문이나 의문 형태로 글을 적었으나 그 분의 반론에 핵심을 담고 있습니다. 혹시 그 분의 지적과 비슷하거나 같은 의문이라면 제가 재설명을 언제 적은 기억이 있는데 자료를 따로 찾아 보겠습니다.
혹시 제가 이제 소개하는 자료를 찾고 필요한 말씀이 계신다면 제가 글을 적기 전에 편지를 적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신대원 2025.10.23 15:26  
그저 제 의문에 같이 고민하고 답해주실 분이 있다는 것 자체만 해도
크게 고무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찾아보니까 검색양이 많아서 다 볼 수 없지만
일단 북한과 남한의 의사결정을 예로 드신 것을 읽어보았습니다.
그 예를 들어 제 이해를 설명해보면
결국 의사결정기관은 하나라는 것입니다.

남한에서 다수당이 있으나 그들이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죠.
의사결정은 국회 한 곳입니다.
그러면에서 무엇을 하느냐 마느냐는 결국 국회 한 곳에서 결정하는 것입니다.
말씀하신 설명에서도 결국 인격이 하나라는 식으로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합니다.
즉, 선한 당이 영이고 악한 당이 육신의 부패성이라고 해도
그들 자체가 죄를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국회와 같은 인격을 통해서 죄를 짓게 된다는 것이 제 논리이지요.
영이나 육 그들만으로는 범죄한다, 아니다 말할 것이 못되지 않냐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런 식의 이해라면 영이 죄를 범한다 아니다가 아니라
죄에 상관이 있다 없다, 혹은 세력을 행사한다 아니다 식이 아닐까요?

더 나아가서 영이 죄에 상관이 없으나 나는 죄에 상관이 있다면
이것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와닿지 않네요.
특히 사람이 죽을 때 이분설에 의하면 영과 육이 분리되는 것인데,
삼분설에는 (영+혼)이 육과 분리되는 것이겠지요?
혼의 실체가 무엇인지 참 어렵습니다.

사실 사람의 인격과 그 실체에 대해서 저는 정확한 이해가 없는데,
마치 예수님에게 신성과 인성이 있지만 인격이 하나이신데 인격은 어디에 속한 것인지,
삼위일체 하나님은 신성의 본체는 하나이신데, 인격은 셋이라는 것에서 느끼는
제가 이해하기 어려운 점과 비슷합니다.
게시판에서 좀더 찾아보겠습니다.
신대원 2025.10.23 15:28  
영, 마음, 육의 삼분설을 설명하신 초기의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게시판 34번)
결국 마음이 인격의 주체이고 영은 사람을 구성하는 한 기관으로 이해됩니다.
그런데 다른 글에서는 영이 사람의 주체라고 설명하신 글을 본 기억이 납니다.
죄는 마음이 짓지만 주체는 영이라는 것이지요.
이 두가지가 상충되는 것 같은데, 어떻게 이해하고 계신지요.

하여간 삼분설에 의하면 영은 의사결정 기관이 아닙니다. 인격의 주체가 아닙니다.
인격의 주체인 마음이 사용하는 또는 영향받는 중요한 기관이지요.

또한 불신자의 경우 영이 죽어 있으므로 아무 역할을 안하는 것으로 설명되었는데,
죽은 영, 즉 아무 기능도 안하는 영이 어떻게 죄와 상관이 있겠습니까?
결국 영은 죄와는 무관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199번글을 보면,
"사람이 마음과 몸을 부모로부터 받아나올 때, 하나님께서 각 자의 '영'은 직접 창조로 주시며, 영은 하나님의 '직접창조'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산'영입니다. 그러나 심신과 영이 합하여 완전한 사람이 되는 순간, 그가 아담의 원죄, 즉 자기가 동참한
그 죄의 값을 영이 책임지고 바로 사망하게 됩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죄의 책임 문제에서 영이 죄를 짓지는 않지만
마음의 죄를 주체인 영이 책임진다는 말씀을 다른 데에서 봤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위 논리로 이해한다면 결국 영은 평생 살지 못하는 것 아닌가요?
담당 2025.10.23 15:32  
중생 교리 –1
'백영희 조직신학'은 450여 페이지 분량인데 그 내용은 백영희 조직신학의 전체나 일부가 아니고 '목록'입니다. 백영희 교리 체계의 전체의 한 줄로 된 줄거리라고 생각하고 소개해 보았습니다. 너무 자세하면 전체를 볼 수 없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고, 주어 진 시간 문제도 있었습니다. 문의답변 게시판의 글은 향후 정식으로 조직신학서를 출간할 때 포함할 예상 내용을 생각해 가며 적고 있습니다. 중생 교리 역시 게시판에는 그 양이 좀 많습니다. 이제 이 편지를 통해 이미 게시판에서 오간 '한 사람 내의 두 인격?' '한 사람 내의 범죄할 수 있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 등을 중심으로 질문하신 내용에만 주로 집중하겠습니다.

(지적)
사람이 죄를 짓는다고 할 때, 그 주체는 인격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죄를 짓느냐고 물을때, "내"가 죄를 짓는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
당연한 말씀입니다.

(지적)
중생한 영이 죄를 짓지 않는데, 중생한 사람이 죄를 짓는다고 한다면,
중생한 사람내에서 영이 아닌 다른 부분이 죄를 짓는 것처럼 표현이 됩니다.

->
'중생된 영이 죄를 짓지 않는다' 라고 말할 때는 한 사람의 안에서 죄의 실행 요소를 살필 때만 사용하는 표현이며
'중생된 사람은 죄를 짓는다'할 때는 한 사람 안에 어떤 요소와 어떤 과정을 거쳐 죄를 지었거나 관련 없이 통찰적 최종적 책임을 말합니다.
사지마비 환자는 절도죄를 지을 수 없으나 그 마음이 그런 생각을 했다면 마음으로 짓는 죄입니다. 성경은 마음으로 짓는 죄도 죄로 봅니다. 사지마비의 이 환자의 육체는 죄를 짓지 않았으나 그 마음이 죄를 짓는 순간 우리는 '도적의 마음을 품은 죄'를 두고 마음이 죄를 지었고 몸은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것은 내면 세계를 구별하고 살필 때 하는 말입니다. 왼 손이 훔쳤든, 오른 발이 옆 사람의 발을 알지 못하고 밟았든, 사지마비 환자의 마음이 도적질하는 죄를 지었든 그 것은 그 사람 안에 사정이고 우리는 그 사람의 어느 부분이 어떤 과정으로 죄를 지었든 상관 없이 그 사람 자체는 죄인이라고 합니다.

중생된 영을 마음과 다른 존재로 보고, 중생된 영이 죄를 지을 수 있느냐는 문제를 살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이 번 (지적)에 대해서는 몸과 마음 중에 하나가 죄를 지을 수 있고, 그렇게 죄를 짓는 경우라 해도 우리는 그 사람 자체를 죄인으로 본다는 면으로 이 대화의 일면을 먼저 짚어 보고 싶습니다.

이항복이 옆 집 대감 방을 찾아 가서 한지로 만든 방문에 주먹을 밀어 넣고 '대감, 이 손은 뉘 것이오이까?'라고 물었다는 예화가 있습니다. 문을 뚫은 것은 손입니다. 그러나 이항복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렇다 해도 그 순간에 발은 그 방문을 뚫지는 않았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주신 수 없는 죄들을 연구하다 보면 '우선, 좁은 눈으로 볼 때' 우리가 시급하게 단속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죄를 대처하는 직접적이며 근시안적이며 구체적인 면도 노력하고, 한 편으로는 팔이 죄를 짓도록 나라는 사람 전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함께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욕심 때문에 짓는 죄, 감정 때문에 짓는 죄, 명예 때문에 짓는 죄, 넘치는 육체의 건강 때문에 짓는 죄 그 어떤 죄라도 뿌리를 파고 들어 가면 아담의 원죄가 있고 그리고 각자가 출생 때부터 평생 지어 온 악성 악습이 뿌리로 뒤를 받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에 따라 환경에 따라 어떤 사람은 돈 때문에 어떤 사람은 사랑 때문에 어떤 사람은 감정 때문에 죄를 자주 짓고 그 죄로 인해 다른 죄들이 따라 일어 난다면 그 사람을 위해 우리는 그 사람에게 특히 약한 부분을 먼저 치료하기 위해 교훈과 지도에 주력합니다. 그렇게 주력하는 순간에 옆의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이 돈 때문에 죄를 짓는다고 돈만 원인이라고 보면 안 된다라고 말을 한다면? 우리는 그 옆 사람의 말을 몰라서가 아니라 돈에 약한 이 사람의 우선 지도를 위해 이 사람의 평소 생활을 어지럽게 하는 경제를 바로 잡게 하려고 주력하는 상황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음과 영이 별도의 존재라면?
마음은 죄를 짓고 영은 죄를 짓지 않는 존재라면?
당연히 우리의 노력은 우리의 마음이 죄를 짓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죄를 짓지 않는 영을 두고는 우리가 영에 붙들려 우리의 마음을 죄 짓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과 마음이 별도라는 것을 먼저 확실하게 해 두어야 한다면, 이 대화는 더 이상 전개하지 않고 일단 마음과 영이 별개인지 아닌지를 대화하고 먼저 확정하면 좋겠습니다. 다음 질문에 대해서는 안내를 해 보겠으나 이 글 뒤에 필요하다면 대화 순서는 편한 대로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따르겠습니다.

(지적)
백목사님 조직신학에서는 그 죄를 짓는 것이 심신으로 표현된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인격이 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것이라고 구별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마음이 영과는 존재적으로 다른 것이라는 것이지요.

->
사람의 죄는 그 사람 안에 있는 마음과 몸의 합작입니다. 영은 죄를 짓는 그 행위에는 직접 관계가 없습니다. 문제는 영은 그 사람 전체의 주격이니 몸과 마음이 죄를 짓지 않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아이가 죄를 지으면 부모가 배상하고, 발이 남을 밟았으면 입이 사과를 하지만 입이나 부모가 직접 죄의 행위를 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 되어 살지만 몸과 마음이 내면적으로는 분리해야 할 이유가 있듯이, 마음과 영도 한 사람 안에 있지만 분리해야 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인체지만 순환기계가 있고 호흡기계가 있고 소화기계 골근계 신경계로 나누는 것은 그 것들이 별도로 존재할 수 있거나 그럴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인체를 치료하고 관리하는 방법상 구별해야 하고, 그렇게 구별할 수 있도록 만드신 분이 하나님인 것처럼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을 구별할 수 있게 만드시고 이 셋을 합하여 한 사람으로 만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입장입니다.

(지적)
그렇다면 애초에 죄를 짓고 말고는 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것인데,
중생한 사람이든 중생하지 않은 사람이든 죄를 짓는 것은 영이 아니라 마음이 되는 거고요.
즉, 영이란 것이 사람의 주체, 즉 인격이 아니라,
단지 그 인격이 사용하는 어떤 기관의 하나로 취급되게 됩니다.

->
죄를 직접 짓는 '실행 요소'가 따로 있다는 것은 쉽게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청의 재무과 직원이 횡령을 해도 시장과 시청은 자기 이름으로 주민들에게 사과를 해야 합니다. 토목과에서 교량을 부실하게 지어 사고가 나도 시장과 시청은 자기 이름으로 공식 사과를 해야 합니다. 그 사과는 말로 넘어 간다는 것이 아니라 피해 보상 등 관련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렇지만 돈을 빼 먹고 교량을 엉망으로 만들 때 그 시청의 시장이나 타 부서가 다 함께 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실행의 책임과 관리의 책임을 구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설명을 한다 해서 '영이란 것이 사람의 주체, 즉 인격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이분설의 육체와 영혼이든 삼분설의 몸과 마음과 영이든 상관 없이 인격이라 할 때는 그 사람의 주체를 말하는 것이고 그 주체라는 것은 이분설에서는 영혼이 되는 것이고 삼분설에서는 영이 되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실행의 죄를 지을 때 영은 자기의 일부가 죄를 지은 책임을 인격으로 주격으로 져야 합니다.

(지적)
그렇게 이해할 때, "중생한 영은 죄와 상관이 없다" 정도로는 이해가 됩니다.
중생한 영이 죄를 범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중생한 영은 죄를 짓지 않는다"라는 표현을 할 수 있는것인가요?
내 안에서 죄를 짓는 것은 "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
'중생된 영은 죄와 상관이 없다'는 표현은 마음과 몸이 죄를 지을 때 실행 순간에 가담을 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아이가 남의 집 유리창을 깰 때 집에 있던 부모가 나와서 '제가 깬 것은 아니나 아이를 잘못 관리해서 제 책임입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이 말을 듣는 이웃이 표현은 사과지만 속에는 부모 책임이 아니라고 발뼘하는 듯이 보이면 감정이 격화 될 수 있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들은 '아이구!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깬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될까요?'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법을 아는 뻔뻔스런 부모는 상대방에게 '명함을 드릴 테니 유리창 깬 것의 책임을 물으려거든 경찰에 신고하시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 부모가 경찰이나 법원에 가서 '알리바이를 대며 그 아이가 유리를 깰 때 나는 해외에 나가 있었다'고 입증을 한다 손 쳐도 아이와 부모 사이가 호적상 부모며, 주민등록상 거주지가 같다면 아이의 깬 행위를 100% 부모에게 묻게 됩니다. 따라서 부모가 본 대로 아는 대로 있는 대로 말을 해도 그 말이 바로 부모의 자기 책임을 시인하는 진술이 되어 집니다.

 (지적)
좀더 생각해보면 사람의 영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이르게 됩니다.
죽은 영과 산 영의 차이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되기도 합니다.

->
이 주제를 두고 작년 5월에 의미 있는 공개 대화가 한 번 있었습니다. 고신 교단을 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고신의 중심 언론인 코람닷컴(http://www.kscoramdeo.com/)의 편집장이 naver.com이라는 포탈에서 공개적으로 백 목사님을 이단으로 거론하였고 공회 목사님 한 분이 이의를 제기했으나 취소를 하지 않아서 제가 직접 편집장에게 글을 적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상기 언론의 일면에 '고신 신학자들이 이 문제를 답하라'고 공개 청원을 했습니다. 코람닷컴은 고신의 주요 인물들이 모두 지켜 보거나 글을 올리는 곳이고 고신 내의 각종 논점이 여과 없이 가장 활발하게 진행 되는 곳입니다. 제가 이 글에서 삼분론과 영과 중생 교리에 대해 제 실명으로 글을 올렸습니다. 제가 공회 외부의 웹에 실명으로 글을 올린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이 글은 작년 5월경 상당 기간 상기 언론의 조회수 1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들에게 백영희란 그냥 넘어 갈 수 없는 이름이고 삼분론과 중생 교리란 그들로서 그냥 지나 갈 수 없는 사안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1년 반이 지나도록 어떤 신학자도 어떤 전문가도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글과 전혀 상관 없는 글은 몇 가지가 올라 왔습니다. 저는 이 글의 의미를 적지 않게 보고 있습니다. 합동은 이미 중요 교수들이 알게 모르게 저희 교리와 중요한 면에서 하나씩 이해하고 돌아 서는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고신 교수들은 사적으로 만나게 되면 당연히 합동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이 노선을 존중합니다. 그런데 고신의 분위기 때문에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저희를 인정하는 면은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작년 5월의 편집장 글은 백영희 중생 교리와 삼분론을 고신 내에서 최초로 공론화 했고 고신의 최고 인물들이 다 지켜 보는 가운데 아무도 단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속으로 이 노선을 오래 동안 살폈습니다. 겉으로 표시를 하지 못하거나 한다 해도 교단 입장 때문에 '발표용'으로 글을 적는다는 것을 상기 사건으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고신과 제가 나눈 대화는 http://www.kscoramdeo.com/ 코람닷컴/주장과 눈문/나의 주장/'삼분설'로 검색하면 '2012.5.18.-천헌옥' '2012.7.31.-권경호, 이분설인가 삼분설인가' 및 'THE BIBLICAL TEACHING ABOUT THE HUMAN BEING AND ITS EDUCATIONAL SIGNIFICANCE' 등의 3가지 글이 있습니다. 뒤에 2개 글은 엉뚱한 글이나 제가 의견을 드리기는 했으며, 깊이 있는 이야기는 '천헌옥'이라는 편집장의 글에 핵심 내용을 올렸습니다.

(지적)
인격의 주체를 영에 두지 않고 영과 구별시킨다면
즉 내 인격은 죄를 짓는데 내 영은 죄를 짓지 않는다면,
불신자와 신자의 영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
사람의 몸은 마음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기관입니다. 마음은 죄를 짓고 말고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영은 스스로 죄를 짓지 않는 존재로 만들어 졌으니 죄는 짓지 않지만 우리의 마음과 몸을 죄 짓지 않도록 달래고 지도하는 주체입니다.

불신자는 마음이 주격이 되어 살고, 믿는 사람은 신앙 생활을 제대로 할 때는 영이 주격 되고 몸과 마음이 순종을 하나 믿는 사람도 신앙을 버릴 때는 영과 마음이 대립하고 둘의 싸움에 따라 마음이 영에게서 벗어 나서 죄를 지을 수도 있고 영이 마음을 잘 붙들어 죄를 짓지 않게 할 수도 있습니다.

성경으로 알 수 있고 우리가 실제 알 수 있는 바로 이런 상황을 두고 우리 속에는 두 인격이 들어 있다고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우리와 세상이 아니라 그 싸움 이전에 우리 안에 있는 나와 나의 싸움, 중생 된 영이 몸과 마음을 장악하느냐 아니면 마음이 영을 물리 치게 제 멋대로 해 버리느냐는 두 자기의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불신자와 신자의 영의 다른 점은 불신자의 영은 죽어 있기 때문에 없는 것과 같고, 우리의 영은 살아서 활동을 한다는 점입니다.

(지적)
불신자의 영은 죽어서 아무 역할도 안하고
신자의 영은 살아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주는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인가요?
아니면 불신자의 영은 죄와 관계있고, 신자의 영은 그렇지 않은 것인가요?

->
영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으므로 하나님께 붙들리는 일만 할 수 있고, 하나님과 끊어 지면 활동이 중단 되며 그 것으로 전부입니다. 우리가 불신 시절에 다 그렇게 살아 왔는데 중생 순간에 우리가 살아 난 것은 몸이 아니고 마음이 아니고 영이 살아 났고, 영이 살아 나게 되면 그 영이 우리 마음 안에서 마음에게 신앙 출발을 시키려고 움직이기 시작하니 불신자가 자기 마음에 신앙에 대해 움직임을 발견할 때는 바로 영의 중생의 여파입니다.

(지적)
어떤 쪽이든지, 불신자의 영이든 신자의 영이든 먼저 의문과 마찬가지로
죄를 짓는 주체는 아닌 것입니다.

->
그렇습니다. 영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창세기 1장에서 우리 영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아담이 범죄했을 때 이 영이 죽었습니다. 이후 인류는 영은 죽고 몸과 마음만 가지고 살아 왔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우리가 중생할 때 엡2:1 말씀처럼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하셨는데 불신자는 지금도 죽어 있는 존재가 있고 우리는 살아 있는 존재가 있으니 이 것이 영입니다.

(지적)
마치 사탄과 세상이 죄를 유혹해도 죄를 범하는 것은 "나"이듯이,
죽은 영이 죄를 짓는 것은 아니지요.
그러면 중생한 영이 죄를 짓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짜피 영이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닌데 말입니다.

->
앞에서 설명이 된 듯합니다.
죄를 범하는 것은 '나'입니다. 그런데 '나' 중에 그 죄를 범할 때 앞 서 움직인 부분이 있고 그 죄를 지을 때 상관하지 않았던 죄도 있습니다. 지나 가는 여인을 보며 마음으로 음욕의 죄를 지을 때 그 사람의 귀와 그 사람의 손발은 할 일이 없었고 그 죄에 따로 간여할 상황이 아닙니다. 눈이 봄으로 그리고 마음이 눈을 통해 들어 온 상대를 그리며 속으로 죄를 짓습니다. 소매치기가 손으로만 죄를 짓는다 해도 경찰이 잡아 갈 때는 그 사람의 온 몸을 묶어 가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 우리의 마음의 죄는 '나'의 죄지 '나의 마음'만의 죄가 되지 않습니다. 영의 죄는 심신이 지은 죄의 책임 죄입니다. 주격 죄입니다. 관리 죄입니다.

(지적)
이것이 제가 기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문제입니다.
저희 교단에서는 이 중생교리를 확고히 붙든다지만
심도있게 고민하는 분 찾아뵙기 쉽지 않습니다.
그저 존경하는 선배 목사님의 깨달음으로 순종하며 배웁니다.
그렇게 저도 배우고 익혔지만 제 신앙고백이 되기엔 쉽지 않네요.

->
최소한 저희 교단에서는 적어도 이제 짚어 주신 문제가 내부에서 제기 된 적은 없습니다. 그대신 이제 제기하신 문제는 저희 교단 외부와 대화에서는 빠진 적이 없었습니다.

(지적)
연구소는 고민의 세월이 길으셨던 것 같아서
소망 가운데 질문을 시작합니다.
관심을 가져주시고 질문을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적어도 질문해 주신 문제를 두고는 일단 과거에 많이 다룬 내용을 중심으로 소개할 수 있을 듯합니다. 마치 삼위일체나 예정 교리가 성경으로 또 우리의 신앙으로 대세를 확정 짓는 것은 쉬워도 실무적으로 개인에 따라 제기 될 수 있는 과제는 수 없이 많고 그 과제의 일부는 오해를 설명할 수도 있으나 어떤 부분은 대략만 설명하고 나머지는 세월에 조금 맡기는 경우도 있는 것처럼 이 교리도 그런 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사안은 일반적으로 보다 쉽게 해결하고 나온 듯합니다.
이 글과 이 다음에 주신 글을 이렇게 설명 해 나가겠습니다. 언제라도 필요한 대로 필요한 부분을 물어 주십시오.
담당 2025.10.23 15:37  
중생 교리 2

(지적)
네, 당장 급한 것은 아닙니다.
전 그저 제 의문에 같이 고민하고 답해주실 분이 있다는 것 자체만 해도
크게 고무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
답이라기 보다 안내해 본다는 자세로 늘 대화하고 있습니다.

(지적)
찾아보니까 검색양이 많아서 다 볼 수 없지만
일단 북한과 남한의 의사결정을 예로 드신 것을 읽어보았습니다.
그 예를 들어 제 이해를 설명해보면
결국 의사결정기관은 하나라는 것입니다.

->
'법인'이라는 개념을 혹시 전문적으로 대해 보셨는지요? 전체는 '하나'이지만 그 내면은 여러 부분이 각자의 판단을 가지고 움직입니다. 그 내면의 판단과 움직임은 내적으로는 각자의 판단과 움직임이지만 대외적으로는 '하나'입니다. 남북을 예로 든 것은 예입니다. 북한의 김정일이 처형 지시를 하면 북한에서는 기계적으로 누구든 처형해 버립니다. 남한에서는 대통령이 광주 사태를 진압하면서 길에 나온 모든 사람을 다 죽이라고 지시를 해도 현지 사령관은 대통령에게 헌법과 군법에 의하여 지시대로 할 수 없다고 항명을 해야 합니다. 반대로 남침하는 적을 향해 대통령이 환영하고 받아 들이라고 해도 현지 사령관은 대통령의 지시는 이적죄 반역죄니 거절하고 현지를 사수해야 합니다. 현장의 사령관과 병사들 사이에도 같은 원리가 작용합니다. 나찌 전범 처리를 두고 군인이므로 지시대로 했다고 말할 때 면책이 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좀 두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적)
남한에서 다수당이 있으나 그들이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죠.
의사결정은 국회 한 곳입니다.
그러면에서 무엇을 하느냐 마느냐는 결국 국회 한 곳에서 결정하는 것입니다.

->
동성애를 비판하면 처벌하는 법을 우리 나라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 국회의원으로 이 법이 통과 될 때 반대표를 던졌다면 그 사람은 자기의 책임은 다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속한 대한민국의 국회는 동성애 보호법을 관철했고 정부는 이를 수행합니다. 정부에서 각 교회를 단속하라 할 때 인권 관련 공무원이나 경찰 공무원이 믿는 사람이라면 자기는 거부해야 합니다. 거부한다 해도 자기가 속한 경찰과 행정부는 다른 사람을 보내어 단속할 것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가 교회를 탄압할 때 그 믿는 공무원은 대한민국 정부의 공무원의 일원으로서는 당연히 교회 탄압의 일원으로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직접 행한 것이 아니므로 실행 책임에서는 면합니다.

성경에서 우리는 직접적인 사례를 찾아 볼 수 있고 또 세상 문제는 우리의 일반 자연계시 차원에서 참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을 갖고 생각해 보신다면 이 문제는 논점으로 갈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적)
말씀하신 설명에서도 결국 인격이 하나라는 식으로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합니다.
즉, 선한 당이 영이고 악한 당이 육신의 부패성이라고 해도
그들 자체가 죄를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국회와 같은 인격을 통해서 죄를 짓게 된다는 것이 제 논리이지요.
영이나 육 그들만으로는 범죄한다, 아니다 말할 것이 못되지 않냐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런 식의 이해라면 영이 죄를 범한다 아니다가 아니라
죄에 상관이 있다 없다, 혹은 세력을 행사한다 아니다 식이 아닐까요?

->
국회라는 법인 또는 법인격의 범죄에, 내가 그 구성원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그 법인격의 대표나 일부나 타 구성원의 죄 실행에 책임을 함께 져야 한다면,

사울 왕의 시대에 사울 왕의 죄를 다윗이 함께 져야 하고, 예수님은 가룟 유다의 죄를 예수님이 함께 져야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출21:36에서 내 소가 상대 소를 받아 죽이면 소의 임자가 관리 책임을 집니다. 그 소를 죽이지 그 사람을 죽이지는 않습니다. 28절에서 소가 다른 사람을 죽이면 그 때는 그 주인이 다른 사람을 죽인 직접 책임을 다 지고 주인이 죽어야 합니다. 주인은 이웃을 뿔로 받아 죽이지 않았으나 자기의 소가 받는 버릇이 있고 이 소가 이웃을 받아 죽이면 소의 인간 살해는 그 주인의 살인으로 봅니다. 심신과 영의 관계를 볼 수 있는 하나님의 공의의 법입니다.

(지적)
더 나아가서 영이 죄에 상관이 없으나 나는 죄에 상관이 있다면
이것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와닿지 않네요.
특히 사람이 죽을 때 이분설에 의하면 영과 육이 분리되는 것인데,
삼분설에는 (영+혼)이 육과 분리되는 것이겠지요?
혼의 실체가 무엇인지 참 어렵습니다.

->
일반 신학에서는 영과 혼과 영혼과 마음을 다 같은 존재라고 봅니다. 이 것을 같은 존재라고 보기 때문에 성경의 모순과 교리의 혼란이 심하게 되었습니다.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셨는데 아담은 선악과를 먹고도 930세에 죽었습니다. 그에게 죽은 부분이 있는데 그 죽은 부분이 몸일까요? 마음일까요? 몸과 마음이 아니라 제3의 다른 존재였습니다. 바로 이런 부분에서 우리는 우리가 쉽게 검출하기 어려운 '영'의 존재를 바로 찾을 수 있습니다. 인간이 타락하고 죄 가운데 살다가 너무 어두워 졌기 때문에 신령한 세계를 잘 보지 못해서 탈은 많습니다만 '신령한' '영적인 존재'인 '영'이라는 것이 따로 있다는 것만은 쉽게 결론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흔히들 이런 대화가 오가다 보면 '실감'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화학자나 물리학자가 아닌 우리 일반인에게는 세포나 분자와 전자와 같은 세계는 부인할 수 없는 것이지 우리가 실감하는 것은 아닙니다. 죽은 후의 천국과 오늘 사는 세상을 두고 말한다면 우리는 '세상'에 대해서는 100%라고 할 만큼 확신을 가집니다. 여기에 대해 '천국의 존재'를 어느 정도 실감 체감하느냐고 물으면 일부는 100%일 것이나 거의 모든 성도들은 1% 안팎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도 그렇습니다. 영의 세계는 바로 이런 세계입니다. 천국과 하나님과 영이라는 존재가 약하거나 흐리거나 가공이거나 가설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 우리의 영안, 우리의 수준이 너무 어려서 그렇습니다.

출생한 지 3-5세라면 한참 귀엽게 재롱을 부리고 생활에 필요한 대화가 충분히 이루어 질 때입니다. 그런 순간 우리가 그 아이에게 '너란 누구냐?' '네 부모가 왜 네 부모인지 아느냐?'라는 질문을 하면 말도 알아 듣지 못하고 설명할 수도 없고 설명을 해 준다 해도 아이는 모릅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10대가 되면 대충 알고 20대가 되면 저절로 압니다. 그 20대가 생화학을 전공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생화학자가 이 전에 했던 질문을 다시 하게 된다면 이 20대의 답변은 말도 안 되고 엉망인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20대가 경제학을 전공했고 생물학 화학을 전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생화학적 전문 지식을 기준으로 볼 때 말도 되지 않는 말을 했다 해도 그 20대가 자기를 모르거나 제 부모를 모를 수는 없습니다. 그 것은 생화학자의 전문 지식을 기준으로 볼 때 전문 용어로 전문 분야에 맞춘 설명이 아니었을 뿐입니다.

(지적)
사실 사람의 인격과 그 실체에 대해서 저는 정확한 이해가 없는데,
마치 예수님에게 신성과 인성이 있지만 인격이 하나이신데 인격은 어디에 속한 것인지,
삼위일체 하나님은 신성의 본체는 하나이신데, 인격은 셋이라는 것에서 느끼는
제가 이해하기 어려운 점과 비슷합니다.
게시판에서 좀더 찾아보겠습니다.

->
신인양성일위, 삼위일체, 예정론으로 나가면 성경 때문에 그런 교리가 도출은 되지만 실감은 그런 교리에 있지 않고 신령한 면으로 신앙생활을 얼마나 했느냐는 영안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대화하는 주제는 비교적 간단하고 쉬운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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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 교리 3

(지적)
영, 마음, 육의 삼분설을 설명하신 초기의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게시판 34번)

->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제가 적은 글은 제가 다시 읽지 않습니다. 이미 pkist.net에 올린 글만 해도 문답이 2만여 건에 이릅니다. 사실 찾아서 읽는 것도 또 하나의 큰 일입니다. 그렇지만 제가 하나를 알고 하나를 설명하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글을 적었다 해도 제 글끼리 모순 되는 일은 없습니다. 꼭 모순처럼 보일 때는 제가 구체적으로 살펴 볼 때가 있습니다. 표현이나 시각 차이로 인한 것이지 본질적인 문제는 같습니다. 그렇다 해도 혹시 제게서 모순이 있을 때는 구체적으로 짚어 주시면 제 자신의 오류를 다시 살피겠습니다.

(지적)
결국 마음이 인격의 주체이고 영은 사람을 구성하는 한 기관으로 이해됩니다.

->
마음은 안 믿는 사람 또는 우리가 신앙을 떠나 죄를 지을 때 그 마음이 우리의 인격의 주체입니다. 이런 상태를 성경은 옛사람이라고 합니다. 영은 죄를 짓지 않고 영은 중생 된 우리의 주체요 인격입니다. 이런 상태를 새사람이라고 합니다.

바로 이런 의미 때문에 우리는 안 믿는 불신자들을 죽었다고 합니다. 영만 죽었지 심신은 살아 있는데, 영이 주격이며 인격이기 때문에 영이 죽은 사람은 그들의 마음과 몸이 노벨상을 받든 미국의 대통령을 하든 우리의 신앙 기준에서는 그들이 죽은 사람입니다. 마8:22에서 '죽은 자들로(1) 저희 죽은 자를(2) 장사하게 하고 너는(3) 나를 좇으라'하신 말씀의 앞 부분의 죽은 자들(1)이라는 것은 안 믿는 불신자나 믿은 이후에도 신앙 없이 살 때를 말합니다. 두 번째 죽은 자(2)는 몸이 죽어 지금 초상을 쳐야 할 시체를 말합니다. 너(3)라고 한 사람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 신앙의 사람을 말합니다.

(지적)
그런데 다른 글에서는 영이 사람의 주체라고 설명하신 글을 본 기억이 납니다.
죄는 마음이 짓지만 주체는 영이라는 것이지요.
이 두가지가 상충되는 것 같은데, 어떻게 이해하고 계신지요.

->
이미 충분히 설명이 된 듯합니다.

(지적)
하여간 삼분설에 의하면 영은 의사결정 기관이 아닙니다. 인격의 주체가 아닙니다.
인격의 주체인 마음이 사용하는 또는 영향받는 중요한 기관이지요.

->
이 부분을 크게 오해하신 듯합니다.
영이란 죄를 짓는 면이 아니라 의를 행하는 면을 두고 우리의 주체요 신앙의 인격의 본체입니다.
마음이 말을 듣지 않아서 외부인이 보면 마음이 주인 노릇을 하고 영은 일개 기관처럼 보일 뿐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왜 주체라면 인격의 본체라면 마음의 죄를 그냥 두고 보거나 방치를 할까요?
'자유성' 때문입니다. 우리를 기계로 만들지 않으시고 우리를 하나님처럼 자유성을 가진 존재로 만들었으니 인간은 자기 스스로 알고 깨닫고 좋아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대화하고 심부름하는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이런 존재를 길러 가는 일은 당연히 힘으로 강제로 기계적으로 밀어 붙이지 않고 세월을 통해 스스로 알고 느끼고 결심하고 노력하게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과정 때문에 몸이 제일 힘 있고, 마음은 그 다음이고, 영은 무능하고, 하나님은 오늘 세상에서는 아무나 차 버려서 어디 굴러 떨어 졌는지도 모를 만큼 되었습니다.

마치 집에서 돌 지난 유아가 제일 멋대로 왕 노릇을 하고, 10대가 그 다음이고, 부모가 그 다음이고, 할머니는 제일 힘 없는 사람이지만 제대로 된 가정이라면 할머니 할아버지 말 한 마디에 부모가 벌벌 떨어야 하고 부모의 말 한 마디에 10대 아이들이 순종하고 돌 지난 아이는 아무 할 말이 없어야 합니다.

(지적)
또한 불신자의 경우 영이 죽어 있으므로 아무 역할을 안하는 것으로 설명되었는데,
죽은 영, 즉 아무 기능도 안하는 영이 어떻게 죄와 상관이 있겠습니까?
결국 영은 죄와는 무관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
불신자는 그들의 심신이 죄를 짓고 그들의 영은 죽어 버렸습니다. 죽어 있으니 아무 것도 못하는 것입니다. 식민지 조선 36년 시기에 이 나라의 왕은 없어 졌습니다. 백성만 남아서 일본 천황에게 기고 사는 꼴입니다. 불신자의 영은 죽어 있기 때문에 그들의 심신은 더더욱 간섭하거나 눈치 볼 존재조차 없어 원하는 대로 죄를 짓습니다. 영은 죽어 있기 때문에 이후 죄와 상관이 없을 뿐이고, 영이 처음 죽을 때는 원죄로 죽었습니다. 아담의 죄 하나로 아담과 모든 인류의 영은 다 죽었습니다. 죄의 값은 이렇게 큽니다. 영이 죽고, 불신자가 평생 살며 죄를 짓는 그 죄의 값은 이 땅 위에서는 받을 수가 없습니다. 지옥에 가서 영원 무궁토록 본격적으로 그 죄의 댓가를 치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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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 교리 4

 (지적)
"사람이 마음과 몸을 부모로부터 받아나올 때, 하나님께서 각 자의 '영'은 직접 창조로 주시며, 영은 하나님의 '직접창조'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산'영입니다. 그러나 심신과 영이 합하여 완전한 사람이 되는 순간, 그가 아담의 원죄, 즉 자기가 동참한
그 죄의 값을 영이 책임지고 바로 사망하게 됩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죄의 책임 문제에서 영이 죄를 짓지는 않지만
마음의 죄를 주체인 영이 책임진다는 말씀을 다른 데에서 봤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위 논리로 이해한다면 결국 영은 평생 살지 못하는 것 아닌가요?

->
바로 이해하셨습니다. 영은 평생 다시 살 수가 없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살아 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영이 살아 나려면 우리의 심신이 과거 지은 모든 죄를 전부 청산해야 합니다. 죄를 청산하려면 '죄의 값은 사망'이라 하신 하나님의 롬6:23의 법에 따라 죄 없는 그 누군가 나를 위해 대신 죽어야 합니다. 이 것이 바로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죽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신대원 2025.10.23 15:40  
상당히 자세하고 긴 설명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자세하게 설명해주시는 분을 처음으로 대해서 무척 기쁩니다.

그래서 반복적이기는 하지만 다시 질문드립니다.
죄를 짓는 것은 사람인데, 엄격히 구분하면 영이 아니라 마음이라고 할 때,
어떻게 영이 그 사람의 주체가 되는지 계속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음이 주체처럼 작용을 하는데 말입니다.

또한 영의 죄는 마음이 범죄하도록 내버려둔 책임의 죄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그 부분에서 결국 영이 죄를 지은 것 아닌가요? "중생한 영이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은 완전 무결이라는 뜻은 아니고 관리못한 죄는 짓지만 직접적인 죄는 짓지 않는다는 뜻인가요? 다시 말씀드리면 영혼의 역할이 마음에게 죄를 짓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면 결국 영혼이 자기의 본 역할에 실패한 것이므로 큰 죄를 짓는 것 아닌가요?

"법인"의 예에서, 내부적으로 각자의 판단과 움직임이 있는데 대외적으로는 하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비유가 약간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계속 말씀드리지만 죄를 짓는 것은 전인인 '나' 하나입니다. 내부적으로 어떤 것이 오고가도 죄를 짓는 것은 외부적인 한 사람이지요. 내부적으로 일어난 일 가지고 죄를 지었다 아니다 말할 수 없습니다.

이번엔 제가 예를 들어보지요.
한국 축구 팀이 있습니다. 그런데 브라질과 경기에서 졌습니다. 한국팀에 박지성이라는 걸출한 선수가 있는데 그 선수는 자기 역할을 100% 수행했다고 합시다. 그러나 그 선수도 한국팀이 질 때 같이 진 것이지요. 물론 그 선수의 잘못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신문에 "한국은 졌지만 박지성은 지지 않았다"라고 좋게 써줄수도 있지요. 그러나 기술적으로 정확한 표현은 아닙니다. 정확하게는 다 같이 진 것입니다. "중생한 영은 범죄치 않는다"라는 것은 이런 식의 감상적인 표현인가요?

계속 같은 비유에서 아까 박지성은 일개 선수였지만, 감독이라면 경우가 다릅니다. 경기에서 지면 아무리 훌륭한 감독이라도 그 감독은 진 것입니다. 아무도 "한국 축구는 졌지만 감독은 이겼다"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선수들의 역량이 부족해서 졌어도 결국 그 감독이 잘못한 것입니다. 영이 일개 기관이 아니라 사람의 주체라면 사람이 죄를 지을 때 영이 잘못한 것입니다. 심신을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데도 "중생한 영이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하면 정말 영은 아무런 죄의 책임과 상관이 없는듯한 것이 되어 오해의 소지만 불러 일으키고 바른 표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축구경기에서 졌는데, 자꾸 감독은 지지 않았다고 주장하면 그게 어떤 의미인가요?

동생애와 관련된 국회 비유도 드셨는데,
동성혼을 합법화하느냐 불법으로 하느냐에 대한 판단은 국회의 일이지 일개 국회의원이나 정당이 아닙니다. 정당이나 개인은 자신의 의견이 개진하고 영향력을 행사할 뿐이지요. 어떤 정당이 동성애를 반대했지만 국회가 합법화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지, 그 정당이 합법화 했다 아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죄를 짓는 것은 그 사람이지, 그 안에 있는 영이 아니라고 한다면, 영이라는 주어에 범죄라는 동사를 붙여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계속 반복되는데,
또한 죽은 영이 아무 기능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그럴때 중생한 영이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하면,
죽은 영은 죄를 짓고 있는 것처럼 해석이 되지 않을까요?

하여간 제 이해로는 삼분설의 논리를 따를때라도 "중생한 영은 죄를 짓지 않는다"는 표현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중생한 영은 죄와 상관이 없다" 정도로만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또 다른 말씀하신 것에 따르면 중생한 영이 심신의 죄에 책임을 지기 때문에 "중생한 영은 죄와 상관이 없다"는 표현도 틀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영은 우리 속의 죄의 근원이 아니다." 정도로는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분설의 입장에서 영이 인격의 주체이고 범죄한다고 생각합니다. 중생한 사람이나 중생하지 않은 사람이나 똑같이 그 영이 주체라고 말입니다. 중생하지 않은 사람은 마음이 주체이고 중생한 사람은 영이 주체라고 한다면, 중생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전혀 없는 것과 다름이 없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다, 혹은 영이 죽었다는 것은 전혀 아무런 기능을 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하나님께 대하여, 의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마치 전적부패를 이야기할 때 인간에게 최악만 있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는 것처럼요.

저는 사람이 범죄할 때 영과 몸이 다같이 참여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살아있는 한, 영과 몸을 무 자르듯이 구별할 수 없고, 아담의 타락 이후 우리의 전인이 죄로 물들었으며, 중생한 후에도 그러한 것으로 믿습니다. 그러나 중생할 때 전인이 질적으로 바뀝니다. 양적으로 사람의 일부가 바뀌고 나머지는 성화를 이루어야할 부분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 바뀐 것이 영의 입장에서는 육과 분리되는 순간까지는 온전하지 않은 것이고, 몸의 입장에서는 주림 재림하실 때까지 온전하지 않은 것이지요. 성화는 사람의 전인이 점점 더 성령을 따라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이고요.

사람의 인격과 주체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 영과 마음을 구별하면서, 마음에 인격, 즉 최종 결정권을 부여하면서도, 주체는
영이라는 논리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의사결정권은 없지만 의에 대해서 주체라고 하면 인격에 대한 기본 정의가
달라집니다. 사람이 몸과 영으로 구성되는데, 그 핵심은 영이기 때문에 사람이 죄를 지을 때 그 영이 죄를 짓는다 또는
참여한다고 봅니다. 영은 선을 행하는데 마음은 죄를 지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이상합니다. 선과 죄는 동전의 양면과 같기
때문입니다.

제가 "중생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를 이해하기 위해서 질문을 드렸는데, 아직도 정확하게 해결이 안되네요. 뭔가 서로 강조점이 다를 수도 있고 약간의 이해의 차이 때문에 말씀하신 내용을 제가 온전히 따라갈 수 없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제가 가진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서 저로서는 계속 똑같은 의문의 상태입니다.

하지만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친절하게 답해주신 것 정말 감사합니다. 혹시나 말씀하신 것에 대해 제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더 설명해주실 수 있다면 더욱 감사하겠고요.

저희 교단은 "중생한 영은 범죄치 않는다"에 대한 교리를 붙들지만,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 또한 같이 신앙고백으로 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웨스트민스터 문서를 자세히 가르치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제 이해로는 둘이 분명 상충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총공회측에서는 자신들의 입장에 대해 솔직하게 분명한 것 같아서 속 시원합니다. 진심으로 머리 숙여 감사합니다.

제가 만일 "중생한 영이 범죄하지 않는다"는 교리를 가진 교단 밖의 사람이라면, 그냥 제 생각만 주장하고 상대 의견을 이해하지 못해도 그만일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교리를 주장하는 교단에 속해 있는 사람으로서 분명하게 확인하고 싶은 것입니다. 단순히 선배 목사님의 견해라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저의 신앙고백이 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이해가 안되도 시간이 지나서 신앙이 깊어지면 저도 존경하는 스승 목사님께서 가지셨던 진리를 깨닫게 되겠거니 하고 싶지만, 제 속에서는 중간자적 상태가 아니라 자꾸 반대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저희 교단의 혹자는 너무 따지지 말고 그냥 하나님 말씀대로 선하게 사는 게 중요하다고 합니다. 예, 그렇지요. 그런데 저는
반문하지요. 그러면 왜 그것을 제일 중요한 것으로 내세우느냐.

지금의 저에게는 제 논리를 접고 교단의 가르침을 따를 이유가 필요합니다. 모든 것이 설명이 될 수 없고 설득될 수 없지만,
최대한 분명히 하고 싶은 것입니다. 제가 전심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해도 최소한 이 교리의 논리를 확인하고 인정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면 제 마음이 편하겠지요.

저희 교단 안에서 쉽지 않은데, 밖에서 지원군을 만나니 정말 기쁩니다.
하여간 정말 감사합니다.
담당 2025.10.23 15:46  
(지적)
상당히 자세하고 긴 설명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자세하게 설명해주시는 분을 처음으로 대해서 무척 기쁩니다.

->
중생 교리에 대한 내부의 반론이나 의문 제기도 있어야 마땅합니다만, 사실 이 교리를 찾기 전까지 칼빈 이후 5백 년의 개혁주의 정통 교리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중심으로 가르친 구원론에 저희가 제기한 의문은 비교가 불가할 정도였습니다.

천주교는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고 1천 년을 가르쳤고 이 하나의 교리 잘못으로 1천 년의 세계 교회는 사력을 다했으나 늘 구원에 확신조차 갖지 못해 성화 노력의 첫 발도 딛지 못하고 맴돌았습니다. 루터나 칼빈에 의해 오직 믿음으로 은혜로 구원 얻는다는 것이 밝혀 졌으나 알고 보니 그 것이 그렇게 쉽고 간단한 이치였고 성경에 그렇게 명백했습니다. 믿음으로 얻는 구원이라는 이 1천 년의 교리 논쟁이 끝나자 말자, 바로 제기 된 것은 그렇다면 중생이 된 사람의 남은 인생은 왜 말씀대로 살아야 하느냐는 필연적인 과제, 지적, 반론이 제기 되었습니다. 이 문제를 두고 5백 년 정통 교리는 '믿음의 구원'은 너무 명확했으니 재론할 것이 없었고 이 부분을 수학의 상수 또는 고정수로 못을 박은 다음 그들은 변수가 되는 X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찾고 오늘 우리에게까지 가르친 논리는 '정말 중생이 되었다면 이제는 죄를 짓기 싫어 하고 이제는 죄에 머물 수 없고 여생을 말씀 실행에 기쁨으로 나서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롬7:15 이하에서 바울은 늘 자기 안에 죄 짓고 싶어 하는 또 하나의 자기가 있고, 딤1:15에서 노년의 바울은 자기가 죄인 중에 괴수라고 했습니다. 이 표현이 과장법인가? 성경이 과장법이면 정확무오를 부인하는 이단일 것입니다. 열두 제자가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지은 죄들만 해도 몇 번이며 어느 정도였던가? 베드로가 요1장에서 처음 주님을 만났다가 세상으로 돌아 가고 마4장에서 다시 불렀으나 또 돌아 가고 눅5장에서 또 불렀으나 3년을 다니며 늘 그 모양이었고 부활까지를 본 후에도 요21장에서 또 세상으로 도망을 갔는데 베드로의 중생 시점이 언제일까? 정통 교리로 짚어 간다면 베드로는 요21장에서나 참 중생이 되었다고 해야 할 정도입니다. 개혁교회가 천주교로부터 살아 나오는 노력에 집중하느라고 불신자가 천국 가는 기본 구원을 얻는 것만 주력했고 이 부분을 주력하다 보니 '행위'와 '은혜'만 논점이었고 '천국에 들어 가는' 것만 전부였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믿은 이후 죽는 날까지 왜 말씀을 읽고 그대로 살려고 노력해야 하며 왜 날마다 자기가 자기로 더불어 싸워야 하는지를 두고는 차마 '노력해야 할 부분'이라는 말을 꺼내지 못했습니다. 믿은 이후 우리에게 주어 진 우리의 할 일, 성화로 나아 가는 이 부분을 우리 각자에게 맡겼으니 이 부분이 성경이 요구한 모든 명령들이었습니다. 계2:10 '죽도록 충성하라' 마24:13'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12:30 '마음 목숨 뜻 힘을 다하라' 이런 말씀뿐 아니라 자세히 읽어 보면 성경의 거의 전부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적었습니다.

그래서 루터와 칼빈은 천주교로부터 교회를 살려 낸 '1차 종교 개혁'을 주도했다면, 백영희의 구원론은 천주교에서 탈출한 교회가 이제는 가야 할 천국을 향해 마음껏 달려 갈 수 있도록 '2차 종교 개혁' 또는 '종교 개혁 내의 개혁'의 길을 열어 놓았다는 것이 제 입장입니다. 제가 1984-86년 기간에 St. Louis의 Covenant에서 공부한 것은 혹시 이런 교리를 말한 자료가 있는지 찾아 보는 것이었습니다. 없었습니다. 그럴 여지조차 없었습니다. 물론 루터 이전에도 믿음으로 얻는 구원이라는 표현은 중세사에서도 한 번씩 나왔으나 제대로 구성 되고 체계화를 이루어 천주교 구원론 전체를 반론한 것은 루터와 칼빈으로 우리가 기억하듯이 기본구원은 우리가 전적 은혜로 중생하는 믿음의 구원을 말했고 믿은 이후 평생 자기 노력으로 이루어 가는 자기의 성화와 상급의 차이는 건설구원이라는 면을 체계적으로 전면적으로 구성한 분이 백 목사님이었습니다. 저는 공회 내에서 태어 났고 자랐으나 어릴 때부터 극단적으로 교회에 나쁜 짓만 하고 살았습니다. 철이 들 시점에 신앙이 들었고 1976년 대학 입학 후부터 지금까지는 오직 신앙 한 길에만 전력했고 1982년부터 백 목사님의 설교 자료와 출간을 책임 맡고 이 면을 살피고 있습니다. 초기에 확신은 섰으나,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길이 있는지 또는 제가 생각하지 못한 면이 있는지를 늘 살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분의 말씀이라도 제 최선을 다해 설명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저는 많은 분들의 많은 의문 중에서 제게 새로운 숙제를 던질 분을 찾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없었습니다. 바로 이 점이 걱정입니다. 천주교가 1천 년을 자신 있게 말했으나 문제는 그들에게 한 번씩 던져 진 과제를 너무 쉽게 처단하였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힘으로 그리 할 수는 없지만 저나 이 노선의 주관이 남의 말을 쉽게 무시할 수 있는데 만일 그런 자세를 가진다면 그 자세가 바로 제2의 천주교가 되는 길이 될까 염려한 것입니다.

이 고민을 하던 중에 저희는 세상 기술이나 첨단 방법들을 애써 외면을 하는 편인데도 어느 날 인터넷이 보편화 되어 접하게 되었고 1998년부터 웹 사이트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첨단 기술들은 쳐다 보지도 않았지만 이 웹 기술만은 천하 어디에 있다 해도 제게 지적할 분이 있으면 제가 배울 수 있고 고칠 수 있게 될 터이니 제 성화 구원에 더 할 수 없이 좋은 기회가 될 것이고 만일 이 것이 옳다면 말세 교회를 향해 우리가 나갈 또 한 길을 소개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지적)
그래서 반복적이기는 하지만 다시 질문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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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의 방법으로 제가 백 목사님께 배울 때 직문직답, 일문일답 식으로 몇 번을 여쭸는데 생각을 하지 않고 불쑥불쑥 나오는 생각만 뱉으면 발전이 없다시며 좀 생각을 해 보라 하셔서 섭섭하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했지만 20대 초반의 한창 때의 급한 마음으로는 진리의 깊은 곳을 찾을 때 백 목사님의 지도하신 자세가 너무 중요함을 느낍니다. 누구에게든지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다하듯이 이 번에도 그리 하겠으나, 제가 다른 분들께도 공통적으로 양해를 구하는 것처럼 이 번에도 단순 반복은 조금 줄여 보면 스스로의 시야를 본인이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넓히는 효과가 있음을 부탁하고 싶습니다. 그렇다 해도 반복이 필요할 때는 그렇게 하십시오. 저 역시 설명 내용에 공연한 반복이 더러 많을 듯합니다.

(지적)
죄를 짓는 것은 사람인데, 엄격히 구분하면 영이 아니라 마음이라고 할 때,
어떻게 영이 그 사람의 주체가 되는지 계속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음이 주체처럼 작용을 하는데 말입니다.

->
나라의 통치는 대통령이 마음대로 하는 것처럼 분명히 그렇게 보입니다. 그러나 그 대통령을 세운 사람은 국민입니다. 한낱 보잘 것 없는 5천 만 명 중의 한 사람사람은 그 어느 나라든 다 그렇지만 참으로 허무한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그리고 그 작동의 메카니즘을 제대로 파헤쳐 본다면 나라를 운영하는 것은 국민입니다. 국민의 힘은 보이지 않을 뿐이고 대통령은 너무 크게 보일 뿐입니다. 이 것은 지금 '실행범'과 '책임 관리권'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영과 마음에 대한 우리의 '체감' 때문에 설명합니다.

어린 아이들이 보면 가정의 모든 수고는 어머니가 합니다. 아버지는 하숙생처럼 아침에 나갔다 저녁에 들어 옵니다. 그래서 부부 싸움이 나면 아이들이 어릴수록 어머니 편이 됩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수고가 그렇게 크게 체감 되는 것은 아이의 눈과 귀와 손 끝에서 수고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가족 모르는 직장의 어느 한 구석에서 한 달을 수고하고 남 밑에서 눈치 보며 활동을 한 것은 가정의 아이들이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위치는 그냥 어머니보다 그냥 서열에서 앞 선다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실제 수고도 더 많은 법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역사적으로 6천 년을 살았고, 각자가 태어 나면서 수십 년씩을 하나님 모르고 살다가 어느 날 믿게 됩니다. 우리처럼 믿는 가정에서 자랐다 해도 신앙 없이 지난 세월이 많고 또 요즘처럼 신앙에 주력할 때도 실은 하루 해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내 마음 자세와 그냥 습관적으로 자기 생활을 하는 순간을 비교해 보면 참 허무합니다. 하나님 없이 살았던 조상 6천 년과 나의 믿기 전의 세월과 최근에도 하나님을 잊고 산 이 세월들이란 내 안에 영은 죽어 있었거나 중생 이후라 해도 죽은 듯 했던 때입니다. 그리고 그 외의 시간들과 세월은 나의 몸과 마음이 악령에게 붙들려 하나님 없이 세상을 쏘 다닌 시기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의 마음은 신령한 세계를 보고 접하고 읽고 느끼는 오감의 안테나가 너무 녹이 쓸어 있고 둔감해 져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학생이나 후배 교인을 지도할 때는 제법 천국과 진리를 애써 가르치지만 사실 그 것은 우리가 상대적으로 우수하기 때문에 선생 노릇을 할 뿐이고, 하나님 앞에 우리 신앙의 절대치를 가지고 우리의 신앙 수준을 말한다면 우리는 아마 100점 만점에 20점이나 30점 수준에 있고 우리가 가르치는 이들은 5점이나 10점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일 것입니다. 이런 우리의 신앙의 눈으로 우리 속에 신령한 영의 세계를 느끼는 것은 처음부터 어렵고 오히려 영이라는 것이 성경을 통해 있다고 도출이 되어 이론적으로나 알면 알게 되지 느낌으로 알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천국을 얼마나 절감하고 있을까? 만일 천국을 아주 조금이라도 보고 느꼈다면 불신자들이 아주 미쳤다 할 만큼 우리의 신앙은 맹렬할 것입니다. 아주 잘 믿는 교회의 아주 훌륭한 신앙가라 해도 세상에 관심과 욕심과 마음이 더 가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들이 다른 사람보다 나아 보여서 '좋은' 신앙처럼 보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단 한 순간이라도 뜨거운 인두에 손을 지져 보았거나 용광로에 발을 데어 본 사람이라면 그 1분이나 그 몇 초의 순간에 겪은 기억을 평생 잊지 않고 가지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아이들에게 불 조심을 시키고 자기도 뜨거운 것을 피하는 본능이 굉장할 듯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어두워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음은 불신자도 가지고 있는 의식 세계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영이란 믿는 사람만 가지고 있는 세계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믿어 지는 마음' '천국을 보지 못했으나 갈망하며 몸 부림 치는 자세' '볼 수 없는 하나님 앞에 내 중심 깊은 곳에서부터 벌벌 떠는 두려움'... 이런 것을 두고 우리는 마음의 작용이라고 보는데 그런 것이 마음의 작용이며 그 마음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전부라고 한다면 불교인의 내세관이나 미신 믿는 사람의 확신이나 우리의 것이나 같을 것입니다. 불교나 미신 믿는 사람이 가지는 내세관이나 종교적 확신이나 자세는 마음 안에서 나오는 것이나, 하나님과 천국에 대하여 우리 마음 속에서 나오는 것은 마음이 최종 발원지가 아니라 마음 속에 있는 영이 마음에게 넣어 주어서 마음이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요3:8에서 바람이 불매 그 소리는 알아도 바람 자체는 모르는 것처럼 성령으로 난 사람의 중생도 이러하다고 했습니다. 성령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신성 하나님의 세계지만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고는 있을 수 없는 창조나 오늘 우리 주변의 섭리 역사를 볼 때 우리는 목숨을 걸고라도 믿고 있습니다. 마찬 가지로 우리의 영이라는 것은 비록 성령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우리 마음을 기준으로 마음이 알아 볼 수 있는 존재는 아닙니다. 몸이 마음을 만지고 보고 아는 것이 아니라 몸이 그냥 마음을 느끼고 아는 것처럼, 우리 마음이 우리 영을 알아 보는 것은 더욱 더 신비롭고 어렵습니다. 그렇다 해도 우리가 어떻게 해서 보지 못한 천국을 믿고 오늘 세상 모든 것을 포기했는지를 생각해 보면 이 것은 인간의 마음이나 결심이 아니라 마음 속에 우리의 영이 넣어 준 생각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우리와 거리 멀고 우리가 잘 알 수 없는 차원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우리가 영의 존재감을 간과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적)
또한 영의 죄는 마음이 범죄하도록 내버려둔 책임의 죄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그 부분에서 결국 영이 죄를 지은 것 아닌가요? "중생한 영이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은 완전 무결이라는 뜻은 아니고 관리못한 죄는 짓지만 직접적인 죄는 짓지 않는다는 뜻인가요? 다시 말씀드리면 영혼의 역할이 마음에게 죄를 짓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면 결국 영혼이 자기의 본 역할에 실패한 것이므로 큰 죄를 짓는 것 아닌가요?

->
기준에 따라 아담이 지은 죄는 원죄, 우리 각자가 짓는 죄는 자범죄 등으로 나눌 수 있듯이 죄를 나누는 또 하나의 기준으로 알고 짓는 고범죄와 모르고 짓는 과실 죄도 있습니다. 죄를 나눌 때 또 하나의 기준으로 내가 직접 짓는 죄와 내가 관리해서 죄를 짓지 않게 해야 하는데 부족하여 그렇게 하지 못한 죄도 있습니다. 죄는 무조건 죄고, 죄의 값은 사망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구약의 법에도 알고 지은 죄는 속죄제로 실수로 짓는 죄는 속건제로 드리게 되며 제물의 값에서도 차이가 많습니다. 신약에서도 회개의 방법과 기회가 아주 다릅니다.

영은 만들 때부터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영은 마음과 몸의 주격이니 주인 위치로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이 영이 비록 죄를 직접 짓지는 못하더라도 자기 책임 하의 마음과 몸을 관리하는 문제를 두고는 연약함으로 마음이 도망 가는 것을 막지 못할 수도 있고 또 잘 붙들어 도망하지 않게 할 수도 있는 그런 차이는 처음부터 있도록 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만일 관리 그 자체를 두고 책임을 물어 나간다면 '존재론적 토론의 가장 최상부'가 되는 '하나님 책임론'에 이어 집니다. 에덴동산에서 하와가 뱀에게 당하도록 내 버려 두고 남편으로 책임을 지지 못한 것이 아담입니다. 아내가 죄를 짓고 아내의 위치에서 남편을 꾀우니 아담은 또 죄를 지었습니다. 아담은 하와의 죄 짓는 순간에 주격이며 관리 책임의 죄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와에 의하여 아담이 선악과를 먹을 때 그 선악과 먹는 죄는 아담 자기 손으로 직접 죄를 지었습니다. 관리의 죄를 실행의 죄와 같이 묻게 된다면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아담과 하와를 만들어 에덴동산에 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과 아담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은 아버지시며 주님이십니다. 아담은 하나님이 만든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의 종입니다. 아들이며 종인 아담이 죄를 짓지 못하게 막았다면 죄를 짓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대화는 관리 책임 문제만 가지고 예를 들며 비교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영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나 우리의 몸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짓지 않았음을 아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우리 마음은 우리가 아는 대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는 가질 수 없고 할 수 없는 일을 참으로 많이 합니다.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었다 하셨는데 우리 몸에 눈과 코가 있으니 하나님도 눈과 코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무형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다 할 때의 이 형상은 몸이 아니고 마음도 아니고 바로 영입니다. 물질이 아닌 영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신령한 존재, 우리의 영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이 영이 우리 마음을 붙들고 죄를 짓지 않고 의를 행하도록 총력을 기울이는데 우리 마음은 이 세상에서 죄를 짓는 문제를 두고는 우리의 영이 제대로 다스리기가 어렵습니다. 타락 후, 이 세상에서, 죄에 빠졌고 지금도 악령과 악성과 악습에 찌던 몸과 마음은 영이 다스리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우리의 인식 범위에 있는 마음은 영을 우습게 알고 영이 우리 마음의 죄와 몸의 죄를 막고 나서도 상관치 않고 악행을 쉽게 해 버립니다.

영이 말렸는가? 영이 어떤 작용을 했는가? 영은 어떤 세계일까?
사실 이 번 대화는 이 것부터 묵상하며 성경을 상고하며 자신의 지난 날을 살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임진왜란에 전국토가 유린 되고 모두가 정신이 없었는데 그 때는 몰랐으나 세월이 지나고 임란이 끝이 나고 고요히 조용히 처음부터 되짚어 보니 우리 나라 조정 안에 애국자라는 인간들 안에 최악의 매국노가 있었고 별별 차원의 반역자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조정에 나가 큰 소리 칠 인물들이 자기 이마에 자기의 본심을 쉽게 적어 놓고 자인을 할 리는 없습니다. 오히려 애국의 방법이 틀렸을 뿐이라고 할 것입니다. 오늘 이 나라의 좌우파의 주장도 그냥 공평히 TV에 나와서 입으로만 떠들도록 해 놓으면 일반 사람은 누가 옳은지 모를 듯합니다. 오히려 좌파들이 더 애국자이고 민주와 인권을 보호하는 사람처럼 보일 듯합니다. 그런데 소련이 망하고 동구가 무너지고 서방세계와 서방 교회들과 손 잡았던 비밀 서류들이 공개가 되고 보니 서방 세계의 애국자들 인권운동가들 민주 투사들 만국 평화와 인류 박애주의자들의 뒤가 어떤지 환하게 드러 났습니다.

지금 내 마음의 세계를 분석 분해하고 연구 비교하여 볼 시점으로 생각합니다. 마음과 영을 구별하지 않았던 이유로, 현대 과학은 마음을 물질로 파악했고 물질을 전문하는 과학이 생화학으로 우리 마음의 세계를 하루 다르게 드러 내고 있습니다. 영이 무엇인가? 우리의 대화는 결국 '영'을 도출하는 것이 기초과학처럼 이 연구의 근본 토대가 될 듯합니다. 영을 알고 나면 마음은 저절로 분리 되고, 그렇게 되면 별 어려움은 없을 듯합니다.

영이라는 것이 애초 없었다면 도출이라는 것은 아무리 시도해도 불가능할 것이고, 영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만들었다면 영을 찾아 내는 것은 시간 문제일 것입니다. 잠 자는 사람과 죽은 사람은 얼른 보면 같아 보이나 체온과 코의 숨과 손목의 맥박을 통해 여지 없이 단정할 수 있습니다. 불신자에게는 죽었다 깨어 나도 찾을 수 없는 것, 그런데 믿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찾을 수 있는 것... 예를 들면 그 작용이 그 부분이 그 요소가 그 존재가 바로 '영'입니다. 영이란 단순히 마음의 작용 중 하나인가? 아니면 몸과 마음이 다르듯이 마음과 영도 전혀 별개의 존재인가? 그 것은 죄를 짓고 인간이 죽었다 했으니 우리 안에 죽은 부분을 찾아 보면 됩니다. 몸도 아니고 마음도 아닙니다. 몸과 마음 둘이 함께 움직일 때는 불신자였고 하나님 앞에서는 죽은 자라고 판정을 받았습니다. 바로 '영'의 존재를 도출해 내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지적)
"법인"의 예에서, 내부적으로 각자의 판단과 움직임이 있는데 대외적으로는 하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비유가 약간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계속 말씀드리지만 죄를 짓는 것은 전인인 '나' 하나입니다. 내부적으로 어떤 것이 오고가도 죄를 짓는 것은 외부적인 한 사람이지요. 내부적으로 일어난 일 가지고 죄를 지었다 아니다 말할 수 없습니다.

이번엔 제가 예를 들어보지요.
한국 축구 팀이 있습니다. 그런데 브라질과 경기에서 졌습니다. 한국팀에 박지성이라는 걸출한 선수가 있는데 그 선수는 자기 역할을 100% 수행했다고 합시다. 그러나 그 선수도 한국팀이 질 때 같이 진 것이지요. 물론 그 선수의 잘못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신문에 "한국은 졌지만 박지성은 지지 않았다"라고 좋게 써줄수도 있지요. 그러나 기술적으로 정확한 표현은 아닙니다. 정확하게는 다 같이 진 것입니다. "중생한 영은 범죄치 않는다"라는 것은 이런 식의 감상적인 표현인가요?
계속 같은 비유에서 아까 박지성은 일개 선수였지만, 감독이라면 경우가 다릅니다. 경기에서 지면 아무리 훌륭한 감독이라도 그 감독은 진 것입니다. 아무도 "한국 축구는 졌지만 감독은 이겼다"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선수들의 역량이 부족해서 졌어도 결국 그 감독이 잘못한 것입니다. 영이 일개 기관이 아니라 사람의 주체라면 사람이 죄를 지을 때 영이 잘못한 것입니다. 심신을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데도 "중생한 영이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하면 정말 영은 아무런 죄의 책임과 상관이 없는듯한 것이 되어 오해의 소지만 불러 일으키고 바른 표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축구경기에서 졌는데, 자꾸 감독은 지지 않았다고 주장하면 그게 어떤 의미인가요?

->
일단 앞에서 이전 글보다 조금 더 이 면을 설명했으니 약간의 명상과 성경을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한 선수가 자살골을 먹는 실책을 했고, 한 선수는 훌륭하게 공을 세웠고, 나머지는 평균 정도로 활동을 했는데 팀이 졌다면 패전 팀이며 모두가 메달을 받지 못하게 되고, 만일 그 결과가 승리라면 올림픽에서는 자살골을 먹은 선수까지 금메달을 목에 걸게 됩니다. 우리는 죄의 책임을 논하고 있습니다. 한 선수의 자살골로 패전을 했다면 나머지 선수는 다 잘 싸웠다 해도 그 팀 전체는 패전팀이 됩니다. 전쟁으로 말하면 패전국이 됩니다. 바로 이 경우에 영은 이 패전팀의 감독이며 이 왕은 패전국의 왕입니다. 패전했으면 패전의 모든 책임을 지고 감독이 혼자 물러 갑니다. 감독은 처음부터 선수용으로 만들어 진 사람은 아닙니다. 감독은 지휘 감독 책임과 함께 승패의 이름에만 올립니다. 하나님이 정해 놓은 법, 그 이유를 살피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문1)
왜 세상은 물질계로 만들어 졌으며 왜 천국은 영물의 영계로 만들었는가? 이 면을 따져 보는 것과

문2)
세상은 천국의 그림자라 한다면 세상이 물질계니 천국도 물질계라야 하지 않는가? 사람의 그림자면 그림자의 실체는 사람이듯이, 세상이 천국의 그림자라면 천국도 세상처럼 물질계라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따지는 것을 비교한다면

문1)과 문2)는 함께 놓고 이야기 할 것이 아니라 따로 이야기 하고 살펴 볼 일로 생각합니다.

죄를 짓지 못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 영이라! 과연 사실인가? 이 문제는 성경을 통해 쉽게 도출할 수 있습니다.
영이 죄를 직접 짓지 않아도 감독으로서 선수의 패전을 책임 지고 패전 감독이 되었다면 죄를 지은 것이 아닌가? 그 것을 죄라고 한다면 영도 죄가 있습니다. 영이 죄를 짓지 않는다 할 때는 영의 행위 죄만을 두고 말합니다.
왜 그렇게 만들었으며, 왜 그렇게 성경이 가르치는가? 이 것을 따지려면 이 것은 별도로 살필 수 있습니다.

(지적)
동생애와 관련된 국회 비유도 드셨는데, 동성혼을 합법화하느냐 불법으로 하느냐에 대한 판단은 국회의 일이지 일개 국회의원이나 정당이 아닙니다. 정당이나 개인은 자신의 의견이 개진하고 영향력을 행사할 뿐이지요. 어떤 정당이 동성애를 반대했지만 국회가 합법화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지, 그 정당이 합법화 했다 아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죄를 짓는 것은 그 사람이지, 그 안에 있는 영이 아니라고 한다면, 영이라는 주어에 범죄라는 동사를 붙여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계속 반복되는데,
또한 죽은 영이 아무 기능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그럴때 중생한 영이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하면,
죽은 영은 죄를 짓고 있는 것처럼 해석이 되지 않을까요?

->
위에서 설명한 내용의 연장선으로 생각합니다. 앞의 글을 먼저 생각해 보시고 대화를 이어 가면 좋겠습니다.

(지적)
하여간 제 이해로는 삼분설의 논리를 따를때라도 "중생한 영은 죄를 짓지 않는다"는 표현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중생한 영은 죄와 상관이 없다" 정도로만 이해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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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표현이 이렇게 된 것은 역사적 토론 과정에서 나온 것입니다. 6.25는 북침이 아니라는 말을 반복하는 것은 북한이 남쪽에서 먼저 시작했다고 자꾸 말을 하기 때문에 6.25에 관련 된 수 많은 표현과 본질적 문제를 다 뒤로 두고 그런 말을 하게 된 것입니다. 시사성 있는 표현입니다. '중생 교리'를 두고 살필 면은 한도 없습니다. 그 중에서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그렇게 돌고 도는 이유는 중생 교리가 처음 나오면서 일반 신학의 눈에서 '믿는 사람은 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이냐, 백영희는 교인들에게 회개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친다...'라는 말로 이단이라 하고 이단 정죄가 한국교회를 휩쓸고 있을 때, 그 때 중생 교리의 수 많은 내용과 본질적 더 중요한 설명을 뒤로 두고 그들의 주장에 가장 핵심적으로 내 세울 필요성이 있는 표현이었습니다.

중생한 영이 죄를 짓는다고 하면, 중생된 교인이 믿고 나서 지은 죄 때문에 또 지옥을 가야 하고, 이 사람을 위해 주님은 또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려고 오셔야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개혁주의 전통의 교리가 천주교의 구원론에서 교회를 구원하는 기능은 좋은데 그 다음의 단계를 설명하는 데 혼선이 있었습니다. 백영희 중생 교리는 이 점을 해결했고, 일반 교계로부터 중생 된 사람은 그 몸과 마음이 죄를 짓지 않는다고 주장하니 이 노선이 틀렸다고 일제히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그들은 이분설의 '영혼 = 혼 = 마음'과 삼분설의 '영, 마음=혼=영혼, 몸'의 구조에 있어 '영혼'이 중복적으로 들어 간 것을 보고 오해를 했던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몸과 합작하여 죄를 짓는 것이 현실이며 성경입니다. 이분설이 마음을 영으로 보고, 마음이 신령한 영적 존재라고 본 기존지식을 바꾸지 않아서 생긴 자기 혼란이었습니다.

(지적)
그런데 또 다른 말씀하신 것에 따르면 중생한 영이 심신의 죄에 책임을 지기 때문에 "중생한 영은 죄와 상관이 없다"는 표현도 틀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영은 우리 속의 죄의 근원이 아니다." 정도로는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앞에서 설명한 내용과 관련 있는 것이니 다시 살펴 보시기를 바랍니다. '영은 우리 속의 죄의 근원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신다면 그렇게 표현할 수 있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지적)
그러나 저는 이분설의 입장에서 영이 인격의 주체이고 범죄한다고 생각합니다. 중생한 사람이나 중생하지 않은 사람이나 똑같이 그 영이 주체라고 말입니다. 중생하지 않은 사람은 마음이 주체이고 중생한 사람은 영이 주체라고 한다면, 중생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전혀 없는 것과 다름이 없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다, 혹은 영이 죽었다는 것은 전혀 아무런 기능을 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하나님께 대하여, 의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마치 전적부패를 이야기할 때 인간에게 최악만 있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는 것처럼요.

->
마음이 영인가? 마음과 영은 다른가? 이 부분에 대한 의논은 이 번 주제와 관련은 있으나 별도 주제로 진행할 일로 생각합니다. 창2:7에서 사람을 흙으로 지으셨다 했고, 창2:19에서 짐승도 흙으로 지으셨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영적 존재라면 짐승의 마음도 영적 존재라는 문제가 생깁니다. 사람만은 물질로 된 육과 영물인 영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음은 어떤 존재인가? 짐승을 볼 때, 그리고 불신자를 볼 때 물질이라는 것입니다. 삼분설의 영이라고 하는 것이 이분설의 마음의 일부이거나 마음의 기능으로 볼 수 없다는 증거입니다.

(지적)
저는 사람이 범죄할 때 영과 몸이 다같이 참여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살아있는 한, 영과 몸을 무 자르듯이 구별할 수 없고, 아담의 타락 이후 우리의 전인이 죄로 물들었으며, 중생한 후에도 그러한 것으로 믿습니다. 그러나 중생할 때 전인이 질적으로 바뀝니다. 양적으로 사람의 일부가 바뀌고 나머지는 성화를 이루어야할 부분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 바뀐 것이 영의 입장에서는 육과 분리되는 순간까지는 온전하지 않은 것이고, 몸의 입장에서는 주림 재림하실 때까지 온전하지 않은 것이지요. 성화는 사람의 전인이 점점 더 성령을 따라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이고요.
사람의 인격과 주체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 영과 마음을 구별하면서, 마음에 인격, 즉 최종 결정권을 부여하면서도, 주체는
영이라는 논리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의사결정권은 없지만 의에 대해서 주체라고 하면 인격에 대한 기본 정의가
달라집니다. 사람이 몸과 영으로 구성되는데, 그 핵심은 영이기 때문에 사람이 죄를 지을 때 그 영이 죄를 짓는다 또는
참여한다고 봅니다. 영은 선을 행하는데 마음은 죄를 지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이상합니다. 선과 죄는 동전의 양면과 같기
때문입니다.
제가 "중생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를 이해하기 위해서 질문을 드렸는데, 아직도 정확하게 해결이 안되네요. 뭔가 서로 강조점이 다를 수도 있고 약간의 이해의 차이 때문에 말씀하신 내용을 제가 온전히 따라갈 수 없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제가 가진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서 저로서는 계속 똑같은 의문의 상태입니다. 하지만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친절하게 답해주신 것 정말 감사합니다. 혹시나 말씀하신 것에 대해 제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더 설명해주실 수 있다면 더욱 감사하겠고요. 저희 교단은 "중생한 영은 범죄치 않는다"에 대한 교리를 붙들지만,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 또한 같이 신앙고백으로 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웨스트민스터 문서를 자세히 가르치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제 이해로는 둘이 분명 상충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총공회측에서는 자신들의 입장에 대해 솔직하게 분명한 것 같아서 속 시원합니다. 진심으로 머리 숙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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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일정 때문에 이 번 글을 적으며 여러 차례 중단이 되었습니다. 좀더 그렇게 될까 봐서 일단 이 마지막 부분은 읽지 않고 넘깁니다. 전체적으로 지금까지 드린 설명으로 다시 생각할 여지가 있으면 좋겠고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해결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지적)
제가 만일 "중생한 영이 범죄하지 않는다"는 교리를 가진 교단 밖의 사람이라면, 그냥 제 생각만 주장하고 상대 의견을 이해하지 못해도 그만일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교리를 주장하는 교단에 속해 있는 사람으로서 분명하게 확인하고 싶은 것입니다. 단순히 선배 목사님의 견해라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저의 신앙고백이 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
남의 고백을 뒤 따라 가는 사람은 사람을 믿는 사람이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아닐 것입니다. 비록 초기에는 사람의 안내를 받고 시작할 수 있고, 사람이 존경스러워 열심을 더할 수도 있겠지만 신앙이 자라가는 과정에서 내가 알고 내가 믿고 내가 내 생명과 평생과 영생을 걸 수 있어야 '신앙'일 것입니다.

(지적)
지금은 이해가 안되도 시간이 지나서 신앙이 깊어지면 저도 존경하는 스승 목사님께서 가지셨던 진리를 깨닫게 되겠거니 하고 싶지만, 제 속에서는 중간자적 상태가 아니라 자꾸 반대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
세월이 지나가면 선배의 깨달음을 이해하는 수가 많습니다. 왜 어른들이 그토록 그런 말을 했는지, 자라고 나면 압니다. 그러나 분명히 천주교 1천 년이 옳지 않았고, 루터와 칼빈의 5백 년도 무조건 다 옳지는 않았습니다. 우리가 서로 존경하는 선배 역시 그 분들 당대는 흠 없이 보였을지라도 세월 속에 빈 틈이 외부로 나올 수도 있고, 원래 모순이 드러 날 수도 있습니다. 선배고 경험자며 진실 되고 남 다른 신령한 세계로 살았으니 우리가 최대한 존중하는 좋은 자세를 가지되 늘 나의 신념, 나의 신앙, 나의 영생은 하나님 앞에 진리 하나로만 확정을 해야 하니, 질문하신 분의 자세는 당연합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백 목사님의 평생 가르침의 중심 중 하나기도 했습니다.

(지적)
저희 교단의 혹자는 너무 따지지 말고 그냥 하나님 말씀대로 선하게 사는 게 중요하다고 합니다. 예, 그렇지요. 그런데 저는
반문하지요. 그러면 왜 그것을 제일 중요한 것으로 내세우느냐.

->
만일 너무 따지지 말자고 하는 분이 계신다면 계신 곳이나 공회에 속한 우리는 왜 일반 교계에서 우리의 교단이 별도의 단체를 만들었는지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적)
지금의 저에게는 제 논리를 접고 교단의 가르침을 따를 이유가 필요합니다. 모든 것이 설명이 될 수 없고 설득될 수 없지만,
최대한 분명히 하고 싶은 것입니다. 제가 전심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해도 최소한 이 교리의 논리를 확인하고 인정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면 제 마음이 편하겠지요. 저희 교단 안에서 쉽지 않은데, 밖에서 지원군을 만나니 정말 기쁩니다. 하여간 정말 감사합니다.

->
저 역시 감사하고 반가운 마음입니다. 계신 곳에도 살아 있는 사람이 한 분이라도 계신다면 저와 대화가 될 여지는 평소 있었기 때문에 궁금했습니다. 다른 문제로 계신 곳에 계신 분들과 이런 개인 대화를 한 적은 종종 있었습니다. 이 번 주제는 처음입니다. 사람을 한 곳에서만 보지 않고 위치가 다르고 시각이 다르면 더 잘 볼 수 있고, 측량을 할 때도 1점보다는 2점 3점으로 많아 진다면 우리의 목적지 확인은 더 빨라 지고 더 정확해 질 것입니다.
신대원 2025.10.23 15:48  
중생 교리 5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말씀하신대로 제가 말씀과 기도로 인내하면서 묵상할 시간이 많이 필요하리라 믿습니다. 다만 그동안 어디다가 제대로 질문해본 적이 없는 상태여서 봇물 터지듯 말씀을 많이 드린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두 가지 질문만 더 하겠습니다.

우선 직접 상관이 없는 것이지만, 관계가 있는 것인데요, 말씀하신 것 중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루터와 칼빈은 천주교로부터 교회를 살려 낸 '1차 종교 개혁'을 주도했다면, 백영희의 구원론은 천주교에서 탈출한
교회가 이제는 가야 할 천국을 향해 마음껏 달려 갈 수 있도록 '2차 종교 개혁' 또는 '종교 개혁 내의 개혁'의 길을 열어
놓았다는 것이 제 입장입니다."

보통 종교개혁 때 중요한 문제중 하나가 칭의관이었습니다. 그런데 성화에 대해서도 칼빈은 많은 것을 다루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 세대에는 말씀하신 것처럼 닦여진 칭의론 위에서, 혹은 새로운 개혁교회 내에서 제기되는 문제는 성화의 문제였습니다. 영미국의 청교도들이나 화란의 개혁자들 역시 관심은 이 세상에서 거룩하게 사는 것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교리만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죄와 싸우는 문제, 거룩한 삶에 대한 호소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연구소의 말씀에는 그런 노력들에 대한 언급없이, 종교개혁 칭의론에서 백목사님의 성화론으로 건너 뜁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요? 그전의 성화에 대한 신학은 중생론이 미비했기에 큰 의미가 없고, 백목사님 이후 성화의 터전을 제대로 정비했기에 제대로 된 성화의 개념을 가질 수 있어서 인지요?

저는 성화에 대해 관심이 많고 이 부분을 좀더 연구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중생에 대한 기본 이해가 바로 되어야 성화에 대한 이해가 바로 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렇기에 "중생한 영이 범죄하지 않는다"는 남다른 그러나 제가 어려서부터 접한 교리를 확인하고 싶은 것입니다.


두번째 질문 역시 하신 말씀 가운데 다음과 같은 구절에 대한 것입니다.
"중생한 영이 죄를 짓는다고 하면, 중생된 교인이 믿고 나서 지은 죄 때문에 또 지옥을 가야 하고, 이 사람을 위해 주님은 또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려고 오셔야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중생한 영이든, 중생한 사람이든 그 사람이 죄를 지어도 죄 값은 기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단 번 구속으로 치루어졌습니다. 중생한 사람이 의인인 것은 죄를 짓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 때문이잖아요. 말씀하신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네요. 내 속의 다시 더럽혀지지 않는 중생한 어떤 것 때문에 구원이 안전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속이 완전하고 그것이 나의 것으로 간주되기에 구원이 안전한 것 아닌가요? 다시 범죄하지 않는 중생한 영이 있어서 의롭다고 하는 것은 의의 전가가 아니라 의의 주입을 말하는 천주교의 입장과 유사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은 깨끗한 중생한 영만이 아니라 여전히 죄 가운데 있지만 그리스도의 순결한 의의 옷을 입은 "나"라는 사람이잖아요.

하여간 말씀하신대로 죄의 책임 문제에 대해서는 더이상 질문을 하지 않고 써 주신 많은 글들을 토대로 스스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지금은 이해가 안가도 좀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바뀌면 달리 보이는 것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담당 2025.10.23 15:50  
(지적)
그리고 말씀하신대로 제가 말씀과 기도로 인내하면서 묵상할 시간이 많이 필요하리라 믿습니다. 다만 그동안 어디다가 제대로 질문해본 적이 없는 상태여서 봇물 터지듯 말씀을 많이 드린 것입니다.

->
사실 제게 주신 지적을 통해 성구 제시는 별로 없었습니다. 교계적으로 성구 남발이 많아서 저희는 성구 근거를 많이 제시하지는 않지만 핵심 몇 가지는 그래도 필요할 듯합니다.

묵상 시간을 많이 가져 보시겠다 하니 반가운 마음입니다. 대신, 지금까지는 자신이 먼저 가졌던 의문을 가지고 하나씩 의문을 추가했을 듯합니다. 이 번에는 제가 드린 방향을 가지고 이 체계를 옳다고 보며 추적을 해 보는 노력도 부탁합니다. 도둑을 잡을 때, 이 사람이 도적이라고 생각하며 조사하는 것이 일반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있다면 그리고 진실과 정의를 정말 추구한다면 상대를 도적이 아니라고 단정을 하고 조사를 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계신 곳 내에 계셨기 때문에 중생 교리를 건설적 발전적 자세를 견지하며 제대로 의심을 했을 것이므로 저는 옳은 접근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외부 타 교단의 사람이 이런 교리를 처음 접한다면 그들은 이 교리가 옳을 수 있는지 또는 옳다고 전제를 해 놓고 우호적으로 배우는 자세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계신 곳의 중생 교리는 저희와 몇 가지 같고 다른 점도 있습니다. 일단 제 설명과 논리를 대체로 처음 들었다고 생각하며, 그렇다면 이 교리 체계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며 한 번 살펴 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희 입장의 가장 초보적인 구성은 '코람데오' 신문에 올린 제 글의 위치를 안내해 드렸는데 거기 적은 글이 아주 기초며 시작의 설명입니다. 고신 교인들과 신학자들을 상대로 첫 설명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지적)
"그래서 루터와 칼빈은 천주교로부터 교회를 살려 낸 '1차 종교 개혁'을 주도했다면, 백영희의 구원론은 천주교에서 탈출한
교회가 이제는 가야 할 천국을 향해 마음껏 달려 갈 수 있도록 '2차 종교 개혁' 또는 '종교 개혁 내의 개혁'의 길을 열어
놓았다는 것이 제 입장입니다."
보통 종교개혁 때 중요한 문제중 하나가 칭의관이었습니다. 그런데 성화에 대해서도 칼빈은 많은 것을 다루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 세대에는 말씀하신 것처럼 닦여진 칭의론 위에서, 혹은 새로운 개혁교회 내에서 제기되는 문제는 성화의 문제였습니다. 영미국의 청교도들이나 화란의 개혁자들 역시 관심은 이 세상에서 거룩하게 사는 것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교리만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죄와 싸우는 문제, 거룩한 삶에 대한 호소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연구소의 말씀에는 그런 노력들에 대한 언급없이, 종교개혁 칭의론에서 백목사님의 성화론으로 건너 뜁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요? 그전의 성화에 대한 신학은 중생론이 미비했기에 큰 의미가 없고, 백목사님 이후 성화의 터전을 제대로 정비했기에 제대로 된 성화의 개념을 가질 수 있어서 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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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때의 문제가 '칭의'였다는 말은 그 칭의가 '죄를 해결하는 사죄 문제', 사죄를 넘어 서서 이제는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는 의로운 사람'으로 확인함이라는 뜻입니다. 인간 스스로 노력을 해서는 의롭게 될 수가 없으니 주님이 대신 수고하시고 그 공로를 우리 것으로 입혀서 우리를 '의롭다고 해 주심' '의롭다고 부르심'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칭의' 문제를 오늘 우리가 '천국 가는 문제'로 쉽게 바꾸어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칼빈의 '예정' '대속' '칭의' '중생' '구원' 등은 모두 지옥 갈 우리가 천국을 가는 문제였습니다. '성화'만 천국 갈 중생자들의 여생에서 점점 깨끗해 지는 면을 말했습니다.

제가 '종교개혁 칭의론'을 따로 언급하지 않는 것은 그 것은 공통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화 부분만 집중적으로 이야기 하는 것은 '성화'의 본질과 기본 방향에 대해서만 우리에게 넘어 온 숙제라고 생각했고 이 문제 때문에 교계적으로 수십 년 동안 치열한 논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우리 나라에 'NLL' 문제만 거론하는 것은 공중과 육지에서는 영토 분쟁이 없다거나 침략 대처 문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현재 첨예한 논쟁의 주제가 NLL이기 때문입니다. NLL 문제는 서해의 바다 문제지만 사실 이 것을 대하는 자세는 육지와 공중과 더 나아가 남북의 모든 것에 하나도 빠지지 않고 양측의 입장이 다 녹아 져 있기는 합니다.

종교개혁가들과 그들을 잇는 청교도의 남겨 진 글들을 보면 중생 후 바르게 살아 보려는 노력과 자료가 참으로 많습니다. 청교도가 청교도인 것은 불신자와 비교할 때 더 깨끗하다는 청교도가 아니라 중생 된 교인들이 함께 있는 교회 내에서의 깨끗한 신앙을 주장했었습니다. 다른 구주와 다른 구원의 길을 찾으려 한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는 주님과 구원의 길을 가지고 있었으나 실제 생활 중에 너무 속화 되어 있었기 때문에 생활의 청결 운동에까지 나갔으니 미국의 청교도 유산과 기록은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성화' 부분이 거의 없다 하는 것은 매 현실에서 어떻게 죄와 싸워야 하느냐 라는 주제의 글이나 노력이 없다 한 것이 아니라, 중생과 성화의 관계를 교리적으로 비교하고 설명하는 핵심 내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중생은 전적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며 중생 칭의 구원 등의 개념은 같은 차원에서 설명 됩니다. 그러나 성화에 이르면 죄와 싸우는 방법과 어려움과 하나님의 도우심의 간증 등으로만 이어 지지 왜 성화 단계는 천주교 교인들이 죄와 싸우는 것과 다른지를 두고 설명이 없습니다. 그냥 중생이 되면 본능적으로 죄를 짓지 않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요일5:18에서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하신 이 말씀에서 가장 극단적인 대처가 있었습니다. 중생된 사람은 죄를 짓지만 중생된 영은 죄를 짓지 않는다 라는 표현이 굳이 나오게 된 직접적인 배경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박윤선 목사님은 한국의 성경신학자 대표가 되어 전통의 교리 수호자로 백영희 목사님과 맞섰고 그의 요일5장 18절에 대한 주해서를 대폭 변경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소결로, 칭의(구원, 중생, 사죄)에 대해서는 종교개혁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 오고 있습니다. 죄와 투쟁하는 성화의 노력과 내용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성화의 본질과 근본 성격을 두고 따지다 보면 인간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중생은 전적 은혜입니다. 중생은 우리가 알 수도 없었고 노력으로 접근할 수도 없었습니다. 성화는 우리의 노력으로 이루는 면을 필수로 합니다. 이 관계를 두고 살피다 보면 우리를 구원할 때 중생을 시키고 하늘 나라를 들어 갈 수 있도록 무조건 베푸신 은혜는 모든 믿는 사람에게 동일하고 전적 은혜니 이를 기본적인 구원이라고 할 수 있고, 믿는 이후에 각자 자기 노력과 수고와 의행과 생활에 따라 믿는 모든 사람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성화의 내용과 종류와 정도가 다 다르니 이를 신앙 건설의 차이라 할 수 있고 큰 범위로는 '구원'에 포함할 일이니 이를 건설적인 구원이라고 저희는 요약했던 것입니다. 여기 대해 박윤선 목사님은 행위를 강조하면 율법주의가 된다며 펄쩍 뛰신 것이며, 중생자는 저절로 본능적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성화 과정을 밟아 나간다고 했고 심지어 믿는 사람은 고의로 지속적으로 죄를 짓는 경우가 없다 했으니 이 것이 개혁주의 입장입니다.
이 과정의 논쟁을 진행하다 보면 저절로 마음과 영의 구별 문제가 제기 됩니다.

(지적)
저는 성화에 대해 관심이 많고 이 부분을 좀더 연구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중생에 대한 기본 이해가 바로 되어야 성화에 대한 이해가 바로 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렇기에 "중생한 영이 범죄하지 않는다"는 남다른 그러나 제가 어려서부터 접한 교리를 확인하고 싶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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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 자체에 대한 연구는 성화의 출발이 되고 방향이 됩니다. 당연하게 그리고 필연적으로 살피고 나갈 문제입니다.

(지적)
두번째 질문 역시 하신 말씀 가운데 다음과 같은 구절에 대한 것입니다.
"중생한 영이 죄를 짓는다고 하면, 중생된 교인이 믿고 나서 지은 죄 때문에 또 지옥을 가야 하고, 이 사람을 위해 주님은 또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려고 오셔야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중생한 영이든, 중생한 사람이든 그 사람이 죄를 지어도 죄 값은 기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단 번 구속으로 치루어졌습니다. 중생한 사람이 의인인 것은 죄를 짓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 때문이잖아요. 말씀하신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네요. 내 속의 다시 더럽혀지지 않는 중생한 어떤 것 때문에 구원이 안전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속이 완전하고 그것이 나의 것으로 간주되기에 구원이 안전한 것 아닌가요? 다시 범죄하지 않는 중생한 영이 있어서 의롭다고 하는 것은 의의 전가가 아니라 의의 주입을 말하는 천주교의 입장과 유사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은 깨끗한 중생한 영만이 아니라 여전히 죄 가운데 있지만 그리스도의 순결한 의의 옷을 입은 "나"라는 사람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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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국내에 박옥수 구원파라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장로교인만을 그렇게 선호합니다. 그들이 이제 설명하신 바로 그런 내용으로 타 교회 교인들에게 다가 갑니다. 예수님의 단 번 구속으로 모든 문제가 다 해결이 되었다는 것이 상식입니다. 당연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교회 생활을 통해 끝 없이 죄를 회개하고 죄를 짓지 않으려고 필사의 노력을 하는 것일까요? 죄 문제는 다 해결이 되었는데.

일반 교회의 설교가 죄 짓고 회개하지 않고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모두들 지옥을 간다고 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면? 마음껏 죄를 짓고 살아도 된다는 논리가 나옵니다.

이제 설명 드린 이야기들은 이미 국내에서 수십 년 동안 심각하게 일반 교회들이 그들이 아는 개혁주의 교리에 근거해서 공회 교리를 비판해 온 내용들입니다. 그들의 오해적 비판이 먼저 있었기 때문에 저희는 설명해 나갔고, 저는 그들에게 칼빈의 개혁주의 첫 교리를 정말 제대로 안다면 공회는 개혁주의 중에서도 최고의 개혁주의고 개혁주의를 제대로 알고 깨달은 사람은 칼빈 이후 백영희라고까지 소리를 높입니다.

지금 홈 페이지에 /pkist.net/초기화면/보관자료/연구서적/'총공회 비판과 비판 전체의 취소.정정'이라는 게시판이 있는데 백 목사님을 이단으로 정죄한 자료들이 있습니다. 그 자료들 중에는 합동교단의 60년대 정죄로부터 이단 전문가들의 비판 내용이 나옵니다. 일반 건전한 정통 신학자들은 직접 이름을 내 건 적은 비교적 적지만 이단 전문가들의 비판의 배경은 바로 그 학자들이었습니다. 지금 여기서 설명하고 있는 내용이 한국 교계에 많은 논쟁이 있었고 그 논쟁이 지금 질문하시며 지적하고 반론하시는 내용이 발전하다 보면 결국 그리로 가는 면이 있어 소개합니다. 금방 상기 서적 자료를 보려고 들어 갔는데 링크에 착오가 있어 제가 웹 사이트 관리하는 분께 바로 잡도록 부탁해 놓겠습니다.

아마 그 자료를 보시면 중생 교리의 반론 입장이 잘 나와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양측의 내용을 통해 지금 쏟아 놓고 계시는 고민이 혼자의 고민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그들과 같다는 것은 아니나 큰 흐름은 그렇게 보입니다.

(지적)
하여간 말씀하신대로 죄의 책임 문제에 대해서는 더이상 질문을 하지 않고 써 주신 많은 글들을 토대로 스스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지금은 이해가 안가도 좀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바뀌면 달리 보이는 것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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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시간을 가져 보시면 좋겠습니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주저 마시고 연락해 주십시오. 신앙의 주제, 그 중에서도 이 교리에 관해서는 제 생을 다 쏟고 있으니 문제가 있다면 제가 저를 위해 더 필요한 상황입니다. 더욱 생각한 것이 있고 그 대화의 내용이 글이 아니라 대면으로 필요하다면 훗날 국내에 들어 오셨을 때 연락하시면 제가 가서 뵙겠습니다. 제가 서울을 중심으로 전국 몇 곳에 순회를 한 번씩 해야 하기 때문에 왠 만하면 이런 일에는 일정을 맞추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양해를 구하고자 합니다.

한 사람의 글이 한 사람에게만 국한 되는 경우도 있고, 한 사람의 글이 많은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해당 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 번 글은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경우에 해당 본인이 양해를 하신다면 글의 질문자 이름이나 질문자를 알 만한 일체 내용을 다 줄이고 단순히 논리적 문답만 추려서 홈에 소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미 제기 된 내용들은 pkist에 '문답게시판' 등에 있고 또 '발언/주제연구' 게시판에도 있지만 이 번에 새로 제기 된 내용이 제공 된다면 훗날 이 번 질문자와 같은 단계를 통해 고민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고 그들로부터 우리가 또 다시 생각할 내용이 새로 제기 된다면 우리가 또 연구 과제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속 교단까지, 일체 개인을 짐작할 내용을 삭제하고 단순히 '신학생'이라는 이름만 사용하여 홈의 자료로 올릴 수 있을지요?

현재 게시판들에는 '신학' '신학생' '신학도'로 올라 온 글이 교파를 막론하고 수 없이 많습니다.
신대원 2025.10.23 15:51  
성화. 정말이지 구원받은 성도로서 이 세상에서 남은 할 일은 이게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지만 우리의 의식과 무관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노력으로 나타나는 것이고요. 구원이란게 칭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지요. 죄의 책임만 깨끗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죄의 오염에서 깨끗하게 만들어 가시는 일, 그리고 마침내 몸과 영과 혼을 완전하게 해주실 이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주신 놀라운 구원이고요. 폐법주의와 율법주의, 그리고 알미니안과 하이퍼칼빈주의 사이의 긴장 속에서 계속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기를 바라고요.

제가 성화 또는 건설구원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것은 신앙생활을 오래한 사람으로서 스스로 참 발전이 없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지식은 늘어가지만 거룩을 이루어 나가는,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면에서 너무 자신이 한심하기 때문이지요.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자신을 나름대로 도덕적으로 잘 가꾸어 나가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또 입고 있는 사람으로서 참 부끄럽기 말할 데 없습니다.

타교단의 비판 자료와 코람데오에 쓰셨다는 글을 천천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기본적인 말씀은 들었으니까요.
그리고 단순히 머리로만 추론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비추어 보고 기도하겠습니다.

제가 이제껏 이메일로 어느 누구와 이야기 나눈 것 중에서
저보다 길게 답변을 해 온 것을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그런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제가 관심있어 하는 아주 중요한 것에 대해 이렇게 상세히 응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한국에 언제쯤 돌아갈지 모르겠지만
꼭 찾아뵙고 말씀을 나누고 싶네요.

제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을 게시판에 올리셔도 괜찮습니다.
제가 말한 교단이야기만 빼주시면 좋겠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신대원 2025.10.23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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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 교리 5
한 가지만 더 질문드리고자 합니다.

글들을 읽다보니 기존 신학에 문제를 발견하고 고민하다가 지금에 이르렀다고 하셨습니다.
쓰신 글에 의하면 영혼단일성의 문제가 그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중생된 부분을 이분설처럼 마음의 세계로 본다면 마음의 일부는 살고 일부는 죽어 있는 상태로 봐야 하는데 영혼불가분성에 문제가 됩니다. 마음을 불가분의 존재라고 고수한다면 우리는 중생되는 순간부터 마음으로 어떤 죄도 짓지 않는다는 위험한 발상에 나가거나 아니면 마음 전부가 중생했다 현실에서 죄를 지으면 다시 죽게 되는 일을 반복한다는 중복 중생의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저는 이 부분에 있어서 영혼단일성을 견지하면서도 이분설로도 충분히 문제가 없는데요. 중생의 개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저의 이전 메일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중생을 아무것도 안하는 죽은 상태에서 완전무결한 상태로 살아난 것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과 상관없이 동작하다가 양적으로 아니라 질적으로 성격이 바뀐 것으로 보면 되지 않나요? 영의 일부가 살아난 것이 아니라 전체가 다 살아나서 하나님을 알기는 하지만 완전히 거룩하지 않은 상태로 볼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거룩한 상태가 아니기에 성화의 과정을 거치고, 죽을 때까지 완전에 이르지 못하지만, 죽는 순간 몸과 분리되어 완전해져서 하늘에 간다고 이해합니다만. 그리고 중생한 사람이 죄를 짓지만 다시 중생이 필요없는 것이지요. 죄의 삯은 사망이라서 범죄하면 죽는 것이지만, 그 삯을 이미 예수님께서 담당하셨으므로 다시 죽지 않지요. 같은 논리로 이 목사님(다른 글들을 보니 목사님으로 불리시더군요)께서도 저에게 중생한 영이 담당하는 심신이 지는 죄의 책임에 대해 영이 죽지 않는 이유를 그렇게 설명하셨지요. 제가 이해하고 있는 것이 전통적인 개혁신학 견해 맞지요?

기존 신학이 어떤 부분에서 문제가 되는지 말씀하신 내용으로는 부족한 듯 싶습니다. 혹시 다른 문제도 있다면 말씀해주시면 이해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질문을 그만하려고 했는데, 이 목사님의 친절에 기대어 역시나 빠르고 쉬운 길을 선택해버렸네요. 넓은 마음으로 후배의 조바심을 이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담당 2025.10.23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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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 교리 6

1. 교리의 어려운 문제만 나오면
저는 삼위일체 교리를 모델로 세우고 참고합니다. 어떤 경우는 직접 연관이 있어서 그렇고, 대부분의 경우는 교리가 정립 되어 가는 과정을 통해 다른 교리의 정립 과정에 참고하면 도움 되는 일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지금 삼위일체 교리를 두고 역사의 교리 체계가 더 이상 자랄 것도 없이 100% 완전하다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정통 교회는 삼위일체 교리를 두고 단 한 자만 다르게 표현해도 역사적으로 이단이 되었고 오늘도 이단 시비가 가장 거세게 제기 되는 분야입니다. 그런데 그 많은 세월에 모든 정통 교회는 일단 삼위일체를 설명하는 표현과 방법은 조금씩 달랐지만 근본 최소한의 울타리는 동일했고 이 울타리를 가지고 정통과 이단을 가르는 기준으로 삼아 왔습니다. 이 울타리를 지킨다면 정통으로 보고 그 울타리 내에서 설명하는 것은 설명의 방법론으로 봤고 그 어떤 이유로든지 주후 325년의 니케아공회의 표현을 벗어 나면 이단으로 규정해 두고 있습니다.

삼위일체 교리를 먼저 설명 드리는 이유는, 현재 질문하신 분이나 이 교리에 관심 있는 어느 분이라도 혼자 생각을 자꾸 하다 보면 역사적 정의와 달리 자기의 표현을 갖고 싶어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이해하고 자기가 좋아하고 자기가 발견했다고 생각하는 삼위일체 표현을 드러 내게 되면, 그 사람의 표현이 엄하게 말할 때 이단 선을 넘어 서게 도는지 아닌지 왠 만한 교리 전문가가 아니면 알기 어렵게 됩니다. 저는 이단의 전문가가 누군지 그 기준도 믿지 않고 부정하는 편이나 이 설명은 일반 교계의 정통 신학 기준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세계 교회는 두고, 한국 교회에 삼위일체를 정통 신조 그대로 표현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시도한 내용을 발표했다가 이단으로 정죄 된 경우는 참 많습니다. 그들의 주장과 노력을 듣다 보면 그 분들로서는 그 표현이 좋았을 것으로 이해하나, 출발 선에서 아주 조금 잘못 된 상태로 세월이 가면 원래 선에서 점점 이탈 되다가 뒤에는 무척 많이 이탈이 됩니다. 좀 많이 이탈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시점에서 정통 교리와 비교하여 자기 수정을 하면 그 동안의 노력 과정조차 훌륭한 경험이 되고 자기 신앙을 공고히 하는 데 더 없이 귀한 자산이 되지만, 교계적으로 좀 돋보일 정도로 활동한 분들은 그 자신이 자기가 주장한 것이 좀 문제가 있다고 알게 될 때는 주변에 따르는 사람도 좀 많아 져 있고 자기 권위 문제 등과 맞물려 자기의 오류를 합리화나 무마를 하려고 여러 노력을 하게 됩니다. 삼위일체 교리가 워낙 어려운 부분이어서 누구든지 자기 교인에게 적극적으로 설명을 하려다 보면 누구나 조금씩 오류는 있게 되는데 성공한 지도자들은 이런 오류를 인정하기 어렵고 그 지도자들은 대개 보편 교단들과 신학계에 눈의 가시가 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교리적 문제가 이단 정죄의 빌미를 제공합니다. 지금 문선명 박태선 정도의 이단이 아닌데도 교회 출발 초기에 멋 모르고 주장했던 자기 설교 자료가 신학계에 정밀 검진을 받아 이단으로 정죄를 받는 곳으로는 서울의 성락교회 연세중앙교회... 등으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런 분들에게 아쉬운 것은 초기에 나름대로 깨닫고 확신이 있고 실천력이 있어 목회에는 성공을 할 수 있지만 초대형 건물로 지어 져 가게 된다면 바닥의 기초 설계나 시공의 미세한 문제는 대형 참사로 이어 질 수 있으니 한 걸음씩 조심해서 주변과 비교해 가며 나가는 것이 좋고, 삼위일체처럼 전통의 오래 되고 정미하게 다듬어 진 교리는 자기의 새로운 생각을 섣부르게 구성하는 것보다 먼저 정통 교리를 제대로 배우고 짚어 충분히 익히고 나서 그 다음에 그 교리를 그대로 이어 갈지 아니면 그 교리의 일부에 꼭 의문이 있는 부분을 최소한으로 다른 대안이 있는지를 살펴 보면 좋겠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3. 추가로 질문하신 부분

(지적)
글들을 읽다보니 기존 신학에 문제를 발견하고 고민하다가 지금에 이르렀다고 하셨습니다. 쓰신 글에 의하면 영혼단일성의 문제가 그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중생된 부분을 이분설처럼 마음의 세계로 본다면 마음의 일부는 살고 일부는 죽어 있는 상태로 봐야 하는데 영혼불가분성에 문제가 됩니다. 마음을 불가분의 존재라고 고수한다면 우리는 중생되는 순간부터 마음으로 어떤 죄도 짓지 않는다는 위험한 발상에 나가거나 아니면 마음 전부가 중생했다 현실에서 죄를 지으면 다시 죽게 되는 일을 반복한다는 중복 중생의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저는 이 부분에 있어서 영혼단일성을 견지하면서도 이분설로도 충분히 문제가 없는데요. 중생의 개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저의 이전 메일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중생을 아무것도 안하는 죽은 상태에서 완전무결한 상태로 살아난 것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과 상관없이 동작하다가 양적으로 아니라 질적으로 성격이 바뀐 것으로 보면 되지 않나요? 영의 일부가 살아난 것이 아니라 전체가 다 살아나서 하나님을 알기는 하지만 완전히 거룩하지 않은 상태로 볼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거룩한 상태가 아니기에 성화의 과정을 거치고, 죽을 때까지 완전에 이르지 못하지만, 죽는 순간 몸과 분리되어 완전해져서 하늘에 간다고 이해합니다만. 그리고 중생한 사람이 죄를 짓지만 다시 중생이 필요없는 것이지요. 죄의 삯은 사망이라서 범죄하면 죽는 것이지만, 그 삯을 이미 예수님께서 담당하셨으므로 다시 죽지 않지요. 같은 논리로 이 목사님(다른 글들을 보니 목사님으로 불리시더군요)께서도 저에게 중생한 영이 담당하는 심신이 지는 죄의 책임에 대해 영이 죽지 않는 이유를 그렇게 설명하셨지요. 제가 이해하고 있는 것이 전통적인 개혁신학 견해 맞지요? 기존 신학이 어떤 부분에서 문제가 되는지 말씀하신 내용으로는 부족한 듯 싶습니다. 혹시 다른 문제도 있다면 말씀해주시면 이해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
스스로의 연구에 앞 서, 우선 일반 정통 개혁 신학을 좀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저희는 성경 하나 외에는 옆을 돌아 보지 않는 성향이 있습니다. 저처럼 아주 특수한 경우는 일반 신학을 좀 구경하는데 사실은 저희와 다른 것을 모르고 괜히 실수할까 봐서 참고하는 정도입니다. 대략 한 번 훑어 보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삼분론이나 구원론의 핵심 쟁점에 대해서는 거의 봤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으로 내가 깨닫는 바가 확정이 되고 나면 당연히 살펴 봐야 다른 분들과 대화도 된다고 봅니다. 현재 질문자께서 계신 곳에서 듣고 나온 것과 일반 신학의 주장을 아주 간략히 본 것처럼 생각이 됩니다.

우선 일반 교리의 입장에 대해, 제가 중생 교리를 두고 교계적 인물들과 대화가 적지 않았습니다. 저는 1984년 Covenant에서 정통 교리를 배웠고, 그 분들은 평생을 그 것만 전부인 줄 알고 붙들고 있는 분들입니다. 일단 그 분들과 대화에서 제가 인식하고 있는 일반 교회의 기본 생각들은 같았습니다. 제가 배운 것과 그들이 배운 것이 같고, 제가 일반 개혁교회 정통 교리가 말하고 있는 바를 아는 것과 그들의 현재 생각이 같았습니다. 그래서 서로 같은 것에 대해서는 따로 살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시각에서 본 백영희 구원론, 중생 교리의 문제점만 딱 짚어 지적하면 되고 저희는 저희가 정통 교리의 숙제 부분을 짚으면 간단했습니다. 그래서 사실 그들과 대화에는 대화의 양이 아주 적었습니다. 대화다운 대화를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당신들은 죄를 지으면 지옥을 간다고 가르치지 않는가? 그 죄를 회개해야 천국에 간다고 가르치지 않는가? 한 번 구원을 받으면 일단 천국에 들어 가는 것은 무조건이며 천국 갈 중생자들의 성화의 차이가 있는 것이라는 말을 그렇게 무조건 이단으로까지 정죄를 해야 하겠는가?' 이런 대화가 실무 차원의 내용이었습니다. 이런 대화에 그들과 제가 서로 일반 신학이 그렇게 말한 적이 없는데 왜 오해를 하느냐? 누가 그런 말을 하더냐? 어느 주장을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느냐는 그런 문제가 전혀 없었습니다. 지금도 고신3년에 재학중인 분이 강의 중에 계속 듣고 있는 내용과 백 목사님의 이 부분 교리를 비교하며 저와 대화하는 분이 있습니다. 고려신학교 교수나 합동 교단의 역사와 노회의 정죄 내용이나 박윤선 목사님의 주장이나 지금까지 그 쪽에서 정통 신학에 근거하여 먼저 이 쪽을 짚었기 때문에 이단 시비와 많은 대화가 있었고, 그 이전에 그들에게 배운 교리의 문제점 때문에 백 목사님은 이 교리로 그들의 미진한 부분을 보충했다고 생각했고 주장했었습니다.

이제 질문자께서 제게 말씀하시는 내용은 일반 교리를 근거한 것도 아니고 그리고 이 노선의 내면을 잘 아시고 설명한 것도 아니며, 저희가 50여 년 교계적 논란 가운데 있었던 대화와 전혀 다른 면에서 '가능성' 또는 '새로운 시각'으로 설명하고 계십니다. 일단 일반 교회의 기본적인 상식과 시각과 백영희에 대한 이단 비판까지 나오게 된 것은 제가 앞에서 안내한 이단 비판 자료들이나 기타 자료들을 먼저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 쪽을 확실하게 파악하신 다음에 질문자께서 별도의 생각을 제시해 주신다면 제3의 가능성을 저 역시 진지하게 받아 보고 싶습니다.

참고로, 알게 모르게 한국 교회 안에는 백영희 구원론의 영향이 크게 파급이 되어 '백영희' 이름을 표시는 하지 않아도 백영희 체계를 하나의 아이디어로 받아 들여 자신들의 설명을 붙이는 등으로 곳곳에 제3 제4의 제안들이나 주장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1980년대 초반까지는 제가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으로 공방이 있었습니다. 1980년대 초반부터 백 목사님과 서부교회의 이름이 주일학교 때문에 교계를 워낙 강하게 영향을 미쳤고 이후로는 백 목사님의 교리적 주장에 대해서도 그 영향력이 상당히 번져 나가 있음을 느낍니다.

소결론, 일단 질문자의 평소 생각 이전에 정통 교리와 백영희 교리의 중생된 영 문제로 이단정죄가 나왔고 한국교회의 소란은 적지 않았습니다. 그 모든 공격은 칼빈주의 정통 교리였습니다. 먼저 과거 교리 분쟁사를 살피기를 부탁합니다. 한국교회의 정통 신학의 총공회 정죄 논리에 질문자께서 이미 생각하셨던 것도 상당 부분이 있을 수 있고 현재까지 살피건대 그 분들과는 또 다른 제3안이 나오고 있습니다.
신대원 2025.10.23 15:57  
"이제 질문자께서 제게 말씀하시는 내용은 일반 교리를 근거한 것도 아니고 그리고 이 노선의 내면을 잘 아시고 설명한 것도
아니며, 저희가 50여 년 교계적 논란 가운데 있었던 대화와 전혀 다른 면에서 '가능성' 또는 '새로운 시각'으로 설명하고
계십니다."

저로서는 이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제 이해가 전통적인 교리에 근거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전혀 다른
시각이라고 말씀하시니 상당히 의외입니다.

백목사님연구싸이트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찾았습니다.

-------------------
2) 현재까지의 구원 교리

⑴ 그 절대 명제들
① 사람은 물질인 몸과 비물질이며 영적인 존재 영혼, 둘로 되어 있다.
② 영혼은 분리될 수 없는 일체성 전체성의 존재이다.
③ 구원은 죽었던 영혼이 다시 살아나는 것인데 이는 즉각적이지 점진적이 아니다.
생사란 중간 상태나 또는 점진적인 과정일 수가 없는 성질이기 때문이다.
④ 예수님의 대속은 우리를 단번에 사죄하고 칭의시켜 단번에 중생케 하였고 이러한 영혼의 중생은 일생에 한 번밖에 없는 일회성이다.
⑤ 그러나, 중생된 성도라도 그 영혼에 죄를 다 떨쳐버리지 못하여 평생 노력을 해야 한다.
-----------------

이것이 기존 교리라고 하셨는데 제 설명이 이에서 벗어난 것이 무엇인지요?

그리고 계속해서
-----------------
⑵ 한 곳에 모아두면 당장에 나타나는 현실적인 모순들

① 예수님의 대속은 한 번인데 한 번으로 적용되어 중생된 영혼이 다시 짓는 죄의 값은?

>>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신자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가 다 사해졌다는 것이 전통교리 아닌가요? 천주교에서는 세례받을 때 그전의 죄를 용서받는것이지만요. 신자가 여전히 죄인이지만 그리스도를 보혈로 의인으로 간주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칭의라고 하는 것이고, 반대로 천주교에서는 실제로 거룩해진 의화를 얘기하잖습니까.

② 영혼은 분리할 수 없는 단일의 존재인데 그 영혼 안에 의로 산 부분이 있고, 아직도 죄를 짓는 부분이 있다면?

>> 영혼은 단일존재이고 나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양적으로 어떤 부분이 살고 죽는 변화가 아니라 양적으로는 전체가 질적으로 살고 죽은 변화입니다. 그것이 정통교리가 아니라 저만의 제3의 이해인가요?

③ 중생된 성도가 평생에 죄만 짓고 산다면 그래도 천국은 반드시 가게 되어 있는가?

>> 범죄에 대한 이해도 좀 다른것 같지만 그것은 제쳐두고. 중생한 성도가 죄를 짓는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줄 압니다. 그러면 위 질문은 한 번이라도 죄짓는 중생한 성도가 천국에 갈 수 있는가 라는 질문과 같은 것이지요. 기존 이해가 이 문제에 걸리면 총공회의 삼분설 역시 똑같이 걸립니다. 혹시 영은 죄짓지 않으므로 천국에 가고 심신은 죄를 지었으므로 죽는다는 것인가요? 1번과 상관있는데, 성화의 관점이 아니라 칭의의 관점에서 하나님께서 죄인을 의인이라고 하시는 것으로 답이 되지 않나요? 제 이해가 어떤 것이 정통적이 아닌지 정말 궁금합니다.

계속해서
-----------------
⑶ 정리되지 못한 구원론 교리가 빚어내는 교회 현장의 모순

① 성도라도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고 죽으면 지옥을 간다. 그렇지 않다면 죄를 지어도 천국을 가게 된다는 말이 될 것이니
성도는 마음껏 죄를 지어도 천국 갈 수 있게 된다.

>> 앞부분은 기존 구원론의 설명이 아니라 천주교 설명에 가깝고, "그렇지 않다면" 이후는 폐법주의 설명이네요. 기존 교리에서 문제가 될 것이 전혀 없습니다. "마음껏"이라는 표현을 떼면 정통교리에서 받아들일 수 있지만, 마음껏이라는 표현 때문에 정통교리에서 거절하겠지요. 반대로 저는 저희 교단에서 범죄하지 않고 다시 죽지 않는 중생한 영이 있기에 담대히 마음껏 죄를 짓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저희 중생교리를 현장에서 적용할때 생기는 모순을 저도 직접 보았습니다.

② 참으로 중생된 사람이라면 완전 중생이기 때문에 다시는 영혼이 죽지 않는 것이며, 죄를 짓지 않고 살게 된다.

>> 앞진술은 기존교리와 총공회 교리가 일치하는 부분이고 (중생의 구체적 내용은 다를지라도), 뒷부분의 주어가 사람이라면 전통교리도 아니요 총공회교리도 아니고, 그 주어가 영이라면 영과 혼을 분명히 구분하는 총공회 혹은 저희 교단의 이해입니다.

③ 물론 성도는 평생 죄를 짓고 살지만 반복적으로 또는 고의로 또는 습관적으로 짓는 죄가 아니며, 이것이 바로 중생된 생명이
가지는 기본적 성향이다.

>> 그러므로 자신의 죄를 돌이켜 보고 성화에 힘쓰게 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보통 말하는 기존 교리인데, 총공회의 중생교리에 의해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지 않나요? "중생한 성도는 평생 죄를 짓고 살지만 참으로 중생한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그렇게 심하게 계속적으로 죄를 지을 수는 없다." "반복적, 고의, 습관"이라는 표현이 애매하지만 말입니다.

질문 그만하고 스스로 생각해보려고 했는데, 제 이해가 정통이 아니라는 말씀에 깜짝 놀라서 또 이렇게 길게 썼습니다. 정말
그렇다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는 것이기에 질문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이고 다시 제대로 공부해야겠기
때문입니다. 저희 교단과 총공회 측 견해를 살피기 전에 제 이해를 다시 먼저 살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제가 한국에서 배울 때 지금 제가 가진 이해가 없었기에 저희 교단의 교리에 대해 의문이 있었으면서도 질문이나 평가하는 것을 미루어왔던 것이고, 지금은 어느 정도 기존교리를 이해했다고 생각했기에 감히 여러 질문을 드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제 이해가 정통이 아닌 또 다른 것이라고 하시니 많이 당황스럽습니다. 어떤 부분에서 정통이 아닌지 구체적으로 집어 주실 수 있는지요? 이런 저를 도와주실 수 있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시더라도 저에게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담당 2025.10.23 15:59  
중생 교리 6-1

일단, 그 동안 오 간 자료만 가지고도 적지 않게 살펴 볼 과제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논리도 많았으나 관련 성구까지 살피려면 더 그럴 듯 합니다. 질문자께서는 제가 소개해 드린 일반 교계와 저희 사이의 이단 시비의 논쟁 자료들을 먼저 살펴 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자연스럽게 질문자 자신을 뺀 '객관적 일반 정통 교리의 인식'과 저희에 대한 입장 차이를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질문자의 생각은 양 쪽을 아우르는 중간의 입장이 될 듯합니다.

제가 평소 상대편을 혹독하게 비판하는 편이지만 그 분들과 저희의 차이를 우호적으로 이해하려 한다면 그 분들이 질문자처럼 조금만 여유 있게 생각하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질문자 말씀은 그런 쪽입니다.

박윤선과 백영희
합동의 경북노회와 백영희
한종희 전기서에 나타 난 백영희
박영관, 최삼경... 등의 후세대의 백영희 비판 등의 자료를 먼저 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신대원 2025.10.23 15:59  
네, 감사합니다. 목사님.

이제 더이상 질문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천천히 소개해주신 것들을 살펴보고
무엇보다 성경말씀에 비추어 묵상하고
어리석음과 교만을 회개하고 기도하면서 살피겠습니다.

혹시나 나중에 그래도 해결이 안될 때 다시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미련하고 조급한 후배에게 자세하게 일러주시고 답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에게 소중한 경험이었고 좋은 자산이 되리라 믿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목사님의 가정과 교회에 늘 평안을 베푸시기를 기도합니다.

---------------
추신,
혹시나 해서 목사님 성함으로 인터넷에서 검색하니 새벽예배설교동영상이 나오더군요.
오늘 집사람과 같이 하나 봤습니다. 마태복음 10:13 말씀 귀하게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담당 2025.10.23 16:00  
조금이라도 제 성의가 부족하여 진리를 찾는 진심에 지장이 될까 늘 조심하고 있습니다.
공무원의 월급쟁이 자세가 민원인에게 행동하는 것처럼 목회자며 진리를 찾는 사람으로서 그 모양이 될까 염려합니다.
백 목사님께 배운 기본 자세 중에 이런 문제를 늘 지적 받았습니다. 진지하게 찾고 노력하되, 이 순간은 질문자께서 잠깐의 혼자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언제나 필요하면 연락 주십시오. 저를 살피는 마음으로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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